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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정의(Justice)는 모두의 정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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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독서계획의 첫 번째는 ‘문학고전 읽기’다. 그 계기가 된 것이 바로 『레미제라블』이다. 쟝발장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더 친숙한 이 작품은 어린 시절 ‘세계 명작 동화선집’이나 여타 책을 통해 자주 접했다. 내용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한데 몇 년 전에 만나본 영화나 뮤지컬 속에 등장하는 『레미제라블』은 내가 알고 있던 『레미제라블』이 아니었다. 전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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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독서계획의 첫 번째는 문학고전 읽기. 그 계기가 된 것이 바로 레미제라블이다. 쟝발장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더 친숙한 이 작품은 어린 시절 세계 명작 동화선집이나 여타 책을 통해 자주 접했다. 내용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한데 몇 년 전에 만나본 영화나 뮤지컬 속에 등장하는 레미제라블은 내가 알고 있던 레미제라블이 아니었다. 전혀 생각지 못한 이야기였다. 내가 알지 못하는. 그 이후,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던 다른 문학 고전들도 원전을 만나봤을 때 내용은 완전히 달랐다. 원전을 만나보지 않고 요약된 작품이나, 어린이들의 시각에 맞춰 요약되고 각색된 작품들만 만나봤기 때문이다. 그런 작품들을 여기서 일일이 거론할 수는 없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더 큰 생각을 불러왔다. 잘 알려진 문학작품이 이럴진대 살면서 우리가 안다고 생각했던 모든 일들에 대해 그 실상에 접근할 어떤 생각이나 노력도 하지 않고 그저 보여지는 것이 전부인양 서둘러 평가하고 판단했던 모든 것들에 대한 왜곡이 존재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왜곡된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행했던 수많은 오류도 존재할거라는 생각에 미쳤다. 일이건 사람이건 말이다. 그런 오류는 눈에 보여지는 것이 모든 것이라는 잘못된 확신에 의지해서 사물을 판단한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우리가 매일 접하는 사건사고에 대한 기사들도 그 자체가 어떤 한사람의 손끝에서 기술되었을 때 그 자체가 객관적이라고 모두가 인정할만한 법칙의 적용을 받지 않는 한 그 또한 또 다른 의도를 가진 이에 의해서 왜곡된 사실일수 있다. 자신의 주관적 생각을 제거하고 완전히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한 채 기술하는 것은 신의 영역이다. 그런 편견된 오류와 의도된 편집에서 벗어나는 일은 그 속에 담긴 진실에 접근하려는 노력을 가하는 것이다. 그리고 직접 사실에 근거해서 판단하는 것이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문학고전을 읽겠다는 생각은 이런 일상의 판단기준을 바꾸고자 하는 대늦은 시도이다. 안다고 생각하는 오만에서 벗어날 수 있을.

 

  굶주린 조카들을 보다 못해 빵 하나를 훔친 잘못으로 19년의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출감 후 좋은 성직자인 주교를 만나 새 삶을 시작한다는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쟝발장의 이야기다. 그중에서도 어린 시절 모두에게 가장 감동을 준 부분이 은촛대에 얽힌 이야기일 것이다. 책의 첫 장을 열었다. 근데 쟝발장은 등장하지 않는다. 한 주교신부의 청렴한 삶이 지루할 만큼 세세히 묘사되었다. ~ 쟝발장은 언제 나오지?? 지루함을 견디고 페이지를 넘긴다. 100여 페이지가 넘어가고 나서야 쟝발장이 등장한다. 의문이 든다. 레미제라블의 주인공은 쟝발장이 아닌가. “레미제라블의 의미는 가엾은, 불쌍한을 뜻하는 프랑스어다. 때로는 불쌍한 사람, 가엾은 사람을 의미하는 명사로도 쓰인다고 한다. 프랑스 역사의 가장 격동기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쟝발장이 19년 형을 받고 풀려난 1815년 워털루 전투 전날 밤부터 18307월 혁명, 1832년 빠리 노동자 소요사태인 6월 혁명에 이르기까지 19세기 초 프랑스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정치적인 혼란과 산업혁명으로 인해 빈부의 격차가 심해져가는 시대적인 혼란 속에서 부대끼는 당대 민중의 지난한 삶을 그려내고 있다.

 

  제 1팡띤느에서는 마리엘 주교의 사랑에 감화를 받아 새로운 인생을 개척하고 전혀 다른 사람으로 탄생한 쟝발장의 모습이 그려진다. 더불어 이 대하소설의 등장인물들이 각기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쟝발장과 집요하게 쟝발장의 뒤를 쫓는 자베르 형사. 팡띤느와 그의 딸 코제트. 마리엘 주교, 인간 본성의 악을 구현하는 떼나르디에 등의 삶이 겹쳐지고 펼쳐지며 대서사의 문이 열린다.

 

  이 작품은 시작부터 선과 악의 극단적인 대결구도를 펼쳐나간다. 마치 절대자가 하늘에서 내려다보듯 관조하는 시선으로 이야기를 펼친다. 들판에 쭈그려 앉아 개미들의 이동을 보며 느꼈을 그런 시선으로 인간 군상들의 삶을 그려나간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묻는다. 신과 인간의 관계를. 선과 악의 절대적인 의미를. 1권에서는 19세기 타락한 종교계를 뒤로하고 청렴한 삶을 살아가는 마리엘 주교에 대해 지루할만큼 섬세한 묘사를 통해 한사람의 선인에 의해 세상이 얼마나 영향을 받는지를 그려나간다. 선한 심성을 갖고 있던 쟝발장은 죄인들과의 도형수 생활을 통해 절대 악으로 변한다. 그 악은 마리엘 주교에 비해 다시 선의 길을 걷게 되고, 그 선의 길을 가로막는 악의 존재는 또다시 나타난다. 팡띤느에게는 그를 취한 후 버리고 간 남자와 그를 시기하는 공장의 근로자들, 코제트에게는 떼나르디에를 대비함으로 인간이 과연 선한 존재인지, 악한 존재인지에 대한 꾸준한 의문을 제기한다. 처해진 각각의 환경에 의해 인간 감성의 근본이 흔들리는 작품의 전개를 통해 선과 악의 절대적인 경계를 허문다. 선은 선을 낳고 악은 악을 낳는다.

 

  1권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부분은 우리가 알고 있던 은촛대 부분은 아니다. 오히려 그 부분은 기대와는 다르게 덤덤하게 묘사되었다. 가장 긴장감을 유발시키며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긴박감이 느껴지는 장면은 쟝발장이 마들렌느라는 가명으로 시장으로 재직할 때 쟝발장으로 오인받아 재판에 넘겨진 이에 대한 소식을 자베르 형사에게 들은 이후부터이다. 그 소식이후 진실을 밝혀야 하는지의 여부를 두고 고뇌하는 부분과 그를 구명하기 위해 재판이 열리는 도시로 달려가는 장면이다. 그리고 재판장에 우뚝 서 대중을 향해 진실을 고백하는 장면이다. 긴장감에 숨이 멈추는 줄 알았다. 온 몸에 전율이 일었다. 마치 눈앞에서 벌어지는 것 같은 세밀한 묘사에 나또한 그 재판정에 서있었다. 작가의 묘사는 마치 그 재판정의 천정위에서 그 광경을 내려다보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믿어지지 않는 광경과 그 재판정을 휘감아 치는 긴장감에 몸서리가 쳐졌다.

 

  쟝발장은 재판정으로 가는 길에 수많은 장애를 만난다. 그 장애들이 그가 재판정에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하도록 길을 막지만 굴하지 않고 달려가 재판정에서 무고한(?)이의 결백을 증명해 준다. 하지만 아쉬움은 남는다. 그것이 최선의 결정과 행보였는지. 우리네 삶이라는 것은 선택의 연속이다. 이 작품에서 쟝발장이 빵을 훔친 행위도, 도형수가 되어 탈출로 인해 수감기간이 길어진 것도, 미라엘 신부의 은 접시를 훔친 것도, 사업가가 되고, 한도시의 시장이 되어 모두의 존경을 받는 것도 모두 그 자신의 선택의 결과이다. 빵 하나를 훔친다는 어찌 보면 아무것도 아닌 조그만 행위가 그의 인생 자체를 바꿨다. 물론 그 이후에도 그의 크고 작은 행위들이 그의 삶에 영향을 미쳤다. 하다못해 그가 운영하는 공장의 대리인으로 임명된 자의 잘못된 판단은 그와 전혀 상관없는 팡띤느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원인이 된다. 이렇듯 대수롭지 않게 내리는 판단과 결정은 우리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많은 이들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우리는 삶을 살면서 그런 선택의 순간에 얼마나 고민하는가. 우린 고려하지 않는다. 결정의 순간에 자신의 지식과 시각만을 기준으로 결정을 내린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 대수롭지 않은 판단이 누군가의 삶과 교착점에서 마주치면 누군가의 삶은 영향을 받는다. 그로인해 삶이 바뀌고, 누군가는 죽음과 삶의 경계에 선다. 대수롭지 않게 결정한 그 판단에 의해 우리네 삶이 갈림길에서 그 결과를 달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우리는 단 한번이라도 고려한 적이 있을까.

 

  쟝발장이 시간을 다투며 목적지에 가기 위해 애쓰는 동안 그의 행보에 닥치는 수많은 장애는 어쩌면 그의 행보를 막기 위한 신의 섭리는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나 또한 그의 길을 막아서고 싶었다. 사회적인 성취와 직위, 더불어 많은 이들의 희생을 담보하고 그를 구하러 가는 그의 선택에 박수를 칠 수는 없었다. 사창가에서 구한 팡띤느의 목숨이 그의 손에 달렸다. 또한 그가 시장을 맡고 있는 도시와 그 도시를 다시 일으켜 세운 그의 사업의 성패도 달렸다. 인간이기에 고뇌하는 쟝발장의 모습은 소설속의 등장하는 가상의 인물이 아닌 바로 나 자신으로 빙의된다. 그의 결정과 재판정에서 행한 행동은 과연 옳은 것일까. 나라면 어떤 판단을 내렸을까. 이 판단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 이전에 먼저 정의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다. 쟝발장이 정의라고 생각한 정의가 과연 정의인가?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판단한 것은 과연 최선일가. 어쩌면 정의라는 이름의 허울을 빌어 타인을 고려하지 않은 이기적 발로의 소산은 아닐까. 더불어 나의 정의는 과연 타인에게도 정의일수 있을까. 물론 이에 대해선 공리주의 시각과 정의론의 시각여부에 따라 판단의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학문적인 수준의 논의를 제외하더라도 그가 자신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그리고 그를 악에서 구원해준 마리엘 주교를 통해 그에게 전해지는 신의 목소리에 응답하는 장면에서 난 그의 선택에 동조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쟝발장은 극도의 이기주의적인 결정을 내린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이 생각하는 도덕과 정의의 관점에서 내린 정의는 많은 이들의 희생을 담보했기 때문이다. 그의 정의의 댓가는 혹독했다. 사회적인 지위는 물론 그가 그동안 이룩한 모든 성취 또한 물거품으로 만든다. 희망을 잃은 팡띤느도 죽었다. 대중의 외면과 더불어 쟝발장의 성취가 불러온 한도시의 풍요로움도 예전의 가난으로 되돌아갔다. 한사람의 인간이기에 어찌할 수 없는 고뇌의 순간에 대한 진솔한 묘사는 작가인 빅토르 위고의 위대함을 느끼게 한다. 도덕과 관념과 인간적인 욕심, 거기에 종교적인 도덕관 사이에서 고뇌하는 그의 모습은 읽는 이 또한 그의 고뇌의 강물에 횝싸이게 한다.

 

  세상은 한때 자신들의 시장이었던 쟝발장이 한때 도형수였다는 사실로 그의 모든 행적을 외면한다. 인간은 인간 그 자체로 평가받아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가 이전에 어떤 사람이었는가에 따라 그를 판단한다. 아무리 선한행동을 하고 올바로 세상을 살더라도 누군가는 그 행동에 이의를 제기하고 그 이의는 그의 과거가 밝혀지면서 마치 정의인양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이게 군중의 심리다. 한때 그 도시의 경제를 살린 주역이었고 자신들의 시장이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그저 그의 과거가, 자신들보다 더 못한 그의 과거의 행보가 그를 판단하는 기준이 된 것이다. 마치 그동안 그가 베푼 선행마저도 그의 과거를 덥기 위한 위장된 행동이었던 것처럼 그를 매도한다. 인간은 그렇다. 어느 순간 상대가 약점을 보이면 가차 없이 물어뜯는다.

 

  원전으로 만나본 레미제라블은 알고 있는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인간이 가진 선과 악에 대한 전혀 색다른 해석과 매순간 고뇌하는 한 인간에 대한 작가의 지나치리만큼 세밀한 묘사는 이 작품에 대한 가치와 작가의 위대함에 전율케 한다. 책을 읽으면서 중간 중간 마주친 철학적 글귀로 인해 중단하기를 몇 차례였다. 우리가 아는 요약된 쟝발장은 작품이 가지고 있는 위대함과 심오함, 이야기 흐름속의 긴박감을 100분의 1도 표현하지 못한다. 더불어 작품 속 명문이 주는 감동은 대단하다. 대중이 가지는 어리석음, 선과 악의 경계, 도덕과 정의와 경계에서 허덕이고 고뇌하는 인간의 감성, 수많은 선택으로 점철된 삶에서 그 선택이 가져오는 결과들, 신과 인간의 관계, 신의 존재에 대한 증명과 더불어 선은 선을, 악은 악을 부르는 극단적 대결구도를 통해 작가는 그 시대 프랑스의 실패한 혁명을 그려내고자 한 것은 아닐까. 군중의 우둔함과 진보적 혁명의 파고 속에서 의미없이 쓸려갈 수밖에 없는 군중의 비참함 삶과 함께. 그는 말한다. 진보의 난폭성을 일컬어 혁명이라고 한다. 군중의 외면으로 실패한 혁명의 아쉬움을 토로하는듯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다음 이야기로 우리의 손길을 이끈다.

 

 

무한이 있습니다. 그것은 저기에 있습니다. 만약 무한에게 자아가 없다면 그 자아가 무한의 한계일 것입니다. 그럴 경우 그것은 무한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 그것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있습니다. 따라서 무한에게는 자아 하나가 있습니다. 무한에게 있는 그 자아, 그것이 신입니다.” (77)

 

 

h*****o 2015.03.06. 신고 공감 15 댓글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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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 미제라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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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에 보았던 한권짜리 책에서는 알수없었던.. 정보가 거기에 있었다.. 미뤼엘신부는 어째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장발장은 왜 그런 삶을 살아야했는지, 팡틴은 어떤 삶을 살다가 죽었는지.. 자베르가 그렇게 살수밖에 없는 이유는 뭔지.. 에 대해서.. 알수 있었다.. 그것도 충분히.... 사실.. 책을 읽고 싶다고 생각한것은.. 공연에서는 훅훅 지나가던 이야기들을 더 자세히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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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에 보았던 한권짜리 책에서는 알수없었던.. 정보가 거기에 있었다..

미뤼엘신부는 어째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장발장은 왜 그런 삶을 살아야했는지, 팡틴은 어떤 삶을 살다가 죽었는지.. 자베르가 그렇게 살수밖에 없는 이유는 뭔지..

에 대해서.. 알수 있었다.. 그것도 충분히....

사실.. 책을 읽고 싶다고 생각한것은.. 공연에서는 훅훅 지나가던 이야기들을 더 자세히 알고싶어서.. 였더랬는데..

이제 한권을 읽은 상태지만.. 꽤.. 잘한 선택인것같다..

 

등장인물에 대한 디텔한 설명을 보면서, 영화속 배우들과.. 공연속 배우들과 매치하는 재미가 있었다..

특히, 자베르와 팡틴.. 그리고 코젯을 설명하는 문구는.. 꽤나 흥미로웠다.. 머리속에 한줄 한줄.. 그림이 그려지는 정도였으니..

그 중에서도.. 머리에는 황금이 입속에는 진주가.. 있다던 팡틴의 미모에 대한 부분은.. 정말 탁월했다..

그런 그녀가.. 딸을 위해서.. 머리칼도 자르고 앞니를 뽑는 바람에.. 어찌변했는가에대한 설명도.. 아렸고......

YES마니아 : 플래티넘 i******y 2013.01.3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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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s Miserables (1862) : 가슴 벅찬, 두고 두고 읽고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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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평화'를 읽고 드디어 때가 되었어... 라며 집어든 그 책. '전쟁과 평화'도 두께가 만만치 않지만 비교적 단순한 인물군과 스토리 구조로 인해 그리 어렵지 않게 일주일만에 읽었다. '레미제라블'은 비슷한 두께임에도 불구하고 '전쟁과 평화' 다섯권은 읽은 것 같은 느낌이다. 작가가 사건과 인물의 개연성을 위해 워낙 촘촘히 구성한 덕분에 등장 인물이나 장소에 대한 배경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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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평화'를 읽고 드디어 때가 되었어... 라며 집어든 그 책. 


'전쟁과 평화'도 두께가 만만치 않지만 비교적 단순한 인물군과 스토리 구조로 인해 그리 어렵지 않게 일주일만에 읽었다. '레미제라블'은 비슷한 두께임에도 불구하고 '전쟁과 평화' 다섯권은 읽은 것 같은 느낌이다. 작가가 사건과 인물의 개연성을 위해 워낙 촘촘히 구성한 덕분에 등장 인물이나 장소에 대한 배경지식 전달이 풍부하다. 장발장이 총에 맞아 기절한 마리우스를 들쳐 업고 하수도로 탈출하는 장면을 위해 파리 하수도의 구조, 역사를 여러 챕터를 할애해서 독자들이 직접 보지 않고도 당시 파리 하수도의 느낌을 알 수 있게 할 정도다. 이때문에 어마어마하게 긴 분량이지만 각 권마다 박진감 넘치고 조마조마한 사연들이 차고 넘친다. 

 

이 작품은 1789 프랑스 대혁명 이후,  워털루 전투(1815), 7월 혁명(1830), 6월 혁명(1832)이라는 역사적 흐름 속에서 스러져 갔거나 살아남은 프랑스 민초들의 이야기이다.  


내가 본 이 작품의 주제는 '혁명'이다. 어떤이는 프랑스 사람 3명만 모이면 혁명을 한다고 하는데 작가는 자신의 신념을 소설을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했다. 절대왕정에서 민주공화제로, 정치 사회체제의 혁명뿐만 아니라, 가난으로 인해 범죄로 내몰렸던 전과자 장발장이 미리엘 주교로 인해 비록 도망자 신세지만 기업가로 자선가로 또한 어미 잃은 어린 소녀의 보호자로서 다시 태어나는 과정 역시 혁명이다. 마리우스의 성장과정 역시 왕당파에서 공화주의자로 조부모에 의지하는 순응주의자에서 주체적 인물로 거듭나는 혁명의 과정을 거친다. 이전의 상태에서 정반대의 상태로 바뀌는 것이 혁명이라고 본다면 레미제라블이 이후 유럽과 전세계에 던진 혁명의 씨앗이 적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그가 주장한 공화제는 물론 무상교육이나 사형제 폐지가 지금은 전세계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장발장, 코제트를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영화, 뮤지컬등으로 끊임없이 재생산되어 대중에게 노출되었으니 말이다. 이번에 읽으며 발견한 흥미로운 것은 코제트가 주인공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그녀는 장발장에 의해 온실속에서 티없이 곱게 자란 꽃같은 존재일 뿐 극중에서 큰 역할을 하지는 않는다. 그녀는 작중의 역할보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고난의 결실, 혁명의 결실이 꽃처럼 아름다운 코제트로 대표되기 때문에. 못생기고 깡마른 볼품없는 구박덩이로 남의 집살이를 하던 어린 소녀가 혁명적으로 거듭 난 인물에 의해 잘 교육받고 보호받으며 아름다운 여인이 되는 과정, 즉 그것이 당시 사회가 바라던 이상사회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떼나르디에의 딸 에포닌느나 가브로슈도 부모나 사회로부터 그러한 보살핌을 받았다면 거리에서 그렇게 죽어나가진 않았을테니까. 


마리우스와 행복한 결혼생활에 빠져 아버지를 등한시하는 코제트에게 화도 났지만 그 모습이 나나 내 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의 의미이자 목적이었던 코제트를 혼인시키고 홀로 죽음을 준비하는 장발장의 모습에서 이 세상 모든 부모를 보았다. 작가는 자녀들쪽을 변호한다. 자녀들도 그들 삶이 따로 있으니 노여워 하지 말라고. 그것이 모두 다 생의 일부라고. 떠날 사람은 떠나줘야 새로운 관계가 부담없이 번창할 수 있다고. 지당한 말씀이다. 


등장인물들이 거의 다 가난하고 비참하지만 부모와 사회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힘없는 어린이나 여자들의 고통을 마주할때는 참으로 먹먹하다. 떼라르디에의 버려진 아들들이 또래 아이가 먹기 싫다고 버린 젖은 빵 조각을 나누어 먹는 장면이나 다섯살 나이에 식모가 된 코제트, 코제트의 양육비를 마련하기 위해 머리와 치아 급기야 몸까지 다 내다 파는 팡띤느를 보면 최소한의 사회 안전망이 왜 필요한 지를 잘 보여준다.  


엇그제 외출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차안에서 오디오 북으로 작품의 마지막 챕터를 듣고 있었다. 집에 도착했는데도 차에서 내리지 못한 채 차 안에서 30분 동안이나 앉아서 끝까지 읽었다. 코제트 내외의 배웅을 받으며 고단한 생을 마무리하고 미리엘 주교와의 약속을 지킨 뿌듯함으로 그의 환영을 받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숨을 거두는 장발장의 최후를 읽으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책을 읽으며 마지막으로 울었던 게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 였다.' 소년이 온다' 는 우리 현대사의 가장 아픈 80년 광주의 이야기이기때문에 사람이라면 다 공감하고 흐느낄 내용이다. 그런데 150여년전에 쓰인 저 먼 나라의 소설을 읽고 눈물이 날 줄이야. 지금까지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이 '죄와 벌'이었는데 순서가 조금 바뀔 것 같다. 비교할 수 없는 장르여서 우열을 가릴 수는 없지만 이 작품이 나의 취향에 조금 더 맞는 것 같다. 


종이책을 구할 수 없어서 딸에게 사준 영문판 양장본에 밑줄을 그으며 펭귄 클래식 번역본 전자책을 대조해 가며 읽었다. 영문본에서는 민중 '봉기'라고 하고 펭귄클래식 한글판에서는 '반란'으로 번역된 부분이 자주 등장한다. 내가 보기에 문맥상으로는 '봉기'가 맞다. 번역이 맘에 걸려서 원전이 어찌 쓰였는지 찾아보고 싶을 정도였다. 그래도 전체적인 진행에는 무리가 없다고 봤는데...작품의 감동을 확 떨어트리는 역자 후기를 보며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역자를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좀 독특한 해석(자베르 형사가 주인공이고 그는 아주 훌륭한 인간형이며 레미제라블이라는 소설이 지금 젊은 세대를 잘못 부추길 수도 있는 위험성이 있고 시대와 맞지 않다는 등)을 하는 분이었다. 이 책을 새롭게 도전하시는 분들에겐 민음사판을 추천 드린다. 알아보니 그쪽 번역의 평이 더 좋다.


나는 150여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전혀 고루하지 않고 오히려 더 푸르른 청년같은 생각을 가진 작가가 정말 위대해 보였다. 빅토르 위고는 그 당시에도 스타작가였지만 지금 봐도 매력적이고 존경스러운 캐릭터의 소유자다. 해석은 각자 하기 나름이지만 이런 저런 자료를 찾아보면 작가가 좌도 우도 치우치지 않은 합리적인 진보 공화주의자였던 것은 분명하다. 지금보면 오히려 우파에 가까운. 좌 우에서 각자의 입맛에 맞게 끌어다 쓰긴 했지만 작가는 확실한 철학이 있었고 그것을 작품으로 보여주려 했었다. 그런데 분량이 너무 길다 보니 잘라서 각자의 목적에 맞게 각색하고 이용했던 것. 


위고는 미리엘 주교나 그와 죽기 전 마지막 대화를 하는 1789년 당시 혁명 위원, 장발장, 마리우스의 말과 행동을 빌어 자신의 생각을 역설한다. 천부인권 사상을 바탕으로 사형제 폐지, 가혹한 형벌 방지(형벌과 자비로 대비되는), 보편적 교육과 일자리 제공으로 빈곤 퇴치, 여성과 어린이에 대한 인권 보장, 공화제에 대한 믿음, 종교 본연의 숭고한 목적 회복 등등. 유럽 혹은 세계사에서 프랑스 혁명이 끼친 영향과 의미, 워털루 전투(나폴레옹의 패배로 유럽의 각 왕정은 잠시 안심할 수 있었지만 공화제라는 역사의 큰 파도는 피할 수 없었다 .) 이전과 이후 세계를 소설 속에 잘 녹여주고 있어서 내게는 당시 역사나 사회상을 이해하는데 훌륭한 첫걸음 같은 작품이 되었다. 


리영희 평전을 보면 선생이 6.25 참전 당시에 이책을 원서로 읽기 위해 독학으로 프랑스어 공부를 했다고 하는데 나도 그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충분히 이해가 된다. (사실 나도 원서를 아마존에서 샀는데 글씨가 너무 작아서 쳐다보기만 해도 눈이 빙빙 돌 지경...)  선생이 돌아가시기 전에도 다시 한번 원서로 이 책을 읽으셨다고 하는 기사를 봤다. 빅토르 위고나 리영희 선생 두 사람 모두 펜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부단히 노력한 분들이라는 점에서 모두 존경스럽다.


감동이 깊어서 책을 계속 테이블에 올려놓고 만지고 펼쳐 보다가 급기야 데이빗 벨로스가 쓴 '세기의 소설, 레미제라블' 이라는 작품 해설서까지 읽게 되었다.  작가의 개인적인 삶뿐만아니라 작품이 집필되고 출판되는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담겨 있다. 그럼 그 책 후기로 계속...

y******l 2019.11.0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