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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꾸물꾸물해서 스산하기까지 하다. 기분도 꿀꿀하다. 분위기를 반전시켜 줄만한 것이 필요해 보인다. 이런 때에는 음악이 제격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들었던 음반, 테이프, CD를 뒤적여 본다. 이게 딱인 것 같다. “사계”(四季, Le quattro stagioni)는 고등학교 때 감상문을 쓰는 첫 음악 과제였다. 그때 선생님한테 좋은 평가를 받은 기억도 있다. 이 곡은 비발디의 가장 유명한 곡이지만 인물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이탈리아에서도 당대에는 그리 알려진 인물이 아니기에 그에 대한 기록도 별로 없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곡은 특히 한국 사람에게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 곡 중의 하나이다. 그것은 계절을 중시하고 계절에 민감한 농경사회의 풍습이 남아 있고, 여전히 계절에 따라서 먹거나 여행하거나 나름대로 해야 할 일들이 의례 바이오리듬처럼 정해져 있기에 계절에 민감하고 계절하면 약방의 감초처럼 떠오르는 것 같다. 더욱이 이 곡의 ‘가을’ 부분은 아침마다 지하철역에서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생각을 안 하고 지나치기가 쉽지 않다. 이름 그대로 네 개의 계절을 노래하므로 크게 4개의 부문으로 나뉘고 각 계절은 3악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중간 중간에 끊어지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악장이 달라진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3이라는 숫자는 아침, 점심, 저녁, 아니 12개의 장은 각각의 달[月]을 연상하게 한다. 3개가 강, 약, 중으로 흘러더닌다. 먼저 눈을 감는다. 그리고 계절이 느껴지는 시골의 어렸을 때를 생각해야 막힘없이 들을 수 있다. 직선과 사각형과 콘크리트가 즐비한 도시를 생각하면 좀처럼 어울리는 풍경을 찾기가 쉽지가 않다. 각 부분에 있어서는 음악에 문외한이기 때문에 어떤 악기를 사용하고 있는지는 전혀 알지 못한다. 단지 귀가에 부딪히고 흘러가는 대로 추측만 할 뿐이다. 눈을 감아도 시각은 연상이 되지만 촉각은 잘 와 닿지 않는다. Ⅰ. Spring 제1. 바로 경쾌한 음악이 빠르게 흘러나온다. 바이올린 같다. 기분이 가볍다. 뭐가 바쁘게 움직이는 것 같다. 결코 웅크리고 있는 모습은 연상되지 않는다. 눈이 녹으면서 그 자리에 새싹이 돋아나는 모습을 수십 배 속으로 돌리면 될 것 같다. 앞마당의 병아리 떼들이 바쁘게 요리조리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 세상 만물이 나에게 뭐라고 하는 것 같다. 각각이 자신의 존재를 나에게 알리려고 잔잔한 숨소리를 내 귀에 불어 넣는다. 나도 빨리 움직이기 위해서 뭔가를 해야 할 것 같다. 금세 1악장이 끝난다. 제2. 갑자기 느려졌다. 한 번의 스타카토로 업을 시켰다가 바로 진정시키는 모양새다. 마치 뭔가 도약을 위한 준비를 하고 숨을 죽이고 있는 것 같다. 나른하게도 다가온다. 춘곤증 말이다. 봄볕이 절정에 이르고 모두 본격적인 한 해를 맞이하기 위해서 두보 전진 위한 한보의 휴식 정도로 보인다. 아니다 겨울 추위가 아직은 살아 있다고 알려주는 것 같기도 하다. 봄처녀 제 오시겠다. 제3. 벌써 봄의 마지막 장에 왔다. 1악장 보다 빠르진 않지만 즐겁게 다가온다. 눈을 감으면 풀피리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논길과 밭길 사이를 가르며 소를 몰고 집으로 가는 길에 살갑게 귀가에 불어오는 봄바람은 상쾌하고 행복하게 만든다. 소의 배도 블록해서 든든해 보인다. 들판에는 못자리에는 모들이 자라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Ⅱ. Summer Ⅲ. Autumn Ⅳ. Winter ***
Ⅴ. 맺는말 바이올린의 향연을 보았다. 곡 하나를 전부 들으니 1년이 한 시간 만에 음의 파노라마처럼 뚝딱 지나가 버린 것 같다. 자고 일어나니 눈썹이 하얘졌다는 고사가 생각나기도 한다. 무겁지도 않으면서 많은 것을 담고 있어서 옛날을 추억하게 해서 좋다. 그런데 그런 시골 경험이 없는 도시인들에게도 그런 감상이 먹히는 것일까? 시골 경험이 없다면 그 자체로서 절대적 배경과 가치를 가지면서 즐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시골 경험이 있어야만 즐길 수 있는 곡이라면 고전으로서의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음악숙제로 시작한 classsical music 듣기는 꾸준히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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