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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와 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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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도 절대 군주가 (한때나마) 있었고, 혈통의 순일성은 우리보다 더 실증적으로 규명하고 들었기 때문에 어느 왕실이건 "찬탈"이나 "신분 상승"으로 임자가 바뀌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습니다. 이른바 농민 황제, 페전트 엠퍼러는 거의 없다시피하고, 그래서 저들 서양인들은 주원장이나 한 고제처럼 밑바닥에서 일어선 권력자를 매우 신기하게 봅니다. 여튼 한번 권력을 잡았다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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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도 절대 군주가 (한때나마) 있었고, 혈통의 순일성은 우리보다 더 실증적으로 규명하고 들었기 때문에 어느 왕실이건 "찬탈"이나 "신분 상승"으로 임자가 바뀌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습니다. 이른바 농민 황제, 페전트 엠퍼러는 거의 없다시피하고, 그래서 저들 서양인들은 주원장이나 한 고제처럼 밑바닥에서 일어선 권력자를 매우 신기하게 봅니다. 여튼 한번 권력을 잡았다 하면 누구도 권위에 도전할 수 없었고, 명 태조나 그 아들 주체(영락제)나 그토록 심한 살상과 숙청을 일삼은 것도 정통성 면에서 컴플렉스가 매우 컸기 때문입니다.

명 황실에서도 환관의 발호가 매우 심했었고, 위충현 같은 자는 자신의 행렬에다 "구천세"를 외치게 했습니다("만세"는 대놓고 역적질이므로). 이런 모습은 진시황의 후계자 호해의 재위 시절에도 환관 조고 같은 자가 권세를 농단할 때 드러난 바 있었죠. 허나 명나라 때 근본적으로 달라진 건, 결국 황제의 마음이 바뀌면 하루아침에 환관이나 재상의 위상이 뒤집어졌다는 점입니다. 워낙 혹심한 이민족(몽골)의 압제를 거쳤기에, 한족 출신 독재자가 한족 위주의 질서를 한번 다시 잡아 준 것만으로도 만고에 은혜가 큰 거죠.

재상은 언제나 환관의 발호를 억제하는 안전판 노릇을 했습니다. 또, 비록 혈통에 의해 천자의 지위가 고정되었다고는 하나, 그 외의 직위는 개인의 능력에 의해 얼마든지 합리적으로 재 배분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제도적 장치였다고 봐도 됩니다. 그래서 중국사는 황제의 역사임과 동시에 명재상들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황제와 재상 사이의 바른 관계 정립 원형은 물론 주문왕과 여상 사이의 바람직한 소통이었습니다. 여상 정도 되는 경세가의 조력이 없었다면 문왕은 아마 역성 혁명을 일으킬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겁니다. 이를 능가할 만한 아름답고 효율적인 군신 협치의 예는 제 환공과 관중의 사례입니다. 이 책에는 한 고조와 장량의 교유도 거론하는데, 막상 천하가 유씨의 손 안에 들어가고 나서는 장량이야 (현명한 은신이건 혹은 권력 투쟁에서 패배한 결과이건 간에) 중앙 정치 무대에서 퇴장했으므로 썩 적실한 분류는 아니라고 봅니다. 차라리 실무가였던 소하를 들면 어떠했을까 싶습니다. 하긴 소하는 유능한 관리 타입이었지 배운 게 부족했으므로 재상의 반열에 끼긴 부족한 면 있습니다.

장거정 역시 명재상의 반열에 꼽힐 만한데, 이 책에서 빠진 이유는 그가 모신 황제가 천하의 암군이었기 때문으로 추측됩니다. 허나 재상이란 본디 암군 치하의 세상을 질서 있게 이끄는 데서 진가가 빛나게 마련이죠. 황제부터가 자질이 출중하면 구태여 명재상이 필요할 리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 챕터 마오와 저우의 사례는 매우 적절한 편성인 듯합니다. 마오처럼 국가 경륜 능력이 부족한 폭군을, 저우 같은 경륜가가 보필하지 않았다면 벌써 공산 중국은 혼란 끝에 사분오열 공중분해되고 말았을 테니 말입니다.

v*****7 2018.03.3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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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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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학자는 문헌의 비교 고증에 능합니다. 이미 수천 년 동안 동아시아 최고 정예의 지성들이 그 뜻을 낱낱이 밝혀 놓은 것만 같아도, 신동준 선생의 책을 읽다 보면 "아직도 문구의 정해(正解), 성현과의 공감까지 이렇게 먼 길이 남아 있는지" 새삼 한숨이 나오기도 하고, 동시에 "궁극의 목표에 이르기까지 험하고도 불투명한 진로를, 신동준 선생 같은 분들이 후학들의 앞날을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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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학자는 문헌의 비교 고증에 능합니다. 이미 수천 년 동안 동아시아 최고 정예의 지성들이 그 뜻을 낱낱이 밝혀 놓은 것만 같아도, 신동준 선생의 책을 읽다 보면 "아직도 문구의 정해(正解), 성현과의 공감까지 이렇게 먼 길이 남아 있는지" 새삼 한숨이 나오기도 하고, 동시에 "궁극의 목표에 이르기까지 험하고도 불투명한 진로를, 신동준 선생 같은 분들이 후학들의 앞날을 위해 이처럼 힘들여 닦고 다듬고 계시구나" 하는 각성에 감동과 고마움이 밀려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고전의 해의는 그저 문자의 정확한 판독, 지엽말단의 시비를 가리는 데에 그 본 뜻이 가려져서는 안 됩니다. 문구의 해석은 진리에 이르는 수단이라야지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신동준 선생의 저서들은 경전의 바른 뜻을 밝히고 탐구하는 기술적 의의에 그치지 않고, 이를 바탕으로 현재의 난관을 타개하며 미래의 비전을 밝히는 과감한 제안을 독자에게 편다는 데에 그 본연의 가치가 있습니다. 이 책 역시, 중국의 역대 창업 군주들의 족적을 되돌아보며, 이들의 전철로부터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극력 회피해야 할지, 작금의 급변하는 국내외 정세에 곧바로 적용할 수 있는 소중한 교훈들을, 독자의 눈높이에 맞게잘 정리, 추출하여 곱씹을 수 있게 가공, 구축한 경세의 금언들로 가득합니다.

진의 시황 영정은 보통 실패한 폭군으로만 기억합니다. 그러나 그가 통일 제국의 주추를 놓지 않았던들, 이후 한 왕조의 기반이 마련되었을 리 만무하며, 나아가 통합 중화 제국의 성립은 이후 몇 세기를 더 기다리거나, 아예 형성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백성들에게 널리 사랑받았던 한(漢) 질서의 원형이 이처럼 이른 시기에 마련되었었기에, 여러 번 이민족의 침입으로 분열기를 맞이해도, 민중과 지식인, 의기지사들은 "언젠가 이 흩어졌던 것이 반드시 합쳐지고 말 것임"을 확신하고 면면히 문화의 맥과 혼을 이어올 수 있었지요. 한(漢)의 융통성 있고 넉넉한 시스템 원형이 성공적으로 자리잡은 건, 역으로 그 이전 단계 혹독한 통합의 과정에서 누군가가 악역을 떠맡고 장애물을 모조리 제거해 주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배드캅" 뒤에 "굿캅"이 나타나야 효과가 극대화하는 법입니다.

시황 영정의 시야가 "천 년을 내다보았음"은 이견의 여지가 없습니다. 천 년이 다 뭐겠습니까. 오늘날 중국이 그 숱한 시련을 겪고 난 후, 공산당의 초기 혼란상, "삽질"의 와중에도 기어이 통합된 거대한 덩치를 키워 여기까지 이른 것만 봐도, "size does matter."를 이미 2200년 전에 꿰뚫어 본 영정 개인의 웅대한 비전 그 위력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어찌 보면 "천하는 반드시 하나로 합쳐져야" 같은 통합 의지를 낳은, 중화혼의 아버지가 아니었을까 싶을 만큼이죠. 표준화 작업은 이후 한대 무제의 치세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진행되어야 했지만, 그가 아니었으면 후임자들이 감히 시도할 엄두도 내기 힘들었을 겁니다. 최초의 첫 발걸음은 지나고 보면 쉬워 보여도, 콜럼버스의 달걀만큼이나 발상과 착수가 지난한 법입니다. 다만 그처럼 주도면밀하고 과단성 있던 통치자가, 어떻게 해서 후속 질서의 설계에는 그만큼이나 허술한 구석을 남겼는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초인의 창업도 유능한 후계자의 수성 없이는 한낱 꿈처럼 거품처럼 무너질 수 있습니다.

외국 문헌에서는 한고제 유방을 소개할 때 항상 "농민 황제"라는 규정을 앞에 붙이곤 합니다. 봉건제, 혈통 정당성에 대한 신뢰가 대단한 편인 그들 문화에선, 그토록 강성하고 방대한 권역을 다스리는 체제의 창업이 "농민 출신"에 의해 이뤄졌다는 사실이 못내 신기한가 봅니다. 이런 유형의 군주 최초례가 유방이며, 이후 중화 문화의 원형을 형성한 왕조의 창업자를 겸하기도 한다는 점은 의미심장합니다. 황제권이 그토록 강력하여 혹정을 통해 농민 반란도 여러 번 유발, 역사의 향방이 바뀌기도 한 중국이지만, 백성을 따뜻이 살필 천자는 농민의 아들, 혹은 그 핏줄의 후손이라야 정책의 융통성, 실용성이 담보될 수 있다는, 소박하면서도 힘이 강한 컨센서스의 발현이 아닐지도 생각해 봅니다. 역대 이런 농민 출신 창업주로는 명조의 주원장, 그 명조를 뒤엎고 자칫 새 황조를 열 뻔한 이자성, 그로부터 거의 오백 년 전 중원을 감히 넘본 소금장수 황소, 그리고 현 시스템의 개조인 마오 등이 있겠죠. 저자는 고제의 탁월한 역량으로 "인재를 알아보는 감식안", "주저없는 실행력", "미래를 내다보는 비전" 등의 자질 요소를 듭니다.

시황제 영정처럼, 분열의 시기 난맥상을 정리하고 어려운 통합 과업을 마쳤지만 후계자의 무능 혹은 만용으로 모든 수고를 무위로 돌린 군주로는 수 문제를 들 수 있습니다. 저자는 이 창업자의 생애로부터도, 후계 선정의 중요성을 간과한 결과가 얼마나 참담한 상황을 야기할 수 있는지 절감하며 이 안타까운 실책을 통렬히 개탄하고 있습니다. 여튼 오랜 분열상을 극복하고 통합된 질서를 일궈 낸 개척적 위상은 문제 양견에게서 결코 후대의 평자들이 박탈할 수 없습니다.

수 문제의 업적이 혁혁했기에, 사실 어부지리마냥 그의 알토란 같은 유산을 나꿔챈 당 고조 이연은 책에서 중요성이 덜 언급되며, 그 출중한 아들이자 창업 과정에서의 실세 이세민의 자질과 역량에 대한 집중 분석이 이뤄집니다. 만약 이세민이 범용한 인물이었다면, 수-당 황조는 통일 제국 시스템이 아닌, 예컨대 5대 10국기의 양당진한주 정도로밖에 그 비중이 매겨지지 않았을 겁니다. 우리가 북위의 분열 이후 나타난 동위, 서위, 혹은 그들을 각각 계승한 북제와 북주를 거의 기억하지 않듯, 어쩌면 이들도 남북조 시대의 잔재나 잔영, 혹은 연장으로밖에 평가되지 못했을 겁니다. 당 태종은 사실 권력 장악 과정에서 여러 무리수를 저질렀고, 그 중 일부는 먼 훗날 투르크나 무굴 제국 왕위 계승 투쟁에서나 볼 수 있는 잔혹한 패륜 행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세 사가들이 한결같이 그를 최고의 군주로 높이 평가하는 건, 리더로서 그의 선택과 결단이 군주 개인에게 기대할 수 있는 최고의 퀄리티였기 때문이죠.

당대(唐代)의 절대 군주 중에선 태종 말고도, 그의 후궁 노릇을 한때 한 바 있는 무측천의 통치례 역시 모범으로 꼽혀 이 책에 선정되었습니다. 재미있는 교훈화 중 하나는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도 보지 말라가 아니라) 자신의 분수 따위는 깨끗이 잊고(?), "아무리 높아도 꼭대기까지 보라"는 것입니다. 권력자에게는 이처럼 거의 맹목에 가까운 권력 의지가 있어야 하는데, 어쩌면 성별로나 출신 성분으로나 모든 면에서 족쇄를 안고 시작해야 했던 무측천 같은 이가, 확고한 목표와 책략과 집요한 욕망 앞에 거칠 것이란 아무것도 없음을 잘 보여 준 최초의 예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사람의 본성은 근본적으로 잘 바뀌지 않고, 그런 본성과 음습한 욕구가 모이고 모여 정치와 외교의 장이 열리겠으니, 오늘날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 끼어 가시밭길과 옹색한 진로가 눈앞에 훤히 보이는 듯한 이 조국의 앞길도, 고전을 통해 무엇을 본받고 무엇을 내동댕이쳐야 할지를 깊이 숙고한 후, 모두가 지혜를 모아 번영과 생존을 도모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v*****7 2017.04.21.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