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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농민들의 생계가 걸린 시안인 쌀시장이 마침내 개방 되었다. 이에 항의하여 시위를 하던 농민 중 경찰의 강경진압으로 인해 사망에 이른 한 농민의 안타까운 소식을 뉴스에서 접하고 무척 착잡한 심정이었다. 그 사건이 있은 후에도 한참 후에나 발표된 대통령 대국민 사과는 울며 겨자 먹기 식이었다. 시위의 과격성만을 탓하다 결국은 사과를 하긴 했으나, 농민의 현실을 무시하고 외면했던 과오를 씻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긴, 나 역시 태어나서 단 한번도 도시를 벗어나 살아본 적 없는 인생행로 탓에 쌀시장 개방이라는 중대한 국가적 시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사람은 자신의 눈앞에만 닥친 위험문제에 대해서만 고민하는 간사한 동물이므로 나와는 너무 동떨어진 세상의 일이라 치부하며 애써 외면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유목주의는 침략주의다>의 저자 천규석씨의 사회에 던지는 신랄한 비판덕택에 한번쯤 다시 돌이켜 생각하게 되는 계기를 가지게 되었다.
1부「꼴불견 세상」에서 저자는 한 마디로 ‘요지경 세상’의 문제 핵심을 누구보다 신랄하게 평가하여 문제제기를 한다. 저자는 농사만 짓는 늙은이일 뿐이라는 지나친 겸손으로 일관하지만, 조목조목 사회의 문제성을 되짚어 꼬집어내는 타고난 철학자이자 사상가이다. 나 역시 밴만 배 동감했던 의약분업문제, 수돗물 불소화 정책, 그리고 브리지트 바르도가 개고기를 먹는 한국인을 미개인 취급하며 약을 올리는 사건에 대한 명쾌한 비판. 한 나라의 음식문화를 가지고 타민족 국민이 왈가왈부할 자격이 과연 있는 것일까. 정작 프랑스는 세상에 자랑하는 온갖 동물들의 요리로 미식가들의 천국이라는 수식어를 타이틀로 삼아 으스대지 않았던가. 저자의 말대로 약소국의 사람들 굶주림에 구조적으로 한몫을 하고 있는 애완동물 사육도 하지 않고 어떤 고기도 먹지 않는 순수한 채식주의자들만이 개고기식을 비난할 자격이 있는 것이다. 그 밖에 권력화 되어가고 있는 시민운동과 경직화된 학생운동, 권력에 곡학아세하는 사람들, 언론과 이 나라의 썩은 재벌, 비이성적인 미국의 광기에 어쩔 수 없이 일조하는 정부에 대한 고찰이 매우 심오하고 다분히 현실적이라고 생각된다.
2부「유목주의는 침략주의다」에서는 본격적인 유목민에 대한 해박한 설득력을 부여한다. 칭기스칸의 열풍에 휩싸여 몽골족의 유목정신을 미화하면서, 오늘의 초국적 자본의 세계시장제국주의를 합리화하는 데 악용될 소지가 있다고 말한다. 논리적 비약이 심한 제국주의의 양산을 세계시장을 제국주의화하는 데 한 몫 했다는 것이다. 2부에서는 많은 서적과 문헌들의 참조를 통한 형성기의 고대 유목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는데, 마침내 유목주의는 침략주의라는 진단에 도달하게 된다. 일정한 거처를 정하지 않고, 목초지를 찾아 유목하는 그들의 생활이 물론 안정적 일리는 없다. 농경을 하는 자들을 짐승 취급하면서 그들은 목축을 위해 풀을 찾아 수탈을 하고 전쟁을 하게 됨은 일반인들의 논리로도 간단히 정의 내릴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런데 현재 세계의 화두로 떠오르는 문제점은 그런 유목의 정신을 합리화하면서 참략과 멸망이 되풀이 되는 노마드의 개입을 정당화하는데 있다. 저자는 전쟁, 토목사업, 농업 등이 국가 성립의 결과라는 들뢰즈와 기타리의 견해에는 일정부문 동의하면서 그 발명품인 전쟁기계가 국가 발생을 저지했다는 견해에는 반문을 한다. 유목주의가 국가 성립의 저지 요인이기는커녕 반대로 그 발원이었다고도 밝혔다. 그의 결론대로 따르자면 올바른 시장의 보편적인 체제는 복지사회를 표방한 국가주의가 아닌, 자치농경 마을 공동체 회복에 있을 지도 모르겠다. 전 세계가 자신의 권력 안에 있다고 정처 없이 떠도는 유목민보다, 작은 마을 정착민의 농경문제부터 하나씩 되짚어 해결한다면 이 나라의 살림을 살찌우는 방안이 될 것이고, 세계화 세계화 떠들지 않아도 안정된 국가의 자질을 갖추게 될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사람은 습관의 노예라는 말처럼 강제도 익숙해지면 그것이 자유고 평등인 줄 착각한다. 요즘 젊은이들이 튀는 개성과 자율 평등을 좋아한다지만 과연 그런가?? 특히 귀농을 결단하는 젊은이들은 고집 세고, 개성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자립심도 당연히 강해져야 할 것이다. 왕조시대의 정조 임금은 물론이고 민주화시대의 노무현 대통령일지라도 정치권력의 민생 개혁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어느 시대 어느 정권이든 겉으로 표방하는 민생 개혁은 하나의 핑계이고, 사실은 자기 정권의 강화와 지속적 세습 또는 재창출이 권력의 속성이고 궁극의 목표였다. 그러나 거듭 말하지만 정조의 왕권 강화에는 정조 자신이 성인구주가 되어 민생을 구하겠다는 주관적 진정성이 치열했던 것만은 부인할 수 없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개혁정치에는 그러한 진정성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보다는 자기로부터 이반되는 지지자들의 정서를 재결집하기 위한 정치적 표퓰리즘이 오히려 돋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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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년 전에 나온 책이구나. 농사꾼이며 농업주의자이며 생태주의자이며 땅에 뿌리박고 있는 재야의 사상가이구나. 저자는.
1부는 세태를 비판한 칼럼으로 이루어져 있고 2부는 유목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이루어져 있다. 강단철학자가 아닌 농사에 터전을 가지고 있는 분이라 논조가 좀 거칠다. 그렇지만 깊고 해박하며 중심을 가지고 있다.
개고기를 먹는 나라라고 야만이고 안먹는다고 문명은 아니다. 문헌적으로도 오래 전부터 먹어 왔다고 되어 있다고 하니 그럴 것이다. 뭔들 못먹으리. 풀뿌리도 먹고 흙도 먹고 특수한 상황에서는 사람도 먹었으니, 누가 뭘 먹는다고 문제 삼을 건 아니다. 유럽이든 아시아든 아프리카든 뉴기니든 마찬가지다. 호모 에렉투스의 유골에서 칼자국(물론 쇠칼이 아닌 돌칼이겠지)이 나 있는 걸로 봐서 호모사피엔스가 호모에렉투스를 사냥해서 잡아먹은 것이 아니겠느냐 하는 추측도 있다. 그렇다. 인간은. 아주 오랜 조상부터. 그것보다 먹지도 않으면서 죽이는 것은 뭔가? 그것이 더 야만 아닐까? 얗든 개고기를 먹는 것에 대해서 외부에서 왈가왈부 할 문제는 아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있다. 개고기를 먹는 것은 그렇다 치고 안먹는 것은 왜일까? 나는 그것이 항상 궁금하다. 왜 안 먹을까? 금기시 하는 이유가 뭘까? 이슬람에서는 돼지를 안먹고 힌두교에서는 소를 안 먹는 걸로 아는데 거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유럽에서야 애완동물로 개를 기르니까 먹을 수가 없을 게고... 우리는... 옛날부터 내려오는 금기인가 아니면 근대이후에 생긴 금기인가? 오히려 금기가 되려면 개보다 소가 더 유력했어야 했다. 소야말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은가? 농경국가에서 소는 대단히 중요했다. 실제 소에 대한 대우도 각별했다. 사람은 굶어도 소는 굶기지 않을 정도였다. 아침저녁으로 쇠죽을 끓여 먹였다. 새끼를 낳으면 사람과 마찬가지로 솔가지로 금줄을 세이레동안 쳐 놓았었다. 정월에는 나물과 오곡밥으로 따로 상을 차려 먹였다. 에이그, 지금은 소신세가 제일 비참하게 되어 버렸다. 개는... 먹는 집은 즐겨 먹었지만 안 먹는 집은 평생의 금기사항이었다. 왜? 모를 일이다.
김지하에 대한 비판과 유홍준에 대한 비판은 뜻 깊다. 저자는 비판할 자격이 있다. 곡학아세하는 지식인으로 보았다. 유홍준을. 저자의 촛점과는 좀 다르기는 하지만 나도 유감스러운 면이 있기는 하다. 유행에 둔감해서 나는 2000년대 들어 와서 <나.문.유.답.>을 읽었다. 많이 배웠고 재미 있었다. 화려한 말빨과 지적 유희, 지적교만이랄까, 가득했다. 무엇보다 도시적 정서, 혹은 서구적 정서, 혹은 귀족적 정서가 배어 있다는 점. 저자가 얘기하는 '유목주의적' 정서가 묻어 나오고 있었던 건 아닐까?
사실 내가 이 책을 구입한 것은 '2부 유목주의는 침략주의다.' 때문이었다. 2000년대 초반에 유목민(nomad)에 대한 언급들이 활발 했었다. 새로운 천년의 도래와 함께 새로운 사조가 필요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느 정도 퇴조했다. 의미있었던 것은 잃어버린 반쪽의 세계사 '유목제국사'가 일반인들의 의식 속으로 들어 온 것이었다. 하지만 그 의미가 제대로 정리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특히 유목주의가 그렇다. 이쪽 저쪽에 갖다 붙이기는 하는데 말이다. 혹자는 교묘하게 신자유주의의 이론적 겯가지로 갖다 붙인다. 그런데 그것이 신자유주의적 풍조와 제법 잘 맞아 떨어진다. 언제부턴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혹자는 화이사상에 대한 대응으로서 유목사회를 내세운다. 동시에 유목제국사가 우리의 고대사와도 관련이 지어진다. 하지만 분명하게 정리된 것은 없다. 그래서 활발한 논의를 통해 그것들이 정리가 되어야 되지 않나 싶은데...
"유목주의가 국가주의보다 더 파국적인 시장제국주의를 부추기고 조장하는 또 하나의 침략과 파괴주의일 뿐 지속가능한 생태주의와는 결코 양립할 수 없다.... 유목적 역동성... 왠지 이런 유목복고주의에서는 평화가 아니라 피냄새와 칼바람 소리가 느껴진다."고 저자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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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은 다소 수그러 들었지만, 불과 몇년 전만 하더라도 한참 Nomad(노마드:유목민을 뜻하는 라틴어)열풍이 불었었다. 마침 유목국가중 최대로 번성했던 몽골의 칭기즈칸이 미국 워싱턴 포스트지에서 ’세계 인류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업적을 남긴 지도자’로 꼽히기도 하고 지식인들사이에도 유목주의에 대한 많은 글들이 나오기도 하였다.
그래서 nomad는 하나의 트랜드이자 지향점같은 단어가 되었다. 국내 유명 가전제품회사인 S전자의 카피라이트도 Digital Nomad일 정도 였다.
으레 그렇듯 그렇게 유목주의의 광풍도 지나가고, 막연히 유목주의는 좋은 것이고 바람직한 것인가보다는 인상만을 가지고 지내고 있다가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역시 모두 다 Yes를 외치고 있을 때 반대의견들은 소중하고 참고할 만한 가치가 있는 법이다. 물론 터무니 없는 논리나 강짜가 아닐경우에 말이다.
이 책은 저자 천규석씨를 본인을 농사꾼 철학자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농사꾼과 철학자 어색한듯 세련되게 참 재미있는 조합이다. 농사를 짓는 분이라서 그런지 저자는 항상 모든 사유는 농촌에서 시작되고 상대방에 대한 가치평가 또한 농촌에 대해 적대적 발언이나 정책을 말하는 사람에게는 호되게 일갈을 가한다.
책의 구성은 제1부 꼴볼견 세상과 제2부 유목주의는 침략주의다 로 크게 두 개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 첫번째 소제목부터 ’입 닥쳐라, 브리지트 바르도야’ 이다.
또한 스스로 진보주의자라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서슴없이 메스를 들이대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이 책에선 한 쪽에서 칭하는 진보정권(나도 예전에 비해서 약간 보수성이 적다이지 진보정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과 제도정치권에 진출한 자칭 진보주의자들을 허울뿐인 진보주의자들이고 학생운동자들도 철부지가 되어 버리고 만다. 그리고 복지국가주의는 강제적인 수탈을 일삼는 기만적인 국가주의가 되어버린다.
단 이 책에서 하는 주장은 너무나 급진적인 그리고 농촌에만 치우쳐서 편중된 논지가 많다는 것은 흠이다. 그렇지만 반대쪽 논리들이 너무 강하고 이런 성향의 주장이 드물다는 데서 일독할 만하다.
# 인상깊은 귀절 영국의 일간지 [더 타임스]는 2001년 12월 15일자에서 유럽에서도 오래전에 성의(聖醫) 히포크라테서가 강아지를 균형 잡힌 건강식으로 권했으며, 로마인은 쥐를 먹었고, 스페인 사람들은 고양이고기탕을 즐겼는가 하면 스위스인들은 개고기포를 만들어 먹었다는 보도를 했다고 한다. 프랑스인들도 지난 1870년 프러시아 군에 포위됐을 때로부터 한동안은 식용 여부 논란을 거쳐 개고기와 고양이고기의 잡탕까지 만들어 즐겼다고 한다 (페이지 : 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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