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는 쇼팽을 무척 좋아하나 보다. 아직 듣지는 못했지만 첫 번째 앨범의 반도 쇼팽이라고 알고 있는데, 두 번째 앨범은 몽땅 쇼팽이다. 그래서 제목이 Chopin Recital 이겠지만. 나는 클래식을 잘 모른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러했듯이 어린 시절 그저 피아노를 조금 배웠기 때문에 다른 악기보다 피아노가 더 친숙하고, 더 편안하다. 대다수에게 익숙한 이 악기를 그는 어떻게 연주를 할것인가. 임동혁의 쇼팽은 무척 차분했다. 소나타는 담백하게, 마주르카는 강렬하기 보다는 부드럽게, 녹턴은 유연하게. 화려하리라는 내 예상을 여지없이 깨어버린 그였다. 동시에 내가 이제껏 들었던 연주중에서 가장 부드러운 연주였다. 어떻게 하면 저런 소리를 낼 수 있을까. 미치도록 부러워지게 만드는 연주다. 의무감이 아니라 진심에서 앵콜을 요청하고 싶어지게 만드는 연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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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섹. 언제부턴가 프레데릭 쇼팽을 이렇게 부르게 되었다. 프리섹, 프리섹 부르며 그의 음악을 들으면 건반에서 전달된 현의 울림이 한층 깊어진다. 피아니스트 임동혁의 연주로 익숙해진 탓인지, 그의 섬세한 손가락으로 프리섹을 듣는 것을 좋아한다. 작년 봄 프리섹 탄생 200주년 기념 음악회에서 수줍게 웃음을 짓던 피아니스트를 떠올리며 그의 앨범 ‘쇼팽 리사이틀’을 듣는다. 풀잎에 맺힌 이슬이 한꺼번에 쏟아지며 일순 반짝이듯이, 햇살이 부서지듯이 시작하는 피아노 소나타 3번. 의식의 세계에서 한걸음씩 벗어나게 된다. 순간순간 나를 잊게 만드는 물결은 차가우면서도 부드럽다. 물결이 거세지다 이내 잠잠해지는, 다시금 여울을 만나는 2악장에 이어 흐름을 멈춘 듯 고요히 흐르는 3악장. 적당히 어두워지고 달빛이라도 비춰주면 좋을 것 같다. 수면에 이는 파문은 그대로 내 안에 미치는데, 4악장에 이르면 가까스로 잡고 있던 내 의식은 난파선이 되어 아래로, 아래로 떠내려갈 뿐이다. 어디에 이를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나를 떠밀고 가는 물결이 얌전해지지 않길 바랄 뿐이다. 첫눈에 반하기도 하지만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연정을 품는 상대도 있기 마련이다. 녹턴 2번이나 즉흥환상곡이 전자라면 피아노 소나타 3번은 후자에 해당한다. 반복해서 들을수록 새로운 음이 춤을 춘다. 점점 빠져들밖에. 유태인 피아니스트 스필만과 나치 장교 사이에 흐르는 강을 음악으로 단숨에 넘어버리며 음악이 언어를 초월한다는 것을 깨닫게 한 로만 폴란스키의 영화 <피아니스트> 엔딩크레딧에 흐르던 곡이 이 앨범의 마지막 곡이다. 영화 영향인지 그랜드 폴로네이즈를 듣노라면 언어로 전할 수 없는 심정을 음악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너무’나 ‘매우’를 수없이 붙여야할 대상에겐 언어가 불필요하다. 어쩌면 그런 까닭에 음악이 만들어졌을지도. 프리섹에게도 스필만처럼 너무 미안하다고, 매우 고맙다고 말하고 싶은 이가 있었겠지. 오늘 내게는 프리섹이 그러하다. 한동안 마치 그와 꽤 친근한 사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의 애칭을 부르며 그의 음악을 들을 것 같다. |
| 말로만 들었던 임동혁의 앨범을 처음 샀습니다. 클래식 씨디는 살 때 굉장히 망설여지는데 그 이유는 같은 곡이어도 연주자가 누구냐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죠. 클래식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기 때문에 듣는걸 좋아하면서도 많이 사지 않았던게 사실이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임동혁이라는 이름이 눈에 들어오더라구요. '추천'이라는 마크가 붙은 것도 한 몫 했던거 같습니다. '디리링~'하면서 시작하는 1번 곡은 격정적인 듯 하면서도 우아한 분위기가 났습니다. 마무리가 너무 멋졌어요. 이 앨범 전 곡 중에 가장 맘에 드는 도입부 입니다. 마지막 곡인가요, 제 기억이 맞다면 그 곡은 영화 '피아니스트'에서 영화 끝에 스필만이 오케스트라와 연주했던 곡이었습니다. 처음에 들을 땐 몰랐는데 듣다보니 귀에 많이 익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나중에 임동혁에 대해 찾아보니 나와 동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가 연주한 쇼팽의 곡에는 동갑을 넘어선 성숙함에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또래 아이들이 쉽게 표출하지 못하는 느낌과 생각을 피아노를 통해 분출하는구나... 하고요. 어쩌면 그래서 사람들이 임동혁을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연주를 잘하는 천재라고 말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전 그가 천재라기 보단 남보다 어린 나이에 피아노를 더 잘 친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자켓 뒤에 있는 임동혁의 길고 하얀 손이 그의 성숙함을 말해주는 듯 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