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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내가 살아가는 마을에서는 마을주민들, 그리고 마을을 찾는 지역주민과 함께 협동조합을 꾸리고 싶다. 이렇게 마을주민들이 협동해서 마을공동체 사업으로 모은 공동소득으로 번듯한 마을양로원을 세우고 싶다. 또 마을의 농가마다 단 몇 십만 원씩이라도 매달 기본소득을 나눠 가질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렇게 마을주민들이 더불어 행복하게 생활할 수 있는 생활공동체마을이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더 이상 아무 짓도 안 하고 싶다. '무위無爲의 마을'로 마직막 이사를 감행해, 세 번째 인생을 살고 싶다. 머리 말고 가슴과 손발로만 먹고살고 싶다. 그냥, 산과 물과 맑고, 하늘과 들은 밝고, 바람과 사람은 드문, 작고 낮고 느린 어느 마을의 마을사람이고 싶다. 그 아무것도 아닌 마을에서, 아무것도 아닌 마을사람으로 살아가다 깨끗하게 죽고 싶다. 마치 나무나 풀, 돌이나 흙, 비와 바람 같은 자연과 우주가 당연히 그런 것처럼. 당장 내려가 지역의 방향을 정하는 일도 어려웠다. 일단 경북 봉화를 1순위로 해서 알아 본다. 태백산과 소백산 산자락에 햇빛 잘 드는 낮은 구릉에 외딴집으로 선정한다. 봉화군, 영월군, 단양군의 도 경계지역으로 강원도, 충청북도, 경상북도 경계 오지 지역으로 선정한다. '귀농이 만만치 않으니 다음에는 제대로, 철저히 준비하라.'는 긍정적인 경고를 교훈으로 얻었다. 다시 서울로 작전상 후퇴했다. 본격적인 자발적 하방, 또는 사회적 이민을 결행할 각오를 다지며 주말이나 휴일마다 나의 마을을 찾아 길을 나섰다. 미지의 세계에 숨겨둔 보물을 찾아나서는 기분으로 들뜬 상태였다. 한국의 국토가 좁다는 말은 믿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어디에도 나를 기다리고 있는 땅이나 사람은 쉽게 발견할 수 없었다. 수만 명의 회원을 자랑하는 유명한 귀농인 커뮤니티 같은 온라인 정보 및 생활정보지 등 시중에 난무하는 귀농 관련 정보들은 대개 상업적이거나 비과학적이었다. 심지어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공신력도 없는 미신이나 전설 같은 정보들도 마구 뒤섞인 상태였다. 주로 부동산업자들이나 귀농시장의 장사꾼들이 올려놓은 악의적인 정보들이 대부분이었다. 이후 믿을 만한 사람이 직접 전해주는 정보 말고는 믿지 않기로 했다. 진주와 하동, 산청 등 지리산 남쪽 자락의 세 지역마다 발품을 팔며 '나의 마을' 후보지를 찾아 헤맸다. 마을마다 빈집은 많았으나 가난한 귀농인이 들어가 살 만한 집은 드물었다. 마침내 산청의 경호강변에 있는 방목마을에서 주인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빈 지 몇 달 되지 않은 농가를 발견했다. 보증금 없이 월세 5만 원에 빌릴 수 있는 200년 된 흙집이었다. 주저할 게 없었다. 집주인인 마을의 이장을 찾아가 산청군민이 되겠다고, 방목마을의 주민으로 살겠다고 약속하고 부동산 임대차계약을 맺었다. 고향도 참 좋고 지리산 자락도 정말 좋지만, 그 두 가지 조건을 압도하는 최우선 조건은 '먹고살 만한 일'이다. 집과 마을도 중요하지만 우선 일이 있어야 한다. 마을로 내려가서 보니 먹고살 만한 일은 아무 데서나, 언제나 구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무엇보다 도시에서 잔머리와 펜대만 굴리던 사무직 급여노동자 출신에게 지역의 시장과 산업은 더 가혹했다. 마치 황량한 사막이나 광야 같은 사지에서 사는 것처럼 생활을 조여 왔다. 30만 명이 모여 사는 도시 진주에도 내가 할 만한 일은 거의 없었다. 귀농인들이 땅을 잘 사는 방법은 간단하다. 일단 내려가서 땅부터 덜컥 사지 않는 것이다. 땅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이다. 땅 보기를 돌같이 하는 것이다. 지역도, 마을도, 땅도 잘 모르는 땅 무식자가 좋은 땅을 살 수는 없다. 심지어 같은 땅도 원주민은 싸게, 귀농인은 비싸게 사는 텃세와 차별을 당하기도 한다. 모르는 외지인에게는 부르는 게 땅값이 되기도 한다. 땅의 공정한 거래 시장이 상설되지 않은 농촌에서 땅의 공정가격이나 시장가격이란 게 있을 리 없다. 그래서 다소 불편하거나 불안하더라도 우선은 남의 땅을 빌려 쓰는 게 좋다. 마을에서 계속 살 사람이라는 좋은 평판을 얻으면 좋은 땅이 제발로 찾아오기도 한다. 농사를 더 지을 수 없는 늙은 농부들이 자기 땅을 슬그머니 내놓은다. 평생 품고 농사를 짓던 소중한 땅이니 그런 땅은 믿을 만한 땅이다. 스스로 땅을 잘 알기 전에는 땅을 사는 일은 늘 조심해야 한다. 나쁜 땅, 쓸모없는 땅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맹지가 대표적이다. 농촌에서는 실제로는 사람과 차가 다니는 길이 있지만, 막상 지적도에는 길이 없는 땅이 적지 않다. 이런 맹지를 농지나 건축부지로 전용하는 일은 쉽지 않다. 타인이 소유한 인접한 땅의 토지사용승낙서를 받고 그 사용료도 지불해야 한다. 물론 그것도 지주가 허락해야 가능한 일이다. 또한 땅을 살 때는 지주나 업자의 말만 곧이곧대로 들으면 안 된다. 근본적으로 땅에 대한 욕심부터 다스리는 게 좋겠다. 나도 수년 전 평생 처음으로, 귀농한 지 십 몇 년 만에 100여 평의 땅을 소유한 지주가 되었다. 땅을 재산 증식의 수단이나 투기상품으로서가 아닌 오직 생활의 정처이자 자연의 일부로 대하고 싶은 나는 그곳을 독점할 생각이 없다. 그런 니어링 부부가 마을에서 사람들과 서로 도우며 생활하는 동안 고수낳 생활수칙이 있다. 간소하고 질서 있는 생활을 할 것, 미리 계획을 세울 것, 일관성을 유지할 것, 꼭 필요하지 않은 일은 멀리할 것, 되도록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할 것, 매일 자연과 사람 사이의 가치 있는 만남을 이루어 갈 것, 노동으로 생계대책을 세울 것, 쓰고 강연하고 가르칠 것, 원초적이고 우주적인 힘에 대한 이해를 넓힐 것, 계속해서 배우고 익혀 점차 통일되 원만하며 균형 잡힌 인격체를 완성할 것 등이다. 그렇게 마치 수행자처럼 생활하다 보니 마침내 4가지 해악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한다. 돈을 비롯한 물질에 대한 탐욕에 물든 인간을 괴롭히는 권력, 다른 사람보다 출세하고 싶은 충동과 관련된 조급함과 시끄러움, 부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투쟁에 수반되는 근심과 두려움, 그리고 많은 사람이 좁은 지역으로 몰려든 데서 생기는 복잡함과 혼란으로부터 비로소 해방된 것이다. 그런데 막상 귀농하려고 발품을 팔며 마을마다 돌아다녀도 빈집은 많은데 정작 들어가 살 만한 '살아 있는 집'은 많지 않다. 멀쩡한 빈집은 거의 없다. 폐가나 흉가로 변한 지 이미 오래되어 회복 불능의 상태인 집이 대부분이다. 요행히 상태가 괜찮은 집을 만나면 야속하게도 집주인이 붙들고 놓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 심지어 집값을 높여 받으려는 속셈이 아닌가 오해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한 치 앞을 편히 내다볼 수 없는 귀농인 처지에서 무조건 집을 충동구매하는 건 위험하다. 아예 새로 집을 짓는 건 대담한 결심과 정무적 판단마저 요구되다. 용기 있는 행동일 수는 있으나 결코 현명하고 지혜로운 방법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무엇보다 집을 지으려면 우선 '집'을 알아야 한다. 집을 직접 짓지 않는다 해도 최소한 '건축이란, 주택이란 무엇인지'부터 배울 필요가 있다. 그런데 집이라는 구조물과 건축공법 그 자체를 배우기 전에 배산임수의 길지와 바람길, 빛과 볕의 방향 등 집이 자리할 적지나 이치부터 잘 살필 수 있어야 한다. '사람 사는 집'이란 모름지기 자연의 풍수를 거스리지 않아야 하고, 사람의 분수에도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마을에서 작가로 먹고사는 방법은 녹록치 않다. 소농이 농사만 지어서 먹고 살기 어려운 이치와 다르지 않은 듯하다. 그래서 무명의 작가 처지로 글만 써서 먹고살겠다는 건 다소 비현실적이거나 과대망상에 가까워 보인다. 글만 써서 먹고사는 전업작가는 아마도 농사를 지어서 억대 수입을 벌어들리은 억대 농부보다 그 수가 적을 게 틀림없다. 그런 작가를 들은 적이 있으나 직접 대면하거나 목격한 적은 없을 정도다. 책값의 10% 정도를 받는 인세 수입은 더 이상 기대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좀 기대했다는 말이다. 이제는 차라리 없는 셈 친다. 그게 속이 편하다. 잡지에도 부정기적으로, 또는 일회적으로 글을 싣기도 한다. 유명한 전업작가 아닌지라 많은 돈은 아니지만 소정의 원고료를 받아 생활비로 보태고 있다. "돈도 안 되는 책을 왜 쓰는지" 자문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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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의 대전환》에서 발췌하여 필사한 내용입니다.
앞으로 내가 살아가는 마을에서는 마을주민들, 그리고 마을을 찾는 지역주민과 함께 협동조합을 꾸리고 싶다. 이렇게 마을주민들이 협동해서 마을공동체 사업으로 모은 공동소득으로 번듯한 마을양로원을 세우고 싶다.
또 마을의 농가마다 단 몇 십만 원씩이라도 매달 기본소득을 나눠 가질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렇게 마을주민들이 더불어 행복하게 생활할 수 있는 생활공동체마을이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더 이상 아무 짓도 안 하고 싶다. '무위無爲의 마을'로 마직막 이사를 감행해, 세 번째 인생을 살고 싶다. 머리 말고 가슴과 손발로만 먹고살고 싶다. 그냥, 산과 물과 맑고, 하늘과 들은 밝고, 바람과 사람은 드문, 작고 낮고 느린 어느 마을의 마을사람이고 싶다. 그 아무것도 아닌 마을에서, 아무것도 아닌 마을사람으로 살아가다 깨끗하게 죽고 싶다. 마치 나무나 풀, 돌이나 흙, 비와 바람 같은 자연과 우주가 당연히 그런 것처럼.
당장 내려가 지역의 방향을 정하는 일도 어려웠다. 일단 경북 봉화를 1순위로 해서 알아 본다. 태백산과 소백산 산자락에 햇빛 잘 드는 낮은 구릉에 외딴집으로 선정한다. 봉화군, 영월군, 단양군의 도 경계지역으로 강원도, 충청북도, 경상북도 경계 오지 지역으로 선정한다. '귀농이 만만치 않으니 다음에는 제대로, 철저히 준비하라.'는 긍정적인 경고를 교훈으로 얻었다.
다시 서울로 작전상 후퇴했다. 본격적인 자발적 하방, 또는 사회적 이민을 결행할 각오를 다지며 주말이나 휴일마다 나의 마을을 찾아 길을 나섰다. 미지의 세계에 숨겨둔 보물을 찾아나서는 기분으로 들뜬 상태였다. 한국의 국토가 좁다는 말은 믿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어디에도 나를 기다리고 있는 땅이나 사람은 쉽게 발견할 수 없었다. 수만 명의 회원을 자랑하는 유명한 귀농인 커뮤니티 같은 온라인 정보 및 생활정보지 등 시중에 난무하는 귀농 관련 정보들은 대개 상업적이거나 비과학적이었다. 심지어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공신력도 없는 미신이나 전설 같은 정보들도 마구 뒤섞인 상태였다. 주로 부동산업자들이나 귀농시장의 장사꾼들이 올려놓은 악의적인 정보들이 대부분이었다. 이후 믿을 만한 사람이 직접 전해주는 정보 말고는 믿지 않기로 했다.
진주와 하동, 산청 등 지리산 남쪽 자락의 세 지역마다 발품을 팔며 '나의 마을' 후보지를 찾아 헤맸다. 마을마다 빈집은 많았으나 가난한 귀농인이 들어가 살 만한 집은 드물었다. 마침내 산청의 경호강변에 있는 방목마을에서 주인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빈 지 몇 달 되지 않은 농가를 발견했다. 보증금 없이 월세 5만 원에 빌릴 수 있는 200년 된 흙집이었다. 주저할 게 없었다. 집주인인 마을의 이장을 찾아가 산청군민이 되겠다고, 방목마을의 주민으로 살겠다고 약속하고 부동산 임대차계약을 맺었다.
고향도 참 좋고 지리산 자락도 정말 좋지만, 그 두 가지 조건을 압도하는 최우선 조건은 '먹고살 만한 일'이다. 집과 마을도 중요하지만 우선 일이 있어야 한다. 마을로 내려가서 보니 먹고살 만한 일은 아무 데서나, 언제나 구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무엇보다 도시에서 잔머리와 펜대만 굴리던 사무직 급여노동자 출신에게 지역의 시장과 산업은 더 가혹했다. 마치 황량한 사막이나 광야 같은 사지에서 사는 것처럼 생활을 조여 왔다. 30만 명이 모여 사는 도시 진주에도 내가 할 만한 일은 거의 없었다.
귀농인들이 땅을 잘 사는 방법은 간단하다. 일단 내려가서 땅부터 덜컥 사지 않는 것이다. 땅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이다. 땅 보기를 돌같이 하는 것이다. 지역도, 마을도, 땅도 잘 모르는 땅 무식자가 좋은 땅을 살 수는 없다. 심지어 같은 땅도 원주민은 싸게, 귀농인은 비싸게 사는 텃세와 차별을 당하기도 한다. 모르는 외지인에게는 부르는 게 땅값이 되기도 한다. 땅의 공정한 거래 시장이 상설되지 않은 농촌에서 땅의 공정가격이나 시장가격이란 게 있을 리 없다.
그래서 다소 불편하거나 불안하더라도 우선은 남의 땅을 빌려 쓰는 게 좋다. 마을에서 계속 살 사람이라는 좋은 평판을 얻으면 좋은 땅이 제발로 찾아오기도 한다. 농사를 더 지을 수 없는 늙은 농부들이 자기 땅을 슬그머니 내놓은다. 평생 품고 농사를 짓던 소중한 땅이니 그런 땅은 믿을 만한 땅이다.
스스로 땅을 잘 알기 전에는 땅을 사는 일은 늘 조심해야 한다. 나쁜 땅, 쓸모없는 땅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맹지가 대표적이다. 농촌에서는 실제로는 사람과 차가 다니는 길이 있지만, 막상 지적도에는 길이 없는 땅이 적지 않다. 이런 맹지를 농지나 건축부지로 전용하는 일은 쉽지 않다. 타인이 소유한 인접한 땅의 토지사용승낙서를 받고 그 사용료도 지불해야 한다. 물론 그것도 지주가 허락해야 가능한 일이다. 또한 땅을 살 때는 지주나 업자의 말만 곧이곧대로 들으면 안 된다. 근본적으로 땅에 대한 욕심부터 다스리는 게 좋겠다. 나도 수년 전 평생 처음으로, 귀농한 지 십 몇 년 만에 100여 평의 땅을 소유한 지주가 되었다. 땅을 재산 증식의 수단이나 투기상품으로서가 아닌 오직 생활의 정처이자 자연의 일부로 대하고 싶은 나는 그곳을 독점할 생각이 없다.
그런 니어링 부부가 마을에서 사람들과 서로 도우며 생활하는 동안 고수낳 생활수칙이 있다. 간소하고 질서 있는 생활을 할 것, 미리 계획을 세울 것, 일관성을 유지할 것, 꼭 필요하지 않은 일은 멀리할 것, 되도록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할 것, 매일 자연과 사람 사이의 가치 있는 만남을 이루어 갈 것, 노동으로 생계대책을 세울 것, 쓰고 강연하고 가르칠 것, 원초적이고 우주적인 힘에 대한 이해를 넓힐 것, 계속해서 배우고 익혀 점차 통일되 원만하며 균형 잡힌 인격체를 완성할 것 등이다. 그렇게 마치 수행자처럼 생활하다 보니 마침내 4가지 해악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한다. 돈을 비롯한 물질에 대한 탐욕에 물든 인간을 괴롭히는 권력, 다른 사람보다 출세하고 싶은 충동과 관련된 조급함과 시끄러움, 부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투쟁에 수반되는 근심과 두려움, 그리고 많은 사람이 좁은 지역으로 몰려든 데서 생기는 복잡함과 혼란으로부터 비로소 해방된 것이다.
그런데 막상 귀농하려고 발품을 팔며 마을마다 돌아다녀도 빈집은 많은데 정작 들어가 살 만한 '살아 있는 집'은 많지 않다. 멀쩡한 빈집은 거의 없다. 폐가나 흉가로 변한 지 이미 오래되어 회복 불능의 상태인 집이 대부분이다. 요행히 상태가 괜찮은 집을 만나면 야속하게도 집주인이 붙들고 놓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 심지어 집값을 높여 받으려는 속셈이 아닌가 오해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한 치 앞을 편히 내다볼 수 없는 귀농인 처지에서 무조건 집을 충동구매하는 건 위험하다. 아예 새로 집을 짓는 건 대담한 결심과 정무적 판단마저 요구되다. 용기 있는 행동일 수는 있으나 결코 현명하고 지혜로운 방법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무엇보다 집을 지으려면 우선 '집'을 알아야 한다. 집을 직접 짓지 않는다 해도 최소한 '건축이란, 주택이란 무엇인지'부터 배울 필요가 있다. 그런데 집이라는 구조물과 건축공법 그 자체를 배우기 전에 배산임수의 길지와 바람길, 빛과 볕의 방향 등 집이 자리할 적지나 이치부터 잘 살필 수 있어야 한다. '사람 사는 집'이란 모름지기 자연의 풍수를 거스리지 않아야 하고, 사람의 분수에도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마을에서 작가로 먹고사는 방법은 녹록치 않다. 소농이 농사만 지어서 먹고 살기 어려운 이치와 다르지 않은 듯하다. 그래서 무명의 작가 처지로 글만 써서 먹고살겠다는 건 다소 비현실적이거나 과대망상에 가까워 보인다. 글만 써서 먹고사는 전업작가는 아마도 농사를 지어서 억대 수입을 벌어들리은 억대 농부보다 그 수가 적을 게 틀림없다. 그런 작가를 들은 적이 있으나 직접 대면하거나 목격한 적은 없을 정도다.
책값의 10% 정도를 받는 인세 수입은 더 이상 기대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좀 기대했다는 말이다. 이제는 차라리 없는 셈 친다. 그게 속이 편하다. 잡지에도 부정기적으로, 또는 일회적으로 글을 싣기도 한다. 유명한 전업작가 아닌지라 많은 돈은 아니지만 소정의 원고료를 받아 생활비로 보태고 있다.
"돈도 안 되는 책을 왜 쓰는지" 자문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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