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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벨라스케스를 모른다. 알고 싶지도 않고....그런데 난 인상파의 작품을 좋아한다. 인상주의가 몬지도 잘 모르면서... 벨라스케스를 알게 된건 EBS에서 방송되었던 <시녀들>이란 작품때문이었다..굉장히 짧은 프로그램인데 그림속에의 진짜 주인공을 누구일까?라는 주제로 그림을 설명하는 내용이었다. 이 미스테리를 풀기 위해 이 책을 구매했고...벨라스케스를 알게 되었다.
벨라스케스는 평민의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그의 아버지는 인두세를 면제받는 준귀족의 신분을 지닌 자였다. 탄탄대로를 닦아놓은 아버지 덕에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젊은 나이에 궁정화가로 임명된 벨라스케스..너무 잘나가서 별다른일 없이 잘먹고 잘살았다. 거기다 필리프4세의 무한한 은총을 받아 그가 없는 동안은 자신의 초상화제작을 누구에게도 맡기지 않았다니 질투까지 느껴질 지경이다. 그의 삶을 논외로 하고 중요한 건 내가 알고 싶은 <시녀들>에 대한 명확한 답이 나와있지 않다는거다. 말은 많은데 결론은 없음..이런거랄까...
그런데 인상주의가 대체 뭘까? 난 그의 그림을 보면서도 잘 모르겠다. 인상파로 유명한 모네,마네와 같은 화가들의 작품을 봐도 왜 이게 인상주의를 나타낸건지 잘모르겠다. 많이 부족한 나를 느끼며 좀 더 이론적인 공부를 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
| 벨라스케즈의 그림은 리얼리티 그 자체다. 예를 들어, '계란을 부치는 노파'는 각 오브제의 입체감을 그것들의 특성에 따라 잘 살리고 있으며, 차분한 구도에 형체에 대한 빛의 작용과 원근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마르타와 마리아의 집에 온 그리스도' 역시 그런 의미에서, 훌륭하다. 특히, '세비야의 물장수'에서 보여주는 크리스탈 유리잔과 항아리의 대비는 감탄스럽다. 그는 정말 빛을 이용하고 색을 병치하여 최대한의 입체감을 살려내는 작가이다. 나는 그림에는 문외한이다. 푸코의 '말과 사물'에서 그가 벨라스케즈의 '궁녀들' 그림으로 시대의 에피스테메를 보여줬던 것에서 벨라스케즈에게 흥미를 느꼈을 따름이다. 그는 17세기 에스파냐 미술을 대표하고, 19세기 프랑스 인상주주의의 선구자였다고 한다. 주로 근엄한 초상화를 그렸지만, 빛을 통해서 사물의 본질을 드러내려고 했다는 점에서 그 영향은 컸다. |
| 스페인 여행을 하실 예정이라면,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만큼은 꼭 들리셔야 겠지요. 바르셀로나에서는 가는 곳곳마다 가우디의 숨결을 접할 수 있고, 또한 피카소 미술관과 미로 미술관에서 그들 작품세계의 심도있는 접근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한 바르셀로나 근교에서는 달리 미술관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에는 여러 유명 작품을 만날 수 있을 뿐 아니라 벨라스케스와 고야의 감동적인 작품을 다수 보유하고 있습니다. 마드리드에 가기 전에 벨라스케스와 고야를 미리 공부하고 가면 프라도 미술관의 진가를 잘 느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야와는 달리 벨라스케스에 관련된 국내 서적을 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이책을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일부 사진이 흑백이고 제본이 튼튼하지 않아 일부가 튿어져버리기는 했어도, 크기와 두께, 내용이 부담스럽지 않아 '시공 디스커버리 고야'와 함께 비행기 안에서 읽어보기 안성마춤입니다. 벨라스케스의 작품세계는 너무나도 매력적이어서 그의 작품에 매료되면 더 큰 화집이 욕심나실 꺼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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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스케스는 주로 귀족들의 초상화를 그렸던 귀족화가이다. 귀족하면 화려하고 근엄한,가면을 쓰고있는듯한 딱딱한 표정의 초상화가 생각난다. 그러나 벨라스케스가 역사에 그 이름을 남길 수 있었던 화가가 될수 있었던 이유는 그러한 장애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살아있는 인간적인 풍모와 따스한 체온을 느낄수 있게 하기때문이 아닌가 한다. 또한 이 책은 화가로서의 벨라스케스뿐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벨라스케스도 엿볼수 있다.
자신의 재능을 인정받고자 하는 노력,신분상승에의 욕구,안락한 삶을 영위하고자하는 생활인으로서의 화가가 살아있는 사람으로서 다가온다. 하지만 뭐니 뭐니해도 이 책의 장점은 화가의 붓 터치가 느껴지는 그림이다. 군왕으로서의 당당함,왕족으로서의 화려한 삶,출세한 귀족으로서의 허영... 이 모든것과 함께 느껴지는 어린이의 순수함,지배자로서의 고뇌가 함께 느껴진다. 또한 몇세기 후에 나타날 인상파를 예견하게하는 희미한 빛의 광채가 더욱 눈을 즐겁게 한다. 인상파 화가를 좋아하는 사람은 물론 그림에 문외한인 분들께도 일독을 권하고 싶게하는 책이다. [인상깊은구절] 한 어린아이가 지닌 매력,허약함,사실적인 외모를 연상시키는데 성공한 화가는 드물다. 3살짜리 <마르가리타 공주의="" 초상화="">에서 벨라스케스는 어린 공주의 통통한 뺨,천진스렁운 눈, 숱이 적은 머리카락으로써 장미빛과 은빛 드레스의 회화적인 기교를 제어하고 있다. 1666년,15세의 나이에 공주는 사촌인 레오폴트 황제와 결혼하여 빈에서 살게 된다. 그녀는 22세의 나이에 생을 마감한다 만일 벨라스케스가 그녀의 잊을 수 없는 이 이미지를 남겨놓지 않았다면,누가 그 어린 황후를 기억이나 하겠는가?마르가리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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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로서는 최고의 대우와 환경을 제공받았던 자이지만, 나는 엉뚱하게 책을 읽는 내내 어떠한 얽매임에 대해서나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사실 최고라는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그 스스로가 장애물을 생성하게 되어 있다. 최고라는 현상에서 비롯되는 사람들의 기대는 다시 같은 현상, 즉 같은 현상에서 빚어지는 최고를 바라게 되어 있고, 기대에 부흥을 하지 못하는 경우 정반대의 경우로 치달아 비난에 휩싸일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연유로 보통은 계속해서 기대에 부흥하는 결과가 나오는 것이 최상이라고 생각하겠지만, 한걸음 더 나아가 생각해 볼 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사실상 어떠한 인지도를 기반으로 한 계속되는 성공은 오히려 또 다른 발전 내지는 새로움을 걸고 넘어뜨리는 소위 걸림돌이 되고 마는 연고이고, 이를 깨닫게 되는 당사자는 그 종사하는 분야가 특히 창조라는 베이스를 바탕으로 깔고 있는 경우 마치 발목을 잡힌 것 마냥 유쾌하지 않은 기분마저 맛보게 된다. 일반적으로 대중들은 색다른 시도가 나타났을 때, 이에 관한 가치판단을 곧바로 내리지 않는다. 시일을 두고 살펴 이 시도가 그들이 인정하는 특정 일반에서 널리 받아들여진다고 여길 경우, 그제서야 그들은 또 다른 창조가 빚어진 데 대해 기뻐하고 만족한다는 반응을 보인다. 물론 계속해서 이런 긍정적인 분위기가 조성된다면야 적어도 예술가들은 더할 나위 없는 행복감에 젖어들 것이다.(그 행복감이 종국에 주게 될 무료함은 차치하고서라도.)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 얄팍한 대중들은 기대하지도 않았던 것이 도출한 부정적인 요소를 두고 이런 저런 눈치에 감춰졌던 의심의 속내를 부풀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손가락질하기에 바빠지게 된다. 사람들은, 귀족들은, 펠리페 4세 및 왕비와 왕자, 공주 등의 왕족들은 분명 그들이 인정하는 최고의 궁중화가로서 벨라스케스에게 기대하는 바가 있었을 것이다. 그는 언제나 최상의 결과를 빚어냈고, 모두는 이 귀족화가를 대우하기에 바빴다. 그러나 어떠한 모양이 됐든지 간에 모든 형식의 틀은 인간만이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자유의지를 억압하고 통제하며 이를 느끼는 당사자로 하여금 답답한 감정을 갖게 한다. 자유란 그에 따르는 책임의식을 필요로 한다는 교과서적 진리를 포함하게 되어있고, 그가 모든 권위를 뒤로 한 채 이를 쟁취하는 모험을 허락 했을 리는 만무하다. 그는 명예와 권력, 이로부터 얻어지는 특권을 사랑했다. 아이러니는 이러한 것들을 선택하는 것이 그의 자유의지에서 비롯된 것이고, 그가 이에 따르는 책임을 감수했다는 것이다. 자유를 포기하는 것. 이 책은 벨라스케스가 1649년 계속적인 펠리페 4세의 송환명령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에서 2년 반 이상 머물렀던 이유에 관해서 주관적인 언급을 자제했지만, 무지한 나는 제 멋대로 미루어 보건데 사실상 앞에서 구구절절히 늘어놓은 내용을 반증하고 있다고 추측했다. 뭐 어찌됐든 그는 최고의 실력으로 최상의 작품을 뽐내며 당대부터 현대를 내려오면서 최대의 찬사를 받고 있다. 뭐 그의 마음이야 어떠했든. 그가 그린 마르가리타 공주의 그림들은 어찌나 아름답던지, 그 외에도 그의 훌륭한 작품들을 도판으로나마 감상하게 된 이번 기회를 가진 것은 정말 좋았다. 하지만 그의 인생 스토리들은 하나같이 어찌나 지루하던지. 당대와 후대의 수많은 화가들에게 영감을 주고도 그 자신은 그저 어느 정도의 스타작가 반열에만 머무르고 있는 것이 어쩜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