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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 - 책을 읽고 양을 잃다 _ 스토리매니악 책을 좋아하여 읽는 사람에게, 책에 대한 이야기는 늘 즐겁다. 나 또한 그렇다. 때문에 책 이야기를 쓰는 독서가, 장서가의 책을 챙겨 보는 편이다. 그런 책을 읽을 때마다 감탄하고는 한다. 많은 책들을 읽는 그 독서력하며, 그 안에서 나름의 지혜를 뽑아내는 능력, 그것을 아울러 자신만의 관점으로 표현할 줄 아는 필력까지, 감탄과 공감을 늘 반복하게 된다. 그들의 책에 대한 애정, 책에 대한 경의, 책에 대한 집착, 책에 대한 즐거움을 읽고 있노라면, 나 또한 그들의 감정에 동화되는 기분을 맛볼 수 있다. 또, 책 속에 들어 있는 책에 대한 이야기를 읽는 재미나, 그 책 속의 책을 읽는 작가만의 관점을 만날 때, 책에 푹 빠지게 된다.
이 책 <책을 읽고 양을 잃다>도 그런 책이다. 오랜 기간 편집자로 경력을 쌓아온 작가가, 책을 사랑하는 마니아로서의 생각을 엮어낸 에세이다. 책을 읽는 내내 책에 대한 작가의 해박한 지식과 꼼꼼하기 그지 없는 관찰력 그리고 책에 대한 애정을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감정들을 이렇게 풀어놓을 수도 있구나 싶다. 책과의 만남을 이야기하거나 책이 간직하고 있는 이야기, 또는 책과 그에 얽힌 사람 이야기를 잘 묶어 놓았다. 단순히 지식을 묶어 놓은 것만이 아니라, 작가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더해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마치 책을 읽으며 담아 두었던 감정과 느낌들을 하나 둘 꺼내놓다 보니, 그 기억들이 꼬리를 물고 늘어져 와르르 쏟아지는 듯한 느낌의 책이다. 이 많은 책에 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담아 두었을까, 그것을 하나 둘 꺼내어 쓸 때 어떤 기분이었을까를 생각하게 한다. 그만큼 저자의 책에 대한 이야기는 책에 대한 다양한 감정을 불러 온다. 때로는 '나도 그런 적이 있었는데' 하며 감탄하고, 때로는 '이런 기분을 나도 느껴보고 싶다' 안달하게 된다.
책에 대한 다양한 감정을 끌어내게 만드는 책이지만, 조금 답답한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것은 작가가 말하는 이야기가 일본 역사에 등장하는 많은 책, 학자, 작가, 예술가 등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언급된 많은 사람들 책을 알기도 어려운데,이것이 일본의 책과 사람을 이야기하는 것이라 더 어려운 면이 있다. 일본 역사를 몰라 어렵기도 하고, 인물에 대한 이해가 없어 어렵기도 하다. 생각보다 이런 부분이 많아 어떤 산문은 통째로 이해가 안 가는 경우도 있다. 만만치 않은 부분이다.
어려운 부분은 제쳐 두고, 이해 되는 부분만 읽어도 괜찮을 책이다. 책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는 그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기에 충분하다. 이렇게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책에 대해 이야기 하려면 어느 정도의 교양과 지식 그리고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이렇게나마 그의 책 이야기를 건너 듣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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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렇듯 제목을 궁금히 여기며 책을 이리저리 살폈다. 사실 이 책은 제목만 보고 덜컥 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용의 어느 한 장(章)에서 가져온 것이 아닐까 해서 목차를 봐도 나오지 않았는데, 책을 다 읽고 에필로그에 이르러서야 제목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제목은 장자의 [독서양망]의 고사를 따른 것이라 한다. 양을 치던 남자가 독서에 열중한 나머지 양을 잃어버렸다는 내용인데 지은이는 남의 일 같지 않는 이야기라고 했다. 독서가 얼마나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지에 대한 예라고 했는데, 나도 앞으로 수많은 양을 잃어버리고 싶다. 책에는 각주가 많다. 이는 지은이가 언급하는 내용의 상당부분이 낯선 배경지식을 필요로 한다는 뜻이다. 논문이 연상되는 빼곡한 각주, 낯선 인명과 고전 인용을 보며 ‘잘못된 선택’이었나 하며 뒷걸음질 쳐졌다. 꾹 참고 책장을 넘기다보니 ‘일본에세이스트상’을 수상할 만한하다 싶다. 동서고금을 넘나들며 종횡무진 펼쳐내는 인상적인 장면과 표현, 정경에 대한 사유는 깊고 그윽하다. 낯설고 어렵지만 흥미롭다. 언뜻 밍밍하고 별 맛이 없게 느껴지지만 씹으면 씹을수록 특유의 향취와 맛이 나고 영양가까지 풍부한 나물 같은 책이다. 지은이의 글은 소리 내지 않고 우아하게 걷는 걸음이 연상된다. 그래서인지 책의 후반에 나오는 해설에서 지은이는 비평가도 수필가도 아닌 문장가라고 하는 편이 적합하다고 설명한다. 당연하게 여겨지는 묵독이 옛날에는 놀라운 일이었다고 한다. 지은이는 음독이 일반적이었던 옛날을 상상하며 “전설적인 알렉산드리아 도서관도 오늘날 상상하듯이 장중하고 조용한 장소라 생각하지 어려울 정도로 무수한 목소리가 뒤섞이고 술렁거리고 번잡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고서 마니아이자 오랜 세월동안 편집자로 일했다는 지은이는 독특하고 다양한 시각으로 책의 세계를 탐색하고 천천히 음미하는 독서과정을 보여주는 것 같다. 오셀로에 나오는 문장 “번쩍이는 칼을 거두어라. 밤이슬에 칼이 녹슨다.”을 놓고 군더더기 없는 설명이 절묘한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예라고 책은 말한다. 오셀로의 재치와 존대함과 호방함을 나타내는 동시에 밤이슬이 내리고 달빛이 비치는 음산한 그날 밤의 정경이 ‘시’같은 한마디로 부각된다는 것이다. 세상에 초연한 사라들을 소개하는 대목은 웃음이 난다. 유명한 본초학자 오노 란잔의 손자가 부인과 함께 와서 란잔 곁에 3년 이상 머물렀는데 어느 날 란잔이 “못 보던 부인이 있는데 저분은 누구신가”라고 물었다고 하고 해부학자 다구치 가즈미는 연구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청일전쟁이 일어난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그러면서 지은이는 세상에 초연한 사람은 대체로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는 사람들인데, 동료로서는 어떨지 모르지만 친구로서는 좋을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지은이 쓰루가야 신이치는 책을 읽으며 옛사람과 마음이 통하는 느낌을 들려주고 책에 대한 깊은 사랑이 얼마나 훌륭한 통찰로 이어질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생경한 인명, 고전과 한시가 가득하고 동서양의 수많은 책을 다룬 수준 높은 에세이를 번역하기가 ‘어렵지만 재밌었다’는 옮긴이의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책을 읽고 양을 잃다]는 일본문화와 문학에 조예가 깊거나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재밌게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