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널름거리는 혓바닥같은 불꽃을 뿜어대는 이름 프리다 칼로, 자기가 가진 그 불에 화상을 입고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이름 프리다 칼로, 그녀가 내게로 왔다. 혹자는 말한다. 그녀가 디에고 리베라 때문에 재능을 탕진했다고 말이다. 그 와의 파괴적인 사랑때문에 자신이 가진 재능을 채 발휘하지도 못하고 스스로 뿜어내던 불꽃에 타버리고 말았다고 한다. 똑 혹자는 말한다. 디에고 리베라와의 사랑이 없었다면 그런 그림이 나오지 않았을 거고 그녀는 지금처럼 유명해지지도 못했을거라고 말이다. 누구 말이 옳은지는 크게 상관없을 것이다. 어떤식으로 말해도 그녀는 그녀 일뿐이다. 프리다는 마흔일곱 짧은 삶에 인생을 바꾸어 놓을 두 개의 사건을 겪는다. 쇠막대가 옆구리를 관통해 골반을 거쳐 질로 빠져나오는 참사를 겪은 교통사고와 그리고 디에고 리베라를 만난것이다. 교통사고는 그녀의 몸을 망가지게 만들었고 디에고 리베라는 그녀의 마음을 고통속에 몰아 넣었다. 멕시코 민중예술의 영웅 디에고 리베라의 그늘에 가려 생전에는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던 프리다가 사람들의 눈을 끌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페미니즘 운동의 영향이 크다. 강렬한 자의식으로 그려낸 프리다의 그림들은 여성으로 살아가야 하는 아픔과 절망을 가슴 절절하게 그련냈다. 나는 그녀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당황하게 된다. 개인적인 슬픔을 저렇게 적나라하게 화폭에 담아낼 수 있을까 ? 지나치게 사적인 일들이 화폭을 통해 공적인 자리를 얻어내는것에 대한 거부감이 인다. 내가 낙태한 이야기를 가족이나 친구들이 아닌 낯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떠들어 대는것만 같아서 낯이 붉어진다. 아마도 패미니스트들이 프리다에게 열광하는 이유도 여기있을것이다. 사랑과 예술에 통째로 삼켜져 버린 여자 프리다 칼로의 생애를 통해서 신산스럽고 은밀한 여자의 삶을 공개석상에 내 놓을 수 있으니 말이다. 글쓰기나 그림그리기나 창작이라는 과정이 어쩔 수 없이 자신을 송두리채 드러내야 하는 작업이다. 그렇게 치면 프리다의 그림에 그리 어설퍼 할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녀의 그림에서 풍겨져 나는 그 날것의 비린내를 감당하기 쉽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