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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둘러싼 모든 것은 ‘배울거리’예요. 언제나 재미나게 배우면서 늘 새롭게 자라요.'
동무들과 즐겁게 사귀면서 나누는 말. 우리들이 어렸을 때 사용했던 일이지만 이제는 잊고 살았던 말들을 알아보면 어떨까? 그 말들을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쳐주면 어떨까? 넘쳐나는 많은 말들에는 우리의 과거와 우리의 모습이 겹칠 수 있다. 그런 사실을 우리는 잊고 말았다. 그래서 마을에서 이웃과 어른들과 친구들과 어울려 놀면서 사랑도 배운다. 사랑만 배울까? 배려도 하고 인내도 하면서 어울려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다. 그리고 말도 배운다. 새로운 말도 만들어낸다. 그러면서 우정이 싹 튼다. 정겨움이 자라나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우리가 누리는 모든 놀이란 일은 잔치라 할 만해요. 학교나 집에서 배우는 일도 ‘배움잔치’예요. 어머니랑 아버지가 꾸리는 살림은 집안일이기에 앞서 ‘살림잔치’예요. 우리는 서로 아끼고 보살피는 마음으로 ‘삶잔치’를 누리고, 어버이한테서 물려받는 ‘사랑잔치’를 누리는 하루이지요.'라고 말한다.
오늘은 어떤 '하루잔치'가 열릴까? 손을 맞잡고 하나가 되는 '한잔치'가 열렸으면 좋겠다. 먀일매일 잔치를 가열리니 기쁨도 배가 되니 '기쁨잔치'가 되겠네.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은 이름이 있다. '이름'은 '이르다'에서 온 낱말이란다. '이르다'는 '말하다'라는 뜻과 같다. 이름은 내것이지만 남들이 가장 많이 부흔다. 이름은 말해야 살아있는 존재인 것이다. 그래서일까? 우리가 놀이를 할 때에는 놀이에 이름을 붙인다. '놀이이름'을 만든다. 이것을 이름을 짓는 일을 '이름짓기'라고 한다.
'누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곳이다. 즐겁게 배우는 곳이라면 '배움누리'가 된다. 숲이 터전이면 '숲누리' . '놀이누리'는 놀이가 넘쳐나는 곳이다. 손을 맞잡고 한 마음 한뜻이 된다는 '한누리'가 있다. 온 세상을 사랑으로 넘쳐나게 만드는 '사랑누리'도 있다. 어떤 누리가 되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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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이들 말투가 정말 심각합니다. 초등학생들에게 욕은 이제 일상이구나 하고 느낄 정도입니다. 사실, 욕을 쓴다고 해서 아이들이 삐뚤어진 건 아닙니다.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자연스럽게 그들만이 쓰는 언어에 익숙해졌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무의식 중에 내뱉는 겁니다. 우리 집 아이들도 무의식 중에 친구들 사이에서 쓰던 말을 하다가 가끔 혼이 나곤 합니다. 이미 습관이 된 말을 고치기가 쉽지 않은 겁니다. 그건 어른이라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아이들이 나쁜 말을 쓴다고 해서, 그 아이 인격을 문제 삼을 필요는 없습니다. 단지 좋은 말, 예쁜 말을 접할 기회가 없다 보니, 쉽게 나쁜 말에 익숙해졌을 뿐입니다. 아이들이 좋은 말을 쓰도록 하려면, 나쁜 말을 쓸 때마다 혼만 낼 게 아니라 어떤 말을 쓰는 것이 좋은지 가르쳐야 합니다. 특히 부모가 아이들과 함께 있는 동안에는 더 좋은 말을 쓰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면 아이가 자연스럽게 좋은 말과 나쁜 말을 구분할 수 있게 되고, 좋은 말을 쓰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
말이 가지는 품격은 그 사람의 정신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말을 제대로 배우는 것은 결국 정신을 고양시키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좋은 말을 자주 접하도록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좋은 말, 바른 말을 배운다면, 어른이 되어서도 좋은 말 습관을 가지게 될 테니까요. 부모가 말에 관심을 가지면,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말에 관심을 기울일 겁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말하는 습관은 부모하기 나름입니다. 아이에겐 부모가 가장 가깝고 중요한 환경이니까요.
여러 저서를 통해, 좋은 우리말을 널리 알리고 계신 최종규 작가님이 내신 새 책이 아이들을 위한 책이란 사실을 알고 무척 반가웠습니다. 그래서 출간 소식을 접하자마자 바로 구입해 먼저 펼쳤습니다. 최종규 작가님의 필체에는 다정다감함이 넘칩니다. 그 느낌이 책에 소개한 우리말에 그대로 녹아 있습니다. 이번 책에서는 '동무들과 즐겁게 사귀면서 나누는 말 한마디'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아이들이 일상에서 쓸 수 있는 우리말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알면 바로 쓸 수 있는 말들인 거죠.
좋은 우리말을 어른들은 알지만, 아이들은 잘 모릅니다. 시대가 바뀌고, 환경이 바뀌면서 새롭게 만들어진 말들이 많아진 겁니다. 좋은 우리말을 두고, 낯선 말들이 우리말을 대신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순수 우리말들이 어른들에게는 익숙해도 아이들에게는 아예 낯선 말들이 참 많을 겁니다. 말이 변해온 과정은 사회가 변화해온 것과 맥을 같이 합니다. 그래서 이 책은 부모님과 아이들이 함께 읽으면 좋을 책입니다. 아빠와 엄마가 성장하며 경험한 일들을 함께 곁들인다면 읽는 재미를 더할 수 있습니다.
말 한마디를 어떻게 살려서 쓰느냐에 따라서 우리 마음은 더 아름다울 수 있지만, 아름다움하고 동떨어질 수 있어요. 아주 작은 말 한마디를 슬기롭고 즐겁게 쓰면서 맑으면서 밝은 꿈을 사랑스레 키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여는 말 중에서)
아이들과 말에 대해 이야기 나눌 기회가 아예 없을 겁니다. 나쁜 말을 쓰면 혼내기만 할 뿐 대안은 없지요. 이런 부모님들께 이 책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을 권해드립니다. 우리말 공부도 하고, 말공부가 중요한 이유도 아이들과 책을 읽으면서 나누어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이 책을 아이들이 잠들기 전에 읽어주기로 했습니다. 야단 맞으면서도 고치지 못하는 못된 말습관을 이 기회에 싹 고칠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말입니다. 말 한마디가 가지는 가치를 아이들에게 꼭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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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오마이뉴스 편집부에서 시민기자 스스로 시민기자 책을 소개하는 꼭지를 마련했기에 그 꼭지에 맞추어 [책이 나왔습니다]라는 연재기사 가운데 하나로 써 본 글입니다.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이라는 책을 놓고서 이 책을 써낸 뜻을 곰곰이 생각해 본 끝에 이렇게 풀어내어 봅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356148 ![]() 시골·서울, 아이·어른을 마을말로 잇고 싶다 [책이 나왔습니다] 이웃을 아끼는 말살림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노래 기획 최종규 글 강우근 그림 철수와영희 펴냄, 2017.7.12. 13000원 2017년 7월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철수와영희 펴냄)이라는 책을 내놓았습니다. 이 책에서는 열두 살 어린이 눈높이에 맞추어 한국말이란 얼마나 사랑스럽고 아름다운가 하는 이야기를 다루려고 했습니다. 아이들은 여덟 살 언저리에 초등학교에 들어가며 여러 가지를 배우는데, 초등학교 교과서를 살피면 어려운 말이 대단히 많고, 아이들이 외워야 하는 지식도 참으로 많습니다. 그래도 예전에 대면 초등교육은 많이 나아졌다고 할 만한데, 어린이가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학교로 접어들면 곧장 입시교육으로 바뀌어요. 삶을 다스리는 배움이나, 살림을 짓는 슬기를 스스로 찾는 배움하고는 멀어진다고 할까요. 이런 사회 흐름이나 교육 흐름에서 이 나라 어린이가 마음속에 맑은 말 한 마디를 품으면서, 이 맑은 말 한 마디로 스스로 꿈을 짓는 씨앗을 가꾸기를 바라는 뜻으로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예전에는 ‘동네’라고 하는 말은 거의 안 썼고, 시골이나 도시 모두 ‘마을’이라고 했어요. 도시가 커지면서 ‘洞(동)네’라는 말이 널리 쓰였어요. 한자로 ‘洞’은 ‘마을’을 가리켜요. ‘동네’라고 하면 ‘마을네’라는 소리이니, 그냥 ‘마을’을 한자말로 가리키는 이름이지요. (12쪽) 밤에 하늘을 올려다보면 ‘별잔치’를 누릴 수 있는데, 서울 같은 큰 도시는 건물도 많고 하늘도 뿌예서 좀처럼 별잔치를 못 누려요. 어느 날은 달조차 보기 어려울 수 있어요. 별잔치를 누려야 하늘에서 별빛이 냇물처럼 흐르는 미리내를 만나요. 미리내라고 하는 별무리는 수많은 별이 냇물처럼 이어지는 모습인데, 한밤에 반짝반짝 빛나면서 ‘빛잔치’를 이루지요. (34쪽) 지난 2014년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숲말’을 다룬 이 책은 책이름처럼 우리가 쓰는 말은 숲에서 비롯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할 만합니다.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이라는 책은 ‘마을말’이라는 이름처럼, 숲에서 태어난 말을 마을에서 저마다 이쁘장하게 가꾸거나 살찌운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숲말》하고 《마을말》이라는 두 가지 책으로 이 나라 어린이한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간추려 본다면, 숲에서 태어난 말을 마을에서 가꾸는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우리 스스로’라는 대목입니다. 고장마다 다른 고장말처럼, 마을마다 다른 마을말이 있고, 집집마다 다른 집말까지 있어요. 누구나 스스로 삶과 살림과 사랑을 가꾸는 말을 지어서 즐겁게 쓸 수 있다는 이야기를 어린이한테 들려주고 싶습니다. 가르치는 자리에 서서 배우는 사람을 바라보노라면, ‘가르치면서 배우는구나.’ 하고 느끼기 마련이에요. 배우는 어린이 여러분도 어른한테서 무언가를 배우면서 새롭게 무언가를 가르친답니다. 이리하여 배우는 사람이나 가르치는 사람은 서로 ‘배움님’이 되면서 ‘가르침님’이라 할 만해요. 오늘 하루도 맑은 마음이 되어 밝은 생각을 배울 수 있는 길을 신나게 함께 걸어가요. (49쪽) 책은 말로 빚어요. 말은 삶으로 빚어요. 삶은 생각으로 빚지요. 우리가 저마다 생각하는 대로 하루를 살아요. 즐겁게 놀고 싶다는 생각을 품으면, 언제 어디에서나 즐겁게 놀면서 하루를 빚어요. 기쁘게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품으면, 학교에서뿐 아니라 마을이나 집에서도 기쁘게 배우면서 하루를 빚지요. 심부름을 한다든지 어버이 일을 거들겠다는 생각을 품으면, 또 이러한 생각대로 하루를 빚는답니다. (57쪽) 학교에 들어간 어린이는 맞춤법하고 띄어쓰기 때문에 대단히 힘겹습니다. 그런데 맞춤법하고 띄어쓰기는 어린이한테만 힘겹지 않아요. 어른한테도 벅차지요. 어린이는 학교에 들기 앞서 그렇게 말도 잘 하고 때때로 멋진 글을 쓰기도 하는데, 막상 학교에 들어가고 나면 좀처럼 ‘눈부신 말’이나 ‘빛나는 글’을 끌어내지 못하기 일쑤예요. 학교에 들기 앞서까지는 홀가분하게 말하거나 글쓰면서 생각을 지필 수 있었다면, 학교에 들고 나서는 맞춤법하고 띄어쓰기를 따박따박 지켜야 한다는 굴레에 갇히고 말아요. 가만히 생각해 보면, 고장마다 고장말이 다르기에, 고장마다 ‘맞춤법도 달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라말하고 경상말뿐 아니라, 충청말하고 강원말도 맞춤법이 다르지요. 같은 것을 놓고도 다른 말씨를 쓰니까 ‘우리가 고장마다 고장말로 이야기를 나눌 적에는 맞춤법을 따질 수 없다’고까지 할 만해요. 그리고 이러한 얼거리에서는 굳이 띄어쓰기를 안 따져도 될 만하지요. 이를테면 ‘신나다’를 들 수 있어요. 국립국어원은 무척 오랫동안 ‘신나다’를 사전에 안 올리면서 사람들이 이 낱말을 ‘신 나다’처럼 띄어서 적어야 한다고 밝혔어요. 이제 ‘신나다’는 사전에도 오르고 즐거이 붙여서 쓸 수 있지요. 그런데 예전 맞춤법에서는 ‘신 나다’처럼 띄어서 적어야 한다니, 얼마나 골이 아픈 노릇일까요? 왜냐하면 ‘재미나다·화나다·성나다’ 같은 낱말은 붙여서 써요. 예전 맞춤법대로라면 “재미나고 신 나네”처럼 적어야 옳으니 머리가 아프지요. 그런데 국립국어원 맞춤법은 이제 ‘신나다’를 받아들이지만, 비슷한말인 ‘신명·신바람’을 놓고는 ‘신명 나다·신바람 나다’처럼 띄어서 적어야 합니다. ‘신·신명·신바람’은 같은 얼거리인데 왜 ‘신명나다·신바람나다’처럼 쓰면 안 되도록 가로막는 맞춤법이어야 할까요? 더 헤아리면 ‘짜증’을 놓고도 아직 ‘짜증 나다’처럼 띄어서 쓰라고 하는 국립국어원 맞춤법이에요. 앞뒤가 많이 어긋나요. ‘한’은 숫자로 ‘1’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크다’나 ‘넓다’를 가리키기도 해요. ‘한길·한살림·한참·한턱·한바탕·한마당·한글’은 모두 ‘하나+크다+넓다’라 할 만해요. 파랗게 맑은 바람이 흐르는 하늘도 ‘한’에서 비롯하지요. ‘하느님’ 같은 낱말은 ‘하늘+님’인데, ‘하늘’도 ‘한+울’이면서 ‘하나+크다+넓다’를 가리키는 자리랍니다. 여기에서 ‘울’은 ‘1,000,000,000,000(조)’라는 숫자를 가리키는 오래된 한국말이에요. 숫자로 보면 ‘1’인데, 이 ‘하나’가 너르고 크면서 아름다운 것이지요. 숫자 ‘100’은 ‘온’이면서 ‘모두’예요. (68∼69쪽) 국어학자는 골치가 아플 테지만 사람들은 ‘혼술·혼밥·혼놀이’ 같은 새말을 마음껏 지어내어 씁니다. 사람들이 언제나 모든 말을 슬기롭게 짓거나 엮어서 쓴다고는 할 수 없을지라도, 무척 재미나면서 슬기롭게 짓거나 엮는 말이 많습니다.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널널하다’ 같은 말을 지어서 쓴 여느 사람들을 바라보는 국어학자는 손가락질을 해댔어요. 그러나 이제는 ‘널널하다’뿐 아니라 ‘밀당’처럼 재미나며 알뜰한 새말이 싱그럽게 톡톡 튀어나와요. 학교 교육 얼거리는 입시 틀거리에 갇히지만, 사람들이 새롭게 날갯짓을 하듯이 짓는 말이 하나둘 태어나요. 그래서 이런 싱그러운 생각을 이 나라 어린 이웃님이 마음껏 펼치기를 바라는 뜻으로 《마을말》을 썼어요. 누구보다 어린 이웃님이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를 배우기는 배우되, 너무 이 틀에만 얽매이지 말고서 홀가분하게 생각을 꽃피우는 결을 더 바라볼 수 있기를 바라는 뜻을 《마을말》에 담으려 했습니다. ‘부추·정구지·솔’처럼 고장마다 같은 것을 다른 이름으로 저마다 스스로 즐겁게 가리킨 말살림을 생각해 보자는 뜻을 담으려 했어요. 나라에서 학자님이 지어 주는 말을 쓰는 삶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작은 마을에서 작은 이웃으로서 즐겁게 말살림을 가꾸어 보자는 뜻을 담으려 했습니다. 도시에는 ‘근린공원’이라는 데가 조그맣게 있어요. 한자말 ‘근린(近隣)’은 ‘가까운’을 뜻해요. 그러니까 “가까운 공원”이라는 뜻으로 근린공원 같은 이름을 쓰는 셈이에요. 집에서 가까이 찾아갈 만한 공원이라 할 텐데, ‘이웃공원’이나 ‘손바닥공원’이나 ‘마을공원’처럼 이름을 붙이면 한결 나아요. (72쪽) 해마다 봄이면 꽃길을 걸으려는 사람이 부쩍 늘어요. 봄기운도 반갑고 꽃내음도 좋으니까요. 길을 나서는 사람은 ‘길손’이 되고, 길손이 머무는 ‘길손집(여행자 숙소·여관·게스트하우스)’이 있어요. 길손은 마음에 드는 자리를 골라서 길섶에 앉아 길밥을 먹기도 해요. 길밥을 함께 나누는 길동무라면 ‘길밥동무’나 ‘길밥이웃’이 되겠네요. (127쪽) 퍽 많은 어른들은 일본을 거쳐서 전문용어를 들여왔습니다. ‘근린공원’ 같은 뜬금없는 이름도 이렇게 들여왔어요. 마을에 작게 짓는 공원이면 ‘마을공원’이든 ‘한뼘쉼터’이든 ‘작은쉼터’처럼 수수하고 작은 이름을 얼마든지 붙일 수 있어요. 어린이더러 마을공원 이름을 붙여 보라고 했다면 어린이는 틀림없이 매우 쉬우면서 알기 좋고 어여쁜 이름을 지었으리라 생각해요. 말 그대로 수수한 ‘마을공원’이라는 이름을 쓸 수도 있을 테고요. ‘여관·여인숙’하고는 다르다는 생각으로 ‘게스트하우스’ 같은 영어를 끌어들이는 어른들이 많아요. 그런데 이를 아예 새롭게 바라보며 한국말로 쉽고 재미나게 지으려고 마음을 기울이는 어른은 퍽 드뭅니다. 자, 그러면 생각해 봐요. 어린이한테 이름짓기를 맡기면 어떨까요? 여행을 다니는 길에, 또는 나들이를 다니는 길에, 하룻밤을 묵는 곳을 놓고 어떤 이름이 곱게 어울릴까 학고 어린이한테 물어봐요. 우리 스스로 생각을 빛내어 새롭게 이름을 지어 보면 좋겠어요. 책상맡에서만 배우는 사람은 ‘책상물림’이라고 해요. 우리는 학교에서 책상맡에 앉아서 사회를 배우기도 해야 하지만, 집에서 살림을 배우고 마을에서 사랑도 배워야 하는데, 집이나 마을에서 살림하고 사랑을 배우지 못해서 두 눈이 밝게 트이지 않을 적에 ‘책상물림’이에요. ‘학교물림’인 셈이에요. (137쪽) 우리가 사는 곳은 어떤 마을이 될까요? 살림을 아끼거나 되쓰거나 북돋울 만한 마을이 될까요? 바깥에서 온갖 지하자원을 끌어들여야만 하는 마을이 될까요? 처네에 업혀서 자라는 어린이가 줄어듭니다. 포대기에 안겨 아기수레를 타면서 자라는 어린이가 늘어납니다. 처네에 업히지 않으니 처네를 알 길이 없습니다. 배냇저고리도 바지도 여느 옷도 손수 실하고 바늘을 놀려서 짓지 않을 적에는 이러한 옷가지를 찬찬히 알기 어렵습니다. 손수 짓지 못하는 집살림일 적에는 손수 일구는 마을살림이 되지 못합니다. 집살림이나 마을살림을 손수 빚지 못한다면 나라살림도 우리 스스로 여미지 못하기 마련입니다. (162∼163쪽) 책 한 권으로 말살림을 모두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숲말》이나 《마을말》 같은 책이 어린이한테뿐 아니라 어린이를 사랑하는 어른한테도 상냥한 길동무책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어린이책이니 어린이만 읽는 책이 아닌, 어린이와 어른이 서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읽는 길동무책이 될 수 있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한국말 이야기를 어린이 눈높이에 맞추어서 쓰는 까닭은 우리 어른도 어린이 눈높이로 말살림을 바라보고 가꾸면서 새롭게 생각을 북돋우면 좋겠다고 하는 마음입니다. 전문용어나 학술용어는 좀 내려놓기를 바라요. 어려운 말은 참말로 내려놓으면 좋겠어요. 어린이하고 어깨동무할 수 있는 숲말을 살피고 마을말을 헤아리면 좋겠어요. 시골이랑 서울이 어깨동무를 하고, 아이랑 어른이 어깨동무를 하듯이, 우리가 서로 착하고 참되며 고운 말을 마음에 담아서 생각을 가꾸는 씨앗으로 삼는 말벗이 된다면 아름다운 나라, 곧 ‘아름나라’가 되리라 하고 꿈꿉니다. 아름다운 나라인 ‘아름나라’도 되고, 아름다운 마을인 ‘아름마을’도 되며, 아름다운 집인 ‘아름집’도 될 수 있기를, 이리하여 우리가 쓰는 말이 언제나 푼더분한 ‘아름말’이 될 수 있기를 꿈꿉니다. ㅅㄴㄹ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