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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총점 종이책
모든 '더블'은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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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의 단편소설집의 제목은 수록된 단편 중 하나의 제목이 표제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에 수록된 총 18편의 단편 중 '더블'이라는 제목의 단편은 없다. 완전한 정사각형까지는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책들이 갖는 표준비율인 가로대 세로 2:3의 비율과는 한 참 다른 모양을 갖추었다.마침 플라스틱 자가 눈에 들어와 직접 사이즈를 측정해보니 가로 17cm x 세로 20cm 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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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의 단편소설집의 제목은 수록된 단편 중 하나의 제목이 표제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에 수록된 총 18편의 단편 중 '더블'이라는 제목의 단편은 없다. 완전한 정사각형까지는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책들이 갖는 표준비율인 가로대 세로 2:3의 비율과는 한 참 다른 모양을 갖추었다.마침 플라스틱 자가 눈에 들어와 직접 사이즈를 측정해보니 가로 17cm x 세로 20cm 의 모양이다. 책이 처음 손에 쥐어졌을때 참 별나다고 생각했다. 표지에 그려진 가면을 쓴 레슬러 그림에 맞춘 것은 아닐까.. 적당히 나름대로의 이유를 찾아 둘러대고는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Side B' 마지막에 시(詩)도 산문도 아닌 어정쩡하게 쓴 작가 후기를 읽고서 그가 예전 LP 더블판에 대한 야릇한 로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고 그를 통해 왜 책이 이런 모양을 갖추게 되었는지까지를 고쳐 짐작할 수 있었다.

작가의 LP 더블판에 대한 로망이 어떤 것일지 대충은 짐작이 간다. 어린 시절.. 중학생이 되면서 2층의 아버지 서재가 내 공부방으로 교체되었고, 내가 쓰던 작은 방은 당시 초등학교 4학년 여동생의 소유로 돌아갔다. 제대로된 공부방을 가지게 된 나나, 비로서 자신만의 공간을 갖게 된 동생이나 참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산타클로스가 가져다 준 덧칠이 투박하고 조잡한 도자기 저금통에도  감동하던 동심(童心)이었으니, 기쁜 정도야 좀 실감나게 표현하면, 내집마련에 성공한 삼십대 샐러리맨의 감동에 견줄 정도였지 싶다.

아버지의 서재였다고는 하나, 사실 반 쯤은 이미 창고로 전락해버린 방이었고, 내 공부방으로 할애가 되었다고 해도 기존 창고의 역할을 일정정도는 어쩔 수 없이 수행해야할 처지였기에 내 책상 옆으로는 아주 오래된 로터리식 흑백 TV, 책상모양의 재봉틀, 아버지의 낡은 책장은 물론 심지어 축음기까지.. 언제부터 전해져왔는지조차 추정하기 힘든 온갖 잡다한 고물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당시 갓 중학교에 입학한 틴에이저의 신분으로는 참으로 정을 붙이기 힘든 물건들이 대부분이었다. 개중 눈에 띄는게 있었다면, 아버지가 출장다니시며 사 모으신 영어로된 만화책들(개중에는 성인버전으로 분류되는 얄딱꾸리한 것들도 종종 있었다. 사실 그래서 오히려 눈에 띄었다고 보는게 솔직하다)과 예전 막내삼촌이 장가가기 전 듣던 낡은 LP 플레이어와 디스코 이전 고고가 유행하던 시절을 풍미하던  나로선 도통 알 수 없는 가수들의 LP 몇장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LP 플레이어의 소유주는 더 이상 이집에 살지 않았으며, 가족 중 누구도 그 플레이어(스피커가 2개에 앰프가 일체형인 플레이어 였으니, 전축이라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에 관심이 엎었기에 그 물건은 자연스레 내 소유가 되었다.

가족들의 암묵적 동의로 내 소유가 된 그 전축은 그래도 1년을 책장 안에 고이 모셔져 있었다. LP 없는 플레이어는 앙꼬없는 찐빵과 같아서 해본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손으로 빙빙 턴테이블을 돌려보는 것 말고는 별로 할 게 없기 때문이다. 약간의 각성이 일어난 시기는 중학교 2학년 때.. 여름 쯤이지 싶다. 새학기 생활도 안정기에 접어들어 무료함에 무료함이 더해진 나날이었다. 매일 함께 유치한 장난을 일삼던 어린 여동생도 어느덧 조숙해져 자기 방에 들에서 혼자 만화를 그리고 책을 읽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며 나와 멀어져갔다. (여동생은 결국 미대를 가서 디자인을 전공했다. 지금은 외국에 시집가서 일년에 한 번 얼굴보기도 힘들지만..) 이젠 중학생이 되었으니 좀 어른스럽게 놀아야한다는 강박으로 비로서 독서라 부를 수 있을 정도의 책읽기를 시도해 보았지만, 머리 속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발정난 강아지같은 상념과, 가만히 있기만 하면 3초 내 근질거리기 시작하는 피부와 근육은 어린 육체가 감당하기엔 만만치않은 시련이었다.

방학 즈음 놀러간 친구의 집에서 우연히 듣게 된 클래식 LP 에 감동하여 용돈을 모아 LP를 사모으기 시작했다. 기억이 가물하지만 LP 한 장에 이천오백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난다. 문고판 책 한권이 천원에서 천오백원 하던 시기였으니. 중학생 주머니사정으론 만만치 않은 가격이었으나, 용돈이 생길 때마다 동네 레코드 점으로 달려가 LP를 샀고, 내 나름대로의 음악 취향을 만들어가기에 이르렀다. 삼촌이 두고 간 LP 플레이어는 책장에서 나와 내 책상 옆 뷰로와 콘솔을 절반씩 닮은 모양의 오래된 재통틀 위에 자리를 잡아 따듯한 햇살을 받게 되었고, LP가 한 뺨 두께쯤 모일 즈음에는 고상한 취미를 기특하게 여긴 아버지의 배려도 번쩍이는 새 플레이어로 교체되었다.

지금도 나는 근 오백여장의 LP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내 재산목록 제1호로서 당당하게 책장 한켠에 반듯하게 진열되어 있다. 얼마 전 홈 씨어터 시스템을 가장하여 새로 앰프와 턴테이블, 스피커가 각기 분리된 분리형 오디오 시스템도 개비했으며, 그래서 한 동안 묻혀두었던 나의 '고상한' 취미생활도 화려하게 부활했다. 요즘 사는 재미를 논할라 치면 나는 머릿속에 턴 테이블 위에서 소리없이 돌아가는 검게 빛나는 LP가 먼저 떠오른다. LP를 들으며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어 아내가 직접 드립해준 커피를 마시며 책을 보는 여유로움은 요즈음의 내겐 최고의 사치이며 호사이다.

아.. 이야기가 상당히 많이 딴데로 흘렀는데, 다시 LP를 사모으던 시절로 돌아가보면.. 모아진 용돈을 들고 성급한 마음에 레코드점으로 향하던 그시절, 내 손에는 항상 이천 오백원 이상이 쥐어지지 않았었다. 돈을 잘 챙겨서 주머니에 넣고 무엇을 살까 고를라치면, 간혹 두 장 이상이 함께 포장된 소위 '더블앨범'이 종종 눈에 들어왔다. 더블앨범의 가격이 짜장면 곱배기처럼 오백원만 추가하면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더블앨범이 가진 종이외 비닐포장의 절약효과는 과감히 무시된 채 가격표에는 늘 오천원이라는 숫자가 붙어있었다. '다음엔 오천원이 모일 때까지 기다렸다가 더블 앨범을 사고야 말겠어..'라는 결심을 한 두번 한 것이 아니었으나, 언제나 이천 오백원에서 일이백원이라도 더 쥐어질라치면 '에이.. 더블앨범은 나중에 사고 일단은 싱글(여기서 '싱글'은 흔히 이야기하는 45 rpm의 EP(도너츠판)를 의미하는것이 아니라 그냥 한 장짜리 앨범을 의미)지르고 보자..'라는 유혹을 거의 뿌리치지 못하고 레코드 가게로 달렸던 기억이 난다. 결국 비교적 큰 돈이 모일 수 있었던, 설날을 제외하곤 더블은 그림의 떡이었으며, 그만큼 아련한 로망도 커져만 갔다. 지금도 오백여장의 LP 중 내가 가지고 있는 더블판은 열 장(더블이니 스므장이라고 해야 하나..?)을 넘지 못한다. 처음구입한 더블 판으로 'Dire Straits' 「Alchemy Live(1984)가 내 손에 쥐어졌을 땐, 천하를 얻은 듯 의기양양해 남들은 아무도 안쳐다보는데, LP를 영정을 모시듯 가슴에 안고 일부러 사람이 많은 큰 길로 집까지 천천히 걸어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가 나.. 그래도 귀여운 구석이 있었다..^^

이것이 장황하지만, 내가 박민규.. 그의 로망을 이해할 것 같다는 이유다. 책장에 다른 책들과 함께 꼿아두면 손가락 한 마디쯤 어색하게 튀어나오는  이 책의 모양이 정겨운 이유도, 1권/2권이 아닌 Side A/Side B 라는 표기가 그다지 유치하게 느껴지지 않고 의외로 자연스러워보이는 이유도 다 다르지 않다. 각각의 권에 목차에 적힌 단편들의 제목이 노래의 제목같이 느껴지는 착각이 싫지 않았다. 한편, 한편을 읽으며 어떤 장르와 보이스가 이 작품에 어울릴지를 떠올리기도 했으며, 실제로 책을 읽는 동안 묘한 분위기의 배경음악이 깔리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솔직히 대단한 작품들이라 평할 소신은 전혀 없지만, 그래도 세련된 언어유희(말장난)이라 부르면 절반 이상을 커버할 듯한 박민규 나름의 매력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꽤 상상력이 풍부하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된 것도 나름 수확이다. 단편의 매력이 앞뒤설명이 필요없는 모호한 세계의 창조와 인색한 설명으로 인한 긴 여운에 있다면, 이 책에 수록된 그의 작품들은 그런 원칙에 충실함으로써 충분한 매력을 발산했다. 산신령이라도 나타나 내게 없던 글재주를 부여해주겠다며, '김훈 스타일을 원하느냐, 박범신 스타일을 원하느냐.. 아니면 네 모습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만, 공지영 스타일이 좋으냐..?'를 묻는다면, '박민규 스타일은 없나요..?'라고 되물어볼것 같다. 물론 있다..라고해도 결정에 또 한참을 망설이겠지만.. 말이다..^^


 

리뷰 총점 종이책
누구나 자신의 [근처]를 서성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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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가제본된 책을 받아 들고 내가 할수있는 일이란, 11월 책이 정식으로 출간되기 전에 리뷸 쓰는것 이라고 생각했다. 그 정도의 일은 마땅히 해야 된다고 생각했고, 가능하면 책이 나에게 어떤 느낌을 주었는지에 대하여 가감없는 솔직한 평을 적고 싶었다. 더군다나 책이 내가 좋아하는 출판사에 발간되었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출판사나 작가를 위한 것이고, 또 충분히 할 수 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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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가제본된 책을 받아 들고 내가 할수있는 일이란, 11월 책이 정식으로 출간되기 전에 리뷸 쓰는것 이라고 생각했다. 그 정도의 일은 마땅히 해야 된다고 생각했고, 가능하면 책이 나에게 어떤 느낌을 주었는지에 대하여 가감없는 솔직한 평을 적고 싶었다. 더군다나 책이 내가 좋아하는 출판사에 발간되었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출판사나 작가를 위한 것이고, 또 충분히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허나, 결과론적으로 나는 하지 못했고, 리뷰라는 것을 이제서야 쓰고 있다. 책은 읽은지 오래되지만 어떻게 써야할지 도저히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책을 읽고서 느낀 생각만은 솔직히 쓰려한다.

 

내가 책을 읽으면서 유난히 까다롭게 구는 부분이 소설이다. 그나마 장편소설은 조금은 낫다. 낫다고 해서 아무 소설이나 막 읽는다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내 맘에 드는 작가의 작품만 읽는다. 알지 못하는 작가의 작품이 아무리 베스트셀러가 되어 회자되어도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박민규가 나에게 그러했다. 그가 과거에 어떤 소설을 썼는지도 몰랐고, 다만 블로그를 하면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란 소설을 연재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연재되는 소설을 구경해본 것도 아니고..

 

이렇게 해서 또 한 명의 작가를 알게 된다고 생각하면서 그의 작품을 접했다. 5년의 기다림, 두배의 특별함이라 해서 사실 많은 기대를 했다. 헌데, 책에 실려있는 작품 18개는 이미 발표된 작품들 이었다. 제목을 쭈욱 흝어보는데 낯이 익은 제목은 하나도 없다. 그래도 단편이라 하니 큰 부담은 없이 책을 읽기 시작한다.

 

[근처]를 읽으면서 우리들은 모두가 어딘가 근처에서 헤메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커서는 어렸을때 간직했던 꿈 근처에서 헤메이고, 살아가면서는 마음 한켠에서 자리잡고 있는 알수없는 그리움의 근처에서 서성이고, 또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일까, 아님 한바탕 드잡이를 하여볼까, 생과사의 근처에서 오락가락 하는 인생이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화자가 어렸을 적 묻어놓은 타임캡술을 찾아가는 것도,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하는 생활이나, 뻔히 알고 있는 코스대로 하룻밤 같이 자고 돈을 빌려달라고 하는 여자친구가 화자의 근처를 서성이는데도 하나도 부담스럽지 않다. 이미 간암말기 선고를 받고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타임캡술을 찾아가면서 학교 뒤 언덕 나무근처를 이미 헤메였기 때문일까? 저자는 언제나 자신의 근처를 서성이며 살아가는, 그러나 정작 그곳이 자신의 근처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우리 모두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런가하면 소설속 한 문장이 마음을 붙들어메고 놓지를 않는다. 하오(下午)의 뒷좌석엔 취객같은 봄볕이 합승해 있었다. [누런강, 배한척]이란 제목에서 뜬금없이 왜 해란강을 떠올렸는지는 나도 잘모르겠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늘어난 인간의 수명이 별로 기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런 기분을 다시한번 확인케 해주는것 같아 가슴이 시리다. 요즘들어 택시탈일도 별로 없지만, 지금 이맘때쯤 택실타면 아마 뒷좌석에 봄볕은 아니지만 햇볕이 합승해 있을것만 같다. 그리고 어서 타라고, 저기까지만, 저근처 까지만 같이 가자고 할것같다. 화자의 고통이 내가슴 속에도 그대로 전해져온다. 더는 살고싶지 않은것이다. 고통이나 불편함 때문이 아니다. 자식에게서 받는 소외감이나 배신감도 아니다. 이제 인생에 대해서 아무것도 궁금하지 않은데, 이런 하루하루를 보내며 삼십년을 더 살아야 한다는 것, 정년퇴직 한지가 4년전인데 90까지 살수있다고 의사는 말한다. 그나마 다행이다. 나는 아직 궁금한것이 몇개 남아있다. 그래서 화자처럼 지금 여행을 떠나고 싶지는않다.

 

그리고 나머지 작품을 읽는다. 머릿속에 들어오질 않는다. 저자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난 왜 그와 교감이 되지 않는 걸까. 근처에 다가가지도 못한 느낌이다.

 

그러다 나도 낮잠을 잔다. 책을 읽다 잠이 들어본 것도 오랜만이다. 요양원에서 만난 첫사랑은 이미 아무도 알아보지를 못한다. 치매에 걸린 그녀와 산책을 할수 있다는 것은 화자가 나이 들어 맛보는 가장 큰 기쁨이다. 이렇게 만나지 못했다면 언감생심 어찌 그녀를 넘볼수가 있단 말인가. 비록 나이 먹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되어서 만났지만 그래도 첫사랑은 첫사랑이고, 연분은 연분인 것이다. 한여름 낮의 낮잠처럼 [낮잠]은 그렇게 잊어버린 젊은날 근처를 일깨우고 있다.

 

그리고 또 나머지 작품들은 그렇게 내의식 속에서 멀어져 갔다. 작가가 무엇을 의도했는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근처에는 가보지도 못한 체, 그러다보니 일러스트가 그린 그림도 무엇을 의미하는지 느끼지를 못한다. 그래도 18편의 작품 속에서 내가 잠시나마 내근처를 서성일수 있게 해준 세편의 작품을 만났다는 것이 나를 안도하게 한다. [근처] 하나만으로 처음 접하는 작가를 생각할수 있다면 좋으련만..



k*****1 2010.11.23. 신고 공감 10 댓글 23
리뷰 총점 종이책
박민규 머릿속 181개의 블랙홀과 180개의 화이트홀, 그 소음이 소리가 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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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 넘어 돌아가는 옆집 세탁기 소리 같다. 심야 기능은 소음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지만 어둠에서 발생한 고요는 청각을 곤두세우게 한다. 귀에 거슬리던 소음이 규칙적인 리듬으로 들리기 시작할 때 나는 무사히 무의식의 경계로 이르게 되고 생각으로 머물렀던 일들이 동트는 새벽빛이 그려놓은 나무 그림자처럼 길게 드리운다.   중요한 것은 소음이었다가 소리로 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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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정 넘어 돌아가는 옆집 세탁기 소리 같다. 심야 기능은 소음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지만 어둠에서 발생한 고요는 청각을 곤두세우게 한다. 귀에 거슬리던 소음이 규칙적인 리듬으로 들리기 시작할 때 나는 무사히 무의식의 경계로 이르게 되고 생각으로 머물렀던 일들이 동트는 새벽빛이 그려놓은 나무 그림자처럼 길게 드리운다.


  중요한 것은 소음이었다가 소리로 변모한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로 박민규의 신작 《더블》은 자정 넘어 돌아가는 옆집 세탁기 소리 같다.


  작가 박민규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했고, 그 이후의 작품을 꾸준히 탐독하게 만든 장편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서는 주목받지 못한 삶 또한 충분히 찬란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의 두 번째 소설집인 《더블》에서는 주목받을 정도는 아니더라도 한때 평탄한 삶을 영위하였으나 이제는 그 빛줄기가 점점 옅어져 존재감마저 희미해진 이들의 일상을 투영한 작품이 많았다. 연극으로 무대에 오르기도 했던 <낮잠>이나 황순원문학상 수상작인 <근처>, 스테파네트와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순수한 아가씨가 등장하는 <별> 등이 그러하다.


  오래된 냄비같이 닳고 닳은 육신을 쓸쓸히 바라보는 노년, 다시 찾아온 첫사랑에 설레는 ‘나’는 어떤 시도를 할 수 있을까. 나처럼 오래된 냄비가 된 첫사랑은 기억해내는 일까지 차단하였는데. 다행스럽게도 별빛만은 예전처럼 막무가내 쏟아지게 하는 그의 곁에서 눈을 감을 수 있었다. 잠깐 눈을 뜨고 바라본 하늘이 이리도 아름다울 줄이야! 영원히 잠들어도 아쉽지 않을, 그런 하늘을 닮은 <낮잠>의 화자 역시 숨 가쁘게 뛰어온 생활의 종착지가 요양원이었음은 염두에 두지 않았을 터. 하여 마지막 잠깐의 반짝임은 충분히 눈부실 수 있었다. <근처>에서의 이제 막 중년의 초입에 들어선 사내는 결혼만 안 했을 뿐이지 나름 안정된 생활을 가능케 했던 번듯한 직장을 가져 별다른 근심이 없었으나 부랴부랴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과 맞닥뜨린다. 허나 딱히 준비할 것이 없음을 뒤미처 깨닫고 다만 자신의 근처를 배회한다. 과거를 회상하며 건져지는 유년시절 친구들과 나와 같은 속도로 낡아가는 그들의 오늘을 엿보면서, 결국은 자신이 만들어 놓은 영역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받아들인다. 한 남자에게는 자신의 인생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한 별(여자)에 관한, 한 여자에게 있어서는 골라먹기 좋은 여러 남자 중에 별사탕에 지나지 않은 남자 이야기 <별> 또한 처음엔 소음으로 들리더니 오래도록 희미한 여운을 남기는 잔잔한 소리로 변모한다.


  다 왔다 싶으면 항상 저만치 물러가는 꿈, 아무리 쫓아도 당체 거리를 좁힐 수 없다. 지쳐갈 힘이 과연 남아 있을까 의심되는 이들의 숨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눈앞에 버젓이 보이나 아무리 발버둥 쳐도 잡히지 않는 비행선 같은 꿈의 자락을 놓지 않는 마이너리티의 조바심을 해학으로 보여준  <굿바이, 제플린>은 눈물이 날 정도로 웃기고, 웃는 것밖에 달리 할 게 없어 눈물이 난다. 호흡이 가빠지는 소리와 안도의 한숨 소리를 되풀이하며 또 하루를 견뎌내는 사람들. 때때로 견디지 못하고 한강다리를 찾기도 한다. 아치에 올라 자살소동을 벌이지만 실은 누구보다도 잘 살고 싶은 자와 이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경찰의 대치. 어떻게든 땅으로 끌어내리려고 내뱉기 시작한 말은 자신의 비루한 일상을 바라보게 한 <아치>는 노을이 뭉개지는 소리처럼 처연하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으며 상상의 한계를 뛰어넘는 작품도 눈에 띈다. 더블 앨범을 흉내낸 책의 형태나 속지도 특이했지만 무엇보다 작가의 머릿속에 181개의 블랙홀과 180개의 화이트홀이 있진 않을까, 싶어 가만히 소멸하고 생성되는 과정을 지켜보고픈 욕구가 일게 하기도 했다. 꿈과 기억을 더듬으며 환상과 현재를 오가지만 끝내 어디가 현재인지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한 게임판을 보여준 <양을 만든 그분께서 당신을 만드셨을까?>도, 자연의 이치를 어기면서까지 생명연장의 과욕을 부리다 결국 천년 후 지극히 일부만 살아남은 인류의 최후 식량이 되어버린 냉동 돈가스와 다름없는 사람이 해동되는 <굿모닝 존 웨인>도 독자로 하여금 미개척 뇌 영역에 한걸음 내딛게 한다.


  특히 <슬(膝)>에서는 근본적이면서도 본능적인 인간의 생존을 묘사한 부분이 탁월하여 모처럼 재독의 즐거움을 맛보게 한다. 죽음이 코앞에 이르렀으나 생명을 유지하려는 에너지는 갓 태어난 새끼 코끼리와 다르지 않는 늙은 코끼리와, 갓 태어난 새끼 코끼리처럼 무력하지만 늙어빠진 코끼리보다 절박한 한 인간의 투쟁이 눈이 시릴 만큼 부시다. 끝내 좌절되고 말아 어쩔 도리 없이 마지막 판단을 내릴 때 그의 번민이 시공을 초월하여 전달된다. 생이 얼마 남지 않은 그 역시 희망을 저버리지 않았음을 아프게 짐작해 본다. 그가 고통을 참지 못하고 내지르는 소리에도 희망이 실려 있었음을 알겠다.


어쩌면 대부분의 인간들은 끝끝내 희망이란 극(極)을 바라보는 나침반과도 같은 존재였는지 모른다. (side A  p.147)


  불쾌, 한 세상을 유쾌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문장을 세탁하는 작가. 오후햇살에 바짝 마른 문장에서 온갖 잡음을 걷어내고 달빛처럼 은은한 소리를 품게 하는데, 귀 기울이면 은은한 소리 안에도 꽤 많은 소음을 감추고 있다. 그 소음이 싫지 않다. 희망을 품은, 몸부림, 일 테니까.

 

 

 



YES마니아 : 골드 a*****4 2010.11.19. 신고 공감 8 댓글 18
리뷰 총점 종이책
듀플렉스가 지배하는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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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 쌍성(雙星)의 밀고 당기는 힘처럼 자연의 법칙이다. 음과 양, 사물의 겉과 속, 어디든 존재한다. 듀플렉스처럼 상호 독립하여 병존하지만 불가분이다. 인식이 스치는 모든 곳, 더블이 지배한다. 획득가능한 모든 것에 더블의 관념이 기운다. 우연이든 필연이든 인간에게 실현가능한 변수의 조합은 더블의 관념에서 발현하는지 모른다. 박민규 작가의 더블에 담긴 그 의미, 행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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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 쌍성(雙星)의 밀고 당기는 힘처럼 자연의 법칙이다. 음과 양, 사물의 겉과 속, 어디든 존재한다. 듀플렉스처럼 상호 독립하여 병존하지만 불가분이다. 인식이 스치는 모든 곳, 더블이 지배한다. 획득가능한 모든 것에 더블의 관념이 기운다. 우연이든 필연이든 인간에게 실현가능한 변수의 조합은 더블의 관념에서 발현하는지 모른다. 박민규 작가의 더블에 담긴 그 의미, 행과 불의 경계이다. 상상과 현실의 테두리를 넘나들며 마치 우주의 언어나 미래의 언어로 기록된 그의 문학세계는 자연법칙을 담고 있다. 자연은 인간의 의식으로부터 독립하여 존재하는 객관적 실재를 말한다. 이는 사람의 힘이 더해지지 아니하고 세상에 스스로 존재하거나 우주에 저절로 이루어지는 모든 존재나 상태를 가리킨다. 때론 섭리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그러나 섭리는 인간의 관념을 고착화하기도 한다. 당연한 인과율의 법칙, 그 속에 지배된 인간의 불완전한 의식은 새롭거나 기이한 상태를 두려워한다. 따라서 박민규의 이 책 <더블>의 단편은 연역적 관계를 차단하는 존재의 반항을 오롯이 천명한다. 그의 생각의 틀 속에서 짜여 나온 이야기의 실재는 기존 관념의 존재를 포섭과 파괴의 양립된 현상으로 병존하며 평행선을 내달리는 가히 더블의 연속이다. 그의 이러한 시각은 중어의 반복을 통해 공고히 다져지고 흡입된 관념의 거름망 속으로 박민규式의 언어로 재해석된다. 그의 이야기는 그로테스크한 상상의 변주다. 현실이 존재한다면 상상이 존재한다는 실체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21세기를 사는 동시대의 인류에게 전하는 공감의 또 다른 코드라고 할만하다.

 

<더블>은 총18편의 단편 선으로 두 권의 양장본으로 묶였다. 형태는 디스크자켓처럼 작품의 본질을 적확하게 제시하는 일러스트와 작가의 소회로 구성되었다. 박민규는 이 작품을 통해 자신의 생각, 흔적 등을 특정의 누군가에게 헌정하는 방식으로 틀과 형태의 속박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그의 시도는 규격의 틀에 재단된 눈과 마음을 유연하게 해 준다. 기실 18편의 단편에 담긴 각양각색의 에피소드를 구성한 그의 방대한 창작력에 경의를 표하게 되지만 겉과 속에 담긴 각기의 본질을 은연중에 시각화시켜 주는 그의 배려가 더욱 도탑게 다가선다. 생각이 곧 문화가 된다는 사실처럼 그의 이야기 속에는 범 글로벌문화를 표방한다. 지역과 우주를 가르는 광활한 무대배경, 도시인의 고독한 삶, 인간의 존재의미를 다루는 그의 이야기 속에서 펼쳐지는 반전과 허무의 일상 등이 고스란히 차오른다.

 

트렌드나 문화의 일종이라면 <더블>은 지구의 언어가 해석가능한 모든 언어로 표현되고 공감할만한 소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견고한 상황을 가볍게 무너트리는 공력, 그의 필력이다. 인류가 탐욕에 의해 멸망하는 절체절명의 암흑의 상황을 층간소음에 시달리는 현대인의 일상과 포개는 그의 상상력의 빚어낸 이야기 <끝까지 이럴래?>. 인간에게 더 시급한 문제는 사소한 불편의 해결일지도 모른다는 불변의 진리인지 모른다. 이러한 사실은 BC1700년전 한반도를 무대로 한 <슬>을 관통하는 관념과 일맥상통한다. 인간의 생명을 지탱하는 욕망의 해갈의 근원적인 물음도 사소하거나 단순한 지점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박민규의 이야기에 걸려든 관념의 거름망은 인간의 의식을 양분하는 갈래의 커다란 경계를 해체하고 분해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관념은 18편의 전편을 지배하는 공통의 메타포이다.

 

그래서 더블의 중첩적인 시선으로 이 책에 담긴 이야기 지도를 따라가다 보면 박민규의 관념에 포위당하고 공감의 마법에 어김없이 걸려들게 된다. 치명적인 유혹이거나 감미로운 선율이든 시나브로 젖어드는 그의 이야기의 깊이에 지구의 해저 끝까지 압력의 밀도가 차오르는 <깊>에 주억거리게 되고 <아치>에 올라선 현대인의 불일치에 동조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더블>의 안에 담은 이야기를 동일한 패턴으로 구동시키지는 않는다. 생각의 엔진을 가동하고 가열되고 분사된 에너지로 가속의 변속을 폭발하듯 그는 우주로 날아가고 시공을 넘나든다. 대표적인 이야기가 <크로만, 운>이다. 묵시록적인 소설인 이야기는 뉴질랜드의 작가 버나드 베켓이 쓴 <2058 제너시스>와 궤를 같이 한다. 박민규의 이야기가 인간의 존재의미를 고찰한다면 버나드 베켓의 이야기는 인간을 구성하는 요소를 철학적인 시선으로 묻는다. 이러한 박민규식 해학은 <양을 만든 그분께서 당신을 만드셨을까?>에 보다 정확하게 드러난다. 스나이프, 동성애, 무차별 처단, 배설, 섭취의 일련의 행위들에 따라 전혀 어울리지 않을법한 조합의 인자를 상대로 엉뚱한 곳에 불시착한 느낌처럼 낯선 감각을 토해낸다.

 

때로는 이렇게 낯설고 거친 부자연스러운 상황이 더 자연스러운지 모른다. 그가  생뚱맞은 상황을 현란하게 주무르고 고정된 퍼즐조합을 이것과 저것의 지칭을 혼합하는 작업을 선행한 것처럼 뒤따르는 결과물 또한 자연과 부자연의 경계를 구획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그렇지만 독자의 예상을 빗나가는 반전이나 재미의 요소를 가미하기 위해 조합의 재구성을 시도하였다는 결론은 성급하다. <루디>의 냉혹하고 인과관계가 단절된 행위를 보면 미루어 짐작이 가능해 진다. 절벽의 끝, 폭풍 같은 질주로 마감하는 장면은 인간의 욕망이 브레이크 없는 전차와도 같다는 무지한 현실에 다다른다.  따라서 박민규가 그의 단편 하나에 실은 의미의 총합은 여지 혹은 공백을 통한 공감의 유도나 해석으로 가능케 한다. 그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보이는 세계, 보지 못한 세계, 다다르지 못한 세계, 정복하였으나 오류로 점철된 세계를 무시로 경험한다.

 

과연 인간이 가 닿을 수 있는 경험의 거리는 어디에 있을까? 나는 박민규의 이 책에서 하나의 답을 보았다. 우문현답이 아닌 현문우답이 될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상상력의 뭉치에서 무엇을 만들지는 개별의 몫이다. <딜도가 우리 가정을 지켜줬어요>에 등장하는 잘 나가던 세일즈맨의 비극적인 현실처럼 붙들 곳 없는 현실에 매달려 있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기운다. 화성으로 자동차를 팔러 가고 그 곳에서 만난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 흑인 세일즈맨과의 동질의 교감, 황망한 세상과 전혀 다르지 않다. 그러하기에 나는 <더블>의 세상에서 희로애락의 4중주를 만끽했다. 진실과 거짓의 양면 외투처럼 세상은 그렇게 움직인다. 스테파니 아가씨가 보았던 그 <별>이 곱디 고왔다면 박민규식 <별>에 쏟아진 풍광은 현실이다. 결국 세계는 양면, 듀플렉스의 반영이며 더블이 아니겠는가.



a******e 2010.11.17. 신고 공감 8 댓글 11
리뷰 총점 종이책
2010년, 박민규에서 박민규에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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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지구영웅전설'로 시작했던 박민규의 전작읽기가 '더블'을 마지막으로 일단락됐다. 불현듯 시작됐다. 그의 데뷔작이 그리 인상적이진 않았지만, 궁금했다. 그가. '카스테라'를 읽으며 이외수 작가가 추임을 넣는다. 2000년대 최고의 작가라고. 정확히는 '카스테라'가 최고의 소설집이라고. 읽으면 읽을수록 종잡을 수 없었다. 일상의 통찰이 보이다가도, 발로 글을 쓰고(물론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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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지구영웅전설'로 시작했던 박민규의 전작읽기가 '더블'을 마지막으로 일단락됐다. 불현듯 시작됐다. 그의 데뷔작이 그리 인상적이진 않았지만, 궁금했다. 그가. '카스테라'를 읽으며 이외수 작가가 추임을 넣는다. 2000년대 최고의 작가라고. 정확히는 '카스테라'가 최고의 소설집이라고. 읽으면 읽을수록 종잡을 수 없었다. 일상의 통찰이 보이다가도, 발로 글을 쓰고(물론 작품성이 떨어진다는 얘긴 아니다), 무심하게 판타지적 요소를 마구 들여오다가, '아침의 문'에 이르러서는 짐짓 진지해진다.

 

김영하가 딱 그랬다. 자신을 파괴할 권리가 있다며 시작한 그의 글쓰기는 지금에서도 여전히 자기를 파괴하며 일신우일신을 거듭하고 있다. 작가명을 가리면 그게 김영하인지도 모를 그런 소설들이 수두룩하다. 그만큼 내겐 김영하가 팔색조 글쓰기의 대가라 여겨졌었다. 적어도 박민규를 제대로 알기 전까지는 말이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모든 촉수가 그를 향해 간다. 김혜리 기자의 '그녀에게 말하다'에 첫 인터뷰이로 등장하는 박민규. '그냥 씁니다'. 문단이란 체제, 통념, 간섭이 싫어서 문단 선배의 글에 '좆까라 마이싱이다'라고 답한 그다. 그의 잡지사 시절을 기억하는 지인은 알듯 모를듯 박민규의 일화를 들려준다. '자전소설' 시리즈에서 축구도 잘한다며 전혀 자전적이지 않은 소설을 내게 들려준다. DJ DOC의 '나 그런 사람이야'라고 대놓고 자랑질하지도 않는다.

 

'더블'을 감상하기 전에 2010년 박민규를 따라갔던 나의 흔적을 정리해본다. '그래서 뭐' 박민규가 묻는다. '그냥'이라고 답한다.

 

<지구영웅전설>

시시하고 경박한 환타지 소설일까?

http://blog.yes24.com/document/1998499

 

<카스테라>

냉장고 속 카스테라엔 그만의 세계가 있었다

http://blog.yes24.com/document/2088731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삼미 슈퍼스타즈의 야구는 우천으로 연기됐다

http://blog.yes24.com/document/2098019

 

<핑퐁>

핑.퐁.배.제

http://blog.yes24.com/document/2107792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왈츠, 사랑의 발라드를 꿈꿔라

http://blog.yes24.com/document/2125203

 

<아침의 문>

소설을 대하는 태도를 돌이키다

http://blog.yes24.com/document/2173313

 

김혜리의 <그녀에게 말하다>

김혜리가 만난 21인, 교감하다

http://blog.yes24.com/document/2666174

 

<자전소설 1>

자전소설입니까? 자전소설입니다

http://blog.yes24.com/document/2700325

 

그냥 막연한 끌림이라고 하는 게 정확하다. 그의 소설이 모두 마음에 들었던 건 아니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실망이 꽤나 컸던 작품이었고, <핑퐁>은 한동안 국수를 못먹게 할 정도로 비위가 상했던 소설이다. 적어도 내겐.

 

<더블>을 읽으며 그동안 박민규가 내게 보여줬던 모든 글쓰기가 제대로 들어있구나 싶었다. 현실과 판타지를 아슬아슬 넘나드는 구성, 예의 방점과 방백, 플러그 인(?)으로 대별되는 문장의 흐름, 예측 불가능한 시공간의 스펙트럼, 전형성과는 거리가 먼 작중 인물들의 향연. 그의 소설들을 발간 순대로 읽었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어떤 세계관을 구축해가고 있는지가 궁금했기 때문.

 

헌데 수포로 돌아갔다. 왜? 박민규니까. 너무나 박민규스럽게, 쉼없는 변하고 있다. 잔잔한 수면 위를 우아하게 거니는 백조만 보았을 뿐, 수면 아래 발버둥 치고 있는 그의 글쓰기 분투는 보지 못했던 것 같다. <더블>에 실려있는 18편의 작품 중 6편을 제외하고는 처음 접한다. 2005년 11월에 발표된 '비치보이스'에서부터 2010년 가을 발표된 '슬'에 이르기까지 5년이란 시간적 자장 속에 박민규는 18개의 색다른 세상, 인물, 글쓰기를 선보인다. 대부분의 소설가들이 그렇다고 말한다면, 할 말 없지만.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주인공의 초등학교 동창과의 뒤늦은 사랑을 보여주는 <근처>가 통속 멜로 드라마였다면, <깊>, <크로만, 운>은 짐작할 수 없는 시공간을 매트리스적 감성으로 풀어낸 SF 드라마다. <딜도가 우리 가정을 지켜줬어요>는 40대 회사원의 눈물겨운 분투를 에어리언적 감성으로 그려냈다. <슬>은 삶과 죽음의 원시적 화두를 사냥함과 사냥당함의 경계에서 풀어냈다. '이게 박민규 글쓰기야'라고 말한다면, '그래서?'라고 답할 수밖에 없는 막막한 다채로움이라고나 할까?

 

내게 <더블>은 5년의 기다림이란 반가움보다, '끝까지 이럴래?'라고 내게 '정리'를 요구하는 과제와도 같은 책이었다. 소설의 재미는 차치하고, 제책 방식은 여전히 불만이다. 18편을 한 권에 묶는다는 게 쉽지 않다는 거 잘안다.

 

박민규 朴玟奎

1968년生 소설가

 

이렇게 간결한 약력을 선보였던 작가가 '<더블 앨범> 즉 두장의 LP 같은 느낌으로 이 책을 묶고 싶었다'라고 욕심을 부렸다하더라도 좀 과하다. 정방형의 판형도 그렇고, 꼭 이렇게까지 불편하게 하드케이스로 담아야했을까란 의문도 든다.

 

격세지감이지만, 창비의 편집디자인을 비롯한 마케팅 방식도 예전과 다르다. 트렌드를 의식했거나, 창비보다 훨씬 세련된 디자인을 선보였던 열린책들이나 문학동네에게 뭔가를 보여주고 싶었을 수도 있겠다. 그것도 아니라면 순수하게 2000년대 김연수와 더불어 소위 잘 팔리는 작가에 대한 예우일 수도 있겠다. 결국 종잡을 수없는 소설가의 이력에 걸맞는 방식이라고 이해할까 한다.  

 

또 하나 이 책을 구입하면서 함께 딸려온 'Double Artbook'은 감동이다. 일러스트레이터 박윤정 씨가 그리고, 박민규가 각 작품 별로 엑기스를 모아 그럴듯한 이미지 북으로 만들었다. 언젠가 소설을 쓸 때 항상 헌사할 누군가를 염두하고 글을 쓴다는 박민규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더블 아트북에 작품의 헌사 대상이 등장한다. 코미디언 앤디 카우프만, 작고하신 아버지, 페르디난트 폰 체펠린 백작, 구글의 창시자 래리 페이지와 서지 브린, 사무엘 베게트, 영국의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나의 어머니, 버락 오바마 이후에 나타날 미합중국 대통령, 한국인 모두, 박주호란 친구, 디자이너 스테파니 쾨르너, 소설가 천명관, 알퐁스 도데, 만화가 김수박, 마영신, 건축가 벅민스터 풀러 등이 박민규가 바치는 글의 주인공들이다.

 

하드케이스를 만들 비용으로 <더블 아트북>을 좀더 그럴 듯하게 만들었으면 어떠했을까. 이 책에 실린 그림들을 따로 오려서 액자에 걸고 싶을 정도로 느낌이 좋다. 어쩌면 박민규를 이해하고, 추억하는 나만의 오브제가 될 수도 있겠다.

 

이렇게 2010년은 마무리된다. 가면을 쓰고 등장한, 그나 나나 2010년을 마감하는 책으로 <더블>은 제대로다. 앞으로 또 어떤 모습으로 내 앞에 등장할 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적어도 강하기만 한 호랑이의 모습보다는 약하지만 사랑스러운(그러면서도 엄청난 번식력으로 사람을 놀라게 하는) 토끼의 모습으로 그가 나타나길 바란다. 2010년. 박민규 작가님. 반가웠고, 고맙고, 즐거웠습니다. 일단 안녕.



t******2 2010.12.06. 신고 공감 7 댓글 6
리뷰 총점 종이책
복면달호는 우리 모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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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표지와 느낌> 처음엔 가제본을 먼저 받았다. 표지를 보면서 영화 복면달호의 차태현을 자연스레 떠올렸다. 그러나 저 복면속의 달호는 민규도 아니고 그 누구도 아니다. 아니다. 모두다 다.   가로 17센치 세로 20센치의 두 권의 더블은 두 권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겹쳐야 더블이라는 영어가 완성된다. 놀라운 참신함이다. 가늠끈이 없는 형태의 책으로 책을 들고 보기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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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표지와 느낌>

처음엔 가제본을 먼저 받았다.

표지를 보면서 영화 복면달호의 차태현을 자연스레 떠올렸다. 그러나 저 복면속의 달호는 민규도 아니고 그 누구도 아니다. 아니다. 모두다 다.

 

가로 17센치 세로 20센치의 두 권의 더블은 두 권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겹쳐야 더블이라는 영어가 완성된다. 놀라운 참신함이다. 가늠끈이 없는 형태의 책으로 책을 들고 보기엔 확 펼쳐져 한 손으로 들고 보아도 책장이 넘어가지 않는 편안한 스타일이었다. 반양장 제본을 선택했는데 케이스는 좀 딱딱하니 매우 고급스럽다.이 안에 샘플북이 두 권 들었는데 둘다 『근처 』를 담았다. 더블아트북이 또 있는데 더블을 구성하는 18편의 단편을 일러스트로 표현하며 그 글을 쓰게 된 동기가 짤막하게 요약되어 있다.

 

<이 작가는>

처음 만남이다. 예스 연재글로 알았지만 연재글엔 관심없어 하던때라 그대로 통과.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리뷰만 읽었던 어느날 여유쟁이님의 선물로 왔다. 그 책도 시작하기전 이 책을 먼저 만났다. 때문에 이 작가의 글맛을 접해보지 않아서 미련할 수도 어쩜 더 정확할 수도 있겠다.

 

<이 책은>

창비출판사의 선물이자 서평단 제의로 왔다.

가제본을 처음 보았기에 무척 신기했다. 나중에 완성본을 받으니 특별한 선물같았다.

 

<책 내용 맛보기>

18편의 단편은 새로이 써진 내용들이 아니었다. 2005년부터 2010년 가을까지 여기저기에 이미 수록되었던 단편들을 묶은 것이다. 이 중 <근처>와 <누런 강 배 한 척>, 그리고 <낮잠>이 매우 맘에 들었다. <아치>와 <슬>도 포함시킨다.

 

<근처>

외로운 삶을 산 중년의 사내가 시한부 삶을 마무리하기 위해 시골로 내려온다. 30년전의 소년과 30년후의 중년 사내가 만난 곳은 타임캡술이 묻힌 곳. 이곳은 모북이다. 어린날들이 고스란히 살아 숨쉬는 곳. 죽을때가 되자 찾은 곳이다.

 

모북리로 들어온건 7살때로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는 일본으로 건너가 죽었다는 소식만 들었었지. 아들이 셋이나 있던 숙부는 두말 않고 호적에 올려줬어. 분에 넘치는 사촌형들과 숙부모님 내외의 사랑을 받았었지. 형들이 공부를 잘했던 탓에 자연스레 공부 잘하는 아이가 되었었지. 모북의 또래들 중 유일하게 대학을 간건 나 하나였지...첫 월급을 타서 빨간 내복을 사다 드린건 참 잘한 일이었어. 비록 치수가 컸지만서도.

 

타임캡술을 열고는 호기, 순임, 도형, 동구의 사연을 보고는 웃다가 울다가... 이미 30년전의 소년들은 30년후인 지금 그 사연들과는 거리가 먼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서글픈 미소가 어린다. 삶은 그런 것이지. 다만 어린날들을 함께 했던 친구들이기에 흉허물없이 폐부를 다 내보인다. 그게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친구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지만 친구들 곁에 그렇게 있을 수 있음이 편안하다. 

 

스물일곱 되던 해 직장생활을 시작해 중간 이직 한 번후 늘 한곳이었다. 기획부서에서 오피스텔과 직장, 밤을 새고, 회의, 기획서 작성, 프레젠테이션 준비, 돌아와 빨래, 간단한 요리 만들고 경조사 얼굴 내밀기, 가전제품 구입, 외국 현지답사, 상황에 맞는 트렌드옷 구입, 연봉협상, 미용실 바꾸기, 회식, 잠자고, 샤워 했을 뿐인데 15년이 지나있었다. 결혼을 기피했던건 아니었으나 마흔살 독신이 훈장처럼 남았다. 

 

간암 말기라니...건강진단도 꼭 챙겼고 담배도 안 피우고 맥주 한 컵이면 족한 주량이었는데...억울한 생각보다 기막힌 생각보다 이해가 가지 않는 진단. 간암 말기라니. 사표를 제출하는 마음이 왠지 홀가분하다. 이제야 휴식을 갖는 기분. 너무 건조하니 바쁘게 살았다는 생각. 이 세상에 남겨 놓을 가족이 없어서 다행이다가도 한번도 가족을 가져보지 못한 묘한 서운함도 고개를 든다. 

 

마흔의 독신남이어서 보다는 40대라는 동시대를 살아온, 살아가야할 동일한 마음에서 오래도록 읽혔다. 건강이 화두가 되는 마흔세대들. 마흔 세대들이여 늙어감을 자각할망정 씩씩해지자고요.

 

<누런 강 배 한 척>

작고하신 아버지를 떠올리며 썼다는 글이다.

 

내가 이 책에 오래이 눈길과 생각이 머문건 추석특집극 때문이었다. '당신의 천국' 최불암,정영숙 주연(SBS 연예 2010.09.15 (수) 오전 11:06 ). 최불암은 큰딸과 아들2이 있지만 마나님을 암으로 앞세웠다. 그러던 어느날 정영숙과 돌연히 재혼을 하기에 이른다. 정영숙의 아들내외가 결혼식만 참석하곤 집들이날 불참하자 집에 찾아간다. 부도 나고 풍비박산된 아들집을 본 순간 중풍을 맞는다. 반신불수인 새어머니를 인정못하겠다는 큰아들내외. 병원치료비조차 여의치 않던 어느날 큰아들은 기꺼이 달동네 숨어사는 정영숙 아들에게 짐짝(정영숙)을 갖다놓는다. 죽은 아내에게 너무나 못했기에 새사람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임하던 최불암은 상심이 극에 달하고...결국 집을 큰딸 명의해주고 연탄불을 피우고 둘은 영원한 탱고를 추러 떠난다. 두 주연의 대사중에 혼자인 아침을 맞는다는게 너무나 무서웠단다.

 

인주물산에 이십 구년 다닌 나는 사년 전 퇴직했다. 젊은날 몇 번의 바람으로 아내를 맘고생시켰는데 이년 전부터 아내가 치매를 앓게 된다. 살림은 자연 내 차지가 되었고 장성한 아들내외는 차라리 다행으로 여기는 눈치다. 젊은날의 속죄하는 마음으로 아내를 돌보지만 여간 힘든게 아니다. 며느리는 영악하게도 나를 건강검진시킨다. 아내간병을 위해서라는걸 아는 마음이 서글프다. 너무나 건강하다는 의사의 말에 절망한다. 아내의 치매 때문이 아닌 삶에의 미련이 없다. 딱히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나는 수면제를 서서히 사 모았다. 집을 전세로 돌려 백화점에서 아내의 옷도 사고...여행을 떠난다. 이곳저곳을 아내와 돌아보며 마지막 선택을 위한 시간은 어김없이 다가온다. 맥주가 달다고 느끼는데 냉장고에는 여전히 한 캔이 남아있다.

 

늙는다는건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 누구나 다가오는 정해진 미래이다. 다만 건강하고 여유로운 노년을 모두 꿈꾸지만 그렇기는 쉽지 않음에 씁쓰레함이 있다. 돈이 많다고 여유로운 노년은 아니다. 동시대를 살아온 동년배들이 있어야 그시절로 잠시 돌아갈 수도 있기에 인간적인 고독감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특기나 취미가 있어야 이젠 사회에서 쓸모없는 늙은이가 되었다는 서글픔을 상쇄시킬 수 있다. 때문에 봉사활동에 전념하기도 하며 삶의 의미를 만들어 가기도 한다. 반려자와 건강한 채로 같이 늙어갈 수 있음이 더할 수 없는 축복으로 다가오는건, 연로하신 부모님들이 계시고 또 나도 나이들어감 일게다.

 

<책 읽은 소감>

18편의 단편 모음집. 몇 편은 아주 맘에 들었다. 생각할 여지를 주고 깊이 있는 사색을 요했다.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지만 누구나 예외일 수 없는 일들이기에 마음 한 켠이 묵직해졌다. 나머지는 우주 얘기도 나오고 가학성의 첨단과 매사 도전적이고 도배하다시피 나오는 욕, 욕설앞에서 (특히 '좇' 이란 말이 어찌 그리도 많은지. 툭하면 나왔다)아연실색했다. 아주 진저리쳐진다.

 

영화 국가대표를 보면 김동욱이 시도때도 없이 말끝마다 욕을 달고 산다. 귀여운 욕, 그 상황서 분통이 터져 누구나 나올 수 있는 욕, 공감동감이 되는 욕이라면 그나마 이해는 할 수 있겠다. 마파도의 할머니들이 내뱉는 욕들은 그나마 정감이 있고 살아온 세월을 대변하는지라 매우 공감이 간다. 그러나 깊지 않은 세월을 산듯한 조폭영화에 마치 양념처럼 늘 등장하는 욕. 습관적인 욕. 말끝마다 붙어 나오는 욕들은 매우 역겹다. 그 욕이 듣기 싫어서 그런 영화나 드라마도 제외시키는데 이리 싫어하는 저질스런 욕을 실컷 맛보았다. 거의 모든 단편마다 혼잣말처럼, 때론 아예 대놓고 뱉어낸다. 참으로 곤혹스런 책읽기였다. 어쩜 내가 싫어하는 부문인지라 더 예민하게 다가올 수도 있었지만 말이다.

 

side A 와 side B로 구성된 Double. 나름 성의있게 구성한 참신한 기획에 눈이 머문다. 케이스에 깔끔히 정돈되니 매우 고급스럽게 다가온다. 과연 그 내용들도 그리 탐날까? 내 성향과 맞다고 느낀 여러 몇 편에서 놀라운 글맛이 우러난다. 물론 내가 욕 때문에 질린건 사실이나 다른 단편들도 기발함에 놀란다. 그 기발함은 참신함과는 좀 다른 그야말로 기이한 발견이다. 뭔소리를 하는지 글자만 읽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로테스키 하고 때론 소름끼치는 잔인함도 있었다. 남자들의 억눌린 욕망이 그리 표출되는가 싶기도 했고, 소시민의 어쩔 수 없는 직업적 비애도 봤다. 처참히 붕괴되어 가는 가족내 화합이 단절됨을 통한 사회상을 보기도 했다. 여전히 비율상으론 처음 만남에서 참으로 빨려 들었어는 아니지만 불쾌했던 기억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만큼 나와는 거리가 멀었던 단편도 많았음을...그렇지만 나와 안맞았다고 해서 나쁘다고 할 수는 없겠다. 그건 취향과 선호도 문제니 말이다.



k******5 2010.11.18. 신고 공감 7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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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uble 더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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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살까 말까 망설이게 되는 책은 안 읽는게 상책이다.    너무 너무 재미없어서, 행여나 내 독서에 문제가 있나 싶어서, 다른 사람의 리뷰를 살펴봤더니...역시, 다들 칭찬 일색이다.--;;    요즘 한참 장편만 읽어서 그랬는지, 일단 단편이라는 것이..뭔가 나올만 하면 허무하게 끝나버리는 것이 맘에 들지 않았다.    박민규의 글쓰기중, 좋아하는 스타일과 그렇지 않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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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살까 말까 망설이게 되는 책은 안 읽는게 상책이다.

 

 너무 너무 재미없어서, 행여나 내 독서에 문제가 있나 싶어서, 다른 사람의 리뷰를 살펴봤더니...역시, 다들 칭찬 일색이다.--;;

 

 요즘 한참 장편만 읽어서 그랬는지, 일단 단편이라는 것이..뭔가 나올만 하면 허무하게 끝나버리는 것이 맘에 들지 않았다.

 

 박민규의 글쓰기중, 좋아하는 스타일과 그렇지 않은 것이 있는데, 좋아하는 스타일의 글은 몇 편 되지 않고, 우주 공상 과학 소설같은 난해하고 정신 사나운 글은 여러편.

 

 원래 그의 글은 훌륭한데, 내가 더 이상 그의 글에서 공감이나 감동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사이드 A의 두번째 글, 제플린 어쩌구 하는 것이 그나마 마음에 들었고..나머지는 읽기도 불편했고, 읽고나서도 짜증이 확~ 치밀어 올랐다. 책이 두권으로 나뉘어져 있으니, 사실 사이드 B의 집중도도 은근 떨어지는 편이다.

 

 나는 좋은 책은 잘 읽혀야하고, 덮고 난 후에 그 심상이, 감동이, 혹은 임팩트가 최소한 며칠동안은 남아 있어야하거나, 아니면, 문득 어느 순간에..그 책의 장면이나 문구가 불현듯 떠오르는 책들이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독서를 마친지 이틀 정도 지났는데...기억나는건 제플린이라는 풍선과 그것을 쫓아가는 그의 모습만 떠오른다. 마치 최윤의 '하나코는 없다'를 읽었을 때처럼...물론, 느껴지는 바는 그것과 달랐지만...아마, 거리를 지나다가..커다란 애드벌룬을 보면, 그가 생각날것 같다.     

 

 

[덧붙임]

이 책의 폰트를 줄이고, 책을 조금 더 크게 하면...

400페이지 안팎의 한 권짜리 책으로도 편집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두 권으로 묶어서 비싸게 받아먹는 출판사의 기획의도가 의심스럽다.

그리고, 이게 과연 그 옛날 이 바닥의 명품으로 기억되던 창비사의 출판정신인가 싶어...씁쓸해진다.

c******m 2010.12.26. 신고 공감 5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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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과 더불어 한 시대를 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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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규의 『더블』은 참 ‘박민규스러운’ 소설집이다. LP 시절의 <더블 앨범>에 대한 그의 로망 때문에 두 권의 책으로 펴냈다는 사실도 그렇거니와 보는 즉시 ‘아, 이건 정말 박민규 스타일이야’ 라는 느낌이 팍 오는 책의 앞표지까지 스스로 직접 디자인했다는 것, 그리고 책날개나 뒷표지와 책말미를 으레 채우기 마련인 작가의 약력이나 추천사나 해설 따위를 모두 걷어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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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규의 『더블』은 참 박민규스러운소설집이다. LP 시절의더블 앨범에 대한 그의 로망 때문에 두 권의 책으로 펴냈다는 사실도 그렇거니와 보는 즉시 , 이건 정말 박민규 스타일이야라는 느낌이 팍 오는 책의 앞표지까지 스스로 직접 디자인했다는 것, 그리고 책날개나 뒷표지와 책말미를 으레 채우기 마련인 작가의 약력이나 추천사나 해설 따위를 모두 걷어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이건 그만큼 자신의 소설에 대해서 자신이 있다는 자만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런 것들이 자신이 쓴 소설들의 진정한 의미와 주제와는 무관한 장식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을 정도로 소설가로서 그가 성숙했음을 보여주는 것이겠다.

 

애초에 그가 의도한대로 쟈켓에서 LP 레코드판을 꺼내듯이 인상깊은 속지와 함께 책을 꺼내 펼쳐서 보고 읽는 실제 LP 사이즈의 패키지 형식이 되지는 못했지만, 정사각형 판형의 책 두 권과 같은 크기의 아트북으로 묶은 『더블』 세트는 그의 의도를 느끼기 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특별한 것이었다. 또한 그 특별함에는, 오랫동안 그의 두번째 소설집을 기다려온 독자들에게도 뭔가 특별한 선물을 선사하고 싶어한 그의 순정한 마음도 담겨있는 것 같아서 그를 사랑하는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더블』을 대하는 내 마음은 몹시도 흡족했다. 그리고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처음의 그 흡족함은 행복함으로 바뀌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책읽기가 있으랴! 처음부터 끝까지 리더스 하이(reader’s high)’를 느끼게 하기에 충분한 책은 참으로 드문 법인데, 박민규의 『더블』은 그 드문 경우의 드문 하나다.

 

『더블』은 작가 스스로 골라서 두 권의 책에 각각 아홉 편씩 수록한 모두 열 여덟 편의 소설들이 그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었다. 소설을 한 편씩 읽기 전에 미리 아트북을 펼쳐서 그 작품에 해당되는 인상적인 그림을 감상하고 박민규가 그 작품에 붙인 짧은 헌정사를 읽으면서 미리 작품의 내용을 추측해보는 재미도 솔솔치 않았지만, 무엇보다도 작품 자체를 읽어나가면서 느낀 즐거움과 기쁨이 참으로 컸다. 거의 모든 작품들이 내 짐작을 벗어났지만 모든 작품들이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좋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그늘진 삶의 모습을 차분하게 그려내고 있는 본격적인 단편에서부터 음울한 미래를 다루고 있는 SF, 부조리한 상황과 기이한 서사가 중심이 되고 판타지, 무림의 고수들이 펼치는 한판승부가 흥미로운 무협물, 엉뚱하고 기발한 만화적 상상력에 기대고 있는 코믹개그물에 이르기까지 온갖 장르가 다 망라되어 있는데도 그 다양한 장르의 소설들을 다루고 있는 박민규의 솜씨는 변함없이 참으로 일품이어서 감탄, 또 감탄이었다.

 

박민규는 어떻게 그처럼 각기 다른 상상력을 요하는 다양한 장르의 이야기들을 거의 동시적인 시간대 속에서 써낼 수 있는 것일까? 또 그렇게 다양한 장르의 이야기들을 우리에게 들려줌에 있어서, 그는 어떻게 그렇게 그때그때 그 이야기에 가장 적합한 목소리를 선택하고 또 어떻게 그렇게 가장 효과적인 방식으로 들려줄 수 있는 것일까? 카멜레온과 같은 놀라운 변신술을 자유자재로 보여주고 있는 박민규의 소설들을 읽고 있노라면 이렇게 감탄은 쉽게 경이로 번져갈 수밖에 없다. 박민규는 이 책 『더블』에서 그 끝이 과연 어디일지 감히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진화하는 작가적 상상력과 그 변화무쌍한 상상력을 생생하게 구체화시키는 그의 뛰어난 문장력과 스토리텔링의 진면목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세계의 시즌은 달라졌고 우리는 변이(變異)한다(230, 「축구도 잘해요」, 『더블』• side A)는 사실에 남달리 민감했기에 가능했던 이러한 자신의 문학적 성취에 대해서 그는 다만 이렇게 말하고 있을 뿐이니 더욱 믿음직스럽다.

 

지난 5년 사이에도 많은 일들이 있었다.

 

는 조금 뜨거워졌는데

이제 막 워밍업을 마쳤기 때문이다.

 

는 조금 차가워졌는데

예전에 비해 조용한 인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걸로 된 거라고

우리는 합의를 보았다. (303~304, 작가의 말, 『더블』• side B)

 

이처럼 자신을 1인칭과 3인칭으로 구분해서 바라볼 줄 아는 능력 - 이 능력을 나는 더블의 능력이라고 부르고 싶다 - 은 삶을 살아가는데 누구에게나 필요한 능력이지만 누구나 다 가지고 있지는 못한 드문 능력이기도 하다.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의 다채로운 삶의 모습들을 다루는 소설가들에게는 필수불가결한 능력일 테지만 그렇다고 모든 소설가가 이러한 능력을 갖고 있지는 못하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박민규는 더블의 능력을 갖고 있는 소설가다. 그것도 아주 많이. 그래서 그는 대중매체에 자신을 드러낼 때는 그러한 자신의 능력이 너무 드러나 보일까봐 늘 자신의 얼굴을 커다란 안경과 가면 따위로 가리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대중적으로 드러난 그의 이런 엉뚱한 모습을 보고 어떤 사람들은 분명 저항감을 가질 것이다. 그리고 그의 작품들에서 자주 보이는 엉뚱하고 기발하면서 낯선 상상력에 대해서도 거부감을 느낄 것이다. 그의 작품들은 재밌게 읽히기는 할 망정 현실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는 만화를 보는 것 같다면서 문학적 평가를 내리는 데는 몹시 인색할 수도 있을 것이다. 몇 년 전 박민규의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 나 역시 그랬지만 거듭 그의 작품들을 읽어나가면서 나는 변했고 이제 그의 애독자가 되었다.

 

인터넷이 창조한 광대한 온라인 네트워크와 디지털 기술이 만들어낸 진짜와 다름없는 가상현실로 인해 이미 우리의 현실세계는 변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세계는 우리가 예전에 살았던 그런 현실세계가 더 이상 아니다. 대응할 수 없을 정도로 변해버린 지금 이 세계에 대한 적응으로서 박민규처럼 예민한 소설가는 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 그렇다면 이제 독자도 그 변화에 적응할 수밖에 없다. 대응할 수 없을 때 인류는 적응한다(169, 아스피린, 『더블』• side B)는 광고 카피는 이 시대의 소설가와 독자에게도 똑같이 유효한 것이다.

 

『더블』은 소설가 박민규가 이 시대를 온몸과 온 마음으로 통과하면서 자신의 상상력을 예민하게 그리고 기민하게 적응시킨 결과의 소산이다. 자신의 아버지나 어머니, 동생이나 누이 같은 우리 시대 그늘진 이웃들의 삶에서 느낀 애정과 비애와 연민과 슬픔이 의 시선으로 따뜻하고 감동적으로 그려져 있기도 하지만 급속도로 발전하는 과학기술이 가져올지도 모를 파국적이고 묵시록적인 미래의 모습에 대한 냉철하면서도 날카로운 의 성찰과 경고도 담겨 있다. 박민규가 따뜻한 로서 들려주는 이야기 앞에서 나는 함께 울고 웃었으며, 서늘한 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미래 묵시록과 어두운 판타지 앞에서는 나는 함께 떨고 숨을 죽였다. 박민규의 『더블』과 더불어 한 달을, 한 계절을, 아니 한 시절을한 시대를 살았다는 느낌이다. 그 느낌 앞에 이제 당신을 불러세우고 싶다.

 



c*****t 2013.07.16. 신고 공감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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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나의 이야기 - [더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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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탕 꿈을 꾼 기분이다.     나른한 일요일 오후. 나도 모르게 따스한 햇살에 소로로 잠이 들었다가 문득 잠에서 깨어 창 밖을 보니 푸르스름한 어둠이 성큼 눈 앞에 다가와 있을 때.   난 그럴 때 꼭 이 세상에 나 혼자 남겨진 것 같은 깊은 외로움을 느낀다.     아직 잠에서 덜 깬 눈을 부비부비 하면서도 낯선 세상에 나밖에 없는 듯한 이유 없는 외로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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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탕 꿈을 꾼 기분이다.

 

 

나른한 일요일 오후.

나도 모르게 따스한 햇살에 소로로 잠이 들었다가

문득 잠에서 깨어 창 밖을 보니 푸르스름한 어둠이 성큼 눈 앞에 다가와 있을 때.

 

난 그럴 때 꼭 이 세상에 나 혼자 남겨진 것 같은 깊은 외로움을 느낀다.

 

 

아직 잠에서 덜 깬 눈을 부비부비 하면서도

낯선 세상에 나밖에 없는 듯한 이유 없는 외로움... 그리고 두려움.

 

그럴 때면 꼭 엄마를 찾으며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어린 아이가 된다.

 

 

<더블>을 읽고 난 느낌이 꼭 그러했다.

 

한 조용한 요양원의 정원에서 인생의 뒤안길에 서 있는 쓸쓸한 노인의 발그림자를 따라가다가,

어느 순간엔 깊은 바다 속으로,

또 다시 이번엔 화성으로,

그러다 다시 이번엔 한강 다리 위로...

 

책을 덮는 순간 시공간을 넘나들며 한바탕 꿈을 꾼 듯 정신없는 느낌이었다.

마치 실제로 어딘가를 다녀온 것처럼 지치고 피곤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여행을 끝낸 느낌은

늦은 오후 잠에서 깼을 때와 비슷한... 쓸쓸함 그리고 외로움이었다.

 

시골에서도 한강에서도 바다에서도 우주에서도

너무 쓸쓸했다.

마음이 허했다.

문득문득 비어져 나오는 웃음을 참다가도

또 허해졌다.

 

소설 속의 많은 등장 인물들은 뭐라고 평가하기도 참 애매할 만큼 세상의 중심에서 벗어난 인물들이다.

 

지금 당장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고 해도 왔다 갔다는 흔적조차 남지 않을 사람들...

 

읽는 내내 가슴이 짠하고 마음 한 구석이 싸한 이야기들이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님을 알고 있었기에,

그래서 더 마음이 허전했는지 모르겠다.

 

 

다양한 소재의, 다양한 인간 군상의 이야기들 속에서 찾은 것은 바로 우리의, 나 자신의 모습이었다.

 

 

'인간이란

 천국에 들어서기엔 너무 민망하고

 지옥에 떨어지기엔 너무 억울한 존재들이다.'

 

    ----------<누런 강 배 한 척>

 



p*******3 2010.12.22. 신고 공감 2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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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좋은 단편들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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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박민규 작가를 처음 만난건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이었다. 통통 튀는듯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묵직하지만 결코 무겁지만은 않은 괜찮은 책이었다. 그 후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로 두번째 만남을 가졌다. 이 책에 대해 좋은 소문을 들은터라 기대를 잔뜩하고 읽었는데 첫느낌은 예전에 읽었던 박민규가 맞나 하는 생각이었다. 같은 작가의 작품이라기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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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박민규 작가를 처음 만난건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이었다. 통통 튀는듯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묵직하지만 결코 무겁지만은 않은 괜찮은 책이었다. 그 후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로 두번째 만남을 가졌다. 이 책에 대해 좋은 소문을 들은터라 기대를 잔뜩하고 읽었는데 첫느낌은 예전에 읽었던 박민규가 맞나 하는 생각이었다. 같은 작가의 작품이라기엔 느껴지는 분위기가 내겐 너무 달랐다. 나만 그랬던건가....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읽는 동안은 눈덮인 하얀 설원을 혼자 묵묵히 걷는 기분이었다. 가끔은 눈발이 휘날리는 끝없는 새하얀 설원을 걷다가 결국엔 따뜻한 햇살이 비치는 호수를 발견하고 벤치에 앉아 햇살바라기를 하는 느낌. 이 책은 이상하게 다 읽고 난 후에 자꾸만 생각이 났다. 책을 읽는 동안에는 즐겁기 보다는 고행하는 기분이 들었는데 책을 덮고나니 새록새록 떠올랐다. 박민규의 힘을 새삼스럽게 느꼈고 다시 한 번 그 힘을 만나보고 싶었다. 제법 묵직하게 그의 단편이 묶여 나왔다는 소식은 반갑고 설레였고 이번엔 어떤 느낌을 주려나 궁금하기만 했다.

 

<더블>은 생김새부터 남다르다. 예전 LP판을 생각나게 하는 side A, side B라는 타이틀을 단 두 권의 책으로 묶여있는데 그 사이에는 이라는 표제를 단 얇은 책자(화집)가 들어있는데 마치 LP판에 들어있던 앨범을 소개하는 속지같다. 이 얇은 화집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강렬하고 개성넘치는 일러스트와 짤막한 박민규 작가의 글들이 멋지게 어울려서 이 얇은 화집을 보는것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해졌다.

 

<더블>은 한 권에 아홉편씩의 단편이 들어있는 단편집이다. 18편의 단편들 하나하나 작가의 기발하고 독특한, 그래서 재미있는 상상을 만나는 느낌이었다. 첫사랑의 그녀를 요양원에서 만나 마음만은 청춘이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낮잠>, 잘나가던 세일즈맨이 영업이 부진해지고 성생활도 원활치 않아 급기야 아내는 딜도를 장만해서 충격에 빠지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딜도가 우리 가정을 지켜줬어요>, 서울 하늘에 갑자기 나타난 하얀미확인 물체의 비밀을 알려주는 <아스피린>.... 한편 한편이 기발한 상상력을 만날 수 있다.

 

몰입할만하면 이야기가 똥강똥강 끊어지는 느낌이 들어 단편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가끔정말 괜찮은 단편을 읽을때면 어지간한 장편보다 더 흠뻑 빠지게 된다. <더블>도 나를 몰입하게 만든 멋진 단편집이었다. 한 편, 한 편 읽어내려가면서 다음에는 어떤 흥미로운 이야기가 등장할지 기대하게 만드는 그런 맛좋은 단편을 만난것 같아 기뻤다. 박민규라는 작가는 만나면 만날수록 궁금해지는, 정체가 의심스러운 흥미로운 작가다.

h*******8 2010.11.28. 신고 공감 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