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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8월, 여름 휴가 길에 나는 부안 땅을 밟았던 적이 있다. 처가댁이 전주인 까닭에 이틀 동안을 머물면서, 새만금과 핵 폐기장 문제로 온 나라가 들끓던, 그 중심 진원지를 밟았던 것이다.
그때 당시, 나는 차를 몰고 부안 땅을 둘러보면서 많은 사람들을 보았는데, 그 중에는 직접 만나 대화를 할 수 있었던 사람도 있었다. ''보상금 필요없다 핵폐기장 결사반대''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던 부안 읍 집회 장소 앞에서 만난 한 꼬마 녀석이 그 사람이다.
그때 나는 그 꼬마 녀석에게 사진 한 장을 부탁했는데, 그 꼬마는 사진을 찍어 주기는커녕 내게 비수를 꽂는 듯 거침없는 말을 해댔다. "이곳 집회 장소가 아저씨들 같이 사진 찍으라고 있는 구경거린 줄 아세요."
그리곤 그 녀석은 내게 한 마디 더 쏘아 붙였는데, 나는 지금까지도 그 말을 결코 잊지 못하고 있다. "부안 땅이 핵이나 받아 내야 하는 쓰레기장인 줄 아세요.", "우리들이 크면 누가 이 곳에 남아 살려고 하겠어요."
2004년 3월초, 해가 바뀐 지금, 《새만금, 네가 아프니 나도 아프다》(풀꽃평화연구소 엮음, 돌게배, 2004)를 읽어 나가려니, 지난 해 보고 만났던 사람들과 부안 갯벌의 생명체들이 다시금 내 살갗으로 파고드는 느낌이 여전하다.
이 책은 ''새만금 간척사업을 둘러싼 정치적 배경과 문제''를 비롯해, ''새만금 소동으로 무너진 공동체 문화'', ''생태경제의 눈으로 본 갯벌 가치'', ''역사·문화적 관점에서 본 새만금 문제와 새로운 세계의 전망'', ''새만금, 대안은 없다'' 등의 전반부와 ''우리는 왜 새만금을 살리기 위해 애쓰고 있는가''와 ''삼보일배는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는가'' 등의 후반부로 구성돼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어 나가면서, 1970년대 초에 입안돼 줄곧 정치적 이용에 둘러싸여 왔던 새만금 사업에 관한 그 정치적 역사성이라든지, 경제문제와 생태 문제를 둘러싼 극심한 대립으로부터 취할 수 있게 된 그 진정성, 자본과 남성의 이해에 가려 억압당하고 가치절하 됐던 자연과 여성을 다시금 드높여 준 그 참된 가치성, 그리고 불교·원불교·천주교·기독교 등 우리나라 4대 종교 대표자들의 삼보일배를 통한 그 종교적 연대와 일치성 등, 새만금 사업에 관한 정치·경제·역사·문화·종교에 이르는 전반적인 내용들을 총망라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게 되었다.
"1991년 해창산 앞 갯벌에서 울려 퍼진 발파음으로 시작된 새만금 간척사업은 ''호남 푸대접론''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신군부가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시점에 전라북도 표심을 염두에 두고 ''선물''로 급조했지만, 그 시원은 1970년대 초에 기획된 ''옥서 지구 농업개발 계획''에서 찾을 수 있다."(p.40)
"여성들은 토석을 채취하려는 시공업체 인부들에 맞서 덤프트럭 앞에 들러눕거나 포크레인 위에 올라타기, ......, 여기에는 해창산 농성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마을 여성들도 포함되어 있었다."(p.82)
"새만금 일대는 구릉성 산지에서 점차 강변으로 내려와 촌락을 만들고 농사를 지은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농업세계의 관점에서, 그리고 김재평야·만경평야 등 후대에 만들어진 간척지를 중심으로 한 농업세계의 관점에서 바라 볼 수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당제(堂祭), 수성당 등이 말해 주듯이...... ."(p.157)
"사실상 네 분 성직자의 삼보일배는 종교적인 동시에 정치적인 행위이다. 그러나 그 정치적 행위는 종교적인 것과 통합되어 있는 것이고, 좁은 의미의 정치가 아니라 인간의 권리 표현이며, 다른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움직이고자 하는 넓은 의미의 ''인류학적' 정치 행위이다."(p.173)
그런데 내가 이 책을 읽어 나가면서 중요하게 느낀 것은 정치나 경제, 역사와 문화보다도 ''자연 그 자체''에 있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곧 바다와 갯벌, 그 자연 생태계에 대한 ''내버려둠''이었다. 물막이 외에 방조제 공사 73%가 진행된 마당에서 ''바다도시''나 ''생태공원'' 등을 생각하여 나름대로의 대안을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그래도 저자들은 한결같이 그저 내버려두길 원하고 있을 뿐이었다.
"새만금 갯벌은 ...... 대규모 자연재해를 흡수하는 보험, 그것이 바로 만경강과 동진강을 따라 육상 퇴적물이 쌓여 가는 갯벌과 주변 환경이다."(p.117)
"''새만금, 대안은 없다''는 이 글의 제목은 다분히 상징적인 표현이지만 필자는 실제로도 대안이 없다고 생각한다. 필자의 대안적 견해를 표명하라고 한다면 좀머 씨의 표현을 빌리고 싶다. ''바다와 갯벌을 제발 좀 내버려둬!''"(p.211)
"이미 이 나라 곳곳에 난 개발의 허상이 눈앞의 현실로 증명된 이상 더는 이 땅을 참혹하게 죽여서라도 배부르게 살겠다는 맹목적인 성장에로의 질주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p.227)
그렇게 내버려두도록 요구하고 있는 이 책의 진정한 이유는 그것이 자연 생태계를 위한 일일 뿐 만 아니라, 더 나아가 인간과 인간 후손을 향한 지속 가능한 혜택의 보장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법원은 ''미래세대에게 소송제기의 자격이 있음''을 확인해 주었다. 우리 사회에서 갯벌을 비롯한 각종 생태계와 관련한 정책은 현세대가 보는 가치만을 고려할 것이 아니라 미래세대가 갖는 가치를 중시해야 한다는 것이다."(p.106)
그처럼 갯벌과 같은 자연 생태계의 보존이란, 결국 미래세대를 향한 지속적인 보험과도 같은 것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내가 책을 덮어도, 지난 해 내게 비수를 꽂은 듯한 그 꼬마 녀석의 말이 아직도 내 귀에 쟁쟁한 것이리라. "우리들이 크면 누가 이 곳에 남아 살려고 하겠어요." [인상깊은구절] 법원은 ''미래세대에게 소송제기의 자격이 있음''을 확인해 주었다. 우리 사회에서 갯벌을 비롯한 각종 생태계와 관련한 정책은 현세대가 보는 가치만을 고려할 것이 아니라 미래세대가 갖는 가치를 중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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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49~50 노무현대통령의 말바꾸기 군부정권 진보정권 보수정권 왜 이다지도 다 똑같은걸까
네덜란드를 비롯한 앞선 많은 국가들이 한때 국토확장을 위해 매립했던 땅을 갯벌로 되돌려주고, 완공직
전의 제방을 개방하고 있다. -참고서적 '물의 자연사' 얇은 책이니 부담없이...
신문지상에서 문규현신부를 너무 안좋게 평해 나름 안좋게보았는데 이글을 통해 다시 보게 되었다.
리뷰는 그분의 글로 대신할까한다. 너무 쓸 것도 많지만
산,숲,농토,하천,강, 갯벌,,바다, 섬을 잇는 풍요한 생태계와 그 속에서 자라온 다양한 문화들 덕분에 일찍
이 생거부안이라 불린 곳이 이 땅입니다.
부안만이 아닙니다. 김제,익산,군산,정읍,고창 등등 전북의 온 지역이 모두 민중이 자연의 품에 적응해 살
아온 곳들입니다. 그러나 자연과 문화는 평화롭게 살고자 하는 민주으이 염원에만 부응하는 존재는 아니
었습니다. 고난과 저항 속에 우리의 자연과 문화가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는 만석보를 쌓고자 학정을 했던
고부 군수 조병갑에 저항하여 동학 농민들이 일어났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 ㅐㄷ문에 전북은 상생과 제
폭과 구민을 외친 깨달음과 역사적 소명의 고장이 되었습니다. 소작농을 울리던 간척지의 일인,한인 지주
들에 저항하던 시대가 있었고, 최근까지도 농민들은 그 잔재와 싸워야 했습니다. 이제는 샘나금 간척 때
문에 국가가 위기에 몰리고 민생이 위기에 몰리게 될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농토를 얻고자 하는 간절한 농민의 꿈 때문이 아니라 위정자의 정치적 계산과 지역 발전에 대한 낡은 생
각, 그리고 바다와 갯벌 역시 또 다른 국토와 자원임을 꺠닫지 못하는 '땅에 대한 맹신' 때문에 새만금 간
척의 어리석음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그 틈바구니 속에서 어민이 울부짖고, 인간 중심주의의 몽매함 때문
에 갯벌의 생명이 속절없이 사라져갑니다. 오늘 이 시대는 잘못된 것을 스스로 바로잡지 못하고 국민과
미래의 후손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길 정부에 저항하고, 그릇된 발전의 환상에 젖어 스스로의 문
화를 혁신하지 못하는 우리 스스로를 참회해야 하는 때입니다. 비폭력 저항과 생명세상에 대한 염원으로
잘못을 척결하고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야 하는 때입니다.
"방조제를 터서 갯벌을 복원하여 생명을 살리고 하구역 갯벌로 그대로 두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다."
이 땅을 참혹하게 죽여서라도 배부르게 살겠다는 맹목적인 성장에로의 질주는 안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