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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녘의 책은 항상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 같다. 내용도 물론 색다를 뿐 아니라 색다른 시도를 통하여 소설의 새로움을 보여주는 듯 하다. 덕분에 편한 소설을 좋아하는 내게 많은 장르의 소설을 선물 인것 같다. 이번의 책도 그러한 들녘의 뜻에 어긋나지 않은 듯 하다.
처음 책을 보면 한 남자가 있다. 그 남자의 눈은 앞에 있는 것을 선명하게 볼 수 없다. 그저 흐릿한 윤곽만으로 사물을 판단할 뿐이다. 그 남자는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와 함께 살고 있다. 도시가 아닌 섬이지만 호텔이라는 사람을 끄는 것이 존재해 가끔은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도 하는 곳이다. 그러한 곳에 어떠한 사건이 일어난다. 그 사건은 자살인듯하면서도 이 눈먼 남자와 연결되어진 듯 한 묘한 사건이다.
같은 글들이 반복적으로 쓰여져 있다. 오타가 아닐까 잘못 인쇄되어진것은 아닐까란 생각을 하지만 끝과 연결해서 보면 어쩌면 같은 부분을 반복적으로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연결하는 것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어떠한 생각을 할때 이야기 연결이 되지 않다 싶을 때 그 부분을 지우고 다시 앞의 이야기를 한번 더 생각해서 연결하는 뭐 그런 류의 글이라고 생각되어진다.
생각을 너무 많이 하면 가끔은 현실과 생각자체가 혼동되어진다. 가상과 현실 사이의 세상에서 마구 섞이는 내머리는 어찌 감당해야 할지.. 주인공의 머리가 복잡하듯이 읽는 내머리도 복잡해졌다. 가상의 세계에선 장님에다 원하는 여자친구와 함께 살고 있다. 세상돌아가는 것에선 완전 발을 빼고 자연과 더불어 사랑하나로 살고 있다. 어찌보면 순진하고 순수할 수도 있어 보인다. 현실에선 딸도 있고 와이프도 있다. 일도 잘 이루어지고 있다. 간혹 사업이 곡선을 이룰때도 있지만 그럭저럭 잘 살아내고 있다. 와이프 몰래 필요한 것을 얻기도 한다. 약간은 삶을 즐기는 듯 하면서도 어느 한 부분으로는 삶을 한발 뒤에서 사는 듯 한 느낌이 든다. 가상과 현실을 왔다갔다 하다보니 아이를 데리러 가야할 현실을 잊어버린다. 덕분에 아이에게 사고가 일어나고 생각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기도 하다.
그렇게 주인공은 가상과 현실을 왔다갔다 하는 삶을 살고 있다. 글이 끝나갈 무렵엔 그 모두가 자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가상에선 물론 현실에서도 결코 세상의 중심이 되지 못하는 어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듯 하다.
주인공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는 가끔 현실을 벗어나고 싶어한다. 내가 책임지지 못한 일이 생기거나 현실이 너무 가난해서 정신적으로라도 부유하고 싶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주목받고 싶을때 나자신을 놓아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간혹 그 순간만은 편할 때가 있다. 하지만 자기자신이 주체가 되지 않는 삶은 삶이 아닌 것 이다. 자신이 주체가 되고 좀더 삶에 적극적이어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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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만난 이 독일 작가. 추리소설이라지만, 추리소설 같지 않다. 한 편의 시처럼 수많은 의미를 축약하고, 때론 자동기술법으로 쓴 것처럼 시간과 공간을 뒤섞는 그의 화법은 안개 속에 싸인 듯 모호하면서도 뭔지 모르게 '설명하진 못하겠지만 알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처음 읽었던 '차가운 달'이 그랬던 것처럼 이 소설 역시 조용하고, 과묵하고, 내면의 소리와 환상으로 채워져 있다. 하지만, 그 자체의 미스터리성이 강한 것은 소설의 주인공이 '전에 난, 누구였을까?'라는 질문을 품고 있는 이라는 것에서 이야기가 시작되기 때문일 것이다. 시력도 없이 자신과 함께 있는 '마라'라는 여인의 말로 세상을 인지하는 한 남자. 도대체 왜 그렇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뒤로 한 채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기억들 속에 추락사고를 당해 걷지 못하게 된 어린 시절 친구, 파란 버스를 타고 떠났던 여행과 한 여자아이, 아홉 가지의 과제를 해결하며 여행을 떠나는 작은 사자의 우화가 계속해서 엮어들며 거대한 태피스트리 앞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아직은 정확한 그림을 알 수 없는, 그러나 더 바라보고 있으면 알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을 주며... 우리는, 이 눈먼 남자처럼 작가의 말 하나하나에 우리의 세상을 기댄다.
죽음과 사랑과 상실, 이 삶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눈먼 바보가 되어버린 이 남자는 어쩌면 우리 자신의 모습 아닐까? 스스로를 받아들이기 힘들어 눈을 감아버리고, 타인의 목소리에서 답을 찾고 그것을 수긍하는 것이 오히려 편한...
미스터리는 미스터리로 남았다. 답을 찾을 수 없는, 그러나 그것 자체가 답인 '삶'이라는 미스터리. 어떤 답에 안주하는 순간, 나는 죽은 것이리라.
<기억에 남는 한마디> "우리가 하는 모든 말들이 우리에게 이미 일어났던 모든 일들을 조금씩 덜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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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뫼비우스의 띠처럼 뒤섞인 꿈과 현실의 세계'라.... <어둠에 갇힌 날>, 이 소설 이상하다. 이상하다기 보다는 독특하다고 해야 할까, 묘하다고 해야 할까. 시력을 잃었다는 주인공 '나'가 연인 '마라'와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장면으로 시작하는가 싶더니, 금새 과거 친구들과의 여행의 기억, 아내와 딸과 함께 보내는 일상, 복수의 매춘부들과의 시간, 숲속을 헤매는 사자의 이야기 등으로 이리저리 옮겨 다닌다. 반복되는 장면 속에서 나의 기억은 수시로 뒤바뀌어 있다. 그리고 마라와 '나'가 머무르던 섬에 불꽃놀이가 벌어지던 날 밤, 절벽에서 한 남자가 떨어져 죽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런데 남자의 주머니에서 나온 지갑 속에서 '나'가 찍혀 있는 사진이 발견된다. '나'는 이 남자를 전혀 본 기억이 없다. 그런 생면부지의 사람을 살해할 이유가 있을 리도 없다. 그렇지만, 경찰과 '마라'는 그 순간 떠오른 한줄기 의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모양새다. 이 해프닝 조차도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반복되면서 이상한 형태로 일그러져 버린다. 이상하게 뒤죽박죽인 '나'의 기억들은 매번 조금씩 형태가 달라진다. 그리고 '나'가 등장하는 장면 사이사이에 삽입되는 뜬금없는 '사자'의 여행. 이것은 또 무엇인가? 도대체 갈피를 잡을수가 없는데, 어리둥절한 가운데에도 궁금증은 계속해서 증폭되어만 간다. 중간에 단서라도 하나 나와주면 좋으련만 그런것도 없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꿈인지 부연설명은 기대할 수 없고, '나'의 입을 통해서 집요하게 반복되는 이야기들은 시종일관 꿈속을 걷는 것처럼 몽환적이기만 하다. 꿈, 기억 과정에서의 의식의 흐름이란 이런 것일까? 읽는 동안에는 이 소설의 결말이 어떤 형태일지 전혀 짐작도 가지 않지만, 의외로 그 결말은 다소 진부한, 그렇지만 진부하기 때문에 이 어리둥절한 과정들을 모두 설명해 준다. 이책의 저자인 '얀 코스틴 바그너'는 감성과 내면의 세계를 생생하게 그려내는 작가로 잘 알려진 모양이다. 이것이 생생한 '내면의 세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좀처럼 비슷한 작가를 떠올리기 힘든 개성이 확연한 작가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일장춘몽'이라 했던가. 좋은 것도 다 한때고 어차피 인생은 허무한 것이다. 요즘 같아서는 다 때려치우고 차라리 소설 속 '나'처럼 꿈속을 정처없이 헤매고 다니는 게 속 편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