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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무서워하는것'이 있습니다..
누가 가르쳐 준것이 아니지만, 어릴적부터 무엇인가를 두려워하는 태초의 감정이지요 저는 높은 곳을 무서워합니다.. 그렇지만, 제가 아는 친구는 '비둘기'를 무서워합니다... 각자 '공포'의 대상이 다르지요..
'죽음의 무도'는 이 시대 최고의 스토리셀러인 '스티븐 킹'이 호러문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저는 공포영화를 좋아합니다...공포영화매니아라서 여름을 기다리지만.. 사실 뛰어난 공포영화는 그다지 많이 보지를 못했습니다 그래도, 여름을 기다리는 이유는, 언젠간 훌륭한 공포영화가 등장하리란 믿음때문이지요
사실 훌륭한 공포영화는 드물어요.. 제가 가장 무섭게 본 공포영화라고 하면 '이블데드'를 뽑습니다. 어릴때 그 충격이란...
남자주인공을 제외한 친구들이 악령으로 변하고 여자친구는 괴물로 변해 자기를 죽이려 하는데 여자친구라서 죽이진 못하고 감금해두는데... 악령으로 변한 여자친구가 노래를 부릅니다 '앙갚음을 할꺼야, 앙갚음을 할꺼야'
얼마나 노래가 소름끼치고 섬뜩하던지..ㅠㅠ
그런데, 공포영화는 후속편이 성공하는 경우가 드물지요 이블데드2 부터는 코미디영화로 변질되고 13일의 금요일과 나이트메어는 2편부터는 정크영화로 불려지게 되지요 할로윈도 2편까진 그나마 좀 괜찮지만 ..그후속작들은..모..
그래도, 가끔 정말 괜찮은 공포영화가 등장하고 그 순간을 위해서, 공포영화 매니아들은 정크영화들을 참아주는거 같아요
그런데 재미있는것은 '공포영화'라고 해도 종류가 많고 사람들마다 취향이 다르다는것이지요..
저는 '귀신'나오는건 좋아하는데 잔인한것은 못봅니다... 그래서 '쏘우'는 1편보다가 치웠고 '데스티네이션'은 1편만 봤습니다...그 후속작들은 잔인만 해져서....
그런데 제가 아는 분은 '귀신'나오는것은 절대 못보는데.. '좀비'영화나 '살인자'나오는 스릴러는 잘 보는...ㅋㅋㅋㅋ
그래서 위에 말한 것처럼... 사람들마다 '공포'의 감정은 존재하지만, 그 대상은 좀 다른거 같습니다.
'죽음의 무도'는 1982년도에 출간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로 1950년에서 1980년도에 발표된 호러문화와 호러소설이 배경이지만..
이 책이 2010년에 재출간되면서 '스티븐 킹'이 서문에 상당한 분량으로 1980년도 이후...영화나 소설들에 대해 이야기하지요
아무래도 '스티븐 킹'은 공포소설작가로 유명하기 때문이지만 이분 '그린마일'이나 '쇼생크 탈출'같은 따뜻하고 환타지 소설같은 작품들도 잘 쓰시는데요 그렇지만, 대표작들이 '샤이닝'이나 '캐리','잇' 같은 공포문학들이라^^
우리가 아는 호러문화들 '좀비','외계인','사이코살인마','괴물','지구종말'등.... 왜 호러매니아들이 호러문화에 열광하는지...'스티븐 킹'이 이야기해줍니다
사실...1980년도엔 제가 살지 않아서인지.. 뒷부분보다..앞부분이 공감가더라구요.. '시체 삼부작'보다는.. 리메이크작인 '새벽의 저주'의 이야기가 더욱 공감가더라구요.. 아무래도...접해보질 못한....옛날 영화들이라...(사실 구할수도 없을듯 한데요)
그리고, '스티븐 킹'이 최초로 공포의 감정을 맛본 1957년의 그날이.. 우리가 생각하든...'귀신','괴물','살인마'같은 무서운 존재가 아닌.. 전혀 생각지도 못한 사건임이 ....재미있었습니다..
사실, 공포보다는 스릴러영화를 좋아하는편인데요.. 그렇다고 남들에게 추천해주고 그러진 못하겠더라구요...왠지 좀.ㅋ.ㅋ 그렇지만, '스티븐 킹'은 이 작품으로 인해 왜 사람들이 호러 문화에 열광하는지.. 나름 우리들 '호러문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변명해주는 책이 아니였나 생각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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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환상/공포 장르의 골수팬은 아니다. 특히 나이를 먹을수록 공포장르에 무관심해지는 경향을 자각하고 있다. 그래도 좋은 공포 영화가 보다 인간적인 사회를 위한 성찰력을 제공한다는 스티븐 킹의 주장에 공감한다. 저자의 말대로 '좋은 공포 이야기'는 상징적인 수준에서 작용하면서, 허구의 사건들이나 초자연적 사건들을 이용해 우리가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도사린 진정한 두려움들을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이야기다.
"우리에게 있어 공포 영화는 안전 밸브다. 공포 영화는 의식이 있는 채로 꾸는 꿈과도 같으며, 평범한 사람이 평범한 인생을 사는 내용의 영화가 피에 물든 악몽으로 뒤틀어질 때면 우리는 자꾸만 쌓여가다 자신을 산산이 폭발시켰을지도 모를 압력을 무사히 배출시킬 수 있다."(13쪽)
스티븐 킹은 공포소설보다도 공포영화의 제작이 더 어렵다는 견해를 표방한다. 성공적인 공포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번개를 병 속에 붙잡아두는 것과도 같아서 가장 재능이 뛰어난 영화인들조차 고작 한두 번 성공하는데 그칠 지경이라고 말이다. 킹은 지난 15년간 자신을 흥분시킨 공포영화를 열거하고 있는데 다행히 내가 본 작품이 상당수다. 가령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의 <황혼에서 새벽까지>, 케빈 윌림엄슨 각복의 <스크림>,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파이>, 리처드 기어의 <모스맨>, <쏘우>, 미치광이 의사의 실험 대상이 되는 퇴역군인을 다룬 <더 재킷>, <판의 미로>, <1408>,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의 <미스트>, <노크> 등이다. 그런데 한국영화 가운데 가장 성공적인 공포영화는 어느 작품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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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무서워하는' 대상은 다르기 마련이지만, 나는 귀신을 무지무지 무서워한다. 그리고 또 무서운 게 있다면 뭔가 잔혹한 장면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 보통 책으로 읽으면 오히려 더 상상력이 극대화되어 잔인한 장면은 더 잔인하게 느껴지고, 무서운 장면은 더 무섭게 느껴진다는데 참 이상하게도 나는 책으로 읽고 있으면 의외로 멀쩡함에도 불구하고 영화에서 직접 피가 튀기거나 사람이 죽어나가거나 하는 장면을 보면 으악~하고 눈을 꾹 감아버리고 마는 것이다.
책은 아무렇지도 않게, 영화는 무서워하면서. 나의 '공포 문화'를 즐기는 방법은 그렇다. 어쨌든 많은 사람들은 무서워하면서도 여전히 공포영화를 찾아나서고, 공포소설을 찾아 읽는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우리는 그렇게 호러 문화에 열광하는 것일까? <캐리>, <샤이닝> 등 공포 문학에 있어서는 가히 최고라 할 수 있는 스티븐 킹이 그에 대한 답을 내놓았다. 무려 30년 전에! 그와 동시에, 2010년판이 새로 출간되면서 우리나라에도 번역이 되어 출간이 되었다.
공포 이야기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중 자물쇠를 채워놓고 지내는 여러 개의 문 뒤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고찰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그런데 인간의 상상력은 잠긴 문에 만족하지 않는다. 저 문 너머 어딘가에 다른 춤 상대가 있다고, 상상력이 야밤에 속삭인다. 썩어 문드러진 무도회 드레스를 입은 춤 상대가 있어, 눈구멍이 뻥 뚫리고 팔꿈치까지 오는 긴 장갑에선 푸른 곰팡이가 피고 얼마 안 남은 머리칼에선 구더기들이 우글거리는 춤 상대가 있단 말이야. 그런 괴생명체를 우리 품 안에 안으란 말인가? 당신은 나에게 묻는다. 누가 그런 미친 짓을 하겠어? 글쎄...? -p.642
스티븐 킹의 이야기에서는 초반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공포 소설을 읽고 공포 소설을 쓰는 것에 대해 사람들은 참 이상한 눈길로 쳐다본다고. 그런 이야기를 쓰는 사람은 과연 제정신인가, 하고 의구심을 갖는다는 것이다. 이게 1983년도 이전의 이야기였기에 이런 시선이 존재했고, 지금은 이보다 더 장르문학에 대한 보편화가 많이 이루어져 그 편견이 많이 누그러지긴 했지만, 여전하기도 여전하다. 자극적인 제목, 연쇄살인범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읽고 있는 누군가를 이상한 눈길로 쳐다본다거나, 그래서 그런 책을 읽는 이는 자신도 모르게 표지와 제목을 가려버리고.
하지만 누구나 호러문화에 대해 무서워하면서도 누구나 무서운 이야기에는 귀를 기울인다. 꼭 잔인한 장면과 마주칠 필요는 없다. 싫어싫어, 하고 귀를 막으면서도 결국은 결말이 궁금해 꼭 끝까지 듣고야 마는, 수학여행에서 옹기종기 모여 나누는 괴담이라도 상관없다. 어쨌든 우리는 그런 '무서운 이야기'를 즐긴다. 그렇지 않은가? 그러면 공포영화를 보러 가고, 무서운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야 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바로 우리의 상상속에 있는 문 뒤편에서 벌어지는 일을 고찰해 본다는 것이다... 그리고 누구나 마음에 품고 있을법한 이야기, 그렇지만 이를 겉으로는 드러내지 못하는 이야기를 '호러 문화'를 대신해 표출해 내는 것이라고.. 상당히 일리가 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이런 것을 이리저리 분석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호러 문화에 입문하려고 하는 이에게 상당히 좋은 안내서가 될 것 같다. 앞서 말했지만 나는 공포영화를 보지 않는다. 호러영화, 공포소설의 매니아는 커녕 팬이라고 하기도 상당히 뻘쭘하다. 당연히 그 전반에 관해 알고 있는 것이 있을리 만무하다. 공포영화 본 것만 해도 나는 고백하건데 <여고괴담> 이후로는 <4인용 식탁>을 <슈렉> 대신 보자는 동생의 회유에 넘어가 어쩔 수 없이 본 이후로 없다. 아, <디 아이> 봤구나. 띄엄띄엄. 그런데 스티븐 킹과 함께 <죽음의 무도>에 참여하고있다보면 듣도보도못한 굉장한 호러영화가 많이 쏟아져나온다. 그럼에도 스티븐 킹 스스로도 대부분이 B급이지 굉장히 뛰어나다고 할 수 있는 영화는 별로 없을 것이고, 소설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이야기한다. 이 영화는 이러이러해서 참으로 무섭고, 이 소설은 이러이러한 점에서 상당히 사람의 마음을 잘 건드리면서 무서움을 극대화한다나 뭐라나. 그에 더불어 함께 지켜보는 수많은 공포영화와 공포 소설들.. 별로 이들을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도 솔깃하면서 한 번쯤 보고 싶은데?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것은 스티븐 킹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솜씨에서도 한 몫한다. 이 모든 것을 진지진지열매를 먹은듯 진지하고 날카롭게 고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비추어 이리저리 유머를 곁들여가며 들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호러 문화를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도 귀가 솔깃하는데, 호러를 좋아하는 이에게는 분명 함께 죽음과 함께하는 왈츠를 즐길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이미 다 알고 있는 이야기잖아!라고 내팽겨칠 가능성도 있겠지만, 그건 난 어느 정도일지 짐작할 수 없으니 그저 생각만 해 볼 뿐..)
굉장한 두께에 읽기에 압박이 있지만, 굳이 다 읽어봐야해! 하고 고민하는 것보다 곁에두고 심심할때 조금씩 펼쳐보면서, '오늘 공포 영화 한 편 볼까?' 싶은 날에 가끔은 안내서로, 어쩌다 보게 된 공포 영화를 보고난 뒤 여운이 가시지 않았을 때 마음을 달래주는 이야기로, 뭐 어쨌든 이리저리 좋은 친구가 되어줄 것 같은 에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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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공포영화에 열광하는가? 극한의 상황으로 몰고가는 잔악 무도한 영화에 돈을 투자 하는가? 환갑이 넘은 저자는 죽는 순간까지 공포를 사랑할꺼라고 말한다. 저자의 말처럼 우리가 미치지 않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데 공포영화가 큰 활력을 준다. 사람마다 개인의 취향이 있을 뿐이고 자신과 다르다고 욕하고 비난할 이유는 없다. 과학과 합리성 같은 것들은 전쟁의 환경 속에서 매우 잘 자란다, 고맙기도 해라. (99쪽) 공포가 우리에게 호소력을 갖는 이유는 그것이 상징적인 방식으로 우리가 말하기 두려워할 만한 것들을 바로 직설적으로 말하고 계속 짖어 대기 때문이다. (102쪽) 미국의 맹인들이 맥도날드 햄버거의 광고 문구를 듣고 사람 차별한다고 느낄지 안 느낄지 나는 늘 궁금했다. "감자 튀김에서 당신의 눈을 떼지 마십시오. " (123쪽) 이 글을 읽으면서 어찌나 웃음이 나던지, 잠들기전 새벽이었기 때문에 누군가 나의 웃음소리를 들었다면 미친것 아닌가 했을 정도였다. 스티븐 킹이 지금까지 재미있는 소설을 쓰지 않았다는 점이 아쉬울 정도였다. 다방면에서 뛰어난 작품들을 많이 남긴 저자의 면모, 특히 공포에 대해서 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기뻤다. 모르는 작품들이 이 책에 등장하기는 하지만 책을 읽어 내려감에 부연적인 설명이 잇따르고 있기에 쉽게 접할 수 있었다. 저자의 거침없이 난도질하는 글솜씨에 감탄하면서 거기에 코믹함까지 있어서 지루하지 않고 650페이지 분량을 편안한 마음으로 읽어 내려갈 수 있었다. 어떤방면에서 아무런 의미없는 공포영화들도 있었지만, 공포영화가 시사해주는 남다른 면모를 살펴볼 수 있었다. 좀비는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테러리스트들이라고 한다. 난 좀비는 미국에서 장례의식 절차로 뇌에 구멍을 뚫어서 넣는 물질때문에 그런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tv드라마 시리즈로 무지 좋아했던 <환상특급>을 비롯해서 영화중에서 인상적으로 보았던 <데스티네이션>등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공포영화를 많이 보지 못하게 되었다. 현대 사회가 삭막해지고 점점 무서해져가는 속도에 따라 공포영화 역시 무섭도록 가속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나 경제나 문화에 경고하거나 암시하는 부분도 많이 있겠지만, 무자비하게 살인하는 행위가 자꾸만 늘어나고 있다. 현대에도 ’묻지마’ 살인때문에 사람들은 수없이 공포에 떨어야 했다. 그런데 공포영화를 통해서 그런 감정을 똑같이 느끼기에는 그 공포는 우리를 정신적으로 병들게 하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다행히도 영화는 영화일뿐이니까 괜찮겠지만 말이다. 어떤 방면에서는 부추기는 면모가 걱정이 되기도 했다. 현대에는 현실과 영화, 드라마나 상상의 일부와 실체를 구분하지 못해서 생기는 사건사고가 많기 때문이다. 저자의 어린시절이야기도 있고, 공포 영화의 전반적인 그리고 사회적인 이야기가 들어있다. 어쩌면 우리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공포영화가 피나도록 긁어주고 있는지 모른다. 다만 이야기가 여러모로 포장이 되고 어떤 영화는 지극히 상업적인 용도로만 포장되어서 나오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중에서 건질만한 영화가 있고 우리를 미치도록 열광케하는 이야기가 있다. 전 애인을 스토킹한다거나, 자신에게 상처되는 말을 한 상사에게 보복을 한다기 보다 한편의 공포영화로 날려버리는것은 매우 좋은 방법이다. 저자의 말대로 건전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다. 자녀를 둔 부모의 시각으로 보았을때는 매우 불건전해 보이겠지만, 어른들의 잣대는 정말 건전한것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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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대개 의도하지 않은 어떤 불미스럽거나 끔찍하게 여겨지는 일들에 대하여 일종의 공포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게 마련이다. 그리고는 현재 자신이 그와 같은 공포의 테두리 안에 자신이 존재 하고 있지 않음에 안도하며 행여 그러한 일이 더 이상 자신에게 인식되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이 언제나 가슴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공포라는 존재물에 대해 제 3자의 간접적인 시각에서 이를 관찰하거나 느껴보려는 호기심 같은 것이 있어서, 특별히 자신에게 문제가 되지 않는 한 이를 즐기고 싶어 하는 욕구의 본질적인 것을 생각해보면 우리의 내면에는 서로 상반되는 묘한 이중성이 서로 대립하여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사람들이 공포를 느끼는 경우 그것은 각자 주관적인 부분이어서 정도에 따라 그 차이가 조금은 상이 할 수는 있지만 대체적으로 공포에 대한 비슷한 공감이랄까 하는 공통점들이 있고, 또한 공포에 대한 그 범위를 생각해보면 그 영역이 워낙 넓은데다가 누구에게나 피해 갈 수 없는 부분이어서, 차라리 이참에 공포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이라면, 이러한 책으로 과연 공포란 것이 무엇이고 공포에 대해 우리가 무얼 얻을 수 있을지 한번 생각해 보고, 이와 반면에 공포를 좋아 하는 독자의 경우 대해 좀 더 깊이 그리고 다양한 공포의 세계를 경험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우리에게는 ‘미저리’ ‘쇼생크 탈출’과 같은 작품으로 익히 알려진 스티븐 킹에 의해 엮어진 이 책은 가히 공포에 대한 모든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공포를 이루는 주요 요소에 관한 이야기에서부터 이를 토대로 대중매체인 영화, 만화, 드라마, 책에 나타난 공포의 내용을 여러 측면에서 분석 해부하여 우리가 공포의 현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 할 것인가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데 주안점을 둔 마치 백과사전과도 같은 책이라 할 수 있겠다. 그는 이 책에서 공포란 단순하게 인간의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것 외에 아무런 가치가 없는 일종의 폄훼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거나 혹은 어떤 면에서 보면 조금은 비정상적으로 여겨질 수도 있는 공포의 다양한 내용을 좋아 하고 이를 즐기는 많은 사람들을 보는데 있어 이상한 시각으로 바라보려 하는 사람들에게, 공포라는 것이 우리가 말하기 두려워하는 어떤 상징적인 것들을 직설적으로 말하여 주고 있고, 그리하여 책이나 영화를 통해 이를 우리가 간접적으로 접하면서 닫혀있는 우리의 상상력의 세계를 무한히 펼쳐가는 하나의 도구일 수도 있으며, 사회가 우리에게 부단히 요구하는 감정들을 운동시킬 기회를 제공하는 유용한 존재라고 말한다. 몰론 그가 주장하는 이야기가 사람에 따라서는 다소 논란거리를 제공하는 측면이 없지 않아 보이기는 하나 그렇다고 그의 말이 완전히 틀렸다고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이 책속에 등장하는 여러 작품을 통해 그가 제기하는 공포에 관한 여러 심층적인 이야기들이 우리가 공포를 긍정적인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무척 좋은 기회를 제공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누구나 공포물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서 한번쯤 읽으면 어떨까 싶고, 더구나 공포물에 대한 작가 스스로의 자전적인 경험들이 함께 담겨있어 독자로서 그가 바라보는 공포의 관점들을 함께 더불어 살펴보는 것도 나름 유익하리라는 생각이다.
공포물에 대한 영화나 책들이 우리나라에도 여름 때가 되면 봇물처럼 터져 나와 독자나 관객들의 시원하고 짜릿한 즐거움을 주는데 한몫을 하며 이는 유행처럼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작가의 말대로 많은 사람들이 그 짧은 한순간의 공포를 보며 때로 극도로 불편한 감정에 휩싸이면서도 이를 위해 상당한 돈을 지불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한편 생각해 보면 참 아이러니하기도 하고, 또한 이를 만족시키기 위해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나 작가들이 펼치는 상상력의 세계가 과연 어디서 비롯되어 우리를 이다지도 흥분 시키는지 더러 궁금해지기도 한다. 1950년대부터 1980년대 까지 미국에서 개봉된 공포와 관련한 영화와 책들에 대한 모든 것이 총망라되어 있고, 지킬박사와 하이드, 드라큘라, 프랑켄슈타인으로 대변되는 공포의 진수를 이 한권에서 모두 맛볼 수 있는 이 책은 공포를 좋아 하는 독자나 이에 입문하고자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분명 더 없이 좋은 책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다만 아쉬운 것은 공포영화나 책에 대한 실질적인 경험이 별로 없는 독자에겐 약간은 건조하게 느껴 질수도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공포에 대한 우리의 호기심과 충분히 해결해줄만한 책이 그 동안 많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리고 작가의 안내에 따라 공포물에 대한 요소요소를 찾아 세밀하게 이 책을 읽어 간다면 그동안 우리가 몰랐던 다양한 공포의 세계를 구경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크지 않을까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