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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구나. '책에 미친 바보'를 읽고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다. 책 읽는데 집중이 안되고 읽는 재미도 떨어진다고 입이 댓발 나와서 한동안 불평만 해댔는데, 이덕무가 왜 책에 미친 바보라고 했는지, 충분히 이해가 갔다. 스스로를 경계하고 자신의 생각을 정 립하고 피력한 내용을 보면 그의 진지하고 성실한 독서 태도를 높이 사게 된다. 재미있는 책을 읽으려고 했던 나, 얄팍하게 독서하려 했던 다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추구한 독서의 최종 목적지는 결국 실천에 있었다. 옛사람을 배울 때에는 오직 실천하는 것을 최선의 공부로 삼아야 한다는 다짐이나,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일은 거울을 닦듯이, 먹줄을 곧게 하듯이 해야 한다면서 스스로를 경계하는 태도는, 앎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앎을 수행으로 실천으로 연결하는 선비다운 의연함을 보여주었다. 그렇다고 그가 마냥 곧기만 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가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에는 감성이 풍부하고 다정한 면모를 지닌 인물이었음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특히 누이를 떠나보내면서 지은 글이나, 박제가에게 임금에게 자성문을 올리라고 조심스럽게 권유하는 편지에서는 마음이 찡해져왔다. 형제를 잃은 아픔과 지기 박제가를 걱정하는 마음이 구구절절 와닿았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박제가에게 쓴 편지는 그것이 그가 죽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쓴 편지라서,마치 유서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이덕무는 참된 인간으로, 꾸미지 않는 인간으로 살아가고자 했다. 하늘로 부터 부여받은 순수한 품성을 온전히 지닌 인간이 되고자 했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인격을 수양하고, 그 수양된 인격을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실천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그에게 독서는 인격을 수양하는 방법이었으리라는 것은 당연지사였을 것이다.
박제가에게 보냈던 마지막 편지에서 보자면 이덕무는 죽기 직전, 문체를 지적당하면서 자송문을 정조에게 지어 바쳐야 하는 상황이었다.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을까. 그런 가운데, 그는 감기에 걸려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다정했고, 엄격했고, 순수함을 잃지 않으려는 인간이었다. 그렇기에 평생 책을 통해 자신을 갈고 닦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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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덕무(李德懋, 1741~1793). 나는 그가 좋다. 그의 삶이 마냥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 이유는 그가 결코 화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상의 훼예포폄(毁譽褒貶)에 초연한 채 소박하고 우직하게 그리고 묵묵히 선비의 길을 일생 동안 관철했기 때문이다. 뼈저린 가난과 병마를 벗삼아 오로지 책만 읽었던 젊은 시절이나 39세라는 늦은 나이에 규장관 초대 검서관으로 임명되어 벼슬 생활을 하던 시절이나 한결 같은 인품으로 일관한 고결한 인격자다. 신분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는 법이 없는 진실한 휴머니스트였다. 유학을 숭상하던 조선시대에 선비로 살았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세상에 이름을 알리고 싶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불행하게도 막강한 신분제의 사슬 속에서 많은 위대한 인물들은 신음해야 했다. 이덕무도 예외가 아니었다. 왕족 출신이지만 부친이 서자였기 때문에 그 또한 사회적으로 소외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는 일찌감치 세속적인 출세를 바라지 않고 철저한 독서로 학문을 배우고 자기 수양을 통해 내면을 갈고 닦는 길을 선택했다. 그는 말했다. “남들이 욕을 하여도 변명하지 않았고, 칭찬을 하여도 잘난 척 하지 않았으며, 오직 책 보는 일만을 즐거움으로 삼았기에 춥거나 덥거나 배고프거나 병드는 것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스물한 살이 될 때까지 하루도 선인들의 책을 손에서 놓은 적이 없었다.” ‘책에 미친 바보’라는 소품에 있는 이 글은 이덕무의 삶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 그의 친구들은 박지원, 박제가, 유득공 등이다. 그와 30년 동안 우정을 나눈 연암 박지원은 그자 죽자 “그의 곧고 깨끗한 행실, 분명하고 투철한 지식, 익숙하고 해박한 견문, 그리고 온순하고 단아하고 소탈하고 시원스러운 용모와 말씨는 다시는 볼 수 없어서 그것을 애석하게 생각할 뿐이다. 그 친구가 저 세상으로 떠난 뒤 나는 이리저리 방황하고 울먹이면서 혹시라도 이덕무 같은 사람을 만날 수 없을까 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또 연암의 말에 따르면 이덕무는 평생 2만 권의 책을 읽었으며, 손수 수백 권의 책을 필사했는데 아무리 바빠도 속자(俗子)를 쓴 것이 한 글자도 없었다니 그의 됨됨이를 가늠할 만하다. 이 책은 18세기 새로운 지식인들 사이에서 [아름다운 선비]의 전형이었던 이덕의 삶과 사상의 정수(精髓)를 담은 산문집이다. 사람들이 ‘책에 미친 바보’라고 부르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인 이덕무는 책을 읽은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선비가 한가로이 지내며 이렇다 할 일도 없을 때 책을 읽지 않는다면 무엇을 하겠는가? 책을 읽지 않는다면, 작게는 정신 없이 잠자거나 바둑이나 장기를 두게 되고, 크게는 남을 비방하거나 돈벌이와 여색에 힘쓰게 된다. 아아! 그러니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책을 읽을 수밖에.” 또 평생 동안 숙명처럼 따라다니던 가난과 병마를 안고 살았던 그는 책을 읽는 유익한 점을 네 가지로 들고 있다. 첫째, 배고픔을 깨닫지 못하게 해주는 것이요, 둘째는 추위를 잊게 해주는 것이요, 셋째는 근심걱정과 번뇌를 없애주는 것이요, 넷째는 기침을 그치게 해주는 것이다. 이 책은 박지원이나 홍대용 등 다른 학자들의 그늘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았던 참 선비 이덕무와 만나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책에는 이덕무의 독서광으로서의 면모를 비롯해 문장과 학풍, 벗들과의 만남, 군자와 선비의 도리, 자연 예찬 등 여러 가지 소품들이 실려 있다. 글 쓰기에 있어서도 전문적이거나 어려운 말을 쓰지 않고 평범하고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통해 진솔하고 재미 있고, 그리고 잔잔한 감동이 배어나게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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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씨는 어눌하고 성품은 졸렬하고 게을러 세상 일을 알지못하고 오직 어릴때 부터 책 보는 일만을 즐거움으로 삼아 하루도 책을 손에서 놓았던 적이 없었다고 스스로를 소개하는 사람.
집안 사람들은 전기도 들어 오지 않는 시절,해가는 방향에 따라 빛을 받아가며 책을 읽다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책을 대하게 되면 번번이 기뻐서 웃고는 했기에 누구나 그가 웃는 모습을 보면 기이한 책을 얻은 줄 알았다고 그를 소개 합니다.
주변사람들은 책을 읽다 심오한 뜻을 깨우치기라도 하면 매우 기뻐하며 이리저리 왔다 갔다하기도 하였는데 그 소리가 마치 갈가미귀 우짖는 듯하였고 아무소리 없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뚫어지게 바라 보다가 때로는 꿈꾸는 사람처럼 혼자 중얼거리기도 하였기에 그를 가리켜" 책에 미친 바보" 라 불렀다고 합니다.
그가 바로 조선 후기 실학자이자 문인이었던 이 덕무입니다. 왕족 출신이지만 부친이 서자였으므로 사회적으로 소외 될 수 밖에 없었고 운명처럼 따라 다니던 가난과 병마는 그를 내면적 가치와 행복을 추구하는 내성적 인간으로 만들었습니다. 일생 동안 오직 책을 대하는 일에 전념했는데 평생 읽은 책이 이만권도 넘고 스스로 베껴 둔 책도 수백권에 이른다고 합니다.
미다스 북스의 산문의 향기 시리즈로 나온 [책에 미친 바보]를 읽으며 국사시간에 단순히 조선 후기 실학자의 한 사람으로 알고 있었던 이 덕무의 일생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책머리에 30년지기였던 연암 박지원이 쓴 이 덕무를 회고하는 글을 통해 사후 임금의 특별한 사랑과 은혜로 개인적 경비 500냥을 내려 후세에 그에 대해 알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문집을 만들게 하였고 세상을 떠난 후 다시는 그와 같은 친구를 찾수 없었다는 박지원의 절절한 애도를 통해 이 덕무의 진가를 알고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를 향한 애정과 관심으로 기록된 글들을 통해 우리 조상들이 살았던 그 시절의 상황과 인간 관계, 가족간의 사랑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200년도 더 지난 후손들에게 주어졌음을 알고 숙연한 느낌도 받게 되었습니다.
어떤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 밀려와 사방이 막막할때 살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는 절망의 순간에도 두 눈이 있고, 글자를 알기에 책을 들고 마음을 달랬다고 고백하는 가난한 선비 이 덕무의 향기에 취해 읽는 동안 웃고 울게 만들었던 참으로 감동적인 책 입니다. [인상깊은구절] 한평생을 두고 말하더라도 자신의 마음에 맞는 일을 하며 살기는 매우 힘들다. 좋은 말이 끄는 수레를 타고 끼니마다 진수성찬을 먹는 사람이라도때때로 근심걱정이 있게 마련이다, 일년, 아니 한달에 마음 편한 날이 얼마나 되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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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무는 조선 후기 실학자이자 문인이다. 홍대용, 박지원, 박제가, 유득공 등과 교류했다. 특히, 박지원은 이덕무와 30년 동안 우정을 쌓았다. 박지원에 따르면 이덕무는 늘 남에게 책을 빌려 보았는데 남들 또한 아무리 귀한 책이라도 기꺼이 빌려줄 정도로 이덕무가 책을 좋아하는 것을 모두가 알았다. 그는 벼슬에도 큰 관심이 없었고 재물에도 욕심이 없었다. 실제로 적성현감에 임명되었을 때 녹봉을 털어 청사를 새롭게 수리하기도 했다. 이덕무가 평생 읽은 책은 이만 권이 넘고 베낀 책만도 수백 권에 이른다.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책에 미친 바보(간서치)라고 불렀지만 이 또한 기쁘게 받아들였다. 그는 스스로 '내가 책을 좋아하는 것은 여색을 좋아하는 것과 너무나 비슷하다'라고 말할 정도이다. 또한 스스로 세상 물정에 어둡다고 말한다. "나는 바둑을 둘 줄 모르고, 소설을 볼 줄 모르며, 여색에 대해 말할 줄 모르고, 담배를 피울 줄 모른다. 그렇지만 이 네 가지를 비록 죽을 때까지 잘 하지 못한다 하여도 해가 되는 것은 없다. 만약 자식들을 가르치게 된다면 나는 당연히 먼저 이 네 가지를 하지 않도록 그들을 이끌 것이다." 그의 벗 이형상이 10만 관(10만 관은 10냥이 1관으로 1냥을 5만 원이라고 보면 500억에 해당한다)의 돈이 생기면 어떻게 할지 묻는데 그 답변이 기가 막히게 멋있다. 절반으로 밭을 사고 나머지는 친척 중 가난하고 굶주린 자에게 나눠주고 수만 권의 책을 사서 똑똑하고 배우기 좋아하는 자들에게 빌려준다고 한다. 절반으로 밭을 사는 것은 재물 늘리는 일이 끝나지 않았음을 말한다고 이야기한다. 이덕무는 평생 가난하게 살았지만 이 답변을 보면 돈을 버는 일에 관심이 없었다고 보는 것이 더 맞는 것 같다. 보통 돈이 생기면 어떻게 쓸지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지 어떻게 다시 투자할지에 대해서는 크게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가 평생 먹고 살 만큼 돈이 있다면 다들 펑펑 쓸 생각만 한다. 그는 책을 읽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책을 읽는 이유는 정신을 기쁘게 하는 것이 으뜸이고, 그다음은 받아들이는 것이며, 그다음은 식견을 넓히는 것이다." 이덕무는 시간을 정해 책을 읽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다섯 차례로 나누어 책을 읽었다. 밤에는 자정을 넘기지 않았고 독서하다 글의 맛이 없으면 천천히 산보를 했다. 또한 한 권의 책을 다 보기 전에는 다른 책을 보지 않았다. 공부하는 방법은 일단 충분히 외우고 여러 학설을 참고하여 같은 점과 다른 점을 구별해서 장단점을 비교하며 의심나는 것을 적고 그릇된 것을 버리되 스스로만 옳다고 여기지 말아야 한다고 정리한다. 그는 삶과 문장이 연결된다고 말한다. 그 시작은 바로 효에서 시작한다. 효를 다하면 행실이 갖추어지고 이 행실이 문장이 된다는 것이다. 이 문장은 화평한 기운을 띠며 읽는 사람에게도 선한 마음이 자라게 한다. 그러나 행실이 없는 문장은 아무리 뛰어나고 아름답고 논리정연해도 사람을 감동시킬 수 없다. 결국, 저자의 인격과 품행이 먼저인 것이다. 이덕무가 책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다정한 벗을 나비에 비유하는 다음 글에 그의 그리워하는 마음이 완전히 담겨 있다. "간절히 원하지만 다정한 벗을 오래 머물게 할 수 없는 마음은 꽃가루를 묻힌 나비를 맞는 꽃과 같다. 나비가 오면 너무 늦게 온 듯 여기지만 조금 머무르면 소홀히 대하고, 그러다 날아가 버리면 다시 나비를 그리워하기 때문이다." 마음이 맞는 벗과의 대화는 큰 즐거움이자 기쁨이다. 그러나 그런 친구를 사귀고 만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나는 나의 고민과 걱정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가 얼마나 되는가? 그 친구를 당장 만날 수 있는가? 그런 친구가 있다면 행복한 사람이다. 물론 이덕무는 그런 친구가 없다면 책, 자연과 노닐면 된다고 말하기는 한다. 지금은 중고서점에서 책을 팔 수 있는데 당시에도 책이 귀해서였는지 중고책을 사고팔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덕무는 오랜 굶주림에 <맹자>를 돈 2백 전에 팔았다고 말한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는 유머를 잃지 않는다. "오랜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끝내는 돈 2백 전에 팔아 버렸소. 그 돈으로 밥을 잔뜩 해먹고 희희낙락하며 영재(유득공)에게 달려가 크게 자랑했다오. 그런데 영재도 굶주린 지 이미 오래되었던 터라, 내 말을 듣고는 즉시 <좌씨전>을 팔아서 남은 돈으로 나에게 술을 사주더군. 이는 맹자가 직접 나에게 밥을 지어 먹여주고 좌구명이 손수 나에게 술을 권한 것과 무엇이 다르겠고. 그래서 맹씨와 좌씨를 한없이 칭송했다오." 그는 열두서널 살 때부터 세월의 빠름을 깨달았다. 시간은 붙잡을 수 없고 계속 흘러가며 도저히 막을 수 없다는 사실 말이다. 그래서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일찍이 뜻을 정하여 학문에 힘쓴다. 나는 서른 중반이 되니 겨우 알듯 말듯한데, 일찍이 이 진리를 깨닫는 사람이 시간을 버는 사람이다. 마지막으로 이덕무는 자신을 경계하기 위하 자수잠을 남겼는데 하루를 시작할 때 큰 소리로 읽으며 마음을 다잡는데 좋을 것 같다. "분한 마음 생길까 경계하고 욕심이 생기는 것을 막아라. 허물을 고쳐서 착한 행동으로 실천하라. 이미 잘못을 뉘우쳤으면 함부로 행동하지 말고 이미 욕심을 막았으면 그 마음 변치 말며 이미 나쁜 버릇을 고쳤으면 다시는 하지 말고 이미 착한 행동으로 옮겼다면 변하지 말라. 이것으로 스스로 수양할 수 있을 것이니 죽도록 변치 말고 노력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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