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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만 강렬한 변화 염상섭 『취우』, 감상문 - 『취우』는 분명 여러 전쟁 소설 중에서도 특이한 책이다. 먹을 것, 질병 등 하루를 사는 것 자체를 고민으로 여기는 여느 소설들과는 다르게, 이 소설은 그 같은 문제를 걱정거리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은 먹을 것으로 고민하기는커녕 맥주와 같은 사치품을 누리며, 자신의 일 뿐만 아니라 회사(공동체)를 걱정하는 여유를 보이기도 한다. 기존의 전쟁소설들과 이 책이 이 같은 차이를 보이는 것은, 하층민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하층민의 삶을 표현하려 했던 기존의 작품과 다르게 재정적 상황이 여유로운 중산층을 주인공으로 내세웠기 때문일 것이다. 『취우』의 주인공인 순제와 영식은 충분한 재력이 있는 인물로, 식(食)이나 주(住)의 문제에 구애받지 않는다. 중산층인 이들의 삶이 하층민들과 분명하게 구분되는 만큼, 이들이 갖는 고민 역시 그들과 다를 수밖에 없다. 죽음의 위협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인류 공통의 문제를 제외하고 이들이 가장 큰 관심을 가지는 것은, 놀랍게도 애정문제다. 『취우』의 주인공인 순제와 영식은 전쟁이라는 (목숨의 경중이 달려있는) 위태로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애정을 갈구하는 것을 우선으로 삼는다. 이들의 사랑은 결코 생존에 있어 필수적이거나 절박한 것이 아니지만(순제와 영식의 결합은 그들에게 남은 마지막 희망과 같은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순제와 영식은 서로에 대한 애정을 갈구하고자 한다. 전쟁을 통해 새롭게 인식한 상대와의 결합을 통해 전쟁을 버텨나고자 한 것이다.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한 애정을 추구하는 과정을 살펴보았을 때, 특히 흥미로운 것은 두 사람의 역할 관계다. 남성의 주도적 태도와 여성의 수동적 태도로 이뤄진 기존의 결합과 반대로, 순제와 영식은 각각 주도적, 수동적 태도를 취하게 된다. 순제가 영식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거리낌 없이 표출할 뿐만 아니라 여느 남성들과도 자유롭게 자신의 위치를 설정하는 것에 (순제는 김학수와의 관계를 스스로 청산하고, 자신의 남편과의 관계도 지혜롭게 벗어난다. 이 모든 행동은 순제의 자발적인 ‘선택’으로 인해 결정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반해, 영식은 다가오는 순제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영식은 점잖은 체 하며 자신에게 결정권이 있다는 듯이 행동하지만, 실상 그는 결단력이 없는 인물일 뿐이다.) 뿐이다. 이들의 재정적 상황은 또한 두 사람의 역할 관계를 강화시킨다. 순제가 자신의 패물 등을 통해 가정을 주도적으로 꾸리는 모습을 보이는 것에 비해, 영식은 (비록 전쟁 전 과장이라는 위치에 있긴 했으나) 별다른 경제력을 갖지 못한다. 즉 두 사람의 역할 관계는 전통적 성역할과 비교했을 때 전도되었다고 볼 수 있으며, 두 사람 모두 그것을 어색하게 느끼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남녀 간의 전도된 역할 관계는 소설 후반부 명신이 들어오고 나서도 유지된다. 명신이 영식과 순제가 결합된 것을 보고도 포기하지 않는 주도적 모습을 보이는 것에 비해, 영식은 두 사람 중 누구와 함께할지 확실한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소극적 모습일 보일 뿐이다. 오직 중산층에게만 허락된 이 같은 사랑의 고민 속에, 남녀 역할의 전도를 일으킨 결정적 요소는 다름 아닌 경제력이다. 앞서 이야기한 것과 같이, 전쟁 후 일을 할 수 없게 된 영식은 더 이상 경제력을 갖지 못하는 존재다. 그에 비해 학수를 통해 재물을 확보한 순제와 회장의 딸인 명신은 영식에 비해 강한 경제력을 갖는 존재이다. 이 같은 경제력의 차이는 기존 남성이 가지던 권위를 떨어뜨리고, 동시에 여성의 지위를 상승시킨다. 변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성에 대한) 기존의 고정관념이 전쟁이라는 변화를 통해 찾아온 것이다. (다만 이 같은 변화에 대해 작가가 어떻게 의식하고 있는지는 확실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소설 결말부분에도 과연 영식이 두 사람 중 누구를 택하는지는 나와 있지 않은 것이다. 영식의 모친이 순제에 대해 반복적으로 부정적 인상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작가는 이 같은 변화에 대한 부정적 인상을 간접적으로 보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작품이 순제를 통해 강렬한 변화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의 제목인 취우(소나기)는 전쟁을 의미하는 동시에 변화의 물결을 의미하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맑은 하늘을 컴컴한 어둠으로 뒤바꿔놓는 소나기처럼, 갑작스레 일어난 전쟁 역시 사회에 커다란 변화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때 소나기의 짧게 끝나는 특성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강렬하지만 짧게 끝나고 마는 소나기처럼, 전쟁을 통해 나타난 이 같은 변화는 커다란 충격이기는 하지만 이내 전쟁이 끝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영식이 명신을 택할지도 모른다는 암시는 결국 이 같은 변화가 모두 의미 없는 것임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다만 아무리 짧은 소나기라 하더라도 그 끝에는 거대한 웅덩이를 남기는 것처럼, 전쟁을 통해 찾아온 변화 역시 새로운 가능성이라는 웅덩이를 남겼을 여지 또한 있을 것이다. 영식이 누구를 선택하는지 확실히 드러나지 않은 것 역시 이러한 가능성을 의미하는 것 아니겠는가. 여성에게 여전히 기존의 성역할을 들이대며 그것을 수행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을 볼 때면 이 같은 생각은 더욱 간절해진다. 『취우』를 통해 남을 가능성이라는 웅덩이가 부디 오랫동안 사람들의 마음에 남길 바라는 마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