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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자 박혜란님의 나이 듦에 대한 두 번째 에세이라고 합니다. 10년전인 2001년에 <나이 듦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에세이집을 내셨다고 했으니, 5학년 5반에 나이 듦에 대하여 고민을 하셨던 모양입니다. 사실 웰 에이징, 즉 멋있게 나이 들어가는 방법에 관하여, 젊어서부터 고민하고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 한다는 조언을 들어왔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40도 되기 전부터 멋있게 나이 들어가는 방법을 구하여 글로 정리하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시작한 작업은 회갑을 목전에 둔 지금도 시작할 무렵 정리한 것이 전부일 뿐, 엄청나게 쌓아둔 자료를 흐뭇하게 바라보고만 있을 뿐입니다. 아무래도 나이 먹는 일이 겁나서 자꾸 외면하려는 생각이 강해졌던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저자께서는 아주 용감하셨던 모양입니다. 50줄에 나이 듦을 고민하고, 60줄에서 다시 나이 듦을 고민하고 계시니 말입니다. 그 점에 대하여 저자는 들어가는 말에서 이렇게 적었습니다. “인간, 참 자기중심적이다. 10년 전, 50대 초반에 <나이 듦에 대하여>라는 좀 건방진 제목으로 책을 냈을 때만 해도 난 내가 꽤 나이가 든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 그 나이의 사람들을 보니, 새파랗다. 무얼 시작해도 늦지 않은 나이다.(8쪽)” 일부 남들 먹는 나이를 저 혼자서 먹는 것처럼 호들갑을 떤다는 비아냥거림도 있었다고 생각하셨던 모양입니다만, <다시 나이 듦에 대하여>를 읽어보면 글빨이 참 좋아서 혀에 착착 감기는 것이 저자께서 공연히 멋쩍어서 하시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상에서 나이 들어가는 것과 관련된 것들을 자연스럽게 발견하고 그것들을 친숙한 필치로 써내었으니, 읽는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은 당연지사가 아니겠습니까? 글을 이렇게 쉽게 쓸 수 있는 것도 참으로 재주가 아닐 수 없으니 부러울 따름입니다. 가끔은 바깥 분을 덤덤하게 대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부분도 없지는 않습니다만 40년을 넘게 살아온 내공이 쌓여 서로 편하게 느껴지는 탓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저는 어떤가 되돌아보게 됩니다. ‘남자들이 착해졌다’는 글을 읽으면 이 세상 남자들 참 불쌍타는 생각이 여전히 드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저는 저자로부터 따끔한 시선을 받게 될 것만 같기도 합니다. “요즘 남자들, 참 착해졌다. (중략) 젊은 남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나이 든 남자들도 몰라보게 착해졌다. 착해지고 싶어서 착해진 것이 아니라, 착해지지 않으면 앞으로 살아갈 날이 괴로워질 것이라는 공감대가 빠르게 형성된 덕분이다.(44쪽)” 하지만 공감대가 형성되었다기보다는 강요받은 착해짐은 아니었는지 되돌아볼 필요도 있을 것 같습니다. 뒷이야기를 읽다보면 더욱 공감이 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나이 들어서 밥 한 끼를 얻어먹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위축되는 것이 아닐까요? 밥 한 끼 먹는 문제인데 왜 얻어먹는다고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다시 이어지는 “여자들은 나이 들수록 독립적으로 되어 가는데 반해 남자들은 나이 들수록 의존적으로 되어 가니까.”라는 대목에 해답이 숨어 있는 것 같습니다. 외출하는 아내 치맛자락을 붙잡지 마시고, 그 시간을 오롯하게 즐기는 방법을 연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자처럼 나이 들어서 서로 떨어져 지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만, “따로 또 함께 하는 나이듦”이 정답이 아닐까 싶습니다. 혼자 노는 법을 터득하는 것은 남녀를 불문하고 필수조건이라는데 공감합니다. “특히 나이 들어가면서 혼자 놀 줄 모르면 공연히 주위 사람을 괴롭히게 된다. 괴롭힘을 당하는 일이 잦다 보면 젊은이는 점점 더 멀어지고 노인은 점점 더 야속해한다. 나이 들수록 혼자 놀 줄 알아야 인생이 그나마 덜 외롭다. 덜 삭막해진다.(88쪽)”
세상사는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은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나이 먹었으니까~~’라는 토를 달 이유가 없습니다. 나이를 잊고 살면 젊게 사는 것입니다. 꼭 나이를 먹은 티를 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저자께서는 너무 일찍 나이든 티를 내신 것 같기도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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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란, 알고 보면 그녀는 여성학자보다는 아들 셋을 잘 키워낸 이야기를 담은 자녀 교육 베스트셀러의 작가로 혹은 인기 가수 이적의 엄마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는 사람이다. 그런 그녀가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어가면서 다양한 삶의 측면에서 경험한 ‘나이 듦’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책을 펴냈다. 그녀는 사실 2001년에 나이 듦에 관한 책을 펴낸 적이 있다. 내가 읽은 이 책은 그런 그녀가 다시 10살을 먹고 다시 깨달은 나이 듦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기면서 50하고도 다시 10을 먹은 저자가 삶의 조각마다 얻은 깨달음을 ‘이렇게 얌체같이 홀라당 주워 먹어도 되나’하는 미안한 마음이 들만큼 까마득한 인생 선배가 들려주는 나이 듦은 너무나 멋진 것이었다. 그녀는 나이 듦을 넋두리로 삼지 않는다. 다만 해마다 곱절로 온기를 더한 따뜻한 애정 어린 시선으로 세상을 껴안을 뿐이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이렇게 나이들 수도 있구나’ 하면서 멍하니 벙 쪄 있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나이는 한 참 어리지만, 나이를 잊고 한 사람으로서, 한 여성으로서 그녀와 영화를 같이 보고, 시시콜콜 수다 떠는 친구가 되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우리나라처럼 나이든 여자에게 척박한 땅이 또 없다. 다 져버린 꽃이라고, 끝났다고들 이야기한다. 그 가운데 이 책은 나이 드는 여성, 여성 노인을 색다른 관점에서 바라봤다는 점에서 참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나이든 여성을 다 져버린 꽃이라고 묘사하는 것은 여성이 지금까지 아내 혹은 엄마로서의 역할의 측면만이 부각·확대되어 조명되어 왔기 때문일 것이다. 아내이기 전에 엄마이기 전에 그들은 여성이고, 한 사람이지만 그 사실은 좀처럼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다. 배우 김혜자가 연기한 '뿔 난 엄마'가 이슈가 된 것도 다 때로는 숨 막히게 느껴지는 우리 시대, 우리 땅의 여성들의 획일화된 삶을 대중에게로 영리하게 끄집어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저자가 제시하는 나이 들기란 그저 사회적 약자로 쪼그라들어 있는 것도, 고고한 학처럼 우아하게 늙는 것도 아니다. 각자의 관심사를 따라 남편과 떨어져 살면서도 서로 깊이 사랑하는 것, 즐거운 혼자 놀기, 명랑한 투병 등의 이야기에서 저자가 말하는 나이 듦은 삶을 능동적으로, 진취적이고 역동적으로 사는 자세이다. 그녀처럼만 나이 먹는다면야 나이를 먹는 것이 두렵기 보다는 은근히 기다려질 터다. 하지만, 모든 구절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녀는 참 복이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이 듦'이라는 말을 듣고 그녀와 같이 자유, 여유, 느긋함을 떠올릴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는 생각에서다. 모두들 내 걱정 보다는 자식 걱정이 앞선 탓에 자식들 뒷바라지 하는데 바빠, 뒤도 안 돌아보고 앞만 달려왔던 지라 눈을 감았다 뜨니 내 손에는 쥔 것이 없고, 아이들은 다 커서 둥지를 떠나 얼굴 한 번 보기 어려워 뭐가 필요하다 말 한마디 하기도 괜히 눈치가 보이지 않는가. 그렇다 보니 나이가 들면 들수록 앞날에는 여유와 자유 보다는 걱정만 늘어져있는 경우가 많다. 누구나 다 그녀와 같이 느긋함과 자유로 풍족한 나이 듦을 살기를 소망하지만 누구나 다 그런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혹 그런 꿈을 꾼다 해도 가당키나 한 소리냐는 핀잔을 들을지도 모르겠다. 그녀처럼 기쁨으로 나이 듦을 맞이할 여성보다 나이가 들면 노동하지 못하고 자기 한 몸 붙일 데 없어 걱정만 쌓이는 여성들이 더 많다는 것이 슬프다. 사실, 나에게는 여성과 남성의 과제 때문이 아닌 나이 듦, 특히나 여성의 나이 듦에 대해서 새롭게 인식하고 깊게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가 있었다. 바로 다름 아닌 엄마의 폐경이다. 엄마가 늙는다니.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가슴으로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다. 친구처럼 사이좋게 둘이서 식탁에 앉아 하루 일과를 시시콜콜 깔깔대고 수다 떠는 것이 낙이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하루도 그냥 넘어가지 않고 엄마와 매일 투닥투닥한다. 하지만 언제나 마음속으로는 엄마가 늙지 않았으면, 내 곁에 오래오래 있어줬으면 하는 마음에 젊어지는 샘물이라도 정말 어디 없나 하고 바랬다. 그런데 요새 퇴근하고 집에 온 엄마가 부쩍 피곤해하고 짜증이 잦은 것을 보고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지만 말로만 듣던 그 폐경의 증상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엄마 자신도 느끼는 피곤과 늘어가는 짜증, 불규칙한 생리 주기로 엄마도 폐경임을 눈치 채고는 조금 울적해하는 것이 눈에 다 보인다. 아직 완벽하게 폐경을 맞은 것은 아니지만 조금씩 준비를 하는 폐경의 기미를 보이는 여러 증상들은 엄마를 울적하게 하고, 무기력하게 만드는 듯했다. 폐경은 단순히 폐경이 아니었다. 여성으로서의 자아를 떠나보낸다는 것, 회복할 수 없는 자아의 상실이 주는 아픔에는 그 어떤 여자라도 담담할 수 없을 것이다. 어느 책에서 본 글귀가 기억에 남는다. '후회가 꿈을 대신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늙기 시작한다.'고 했던가. 저자는 나이는 이제 60을 훌쩍 넘겼지만 20대 청춘같이 매일을 지낸다. 생물학적인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태도이다. 세월을 비껴가려고 애쓰기 보다는 세월을 웃는 얼굴로 맞이하는 것이다. 나이 듦이라는 것 그것은 어쩌면 젊음을 덜어내는 과정이 아니라 화려함 뒤에 있었던 두려움과 불확실에서 진정 자유로워지는 과정이며, 나약해지거나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즐거움과 감사함을 매일 새롭게 발견하고, 세상에 대한 지혜와 삶의 본질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이 세상 모든 노인은 사회의 약자로 방구석에서 초라하게 늙어갈 것이 아니라 내 아들 딸, 내 손자 손녀뿐만이 아닌 모두를 포옹하고, 그들과 진정으로 소통하며 늙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오랜 시간에 걸쳐 각고의 노력 끝에 꽃을 피우는 난과 같이 엄마가 아름답게 나이 들기를 기도하며, 그녀처럼 자유와 느긋함을 즐기며 나이 들기를 소망하며 나이 듦에 대한 박혜란의 책 두 권을 엄마에게 선물해야지'라고 생각하면서 늦은 밤 이 글의 끝을 맺는다. 엄마뿐만이 아닌, 이 세상 모든 여성이 난 꽃 같은 나이 듦을 지냈으면 한다. 이 세상 모든 나이 드는 여성은 다 꺾어진, 져버린 꽃이 아니라 이제 모든 노력의 결실을 맺고 만개하려 하는 난의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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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 책을 읽느라 다시 이분이 뇌리에 되살아났다. 쉰이 되셨을 때 '나이듦에 대하여'라는 책을 내고 십년 후 이야기가 이 책 '다시, 나이듦에 대하여'.
대단히 학술적인 업적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지만 누에고치가 뽕잎을 먹고 내놓는 것이 비단이듯이 삶을 통해 겪은 일들을 참 성숙하게 혹은 재치있게 풀어내는 글을 쓰는 분들이 있다.
내 기준에 그런 분들은 김선주 주간님(한겨레)과 조한혜정 교수님(연세대), 고 장영희 교수님(나 이분 이름이 생각 안나서 검색창에 '서강대 영문과 장'까지 치고 있었다. 마지막 순간에 기억이 나서 다행이지...), 박혜란님.
나도 나이를 먹는다. 누구나 나이를 먹는다. 한 살 한 살 나이들어 가면서 처음 십대가 이십대가 되고 그 앞에 3을 달면서 느끼는 소회가 자신에게는 남다르지만 그보다 나이 어린 사람들은 그것이 제 일이 아니다. 그저 나이 먹은 사람의 넉두리일 뿐이다. 자기는 그 나이가 되지 않을 것 같은 것이다. 또 더 나이든 사람들도 '그래 기분 꿀꿀하겠지. 근데 나이 더 들어봐라, 그땐 차라리 젊었다는 걸 알게될 거다.'라는 식으로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누구나 겪지만 그렇기에 새로울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 나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쓴 책이라... 요즘 건방이 하늘을 찔러, 혹은 제 주제를 잘 파악해서, 신간서적보다는 아직 읽지못한 양서들을 읽자는 생각인지라 이 책을 읽을까 말까 살짝 고민했으나 나이들어 간다는 것을 겪어가며 언뜻언뜻 스치듯 느껴온 생각들을 조곤조곤 모아놓은 이 책을 보면서 때로는 픽 웃기도 하고, 정말 그래 공감하기도 하고, 자신의 삶을 숨가쁘게 살아간 여성 지식인의 여정에 부러움을 느끼기도 하면서 즐겁게 읽었다. 공감가는 내용이 어찌나 많은지 귀퉁이를 하도 접어대서 책이 부풀어 올랐다.
책을, 내용만 읽지 일러스트 디자인 같은 것에 눈길을 주는 사람이 아닌데 책 안에 들어있는 일러스트 아이콘들이 너무 귀여워서 표지를 샅샅이 뒤져 일러스트 디자이너의 이름을 찾았다. 대성하십시오~ 김진이씨! ![]()
처음엔 표지가 그닥 의미없이 보였는데 글을 읽고보니 저자가 어느 날 지하철에서 만난 고교 동창생 쯤으로 보이는 여성들에 대한 묘사를 바탕으로 그린 것 같았다. 이 나이가 되어도 소녀처럼 모여앉아 서로의 가방과 새로운 옷에 대해 서로 걸쳐보고 예쁘다고 칭찬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는 모습에서 '할머니, 아줌마'라는 말에 속박되지 않고 새로운 모습으로 자신의 삶을 가꾸어 나가는 이 세대에 대한 경탄이 아마도 이 책을 내게 된 가장 큰 동기가 아닐까 싶었다.
<발췌> 겨우 10년 정도 차이 나는 사람들이 '그 연세에 어쩌고저쩌고' 하는 건 정말 짜증 나는 일이다. 불과 10년 후에 다다를 나이를 마치 아득한 먼 훗날인 양 취급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언어도단이다. 아마도 자신의 나이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심리가 무심코 이런 말로 튀어나오는지도 모르겠다. 10년 위의 사람을 아주 늙어 버린, 무능한 사람으로 밀어냄으로써 10년 아래의 자신은 젊은 사람 축에 끼고 싶어하는 것이다. 자신보다 10년 아래인 사람이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듯이. 나이라는 게 그렇다. 자신보다 10년 어린 사람과 자신은 아무 차이가 없는 것처럼 생각되는 반면, 자신보다 10년 위인 사람은 한 세대 위처럼 늙게 생각된다. '그 연세에'라는 말에 이처럼 거품을 물고 덤비는 나 역시 예외가 아니다. 나도 입 밖으로 토해 내지만 않았다 뿐이지, 나보다 열살은커녕 다섯 살만 많아도 마음 속으론 나하곤 다른 세대로 밀어낼 때가 많다. 물론 이미 오래 알고 지내 친숙해진 사람들은 제외하고. 반면 10년 이상 아래인 사람들과는 전혀 세대차를 못 느낄 정도로 잘 어울린다고 스스로 자부한다. 이 참을 수 없이 무거운 착각이라니!
대학로에서 젊은 가수의 콘서트를 보고 나왔는데 전철에 오르자마자 몇 명이 한꺼번에 벌떡 일어섰을 때의 그 기분이라니! 몇 시간 동안 누렸던 젊음이 순식간에 깨어져 버릴 때의 그 낭패감을 젊은이들은 짐작도 못할 거다.
아이의 미래에 대한 불안은 부모와 아이 모두의 현재를 잠식한다. 풍요롭게 자란 젊은 엄마들의 표정에서 나는 희망이 아니라 불안을 읽는다. 내가 너무 불안해하지 말라고, 아이들은 엄마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능력이 있는 존재라고 아무리 강조해 봤자 이미 시효가 지나 버린 내 이야기는 더 이상 누구한테도 위안이 되지 못한다. 엄마들을 설득할 의욕을 접어 버리긴 했지만 그래도 한 줄기 미련은 남는다. 나이가 들어 뒤를 돌아다보면 아이 키울 때처럼 행복한 시간은 또 없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 때문이다.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그 시간을, 잘 키워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누리지 못한다니 정말 어리석은 짓 같다. 엄마가 행복해하면 아이는 저절로 행복하게 자라는 법인데. ==> 이걸 이미 알고 있는 나는 뭐? 정신연령 60대?ㅋㅋ
비록 한때 실패했더라도 젊은이들에게는 마음만 다잡으면 얼마든지 헤쳐 나갈 힘이 남아 있는 법이다. 막노동이나 풀빵 장사를 하면서도 끝내 아이들을 옆에서 떼어 놓지 않는 부모가 얼마나 많은데. 주저 앉으려다가도 아이들에게서 삶의 의미를 찾고 이를 악물고 재기를 다짐하는 게 부모의 자세다. 늙고 병든 어머니에게 자식들을 떠맡기는 짓은 효, 불효를 따지기에 앞서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 더 답답한 건 이런 할머니들의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형식에 얽매여 당장 필요한 도움을 주는 데 인색한 국가다.... 부모를 잘 만났건 못 만났건 이 땅에 태어난 이상 누구든지 먹는 것, 입는 것, 배우는 것, 치료를 받는 것은 걱정 없이 살아야 한다. 얼마나 못난 국가면 일흔, 여든 넘은 할머니가 아픈 몸을 이끌고 폐지를 주워 모아 판 돈으로 아이들을 뒷바라지하게 놔둔단 말인가. 직무 태만도 이쯤 되면 금메달감이다.
나도 모르는 새 한 살 한 살 나이들어 가던 어느 무렵부터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적어도 나이 든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내가 나이 들어 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아이들을 키울 때는 인간은 왜 다른 동물들보다 이렇게 더디 자랄까 좀 답답했었는데 손주들을 보면서 생각이 영 달라진다. 바로 엊그제 낳은 것 같은 아이들이 금방 뒤집고 기어 다니더니 어느새 뛰어다니다. 백일인가 싶더니 이내 돌잔치를 하고, '엄마, 아빠' 밖에 못하던 아이가 어느날부터 제 의견을 마구 쏟아 낸다. 심지어는 할머니의 정체도 샅샅이 파악, 세 돌도 안 지난 아이가 어느 날 할머니 집 안을 둘러보면서 직격탄을 날린다. "할머니, 할머니 집에는 왜 이렇게 지지가 많아요?" 와, 할머니가 되는 재미는 바로 이런 것이다. ==> 여기서 빵터짐.
이래도 저래도 엇나가기 쉬운 고부 관계를 잘 끌어가기 위해서는 시어머니와 며느리 양쪽이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며느리도 물론 애써야겠지만 그보다 시어머니가 훨씬 더 애써야 한다. 며느리는 아직 시어머니가 되어 보지 않았지만 시어머니는 며느리 시절을 겪어보지 않았는가.
<신시어머니 십계명> 1. 나는 시어머니이기 이전에 나다 2. 아들은 며느리의 남편이다. 3. 며느리는 딸이 아니다. 4. 며느리도 나와 같은 여성이다. 5. 아들네 집은 내 집이 아니다.==> 아들한테 집사주고 그 집 열쇠 가지고 마음대로 들락날락하는 분들 계시다며? 끄응... 6. 며느리에게 가르치려 들지 말라 7. 좋은 며느리란 따로 없다. 8.아들도 며느리도 손님이다. 9.칭찬하고 또 칭찬하라. 10. 생긴대로 보여주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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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드니까 나이 드니까, 글쎄, 혓바닥도 같이 늙어 가는지 음식 맛을 잘 모르겠어. 내 딴에는 최대한 싱겁게 끓였는데 애들은 너무 짜다고 난리야. 콩나물도 맛없다, 김치도 맛없다, 엄마 솜씨가 왜 이렇게 형편 없어졌냐고 타박들이야. 남편은 아무 소리도 않는데 말이야. 그러고 보니 그 양반도 맛있어서 아무 소리 안 한 게 아니라 맛을 못느껴서 그랬나 봐. - 박혜란의《다시, 나이듦에 대하여》중에서 - * 인생의 겨울이 왔다고 너무 낙심하거나 서러워할 것 없습니다. 나무도 때가 되면 꽃도 지고 잎도 떨어집니다. 자연의 이치, 세상의 이치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 주름은 많아져도 아름답게 나이들어 가는 것, 함께 나이들어 가는 사람의 얼굴을 보며 웃음 잃지 않고 기운 넘치게 사는 것, 나이들어 맛있게 사는 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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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대가 넘어가면서 인생의 앞길에 대해 궁금해 지는 것도 많고, 불안해 지는 부분도 많아진다. 궁금한 것보단 불안한 것이 많아지는게 좀더 큰 사실인데, 이 책을 읽으면서 왠지 마음이 편안해지고, 자연스레 나이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덧 손주 다섯을 둔 할머니가 된 여성학자의 평소 일상생활에서 느끼며 겪는 이야기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엊그제까지도 싱글이었던 것 같은데 어느새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하고 다음달 출산을 앞둔 상황에서 읽어보니 이렇게 시간이 훌쩍 가겠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영화보기를 좋아하고, 건망증이 생기긴하지만 조금더 여유로운 삶을 즐기는 삶이 부럽기도 하고, 나 역시 푸근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특히 이십대 친구들에게 해 주는 말씀이 기억에 남는데, 스스로를 돌볼 수 있을 정도의 경제적 능력과 남을 미워하지 않는 마음, 항상 감사하는 마음 등을 갖춘다면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노후를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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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듦은 자연스러운 것, 더 나아가 자유스러운 것!
아주 멋진 할머니가 되길 소망한다. 하얗게 새어버린 머리지만 꿈을 꿀 수있고,
힘에 겨운 체력이 되겠지만, 즐겁게 웃어제끼는 몸짓으로 여유롭기를.....
편안한 미소속에 깊은 이해로 감싸안아줄 수 있는 깊이를 쌓고 싶다.
맹렬하게 나이듦을 부정했던 10년 전, 이제는 열렬아게 나이듦을 껴안는다는 박혜란 작가. 나이들수록 부끄러움만은 점점 가벼워지니 참 다행이란다. 죽을때까지 영화를 쫓아다니고 싶다는 이야기를 읽어낼리다 보니 내 엄마의 모습이 겹쳐진다. 왠지는 모르겠다. 울 엄마도 이렇게 자유롭게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여유를 느끼며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만 한 가득이다.
나이는 들어가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원하는 것들은 많이 다르지 않는데.... 왜 어릴땐 윗 어른들의 감정이나 낭만은 이해하거나 인정하지 못했는지 사실 현실도 그리 다르지 않게 반복되어지고 있지만....왠지 씁쓸해진다. 나도 나이가 들어가기때문이지 중년으로...^^
아들만 둘인 나에게 엄마는 지금도 딸을 낳아야 한다며 강력하게 주장하신다. 딸이 없으면 엄마는 너무 외롭다고 중년으로 접어든 나이 적지않은 딸에게 한달에 한 번씩은 꼭 딸을 가지라고 말을 하는 엄마를 떠올리게 하는 (新시어머니 십계명) 1.나는 시어머니이기 이전에 나다 -더 이상 아들을 보살필 필요가 없어졌으니 이제부터 나를 보살필 노년 계획을 치밀하게 세워서 경제적 육체적 심리적으로 건강한 삶을 누리기 위해 '나의 생애계획'을 다시 세우자. 2.아들은 며느리 남편이다.- 아들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정말 아들을 사랑한다면 아들이 며느리와 오순도순 살아가도록 놔두어야 한다. 3,며느리는 딸이 아니다. - 며느리는 절대로 내 딸이 될 수 없다. 며느리는 남의 딸이다. 사돈댁의 귀한 딸이다. 그러니 며느리를 딸처럼 생각하지 말고, 말그래도 며느리고 생각하고 대하라. 4.며느리도 나와 같은 여성이다 - 며느리도 내 며느리기 전에 한 인간이며 한 여성이다 가족의 새로운 구성원이기 전에 독립된 인격체이다. 5.아들네 집은 내 집이 아니다. 6.며느리에게 가르치려 들지 말라 - 며느리가 도움을 요청할 경우에만 도와주며 끝내라. 7.좋은 며느리란 따로 없다.= 좋은 며느리는 좋은 시어머니가 만든다. 8.아들도 며느리도 손님이다. - 자식을 망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내 인생을 자식에게 올인하는 것이다. 끈적한 관계보다 약간 매정한 듯한 관계가 서로에게 편하다.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듯이. 9.칭찬하고 또 칭찬하라.-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10. 생긴대로 보여 주라. - '시어머니다움'이 따로 있다는 고정관념을 버려라.그리고 며느리다움도 기대하지 말고 고부간에 서로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관계야 말로 좋은 관계이다. 나이를 먹어간다는건 그만큼 삶의 지혜와 이치를 받아들이고 전해주는 존재로 바뀌어가는 것 같다. 그래서 나도 시간 흐름을 원망하지 않고 즐겁게 받아들여 지혜롭게 나이들어가고 싶다. 나를 나답게 더 잘 가꾸고 사랑하면서 나이듦이 깊어지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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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나이듦에 대하여는 저자가 책 서문에서 언급한것처럼 60대의 나이로서 일상생활의 에피소드들을 일기형식으로 써놓은 글이다. 나이듦으로써 젊은 시절과 생각이 많이 달라진 부분이 있으나, 나이만큼 삶을 여유롭게 살기 위한 나름대로의 원칙, 방법 및 느낌들을 독자들에게 이야기 하고 있다. 책을 읽기 전에는 이 책을 통해 곧 내게 다가올것 같은 나이듦에 대해 어떻게 준비하고, 살아가는것에 대한 좋은 얘기를 기대했으나, 이 책은 그런것 보다는 저자의 일상생활에대해 나이듦으로 변환된 생각들을 말함으로써, 내가 나이 들면 또는 지금의 어르신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에 대한 약간의 힌트를 얻은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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