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벌써 10여년 전인가 보다. 우리나라는 '모래시계'라는 드라마의 '열풍'에 휩싸인 적이 있었다. '폼 나는 사랑의 테마' 정도로 확고히 자리를 굳혔던 이 드라마의 주제가가, 사실은 체첸공화국과 러시아의 처절한 투쟁 속에서 탄생한 '장송곡'이었음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았던 그런 시절이었다. 무릇 장송곡은 이 '백학' 정도는 되어야 할 것이다.듣는 이들의 가슴을 '묵직하게' 만들어 주어야 할 소명을 지니고 있으니까 말이다. 이 소설 <큰 물고기>는 장송곡이다. 아들 윌리엄이 아버지 에드워드 블룸을 떠나보내는 장송곡. 그런데 이 장송곡은 유쾌하다. 늙어서 죽어가는 아버지와, 그 아버지가 늙지 않았을 때의 파란만장한 삶이 계속 교차되어 보여지는데도 말이다. "아니, '사람'이 죽어가는데(그것도 아버지가!) 어떻게 유쾌할 수가 있어?"라고 반문할 수 있겠다. 그런데 여기에 이 소설이 비밀이 있다. 에드워드 블룸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신화 속의 큰 물고기'이기 때문이다. 에드워드 블룸은 비범했다. 그가 태어나던 날 '비가 왔을 뿐'만 아니라, 암탉이 그의 무릎 위에서 알을 낳기도 했고, 열두살 때에는 발자국 소리만 듣고도 그 사람이 누구인지 맞힐 수 있었고, 그의 고향 애쉴랜드에 있는 책은 전화번호부까지 다 읽었다. 이러한 '징조'들은 에드워드 블룸이 큰 물고기가 될 것임을 '강력하게' 시사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문지기개에게 손가락을 물어뜯긴 채 애쉴랜드를 떠나지 못한 이들과 달리 당당하게 애쉴랜드를 벗어나 '신화'가 된다. 먹보 거인과 담판을 짓고, 노파의 유리 눈알을 찾아주고, 앨러배마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고, 나중에는 마음에 드는 도시 하나를 통째로 사 들이기도 하는 그를, 주의의 모든 사람들은 '신화'로 인정한다. 단 한 명, 그의 아들 '윌리엄'을 제외하고. '신화'가 되기 위해, '큰 물고기'가 되기 위해 전 세계를 누비고 돌아다녀야 했던 에드워드는, 다른 이들에겐 비록 신화였으나 그의 아들 윌리엄에겐 '낯선 사람'이자 '허풍쟁이'일 수 밖에 없었다. 늘 모험을 찾아 떠돌던 에드워드가 늙어서, 죽음을 기다리기 위해 결국 찾은 곳은 그의 집이었고 그 곳에서 그는 그의 아들에게 자신이 삶이 얼마나 위대했는가를 알리고 싶어한다. 신화로서, 큰 물고기로서 전 세계를 누비며 모험을 해 온 그도, 결국 '아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늙은 아버지'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그 날도 에드워드는 윌리엄에게 자신의 파란만장한 모험담을 들려준다. 에드워드 특유의 유머감각을 한껏 살려서. 그리고 아들에게 묻는다. "진정 사람을 위대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너는 아니?" "한 남자가 자기 아들의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위대하다고 해도 좋지 않을까요." 에드워드가 원했던 대답은 이것이 아니었을텐데. 결국 이 소설은 이렇게 진행되어 간다. '아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늙은 아버지'와 '마지막 순간만큼은 신화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아버지'를 만나고 싶은 아들이 빚어내는 안타까운 반목. 이제 에드워드는 곧 죽는다. 죽음이 코 앞에 다가왔음을 에드워드도, 윌리엄도 눈치챈다. 에드워드는 마지막으로(또 필사적으로) 아들에게 묻는다. "그리고 나는 아버지로서 네게 한두가지는 가르치려고 했다. 난 정말 나름대로 노력했어. 집에 많이 있지는 못 했지만 함께 있을 때는 네게 가르치려고 했어. 그래서 알고 싶은 게 있는데 - 내가 내 일을 제대로 한 것 같니? 내가 죽기 전에만 말해다오. 내가 네게 가르친 것이 무엇인지 말해다오. 내가 인생에 대해 네게 가르친 것 모두 말해주면 내가 죽을 때 걱정 없이 죽을 테니까. 그냥 말해다오." 죽음이 드리워지는 아버지의 푸른 회색빛 눈을 들여보던 윌리엄은 아버지의 마지막 질문에 대답을 시작한다. 내게 이 소설에서 가장 멋진 장면을 꼽으라면 나는 망설임 없이 이 장면을 꼽겠다. (윌리엄이 어떤 대답을 했는지 말하는 것은'브루스 윌리스가 귀신이래~'라고 외치고 도망갔다던 그 '역적'과 행보를 같이 하는 것임을 잘 알기에 여러분들의 소중한 몫으로 남겨 놓는다.) 사실 이 소설은 이 장면에서 끝나는 것이 더 좋았을(지극히 개인적인 바람)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니엘 월러스는 애초에 에드워드 블룸이라는 주인공이 나오는 '신화'를 쓰고자 했던 모양이다. 신화의 끝에 '여운'이라는 것이 없었다는 지난 과거의 전통을 충실히 따른다. 그래서 그는 이 소설을 '환상적'으로 만들어주는 그 유명한 마지막 장면을 굳이 덧붙이고야 만다. (물론 신화의 마지막 장면으로서 손색이 없는, 멋진 피날레다.) 혹 나중에, 다니엘 월러스가 이 장면을 피날레로 삼은 것에 대해 후회를 하지는 않을까 하며 혼자 생각해 보게도 되는데, 이런 '말도 안 되는 오만한 상상' 역시 독서의 큰 즐거움이 아니랴! (핑계 좋다!) 마지막 장면에 대한 진실이 어떠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책장을 정신없이 넘기게 만드는 다니엘 월러스의 유쾌하고 신명나는 글솜씨는 에릭 시걸의 그것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엉뚱한 해프닝이나 우스꽝스러운 단어의 조합으로 웃음을 만드는 것(나는 개인적으로 이러한 글을 '슬랩스틱 코미디'라고 규정짓고 있다)이 아니다. 물 흐르듯 흘러가는 상황의 묘사가 어느 순간 '쿡!'하고 웃게 만드는 것, 이게 고수다. 김유정이 그렇고, 에릭 시걸이 그렇고, 이 작가 다니엘 월러스가 그렇다. 이렇게 빼어난 재주를 지닌 다니엘 월러스가 들려주는 '신화'이고 보면 책장이 '유쾌한 속도'로 팔랑팔랑 넘어가는 것은 자명한 이치이리라. 그러나 나는 그 유쾌함의 저 아래에서 조용히 고개를 내미는 '슬픔'을 맛 본다. 이렇게 '은근히' 장치된 슬픔은, 대 놓고 들이대며 눈물을 강요하는 경우(영화 '편지'의 성당씬, 영화 '실미도'의 마지막 버스 씬 등이 대표적인 예가 될는지)와는 그 격이 다르고 위력이 다르다. '그 슬픔은 어디서 유래하는가?'라는 질문을 자연스레 던져보게 된다. 그리고 내 나름대로의 답을 얻는다. 이제 나는 내 아버지를 만나면 그에게 물을 것이다. '아버지 젊었을 때 여자한테 인기 많았다면서요? 혹시 엄마 몰래 바람 피우고 그러신 거 아녜요?'라고. 그리고 그가 들려주는 '신화'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들어볼 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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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내 편견 때문에, 인생의 중요한 것을 몇 가지는 놓치면서 살아왔을 것 같다. 2004년 봄 즈음인가...영화 개봉과 맞물려 소개된, 이 책의 리뷰를 김해공항 라운지에서 봤지만...'큰 물고기'라는 제목이 맘에 들지 않아서, 이 책을 사지 않았다. 그러다... 영화도 놓쳤다.
그러다, 올 해 우연히 장영희 교수님의 타계소식을 접하고, 그 번역서를 찾아보다, 이 책이 그 분의 번역이라는 것을 확인 했고...책의 리뷰(정확히는 별의 개수)를 보다...살짝 구미가 당겼었다.(2달 전 즈음의 일이다)
[2] 이 책을 보고 '아버지와 아들' '에드워드 블룸' '어쨌든 고단할 것 같은 삶'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아버지와 아들' 죽기 직전의 아버지와 그 옆을 지키는 아들이 있다. 뭔가 단도직입적으로 묻고자 하는 아들과 그런 물음을 농담으로 회피 하는 아버지. 결과적으로 해피엔딩이지만... 그 과정속에서 느껴지는 꼭 집어 말할 수 없는 뭔가에 대해서...나는 글로 쓸 수는 없다. 하지만...책을 덮고 났을 때, 아버지의 입장도, 아들의 입장도...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이건 누가 옳고 그르다' 혹은 뻔하게 '아버지를 이해해야한다'는 교훈 넘치는 메세지가 아니다. 그건 철저하게 읽는 사람의 몫이다.
'에드워드 블룸' 환상적인 이야기의 주인공인 에드워드 블룸의 무용담이 책의 주된 내용이다. 이것이 진실일지 거짓일지..판가름 하는 것도 독자의 몫이다. 그런데..이야기 속의 이야기의 주인공인 에드워드 블룸의 삶에 대해서...나는 부러워진다. 태생부터 환상적였지만...자신감과 용기와 신의 축복과 행운과...이런 저런 것들을 갖고..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지... 그가 아버지로써, 남편으로써는 어땠을지 모르겠으나...그의 무용담은 더할 나위없이 매력 그 자체였다.
'어쨌든 고단할 것 같은 삶' 아버지가 들려줬던 이야기들은 과연 무엇이였을까. 험란한 삶 속에서..그가 갖지 못했으나, 갖고 싶었던 그 무엇이였을까...아니면, 실제로 그가 갖고 있던 것이였기 때문에 아들에게도 가르쳐 주고 싶었던 것일까... 어쨌든 삶은 고단하다,에 대해서는 전국민이 공감하는 바일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여건 속에서, 삶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는...책을 읽고 마음을 정리하는 독자처럼,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몫일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땠을까...하늘에 맹세꼬 떳떳하고 현명하고 지혜로웠나?
책의 막바지 부분에 가서는 눈물이 콸콸 쏟아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렁 그렁 맺히기도 한다. 전반적으로 잘 읽히고...읽고 났을 때에도...이런 저런 여운이 남아서, 마음이 붕~ 뜨는 기분이였다.
나에게는 아버지는 어떤 의미였으려나. 나와 아버지 사이에는...좋고 나쁜 감정이 없다. 아들인 나에게 아버지로써 뭔가 가르치려고 했던 모습도 없거니와 술먹고 두들겨 패거나 했던 감정의 골, 역시 없다. 어떤 모습으로든... 기억나는 것이 없으니...이렇게 뜨악하게 지내는 것도 무리는 아니리라.
그나저나,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맨 마지막 '큰 물고기'에 관련된 챕터는 차라리 없었으면 좋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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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월러스 저/장영희 역| 동아시아| 원서:Big Fish(1998)| 282쪽| 394g| 2004년02월11일| 정가:9,000원
2004년 3월에 팀버든의 [빅 피쉬]를 봤다. 그리고 6년이 다 되도록 원서가 있는 줄도 모르다가 친구블로그에서 발견하고 특별한 할인행사가 있어 냉금 사서 읽었다. 만약 두껍고 복잡한 책이라면 주저했겠지만 요즘처럼 얇은 책에 마음이 가는 때에 딱 어울리는 책이 아니었나 싶다.
아버지 에드워드 블룸의 이야기는 황당하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하다. 차고 넘치는 과장이 섞여있을 그의 이야기들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에쉴랜드를 떠나다」였다. 떠나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에드워드가 에쉴랜드 밖으로 나가면서 만나게 되는 중간계의 환타지는 '모든 것이 있지만 중요한 것이 없는 세상'이었다. 도전하고 싶어 떠나지만 남겨진 마음과 확신 없는 발걸음으로 스스로의 발목을 잡은 사람들이 모여서 떠나지도 돌아가지도 못하는 곳.
"정상적인 사람들과 그들이 갖고 있는 온갖 계획 말이야. 이 비와 이 축축함. 이것은 일종의 찌꺼기지. 꿈의 찌꺼기 말일세. 이루 셀 수 없이 많은 꿈 말이야. 나의 꿈과 그의 꿈과 그리고 자네의 꿈."
그 둥둥 떠다니는 꿈들이 습습하게 가라앉은 마을의 사람들은 에드워드의 발목도 잡는다. 스스로 떠나지 못한 곳에 다른 이도 떠나지 못하게 하는 염려와 걱정을 넘어선 시기심이 느껴졌다. 누구에게나 있는 그 부정적인 충고가 와 닿았다. 개에게 손가락을 빼앗기지 않고 무사히 에쉴랜드를 떠난 애드워드에게 마음으로 박수를 보냈다.
윌리엄의 아버지 애드워드는 결국 큰 물고기가 되어 떠난다. 떠남도 화려하다. 부모님의 병수발로 겨울 한계절을 보내고 나서 생각해 보니, 내가 부모님을 떠나보낼 날도 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혈압에 술, 담배를 좋아하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윌리엄 처럼 아버지를 멋지게 떠나보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한번도 마음 깊은 이야기를 나눠보지 못한 아버지다. 아버지의 환갑에 제주도로 일주일간 여행 떠나 그제서야 조금은 가까워졌다고 느껴졌던 아버지. 하지만 여행갔다 돌아왔을 때 잠깐 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마음 속의 이야기를 밖으로 내 놓지 못한 아버지에게 대화를 요구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이해한다. 두번의 월남 파병과 그때 생긴 다리의 관통상, 농기계 장사를 할때 잘려나간 가운데 손가락과 큰 사고로 잘려나간 발가락 두개. 아버지의 신체적인 상처만으로도 많은 충격과 이야기가 있을텐데. 아버지는 언제나 조용하다.
책을 덮으며, 팀버튼의 [빅 피쉬]를 떠올려 봤으나, 몇장면 밖에 떠오르지를 않았다. 원작보다 훨씬 환타지 성격이 강했던 것으로 기억되는 그 영화를 다시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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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버튼이 만들고 이완 맥그리거가 주연했던 2004년도 개봉 영화 '빅 피쉬'의 원작 소설이다.
당시 흥행면에서는 시원찮았던 것 같은데, 어떻든 나는 나름 영화를 감동적으로 본데다가, 원작이 있단 말을 듣곤 꼭 찾아 읽어봐야지... 원작은 더 재미있는 거 아냐? 뭐 그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는지라, 뒤늦게 이 책을 발견하곤 덥석 읽어버렸다.
아... 그런데... 정말이지... 영화를 먼저 보는게 아니었어...
팀버튼이 영화를 얼마나 멋지게 만들었는지 절실히 느껴버렸다.
책이 나쁜 건 아니다. 뭐 그렇다고 썩 재미있는 편도 아니었지만, 뭐랄까... 매력 넘치던 영화 속 이완 맥그리거가 그냥 흔해빠진 현실의 세일즈맨이 되어버린 느낌이랄까.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읽는 내내 좀 지루했다.
이래저래 영화의 장면들이 떠오르면서 그래 영화가 백만배는 나았어... 뭐 그런 생각만 하다 끝난 책.
다행스러운 건 책이 얇고 작아서 그나만 금방 읽었다는 정도...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비추천. 영화를 안 본 사람이라면 영화 보기 전에 보길 권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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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을 나열하자면 한도 끝도 없지만, 가장 짧은 시간 내에 '인생이 즐겁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유머'다. 많은 책들 속에서도 필요성을 강조하듯이, 가장 짧은 한마디와 단순한 생각으로 누군가를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유머'다. 길게 이어지는 지루한 대화 속에서 지루함을 탈피해주는 것도 '유머'고, 삶이 힘들면 힘들수록 우리가 매달리는 것도 웃음을 주는 '유머'다.
그리고 일생에서 절대로 '유머'와 '상상력'을 버리지 않았던 한 남자가 있다. 그 존재 자체로 이야기가 되어버린 한 남자. 그는 소설 <큰 물고기> 속의 '에드워드 블룸'이다. 큰 연못에서 헤엄치는 큰 물고기가 되고자 했던 '에드워드 블룸'. 그러나 항상 즐겁고 엉뚱하고 재밌는 이야기가 가득했던 그의 삶에도 뜻밖의 우연은 다가오고, 에드워드는 병상에 눕게 된다. 투병 상황 속에서도 아버지는 '나는 이렇게 죽지 않아, 미래를 봤다'며 농담을 멈추지 않는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아들 '윌리엄 블룸'은 착잡하고 불만이 가득하다. 아들은 아버지의 '믿거나 말거나 모험담' 대신 현실적인 이야기, 인생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우습지 않은 상황에 억지로 웃어야 한다는 것은 답답하기만 하고 이해할 수 없다. 아들은 멋지게 포장된 위대한 아버지의 모습보다는, 굴곡이 있더라도 진실되게 보여지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기를 원한다.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그는 한 곳에서 정착할 수 없는 자유로운 사람이었고, 누구나 사랑하게 만드는 사교성이 넘치는 사람이었으며, 원하는 것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어떤 위험도 무릅썼고, 누구보다도 낭만적이고, 세상을 보는 일을 즐겼다. 평생 동안 가족들에게 들려준 이야기 속에는 어릴 때 이상한 노파의 눈을 통해 미래를 본 이야기, 어느 날 강가에서 신비스러운 소녀를 만나게 된 이야기, 엄청난 거인을 만난 영웅담, 전쟁에서 살아남아 돌아온 이야기... 믿거나 말거나 환상적인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어느 것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구분할 수 없는 이야기들.
아들은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리고 우리에게 옮겨주면서 점점 깨달아나간다. 아버지가 정말로 물려주고 싶어 했던 것은, 자신의 위대한 영웅담이나 많은 사람들을 매혹시켰던 사교성이나 그 무엇이 아니라, 즐겁게 이야기하게 만드는 '웃음'이라는 것을. 위대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아버지의 삶이 진실이든 허구이든, 특별한 이야기를 믿고 즐길 수 있는 것임을.
'아버지'란 이름을 달고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삶을 걸어가고 있다. 그들이 모두 위대한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도 연못 속에서 위풍당당하게 헤엄치는 위대한 '큰 물고기'가 되고 싶은 사람일 수 있다. 살아가면서 점점 줄어들고 있는 아버지라는 존재를 기억해주기를, 각자만의 특별한 이야기를 가진 위대한 '큰 물고기'로서 우리가 이해해주기를 소설은 말하고 있다. 존재 자체로 이야기가 된 너무나 특별한 아버지인 '에드워드 블룸'의 입을 빌려 소설은 말한다. "누군가가 한 이야기를 기억해준다면 그는 영원히 죽진 않는 거란다"라고.
아버지는 항상 뭔가를 끊임없이 추구하며 살았다. 무엇이든 그것을 성취하는 것 자체는 중요하지 않았다. 성취하기까지의 투쟁이 중요했다. 결코 끝나지 않은 싸움이었다. 그래서 그는 일하고 또 일했다. 아버지는 한 번 나가면 여러 주 동안 뉴욕이나 유럽, 일본과 같은 곳을 돌아다녔다. 그러다가는 어느 날 불쑥 이상한 시간, 이를테면 밤 아홉 시쯤 집에 돌아오곤 했다. 그리고 마실 것을 만들어 들고는 명목상 한 가정의 아버지로서의 자리인 그의 의자를 메운 채 앉아 있곤 했다. 그럴 때면 으레 그는 멋진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28p)
그래서 우리는 두 명의 백치처럼 얼굴에 어설픈 미소를 띤 채 꼼짝없이 이러고 앉아있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이 그어지는 이정표가 되는 마지막 날, 즉 산 자와 죽은 자 모두에게 있어 모든 것이 변하게 될 그날의 마지막 순간에 무엇을 말하고 어떤 화해를 할 수 있는가? (110p)
우리 모두가 아버지를 그렇게 생각해왔다. 이른 아침 박스 팬티만 입고 있는 모습을 봤어도, 그리고 한밤중에 모든 프로그램이 끝난 후에도 텔레비전 앞에 앉아, 그의 꿈꾸는 얼굴을 마치 수의처럼 덮고 있는 푸른 빛 속에서 입을 벌리고 잠들어 있는 모습을 봤어도 우리는 왠지 아버지가 신과 같다고 생각했다. 웃음의 신, 입만 열면 '옛날이 이런 사람이 있었단다'로 시작하는 신, 아니면 적어도 사람들이 좀 더 웃게 하기 위해 이 땅에 온 신과 어떤 인간 여자 사이에 태어난 혼혈 신이라고 생각했다. (166p)
그래도 나는 이 모든 일이 다 잘 될 것이고, 그러다가 결국 다시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이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의 병까지도 하나의 은유로 생각했다. 그의 병은 그가 이 세상에 싫증났다는 것을 의미했다. 세상이 너무 재미없어진 것이다. 거인도 없고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유리 눈도 없고 생명을 구해주었더니 나중에 나타나서 목숨을 구해준 강의 소녀도 이젠 없었다. 이제는 단지 에드워드 블룸, 하나의 평범한 남자일 뿐이었다. 나는 그가 숨기고 싶은 장면을 살짝 엿보고 있는 것뿐이었다. 그것은 그의 잘못이 아니었다. 단지 이 세상이 이제는 그가 거창하게 살 수 있는 마술적인 힘을 갖고 있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의 병은 좀더 나은 곳으로 가기 위한 승차권이었다. 나는 이제 그걸 안다. (249p)
* 제목이, 아시겠죠? 팀 버튼 감독의 영화로 나왔던 원작 소설입니다 :) 개인적으로 마지막 장면은.. 정말 좋았어요. 소설과 영화 속에서 둘 다.
아 참, 이 책은 절판되었어요. 중고로 구하시거나 빌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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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가급적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어보려 노력 중이다. 소설 중에서도 '판타지' 쪽에 손을 대지 않은 것 같아 일부러 찾아보다가 우연히 눈에 띈 이 책. 참 단순하지만... 책을 고를 때 표지에 많이 이끌린다. ㅋ BIG FISH 라는 독특한 나무 사이에 서 있는 사람. 어딘갈 향해 이끌리듯 걸어가는 것 같기도 하고. 웬지 모르게 환상적이라 느껴졌다.
크게 3부로 나뉘며 짧막한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고 읽기 좋게 넉넉한 행자간으로 판타지에 익숙하지 않았지만 장면들을 머리속으로 그려가며 부담없이 읽을 수 있었다.
죽음의 영토에서는 문장이 끝나지 않는다. 모두 그 문장이 어떻게 끝날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 p. 26
내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나와 아버지는 어떤 대화를 나눌수 있을까? 돌이켜 보면 나는 '아버지'라는 한 '남자'의 삶을 잘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이 책을 보며 한 때는 내 아버지도 큰 꿈을 품었던 '소년' 이었을 거란 생각을 해보니 마냥 신기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다.
내 아버지의 '이야기'는 에드워드 볼룸처럼 허무맹랑하고 과장된 모험담이 가득 메우고 있진 않겠지만, 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아버지의 딸인 나에겐 '큰 사람'으로 '큰 물고기'로 기억될 이야기일 것이 분명하다.
"누군가가 한 이야기를 기억해 준다면 그는 영원히 죽지 않는 거란다. 그걸 알고 있니?" --- p. 36
내가 아버지의 삶을 자랑스러워 하길... 그리고 나 또한 아버지보다 더 큰 꿈을 품길... 그게 모든 아버지와 부모님의 바람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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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빅 피시란 영화가 개봉했을 때 참 보고 싶어했었는데 못 봤었다. 그리고 아직까지 그 영화는 못 보고 있다. 결국은 그 영화의 원작인 소설책을 읽었다. 임종을 앞둔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 사실 내용은 그다지 재밌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허무맹랑하다고 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통해서 아버지는 아들에게 위대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아버지에게 아들은 진지한 대화를 원하지만... 아버지는 끝까지 농담으로 아들에게 웃음을 주려고 한다. 아버지는 어쩌면 아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들에게 세상 속에서의 자유로운 삶을 보여 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 책 한번쯤은 아버지라는 존재를 돌아보게 만드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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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기다리는 한 남자가 있다. 거인과 대결하고 인어와 사귀었으며 맨손으로 사나운 개의 심장을 꺼내 소녀를 구하고 사람보다 더 큰 메기를 타고 수중세계를 여행한 남자. 입만 열면 무용담이 끊이지 않는, 누구나 좋아하는 그 남자는 누군가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작 그는 모두의 사랑을 받고 단 하나뿐인 아들에게는 미움을 받고 있다.
전 세계를 돌면서 수많은 모험을 하고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일생에 단 한번 겪기도 힘든 불가사의한 일을 매일매일 겪은 남자는 병이 들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의 아들은 그런 아버지가 미웠다. 자신이 필요할때 곁에 없었던 아버지였고 진지한 이야기를 하려고하면 늘 농담으로 피해버린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엄마와 자신을 남겨두고 전세계를 돌면서 신기한 경험을 하고 병이 들어서야 겨우 집에 돌아와 손님방에 들어누운 염치없는 아버지가 미운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그가 바랬던 것은 아들의 존경과 사랑이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의 인정보다는 단 한명뿐인 아들이 "아버지는 위대한 사람이에요"라고 말해주길 바랬다. 그래서 자신의 이야기를 과장하고 꾸며서 아들에게 들려준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들은 아버지의 그런 점을 오히려 싫어했는데도 말이다. 우리의 아버지들은 어떠한가. 그들도 우리에게 이렇게 위대해 보여지기를 바랬던가. 우리 스스로 아버지는 위대하다, 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나. 누구보다도 강하고 단단하며 항상 올려다봐야 하는 아버지를 바랬던 것도 사실이다. 알고 보면 아버지도 늙고 지치면 죽고 마는 보통 사람일 뿐인데.
애드워드는 아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과장된 허무맹랑한 이야기들 뿐이다. 너무 빨리 달려서 출발하자마자 도착점에 도달해 있었다던지, 사람보다 큰 메기를 타고 호수 속으로 들어가니 그 곳에 사람들이 집을 집고 살고 있었다던지 하는 얘기들은 누가 들어도 믿지 못할 이야기들이다. 머리 두개 달린 기생, 몇사람의 키만큼 큰 거인 이야기는 또 어떠한가.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그 모든 무용담들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를 따질 필요가 없다. 그건은 그저 아버지가 아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스스로 아들에게 신화로 남기를 원했던 바람이기 때문이다. 그거면 족하다. 소녀를 구하기 위해 사납게 달려드는 개의 심장을 손으로 꺼낸 이야기는 그것이 과연 가능한가?라고 따질 필요 없이 아버지가 한 소녀의 목숨을 구했다는 그 사실만으로 이미 환상적이기 때문이다.
결국 아버지는 그의 파란만장한 삶처럼 죽음마져도 드라마틱하게 맞이한다. 침대에 누워 죽음을 기다리기 보다는 호수로 가서 '빅 피쉬'가 된다. 사람을 구하고 어부들에게 장난을 치기 좋아하는 큰 물고기는 그 후로 많은 사람들에게 목격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 말을 믿지 않을테지만 사실 믿고 안 믿고는 상관없다.
우리들의 아버지들 또한 다르지 않다. 평생을 일과 책임으로 살아오다가 큰 물고기가 되어 떠나는 아버지들. 그들이 애드워드처럼 엄청나고 환상적인 무용담을 가지고 있지 못할 수도 있다. 때로는 과묵하고 무뚝뚝할 수도 있고 농담과 장난으로 진지함 따윈 찾아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 모두에게 '빅 피쉬'이다. 그리고 한 세대의 빅 피쉬는 다음 세대에게, 또 다음세대에게 환상적이고 드라마틱한 세상의 문을 열어주고 호수 속으로 사라질 뿐이다. 이 책의 쓰여진 모든 이야기를 믿도록하자. 아버지의 이름으로 눈을 감으면 그가 만났던 인어를 우리 또한 만날 수 있다.
@ 2009 05 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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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과 유머, 그리고 감동적인 결말이 기다리는 책. 그러나 이러한 수식은 팀 버튼이 다니엘 월러스의 <Big Fish>를 원작으로 만든 동명의 영화 <Big Fish>를 보기 전에만 가능하다. 동화적 상상력과 이야기의 짜임새에서 다니엘 월러스는 팀 버튼에게 한판승을 당하고 말았다. 원작보다 영화가 더 감동적인 드문 경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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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어떤이에게는 가슴속깊은 버팀목으로 자리잡고 있을것이고 어떤이에게는 지겹도록 존재가치가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읽는 동안 나의 아버지를 돌아보지는 않았다. 전혀 비교도 안될뿐더러 그냥 내아버지와는 상관없는 동화속의 영웅정도로만 느껴졌기 때문이다.
뭐 맘대로 이야기를 꾸며내자면 옛날 깊은 산속에서 나무를 하러간 아버지가 돌아오시는 길에 호랑이를 만났지만, 용감하게 그 호랑이를 때려눕혀가지고 그 가죽을 벗겨 집으로 돌아와서 담요로 삼았다...라든지 바다에 고기잡이 아버지가 먼바다까지 갔다가 폭풍우를 만났지만, 그 폭풍도 다 헤치고 배도 부숴졌지만, 물속깊이 잠수해서 육지까지 무사히 살아남았다...라든지
엄청 아버지를 신화화시켜 놓은것같았다. (다시보니 덧댄 책표지에 '"나의 아버지는 하나의 신화가 되었다" 라고 씌여있군요.. ) 그게 뭐 어쩌구 어째? 유감까지 느낄정도는 아니지만, 그냥 내가 느끼는 이 책은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어서(sf 를 좋아하지 않아서인지..) 가슴에 뭔가가 확 와닿았다기보다는 동화속 이야기를 읽어보고 있는 정도였다고나 할까?
맞다. 신화속의 큰물고기 이야기다. 죽음을 앞두고도 유쾌하게 아들에게 얘기를 들려줄 수 있는건 누구든 쉽게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에서 인지 난 유머러스한 아버지가 대부분 내마음에 채웠졌다. 우리말로 역마살이 껴서 집에 붙어있지 못한것만 제외한다면 좀 거창하게 세상사를 아들에게 들려준다고 해도 흠 될건 없을 것이다.
영화로 보고싶다. 상상의 나래속의 펼쳐진 물속 숲속 거인들을 어떻게 영상화시켜놓았는지가 더 궁금하다. [인상깊은구절] "의사 선생님, 의사 선생님, 이제 59초밖에 더 못 살겠어요. - 잠깐, 1분만 더 기다려요. 의사 선생님, 의사 선생님, 제 동생이 불펜을 삼켰어요. - 그럼 연필로 써요. 의사 선생님, 의사 선생님, 친구가 자기가 늘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다고 생각해요. - 들어오라고 해요. - 그럴 수 없어요. 이 층에는 서지 않거든요. 의사 선생님, 의사 선생님, 안녕하셨수?- 아, 예, 한동안 못 뵈었네요. - 네, 그동안 좀 아팠다우. 의사 선생님, 의사 선생님, 금방 나아서 멀쩡히 걸어 나가게 해주신다더니 정말 걸어 나왔지요.- 아 그래요? 다행이군요.- 병원비가 하도 비싸 차를 팔았기 때문에 걸어 나왔다는 말이유." "아마 이런 우스갯소리를 수백 가지쯤 알고 있을 걸." 아버지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