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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받지 못할, 용서해선 안 되는 범죄
"용서받지 못할, 용서해선 안 되는 범죄" 내용보기
과연 신은 그들을 용서해줄까? 아니, 신이란 게 정말로 있긴 한가? 이런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계속 들었다. 너무나 많은 부정의와 부조리로 가득찬 사회, 뉴스를 볼 때마다 한숨이 나오는 사회. 권력과 관련한 범죄가 심심하면 터져나오는 사회에서 정의롭다는 신을 믿는 사람들이 순진해 보일 정도다. 이 책은 <국가범죄>란 제목에 걸맞게 국가범죄란 무엇인지 설명하고 국가범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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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연 신은 그들을 용서해줄까? 아니, 신이란 게 정말로 있긴 한가? 이런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계속 들었다. 너무나 많은 부정의와 부조리로 가득찬 사회, 뉴스를 볼 때마다 한숨이 나오는 사회. 권력과 관련한 범죄가 심심하면 터져나오는 사회에서 정의롭다는 신을 믿는 사람들이 순진해 보일 정도다.
 이 책은 <국가범죄>란 제목에 걸맞게 국가범죄란 무엇인지 설명하고 국가범죄에 대해 어떻게 정상화하며 정의를 재구축하려고 했는지 여러 국내외 사례를 들어 차근차근 알려준다.
 에필로그를 포함해 총 열세 장으로 이루어지는데 1장 '국가범죄란 무엇인가'에선 국가범죄가 무엇인지 설명하고 국가범죄를 청산하는 방식과 원칙을 알기 쉽게 항목을 나눠서 보여줬다. 우선 '국가범죄'란 국가권력에 의한 중대한 인권유린행위를 말한다. 국가범죄와 관련한 이론과 논의는 20세기 국제인도법과 국가책임법의 발전에 따라서 많아졌다. 특히 제2차세계대전 후 '뉘른베르크 법정'에서 관철된 규범과 원칙들이 앞선 역할을 했다. 국제인도법 발전과정에서 과거에는 국가 간 전쟁을 전제로 했다면 이제는 비국제적인 무력충돌 상황뿐만 아니라 평화 시까지 포함하게 되었다. 권력자들은 전시, 평시 구별하지 않고 자국 시민 중 비판적 세력 또는 이질적 집단을 적으로 규정하고 학살, 박해하기 때문이란다.
 또한 국가범죄의 주체는 제한이 없어 공식적인 국가기구, 국가의 후원을 받는 집단뿐만 아니라 사기업이나 민간조직도 국가범죄의 도구가 된다. 그리고 국가범죄는 대부분 합법적으로 자행된다.
 현대세계사의 과거청산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추축국의 전쟁범죄와 인도에 관한 범죄를 처벌하고자 설치된 뉘른베르크 법정과 도쿄 법정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과거청산의 원칙이 전후 청산 법정에서 제대로 관철되지 못했다. 전쟁과 역사에 대한 책임은 최소한으로 이행되었고 과거청산은 미소 대결구도가 강화되면서 이데올로기적으로 희석되었다. 과거 파시즘과 제국주의에 저항했던 세력들은 나치청산과정에서 복권되었으나 상당수는 다시 적대세력으로 규정되었는데 이는 냉전시대의 지배적인 현상이었다. 두 번째 세계적 과거청산은 80년대 소련이 붕괴해 냉전체제가 무너지면서 일어났다. 소련 밑에 있던 국가들이 붕괴함과 동시에 미국의 후원을 받던 권위주의 군사독재 체제들도 무너졌다.
 이행기 정의는 과거청산 국면에 작동하는 정의로 인권침해를 발생시킨 억압적인 구체제를 인권과 민주주의 관점에서 혁신하려는 헌정주의적 개념으로 이행기 정의를 실현하려는 노력은 세계사적인 흐름이라고 한다.
 2장 '처벌적 정의'에선 과거청산할 때 처벌을 반대한다는 처벌 반대론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한다. 처벌 반대론 진영에서는 과거청산법정은 '승리자 법정'이란 비난을 제기하곤 한다는데 저자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반론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개설된 연합국의 군사법정, 독재자를 처단하는 법정에선 언제나 나오는 항변이다. 그러나 패배와 실각은 처벌권 발동의 정치적 여건일 뿐으로 전범 여부는 승패와 상관없다. 그들이 전쟁범죄와 인도에 반한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면 형사법정 자체가 구성될 수 없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지배권력에 대적하는 법정이 존재할 수 있는지 따진다면 승리사의 법정이란 비판은 비현실적이다. 권력을 가진 법정만이 정의를 실현할 수 있고 불의를 심판할 수 있으며 권력 없는 법정은 양심의 가책을 추궁하는 수준에 머무를 뿐이다. 또한 처벌 반대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사후입법이나 자연법에 입각한 처벌은 죄형법정주의에 반한다고 주장하는데 영미법적 원리에서 사후입법 금지의 원리는 국제관습법 영역에까지 적용되진 않는단다. 인도에 반한 범죄에 대한 처벌은 실질적이고 자연법적 고려 아래에서 정당화된다. 새로운 정권이 등장하면서 구체제의 범죄자를 국민 화합이라는 명분으로 사면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명분상 화합을 내세우지만 정의를 허구화하는 행위다. 국제인권법을 중대하게 위반한 경우나 국제인도법을 심각하게 위반한 범죄자를 정치적으로 사면하는 것은 국제인도법에 반하는 행위라는데 우린 너무나 쉽게 사면을 남발했다. 아무리 화해와 통합이 힐요했다 해도 제대로 벌을 줬어야했는데 그러지 않았으니 지금 이 모양 이 꼴이 된 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어이없게도 국가범죄에도 공소시효를 적용하지만, 국제관습법에서 전쟁범죄나 인도에 관한 범죄는 공소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참으로 얼마나 우리나라가 국가범죄를 얼렁뚱땅 처벌했는지 알 만했다. 한심하고 부끄럽고 슬프고 비참했다. 면책사유 부분에선 가해자들의 변명이 어디선가 많이 들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씁쓸했다. '법과 명령에 따라 했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 했다, 그 시대에는 모두가 공범이다, 생계를 위해서 혹은 강요 때문에 했다, 내가 안 했으면 더욱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어쩜 우리나라 친일파들 변명과 똑같은지!
 이렇게 국가 범죄와 관련한 주요 사항을 1, 2장에서 설명하고 3장부터는 우리나라와 외국의 실례를 들어 국가범죄가 어떻게 일어났고 어떻게 청산되고 있는지 보여준다. 당연하게도 친일파 청산이 맨 먼저 나오는데 군 내 자살 처리자 문제, 정치사법, 제주 43군사재판, 나치 불법 청산 등등 많은 사례를 들면서 각 사례를 한 장에서 설명한 다음 그에 대해 이론적으로 접근한다. 우리나라 과거 정권들의 황당하고 어이없는 짓을 보니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국과수에서 사인을 조작한 것도 그렇지만 영사증명서란 객관적이지 못한 문서로 사람을 잡아들인 것도 그랬다. 요즘 한창 '싸인'이란 드라마를 보는데 드라마 앞부분에서 실제 조직과는 관련 없다는 글귀를 볼 때마다 한숨만 나온다. 역시 실제는 드라마보다 앞서는가보다. 한국전쟁 때 빨갱이로 몰려 잡혀가고 죽임당한 사람들 이야기에선 오래전 아버지께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버지는 전쟁이 일어나고 북한군이 밀고 내려올 때 갓난아기였다. 운 나쁘게도 당시 갓난아기였던 아버지가 몹시 아파서 할아버지, 할머니는 미처 피난을 못 가셨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안 지나(기간은 잘 기억이 안 난다.) 수복되었는데 피난 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할아버지는 빨갱이로 몰려 잡혀갈 뻔했으나 마을 이장님이 이 사람은 그런 사람 아니라고 해줘서 잡혀가지 않으셨다니 잡혀간 사람들의 처참한 말로를 생각하면 만약 그때 할아버지께서 잡혀가셨다면 어떻게 됐을지 상상하니 끔찍했다. 그리고 11장 '나치 불법 청산' 관련자료1에서 2차세계대전 당시 독일에서 여호와의 증인 신자를 많이 사형했다는 자료가 나오는데 여호와의 증인이 상당히 오래된 종파였다는 데에도 놀랐지만, 그때도 살벌한 나치 정권 치하에서도 병역을 거부하고 죽음을 택했다는 데서 더 놀랐다. 나는 무신론자이므로 여호와의 증인 역시 탐탁지 않으나 만약 진실로 자신들이 평화와 신을 위한 종교라고 믿는다면 이 정도 신념과 용기는 있어야하지 않나 싶다. 권력과 결탁해서 뭘 하나님께 바치느니 마느니 헛소리하지 말고. 그런 소릴 지껄이는 무리보다는 차라리 이 사람들이 순수하게 신을 믿는 사람들이란 생각조차 들었다. 12장 '홀로코스트 부인'에선 국가범죄를 부인하는 세력들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서 그에 대해 어떻게 대처했는지 어떤 대처방식이 있고 그 타당성을 논의한다. 일해 공원 예도 드는데 이 부분은 국가범죄의 사면이 어떻게 귀결되기 쉬운지 잘 보여주는 사례라는 생각이 들었다. 에필로그 '광주의 유산'에서는 국가범죄의 재발을 막는 궁극적인 해법은 균질한 삶을 보장하는 경제와 분산적이고 공동체적으로 공유되는 권력에 기초한 정치사회라고 하는데 그런 의미로 보면 지금 우리사회는 과연 그러한 국가범죄가 재발되지 않으리라고 보장 못하는 위태로운 사회로 보인다. 아직도 국가범죄 관련해서 제대로 된 청산이 이루어지지 못했고 정의로운 사회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으니. 아무튼 그래도 이런 책이 나올 수 있었으니 아직은 절망하지 않으련다.

a****o 2011.03.08. 신고 공감 4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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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를 사는 우리 모두의 빚, 국가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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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를 사는 우리 모두의 빚, 국가범죄 - 이재승 「국가범죄」     얼마 전까지는 길거리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과거사 진상 규명에 관한 플랜카드나 진실화해위원회의 이름을 어째 작년부터는 눈에 띄지 않는다고 조금 고개만 갸우뚱했을 뿐이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2010년 6월 진실화해위원회가 업무를 종료했다고 한다. 얼마만큼의 진실을 밝히고 얼마만큼의 화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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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를 사는 우리 모두의 빚, 국가범죄

- 이재승 「국가범죄」

 


  얼마 전까지는 길거리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과거사 진상 규명에 관한 플랜카드나 진실화해위원회의 이름을 어째 작년부터는 눈에 띄지 않는다고 조금 고개만 갸우뚱했을 뿐이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2010년 6월 진실화해위원회가 업무를 종료했다고 한다. 얼마만큼의 진실을 밝히고 얼마만큼의 화해를 이루었는지 어느 누구도 속 시원히 말해주는 이는 없었다. 이재승의 「국가범죄」를 읽고 나니 알겠다. 속 시원히 밝혀진 진실도, 이루어진 화해도 없이 업무가 종료된 것이다.

누구나 원하든 원치 않든 한 국가에 소속이 되게 마련이다. 국민은 국가의 보호를 받으며 권리와 의무를 다한다. 하지만 때때로 아니 그보다는 자주 국가는 국민을 보호하지 못하는 것 같다. 보호하지 않는다고 해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지금은 많은 이들의 희생 덕분으로 덜하기는 하지만 우리 나라가 다른 곳에 가서 아주 자랑스럽게 우리나라는 완벽한 민주주의 국가요, 법치주의 국가라고 말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분명 있다. 이 책은 그 석연치 않은 구석에 대한 답을 담고 있다.

  시작은 과거사에서부터 시작한다. 독일의 나치 청산 과정과 비교하면서 우리나라가 과거에 행했던 반인권적이고 비도덕적인 수많은 사례들이 지금 어떻게 대우받고 있는지, 그 대우가 과연 정당한 것인지 충분한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물론 답은 부정적이다. 일제 강점기에 식민지로서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우리 민족이 가진 억울한 역사에 대해서 아직도 친일파에 대한 청산이 완전하지 않다. 더불어 그 이후 독재 정권과 군사정권을 통해 피해를 받은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누명이 아직 벗겨지지 않은 채 남아있고, 불과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이루어진 얼토 당토 않게 억울하게 범죄자가 된 사람들이 아직 구명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정의롭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독일은 나치 정권이었던 12년간의 집약적인 사건들 속에서 수많은 피해자와 극악한 범죄자들이 생산되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청산의 작업이 조금 더 단순하게 ‘자동 파기’, ‘전면 무효’라는 말로 진행될 수 있었다. 물론 통일의 과정에서는 그보다는 더 복잡했겠지만 우리 나라의 경우 일제 강점기를 거쳐 독재 정권, 군사 정권, 군사 법정, 간첩 사건, 민주화 운동 등 더욱 더 복잡한 절차가 예상된다.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비인권적으로 이루어진 모든 사건에 대하여 전면 무효화 하고 공개 사죄를 하며 피해 보상을 하면 될 것이다. 하지만 힘의 역학 관계에 의해 조정이 시원하게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책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유난히 정치 재판으로 인한 피해자가 많다고 한다. 이는 사법 관료제의 구조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는데, 이 말은 정의감이 투철하면 고위 법관이 되는 것이 어렵고 따라서 결국 사법부 역시 당 정부의 힘에 따를 수 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현재도 매스컴을 통해 보도되는 사법부의 모습은 입법부의 의견과 크게 다르지 않으므로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법의 정의가 아쉬운 대한 민국이 진정 법치국가인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개혁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과거사 청산을 위해 조직이 결성되고 여러 시도가 있었지만 10년간의 개혁 정부 역시 그 긴 시간동안 이룬 것은 미약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수 세력만 탓할 것이 아니라 개혁 세력 역시 정치적 힘겨루기에 더 큰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법과 정치는 누구를 위한 것인지 , 무엇을 위함인지 그들은 알면서 그러는 것이었을까. 보수 정권이 들어서면서 진실화해위원회는 업무를 종료하였고 인권교육의 중요성은 더욱 약화되었다. 이 말은 우리가 청산하고 배상하고 사죄하여야 할 일이 과거에 대한 현재의 과제로 국한된 것이 아니라 현재에 대한 미래의 과제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며, 이는 여러 사례들을 통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학문과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고, 정치적 목적을 위한 인권탄압이 자행되고 있으며, 말도 안되는 법들이 그럴 듯한 말로 큰 힘을 발휘하며 필요한 법들은 태어나기를 기다리기도 지쳐가는, 국민이 의지할 곳이 진정 내 나라인가 하는 의문이 드는 현실이 무겁다. 학창 시절 우리나라는 사법권이 독립되어 정의로운 나라라고만 믿었다. 살아가면서 법과 마주하는 경우는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다. 지킨다면 불편하게 만날 일도 없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난 후, 법을 준수하는, 법망에서 안전하게 살아가는 내가 그리고 우리가 과연 정의로운 국민인가 하는 데에는 의문이 든다. 그런 면에서 피해를 무릅쓰고 악법에 대항한 사람들에게 지금 편안하게 살아가는 우리는 빚을 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빚을 지는 마음이라도 불편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t****3 2011.02.1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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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라는 집단이 쌓아온 업보들의 무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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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이라는 것에 대해 꽤나 무심하게 살아왔다고 할 수 있을 듯하다. 그러면서도 직업적인 이유로 좁게는 일부 행정적인 법의 테두리에서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이 많고, 한편으로 사회에 대한, 사회의 정의에 대한 관심과 열정으로 악법과 개혁에 대해 조금은 읽고 들어봤다고 하겠다. 그러면서도 다양한 사회의 부조리와 적폐들에 대해서, 그것들이 이 사회에서 그리고 인류사에서 어떠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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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이라는 것에 대해 꽤나 무심하게 살아왔다고 할 수 있을 듯하다. 그러면서도 직업적인 이유로 좁게는 일부 행정적인 법의 테두리에서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이 많고, 한편으로 사회에 대한, 사회의 정의에 대한 관심과 열정으로 악법과 개혁에 대해 조금은 읽고 들어봤다고 하겠다. 그러면서도 다양한 사회의 부조리와 적폐들에 대해서, 그것들이 이 사회에서 그리고 인류사에서 어떠한 논리로 행해지고 묻혀져왔던가를 생각해본 적은 별로 없다. 체계적으로 말이다. 그저 표피적인 위법과 탈법에 대한 분노, 상식을 어긋나는 법시스템에 대하나 염증 정도를 느껴왔을 뿐. 법과 상식, 도덕에 대해 인간이 어떤식으로 고민해왔는지에 대해선 무심했던 것 같다. 아마 앞으로도 크게 다르진 않겠지만, 이 책을 접함으로써 조금은 그 생각이 변할 듯 하다. 


"... 만약 국민의 의식이 '과거를 캐면 돈이 나오냐' 수준에 머문다면 이행기 정의는 요원한 일이다. 돌이켜 보면, 바로 이 속물성이 과거 인권침해를 묵인했던 의식의 밑바탕이다. 결국 '소극적으로 부정했던 시민들'의 부채 의식을 주권적 의지로 고양할 때 이행기 정의는 구현된다." '부채의식'... 꽤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이다. 그 단어를 아무리 사회비판 서적이라 하더라도 '법'을 논하는 책해서 다시 볼 것이란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 그래, 적어도 이 사회는 부채의식을 망각하고 부정하는 것이 나름 극에 달한 상태에서 속물성에 뼈속까지 중독되어 있는 상태라는 생각이 든다. 극우들뿐만 아니라 정말 절대다수가 '부채의식'은 커녕 긍정적인 용어라 할 '연대의식'이란 말만 해도 중독의 부작용같은 거부반응을 보이니까.


"형사적 책임은 구체적으로 처벌 법규를 위반한 자의 책임이고, 정치적 책임은 정치적 결정을 내리고 시행한 정치공동체 일원으로서 일반 시민이 지는 책임을 의미한다. 도적적 책임은 개인이 행했던 모든 행동과 하지 않았던 것에 대해 개인으로서 지는 책임을 의민한다. 도덕적 책임의 세계에서는 '명령은 명령이다'라는 원칙은 적용되지 않는다. 형이상학적 책임은 동료 인간으로서 세상의 부정의와 잔혹에 대해 품은 죄책감을 의미한다." 국가범죄라는 대상을 두고 인간이 이 네가지 카테고리의 느낌을 가질 것이란 생각을 해 본다. 이러한 감수성에 대한 논의를 법학자가 거론할 것이란 생각을 못했다는 것, 그 부분이 이 책의 저자, 그리고 그가 논하는 법이론이 신선했던 이유이다. 또한 인간이 저지를 수 많은 국가범죄를 통해 그에 대한 성찰을 통해 나름 인간 지성은 이룩한 것이 있구나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동시에 이 사회의 성찰 수준은 얼마큼이나 부족한가 하는 안타까움도 있었고.


"한편 형이상학적 책임은 타자의 불행을 막지 못하고 살아남았을 때 느끼는 죄책감에 가깝다. 국가범죄가 만들어 낸 부당한 비극을 혼자서 감내해야 했던 희생자들 편에 서 주지 못했다는 자각에서 비롯된 책임이라고 할 수 있으며, 성격상 매우 종교적이다.' 야스퍼스의 시각이라는 이 문장은 바로 앞의 '부채의식'을, 그것이 가진 형이상학적인 성격을 설명해주는 것 같다. 이 사회에서는 이러한 접근을 이상적이다 또는 추상적이라고 할 듯 하고, 그렇기에 비현실적이라고 배제할 듯하다. 지극히 천민적인 자본주의의 속물적 근성이 뼈속까지 물든 사회에 대한 개인적 판다니다. 하지만, 그 수많은 살아남은 자들의 괴로움을 정말 조금도 느끼지 못하고 살고 있는가? 세월호에서 살아남은 아이들이 겪는 고통을 그냥 트라우마라고, 개인적인 충격의 질환적 표출이라고 상정하는 것 같은 이 사회의 통념이 새삼 매우 속물적으로 느껴진다.


"... 즉, 파업행위는 범죄라는 전제에서 출발하고 있다. ... 아무튼 파업행위가 법적인 요건을 다 갖춘 다음에야 위법성이 조각된다는 법해석은 반노동자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노동자의 근로 제공을 아예 사용자의 업무로 규정한다면, 노동자들을 영속적인 임금노예로 둘 수 있게 된다. .... 자본주의사회에서 노동력 이외에는 가진 것이 없는 이들이 자신을 지키려고 할 때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노동력 제공 거부를 범죄시하는 것은 노동계급에 대한 근원적인 적대심에서 나온 판단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 이 책에서 반복적으로 인용이 되는 2차대전 이후의 독일의 사례가 여러 측면에서 이론적인 근거가 되고 있는데, 그러면서 이 사회에서 행해졌던 다양한 국가폭력 또한 진단되고 있는데, 그러한 정치사법 구조의 원인중의 하나로 제시되는 노동에 대한 자본의 시각과 법제도를 통한 억압의 체계, 그 배경에 있는 법논리적 시각의 무서운 폭력성을 저 인용부분에서 느꼈다. 본질적인 권리를 상대방의 업무, 그러니까 사회적 체계속에서 상식적이고 일상적인 것으로 전제함으로써, 천부적인 권리이자 한계상황을 범죄적인 상황으로 몰아가려는 것이 국가폭력적인 법시스템의 문제로구나 하는 의식 말이다. 계급투쟁은 노동계급의 자본가에 대한 도전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자본가들의 노동계급에 대한 폭력에서 비롯된다는 해석이 법체계에서 어떻게 각인되는 것인지를 살짝 이해할 듯도 하다.


"같은 것을 같게, 다른 것을 다르게 취급하려는 의지를 전적으로 결여한 규율은 실정법적으로 유효하고, 합목적적이고, 물론 필연적이고, 그리하여 절대적으로도 효력이 있을 수 있지만, 정의에 최소한 봉사하려는 것만이 법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것에게 법이란 명칭을 부여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진리에 봉사하는 것만이 과학-물론 실패할 수도 있고, 성공할 수도 있지만-이듯이, 정의를 최소한 목적으로 삼는 것만이 법이기 때문이다. 정의는 법의 본성을 규정하는 이념이다." 저자의 이론적 근거라 할 라드부르흐의 주장이란다. 수백페이지에 달하는 인류의 법에 기반한 폭력의 역사를 보면서, 이러한 주장은 정말 한줄기 빛같은 희망을 던져주는 듯 했다. 그래 내가 어릴때 배웠던 올바른 것은 이것이었어. 현실적인 법이라는 것이 이러한 원리를 얼마나 구현하던 그렇지 못하던, 이런 주장을 했고, 그것을 실천하려 했던 이들이 있다는 것은 염세주의에 빠지지 않게 해주는 희망임에 분명하다. 법철학을 잘 모르는 입장에서 이 책의 이론적 배경을 더 설명할 역량은 안되지만, 어쨌건 이러한 이상적인 입장에서 라드부르흐라는 이는 좀 더 현실적인 주장을 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법률가'들의 소명에 대해서 말이다. 


"... 법관은 법률의 효력 의사에 효력을 부여하고, 자신의 법 감정을 권위적인 법 명령에 희생시키고, 오로지 무엇이 적법한 것인지만 묻고, 무엇이 정의로운지는 결코 묻지 않는 것이 직업적인 의무이다. 즉 법관은 철학적(이상적) 효력이론의 시행자가 아니라 실정법의 노예로서 법률적 효력이론만을 숭배해야 한다. 라드부르흐의 표현에 따르면 '세상이 망하지 않도록 정의를 세워라'는 명제(철학적 효력이론)가 입법자에게 해당한다면, '세상이 망하더라도 정의를 세워라'는 명제(법률적 효력이론)는 법관에게 해당한다...." 이러한 입장정리가 나름 해석의 여지가 많았던 듯 하다. 문외한의 입장에서 앞에서 여러차례 언급한 형의상학적 법의 의미와 이상은 대부분 입법자적인 카테고리에서 적용되는 것으로 판단되는데, 사실 그같은 주장의 상당부분은 법관의 카테고리에 적용하고자 하는 것이었다는 측면에서 말이다. 같은 문장의 서술 순서를 뒤집어버리면, 정말 그동안 수없이 행해졌던 법률체계의 합목적적인 집행에 최우선을 두었던 것 같은, 폭력적 국가권력 하의 수많은 악법들의 집행에 충실했던 다양한 법관들의 행위에 면죄부를 주는 문장으로 해석되기도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저자의 해석을 나름 소화시키고자 한다면, 법관이 법 집행에 대해 가져야 할 소명의식은 입법자가 고민하는 수준의 철학적 무게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라드부르흐드의 주장의 상당부분이 자연법적인 정의를 수호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일진대, 그 법을 사고하는 철학적(형이상학적) 수준을 잔뜩 고양시켜놓고, 그를 집행하는 이 역시 그 수준에서 사고하고 행위하라는 주장을 하는 것이라면, 단지 주어진 법조문과 판례들을 기계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법관의 의무를 방기하는 범죄라는 주장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물론 논쟁적인 해석일 수도 있겠지만, 이 책에서 여러차례 언급되는 '법률적 불법'이라는 표현이 가지는 역설적인 개념이 여기에 연결된다고 본다. 사실 판사의 결정이 정말로 많은 개개인의 삶을 규정하고 구속했던것이 인류사에서 무수히 발견된다. 세속적으로, 그 업무가 나름 과중하고 스트레스가 많고, 고도의 기술적인 지식적인 노력이 필요한 일이며, 그렇기 때문에 보장되고 대우받아애 한다고 말할 수 있겠으나, 본질적으로 그 수준이 철학적 또는 종교적 수준, 달리 말하면 법체계라는 것을 발생하게 된 원초적인 시점에서의 감수성과 사색이 거의 탈색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해보게된다. 적어도 이 책에서 제시되는 여러 성찰적인 근거들을 접하기 전에, 개인적으로 법관들이 가져야할 책임을 이렇게까지 생각해본 적은 없다. 그저 논리의 달인들... 정도의 이미지만 있었을 뿐이다. 한두차례 가볍게 언급되기만 하는 '소크라테스의 악법도 법이다'라는 경구, 그것을 아주 일천한 수준에서 접하고 수용하게 만들었던 이 사회의 교육제도를 떠올려보면, '악법은 법률적 불법이다'라는 나름의 해석이 나 스스로에게 던져주는 무게감이 꽤나 묵직했다.


"... 소위 보수 세력에게는 인권 감각이 총체적으로 결여되어 있다. 이것을 개혁 세력의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개혁 세력이 지난 10년 동안 인권을 보수 세력과 공유해야 할 자산으로 인식하지 못했다는 문제가 드러난다. 인권의 시각을, 논쟁에서 보수 세력을 제압한 무기의 하나 정도로 취급했다. 또한 보수 세력 안에서도 인권을 공유 자산으로 인정하는 합리적 세력을 찾기 어렵다. 권위주의의 후속 세대에 불과한 이들이 법과 인권의 갈등 가능성을 지적으로 또는 윤리적으로 소화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래서 인권이 사라진 대신 검찰과 경찰이 국회와 아스팔트를 배회하며 법과 질서에 대한 유아적 집착만 보여주고 있다...." 특히 마지막 문장은 법을 철학적으로 고민하지 못하는 이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나만 그럴지도)를 진단한다고 본다. 반발적으로 법과 질서라는 것에 대한 근원모를 거부감도 조성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법이란 것이 나름 순수할 수 있는 거구나, 법관은 나름 종교인의 수준의 요구를 받을 수 있는 거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정치에 대한 염증이 만연한 사회라고 보는데, 법에 대해서는 정말 무지하고 둔감한 사회란 성찰을 해본다. 검찰개혁이라는 화두가 있다고들 하던데, 정말 사법체계에 대한 개혁, 이 사회의 판사들에 대한 검증이 필요한게 아닌가 싶다.  



YES마니아 : 골드 e****s 2017.04.0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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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와 눈물, 오류로 얼룩진 한국 현대사
"피와 눈물, 오류로 얼룩진 한국 현대사" 내용보기
정의를 위해 낮은 곳을 응시하는 자라면 독일 작가 브레히트의 뮤즈를 알 것이다.   "콤럼버스가 미국을 발견한 해는?'    이 질문은 1943년 브레히트가 망명지 미국에서 쓴 <민주적 판사>라는 시에 나오는 것이다. 이민자들의 시민권 인정 사건을 담당한 판사가 이민자에게 "수정헌법 제8조가 무엇이냐?"고 묻자, 이민자는 "1942"라고 답변했다. 결과는 기각이었다. 3개월 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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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를 위해 낮은 곳을 응시하는 자라면 독일 작가 브레히트의 뮤즈를 알 것이다.

 

"콤럼버스가 미국을 발견한 해는?' 

 

이 질문은 1943년 브레히트가 망명지 미국에서 쓴 <민주적 판사>라는 시에 나오는 것이다. 이민자들의 시민권 인정 사건을 담당한 판사가 이민자에게 "수정헌법 제8조가 무엇이냐?"고 묻자, 이민자는 "1942"라고 답변했다. 결과는 기각이었다. 3개월 후 "남북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은 누구인가?"라는 판사의 물음에 대해서도 그 이민자는 "1492"로 답변한다. 또 기각이었다. 다시 3개월 후 "미국 대통령은 몇 년마다 뽑는가?"라고 물었지만, 답변은 역시 "1492"였다. 이후 판사는 그 이민자가 식당에서 하루 종일 일하느라 영어를 배울 시간이 없다는 사정을 알게 되었다. 그 노동자가 네 번째로 법원을 찾았을 때, 판사는 이렇게 물었다. "콜럼버스가 미국을 발견한 해는?" 마침내 노동자는 시민권을 얻게 되었다. 브레히트, 김광규 옮김, <살아남은 자의 슬픔>, 한마당, 1998, 119쪽. (pp.324~325)

 

실물은 물론이고 소재의 두께와 무게에 지레 겁먹고 오랫동안 안보이는 곳에 방치해둔 게 부끄러웠다. 비록 책에서만 대했어도, 피와 눈물로 얼룩진 현대사 앞에 희생된 자들이 수천수만인데 희생정신을 기리기는커녕 제대로 알지도 못한 사건들이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가슴이 먹먹해지는 아픔은 논외로 하고도 신났던 건 이 모든 사건들에 일체감을 느껴서이고, 앞으로 국가범죄 청산에 귀기울일 줄 아는 힘과 지식을 교양으로 얻어서이다. 국가범죄의 개념부터 배상방법, 청산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수많은 논의거리들을 세심하게 풀어놓는 이 책이 재밌는 건 국내외를 넘나들고 현대사에 그치지 않는 풍부한 사례 덕분이기도 한데, 그보다 더 좋은 건 인류 최대의 학살 홀로코스트부터 킬링필드까지 또 유럽과 미국, 제3세계들의 국가범죄 청산결과를 법조문과 판결문으로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국가범죄는 기본적으로 권력의 힘을 휘두르는 데서 시작이고 타국도 그렇지만 한순간도 피바람이 멈춘 지점이 없었던 지난 우리 현대사를 보면 그 앞에서 중립을 지키고 통합과 화해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어려워 보인다.  

 

권력의 미명 아래 이유없는 학살이 자행됐던 1980년 광주사태는 훗날 정권이 바뀐 후 재판대에 올라 사형선고를 받은 장본인이 바로 그 정권 아래에서 민족의 화합을 빌미로 사면되면서 일사부재리 원칙이나 형벌불소급 등으로 다시 죄를 묻지 못하게 되면서 허무감을 안겼다. 권력을 아우르는 법이 이토록 허술하면서 희생자는 있으나 가해자는 없는 기상천외한 현상이 초래된 바, 이제 더이상 이 죄를 어디에서 누구에게 물어야 할지 조차 미미한 상황이다. 이것이 그들이 말한 화해고 통합일까? 캄보디아의 크메르루주나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처럼 어마어마하지 않았다 해도 민간인 학살이나 독재로 자신의 배를 불려온 죄를 죄가 아니라 할 순 없는 것. 당시 자국민 3분의 1을 학살하고 망명다니던 크메르루주는 그의 정권을 조용히 묵인하던 미국의 도움으로 연명하다 인도주의적 도움을 주러 온 베트남군에 처형되었고, 차우셰스쿠는 재판대에 올라 사형을 선고받고 국민들이 보는 앞에서 처형당했다. 한때 국가 수장이었다 해서 무조건 사면권을 행사해야 할 의무는 어디에도 없다. 이름부르기 싫은 그 또한 국민들이 택한 지도자가 아니었고, 국가범죄 청산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 죄를 물어야 했다.

 

돌이켜보면, 한국 현대사는 늘 이런 식으로 연명해온 게 아닌가 생각된다. 반대 목소리를 없애야 유지되는 권력이었으므로 하등 이상할 것도 없는 바지만, 그렇다면 법의 미명 하 억울하게 처형된 수많은 억울한 목소리를 어떻게 달래야 할까. 사람을 죽인 사람은 무조건 죽여야 한다는 극과극의 대립을 조장하는 의견은 오늘날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재미로 강간,살인을 저지르는 죽어서도 못갚을 죄를 저지르는 인간들이 분명 있지만, 국가범죄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실익없는 이데올로기속에서 아무런 죄없이 빨갱이로 몰려 그 자리에서 처형당한 이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명예재판과 국가배상이 속속들이 이뤄지고 있다. 정작 주인공은 없는데 남은 사람들끼리만 주고 받는 희한한 청산이다. 그래서 정치범에 한해 최고형이 사형이 아니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 있다. 현재 우리도 겪었고, 겪고 있고, 이제 잘 아는 일이다.  

 

국제사회에 또 한번 훗날 청산해야 할, 끔찍한 학살로 기록될 입으로 내뱉지 못할 국가범죄가 저질러지고 있다. 북한 말고 아직도 지구상에 이렇게 분노하는 국민을 가진 독재정권이 또 있었나 싶다. 그들의 성공을 빌지만 그들의 안전이 더 걱정된다. 안전하게 이룰 수 있는 혁명이란 어디에도 없다는 걸 잘 알면서. 타인의 목숨을 하나 빼앗은 이에게서 그의 목숨을 빼앗으면 모든 것이 정당해질까. 그럼 두 명 죽인 이에게는 두 개의 목숨이 있어야 공평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걸로 과거는 청산되지 않는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사라져도 그로 인한 2차적, 3차적 피해는 고스란히 남아 가족들과 세상을 괴롭힌다. 대대적으로 처리해야 할 국가범죄에는 여전히 고작 한 번씩 분노할 뿐인 친일파 문제가 있다. 현 대기업들은 친일행각으로 기반을 다지고, 노동자들을 이용해 돈을 벌어먹고, 누군가의 목숨을 담보로 그들의 배를 불려간다는 매커니즘을 모르는 이는 별로 없다. 교과서에나 등장하는 유명 친일파들의 자손들에게 친일재산몰수판결을 내려도 뜻대로 되지 않을 판에 동종 재판은 늘 각하 판결을 받는다. 50년에서 100년도 더 전에 있던 일을 지금에 와서 해결하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하다. 해결한다한들 시원해지는 건 아무 것도 없다. 

 

웃는 얼굴로 군에 보낸 건장한 아들들은 죽었다 하면 자살이고, 그것도 다 본인 탓이란다. 세상 어떤 종류의 자살도 본인 탓에서만 원인을 찾을 수는 없다. 이상한 세상이다. 결과는 있는데 원인은 없고, 희생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다. 모든 것의 중심이 되는 그 법의 잣대는 절대 법을 만들면 안되는 인간들이 경단 만들듯 주물러 후딱 만들어내고, 모자랄 경우 온갖 권력과 더러운 돈을 이용해 갈아치우거나 메웠다. 그렇게 무고한 사람들을 다치게 하거나 죽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은 지시만 했다. 직접 피를 묻히기도 했겠지만 대외적으로 보통 지시받은 사람들이 그 일을 했다. 나치에서나 광주사태에서도 그랬다. 상부에서 내려온 학살명령을 거부한 양심적인 이들은 모두 구타나 살인으로 그 생명을 다했다. 법치주의지만 법치주의가 아닌 사회는 차라리 법이 없는 사회보다 더 극악무도하다. 국가나 정부의 존재가 인간의 자유를 가로막는다고 주장했던 칸트의 말도 일리있다. 국제적으로 인도범죄에 관한 법이 꽤 만들어져 실행중이지만 국제법으로 규율하는 범위는 미약하다. 대등한 국가들 사이를 보편적인 법으로 서로 규율하는 것은 허락되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의 안전과 평화를 책임지는 유엔이 버젓이 존재하지만 사실상 권고나 의견제시, 조율 정도밖에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집트는 물론이고 리비아, 터지지 않았지만 곳곳에서 일어나는 반정부 시위에 대항한 독재자의 학살을 사실상 지켜만 보고 있는 것이 국제기구이고, 이 와중에도 자신들에게 돌아올 득실을 계산하는 것이 국가인 것을 누굴 탓할까. 

 

다 의미없다. 제주도 4,3사건, 광주사태, 위안부 등의 국가범죄는 거의 30년에서 50년이 지난 일들이다. 좀 더 신속하게 청산하려는 노력이 없는 한 우린 또다시 미해결 상태로 이들을 보내야 한다. 사건해결에 가장 중요한 것이 증인인데 산증인이 사라지는 현실을 눈앞에 두고도 선뜻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정부와 사법부는 왜일까. 독일이 통일하면서 나치청산을 위해 희생자들 앞에 고개숙여 사과한 것처럼, 공소시효나 소급효 등을 계산하지 말고 솔직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할 수는 없을까. 정작 매듭을 꼰 사람들이 나서 풀지 않는다면 이 모든 것들의 청산은 의미가 없다.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일본이 제안한 연금제도 같은 것들은 어느 축에 끼워야 할지 난감하다. 이미 최고령이 된 분들에게 아방궁을 선물한다 한들 그게 무슨 보상이 될까. 배상은 물론 중요하다. 어느 시대 누구의 잘못이든 원상회복이 불가능하다면 물질적으로라도 배상해야 한다. 하지만 독재권력자의 잘못을 국민들의 피땀으로 이뤄진 세금으로 배상한다는 것은 억울하기 이를데 없다. 그것만이 옳은 일인지 모르겠다. 국가유공자에게 주는 취업특혜를 특별히 반대하는 건 아니지만 국가불신에 대한 불안감은 국가유공자 선정이 공평하게 이뤄졌는지를 신뢰할 수 없는 데까지 영향을 미친다. 

 

할 수 있는 한 빠르고 신속하게 또 정확하게 국가범죄에 대한 조사를 단행해야 한다. 미해결 상태로 희생자들이 또 한 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 전에, 누군가는 책임지고 용서를 빌어야 한다. 죄를 묻고 벌을 내리고 보상을 하는 일련의 과정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당연한 것들 위에 여전히 정의란 살아있고, 언젠가는 꼭 밝혀진다는 믿음을 뿌리내려야 한다. 그것이 국가발전의 길이다. 하나의 선례가 쌓이면 그 위에 또 다른 선례가 덮어질 것이다. 그럼 바른 뿌리를 바탕으로 다음 번에는 더 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을 거란 게 희망이다. 우리는 여전히 살지만 이 삶은 영원한 것이 아닐 뿐더러 한 인간이 나고 사라짐에 있어 맺고 끊어야 할 일은 반드시 있다고 믿기에. 범죄는 이미 발생한 이상, 범죄 이전의 삶은 결코 없다. 물질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피해는 이미 커다랗게 남아 피해자를 괴롭히기 때문이다. 영화 <밀양>의 원작인 이청준의 <벌레 이야기>에는 자기사면을 하는 가해자가 나온다. 사면이란 건 타인이 하는 것이지 자신이 하는 것에는 의미 없다는 저자의 말처럼, 정말 뻔뻔하고 어이없는 행태에 헛웃음만 나왔다. 자기사면은 지양되어야 하지만 사면 자체의 의미는 퇴색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사면 자체가 범죄청산이라고 믿어서는 곤란하다. 현 대통령도 어이없는 사면을 이미 한 건 행사했다. 분노하는 시민보다 그럴 줄 알았다는 시민이 더 많은 걸 보면 아직 멀었다. 오류로 얼룩진 현대사를 바로잡아 나갈 주인공은 역시 국민들의 자유로운 소통과 단결된 힘이다. 그것보다 더 큰 권력은 여지껏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s*****d 2011.02.2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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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범죄, 때늦은 청산은 없다
"국가범죄, 때늦은 청산은 없다" 내용보기
국가범죄, 때늦은 청산은 없다국가와 개인의 이익이 충돌하게 될 때 무엇이 우선되어야 하는가? 라는 문제에 직면하게 되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시민 의지로부터 법과 정부가 나와야 하며 이것은 타인에게 양도하거나 분할할 수 없다’고 역설한 루소의 이야기를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사회가 변화하면서 개인의 권리에 대한 중요성은 날로 커가고 있다. 국가라는 보이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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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범죄, 때늦은 청산은 없다
국가와 개인의 이익이 충돌하게 될 때 무엇이 우선되어야 하는가? 라는 문제에 직면하게 되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시민 의지로부터 법과 정부가 나와야 하며 이것은 타인에게 양도하거나 분할할 수 없다’고 역설한 루소의 이야기를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사회가 변화하면서 개인의 권리에 대한 중요성은 날로 커가고 있다. 국가라는 보이지 않은 실체가 국가의 구성요소인 개인의 존재와 그 자유를 침해하는 경우를 접할 때는 더욱 이러한 문제에 대해 고민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역사는 개인이 바로 이러한 선택의 문제에 직면하게 만든 많은 사건들이 있었다. 하지만 무엇 하나 그 진상에 대한 규명은 명확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 민주정부나 참여정부 등 정권의 성격이 변하면서 역사 속에 묻혀있던 사건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는 기회도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수면아래에서 한줌의 빛이라도 들어오길 간절히 바라는 사건은 부지기수다.

‘국가범죄는 법전法典에는 없는 말이지만, 일반적으로 국가권력에 의한 중대한 인권유린 행위를 가리킨다. 국가범죄를 대체하는 개념들로는 정부범죄, 인권범죄, 국가에 의해 조종된 범죄, 국제법상의 범죄, 중대한 인권침해 행위 등이 있다.’

국가범죄에 대한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저자는 권력의 힘에 의해 개인 및 집단이 오명을 쓰고 지하에서 아파했던 바로 ‘국가범죄’라는 묵직한 주제를 이야기 한다. 국가범죄라는 이 무거운 말을 할 수 있다는 현실에 반가움보다 앞선 안타까움이 여전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우리나라의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고 한다. 여러 분야의 석학들에 의하면 그 문제는 바로 ‘일제잔재의 청산’과 ‘분단의 극복’이라고 한다. 우리가 겪고 있는 당야한 문제의 근원을 파고들면 이 문제와 직면하게 된다는 말일 것이다. 이는 바로 과거사를 올바로 자리매김할 때 현재에 올바로 설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 중심에 ‘과거청산’이 있다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과정을 국내외의 구체적 실례를 찾고 그 처리 과정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있다. 특히 제주 4.3항쟁이나 몇몇 개인들의 사례는 과거청산의 결과가 무엇으로 귀결되어야 하는지를 말해주는 과정이 아닌가 한다.

저자는 과거청산의 방향이 ‘근본적으로 어떠한 정치 구조와 문화 속에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공공적인 의제 설정’에 있다고 보며 과거청산은 곧 ‘인권의 문제’의 문제라 규정한다. 국가로부터 개인들이 반드시 보장받아야 할 인권이기에 이것은 과거나 현재의 문제만이 아닌 미래와도 직결되는 문제라는 것이다.

광주민주화운동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1990),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1995), 헌정질서파괴범죄의 공소시효 등에 관한 특례법(1995), 거창사건 등 관련자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조치법(1996),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2000), 의문사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2000),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에 관한 법률(2000), 광주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2001),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법률(2004), 일제강점하 강제동원 피해진상규명 등에 관한 특별법(2004), 삼청교육대피해자의 명예회복 및 보상에 관한 법률(2004), 특수임무수행자 보상에 관한 법률(2004), 군의문사 진상규명 등에 관한 특별법(2005),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2005),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2005),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2005), 태평양전쟁전후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법률(2007)

2010년 10월 현재, 우리나라에서 제정된 주요 과거사 관련 법률이다. 모두 열일곱 가지 이 법률들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생각하면 관련자들뿐 아니라 많은 국민들에게 특별한 감정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이 모두가 바로 국가범죄와 관련된 법률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다는 아닐 것이다. 앞으로도 이러한 법률이 필요한 부분이 많다는 현실은 우리 모두가 직시해야 할 국민의 의무가 아닐까 싶다.

‘때늦은 청산은 없다’고 분명하게 선언한다. 청산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우리의 발목을 붙잡을 것이기에 형사책임, 공소시효 등 법률적 한계를 넘어서서 ‘민족과 인권’ 차원에서 근본적 대안은 꼭 필요한 것이다.


m*****8 2011.02.2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