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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3주 전에 이 리처드 드레이퍼스가 주연한 '사일런트 폴'을 보았다. 그는 젊은 시절, 예컨대 '죠스' 같은 영화에서 보듯 똘똘하고 쿨한, 그러면서도 너드 같은 분위기를 많이 풍기는 역으로 자주 나왔었는데, (내가 그 글에서도 적었지만) 이 작품(작품이라!)을 찍을 때의 그는, 이처럼 지치고 노쇠한 모습이며, 따라서 타이틀 롤인 '홀랜드 선생' 역에 아주 잘 어울리는 모습이다. 이런 게 어룰린다는 사실은 해당 배우에게는 참으로 서글픈 일이겠으나, 드레이퍼스라는 배우의 영리한 점은 바로 그런 역이라 한들 마다않고 척척 맡아, '떨이' 같은 작은 실속이라도 무엇을 챙겨간다는 사실이다. 1994년의 모습('사일런트 폴'에서의)이 저렇게 늙었었으니, 1년이 지난 이 작에서의 풍채라면 새삼 뭐 말할 게 없다. 이 영화는 내가 개봉 후 대략 5년 뒤에 비디오로 본 기억인데, 그때는 드레이퍼스의 '노화'에 대해 그리 이상한 느낌은 안 들었다.
홀랜드씨, 물론 그 지향하는 바에 대한 열정과 순수함은 타인이 합부로 평가할 것은 아니다. 이 영화는 웰메이드 할리웃물이 흔히 그렇듯, 주어진 여건(예를 들어 세팅이나 캐스팅 배우 같은 것)에서 강점은 강점대로 잘 살리고, 취약점은 취약점대로 선용하여, 결말에서는 그야말로 목석의 영혼에서도 눈물의 도가니를 쏟게끔 한 편의 끈끈하고 단단한 드라마를 펼쳐 내고 있다. 다들 아는 것처럼 '오퍼스'는 '작품'이란 의미이며, 이의 복수형이 '오페라'이다(라틴어 명사는 이처럼 뜬금 없는 변칙 곡용이 존재한다). 자유로운 영혼이 단지 안온하고 평안한 가정 하나를 꾸리기 위해 선택한 교사로서의 삶이, 그토록 따분하고 비생산적인 관료제적 압박에 자신을 매몰시킬 줄은 미처 몰랐던 것이다. 누차 말하지만, 교사의 위상은 한국과 미국에서 거의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해도 된다(학교도 학교 나름이지만, 이건 이제 서서히 한국에서도 현실이 되고 있다). 캐릭터로서 홀랜드씨의 가장 훌륭한 장점은, 여튼 제 주어진 처지를 정확히 인식하고 상황에 대처했다는 것이다. 평생 직업 같은 직업을 갖지 못한 채, 늙은 나이에 돈이나 까먹으며 기생충 노릇을 하는 썩은 타성에 젖은 인간이. 늙은 육신에 걸맞게 머리까지 옴팡 굳어버려, 아무도 인정 안 하는 헛소리나 지껄이며 무가치한 인생을 낭비하는 것과는 극과 극의 대조를 이룬다고 하겠다. 이런 인간도 어떤 관계는 이루고 싶어서, 영혼을 이미 먼 나라에 팔아 버린 논다니들에게 푼돈이나 쥐어 주며 내가 작가네 뭐네 하며 애처로운 탬퍼링을 시도한다. 호구짓하며 더 이상 빨아먹을 단물이 없다 싶을 때쯤 년들에게 폐기처분되는데, 당사자인 제놈만 뒤에서 신나게 씹히고 눈물나게 웃겨지는 줄 모르고 있을 뿐이다. 거의 키잡에 가까울 만큼 나이 차이가 나는 아내를 맞이한 홀랜드 씨, 흔한 노총각(혹은 이미 곰팡내 나는 중노년 공인 인증받은 퇴물)이 혼자만의 찌들찌들 착각에서 못 벗어나고 끊임 없는 망상 속에 빠져 자위 중인 것과는 달리, 그는 (언제나 여성에게 강력히 어필하는) 영혼의 순수성과 자기만의 한 방으로 존재를 다졌기에, 비루하고 처량한 싱글로 인생을 꼴아박는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가장 불쌍한 건 뭐냐면, 제깐에는 뭘 꾸미고 신경 쓴다는 게, 눈 밝은 사람 안목에는 평생 백수로 떠돌다 그나마 한량 취급은 받고 싶어 얼쩡거리는 전형적인 호구 스타일이 빤히 드러난다는 걸, 제 혼자만 모르고 열심히 떠벌인다는 바로 그 사실이다. 사실, 홀랜드 씨처럼 그나마 순수하게 제 갈길 가는 자는, 제 꼬락서니가 뭔지나마 안다는 점에서 구제의 가능성이라도 있는데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