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미제라블은 다른 작품과 달리 특이한 서사구조를 가지고 있다. 1권의 첫 부분에서 지루하리만치 미라엘 주교에 대한 자세히 묘사했던 작품은 2권의 서두에서 나폴레옹의 몰락을 가져온 워털루 전투에 대해서도 같은 여정을 반복한다. 특이한 구성이다. 이야기의 연계와 상관없을 것 같은 대목이 매권의 첫 부분에 언급된다. 마치 전투상황을 지켜본 것 같은 시선으로 묘사된 워털루 전투의 시작과 진행, 그리고 승패를 가른 요인이 무엇이었는지를 장황한 묘사를 통해 보여준다. 프랑스 공화정과 나폴레옹의 쇠퇴를 가져온 워털루 전투, 엘바섬에서 탈출한 나폴레옹과 월링턴이 이끄는 영국군과 프로이센의 연합군과의 전쟁은 연합군의 승리로 결정되고 나폴레옹의 재집권은 100일천하로 끝을 맺는다. 작가는 이 전투의 승패요인을 두 가지로 잡는다. 첫째는 날씨다. 포병장교출신답게 나폴레옹의 전술전략에서 핵심은 포병이다. 한데 전투전일에 내린 비로 인해 길이 진창이 되어 포병의 도착이 늦어졌고 그로 인해 전투시작 시간이 늦어졌다. 늦어진 전투시간으로 인해 프로이센의 협공을 받게 되고 그로 인해 전선이 이중화된 것이 가장 큰 폐인이다. 두 번째는 지휘관의 무능이다. 보병과 포병의 지원 없이 순간의 승기로 전투의 상황을 오판한 기병대의 무리한 돌진과 노련한 병사들의 부족이 워털루 전투에서 나폴레옹이 패한 요인이다. 거기에 나폴레옹의 지연된 판단력도 한몫했다. 평소의 그답지 않게. 만약 전일 비가 내리지 않았다면 전투는 일찍 시작했을 것이고 -전투는 11:30분에 시작했다-, 프로이센의 지원군이 도착하기 전에 전투는 이미 나폴레옹의 승리로 종결되었을 것이다. 그럼 프랑스의 역사도, 세계 역사도 달라졌을 것이다. 이 부분에서 작가는 많은 아쉬움을 토로한다. 어쩌면 일을 꾸미는 것은 인간이지만 그 섭리의 끝은 신의 영역이라는 것을 작가는 말하고 싶은 듯하다. 마지막까지 결사항전의 의지로 전멸한 나폴레옹 친위대의 죽음 속에 마리우스 뽕메르가 있었고, 그곳에서 절대 악의 상징인 떼나르디에와의 만남은 이 작품의 이어질 이야기에 대한 새로운 복선이다. 2권의 소제목은 꼬제트다. 이 부분에서 한가지 의문이 든다. 국내에서 발간되는 거의 대부분의 완역본의 표지모델이 코제트다. 왜일까? 레미제라블의 주인공은 쟝발장이 아닌가? 알아보니 레미제라블의 뮤지컬 공연의 포스터의 이미지를 각 출판사에서 형상화 한 것이다. 프랑스나 영국, 뉴욕에서 상영하는 모든 뮤지컬은 같은 포스터를 사용한다. 쟝발장이 아닌 코제트의 모습을 뮤지컬의 포스터로 사용한 이유는 무엇일까. 레미제라블이라는 제목이 뜻하는 것처럼 불쌍하고 가엾은 이의 대명사가 바로 코제트인가. 최근 영국 런던극장의 뮤지컬 포스터에는 코제트 뒤에 혁명의 깃발이 푸른색으로 나부낀다. 애초의 뮤지컬 포스터에는 깃발이 없다. 단지 가여운 코제트의 형상만 있을 뿐. 거기다가 뮤지컬에서도 영화에서도 6월 혁명의 깃발은 빨간색이었다. 그럼 이 푸른색은 무슨 의미일까? 개인적 생각으로는 희망을 이야기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럼 코제트가 뮤지컬의 포스터의 주인공이 된 것은? 아직 4권을 읽고 있어 그 끝에 다다른 것은 아니지만, 코제트의 파란만장한 삶에 작가는 프랑스의 역사를 투영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사생아로 태어나 초기에는 어머니의 보호아래 성장했으나, 타인에게 의탁되어 비루하고 비참한 삶을 살다 쟝발장에 의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코제트의 기구한 운명 자체가 바로 프랑스 민중의 자유의 역사라고. 뮤지컬 첫 부분에서 쟝발장이 들어 올린 다 헤진 프랑스의 깃발처럼. 1권에서도 느꼈던 것이지만 작가의 세밀한 묘사는 읽는 이의 몰입감을 드높인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절대자의 시각으로 풀어나가는 얘기도 그렇지만, 지나치리만큼 세밀한 묘사 또한 마치 현장에 있는 듯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떼나르디에 부부 밑에서 천대받는 생활을 하는 코제트의 모습은 읽는 이의 눈에 이슬이 맺게 한다. 부모의 보살핌과 사랑을 받으며 천진한 웃음을 흘려야 하는 어린 코제트는 지독한 천대와 고생과 배고픔과 추위로 인해 애늙은이가 되었다. 초점 없는 눈과 잔뜩 겁에 질린 코제트. 눈앞에 펼쳐지는 가엾은 어린것의 비참함은 마음에 짠한 느낌을 넘어 분노를 불러온다. 뮤지컬 포스터와 책 표지의 이미지 의 코제트는 바로 이순간의 모습이리라. 1권의 말미에서 잡혀간 쟝발장은 팡띄느의 장례를 위해 탈출을 하고 다시 잡혀 도형수의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죽은 팡띄느와의 약속을 위해 죽음으로 위장하고 다시 탈출한다. 떼나르디에로부터 코제트를 찾아와 은둔의 생활을 하던 쟝발장에게 위기가 찾아온다. 그건 다름아닌 형사 쟈베르의 추격이다. 쟈베르와 그 일당의 추격을 피하는 장면에서 막다른 골목에 이른 쟝발장. 자신이 잡히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로 인해 불행한 삶을 살 코제트를 생각해 죽기를 각오하고 도망간다. 뒤에서는 쟈베르와 그의 일행의 맹렬한 추격이, 앞에는 막다른 골목이. 어디로도 도망갈 수 없는 그 절대적인 찰나에 그의 예전의 선행에 응답한 신의 손길이 그를 이끈다. 어느 드라마가 이보다 재미있을까? 어느 블록버스터가 이보다 흥미진진할까. 어느 소설이 이보다 더 극적일까. 이미 알고 있는 결말이지만 작가의 이야기에 끌려 다음날 출근에 대한 부담감도 접은 채 손을 책에서 놓지 못했다. 수녀원에서 평범한 은둔의 시간을 보내는 쟝발장은 코제트의 선함과 부성의 존귀함으로 인해 그의 마음 깊이 자리했던 악의 잔흔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을 느낀다. 새로 태어난 것이다. 그래서일까. 극적인 순간에 위기탈출의 방법이 두 번 다 가장한 죽음이었다. 어쩌면 그 가장된 죽음을 통해 쟝발장은 새로 태어나는지 모른다. 한 번의 죽음은 도형수에서 일반인으로, 또 한 번의 죽음은 어떠한 악의도 품지 않는 절대 선으로 . 2권의 이야기 면면에 흐르는 작가의 생각은 바로 신의 섭리와 인간의 의무이다. 워털루 전투의 승패도, 쟈베르 경감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한 쟝발장과 코제트의 탈출의 결과도 신의 섭리이다. 혹자는 그걸 우연이라고 얘기하겠지만, 세상에 과연 우연이란 것은 존재할까. 단지 우리는 어찌할 수 없는 현상에 대한 방어기재의 발현으로 그걸 우연이라고 이름붙이고 외면하는 것은 아닐까.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미지의 힘에 대항하는 방법으로. 하지만 세상에 우연은 없다. 우연을 가장한 사필귀정의 결과만 있을 뿐이다. 나폴레옹을 패배를 바라보는 작가의 생각과 신의 섭리와 종교에 대한 작가의 사상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부분이 바로 2권의 이야기이다. 신의 존재에 대한 그만의 시선을 언급한 부분이 1권이었다면 2권에서는 신과 인간의 관계의 소통수단인 기도와 신의 피조물인 인간의 의무에 대한 그의 신앙관이 내보였다. 거기에 더불어 그 시절 수도원이나 수녀원을 통해 종교라는 이름으로 가해지는 모든 핍박과 스스로 감내하는 고통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그 근거에 흐르는 작가의 이념은 바로 “자유”다. 쟝발장의 자유, 코제트의 자유, 종교의 자유, 그리고 민중의 자유. 사상의 자유. 영혼의 자유. “만약 그 두 무한이 지적인 존재라면, 그들 각자는 하나의 의지를 가지고 있을 것이고, 그러면 밑에 있는 무한 속에 자아 하나가 있듯이 위에 있는 무한 속에서도 하나의 자아가 있을 것이다. 아래에 있는 자아, 그것이 영혼이고, 위에 있는 자아, 그것이 신이다. 아래에 있는 무한과 위에 있는 무한을 사념 속에서 접속시키는 것, 그것을 일컬어 기도라고 한다.” (309쪽) 광신주의를 분쇄하고 무한을 숭배하는 것. 그것이 법률이다. 창조라는 나무 아래에 엎드려 그 거대한 가지에 가득한 별들을 바라보는 것에 그치지 말자. 우리에게는 의무가 있다. 인간의 영혼에 노력을 기울이는 것, 기적에 대항하여 신비를 방어하는 것, 불가해한 것을 찬미하고 터무니없는 것들을 배척하는 것, 설명할 수 없는 것에서는 오직 필요한 것만 받아들이는 것, 신앙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 종교에서 미신의 겉딱지를 떼어내는 것, 한마디로 신에 기생하는 구더기들을 제거하는 일이다. (310쪽)
|
|
많은 레미제라블 번역서가 있지만 펭귄클래식 출판사 책이 편집도 잘 되어있고 읽기 쉽게 번역도 잘 되어 있습니다. 만족합니다!
다만 총알배송으로 그날 도착한다고 되어 있었지만 그 다음날 저녁 늦게 와서 배송이 조금 아쉽네요. 암튼 1권부터 5권까지 빨리 다 읽어보고 싶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