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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이 뭐냐고 물으면 종교학이라고 답한다. 되돌아오는 질문, 그럼 종교는 뭐에요.
하늘 아래 새로운 게 없듯, 땅 위에 고유한 건 없다. 한 종교 전통이 순수할 순 없는 법. 그 중 어떤 한 종교를 절대신념체계로 삼을 순 없다. 현존하는 고전 종교는 모두 다양한 세계관과의 교류로 형성되었다. 신유교는 유교가 불교와 도교와 경쟁하며 성립된 가르침. 불교 역시 브라흐만교라는 전사를 가진다. 당대 자이나교와 경쟁했던 점도 놓치면 안 된다. 기독교는 유대교에, 유대교는 중동에 존재한 다양한 종교, 이를테면 마니교와 같은 종교와 경쟁하며 성립되었다. 대표적인 예로 기독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선/악의 구분은 마니교에서 빌어온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 역사 스튜어트 홀의 '절합'이란 방법으로 접근해야 할 터.
라고 답하기에 앞서 질문자는 떠난다. 그냥 예의상 물어본 건데, 더럽게 길게 말하네.
그래서 말한다. 그냥 없어요. 다만 학부시절에 불교에 관심 많았죠.
사상적 계보를 좇아 가자면.
윤원철 교수님의 수업을 들었고. 거기서 마스타니 후미오가 이야기하는 불교. 에드워즈 콘즈가 이해하는 불교를 공부했다. 아직도 콘즈가 쓴 불교책 만큼 훌륭한 입문서는 보지 못했다. 역시 서구인은 정의하고 분석하는 일에는 탁월한 듯. 한편으론, 유럽-아리안족이니까, 불교도 그쪽 사람들이 더 잘 이해할 만하다.
또. 다. 시
책 이야기는 안 한다고? 이 시점에서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상호텍스트성'을 강조해야겠다. 문/사/철이 깨어진지는 오래다. 모든 것은 텍스트로 수렴한다고 말한 게 데리다였고 바르뜨였으다. 라깡의 자아론을 텍스트 비평으로 끌어온 줄리아 크리스테바. 그녀는 모든 텍스트는 상호텍스트성이 있다고 말한다. 텍스트의 풍성함은 해당 텍스트에서 얼마나 많은 텍스트를 이끌어내느냐에 달렸다.
상호텍스트성은 단순히 각주와 참고문헌을 지칭하는 게 아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좋은 상호텍스트성은 에드워드 사이드의 '문화와 제국주의'다. 하나의 텍스트에서 그는 까뮈와 오스틴, 카플링은 버무린다.
결국 텍스트의 존재 근거는 개인의 지적 일대기를 되새김질하는 데 있다.
별점에서 보듯, 이 책은 에드워드 콘즈가 쓴 책에 비하면 별로다. 그럼에도 굳이 리뷰를 쓰는 이유는 한때 불교에 품었던 연정을 되살려 줬기 때문?
책의 컨셉은 간단하다. 불교의 가르침인 무아론을 대인관계에 접목시키는. 이런 식의 컨셉은 항상 어느 정도 먹힌다. 불교뿐만 아니라 고전종교가 수천 년의 세월을 버틸 수 있었던 데에는 이유가 있다. 꽤 훌륭한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고전 종교의 교리를 현대사회에 접목시켜도 무리가 없다. 종교는 역사를 초월하니까.
저자는 아승만과 아열만을 말한다. 아승만(我勝慢)과 아열만(我劣慢)을 중심으로 설을 푼다. 아승만은 남보다 내가 뛰어나다는 착각. 아열만은 그 반대다. 이 때문에 대인관계는 물론 세상 사는 게 피곤해진다. 일체개고. 다만 저자는 모든 게 괴로운 게 아니라 모든 행에 고통이 있다는 일행개고를 말한다. 일체개고든 일행개고든 사소한 싸움은 여기서 그만.
남보다 뛰어나다, 못하다는 생각이 왜 위험한가? 거짓이기 때문이다. 왜 거짓인가? 자아가 없는데 누가 누굴 비교하는가. 여기서 상호텍스트성을 다시 접목시키자면. 장주가 떠오른다. 장주는 빈 배라는 비유를 사용했다. 배 안에 사람이 가득 찼을 때 배가 사고가 나면 어떻게 되는가. 위험하다. 그렇다면 배 안에 사람이 없을 때에는? 배가 부숴지든 무슨 상관이랴. 여기서 빈 배의 비유는 자아를 비워야 고통에서 초탈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불교의 무아 교리는 많은 사람을 매료시켰고. 반대로 많은 사람을 돌아서게 만들었다. 내가 없다고? 아침에 일어나서 배설하고 출근해서 일하고 점심 먹고 깨지고 어떻게 겨우 퇴근하고 잠드는 나는 누구인가? 여기서 좀 더 깊게 들어가면 불교에서는 나라는 허상을 일으키는 게 오온의 집산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말장난은 시작된다. 오온의 집산을 관장하는 주체는 있잖아.
이거 모니. 책에 관한 이야기는 전혀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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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대인심리학>은 심리학이라는 "관"을 쓰고 있지만 심리학보다는 업, 번뇌, 만과도 같은 불교용어들을 사용하는 대중불교서적이다. 진정한 내 모습과 자유. 연관성이 없어보이지만, 불교라는 매개체(불교의 정신)는 이 둘의 연관성을 강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그런 점에서 불교 자체가 속세의 나를 버리는 것처럼 이 책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주길 바라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자유를 찾는 방법서라고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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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아끼고 자신을 키우는 불교 대인심리학> 이라는 책을 알게 되었다. 나는 예전에 '이기적이다.','심술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성격을 바꿔야 하나? 아니면 마음가짐을 바꿔야 하나? 라는 생각을 크면서 많이 하게 되었다.
지은이는 코이케 류노스케씨로 젊은 스님이다. 일본 도쿄대학교 교양학부를 졸업했으며 웹사이트 '가출공간'이라는 사이트를 개설한 뒤 절과 카페의 기능을 겸비한 'iede cafe'를 열었다.
음....내가 생각했던 지금 까지의 스님과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불교와 대인 그리고 심리학! 이 책을 읽으면 내가 바뀔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어떻게 바뀔지 궁금했다. 귀여운 삽화도 중간에 있어서 재미있게 읽었다. 처음에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를 못했지만..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예가 많이 있다.
지금까지 내가 생각했었던 생각이 다르다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책이였다. 단어 하나하나 이해할수 없을 것 같았지만...이해를 해고 납득하는 나를 발견 할 수 있었다.
이 책을 통해서 완전히 바뀔지는 모르겠지만.. 생각이 바뀌었으니...천천히 ..천천히 바뀌고 싶다!
이 책을 한번읽고 책장에 다시 꽂아 넣지 않고, 잠들기 전에 조금씩 다시 읽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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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불교 이야기라고 하면 왠지 좀 종교적이면서 고리타분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만 하는 것은 아닐까 내심 걱정했었는데, 재미난 그림을 통해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되어 있더라구요. 우선 저자인 코이케 류노스케 스님의 이력부터가 좀 남다르더라구요. 지금 쓰키요미지 주지스님으로 있는데 도쿄대를 졸업했으며 웹사이트를 개설했으며, 절과 카페의 기능을 접목했으며, 문화센터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좌선지도를 하고 있다고 하면 왠지 그동안 우리들이 생각했던 스님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들지 않나요? 산 속에서 수양만하는 스님이 아니라 우리들과 소통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스님이 왠지 정이 가는 것은 왜 일까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사실 살아가다보면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또한 관계를 맺게 되면서 또한 그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오해도 생겨나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로 인해서 물론 행복할 수도 있지만 힘든 일도 생기고 스트레스가 받을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타인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고 했던가요? 타인과의 관계에서 때로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나의 의지와는 다르게 마음이 움직이는 것. 그리고 서로 가까워지면 질수록 서로에게 더 나쁜 모습만 보여주는 것. 이런 것을 스님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기 위해서 타인과 자신을 괴롭히는 것이라고 하더라구요. 그럼 어떻게 이런 마음으로부터 벗어나서 진정한 자아를 찾고 타인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까요? 그동안 우리들은 수많은 심리학 책들을 통해서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노력도 했을거에요. 하지만 이 책에서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을 불교적인 관점에서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어요. 정말 어떻게 하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번뇌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요? 이런 화두를 어떻게 하면 풀 수 있을까요? 그동안 몰랐던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책을 읽고 나서 조용히 명상을 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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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대인심리학
어렸을 적에는 사람들의 시선에 내 결정들이 흔들리곤 했다. 그러다 어른이 되니 그들의 시선에 흔들리는 내가 미워진다. 그들이 말하는 것들에 대해 애써 태연한척하며 그들의 시선이 향하는 곳으로 몸을 돌리지만, 그들의 뜻과는 상관없음을 밝히려 오히려 어색한 몸짓을 하고 있었다.
지금도 나의 삶에 대한 주인이 되기위해, 아니 내가 나의 주인이라고 말하려 어색한 표정과 거부감을 드러낸 고개짓을 하고 있다.
영화나 텔레비전, 책들에 나오는 캐릭터중에 남의 시선은 생각치 않는 괴짜들에게 호감을 갖게 된다. 예전에도 특이한 캐릭터들을 좋아하긴 했지만, 지금처럼 나도 그들이 되겠다고 다짐까지 하는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은 시크한척 하며 애써 다른이들의 시선을 거부하지만 그것은 이성일 뿐이다. 다른이들을 신경쓰고 있는 나를, 이내 감지하고 심한 불쾌감에 그자리를 떠나버린다.
인기를 얻으려는 행동들을 말하고 있다. 쿨한척 하는것도 사람들의 애정을 원하는 바램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책에서 콕~찝어버리는데 아니라고... 덮어버리지만, 그리 오랜 시간 덮을 순 없었다.
요즘들어 인생무상이다!!라고 외치며, 외로움 속으로 나를 내몰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나는 심리학책에 불편한 편견들을 갖고있다. 사람을 꼬득이는 힘이랄까? 애써 나를 설득하려는 책들을 볼라치면 화가 치밀어 던져버리곤 한다.
현재상황이 달라졌다. 나는 지금 혼자 걸으려 많은 것들을 정리하고 차단했다. 책은 크해지겠다는 나의 결심을 향해서도 괜찮다고 토닥거려준다. 그렇다... 내가 이상해지는게 아니다. 다 이것도 인기를 위한..... 인간간의 애정을 확인하는 다른 방법일 뿐이다... 그렇게 이야기 해도 미소지어 줄 것만 같다. 나에겐 이것이면 된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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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자아가 없다...그래야 자극의 노예가 되는 데서 해방될 수 있다... 불교관련 서적은 처음 읽어보는데 요 부분이 어려웠다. 하지만,남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싶다는 욕구때문에, 진짜 나가 받아들여진다기 보다는 받아들여지기 위한 그 노력이 받아들여진다는 그 말에서는 어느정도 공감을 했다. 어느정도 친해져 부부가 된 후, 상대의 모습이 결혼 전과 달라서 갈등을 겪게 되는 그 과정도 이해되었다. 그리고 바람을 피우게 되는 마음과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게 되는
그렇지만, 어찌보면, 자아를 발전시키고 싶다는 인간의 욕구가 이 세상에서 발전하고, 자기보존을 위해 생식을 하게 되는 근원인데, 이 역시 우리 인간에게 장착된 자극장치, 속임장치라고 하는 것이다. 영화 매트릭스가 생각나는 대목. ㅋ 사우나를 하는 것과 무더위에 있는 것, 엄밀히 집중해서 습도와 온도 그 자체 외에 무엇도 느끼지 않는다면, 사우나는 유쾌하고 무더위는 불쾌하달 것도 없다는 것, 즉 마음에 변환장치만 멈춘다면, 좋은 것도 안 좋은 것도 아닌 그저 자극일 뿐이라는 것이다. 성격이란, 과거로부터 쌓인 여러 번뇌의 조합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심신에 발생하고 있는 자극을 순간적으로 간파하여 쾌/불쾌 정보처리를 정지시키고, 이렇게 본인에 대한 집중력과 관찰력을 높여가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에 대해 자비로워질 수 있는 것이다.
자기 마음의 무대 뒤가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는지 파악하고, 그에 더 이상 농락당하지 않게 되면, 타인 어떤 번뇌의 자극에 의해 조종당하는지 알게 된다. 그러다 보면 여유를 갖고 상냥하게 상대를 대할 수 있게 된다는, 이해와 지혜를 기반에 둔 자비로움을 가르쳐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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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과 불교는 인간의 내면을 중시하고 마음을 안정시켜 불안과 집착으로 부터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공통점을 가진다. 그래서 젊은 스님이 <불교 대인 심리학>이라는 책을 펴냈다는 것이 어색하지가 않다. 인간이 번뇌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것은 아마 불교가 다른 종교와 구분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물론 참선을 통해 번뇌에서 해방되고 마음의 평안을 구하는 다른 종교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흔히 세계적으로 많은 신도를 가진 종교 중에는 그렇지 않나 생각된다.
이 책은 불교의 색깔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게으르고 교만함을 나타내는 만(慢)은 욕망이고 충동이었다. '본래의 나'와 '꾸며진 나' 사이에서 방황하다 결국 인간이 빠질 수밖에 없는 탐(貪, 욕망) 진(瞋, 화) 치(癡, 무지, 어리석음)의 삼독. 그리고 여러 가지 유형의 번뇌가 만들어지는 메카니즘을 말한다. 결국 '꾸며진 나'로 인해 역설적이게도 자신의 존재감에 의문을 품게 되고 방황하게 된다는 것.
저자는 책을 통해 해답을 제시한다. 해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스스로에게 솔직해 지고, 긍정적인 사고를 갖고 솔직해 지는 훈련을 통해 내적 성숙을 이루고, '꾸며진 나'를 '자아'라고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을 버리라는 것. 즉 '무아'를 통해 자유를 찾기를 유도한다. 결국 '꾸며진 나'를 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극을 통해 만들어진 허상인 탓이다. 그렇지 못해 '꾸며진 나'에 계속 집착하다 보면 부정적인 사고의 틀을 벗어나지 못해 스스로를 망칠 수 있다는 것이다.
흔히 불교라는 용어가 들어가는 책을 접하다 보면 어려울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게 된다. 그런데 이 책 <불교 대인 심리학>은 그런 선입견을 단번에 해소해 버린다. 중간 중간에 삽입된 귀여운 만화와 삽화가 그렇고, 불교 교리를 설명하는 책이 아닌 자기계발서이기에 더욱 그렇다.
어쩌면 저자가 젊은 스님으로 일반 신도와 소통하려고 좌선을 주재하는 특이한 이력을 가졌기에 더 재미있었나 보다. 그동안 남들과 어울리기 위해 '꾸며진 나'를 앞세워 오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런 꾸밈이 없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는 것이 진정 타인과 소통하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을 하며, 참선이나 명상을 통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찾아 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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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버리기 연습>으로 처음 만난 후, 스님의 사상에 빠져들었었는데, 이 책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마치 나에게 하는 말처럼 마음에 콕콕 박히는 말들이었다. 자칫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종교의 이론에, 거기다 더 복잡할 것만 같은 심리학의 접목. 하지만 책 표지나 군데군데 들어 있는 일러스트처럼 결코 복잡하지 않게 일상의 심리를 집어 낸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까에 가치관이 집중되어 있던 때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환심을 얻으려는 목적으로 나를 환경에 맞추다 보니 종국에는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으며,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것을 싫어하는지 조차 잃어 버렸었다. 나이가 드니, 이건 아니다 싶어 서서히 나를 찾기위한 훈련을 하고 있던 차에 만난 책이 바로 <불교 대인심리학>이다. 많은 심리학 서적, 많은 자기계발서를 읽어 봤지만 딱히 이것이다 느낄만한 책은 드물었던 것 같다. 코이케 류노스케 사상의 가장 강점은 간결하면서 항상 명확하다는 것이다. 단순하면서도 설득력이 충분하고, 정말 그렇구나 무릎을 치게 만드는 논리가 확실하다. 특히 스님의 저서 전반에 나타나는 "만"이라는 개념이 흥미롭다. "만"이란 "나는 가치 있는 생명체다"라고 생각하고 싶어 어쩔 줄 모르는 충동이다. 한 마디로 욕심인 거다.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은폐함하는 것은 인기를 얻으려는 노력이다. 나도 여태까지 그래왔던 것 같다. 내가 인기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들키지 않으면서.. 나는 그런 것에 초연하다고 강변하면서.. 타인에게 나의 본모습을 속이면서 감추어 닫아놓았던 나의 "암흑영역"은 나와 가까이 있는 가족들에게 인정받고 수용되고 싶은 욕구로 분출된다. 열심히 일하는 것에 의식이 향하는 것은 자극이 낮고, 부정적인 것을 의식하는 것은 자극이 훨씬 높아서, 이 자극을 추구하는 마음이 지금 하고 있는 것에서 멀어져 멋대로 부정적 정보를 붙잡는다는 설명은 가치 충격적으로 느껴지는 새로운 자각이었다. 그래서, 평온할 때 조차도 불행한 생각에 몰두하고, 행복한 순간에도 곧 닥쳐올 불행을 두려워 했던가. 즐겁지도 않고 오히려 불쾌하기까지 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현재의 객관적인 나의 사정과 상관없이 마음이 좀 더 큰 자극을 얻기위해서 였던 것이다. 이러한 메카니즘이 이해되니 더이상 불행한 기분을 찾았던 나의 습관을 고칠 수 있으리란 희망이 생겼다. 불행한 생각으로 좀더 강렬한 자극을 얻으려는 습관을 벗어날 수 있게 도와 준 소중한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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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종교적인 색체를 띈 책을 그리 즐겨읽지 않는다. 특별히 종교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이 책을 선물받고 한 동안 책상위에 올려두기만 했었다.
남과 나를 속이는 마음속 두려움을 뛰어넘어 '진정한 나'를 찾는 불도 여행.. 자신과 남에 대한 이해 방법을 사례를 통해 재미있고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는 이 책<불교 대인심리학>은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움직이는 마음은 인간 관계에 있어서 서로의 사이가 가까워질 수록 나쁜 모습만 보여주곤 하는데, 이는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기 위해 타인과 자신을 괴롭히는 것이라고 저자는 얘기한다. 듣고보니 그런것 같다. 다른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이해하려고 하기 보다 내 이야기를 다른사람들에게 알리고 내 생각을 인식 시키려 하는 모습을 더 많이 더 자주 보게되니 말이다.
한 번쯤 깊이 생각 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한다. 대인심리학이라하니 왠지 어렵고 멀게만 느껴 졌었는데 이 책을 읽으며 느낀 생각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라 타인과 잘 융화되어 살아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내 생각을 먼저 얘기하기보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먼저 들어주는 마음을 가진다면 지금보다 훨씬 마음이 평화로워지지 않을까 싶다.
나의 본 모습이 드러나는 게 두려워 늘 바른 모습만 보이려고 이미지를 꾸미다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스트레스가 쌓이게 되고 좋았던 관계가 어긋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자신의 무의식이 외치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 주세요'는 꼭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다. 내 본 모습을 보이고 그 과정에서 바르지 못한 모습은 고치려 노력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지 꾸미고 만들어진 이미지는 끝까지 가기 어려운 것이니 결국 제 본모습이 드러나고 마는 것이다.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아도 혹은 불교신자가 아니라도 누구나 '내 마음이 내마음 같지 않다'고 느낄때가 가끔 있을 것이다. 그럴 때 이책은 마음에 위안이 될 수 있는 그런 책이다. 연말 조용히 자신을 돌아보고 싶은 분들이라면 한 번 쯤 읽어보면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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