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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스 오즈를 <유다>로 처음 알게 되었다. 굉장히 취향이 통하는 소설이었기 때문에 그의 다른 책들을 차근차근 찾아보기로 생각했다. 이 책은 <유다>에서 드러낸 자신의 팔레스타인 분쟁에 대한 입장의 연장선상 격으로 아모스 오즈의 주장이 단순명료하게 설명되어 있다. 그는 팔레스타인인과 이스라엘인 어느 쪽을 지지하고 있지 않다. 이러한 입장을 대변하듯 <유다>에서도 이스라엘인들에게 배신자로 낙인 찍힌 캐릭터가 중점적으로 등장했었다. 이스라엘인이면서도 이스라엘 정신과 결합되어있지 않은 회색분자 유대인. 그는 영토분쟁에 신을 내세우며 무력을 이용하는 행위에 반대하고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현실적인 타협을 통한 '이혼'을 하기를 주장하는데, 그걸 가능하게 하는 요소는 상상력이며 광신주의는 상상력 결여에서 탄생한다는 설명을 한다. 아래 책 인용
...운전수로부터 유대인은 아랍인을 하루 빨리 몰살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내용의 연설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럼 누가 아랍인들을 모조리 죽여야 합니까?" 운전수가 대꾸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바로 우리죠! 이스라엘 유대인!..." ..."하지만 실제로는 누가 그 일을 실행해야만 할까요? 경찰? 군대? 소방관들? 아니면 의료팀? 누가 그 살인을 저질러야만 하는 거죠?" ..."우리 모두가 공평히 분담해야만 하죠. 각자가 아랍인 몇 명 씩을 죽이는 식으로요." ..."그래요? 그럼 당신이 고향 하이파의 어떤 주고 블록을 할당 받았다고 가정해 봅시다. 당신은 모든 문을 노크하거나 벨을 누르고 '실례합니다, 아주머니. 안녕하세요, 아저씨. 아랍인이세요?'라고 묻습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대답이 '네'라면 그들을 총으로 쏴 죽여버립니다. 그렇게 당신에게 할당된 블록에서 임무를 마친 뒤 집으로 돌아가려고 계단을 내려오죠." ..."그때 그 블록 내의 건물 4층 어딘가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옵니다. 그럼 당신은 돌아가서 그 아기를 죽여야 할까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당신, 너무 잔인한 사람이군요."
아모스 오즈가 일컫는 광신자들은 열렬히 신과 자신들의 영토를 숭배하면서 그들이 맞딱들일 한 블록 너머의 사실들을 전혀 상상하지 못하는 특징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여기에 책을 읽어 상상력을 쌓자라는 다소 작가적인 결론을 내렸는데 아주 흰소리는 아니라고 느껴지는 것이 현재에도 하나의 시각을 습득하면 이후의 자신의 상상력을 발휘해 흡수해야할 지혜들을 스스로 차단하는 경우가 많이 벌어지고 있으니까. 신이나 어떤 이념에 모든 결정을 내맡길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떤 가치를 바라볼 때 그에 맞는 잣대를 들이댈 수 있는 위치에 도달하는 것이 개인에게도 사회에도 이로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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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스 오즈는 <유다>로 처음 접했다. 관심분야이긴 하지만 웃기게도 히브리인이 적은 기독교 관련 문학&비문학은 읽어본 적이 없고 최근에 나와 홍보되고 있길래 봤는데 취향에도 맞고 훌륭했다. 그의 소설 캐릭터는 자칫 염세적으로 읽힐 수 있으나 그 염세적인 캐릭터들은 사실 이상주의를 염두에 두고 있다. 때로 작품과 작가에게 염세적이라는 말은 굉장히 무례한 평가가 될 수 있지만 보통의 독자에게 작가가 염세적으로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는 듯하다. 사람은 날카로울 수록 염세적으로 보이게 마련이니까. 아무튼 그러한 오해를 가지고 있다면 이 짧은 책을 보고 편견이었구나 하고 깨달을 수가 있다. 광신자는 하나의 법칙이 있다. 그리고 그 하나의 법칙. 하나 이후의 둘부터는 생각하기 싫어한다는 글을 읽고는 이 사람도 내면의 혐오와 싸우는 사람인가 싶기도 했다. 아무튼 이런 날카로운 글귀들이 몇몇 있다. 광신주의의 해답은 독서와 상상력에 있다는 말은 다소 동화적이고 정말정말 개인의 의지에 맡겨버리는 수단이긴 하지만(그 수단이 광신자를 치유하는 광신주의는 안 된다는 말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것도 웃음 포인트다) 이렇게 날카로운 작가도 몽상가구나, 이상주의자구나 하는 감상이 따라온다. 날카로운 몽상가를 어떻게 안 좋아할 수가 있을까.. 아모스 오즈의 작품이 더 많이 국내 정발 되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