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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시까지 등교하라는 학교 방침대로 등교 시간을 엄수하기 위해 가방을 둘러메고 아이들은 골인 지점을 향해 달려 들어온다. 교실에 발을 걸치고는 숨을 할딱거리며 인사를 하는 아이 얼굴은 어느 새 당근 빛깔처럼 발갛게 달아 올랐다. 수행평가가 있는 날이면 쪽지를 내서는 그것을 외우느라 손끝이 바삐 움직인다. 책 속에는 우리들이 가보지 못한 길들이 경험 속에 살아 있다며 책을 많이 읽으라고 하지만 여전히 아이들은 시험에 쫓겨 책 읽을 겨를이 없다고 항변한다. 야자 시간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 있는 학생의 등짝을 때리며 헛짓거리 한다고 타박하는 감독 선생님의 말은 숲은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우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어 마음이 무거웠다.
『그래도 괜찮아』안오일 청소년 시집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서 눈에 포착된 시적 소재를 짧은 리듬 속에 사실적으로 담아냈다. 예순 네 편의 시를 네 부분으로 나눠 분류된 시를 각기 다른 제목으로 아우르고 있는 시들은 평이해 보이지마는 시 속에 담긴 의미는 자못 깊다. 학교, 집, 학원을 획일적인 순으로 움직이는 청소년들의 동선은 무미건조함을 더한다. 학원에서 이미 배운 내용을 학교에서 건성으로 배우며 교과서 지식과 다른 이야기가 나오면 시험에 나오지도 않는 내용을 왜 말하느냐는 아이가 어떤 어른으로 자리할 것인지 냉소적인 시선으로 물었다. 잘나가는 어른이 되기 위해 열여섯 살 지금의 나를 잃어버린 시적화자가 빠져 버린 내 소리를 찾아야 하는 당위성을 강조하는 시에서는 점점 자신의 본질을 망각한 채 지내는 청소년들의 정체성을 찾게 한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청소년들의 각박한 생활은 지금 행하는 규칙을 수동적으로 따르며 지내느라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자기표현이 미숙한 아이, 남의 물건을 제 물건처럼 빌려 쓰고는 돌려주지 않는 아이, 돈 잘 쓰는 아이 앞에서 굽실거리는 녀석의 등짝을 한 대 쳐 주고 싶다는 시에서는 한 교실에 서 생활하는 아이들의 보이지 않는 부정적인 모습을 고스란히 반영했다. 천 냥 하우스에서 팔리는 물건들은 모두 한 자리에 들어있는 모습에 착안하여 각기 다른 취미를 안고 사는 아이들 역시 적성과 취미를 고려하기보다는 모두 수학 심화반에 넣어진 점을 들어 우리 교육의 문제점을 부각하고 있다.
벤치에 웅크리고 앉아 내려다보는데 내 신발코가 불안하게 나를 쳐다본다 나는 나도 모르게 주문처럼 말했다. 그래도 괜찮아 누구도 어쩌지 못하는 내 자신이 있잖아 그러니까 괜찮다, 괜찮아........... 나는 신발코를 어루만져 주었다. 나를 만지듯
현실의 부정적인 모습에 좌절하면서도 스스로 살아가기 위한 방편을 찾는 청소년들의 모습에 희망을 발견한다. 이 외에도 많은 시에서 청소년들의 각박한 삶을 반영하면서도 그들의 고민과 생각을 어루만져주는 모습에 진정성이 더해진다. 위만 쳐다보고 내달리는 청소년들의 지친 몸과 마음을 다독이는 위로의 말이 절실한 현대에 청소년들의 마음을 헤아릴 만한 시를 통해 그들이 삶 속에 이울 대는 단면을 보며 안쓰러움이 더한다. 청소년들의 현실적 아픔에 공감하고, 그들이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도록 격려하며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소망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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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을 위한 시집은 많다. 일상에 잊혀진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시어들이 많다. 유아와 아동을 위한 시집도 많다. 잠재된 감성을 일깨우는 시어들이 많다. 하지만, 청소년을 위한 시집은 거의 없다. 책을 많이 읽으라 하고, 감성을 더욱 잘 다독여야 하는 청소년기라고 하면서 정작 그들을 위한 시집은 거의 없다.
푸른책들에서 나온 『그래도 괜찮아』는 그래서 더욱 눈에 띄는 시집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청소년이란 이름표를 달았을 때는 그래도 여유가 있었다. 지금의 청소년들은 하루하루 꽉 짜인 일정에 종종걸음으로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모습뿐이다. 하지만, 그 바쁜 시간 중에도 청소년의 감성과 청소년의 생각은 있다. 그들이 어른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청소년들에게 바쁘다를 외치면서 달리기를 종용한다. 그들을 위해 등을 토닥여주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래도 괜찮아』는 이런 아이들에게 잠깐의 여유를 주는, 그리고 따뜻하게 등을 토닥여주는 그런 시집이다.
안오일 시인은 자신이 겪었던 청소년기의 경험과 그가 상상하고 있던 건강한 청소년을 바탕으로 청소년 시집을 펴냈다. 동시 「사랑하니까」 외 11편으로 제8회 푸른문학상 ‘새로운 시인상’을 수상하는 데 이어, 중편동화 「그래, 나는 나다」로 한국안데르센상을 수상하고, 시집 『화려한 반란』(삶이보이는창, 2010)을 펴내는 등 동시, 동화, 청소년시, 성인시를 두루두루 발표하는 안오일 시인의 『그래도 괜찮아』는 2010년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 ‘청소년을 위한 우수 저작물’을 발굴하기 위해 공모한 ‘청소년저작 및 출판지원사업’의 당선작이기도 한 작품이다. 청소년들의 생활과 언어를 적실하고도 풍부하게 반영한 리얼리티를 갖추고 있고, 성장과 반성장의 다양한 요소를 함축하고 있다(유성호교수-한양대학교 국문과/심사위원)”라는 평과 함께 높은 완성도에 대한 칭찬을 받고 있다.
『그래도 괜찮아』를 읽는 청소년들은 아마 지금 자신의 생각과 너무나도 공감하는 내용을 읽을 수 있다. 청소년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시어에서 똑같은 생각과 느낌을 들게 한다. 시인은 이런 청소년들의 마음속에 또하나의 희망과 용기를 심어주고 있다. 공감하면서 얻을 수 있는 것. 그것을 보여주는 시집이 바로 『그래도 괜찮아』이다.
때론 어른처럼 행동하지만, 아이들의 마음이 있고, 부모에게 반항하지만 부모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고, 미래에 대해 포기를 하는듯하지만 또다른 미래를 꿈꾸는 청소년들의 마음을 고스란히 표현하고 있다.
『그래도 괜찮아』는 의지할 곳 없는 청소년이 자신에게 "괜찮다"고 다독이는 말이다. 실의에 빠진 자신에게 "괜찮다"고 자신을 다독이는 말이다. 기운 없는 일이 있더라도 청소년은 다시 기운 낼 수 있다는 용기를 주는 시집이다. 많은 시간 우여곡절을 겪고, 마음의 상처도 겪고, 친구과의 우정도 겪을 우리 청소년들이 『그래도 괜찮아』를 통해 잠시 잠깐 공감의 시간, 여유의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앞으로 괜찮은 시간이 많이 있기에 다시 한 번 앞으로 가자는 말과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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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 전에는 표지에 적힌 ‘청소년시집’이라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몰랐다. 시집이면 시집이지, 왜 굳이 청소년시집이라고 적어 놓았는지. 하지만 책을 읽고 나자, 왜 굳이 표지에 그렇게 적어놨는지 알 듯 했다. 이 책은 청소년들의 감성에 맞춰 청소년과 공감대를 이룰 수 있는 시들로 채워져 있었다.
저자의 마지막 말처럼 어린이를 위한 시나 성인을 위한 시는 있지만, 청소년을 위한 시는 없었다. 교과서에서 조차 시라 하면 무거운 문학시가 전부였다. 그렇기에 청소년에게 시라는 것은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저 분석하고 해석해야 하는 하나의 문학에 불과했다. 학창시절엔 나 역시 시라는 것은 배워야 하는 하나의 학문이기만 했으니까.
그러다 내가 처음 제대로 시를 느꼈던 것은 가슴 속에 사랑이라는 감정을 알아갈 때였다. 내 안에 가득 찼던 사랑이라는 뜨거운 감정을 시 안에서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에서 나는 나와 똑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때론 가슴 아픈 사랑을, 때론 행복한 사랑을, 애달픈 사랑을.. 시를 통해 사랑이라는 감정을 더 깊게 느낄 수 있었다.
누가 읽으라고 하지 않아도 내가 찾아서 읽을 정도로 시를 좋아했고, 시문학 동아리에도 들었을 정도였다. 또 잘 사지 않던 시집도 그 땐 열심히 사 모았다. 그때 사놓았던 시집들을 보면서 평소에도 종종 내가 왜 이런 시집을 사 읽었지 싶었었다. 근데 이제야 알 것 같다. 이 시들엔 당시의 나와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란 것을.
내가 청소년이었을 때도 그랬지만, 지금의 청소년들도 시에서는 자신과의 공감대를 찾을 수 없다. 그렇기에 시라 하면 교과서에 실린 걸 읽는 것이 전부고, 가슴이 아닌 머리로 아는 시들만 즐비한 것이다. 오히려 요즘 청소년들은 음악의 가사에서 자신들의 공감대를 찾고 있다. 세태 비판적인 가사가 많은 힙합이라든지,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가사가 많은 가요든지.
청소년들이 느끼는 감정들을 담은 시집이 많아진다면, 머지않아 청소년들에게 시를 읽으라고 강요하지 않아도 직접 찾아서 읽는 날이 오게 될 것이다. 과중한 학업에 대한 부담감이나, 친구들과의 미묘한 감정다툼이나, 부모님들과 벌이는 실랑이 같은 청소년들의 공감대가 살아있는 청소년시집이 더 많이 나온다면 말이다.
동시집을 읽으면서 순수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면, 청소년시집을 읽으면서 방황했던 청소년 시절을 떠올릴 수 있었다. 모든 게 불안하고, 모든 게 불확실했던 그때, 이미 모든 걸 겪고 어른이 되어 버린 지금은 웃으며 떠올릴 수 있는 그때를. 그렇기에 어른인 내가 읽기에 청소년시집은 조금 가볍게 느껴졌다. 하지만 청소년들이 읽는다면 깔깔거리며 맞장구를 칠지도 모르겠다.
- 연필과 지우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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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위한, 어른을 위한 시집을 많이 접해보았지만, 청소년을 위한 시집은 처음이다. 청소년들이 갈 수 있는 곳이 한정되어지고, 청소년들이 할 수 있는 일도 한정적인 것처럼 청소년을 위한 문학도 왠지 한정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렇게 청소년을 위한 시집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고보니 청소년들을 위로할 수 있는 또 다른 수단이 생긴 같아서 청소년도 아닌 내가 괜한 위안을 받는다. 앞으로 내 아이가 이 시집을 통해서 마음을 다독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샛노란 표지색깔이 눈에 끌린다. 보통 노란색은 ’주의’를 요하는 색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명도를 강조할 때 다른 색상보다 눈에 잘 띄어 주로 사용되기도 한다. 왠지 이런 의미의 노란색이 청소년 시기를 대변하고 있는 색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청소년 시기는 인생을 설계하는 첫 출발선에 있지만, 가장 호기심이 왕성한 시기이고, 그들을 유혹하는 수많은 장애물이 있어 주의가 필요한 시기이며, 일생에 있어서 가장 아름답게 꽃피우는 시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노란색은 왠지 그들과 잘 어울린다. ![]() 1부 한 대 치고 싶다 2부 그럴 때도 있지 3부 이 정도는 웃어 주세요 4부 지금 우리는 불만이 느껴지는 ’한 대 치고 싶다’와 주변의 관심과 사랑을 요구하는 ’이 정도는 웃어 주세요’ 에서 그들의 마음이 담뿍 담겨진 소제목이 눈길을 끈다. 한 편 한 편 읽어가면서 지금 그들이 느끼고 있는 마음, 고민, 우정 등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 했다. 짧은 글 속에서 그 어떤 성장 소설 못지않는 그들만의 세계가 그려진다. 청소년들이 살아가는 하루의 일상이 시로 표현되면서, 그들에게 큰 공감대가 형성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쁘고 달콤한 시어로 미화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일상의 언어로 표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감성이 그대로 녹아들어있다는 점이 놀라웠고, 이런 일상의 언어가 그들에게 더 와닿을 거 같다는 생각을 하니 ’시’라는 것이 어려운 단어, 예쁜 단어가 아니여도 충분히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구나~하는 새로운 진리를 얻게 된 듯하다. 천 냥 하우스 모양이 달라도 쓰임새가 달라도 모두 다 천 원이란다 일괄 처리된 이쑤시대, 면봉, 칫솔, 컵, 바구니... 바둑부 동완이 운동부 훈이 음악부 화주 그리고 문예부 나 모두 수학 심화반에 넣어졌다. (본문 22p) 스스로 원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 재능을 키워내는 것이 아니라, 좀더 높은 수학 점수, 영어 점수를 받기 위해 똑같은 교육을 받아야하고, 개개인이 잘하는 재능이 아니라 점수만으로 평가를 하는 요즘 교육 현실로 인해 힘겨워하는 아이들의 마음이 이 시 속에 담겨져 있는 듯 하다. 질문 수학 공식 말고 영어 단어 말고 때론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들에 대해 물어보고 싶어요 인생은 소중한 거니까요 (본문 65p) 이 정도는 웃어 주세요 오른쪽 실내화는 분홍색 왼쪽 실내화는 초록색 치마 속에는 쫄바지 손톱엔 화이트 머리는 엉거주춤 똥 머리 커다란 책가방 그게 뭐냐고 단정치 못하다고 하진 마세요 나를 가꾸고 싶은 마음은 나쁜 게 아니잖아요 학생으로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나만의 패션이니까요 그냥 봐 주시면 안 되나요? 귀엽고 발랄하고 당당한 학생으로 말이에요 (본문 73p) 관심과 사랑은 그들에게 힘이 된다. 무엇을 지적하고, 다그치기보다는 그들에게 힘이 되는 한마디가 절실할 때인 듯 하다. 지금 그들은은 실수를 통해서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알아가는 때이다. 실수를 해도 괜찮다. 충분히 괜찮다고 위로 받을 수 있으며, 스스로 다독일 수 있는 시기이다. 무언가를 결정해야하는 때가 아니라, 결정하기 위해서 도전을 할 때이기 때문이리라. <<그래도 괜찮아>>는 스스로를 다독일 수 있도록 마음의 위로를 받는 시집이다. 자신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시 속의 아이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시 속의 아이들에게 위로를 받으며 용기를 얻을 수 있는 바로 청소년! 그들을 위한 시집이다. 지치고 힘든 그들의 어깨에 이 시들은 어깨를 다독여주는 위안을 받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괜찮다..괜찮다...그래도 괜찮다.. (사진출처: ’그래도 괜찮아’ 본문에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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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그러니까 2010년에 우연히 청소년들이 쓴 수필, 소설을 읽고 그들을 위한 시집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도 이야기했듯이 처음 청소년 전용(?) 시집이 나왔을 때 '이거다' 싶었다. 물론 내가 그런 시를 쓰겠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러한 시집이 있다는 것이 신선했으며 나아가 그에 대해 전혀 관심 갖지 않았다는 사실에 당황했다. 어린이시는 당연하게 여기면서 왜 청소년시는 생각하지 못했을까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썼던 어느 글에서 그러한 마음을 이야기했는데 이 작가도 나와 똑같은 생각을 했었나 보다.
그 후로 청소년을 위한 시집이나 청소년들이 읽기 쉽게 해석한 시집이 가끔 눈에 띈다. 내가 그닥 시를 좋아하지 않고 어려워하는 이유를 곰곰 생각해보니 학창시절에 지나치게 분해하는 방식으로 시를 접해서가 아닐까 싶다. 온전히 내가 느끼는 시가 아니라 누군가가 분해한 방식을 그대로 전달받았을 뿐이었다. 심지어는 그들이 느끼는 방식까지 강요받았다. 시조차 문학이 아닌 지식으로 접근했던 지난 날을 돌이켜보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으니 순수하게 문학으로 접근하는 시를 읽자고 다짐하지만 그게 또 쉽지 않다.
그러나 어쨌든 이제 청소년들을 위한 시집이 차츰 나오기 시작하니 나중에는 나보다 시를 많이 접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한 위안을 삼으며 이번에는 푸른책들에서 나온 청소년 시집을 보았다. 헌데 나도 모르게 창비에서 나온 시집과 견주어 읽게 된다. 그러면서 출판사마다 뭐라 꼬집어 말할 수 없는 분위기가 있음을 느낀다. 내가 느낀 바로 이 출판사는 일반적으로 서정적이고 긍정적인 메시지가 많은 편이다. 그래서인지 처음 만났던 청소년 시집은 청소년들의 어두운 면과 감추고 싶은 면을 과감히 드러낸 반면 이 시집은 그들의 힘든 상황에 천착하고 있어서 동정적인 시선을 갖게 만든다. 대신 시대를 꼬집는 날카로운 쾌감은 느끼기 힘들었다. 그렇지만 청소년들의 문제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으며 그들의 상황에 공감할 수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충분히 만족하며 읽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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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일이 짜증나고, 재미가 없으며 유치하다는 큰 아이를 보면서 요즘 사춘기가 제대로 온거구나 싶어진다. 아무나 잡고는 소리를 지르고 싶단다. 화를 내고싶단다. 그것을 밖에서는 할 수 없으니 집안에만 들어오면 짜증을 달고산다.
한번 두번 참으며 받아주다가는 결국 나도 폭발하고 동생도 폭발하고 아빠도 폭발한다. 사춘기시절 그러한 마음의 상태가 온다는 사실도 특별히 해소할곳도 없단것을 너무도 잘알면서......
그러다 생각해본다. 어린시절 수시로 드나들었던 연극무대, 체험, 놀이문화까지 요즘 많이 뜸해졌다. 그 모든 매체들이 하나하나 짚어보면 소통을 통해 마음을 풀어야할 청소년기에 가장 필요한것들인데 완전 사각지대가 된듯 텅 비어버렸다. 어른의 세계에도 끼워주지않고 아이들의 세계는 너무도 유치하다.
하물며 시집을 가장 많이 들고 다닐 시기요, 무한 감성에 젖어 언어의 유희속에서 자신의 마음을 달래야하는 시기이건만 그 아이들을 위한 시집 또한 드물었던듯하다. 그래서 청소년시집이라는 타이틀만으로 너무도 반가웠는데 내용을 들여다보노라니 그 아이들의 마음을 너무도 잘 짚어내고 있다.
1부 한 대 치고 싶다 / 2부 그럴 때도 있지 / 3부 이 정도는 웃어 주세요 / 4부 지금 우리는 이란 주제속에 총 64편의 이야기는 아이들의 마음 그 자체였다. ![]()
매일 마주보는 가족들에게서, 항상 등교하던 학교에서 매일매일 마주하던 친구들에게서 가졌던 생각들이 보통의 일상들이 특별한 감각으로 다가왔던날의 감성들이 한편의 시로 만들어진듯했다.
학원 한개 더 다니라는 엄마와 싸웠던 날 아침에 마주한 삐그덕 거리는 의자는 자신과 참 많이도 닮아있었고 체육복 갈이입는 선영이와 눈이 마주쳤을뿐인데 내 얼굴이 빨개진다. 내가 참으로 이상하다. 장난치고 놀려도 가장 많이 웃어주던 단짝친구 상준이가 전학을 갔을뿐인데 내 가슴엔 쓰르라미 한마리가 살게되었다.
그거 시험에 나오나요, 그렇다면 보충은 언제하나요, 시험점수에 반영되나요, 안 가면 안되나요 ?. 요즘 아이들을 그렇게 만든건 어른들, 그런말을 한다고 혼이 나는건 아이들 참으로 어폐가 있는 평가이고 가치척도이다.
64편의 시는 그들이 처한 각박한 현실을 운율감 있는 언어로 표현해 놓았을뿐이었지만 아이들은 그 속에서 위안을 받을수 있을것같다.
반 단체 등산을 했다. 정상을 위해 쉬지않고 올랐다 아무리 노력해도 성적이 늘 중간인 나는 산만큼은 맨 꼭대기에 서고 싶었다. p92 등산중
아이들의 마음속을 들어갔다온듯한 심리묘사로 실제 생활속 현실들이 절묘한 언어로 승화되어 그들의 마음을 너무도 잘 헤아려준다. 갈수록 그 각박한 세상속으로 끌려갈 아이를 바라보는 요즘 그 아이가 고뇌할 시간과 내가 감당해야할 몫이 두려워지는데 이러한 수단들이 슬기롭고 현명한 돌파구가 되어줄듯,문학의 힘은 위대하다라는 진리가 떠오르는 의미있는 시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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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위로하고 있을 누군가에게
아이들을 위한 동시집, 청소년을 위한 청소년시집, 어른들을 위한 시집...처음에는 이렇게 구분짓는다는 것이 조금은 우습기도 했다. 대상을 콕 집어 말해줘야 하는가 하는 의문도 들지만 구분이 가능한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모든 것에 대해서 사람들이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다. 바로 너!!라고 콕 집어 말해주었을 때 한번 되돌아보게 되니 이제는 청소년들에게도 바로 너! 네 이야기라고 말해줄 필요가 있을 듯 하다. 사실 이보다 더 큰 이유는 세상의 중심이 나라고 생각하고 싶어지기 시작한 때에 그들의 마음을 담은 그들의 시가 있음으로 해서 세상과 더욱 가까워질 수 있기 때문이겠지...
처음 청소년시집을 대하고 상당히 신선한 충격을 받았었다. 성인과 아동의 경계에서 혼돈스러운 그들의 마음과 세상을 향해 반항기 가득 어린 시선을 담아낸 책이 결코 낯설지 않았다. 기억이 가물가물하기는 하지만 나 역시 그 시기를 거쳤었기에 조금이나마 마음을 담아낸 책이 나온다는게 여간 기쁘지 않았다.
그리고 두 번째로 만나게 된 청소년 시집은 안오이의 <그래도 괜찮아>였다. 시를 읽기 전에 목차를 살피다가 혼다 키득거리면서 웃었다. 한 대 치고 싶다, 그럴 때도 있지,이 정도는 웃어 주세요, 지금 우리는...총 4부로 구성된 소제목이 마치 그들이 기성세대를 향해 쉼표를 머금어 가면서 말꼬리를 잘라가면서 하고싶어 하는 말을 담아낸 듯해서 말이다.
<한 대 치고 싶다>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 자기표현 못 하는 재영이
자기 잘못 아니라고 사실은 아게 아니라고 분명하게 따지지도 못하는 기정이
볼펜, 지우개,샤프심, 형광펜 다 빌려 주고 제대로 못 받는 심지어 교통카드 빌려 주고 자기는 걸어가는 동진이
돈 잘 쓰며 거들먹거리는 진우 앞에서 살살 기는 세준이는
등짝을 한 대 쳐 주고 싶다
마음은 굴뚝같지만 현실 속에서 아이들은 외면을 택한다. 괜히 나섰다가 따를 당하던가 혹은 찍혀서 학교 생활이 힘들어질테니 말이다. 마음만은 그러려나, 답답하고 못난 놈들 한대 패고 싶다고 말이다...
<이런 선생님이 제일 싫다>
키 큰 선생님이 제일 싫다 뒷자리에 앉아도 구석에 앉아도 교과서로 가려도 꾸벅꾸벅 조는 거 다 들킨다고 투덜대는 동호
돌아다니면 수업하는 선생님이 제일 싫다 또록또록 잘 듣기 위해 집중해서 공부하기 위해 아침도 굶어 가면 앞자리에 앉았는데 아무런 의미가 없어져서 뿔 난 미영이
광 스피드로 진도 나가는 선생님이 제일 싫다 너희들 학원에서 다 배웠지? 한마디 던져 놓고 학원 못 다니는 사람은 어쩌라고 휙휙 페이지 넘긴다며 코 씩씩 푸는 준호
넌 어떤 선생님이 싫으니? 이렇게 아이한테 묻기가 겁난다. 요즘 선생님들과 아이들간의 신뢰는 그리 돈독하지 못하기때문이다. 그러나 딸아이 말로는 무관심한 선생님이 가장 싫단다. 누가 무슨 일로 고민하는지 누가 왜 다투고 우는지 아무런 관심없이 알림장을 쓰라고 하고 성적표를 내미는 선생님 말이다. 나 역시 그런 선생님이 제일 싫은데 중학교 교실에서는 담임과 학생의 유대감이 더 없어진다고 하니 더 걱정이 된다. 공부 한 글자대신 관심 한번 더 보내주면 좋으련만....
<그래도 괜찮아>
..... 벤치에 웅크리고 앉아 내려다보는데 내 신발코가 불안하게 나를 쳐다본다 나는 나도 모르게 주문처럼 말했다 그래도 괜찮아 누구도 어쩌지 못하는 내 자신이 있잖아 그러니까 괜찮아. 괜찮아.... 나는 신발코를 어루만져 주었다 나를 만지듯
세상을 향해 자신의 존재를 소리쳐 알리고 싶을 만큼 자아가 강해져가고 그만큼 혼란스러워지는 시기. 아이들은 반항을 하면서도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어하고 위로받고 싶어한다. 스스로에게 "괜찮아 잘 될거야"라고 말할 수 있는 아이들이 얼마나 될까? 이 시를 읽으면서 눈물이 난다. 스스로에게 잘 될거라로 괜찮다고 말하는 아이에게서 느끼게 되는 쓸쓸함 때문이다. 비슷한 과정을 거쳐 성인이 된 우리는 너무 쉽게 그 시절을 잊어버리는 건 아닌지...청소년을 위한 시집이라고는 하지만 어른들이 읽으면서도 수많은 생각을 하게 될 듯하다. 그래도 괜찮아...라고 스스로 위안을 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누구도 아닌 바로 너니까 괜찮을거야..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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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아이들 대상의 동시나 일반 시인들의 시집을 접하는 기회는 많은데 한창 마음과 몸이 쑥쑥 자라나는 성장기 청소년시집을 볼 기회는 흔치 않다. 그래서 그런지 안오일의 이 청소년시집이 무척이나 반갑게 여겨진다. 노란 표지가 주는 느낌은 질풍노도의 청소년들의 모습을 보여주는것도 같고,,,
시집은 총 4부로 나뉘어져 있는데 한편 한편이 참 재치있고 재미나다. 아무것도 아닌 의자 하나에도 '삐그덕' 소리 하나에 닮은꼴을 찾고 해바라기 꽃 한송이를 보며 답답한 현실을 벗어나고 싶어 하고 친구들 사이에서 유난히 시험점수에 집착하는 친구를 이야기한다.
이 시인은 가끔 누군가의 시를 변주하여 청소년의 모습을 비춰 보여주는데 그 내용들이 하나도 허투르 흘러 들을 수 없는 것들이다. 가끔은 무슨이유에서인지 자신을 떠나간 단짝 친구를 그리워하고 또 가끔은 정말 어떤게 청소년들을 위하는 것인지 생각 좀 해달라고 한다.
민준이
교과서 내용이 아니면 손을 들고 말하는 민준이 -그거 새험에 나오나요?
선생님 아프다고 자율 학습 하라 하면 손을 들고 말하는 민준이 -그럼 보충은 언제 하나요?
책읽고 독후감 써 오라고 하면 손을 들고 말하는 민준이 -시험 점수에 반영되나요?
소풍 날짜 알려 주면 손을 들고 말하는 민준이 -안 가면 안 되나요?
민준이가 어떤 사람이 될지 궁금하다.
오로지 앞만 보고 공부에만 매달리는 아이들을 안쓰러워하며 너무 달리기만 하지 말고 때로는 천천히 걸으며 주변을 돌아보라하고 누가 먼저고 누가 나중이라 할거 없이 결국은 함께 세상속으로 흘러가며 자신이 어떻게 꾸미고 다니든 발랄하고 당당한 학생으로 봐달라고 한다.
멋진놈 못난놈 가지각색의 아이들이지만 모두 모여 한반을 이루고 각자가 가진 꿈들은 모두 달라도 사과가 익듯 익어가고 밤하늘 별들이 총총 빛나듯 야간 자율학습시간 학교도 층층이 별들로 빛나며 어른들의 바램으로 자신의 꿈을 적지 못하지만 그래도 자신의 꿈을 외치며 사각의 탁구대처럼 이기고 지는거 말고 다른건 없냐고 외친다.
나 또한 친구들과 어울리며 꿈을 꾸고 수다를 떨던 그런 때가 있었는데 지금 우리 아이들이라고 다를까? 조금만 아이들을 살짝 곁에 두고 지켜보며 다독거려 주기만 해도 공부라는 틀이 그리 답답하게만 여겨지지는 않을텐데 하는 반성을 한다. '그래, 그래도 괜찮다' 라고 말해줄 수 있는 그런 부모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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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여섯 살의 똘망똘망한 아이가 입은 꾹 다물고 고개는 약간 삐두룸한 채로
운동화 끝을 조금 끌어주는 센스로(?!) 타박타박 걸어가고 있다.
그닥 잘 생긴 얼굴은 아니지만 교복을 입은 폼이며 가방을 걸친 모양새가 제법 유행을 아는 듯 한데 ^^
왜 나는 이 시집에서 눈빛이 새까만 사내 아이를 떠올렸을까?
요즘엔 중학교 아이들이 제일 무섭다고 한다.
아들만 둘인 나는 지금의 이 녀석들이 불과 몇년 후에 그런 섬뜩한 모습으로(?!) 다가올까봐 정말 두렵다.
뉴스에서 나오는, 입에서 입으로 회자되는 이야기가 정말 사실이 아니길 빌면서...
우리네 청소년들의 이야기는 너무 어둡다. 무겁다 못해 땅에 질질 끌릴 지경이다.
그래서 감히 깊이는 엄두도 못 내고 그 앞에서 주저한다.
안오일 시인이 건내는 우리 아이들의 이야기는 어둡지만 초록색이다.
조금 시들하지만 어느 순간 생생하게 살아날 푸른 잎이다.
괴롭히는 친구에게 돌멩이를 던지고 싶은 충동을 저만 보고 고생하는 엄마를 위해 분노를 삭일 줄 아는 아이이고
교복을 다림질 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평생 자식의 길을 펴느라 굵은 주름이 져 있다는 걸 헤아릴 줄도 안다.
술 취해 돼지고기를 사온 아버지가 목 놓아 우는 모습을 보며 그 마음자리를 생각해 보는 깊이까지 지니고 있다.
이사하다가 고무패킹 하나가 사라져 기우뚱해진 의자를 보다가
다리 하나를 위해 세개의 다리에 남아 있는 고무패킹을 과감히 포기할 줄 아는 아이들!
비록 선생님들이 갖가지 모습으로 감시하고 꾸짖어도 버티기 하나는 끝내주는 녀석들!
그래서 앉아 있는 의자만큼 딱딱하고 삐그덕 소리를 내는 모습이 더 마음 아프고 안타깝지만...
다리 하나를 위해
세 개의 다리가 선택한 것은
다 같이 불편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가 되는 과정이었다.
그럴 때가 있다
가끔은,
-의자 다리가 준 말씀 중에서-
종묘사 앞에서 언제나 품어야 할 씨앗은 꿈을 포기하지 않는 자신의 마음이라는 걸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다.
노란 은행 나뭇잎처럼 예쁘게 익어 갈 유경이, 열공 중인 영미, 요리 학원에서 열심히 음식을 만들고 있을 훈이,
공부 안 해도 되는 칩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취침 중이신(?!) 동식이....
세상이 이기고 지는 이분법의 논리 밖에 없는 듯이 느껴지는 아이들 세계에 감히 희망을 말하기가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힘내라고, 그래도 괜찮다고 정말 괜찮다고 소리쳐 말해주고 싶다.
살아갈 날들이 더 많은 아이들이 앞으로 만나게 될 시련과 고비들이 많겠지만
그 때마다 괜찮다고 정말 괜찮다고 말 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든든하고 좋을까!
어제 저녁 야단친 큰 아이에게 미안하다.
방학이라 만푸장 놀고만 있는 아이가 못 마땅해서 그새 잔소리를 했다.
니 인생이야. 내가 대신 살아 줄수가 없다고, 그러니 정신 차리고 네 할일 좀 하라고!
기다리지 못하고 조급증을 내는 어른들의 모양새가 우습고도 서글프다.
너희들만큼 어른들의 세상도 고달프고 힘들어서라고 하면 또 핑계가 되겠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그래,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다.
이렇게 못난 어른이래도 괜찮다고 말해줘서 정말로 고맙다.
아직은 괜찮은 거니까.
괜찮으니까 너도 나도 다시 일어설 수 있겠지?
우린 아직 겨울나무
봄이 되면
자기 만의 꽃을 피울거다
-겨울나무 중에서-
봄이 오고 있으니 흐드러지는 꽃잔치를 기다려 볼일이다.
벌써부터 다디단 꽃내음이 진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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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하는 시 41 아이들은 사랑으로 태어나서 자란다 ― 그래도 괜찮아 안오일 글 푸른책들 펴냄, 2010.11.25. 밤새 아이들 이불깃을 여밉니다. 여름에도 겨울에도 으레 이불을 뻥뻥 차면서 뒹구르르 구르는 아이들이기 때문입니다. 갓난쟁이였을 적에는 기저귀를 가느라 밤잠을 못 이루고, 조금 큰 뒤에는 밤오줌갈이를 하느라 밤잠을 못 이루며, 제법 큰 요즈음은 이불깃 여미느라 밤잠을 못 이룹니다. 작은아이가 열 살은 넘어서야 비로소 밤잠을 느긋하게 누릴 만할까 하고 헤아립니다. 우리 집에 찾아온 아이들은 모두 사랑입니다. 사랑을 받아 태어났고, 사랑을 받으면서 살며, 사랑을 오롯이 돌려주면서 하루를 누립니다. 마음껏 뛰놀고 어지르면서 즐겁습니다. 신나게 달리거나 구르면서 기쁩니다. 배불리 먹고 목청껏 노래하면서 신납니다. 할 수 없는 놀이는 없습니다. 할 수 없는 일은 없습니다. 무엇이든 곱게 생각하면서 차근차근 이룹니다. 자전거놀이를 하든 소꿉놀이를 하든 인형놀이를 하든 평상놀이를 하든 흙놀이를 하든 꽃놀이를 하든,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습니다. 하늘을 바라보고 들을 살핍니다. 나무 열매를 함께 따고 들풀을 함께 뜯습니다. 서로 아끼면서 돕는 삶을 날마다 짓습니다. .. 미술 숙제가 아버지 발 그려오기다 // 술 마시고 곯아떨어진 / 아버지의 발을 그렸다 // 처음으로 아버지의 발을 자세히 봤다 .. (아버지의 발) 아이들은 사랑으로 태어나서 자랍니다. 어른이 된 사람도 누구나 사랑으로 태어나서 자랍니다. 어른이 되었기에 더 안 자라도 되지 않습니다. 어른이 되었으니 회사에 나가 돈만 벌어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을 거쳐서 학교에 다녀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려고 태어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사랑을 받으려고 태어납니다. 아이들은 사랑을 받으면서 삶을 배우려고 태어납니다. 아이를 낳은 어버이가 할 일은 ‘아이한테 사랑으로 삶을 가르치기’입니다. 어버이 누구나 할 일이란 ‘아이를 사랑으로 바라보며 삶을 물려주기’입니다. .. 빈 화분에 / 꽃씨를 심고 물을 주었다 // 아기 손톱 같은 싹이 나왔다 // 예쁘게 웃어 주었다 .. (꽃씨와 나) 대학교에 보내려고 아이를 낳지는 않겠지요? 돈만 버는 기계로 키우려고 아이를 낳지는 않겠지요? 손자나 손녀를 보려고 아이를 낳지는 않겠지요? 아이를 낳는 어버이는 먼저 생각을 해야 합니다. 아이를 낳기 앞서, 아이를 왜 낳으려 하는지 생각을 해야 합니다. 아이를 낳은 뒤 이 아이와 어떻게 살아갈 마음인지 생각을 해야 합니다. 아이를 낳고 나서 이 아이와 함께 ‘어버이 스스로 어떻게 삶을 지어 가꾸겠노라’ 하고 생각을 해야 합니다. 학교가 아이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학교에 아이를 도맡길 수 없습니다. 아이는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물려받고 사랑을 배워야 합니다. 아이는 어버이 곁에서 ‘삶을 이루는 모든 것’을 이어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어버이는 아이 곁에서 ‘삶을 이루는 모든 것’을 차근차근 보여주면서 알려줄 수 있어야 합니다. .. 약속 시간이 많이 남아 / 오랜만에 걸었다 / 차로만 다녀서일까 / 늘 지나던 길이었는데도 / 없다가 생긴 것처럼 낯선 것들이 많았다 .. (걸어야겠다) 오늘날 한국 사회를 살펴보면, 도시에서든 시골에서든 그저 ‘입시 지옥 구렁텅이’입니다. 어느 어버이라 하든 아이를 사랑으로 낳았을 텐데, 정작 아이들한테 삶을 가르치지 않고 ‘입시 지식’만 쑤셔넣으려 합니다. 아이들이 사랑을 배우도록 북돋우지 않고 ‘시험 공부’만 시키려 합니다. 아이들은 ‘수험생’이 되려고 태어났나요? 아이들은 해맑은 나날을 오직 ‘시멘트 교실’에 갇혀 해도 바람도 비와 눈도 맞지 못하면서 교과서와 참고서와 문제집만 들여다보도록 태어났나요? 아이들은 왜 대학교에 가야 하고, 아이들은 왜 교과서 지식에 갇혀야 하나요? 우리 어버이들은 왜 아이들을 끔찍한 시험지옥과 입시지옥에 몰아넣을까요? .. 체육 시간 / 달리기를 하다 넘어졌다 // 깨진 무릎을 감싸는데 / 손 하나가 다가왔다 / 싸우고 이틀 동안 말 안 하던 친구다 .. (손) 안오일 님이 쓴 ‘청소년시’를 그러모은 《그래도 괜찮아》(푸른책들,2010)를 읽습니다. 이 시집에 모인 시들은 거의 모두 ‘입시지옥에서 앓는 아이들을 달래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오롯이 선 한 사람’이 아니라 ‘번호표를 받고 시험지옥에서 허덕이는 소모품’이 되어야 하는 아이들을 다룹니다. 책이름에서도 엿볼 수 있지만, 이 시집은 푸름이를 ‘달래’거나 ‘다독이’려는 뜻으로 태어납니다. 아무래도 한국 사회가 온통 입시지옥이니 이러한 시집이 태어날밖에 없구나 싶습니다. 그러면, 어른들은 무슨 일을 해야 할까 궁금합니다. 입시지옥을 어찌할 길이 없으니, 입시지옥이 끝날 때까지 더 기운을 내서 버티라고 해야 할까요? 입시지옥에서 아이들을 건져내야 하지 않나요? 입시지옥을 따순 햇볕으로 녹여 없애야 하지 않나요? 학교가 입시지옥이 아닌 ‘사랑스러운 배움터’가 되도록 슬기를 모아야 하지 않나요? .. 언젠가는 노란 꽃을 피울 것 같다 .. (순영이) 동시도 청소년시도 어른시도 모두 ‘학교 밖’으로 나올 수 있기를 빕니다. 어떤 시이든 ‘제도권 울타리’가 아닌 삶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이들은 참말 아픕니다. 그러나, 아이들을 아프게 하는 사람은 바로 ‘우리 여느 어버이 모두’입니다. 대통령이 아이들을 아프게 하지 않습니다. 국회의원이나 시장이나 군수나 판사나 의사나 변호사가 검사나 뭐 이런저런 기자나 지식인이나 학자나 교수나 교사나 이런저런 어른들이 아이들을 아프게 하지 않습니다. 아이를 낳아 돌보는 여느 어버이가 아이들을 아프게 합니다. 왜 그럴까요? 여느 어버이 스스로 이 입시지옥에 아이들을 내몰기만 하기 때문입니다. 여느 어버이 스스로 아이들한테 교과서와 참고서와 문제집만 잔뜩 안기기 때문입니다. 여느 어버이 스스로 아이들을 입시지옥에 몰아세운 뒤 ‘삶과 사랑은 아예 안 보여주고 안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시집 《그래도 괜찮아》가 아픈 푸름이를 달래려는 넋은 예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푸름이가 아파서 달래려고만 해서는 시도 문학도 글도 삶도 이야기도 될 수 없습니다. 푸름이가 아픈 뿌리가 무엇인지 읽어서 밝힐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아픈 뿌리를 뽑아서 새로운 씨앗을 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아무쪼록 다음 시집에서는 ‘현상 건드리기’에서 거듭날 수 있기를 빕니다. 겉만 건드린대서 아픈 생채기를 다스릴 수 있지 않습니다.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모르면서 ‘어머니 손은 약손’이라 말한들, 아픈 곳을 다스리지 못합니다. 아이들을 아프게 하는 뿌리를 알아채고, 아이들을 사랑스럽게 보듬는 삶을 마주하면서, 아이와 어른이 함께 배우고 자라는 기쁜 사랑을 노래할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청소년시가 튼튼하게 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4347.11.3.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청소년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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