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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 들어서도 숲을 말하지 않는 자가 되고 싶었으나 나는 그걸 놓쳤다.
人間에 들어도 人間을 말하지 않는 자의 고요를 얻고 싶었으나
나는 그걸 놓쳤다.
2017년 늦봄, 정발산 송빙환에서 유종인
제목처럼 이 시집은 숲에 관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아니, 이야기라기보다는 숲에 있는 마음, 숲과의 동침, 숲과의 호흡이라고 하겠다. 숲은 자연의 일부이기도 하고, 자연이기도 하다.
"봄볕이 좋아 / 영혼의 내장까지 환히 비춰질 거 같네 / 거기 전생을 밟고 온 / 징검돌에 이까가 파르라니 돋아서 / 이젠 머리를 괴고 / 낮잠을 다독이은 석침(石枕)으로 쓰려는데 / 봄볕이 좋아 / 괴꼬리 소리가 맴도네 / 슬픔까지는 너무 처지고 / 웃음까지는 너무 날래서 / 그냥 한 꾸러미 명랑이 날개를 달았나 싶네 / 그것도 샛노란 판돈(板本)을 하고 / 나온 저 허공의 생색(生色)이려니 / 겨우내 / 군동내 나는 허공이 엉덩이로 지긋이 뭉개고 / 주니가 든 앙가슴으로 얼러 내놓은 / 샛노란 명랑이려니 싶네 / 봄볕이 좋아" -<창경> 전문
봄볕이 내리쬐는 요즈음, 시는 적당한 숲과 어울린다. 명랑하다면 명랑하고, 소박하다면 소박하다고도 볼 수 있는, 유종인의 숲은 어떤 것일까.
"육교 위에 가로등이 깜빡 들어올 때 / 거기 가로등이 새삼 놀라워, 오늘 저녁은 나도 외계인(外界人), // 거기 쌓은 묵은 모래 자루 / 모래 자루를 슬그머니 나온 모래알들이 / 낸 눈길 아래 한 줌 / 소풍일 때 // 풍문도 모르고 / 어디로 쓸려 가는 등짝들"-<풍문들> 일부
숲은 인간의 숲, 세상의 숲, 때로는 모르는 숲. 그러나 놀랍게도 그 속에 섞여서 어우러지는 나의 숲.
"다람쥐나 청설모가 / 입안 가득한 상수리 열매를 어쩌지 못해 / 도린곁 어웅한 데다 / 그걸 파묻어 버리곤 더러 잊는다고 한다 / 나 같으면 나무 십자가라도 세워 놓았을 그곳을 / 까맣게 잊어버린 탓에 / 먼 훗날 푸른 어깨를 숲이 나온다 한다 // 기억보다 먼저 / 망각이 품고 나온 숲, 그 망각 때문에 울울창창해진 숲 / 용서보다 웅숭깊은 망각, 어딘가 잊어 둔 파란 눈의 감정도 / 여러 대륙에 걸쳐 사는 당신도 / 어쩌면 망각을 옹립한 탓에" -<숲의 기적> 전문
나의 숲은 망각을 품고 그 망각 때문에 오히려 울울창창해지는 숲의 기적. 나의 숲은 기적의 숲이 된다. 그리고 그 기적은 소박한 소망 하나로 결론이 난다.
"나의 소유욕은 / 대나무 도시락 하나 가져 보는 것 // 죽통엔 물도 담고 / 가끔 당신 몰래 술을 담는데 / 청탁(淸濁)은 나맀의 처분인 것 / 주머니 사정 따라 출렁거리는 / 술 소리는 덤이다" - <대나무 도시락> 일부
그렇지, 대나무 도시락 하나 가져 보는 것도 소유욕이라지만, 그 소유욕을 세속적이라 할 수는 없지. 도시의 자연도 자연이고, 시골의 자연도 사람 사는 세상이니, 양쪽의 조화는 덤이다.
"한끝 간곡히 바위에게 묻으니, / 죽음은 앞서 끝났고 사랑은 늦깎이라 이제 시작이라네"- <석인(石人)> 일부
늦깎이의 숲사랑이 시작되는 것일까. 사랑은 온유하고 사랑은 오래 참고, 그렇듯이 숲도 오래 참고, 숲은 온유하다. 한권의 시집에서 얻는 평온한 일상. 숲시집의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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