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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장 14년에 걸쳐 십만팔천리의 여정을 시작할 팀이 이제 갖춰졌다. 삼장법사는
용이 변한 백마를 타고 손오공은 앞장서서 길을 인도하고 저팔계와 사오정은 짐을 들고 뒤를 따른다. 서우하주
땅에서 보살들의 시험을 통과한 일행은 만수산 오장관에 도착했다. 관음보살도 한 수 접어준다는 도가의
대가 진원대선이 살고 있는 이곳에는 인삼과라 불리는 기이한 보배 초환단이 있는 곳이다. 손오공은 저팔계의
식탐에 넘어가 인삼과를 몰래 따서 아우들과 나눠먹는다. 오장관의 동자들이 인삼과가 없어진 것을 알고
난리를 치자 손오공은 아예 인삼과 나무를 뿌리채 뽑아 버리고 관을 떠난다. 진원대선이 돌아와 이것을
알고 삼장법사 일행을 잡아와 채찍질을 한다. 결국 손오공은 삼장법사와 아우들을 포로로 남겨두고 인삼과
나무를 살릴 방도를 찾아 떠난다. 도가의 신선들을 모두 찾아가보지만 모두들 방법이 없다고 고개를 젓는다. 결국 손오공은 또다시 보타암에 있는 관음보살을 찾고 관음보살은 감로수로 인삼과 나무를 되살린다. 사고를 치는 것도 손오공이지만 그 사고를 수습하는 것도 손오공이다. 그래서 [서유기]하면 우리는 손오공을 먼저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손오공에게 위기가 찾아온다. 백호령을 넘을 즈음 나타난 요괴를 손오공은 한 눈에 알아보지만, 다른 사람들은 알지를 못한다. 요괴가 처녀로 변해서 접근하는 것을
손오공이 때려죽이지만 요괴는 시체만 남겨놓고 빠져나간다. 삼장법사가 죄 없는 사람을 죽였다고 난리를
치는 것은 안 봐도 뻔한 일, 요괴는 다시 노파모습으로 나타나 맞아 죽고, 그 다음엔 할아버지로 변신해 나타나지만 손오공은 이번엔 제대로 요괴를 죽인다.
죄 없는 사람을 연이어 셋이나 죽였다고 길길이 꾸짖는 삼장법사에게 저팔계가 살며시 이간질을 한다. 이에
혹한 삼장법사, 용서를 비는 손오공을 매몰차게 쫓아낸다. 아무리
빌어도 소용없자 손오공은 이내 발걸음을 옮긴다. 자신이 태어나고, 원숭이
왕 노릇을 하던 화과산 수렴동으로..
그렇게 손오공이 빠지고 난 삼장법사 일행은 저팔계가 앞장서고, 사오정이 짐을 들고 뒤를 따르면서 백호령을 넘어 숲에서 잠시 쉬어 가기로 한다. 저팔계는 손오공 대신 먹을 것을 구하러 가지만 쉽게 구해질 리가 없다. 지친
저팔계는 숲에서 잠이 들고, 기다리던 삼장법사는 사오정에게 저팔계를 찾아보라 한다. 헌데, 저팔계를 찾아 나선 사오정마저 오지 않자 삼장법사는 직접
제자들을 찾아 나서다. 얼마 후, 멀리서 빛나는 금빛 불탑을
발견하고 그리로 다가간다. 그곳은 완자산 파월동으로 황포요괴가 살고 있는 곳, 삼장법사는 스스로 먹이가 된 것이나 다름없다. 한편 저팔계를 만난
사오정은 스승이 있는 곳으로 오지만 스승이 있을 리가 없다. 그들도 금빛 불탑을 발견하고 이내 스승이
잡혔음을 알게 된다. 그들은 황포요괴와 싸우지만 이길 수가 없다. 여기서
일어난 반전 하나. 오래 전 요괴에게 잡혀와 살고 있던 보상국공주 백화수는 자신의 편지를 부모에게 전해달라며
삼장법사를 풀어준다. 보상국에선 삼장법사에게 공주를 구해달라고 하고,
결국 저팔계와 사오정이 나서지만 도리어 저팔계는 도망치고 사오정이 잡히고 만다. 요괴는
변장하여 보상국으로 가 삼장법사가 공주를 납치한 요괴라 하고, 요괴의 주문에 의해 호랑이로 변한 삼장법사는
꼼짝없이 옥에 갇힌다. 백마는 저팔계가 돌아오자 손오공을 데려오라고 설득한다. 할 수 없이 손오공을 데리러 간 저팔계는 삼장법사가 형님을 그리워한다고 아무리 꼬셔도 손오공은 가지 않겠다고
한다. [서유기]가 계속 이어지기 위해서는 손오공이 못이기는
척 저팔계를 따라가서 삼장법사를 구해야 한다. 과연 저팔계는 손오공을 어떻게 꼬셔서 데려가게 될까?
삼장법사가 황포요괴에게 잡히기 전, 저팔계가 먹을 것을 구하러 가지만 구하지를 못하자 혼자 지껄인 말이 있다. '집안일을 해봐야 땔나무 값, 쌀값을 알고, 자식을 키워봐야 부모의 은혜를 깨닫는다.(當家緣知柴米價 養子方曉父娘恩, 당가연지시미가 양자방효부양은)'가 그것이다. [서유기]를 읽다 보면 이처럼 유가의 경전에서나 나올법한 이야기들이 자주 나온다. 이는 저자가 살았던 명대 말기의 사회상과 관련이 있지 않나 싶다. 유가는 한무제 이후 국학이 되어 이미 백성들의 생활 속에 깊이 스며들어 있었고, 황제는 도교에 현혹되어 수탈을 일삼기에 백성들은 불교에서 말하는 석가의 삼장三藏이 자신들을 구원해 주리라 믿었는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서유기] 전체에 흐르는 것은 불교의 깨달음이지만 도교의 신선이나 유학의 경전들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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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권 읽고 리뷰를 쓰는 것이 아니라 여러 권을 읽고 나서 리뷰를 쓰다 보니 전편과 이번편의 이야기에 혼돈이 있다. 2편의 리뷰로 5인조 밴드가 다 구성되었다고 했는데 마지막 멤버인 사오정은 3편의 첫대목에서 서역 길에 동참한다. 유사하에서 길이 막힌 삼장법사 일행은 관음보살의 제자 목차의 도움으로 사오정을 제자로 거둔다. 이로써 5인조 밴드가 완벽하게 구성된다. 미리 삼장법사를 도와 서역으로 떠나기로 예정이 되어있는 사오정이었지만 성미 급한 손오공이 그런 말을 하지 않아 의사소통의 문제로 그들 사이에 다툼이 있었다. 그건 저팔계를 제자로 받아들일 때도 마찬가지였다. 손오공의 급한 성격은 쉽게 해결할 일도 어렵게 만든다. 세 보살이 아리따운 여성으로 변신하여 이들 일행을 시험한다. 식욕과 색욕이 강한 저팔계는 이 시험에 빠져 개망신을 당한다. 진원대선이 있는 오장관에 머물렀던 일행은 손오공이 인삼과를 훔치고, 인삼과 나무를 뿌리째 뽑아버려 진원대선에게 모두 갇히게 된다. 하지만 관음보살의 도움으로 인삼과 나무를 살리고 다시 취경 길에 오른다. 변신한 백골요괴의 속임수에 빠진 삼장법사는 손오공을 쫒아낸다. 76까지 둔갑술과 근두운을 타는 재주에 천상의 신선이나 지하의 신선까지도 벌벌 떨게 만드는 막강한 능력을 지닌 멋진 원숭이 왕 손오공, 거기에 천상의 장군이었던 저팔계와 사오정, 용마와 삼장법사로 구성된 일행은 그런 능력에도 불구하고 어려움에 봉착할 때 마다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자꾸 외부에 손길을 내민다. 왜 이들은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자신의 힘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자꾸 외부의 힘을 빌리는 것일까. 거의 대부분의 어려움을 이들을 취경 길에 오르게 했던 관음보살의 도움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의문이다. 이처럼 엄청난 능력을 지녔음에도 요괴하나 처리하지 못하고 자꾸 외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을 말함일까? 5인조 밴드에서 가장 능력이 뛰어난 이는 손오공이다. 헌데 삼장법사는 손오공을 좋아하지 않는다. 손오공이 너무 잘나서일까. 순간의 감정에 충실하고 단순하기만 한 저팔계와 짝짜꿍이 되어 손오공을 미워한다. 손오공은 그게 아니꼽다. 그래서 손오공과 저팔계는 서로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다. 변장한 요괴를 손오공은 알아보고 그를 죽이지만, 여자로 변한 요괴에 눈이 현혹된 저팔계와 삼장은 끝내 손오공을 내쫒는다. 이때만큼 저팔계와 삼장법사가 의기투합한 적이 없다. 이처럼 5인조 밴드는 각양각색이다. 단합이 전혀 안 되는 오합지졸의 표상이다. 각각의 개성이 너무 강해서일까. 뜻이 맞아도 그들에게 부여된 임무를 완수하기 어려울 건데 서로들 뜻이 안 맞아도 너무 안 맞는다. 이렇게 이질적인 조합으로 구성된 밴드. 그것도 그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 또한 앞으로 읽어가면서 밝혀야 될 하나의 의문이다. 세 보살의 시험에 빠져 혼쭐이 난 저팔계. 자신의 세 딸과 결혼하면 많은 재물을 물려줄 테니 구법여행을 그만두고 편하게 살자는 유혹에 저팔계만이 넘어가 속옷 바람에 나무에 거꾸로 매달리는 개망신을 당한다. 저팔계가 누구인가? 은하수를 관장하던 천봉원수였던 그는 반도대회 때 술에 취해 월궁 항아에게 요즘말로 하면 성추행을 하다 곤장 이백 대를 맞고 지상으로 쫓겨났다. 오행 상으로 따지면 그는 은하수를 관장했기 때문에 수(水)의 기운을 타고 났다. 수는 목(木)을 낳는다. 그래서 저팔계를 목모(木母)라고도 부른다. 수기가 넘치면 신장의 정이 넘쳐 성욕조절이 어렵다. 그러니 여자만 보면 욕정이 꿈틀거려 제어가 안 된다. 언제든지 유혹당할 준비가 되어있다. 저팔계가 돼지의 형상으로 태어났기에 망정이지 만약 정상적인 인간의 형상으로 태어났다면 그의 업보에서 벗어나기 힘들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가 돼지의 테를 빌어, 돼지의 형상으로 태어난 것도 우연이 아니라, 그의 욕망을 다스리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 아니었을까. 거기에 돼지의 테를 빌어 태어난 그는 식욕이 넘친다. 밥통이 크고 창자가 일직선인데다 짧아 언제나 배가 고프다. 식욕과 성욕, 그건 사주 명리학의 육친(六親)중 식상(食傷)에 해당되는 것이다. 식욕과 성욕은 쌍두마차이다. 서로가 서로의 욕망을 부추겨 상승효과를 가져온다. 그러니 두 가지를 다가진 저팔계는 제어가 안 된다. 그러니 가는 곳마다 이로 인한 문제를 유발한다. 잘 먹는 사위를 좋아하는 장모의 심정의 근원에는 식욕과 성욕의 상관관계가 있다. 또한 이 두 가지는 인간이 가진 가장 기본적인 욕망이다. 이로 볼 때 저팔계는 중생의 욕망을 대변하는 케릭터이다. 이런 원초적인 중생도 구법여행을 떠날 수 있다면 그 누군들 가지 못하겠는가.
그런데 왜 삼장법사 일행은 네 사람일까? 용마를 제외하고 넷이다. 그것도 그 나름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 손오공은 성은 손(孫)이다. 보리조사가 성을 줄 때 원숭이 손(猻)이라는 글자에서 짐승을 뜻하는 犭변을 빼고 성을 지었다. 즉 손오공은 짐승이 아니다. 수련을 통해 신선이 된 자다. 거기에 천상에서 벼슬을 하지 않았던가. 즉 손오공은 하늘에 사는 모든 것을 대변하는 것을 아닐까. 거기에 저팔계의 성은 저(猪)이다. 즉 犭변이 붙은 글자는 짐승을 상징한다. 하여 저팔계는 짐승이다. 지상에 사는 모든 짐승을 대변하는 것이 저팔계이며, 거기에 인간의 욕망인 식욕과 성역을 대변하는 것 또한 저팔계이다. 사오정은 성은 사(沙)이다. 이는 사오정이 살던 유사하에서 따온 성이다. 그럼 사오정은 물속에 사는 모든 것을 대변하다. 절에서 불음을 전하는 불전사물이 법고, 목어, 운판, 범종이다. 하루가 시작되는 아침과 끝나는 저녁에 모든 중생구제를 위해 절에서는 불전사물을 울린다. 이 중 법고는 축생을 비롯한 땅위에 사는 모든 중생을 위해, 목어는 물속에 사는 모든 중생을 위해, 운판은 공중을 날아다니는 중생과 허공을 떠도는 영혼을 위해, 범종은 우주의 모든 중생의 영혼과 지옥에 빠진 중생들까지도 구제한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그렇다면 손오공은 운판을, 저팔계는 법고를, 사오정은 목어를, 삼장법사는 범종을 상징한다면 무리한 추측일까. 이는 이들의 취경 길이 단순한 여정이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와 영혼이 일심하여 그 길에 동행한다는 것과 자신들의 해탈과 업장소멸만을 위한 길이 아니라 모든 중생 구제를 위한 여정임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기 위한 수단은 아니었을까. 그들의 서역길이 중생 구제를 위한 대승불전을 구하기 위한 것이라면 그들만을 위한 여정이 아니라 모든 중생들이 함께 하는 여정임을 의미하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다. 서유기 완역본을 읽으면서 문득 생각나는 것이 바로 영화 “반지의 제왕” 이었다. 많이 닮았다. 반지의 제왕은 절대반지를 없애기 위해 길을 나섰지만, 서유기는 대승불전을 얻기 위해 길을 나섰다. 엘프 족과 난쟁이 족, 거기에 인간계가 등장하고, 사우론에 대항하기 위한 신들이 반지원정대에 도움을 주는 내용이 뭔가 유사하다. 반지원정대가 원정길에서 닥치는 어려움도 그렇고, 그럴 때마다 신들이 나타나 그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도 그렇고, 닮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설마 톨킨이 서유기에서 그 모티브를 얻은 것은 아니겠지.^^ 완역본을 읽어가며 드는 또 하나의 의문이 있다. 대승불전이 목적이라면 간단히 가져올 방법이 있다. 바로 손오공이 근두운을 타고 날아가서 가져오면 된다. 그런데 왜 그러지 않았을까. 그들의 대화 한 구절을 보자. “형님 뇌음사까지는 얼마나 멀어요?”(사오정) “십만 팔천 리야. 아직 십분의 일도 못 왔어”(손오공) “형님 몇 년이나 걸어야 도착할 수 있을까요?”(저팔계) “이 길은 두 동생들이라면 열흘 정도면 갈 수 있지. 나라면 하루에 쉰 번 가는 것도 어렵지 않아. 해 떨어지기도 전에 말이야. 사부님이 라면.......아휴! 생각도 말아야지.”(손오공) “오공아, 언제쯤이면 도착할 수 있겠냐?”(삼장법사) “사부님이 어릴 때부터 노인네가 될 때까지, 아니 늙은 다음 다시 어려지고, 그게 수천 번 된다 해도 거기 도착하긴 어려워요. 다만 사부님께서 지성으로 깨달으시고 한 마음으로 돌아보신다면, 그곳이 바로 영취산일 겁니다.”(손오공) (115쪽) 그렇다. 한없이 멀고 아득한 길이지만 한 마음으로 돌아보면 갈수 있는 곳이다. 그러니 이 여정의 진짜 목적은 불경을 얻는 데 있지 않다. 바로 마음을 다스리는 여정이다. 자신의 속도와 자신의 여정으로 자신이 겪어야 할 모든 고난을 겪으며 마음을 갈고 닦아야 도달할 수 있는 길이다. 손오공이 한 순간에 다녀올 수 있는 거리를 이들이 꾸역꾸역 몸으로 체득하며 이 길을 가는 이유이다. 삼장법사는 이 길을 위해 9번의 윤회와 거기에 한 번의 삶을 더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많은 이들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비롯하여 많은 길을 걷는다. 목적은 그 길에 있지 않다. 어쩌면 길을 걷는다는 것은 자신의 몸으로 체득한다는 것이고, 고통과 어려움을 통해 스스로의 성찰을 이뤄간다는 것이다. 그 길을 걸음으로 내면의 자신을 내다보고, 그러한 성찰을 통해 온전한 자신을 알아가는 것이다. ‘연금술사’로 유명한 파올로 코엘료도 산티아고를 걸음으로 거듭나지 않았던가. 순례길을 걷는다는 것은 거듭나기 위한 단련의 과정이다. 모든 것으로 부족한 5인조 밴드이지만 그들이 서역길 십만 팔천리를 걷는 것은 바로 거기에 있다. 그들은 순례의 길을 걷는 것이다. 온몸으로 느끼고 부대껴야 얻을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깨달음이다. 그래서 모든 철학은 걸음에서 나온다고 하지 않던가. 또한 쉽게 얻는 것은 그 귀함을 모른다고 했다. “하지만 사부님은 낯선 여러 나라를 몸소 다녀야만 고해(苦海)를 초탈할 수 있지. 그래서 한 발자국씩 힘들게 가시는 거야. 너와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사부님을 보호해서 몸과 생명을 위태롭지 않게 하는 것일 뿐, 이런 고통을 대신할 수도, 경을 대신 가져다드릴 수도 없어. 설사 우리가 앞질러 가 부처님을 뵌다 해도 우리에게 경을 내주려 하지 않으실 걸? ‘쉽게 얻은 것은 소홀히 여기게 된다‘若將容易得 便作等閑看 (약장용이득 편작등한간)는 말이 이런 걸 두고 하는 얘긴 게야.”(손오공)(68쪽) 왜 근두운에 삼장법사를 태우고 한 걸음에 서역에 가지 않느냐는 저팔계의 물음에 대한 손오공의 대답이다. 손오공은 이미 이 여정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깨닫고 있다. 자신의 행보의 의미가 무엇인지, 자신들의 역할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그 길을 간다. 그에게 있어 고난은 당연히 치러야할 과정이고, 겪어내야 할 업보이다. 자신에게 닥칠 고난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이의 발걸음은 그렇지 않은 다른 제자들과는 다르다. 언제나 손오공은 자신에게 닥친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는다. 도망가지도 않는다. 적극적으로 앞에 나서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스스로의 힘으로 안 되면 누구에게라도 손을 내민다. 고난을 고난으로 보지 않는 삶. 그건 고행이 아니라 통과의례일 뿐이다. 자신의 해탈과 성찰을 위해 당연한 듯 받아들인다. 그런 이에게 고난은 고난이 아니다. 단지 수행의 한 과정이다. 삶에 있어 닥치는 어려움도 그걸 대하는 우리의 자세에 따라 똑같은 고난도 그 모습을 달리한다. 그걸 고난으로 보느냐. 아니냐에 따라 삶은 고해일수도 있고, 축복일수도 있다. 一切有心造(일체 유심조) 세상사 모든 것이 다 마음먹기에 달린 것 아닌가. 책을 읽을 때는 보이지 않고, 생각지 않았던 것들이 리뷰를 쓸 때는 생각의 파편들이 마구 떠오른다. 완역본을 읽는 이유와 리뷰를 써야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책을 읽을 때는 활자를 쫒기에 바빠 생각의 여력이 없다가 리뷰를 써나가다 보면 생각을 정리할 때 감춰진 것들이 보이고, 없던 의문들이 고개를 쳐들어 생각의 깊이를 더하게 한다. 이것이 책을 읽은 시간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들이면서 리뷰를 쓰게 되는 참 묘미가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