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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 나오자 마자 계속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은 책인지라 읽지 않을 수 없다. 읽으면서 몇년전에 읽은 그의 1Q48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작품에도 언급이 되지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역시 생각이 났다. 읽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1편보다 2편이 읽는 진도는 빨리 나갔다. 1편이 설명이나 추상적인 느낌이 많다면 사건이 많기 때문일 것 같다. 멘시키, 아키가와 쇼코, 마리에 등의 이야기 집 주인 아마다 도모히코의 이야기까지 쉴 새 없이 쏟아진다. 전체적인 분위기를 요약하면 몽환적인 판타지에 에로틱한 요소들이 덧붙여져있는 느낌이다. 솔직히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장력이 아니었으면 중도에 책을 포기 하지 않았을까 싶다... 1200페이지에 이르는 스토리를 이어간다는 것은 보통 내공이 아닐 것이기에 그 점은 놀랍지만 너무 많은 것이 섞여 어려운 느낌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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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단장 죽이기 2: 전이하는 메타포 ㅡ 무라카미 하루키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ㅡ " 눈에 보이는 것이 좋아요 . 눈에 보이지 않는 것과 같은 정도로 . " ( 본문 12 쪽 ) 늘 그렇지만 재미있는 책은 마지막이 영영 오지 않기를 바라게 된다 . 끝이 궁금해 다음 장을 미친듯 넘기면서도 점점 줄어드는 책 뒷 쪽의 무게가 한 숨이 나는 걸 , 그러다 마침내는 마지막 엔딩에 서운해져 버리고 . 더할 나위없는 재미였는데도 계속되면 좋겠다는 바람에 날 알지도 못할 작가에게 괜한 심통을 부려보게 되곤 한다 . 주인공이면서 한번도 이름이 밝혀지지 않는 ' 나 ' 는 9개월 간 아내 유즈와 떨어져 심정적 이혼을 겪게 되면서 자신을 외딴 산 속에 유폐시킨다 . 철저히 세상과 담을 쌓은 채 자신만의 고독한 작업을 할 셈이었으나 어찌된 일인지 오히려 주변인들과 엮여 사건의 매개자이며 촉발자가 되서는 말할 수 없는 것과 말없이 지켜져야 할 것들에 대한 시간을 온 몸으로 겪고 배우게 된다 . 그 시간들에 나타나는 현상이 이데아 , 메타포 , 이중 메타포 등등이다 . 그들은 그림 속의 존재로 형상을 빌려 나타나기도 하고 과거에 그가 알던 그리운 이의 목소리로 나타나기도 하며 , 여행지에서 우연인지 운명인지 모르게 마주한 인물로 나타나 불안감을 조성하기도 한다 . 또 고양이의 촉감이나 이계라고 밖에 표현 못할 공간으로도 나타나며 , 들릴 리 없는 소리들로 변주되어 주인공과 주변인들의 관계를 이끈다 . 그리고 나는 , 손에 잡힐듯 눈에 보일듯 생생한 그림 하나를 두고 온갖 상상을 한다 . 기사단장 죽이기 . 소설 속의 주인공 ' 나 '와 열 세살 소녀 아키가와 마리에도 그랬듯이 그 그림이 그려지고 우리 앞에 표현된 이유에 대해서 ...아흔이 넘어 사물의 인지조차 놓은 노인의 깊은 심연에 가느다란 무엇으로 남은 그 그림은 무엇이었을까 하고 . 우리에게 단지 난징대학살의 진상과 지난 독일의 잔혹한 시간을 알려주려 했던 것이 다는 아니었을텐데 , 어쩌면 그것은 한 인간의 주마등 끝에 자리한 회한이 아니었나 싶어진다 . 그때 그 일이 마침내 이루어졌었다면 자신은 그런 그림을 남기지도 못하고 죽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후회없이 연인만 가혹하게 보내고 살아 죄인의 심정으로 살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라는 짙은 회한 . 남은 그림을 '나'가 봐야 했던 이유는 , 지금의 생에선 그런 전쟁이 다시 되풀이 되진 않더라도 한 사람의 생에 후회란 그같은 짙은 상념을 남기는 그림으로 주변에 영향을 끼치는 뭔가를 만들어 낼수도 있다는 암시를 주기 위해서 였을거였다 . 지독한 나치의 시대도 , 제 2차 대전도 끝나고 현재의 우리시대는 총칼의 위력보단 뭔가 서서히 인간을 잠식하는 것들에 둔감하게 사로잡혀 가고 있는 추세다 . 속도가 너무 빨라서 오히려 속도를 못 느끼는 둔감함 , 생생하게 피흘리는 전쟁보다 은근하게 인간을 잔인으로 몰아넣고 있는 생의 터전이 지금이다 . '나' 는 그런 생업에서 무뎌진 한 인간이고 알게 모르게 염증이 난 사람이기도 하다 . 은연 중에 자신이 꿈을 접고 , 가정을 위해 희생하고 있다고까지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는 인물 . 그러면서 한쪽으론 그게 자신이 잘 하는 일이고 아무렇지 않다고 말하는 인물 . 자신이 그렇게 까지 하는데 아내가 자신말고 바람을 피우다니 , 용납이 될리가 없다 . 그런 생각은 말로 드러나지 않아도 몸으로 생활에서 점차 곁에 있는 사람을 지치게 하기 마련이다 . 분명 자신의 희생을 알아주길 바라기 때문에 그 자체가 하나의 희생자적 관념이 된다 . 주부 콤플렉스가 괜히 있는게 아닌거다 . 오랜 시간을 함께 산 사람들을 보면 우여곡절을 겪지 않은 사람들이 없다 . 문제 없이 평생이 순탄했어요 . 하는 부부는 그야말로 세상에 이런일이 코너에나 모셔야 할 케이스일지도 모른다 . 또 자주 듣는 얘기중엔 여자가 바람이 나면 대게의 경우는 남자가 잡고 , 여자는 가정을 깨려고 한다는 이야길 많이 접했을 거다 . 나만해도 그런 이야길 많이 들었다 . 그럴법 하다고 생각한다 . 왜냐면 여자는 대게 한 마음에 두 사람을 동시에 못 담기 때문이다 . 뭔가를 목적하고 마음에 담은 사람을 위해 다른 사람의 곁에 있는 척 할 수는 있겠지만 (모두 다 그런것은 아니겠지만 ..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여자는 그렇다 . 나를 기본으로 상상을 해봐도 ) 그것에도 역시 한계는 있을 거다 . 유즈 역시 평범한 사랑을 꿈꾸는 여자였으니 자신을 원망하는 남편의 온몸의 아우라를 견디는 건 아무리 사랑해도 시간이 지날수록 피곤한 일이었을 터 . 주인공 ' 나 '는 여행을 하면서 분풀이하듯 무아지경의 상태로 여기저기를 해매고 다닌다 . 그러다 미야기 현 , 이와테 현 근처에서 예의 하얀색 스바루의 남자를 만나고 그(스바루)의 여자인지는 알수 없지만 그 여자를 만나 , 제 안의 흉폭한 심정과 진짜 두려움을 마주하게 된다 . 그는 그녀가 아닌 실제로는 아내를 죽이고 싶었던 걸거다 . 그렇기에 어느 밤 꿈에서 그라면 보통 있을 수 없던 일을 비록 꿈일지라도 아내 유즈에게 성적해방을 난폭하게 해치우며 만족을 하고 , 사악해지는 것이다 . 그러므로 그는 사악한 아버지*가 되고 . < 나중에 기사단장의 말을 들으면 사악한 아버지* 라고 하는 걸 보아 , 그 스바루 남자는 그녀를 쫓는 사악한 아버지라는 의미일 수도 있고 , 주인공 '나 '가 일반적인 형태로 부모가 되었다면 어쩌면 그런 사악한 아버지가 되었을 수도 , 또 , 옷장 속에 갇힌 마리에 앞에 서있던 남자로 친부지만 뭐에 씌여 나쁜짓을 하는 아버지였을 수도 , 암튼 상상의 여지가 너무 많다 > 그것은 모두 꿈의 일이다 . 현실에선 그는 그런일은 상상도 못하니 멘시키 와 마리에 두 골짜기 사이에 끼어서 그림을 그릴 뿐이다 . 이따금 기사단장이 나타나 이런저런 조언 아닌 조언을 해준다 . 이 모든 일은 그가 꿈일지언정 사무쳐서 해 놓은 일을 잘 풀어 원만하게 흘러가도록 하는데 있다 . 그가 아마다 도모히코의 그림을 보고 그의 맺힌 한을 풀어 줄 필요가 있었듯이 ( 마지막에 기사단장을 도모히코 앞에서 죽이는 장면을 보여주며 또 기록하는 긴얼굴을 나타내 증거하게 함으로 이중으로 그의 한을 풀게 함 ) 그와 유즈 사이의 막힌 강물을 돌아 흐르게든 바로 흐르게든 할 필요가 있으므로 이 모든일은 필요한 일인 것이다 . 그러니 멘시키와 마리에는 그가 사악한 아버지가 되지 않도록 장치된 메타포이며 이중 메타포이다 .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ㅡ 더니 , 정말 영화 제목하나 기막히게 지었다 . (아..이 책과 상관없이 ..) 멘시키는 아마 마리에와 어쨌든 가까워질테지 . 실이라는 뜻을 가진 '무로 ' 의 아버지가 된 ' 나 '와 유즈는 잘 살고 있을 것이다 . 무로에게 앨리스와 체셔고양이와 토끼와 세상 어딘가로든 연결된 많은 동굴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 지금쯤이면 여기와 시차가 없으니 한가로운 주말이려나 , 이렇게 유와 무의 틈을 소설의 이야기로 매꿔도 보며 아 , 너무 즐거웠다 . 다들 난징 대학살이니 , 안슐루스니 그게 중요하다 생각할지 모르지만 물론 중요하지 않은게 아니라 , 너무 많은 것들을 크게만 생각하느라 전쟁도 , 불사하고 참전도 당연시하고 하는거 아닌가 ... 한 인간의 고뇌 , 인간의 삶과 사랑 , 그런거... 눈에 보이는게 좋다는 말 , 눈에 보이지 않는 정도로 ... 마리에의 그 말이 나는 이 소설에서 내내 울림이 가장 컸다 . 무뎌지지 않고 생이 주는 아주 작은 주름과 나이듦에도 새삼스레 감사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고 생각하게 한 소설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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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에 1권 읽기를 마친 후 지금까지 두고두고 마음을 불편하게 했던 책이다. 간신히 읽었고 눈앞에서 치울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한다. 하루키 문학은 한 번 경험한 것으로 족하다. 그 지역을 돌아다니던 시기에 나는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 지극히 고독하고, 서글프고 답답한 심정을 안고 있었다. 여러 의미에서 스스로를 상실해 버렸다. 그런데도 나는 여행을 이어가며 수많은 낯선 이들 틈에 섞여, 그들의 일상 속 여러 장면을 통과했다. 그것은 그때 내가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의미를 지닌 일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 과정에서 -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 몇 가지를 버리고, 며쳐 가지를 건졌다. 그 장소들을 지나온 나는 그 전과 조금이나마 다른 인간이 되었다.p.5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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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권을 다 합하면 거의 12,000페이지 짜리 긴 소설인데... 다 읽고 나니 왠지 단편을 읽은 느낌이 든다. . 여전히 화소 높은 카메라로 선명하게 찍은 듯한 상황 묘사도, 곳곳에 음악이 흐르는 이야기도, 독특한 향내를 풍기는 묘사들도 여전히 하루키 스럽다 싶은데... 다 읽고나니 왠지 아쉬웠다. 용두사미?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왤까? . 판타지라면 판타지인데... 갈 것이면 그냥 확 가버리지 왜 가다 말았을까? 도대체 병원에서 우물까지 사흘의 여정은 도대체 뭐였을까? 기사단장-방울-우물-멘시키-마리에-도모히코 로 이어지고 끊어지고 섞이는 이것은 어떤 연관성을 가질까? . 미완성이지만 완성된 “나”의 작품들처럼 이 소설도 “여기까지”라고 내게 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너무 좋았다 강렬하고 강렬하다 |
| 치밀하고 깊은 묘사가 돋보이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최신작 입니다. 등장인물은 많이 나오지는 않지만 각각의 인물을 입체적이고 바로 앞에 있는것같이 묘사하여 읽는 맛을 더웃 맛깔나게 합니다. 장편소설이지만 한번 잡으면 놓을수 없게 하는 매력이 있어서 한번에 읽어 냈습니다. 현실과 가상을 뛰어넘고 기사단장과 만나면서 달라지는 주인공 (나)의 모습을 자세히 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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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소설은 항상 특이하고 별 내용없는듯 하면서도 심오하다. 잘 읽히는게 최고의 장점이고 왼독 후에도 가끔 생각나는 묘한 힘이 있다. 책 내용은 좋았지만... 기사단장 1편은 22년 인쇄본인데 반하여 2편은 23년 9월2일 구매한 책이 17년8월8일 인쇄본이 배송 되었습니다. 1년에 30여편을 구매하여 책을 읽는데 이런경우는 처음이네요. 책이 이렇게 안팔렸는지 아님 재수없는지... 새책을 사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귀찮아서 교품하지는 않겠지만 어이없습니다.... |
| 무라카미 작가의 장편을 전부 소장중인데. 항상 최고인 초반부에 비해 후반부가 살짝 아쉽다. 그게 매력인 것일 수도 있지만 ㅋㅋ.. 종이책으로도 보관중이었는데 친척이 들고가서 e북으로 재구매해 간만에 다시 읽어보았는데 여전히 매력적이다. |
| 한 작가의 전체작품을 읽는 독서방법을 선호한다.그렇게 선택한 작가중 한분이 무라카미하루키작가다. 하루키의 작품을 모으면서 작품에관한 정보는 아무것도 모른상태로 구입한게 이 기사단장죽이기1,2권이다.알고보니 난징대학살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는데 같은 일본인들에게 많은 욕을 들으면서도 진정한 작가정신으로 작품을 써낸 모습에 놀랍고 대단하다느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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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일상에 느닷없이 튀어나오는 이데아라든가 방울소리, 구덩이 또는 예기치 않은 임신과 실종 또는 죽음 등등 개인적으로 카프카적 재미를 거부하는 건 아니지만요. 하루키 아조씨는 진짜 너무 과해요…ㅠㅜㅠㅜ 이 뜬금없는 판타지는 ‘나’가 현실의 불안과 공포에서 도피하기 위해 애써 짜낸 회피성 수다로 읽히는데요. 솔직히 너무 찌질…ㅠㅜ ‘나’의 찌질한 회피성향은 아내의 배신에 대처하는 방식뿐만 아니라 멘시키에 대한 태도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나죠. 굳이 교도소라든가 개인정보 은폐와 영역 보안에 철저하다는 등등의 사실을 차치하더라도 과도한 보수를 제안하며 접근해서 결국 ‘나’를 자신의 목적에 이용하는 멘시키는 최대 범죄자, 최소 소시오패스가 분명한데 말이죠. 더욱이 제 딸일지도 모른다는 어린 소녀 마리에를 음습하게 스토킹하지만 결정적인 친자 확인은 황당한 변명으로 미뤄두죠. 결국 ‘나’를 이용해 마리에에게 접근한 후 마리에의 보호자를 유혹하는데…? 아니, 멘시키인지 X시키인지 이 나르시시스트 소시오패스는 제 3자의 눈으로 보건대 역겨운 근친 페도에 잠재적 성범죄자가 확실한데요??? 하지만 ‘나’는 멘시키의 기괴한 행적을 직접 보고 듣고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그의 선악을 단정하여 평가하지 않죠. 회피성향인 ‘나’의 최선은 그저 멘시키와 선을 긋고 그의 의도에서 최대한 벗어나는 것이었는데요. 하긴 무소불위의 거악 앞에서 무력한 개인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요? 그 아마다 형제도 전쟁이라는 거악에 저항하지 못하고 무력하게 사그러들었는데 말이죠. 그래도 아마다 형제에 비하면 ‘나'는 좀 더 낫다고 할 수 있을까요? 악으로부터 마리에를 지키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했으니까요. 하지만 '나'의 경고가 언제까지 마리에에게 힘을 발휘할지는 모를 일이죠. 그 악은 잠시 물러났을 뿐 완전히 퇴치된 건 아니니까요. 그리고 ‘전이하는 메타포’란 결국 세상에 확실하게 고정된 것은 절대 없다는 의미일테니까요. 하루키 아조씨는 신기하게 이런 면에서만 꽉막힌 리얼리스트가 되는 것 같네요. 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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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작가님의 <기사단장 죽이기 2>에 관한 리뷰입니다. 리뷰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으니 읽으실 때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권 역시 몰입해서 읽었어요. 하루키 작가 특유의 개성이 이 작품에도 녹아있어 가끔 어려울 때도 있었지만 잘 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