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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의 초가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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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건방지기 이를데 없었던 어렸을 때 저에게는 큰 의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의문이라기 보다는 제가 살아가는 모습에 대한 불만에 가까운 것이었지요. 초등학생이 인생에 가지는 불만이래야 별 것이 있겠습니까만, 그래도 그것은 그 자체로 당시 내 삶의 모습에 대한 철학적(?)인 불만이고, 실존적인 의문이었지요. ^^ 초등학교 시절, 저를 괴롭혔던 그 실존적인 의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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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건방지기 이를데 없었던 어렸을 때 저에게는 큰 의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의문이라기 보다는 제가 살아가는 모습에 대한 불만에 가까운 것이었지요. 초등학생이 인생에 가지는 불만이래야 별 것이 있겠습니까만, 그래도 그것은 그 자체로 당시 내 삶의 모습에 대한 철학적(?)인 불만이고, 실존적인 의문이었지요. ^^ 초등학교 시절, 저를 괴롭혔던 그 실존적인 의문이자 고민이란건.... 왜 내가 학교에서 배우고, 부르고, 불러야만 하는 동요라는 녀석은 항상 즐겁고, 푸르고, 귀여워야만 하는 것일까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즐겁고 귀여워야만 하는 것은 노래에 그치질 않았습니다. 우리는 운동회때마다 앙증맞은 노래에 맞춰서 율동을 해야했고, 어리광에 가까운 모습으로 가장행렬까지 해야만 했었습니다. 사실 제게는 그것이 별로 귀엽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외려 기가 막힐 정도의 유치함으로 다가왔을 뿐, 빨리 어른이 되고싶어 하는 사내녀석에게는 그것은 자신이 진정한 남자(!)로 거듭나는데 있어서 장애물일 뿐이었지요. 그 당시 그 녀석의 눈에는, 동요보다는, 어른 그것도 남자의 낮게 쫘~~악 깔리는 목소리로 부르는 유행가 가락이 나풀거리는 나팔바지 가랑이 만큼이나 멋지게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이제는 제목조차 기억에서 사라졌습니다만, "지금도 마로니에는 피고 있겠지~~"로 읊어지면서 멋들어진 휘파람이 흘러나오던 노래 한 자락은 그 녀석으로 하여금 괜시리 긴 바지 주머니에 양 손을 푹 쑤셔넣고 터덜터덜 아래쪽만 쳐다보며 걷게 만들기도 했지요. (촌스럽기 이를 데 없습니다만, 그 때 그 녀석에게는 그것이야말로 '어른들만이 가지는 매우 멋진 자세'였던거 같습니다. ^^)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내 머리가 나의 의지로는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까까머리가 된 이후로는 물론 그런 귀염(불가능한 낱말이죠, 그 이후의 세월 속에서는.., ㅡ,ㅡ)을 떨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게 되었던 것도 사실이지요. 이제 내일 모레 마흔을 바라보는 (놀랍습니다, 마흔이란 말이 제 자신에게 다가오는 무게가...ㅡ,ㅡ) 이 시점에서도 그 의문은 풀리질 않습니다. (진정 이건 아직 미장가에 자식도 없는 총각 나부래기가 풀 수 없는 영원의 수수께끼 인가요?) 그 대신 그 대답의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건, 이른바 요즘 아이들의 너무 많이 커 버린 모습에 대한 황당함이라고나 할까요? 커플링을 끼고, 발렌타인 초코렛을 사서 들고 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예전엔 내 모습도 저 아이들의 모습처럼 어른들에게는 비춰졌을까라는 생각을 가끔 해 보기도 합니다만, 자고로 모든 세대가 그렇게 되뇌어 왔듯이, 저도 그냥 "우리때는 저 정도까진 아니었다"라는 말 한마디로 모든 것을 결론 지어버리고 맙니다. 어릴 적에는 스스로를 어른과 다름없이 생각하지만, 나이를 먹고나면 아이는 그저 아이일 뿐이라고 뇌까리는 스스로의 모습 속에서, 과연 아이들의 모습은 어떤 것이 진짜일까 하는 생각을 가끔씩 하게 됩니다. 그리고 제가 모르는 사이에 저 같은 고민을 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적어도 요새 나오는 동화들을 보면서는 말이지요.... 얼마 전 입니다만 '오아시스'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솔직하게, 정말 솔직하게 말한다면 '감동적임'을 넘어서서, 조금은 버겁더군요.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이 저를 육체적 정신적으로 비계가 너무 많이 끼었다고 비난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 영화를 보는 저의 솔직한 심정은 너무나 감동적인 동시에 두번 보기에는 너무나 버거울 정도로 힘든 영화였습니다. 세상은 그리고 현실은 사람들에게 버겁고, 무거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버겁고 무거운 것이 어른들의 세상 속에 있다면, 그건 역시 어린이들의 세상 속에도 있을겁니다. 그러나 어른들의 바람은 최소한 그 버거움이 어린이들의 손에는 닿지 않게 되는 것인거 같습니다. 최소한 그런 척이라도 하고 싶은 게지요. 어쩌면 그 마음은 영화 오아시스를 보던 제 마음과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지다. 하지만 있는걸 없댈 수는 없는 노릇이겠지요. 어른들 속에도 있고, 어린이들 속에도 있는 세상의 물결을 외면 할 수는 없습니다만, 동시에 거칠지 않게, 힘들지 않게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최근 새로 나온 책을 보았습니다. '상상의 초가교실'. 가장 최근에 읽었던 중국 소설이 '루어 투어 씨앙쯔'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읽은 지가 좀 지난지라 명확한 비교는 힘들지만, 읽고 있던 당시에 그 책이 주던 중국의 억셈을 아직 기억합니다. 라오쓰의 사회주의적 강건함을 기억한다면, 상상의 초가교실은 그 시대적 배경을 상상한다면, 약간은 생경할 정도로 부드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가가 이제는 중국을 뒤덮고 있는 자본주의의 비단결에 몸을 맡기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에는 만만치 않은 소재들을 다루고는 있습니다만, 적어도 모든 걸 떠나서, 제가 헷갈려하는, 어린이들의 모습이 가볍고 귀엽지만은 않게, 그러나 너무 힘들지도 않게, 세상의 모습을 어린이들의 눈을 통해서 담담하게 말 해주고 있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이제는 제 안의 어른과 아이가 화해를 해야 할 시점인거 같습니다. 어차피 세상 속에서 어른들은 아이들과 함께 합니다. 보여주지 않으려해도 아이들은 볼 것이고, 그 아이들은 시간의 흐름속에 또 어른이 되어갑니다. 유치하지 않은 아이들과 너무 늙지 않은 어른들의 대화 속에서, 이 세상은 힘겨운 파도를 넉넉히 이기고 나아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한 번쯤은 그 예전 시건방졌던 제 모습으로 돌아가 보고 싶습니다. 지금의 제 모습이 어떻게 보이는 지 너무도 궁금해서 말이지요..... ^^
j****a 2004.02.16.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