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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다. 5분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만약 인간에게 예지 능력이 있다면 사고나 테러 등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며 안전하게 살 것이다. '신'의 존재 또한 그다지 소용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에겐 예지력이 없을뿐더러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안전하기는 커녕 전쟁과 끔찍한 사고와 테러, 굶주림과 가난, 폭력과 내전 등 비참한 일이 끊이지 않는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와 함께 해 왔다.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전쟁이 그치지 않고, 아프리카에는 에이즈가 창궐하고, 세계 도처에선 죄 없는 사람들이 무참히 죽어가고 힘 없는 사람들이 고통에 시달리고, 정의가 불의에 패하는 일이 일어난다. 이럴때 우리는 하나님은 어디 계시는가? 이런 세상에서 과연 하나님이 무슨 소용인가? 라고 묻지 않을 수 없다.
하루 아침에 멀쩡했던 빌딩이 무너진 9.11테러, 히틀러에 의해 죽은 6백만 유대인, 평화로운 버지니아 공대 캠퍼스에서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 수십년간 성의 노예로 비참하게 살아가는 여인들,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으며 인종차별에 시달리는 흑인들 등 세계 도처에서 발생하는 끔찍한 사건은 하나님이 계시다면 왜 이런 일이 발생 하는 것인지, 이런 일을 왜 막지 않으시는지 의문을 불러온다. 필립 얀시의 [은혜를 찾아 길을 떠나다]는 이러한 의문에 대한 답이다. '우리가 고통당할 때 하나님은 어디 계시는가?' 하는 물음에 대해 얀시는 세상이 선하지 않을수록 하나님이 더 필요하며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다고 답한다.
고통의 모양은 각기 다르지만 그의 강연을 압축하면, '고통이 있는 곳에 메시아가 있다' 이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그분이 당대의 비극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만 보면, 우리가 고통 당할 때 하나님이 어디에 계신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낮고 천한 자를 사랑하셨고, 가난하고 연약하고 슬퍼하는 사람들을 사랑하셨다. '왜' 이런 일이, '하필이면' 나에게 이런 일이 라는 질문에는 예수님도 대답을 내놓으시지 않으셨다. 그래서 우리도 모른다. 하지만 고통 당하는 우리를 바라보는 그분의 심정이 어떠한지는 확실하게 안다고 말한다.
필립 얀시는 폭력과 분열의 세상 속에서 은혜를 찾아 떠난 열 군데 장소에서 "하나님이 무슨 소용인가?"에 대한 답을 얻었다고 고백한다. '하나님이 무슨 소용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원한다면, 이 책을 읽으며 얀시가 안내하는 열 군데 장소로 지금 떠나기를 권한다. 윤종석 님의 매끄러운 번역이 답을 찾아 길을 떠나는 독자들을 은혜로 안내해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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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를 졸업하면 많은 사람들이 자기 전공에 맞는 회사에 들어간다. 그런데 직장에서 자신이 배운 학문을 펼칠 기회가 없다. 대부분 자신의 업무에 맞는 일을 다시 배우게 되기 때문이다. 학문과 현실의 괴리가 나타나는 것이다.
이 책 <필립 얀시, 은혜를 찾아 길을 떠나다>(청림출판.2010)의 저자 ‘필립 얀시’도 신앙과 실제 삶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저자는 자신이 깨닫고 체험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은혜의 메시지가 많은 사람들에게 현실에서 영향력을 가지는지 확인 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저자는 독자들과 소통하고자 한다. 자신의 일방적인 메시지의 전달이 아닌 자신의 글의 영향력을 확인하고 싶어 했고, 여행을 통해 직접 소통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이 박해와 폭력과 재난의 불로 연단 받고 있는 곳들을 여행 했다. 결국 자신의 글에서 오는 하나님의 은혜를 확인하게 된다.
저자는 ‘하나님이 무슨 소용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실존적인 답을 제시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깊은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며 ‘하나님이 무슨 소용인가?’라고 쓰러지는 영혼들에게 희망을 전하고자 한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약 600만 명의 유대인이 히틀러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 과연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데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혹자는 하나님이 살아계시기 때문에 이러한 엄청난 일이 일어 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말 그렇다. 창조주가 아니라면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날 수 없는 것이다.
이 책에서 만난 사람들 역시 그들의 고통에 하나님이 눈과 귀를 닫고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 정말 그들의 고난이 하나님이 계시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일까? 성경을 보면 그렇지 않음을 확인 할 수 있다.
성경의 많은 인물들은 광야의 고통을 이겨낸 사람들이었다. 광야는 분명 고통과 고난의 시간이 분명하다. 누구나 겪고 싶지 않은 시간이다. 그러나 광야의 결과는 축복이 시간이었고, 은혜의 시간이었다. 광야의 삶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이다. 우리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생각인 것이다.
버지니아 총기사고의 고통이, 가장 밑바닥에서 부르짖는 기도가, 인종 차별과 수치의 역사가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고자 하는 방법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오로지 하나님만이 아신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실제적 가치에 관한 메시지를 통해 상처받은 곳에서 위로와 평안을 그리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은혜의 메시지를 경험한 소중한 시간이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기 23장 10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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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얀시가 유명한 것을 알고 있었으나, 이책을 처음 통하여 접하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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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중에 감사하고 살아야 할것들이 너무나 많지만 그러한 사실을 관념적으로만 인식할뿐 진정으로 감사할것을 감사함으로 살아가는 나날은 그다지 많지 않음이 아쉽다. 지금 이시간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그리워하는 전세계의 갈급한 영혼들이 있는 반면에 너무나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를 드리며 살아가기 쉬운 현실에 처한 사람들은 그 감사함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것이 사실이다. 무엇이 주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함에 타성을 불러온것인지 생각해보지 않을수 없다.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세상을 살아가다가 다른 사람들이 모두 받는 정규교육을 받고 성장하여 때가 되면 부모곁을 떠나 새로운 하나의 가정을 꾸려 사는것은 누구나 누릴수 있는 생활상의 도식처럼 되어있다. 하지만 부모의 사랑을 정상적으로 받지못하거나 한부모가정에서 자라난경우, 세상을 살아가더라도 중증장애로 시달리며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는 경우, 학습에 대한 욕구는 있지만 스스로 처한 상황이나 경제적여건이 허락치않는 경우, 성장하여 독립된가정을 이루려는데 가정파탄이란 굴레로 실패한 경우등... 평상시 너무나 당연시 여겼던 삶에서 벗어난 경우라 할수있다. 이처럼 정상적이지 못한 삶의 요소들이 내삶어느부분에 복병처럼 도사리고 있는지 하나님의 은혜속에서 감사히 여기며 살지못했던 지난날의 삶을 되돌아보게 했다.
대가없이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외면하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때 감사함으로 누려야 할 것이다. 자기가 처한 현실에 어려운 난관이 닦쳐왔을때 이러한 모습을 하나님께서 외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살아있는 신앙으로 옮기기 어려워 하나님과 나 자신과의 상관관계를 의식하여 하나님은 나에게 무슨 소용이 있는지를 필립얀시의 "은혜를 찾아 길을 떠나다"에서 변증하고자 하고 있다. 필립얀시는 기독교의 가장 커다란 특징을 은혜라고 강조하고 있는데 그가 주장하는 은혜란 명성과 권력을 따르는 현대의 풍조가 아니라 가난한자가 복이 있으며 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자가 복된자라는 주장이다. 때문에 인간적인 눈으로 볼때 불의해보이고 패망의 원인이되어 멸하여야 함에도 패망되지 않고 성장됨을 세상속에서 현대인을 위한 하나님의 섭리됨이라 깨닫게 한다. 신앙생활중 인간적인 생각으로 이해되지 않는부분을 하나님본위에서 생각할수 있게하는 소중한 영성신앙서적으로 형제자매님들께 두루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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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얀시의 책 중에 가장 먼저 읽은 책이면서 가장 큰 감동을 얻었던 책이 바로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라는 책이었습니다. 그 책을 읽고 받은 은혜와 감동과 도전이 얼마나 컸던지 필립 얀시의 책을 곧바로 열 권 정도 구입해서 하나씩 읽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시작된 필립 얀시 읽기는 단 세 권 정도를 더 읽은 후에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기대했던 것과 같은 내용들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책들이 제가 절실히 듣고자 했던 은혜에 대해 말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저 잘못된 신앙의 문제점이라던가 고통의 의미에 대해 깊이 있는 고민을 털어 놓고 있었는데, 그 작업 역시 의미있는 작업이기는 했지만, 저에게 그렇게 와 닿지는 않았더랬습니다. 그래서 한 동안 필립 얀시의 책을 읽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전 다시 필립 얀시가 은혜에 관한 책을 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다시금 예전과 같은 기대감을 마음에 품고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번에는 제 기대가 실망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에서 발견했던 그 은혜가 정말 생생하게 살아 있는 책이었습니다. 도저히 하나님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다고 간증하고 있었고, 그들이 고백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절절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심한 고난 가운데 있었던 이들의 고백일수록 그 감동이 더했는데, 컬럼바인 고등학교에서 끔찍한 일을 겪었던 케이시의 고백과, 코스타리카의 성매매 여성 출신의 힐다의 고백은 특히 제 마음 깊이 새겨졌습니다. 그리고 본인들의 고백은 아니었지만 필립 얀시를 통해 소개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낮은 자들에게 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 힘을 가지고 역사하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의 내용은 저자가 강연 초청을 받아 갔던 열 곳의 장소에서 행해진 강연의 내용과, 그 장소와 관련된 중요한 사건 및 개인적인 경험의 기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먼저 저자가 강연 장소에 대해 자신이 알고 있었던 바 중요한 사건들의 내용과 자신이 그곳에서 겪었던 일들에 대해 소개한 다음, 그곳에서 행한 강연의 내용을 기록하고 있는 방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저로서는 강연의 내용도 좋았지만, 강연 내용에 앞서 저자가 기록해 놓은 저자의 지식이나 경험에 관한 내용들이 더 마음에 깊이 다가왔습니다. 왜냐하면 강연의 내용은 대부분 비슷비슷한 내용을 각각의 상황에 맞게 조금씩 수정한 것일 뿐이지만 청중이 경검했거나 처해 있는 상황은 저마다 천차만별로 달랐고, 또 그 가운데 드러난 하나님의 일하심 또한 크게 달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분명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드러나지 않는 듯한 곳에 가장 필요한 것은 결국 하나님의 은혜 밖에 없더라는 것입니다. 더 이상 소망이 없는 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소망 외에는 없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안 계신 것 같은 상황 속에서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 게셔주시는 것 외에는 없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 그것이 바로 은혜가 아닐까 싶습니다. 내용 중에서 특별히 마음에 와 닿은 것 또 한 가지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찾는 자들, 자기를 필요로 하는 자들에게 여전히 찾아가 말씀하고 계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코스타리카의 성매매 여성 출신의 힐다에게 "라합 재단을 찾으라"고 하셨던 것이나 이슬람 교도였던 회심자들에게 여러 차례 꿈으로 나타나셔서 당신의 실존을 깨닫게 하셨던 것과 같은 사건의 기록을 보면서 저는 하나님께서 오늘날에도 여전히 당신의 백성들에게 찾아와 말씀하신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은 여전히 은혜로우십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분을 따른다는 우리에게 은혜가 사라진 것처럼 보일 때가 너무나 많다는 것입니다. 결국 교회가 교회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그 안에서부터 철저하게 경험하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AA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처럼 자신의 부족함 앞에 정직하게 서고, 자신에게 하나님의 도우심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자신이 완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살아가는 태도가 오늘날의 교회에 절실히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저자의 지적과 같이 "왜 아직도 그렇게 사느냐"는 질문이 아니라, "네가 오기를 바랬다"는 따뜻한 반응이 있는 교회,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교회가 우리 가운데 더 풍성하게 발견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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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제일 처음 드는 생각은 '역시 필립 얀시!'라는 것입니다. 그동안 읽어 왔던 필립 얀시의 책들은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실존에 대한 의문들을 하나, 둘 질문하며 하나님을 향한 신실한 믿음의 고백을 회복하는 내용의 책들이었기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서도 그런 전개에 대해 별다른 거부감이 들지 않았습니다. 최신간이라는 기대에 걸맞게 최근에 벌어졌던 다양한 사건들을 소재로 그와 관계된 집회와 세미나를 통해 강의하였던 내용들을 소개하며 그에 따른 자신의 견해를 정리해 주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며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필립 얀시의 생각의 합일점을 찾는 것도 의미가 있는 듯 합니다.
어떻게 보면 조금은 발칙한 도전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하나님이 무슨 소용인가?'라니요. 하지만 강한 부정을 통한 긍정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필립 얀시 특유의 화법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과연 어떤 내용들로 반어법적인 질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할 것인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필립 얀시는 최근 벌어진 커다란 이슈들을 하나하나 소개하면서 그러한 상황에서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함께 고민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무조건적인 해답을 제시하려 하지 않고 그러한 상황에서 올바른 행동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도전해 보는 것입니다.
버지니아의 총기 사고를 비롯하여 현대사의 커다란 중심인 중국의 변화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손길이 가장 필요해 보이는 현장에서 하나님을 발견할 수 없었던 안타까움과 아쉬움의 탄식들이 신앙의 이상주의와 함께 맞물려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어리석은 원망과 불평을 토로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와 같은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는 것을 독자들로 하여금 신뢰할 수 있게 설득하는 것이 바로 필립 얀시가 가지고 있는 매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러한 문제들 앞에서 쉽게 답안을 제시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상황 속에서도 모든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믿음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필립 얀시는 우리에게 도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비록 알 수 없는 상황들로 인해 고통을 당한다 해도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은혜가 함께 하기를 기도해 봅니다. 필립 얀시가 전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향한 순례의 길에 함께 동참하게 되면 분명 나와 같이 고백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해 주신 모든 은혜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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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최고의 절망속에서도 하나님을 찾고 부를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날마다 느끼는 하루 하루이다. 만약 그러지 못한다면 누구나 그 악에 슬픔 구덩이에서 헤처나오지 못하리라. 가끔 연예인들이나 뉴스에서 자살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도 물론 들지만 그보다 그들이 그순간 혼자가 아니라 주님이 함께 한다는 것을 알았다면 어땠을까? 생각을 해본다. 그렇지만 우리들은 끝없는 절망가운데 놓이면 때때로 우리를 지켜보시는 주님을 잊는다.
언젠가 너무나도 생소한것 투성이였던 초신자때에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약해지면 하나님이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적이 있다 그때 목사님은 내손목을 서로 맞잡아 보자고 하셨다. 그리고는 나보고 손을 놓으라고 하셨다 결국 나만 손이 잡혀진채로 가만히 목사님을 쳐다보고있으니 목사님께서 물으셨다. "자매는 내손을 놓았지만 내손은 어떤거 같아요 여전히 자매의 손은 내손에 잡혀있지요? 이렇듯 우리는 잡고 놓기를 반복하지만 하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를 놓치 않고 붙들고 계신겁니다" 라고 말씀을 해주셨다.
그때의 감동과 놀라움은 이루 말할수가 없다. 사람에게 느껴보지 못한 느낄수 없는 무한한 신뢰와 믿음이 생겼다. 절대로 나를 놓지 않으시는 분 그리고 단지 내가 손을 잡았다 놓았다 할뿐 절대로 언제까지 단 한번도 내손을 놓으신 적이 없는 그분이 바로 우리하나님 당신의 하나님이신 것이다. 필립얀시는 그런 하나님을 세상도 혀를 내두를 큰 사건과 사고뒤에 찾아가 상처입은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어루만져주고 위로해주고 있었다.
그 역시도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될수 있을 정도로 위험한 순간이였지만 여전히 하나님은 그를 살피셨고 그런 그는 그 상황에서도 사건이 있는 곳에서 복음을 전했다. 한때 뉴스에서 떠들썩 하게 떠들던 버지니아공대의 총격사건은 다시 읽어도 끔찍했다. 피해자나 가해자나 모두 아픔을 간직한 채 이세상에 없어졌지만 그날의 참혹함은 총격사건이라는 것보다 그 가해자가 한국인이라는것이 더 큰 사건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한국인을 상대로 테러하지 않는 것에 나는 또한번 감동을 받았었다.
그리고 우리나라 만큼 복음 전파가 빠른 나라도 없다고 한다. 찬송과 통성기도가 넘쳐나는 그런 나라말이다. 그래서 필립얀시는 우리나라가 복음의 근원지가 될꺼라고 희망을 주었다. 그런데 중국또한 그 믿음이 남달랐다. 믿는 자에게 얼마나 큰 복을 주시는지 중국이 그렇게 빨리 발전을 한 까닭을 알게 되는듯했다. 우리나라 역시 주님이 믿음뒤에 심어주신 기적의 발전을 다른 말로 누가 설명을 해줄까?
내용중에 가족에게 버림받고 창녀촌으로 팔려가 매춘부가 되어야만 했던 여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다시 살아가는 애기가 나온다. 불과 3-4살에 팔려서 그렇게 된다는 것에 얼마나 충격인지 모른다. 그리고 그들이 아는 하나님이 얼마나 사랑의 하나님이신지 다시 한번 느낀다. 그들은 더이상 깔볼 사람이나 무시할 사람이 없는 밑바닥이다 그렇기에 살려달라고 손내밀고 소리칠수 있는 것이다. 그랬기에 하나님도 바리세인보다 창녀가 낫다고 하지 않았을까?
너무나도 많은 애기들과 주옥같은 말씀이 책을 읽는 내내 기도하게 하였고 눈물로 회개하게 하였다. 언제나 우리곁에 있는 하나님을 너무나도 기쁨으로 부르짖을수 있는 시간이였고 그런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시고 내곁에 계시다는 것에 항상 안도하는 시간이 되게 만들어준 책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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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나올 때마다 독자에게 생각하게하고 은혜를 주는 필립얀시(이하 저자) 이번에도 역시 우리의 가슴을 떨리게 하는 책을 들고 나타났습니다.
제목은 “은혜를 찾아 길을 떠나다”(원제 : 하나님이 무슨 소용인가)입니다. 진정 무엇인가를 발견하는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지는데에 있다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말처럼 우리는 여행을 통해서 새로운 눈을 가지게 됩니다. 저자도 이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나 봅니다. “고백컨대 내가 미국 교회 밖에 몰랐다면 내 신앙은 훨씬 위태로웠을 것이다. 미국 교회는 영구 보장된 기관처럼 보일지 몰라도 다른 곳들은 그렇지 않다. 여행에서 돌아올 때마다 나는 항상 힘을 얻고 온다. 신앙이 더 다져져서 온다.”(p. 14) 이 책은 무종교라고 답하는 수가 성공회, 장로교, 감리교, 루터교 숫자를 모두 합한 것보다 훨씬 많은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미국에서부터 시작하여 중국, 중동, 뭄바이,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이르기까지 여행하면서 그곳에서 다니엘과 같은 믿음을 지킨 때로는 사랑의 사도 요한과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렇게 어려운 환경 속에서 믿음을 지킨 사람들 뿐만 아니라 또한 몸을 파는 여성들의 모임과 중독자들의 모임에서 인터뷰를 하고 그들의 삶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며 우리에게 은혜를 주고 있습니다. 캠퍼스의 총기 난사 사건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분노와 슬픔과 고통에 잠겨있을 때에도 그들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전했던 버지니아 공대의 이야기, 나라를 공산화시키고 삼자애국운동을 펼쳐서 쇄국 정책을 펼치고 또한 삼자 애국 운동에 등록된 교회만을 인정하며 교회를 핍박한 마오쩌동의 나라 중국, 하지만 이곳에서도 하나님의 은혜에 사로잡혀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또한 가족들에게조차 버림 받은 여성들의 집회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는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독교에 관한 책들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주제들에 대해 쓴, 기독교가 잠복된 책들”(p. 118)을 쓴 C.S 루이스의 학교 케임브리지와 저자가 예전에 다녔던 신학교에서 저자는 세계 곳곳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들을 소개하며 학생들이 가져야 할 모습을 소개했습니다. 세상의 방법은 복수가 많지만(법을 이용하든 아니면 다른 방법을 사용하든 말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원수도 사랑하라입니다. 이 방법을 그대로 실천하며 혼란스러웠던 나라를 재건한 남아프리카 공화국,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많은 기독교 보수 단체가 그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분명 재앙이 될 것이라고 격분의 메일을 받았던 미국의 멤피스에서 저자는 미국의 인권을 다시 한번 돌아보고 또 그 안에 교회가 인정하지 못했던 인종 차별의 단면을 다시한번 상기시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기독교가 태어난 곳, 그러나 기독교를 버린 곳”(p.240)인 중동 지역에서 “요즘 기독교 신앙과 기독교의 영향력에 이 지역보다 더 저항이 센 곳은 없다.”(p. 249) “인권단체들에 따르면, 20세기 순교한 기독교인들이 20세기 전까지 순교한 이들을 모두 합한 것보다 많다.”(p. 252) 이런 위협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들을 만나며 저자는 부끄러울 수 밖에 없다고 고백합니다. 저자가 다음으로 간 곳은 교회도 받아주지 않는 중독자들의 모임입니다. 정말 하나님의 은혜와 도움이 필요한 그들에게 교회는 오히려 그들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지만 기독교의 교리는 최소한으로 줄이고 하나님의 사랑은 최대한으로 해서 만든 AA 단체에서 저자는 그들 과 하나님의 은혜를 함께 나눕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인도의 뭄바이에서의 경험과 강연한 것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도 카스트 제도로 인해서 신분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4천년을 계속해서 해방을 기다리는 나라. 하지만 그곳에서도 긍휼의 많은 징후들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차별이 법적으로 여전히 존재하는 이 나라에서도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을 있었습니다. 저자는 10개의 지역을 돌면서 다른 말씀들을 전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통일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만 있었다면 결코 쉽지 않았던 하나님의 은혜를 저자는 곳곳에서 접하면서 “하나님이 무슨 소용인가”에 대한 요즘 세상의 풍조를 다시 한 번 돌이켜 보기를 간곡하게 권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에게 전도와 선교여행은 필요한 것이 이러한 이유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효율을 따지고 비용을 따지고 개인의 사생활을 존중해야 한다는 문화를 따지면서 복음을 전하기를 꺼리는 우리에게 아직까지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사람들이 정말 많으며, 또한 은혜는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임한다는 성경의 놀라운 교훈을 기억한다면 전도와 선교 여행은 꼭 필요한 우리의 사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을 통해서 곳곳에서 퍼져있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경험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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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얀시 목사님의 책을 오랫만에 읽었다. 각 부분부분에서 세밀한 통찰력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하나님과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입니까?"라고 말하는 많은 사람들, 어쩌면 이 시대에도 하나님에 대해서 실망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그리스도 신앙을 변증하고자 하는 필립 얀시 목사님의 처절한 몸부림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이 책은 여러나라를 여행하면서, 그곳에서 느낀 부분들에 대해서, 다시 한번 기독교 신앙에 대해서 느끼게 되는 점들을 기록해 놓고 있다. 나는 다른 나라에 여행을 가 본 적이 한번도 없기에, 조금은 생소한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인도나, 중국, 그리고 미국이라는 나라들에 대해서 미디어 매체로만 들었지, 실제로 가본 경험이 없어서 책의 내용이 조금은 생소하기조차 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여전히 그리스도 신앙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회의를 느끼고 있는 부분들은 어쩌면, 문명시대요, 인터넷 시대라고 하는 우리와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우리나라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개독교라고 욕을 하고, 성경을 19세 이하는 읽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인터넷 홈페이지까지 만들어서 서명을 받는 것을 보면, 어쩌면 이 책에 기록되어 있는 나라들보다도 더 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도 들었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이야기들 가운데, 버지니아 공대의 조승희에 대한 이야기와 마오쩌둥 치하의 중국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가슴 아프게 들려왔다. 조승희는 나와 같은 민족이었기에 어쩌면 더 큰 아픔으로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그뿐만이 아니다. 9. 11사태 당시의 모습들을 다시 한번 떠 올릴 수 있었다. 그때 당시에 나는 무슨 할리우드 영화를 찍는 줄 착각할 정도였다. 그것이 사실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이런 대형사고의 한편에서 항상 떠올리는 질문은 하나님이 계시다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였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도 대구 지하철 화재 사건이나, 가스 폭발 사고등 일련의 대형 사고를 지켜보면서 여전히 느끼게 되는 것은 하나님은 계신가 하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강력하게 개입하셔서, 이런 문제들을 미연에 방지하실 수 있는 힘은 없는가 하는 것에 많은 사람들이 초점을 맞추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항상 인간의 자유에 더 큰 비중을 두셨던 것을 보게 된다.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어떤 것이 답인지는 어느 누구도 모른다. 단지 하나님의 최종 계획들에 대한 것들을 조금씩 느끼면서 살 뿐이다.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진리를 알리는 것, 바로 그것을 원하시는 것이 아닌가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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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청년들을 만나다 보면, 참 많이 듣는 얘기들 중에 하나가 이토록 어려운 상황에, 아니 이 상황에도 하나님은 뭘 하고 계시나요?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요? 등의 여러 말들이다. 하지만 결국엔 인간의 고통 앞에, 그토록 사랑하신다는 인간들을 왜 고통 속에 두시는가 하는 질문으로 요약이 된다. 그때마다 여러가지 얘기들로 하나님이 우리와 그 고통 속에 함께 하신다는 말들로 위로를 하지만, 결국은 자신이 알아내고 자신이 인정을 해야하는 답이 나와야 하는게 바로 그 고통과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부분이 아닐까 싶다.
필립 얀시가 전해주는 이야기들은 정말 가슴이 아팠다. 아니 생각하고 싶지 않은 부분들이 무척이나 많았음을 고백한다. 프롤로그의 하나님이 무슨 소용인가? 하는 부분이 먼저 발목을 잡는다. 하나님이 무슨 소용인가!!!! 그 질문은 이 세상 누구나에게 필요한 질문이다. 어렵고 힘들 때, 그리고 질병에 걸렸을 때, 사랑하는 사람들의 어려움을 봤을 때 등등! 하지만 그 질문에 답을 나의 말로 하지 않는다면, 이 세상을 사는 내내 우리는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아무리 멋진 작가의 말이라도, 아무리 멋진 탤런트의 멘트라도, 천상의 목소리로 들리는 가수의 노래라 할지라도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게 되는 것이고, 결국 내 맘을 울리는 나의 답으로 그 질문에 답을 해야만 진정한 자유함이 있을 것이다.
필립 얀시가 세계 여러 곳을 다니면서, 겪었던 , 들었던 삶의 이야기들 속에서 그는 ' 하나님이 무슨 소용인가?'하는 답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너무도 어린 나이에 몸을 팔게 되는 곳에 넘겨진 여자 아이들, 그 속에서 생겨난 생명도 키울 수 없게 되는, 마약과 여러가지 중독에 빠져드는 아이들! 하루 아침에 함께 공부하던 학우가 총부리를 겨누고 잔인하게 동료들들 죽이고 자신도 죽는 이야기들! 폭탄을 실은 비행기가 쌍둥이 빌딩에 부딪혀 무고한 생명들을 희생시킨 이야기들!
필립 얀시는 여러 나라들을 다니면서 고통의 현장들을 본다. 그 속에서 너무나 고통당하는, 그래서 말을 듣기조차 거북스럽고 고통스러운 이야기들을 들으면선 하나님의 임재를 깨닫는다. 작은 부분들을, 하지만 정작 너무나 중요한 부분들을 만지시는 하나님을.........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이 세상에 교회를 세우신 이유들을 잘 생각해야 할 것이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악이 성하는 이유들을,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먼저 믿는 신앙인들이 예수님처럼 하라는 지상 명령을 내림이라는 고백들을 한다. 예수님이 어쩜 세상에 제일 더러운 나같은 사람을 위해 대속의 제물로 돌아가심을 통해, 죽음이 아닌 삶으로의 초대라는 은혜의 길을 제시하셨다는 것이다. 나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이 주신 힘으로 할 수 있음을 믿고 쫓아 가는 것! 그게 하나님이 이 세상에 교회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남기신 은혜의 뜻이 아닐까 싶다.
지금도 힘겨워 하는 많은 친구들과 사람들을 위해 우리는 역시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은혜의 뜻으로 인도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