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너져가는 가야의 열두고을을 금이라는 악기에 담았던 우륵,,, 죽음이 지금보다 훨씬가까이 있었던 고대사회에 사람들은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하기위해 각자의 장치를 가진다. 죽음이후의 삶이 무 라는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사람들은 변함없이 강해서 세상을 지배하는 강철과 영혼을 위안하는 음악에 기대려했다. 권력을 가진 왕은 거대한 고분을 쌓고 자미원이란 가공의 세계를 만들어내고, 금속의 안락함에 기대려한다. 가야의 대장장이 야로는 무기의 힘에 기대어 세상을 지배하려하고, 무기와 권력의 힘을 믿은 신라장군 이사부는 중앙 집권화된 힘에 기댔으며, 우륵은 덧없는 세상에서 소리의 영원성을 믿었다. 죽음이란 소멸을 피할 수 없는 현실에서 이들의 몸짓은 절실하다. 수없는 세대가 흐르고, 야로나, 이사부나, 우륵의 먼 후손일지도 모르는 우리는 지금도 죽음의 공포와 덧없음에서 벗어나고자 돈과 쾌락과 권력을 쫓고있지 않는가? 김훈씨의 글을 읽으면 그림을 보는 것 같다. 속도감이 떨어지는 것도 아닌데 영화같은 동적인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래된 사연있는 그림을 하나하나 들여다 보는느낌을 준다. 칼의 노래가 전쟁의 역사를 읊는 노래가 아니라, 금속의 칼속에 담긴 이순신을 읽어내는 작업이었다면, 현의노래는 열두개의 현속에 담긴 인간을 보여주려고 했던 듯 하다. 칼이든 현이든 결국은 인간의 마음과 몸짓을 담아내는 도구이기때문에, 현의 울림과 칼의 울음에 작가는 그렇게 반응했나보다. 그러나, 칼만큼 현은 설득력있게 울음을 들려주지 못한다. 나에게는 현의 울림보다는 이사부와 야로의 금속이 더현실감있게 다가왔다. 소리는 유와 무의 마찰로인해 발생하면서 아무것도 아니며, 순간적이지만, 영원한것이기 때문에 현란한 글발에 끝없이 펼쳐지면서도 아무것도 남지않게 되는 것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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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역사를 잘 모른다. 단기기억으로 나무만 본 역사만 기억한다. 그렇게 배워와서.. 이제서야 숲을 만들어보는데 그것도 짧은 지식으론 좀 힘들다. 그래서 언젠간 숲을 보겠지 싶어 여전히 나무를 찾아 다닌다. 개정판이 2번 나왔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2004년도 판이다. 누군가가 이거 유명하대 라면서 슬쩍 건넨 책. 칼의 노래 이후에 나온 책이라 왠지 겁도 나고 표지의 열 두 줄은 보이지 않고 제목만 눈에 띄었다. 최근 ‘내 젊은 날의 숲’을 본 후 이 책이 눈에 아른거려서 용기를 냈다. 저자의 뜻대로 역사로 읽지 않고 소설로 읽었다. 그게 내 머리에도 편하겠다 싶었고. 칼의 노래를 쓰기 위해 현충사에서 이순신의 칼을 들여다보며 한 계절을 보냈듯이 2003년 겨울엔 악기를 들여다보고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작가의 노력과 열정이 보인다.. 이 책엔 소리와 숫자들이 나온다. 현의 소리인 가야금과 땅을 넓히려는 전쟁의 소리. 그런데 왕의 상여가 처음부터 나와 두려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왜 죽음을 먼저 이야기할까.. 그리고 순장. 숫자가 아닌 글로 나오는 숫자들의 이어짐. 쉰 명, 두 개, 셋, 사백 년, 삼천, 칠천, 오천, 이천삼백 그리고 제일 끔찍한 숫자 일만 이천삼백오십. 간단한 제목 속에 들어있는 사연들은 글로 보면서도 바로 상상이 되었고 또한 소리가 들린다. 소리에 대한 그의 표현이 추상적이면서도 공감이 된다. ‘다가가는 소리도 불려가는 소리도 아닌 알아들을 수 없고 막을 수 없는 소리, 새로운 시간이 사람에게 달려와 스며드는 소리, 시간이 새롭고 모든 소리들의 고향인 새로운 시간, 소리들의 고향은 늘 스스로 무너져 사라지지만, 소리들은 늘 그 고향에서 울리는구나..’ 사백 년 역대 왕들의 무덤과 새로운 무덤, 죽은 왕을 따르는 순장자들과 그들의 억울함, 도망친 젊은 시녀 아라와 부정을 막으려는 관리들의 몸부림, 왕을 자미원으로 보내기 위한 연주와 춤, 가야 왕의 부탁으로 신라에서 보낸 비와 그녀가 낳은 아들 월광. 흩어진 소리를 모아 12줄 가야금에 고을의 소리를 담는 우륵. 부인 비화와 제자 니문. 쇠를 모아 무기를 만들고 전쟁터의 모습을 보고 새로운 무기를 만들고 때로는 나누는 대장장이 야로와 아들 야적. 신라장군 이사부와 화랑 사다함. 시간이 흘러도 이어지는 전쟁, 지휘자들의 죽음 그리고 남은 자들의 보살핌.. 사람들의 모습과 상황들이 단어로만 나열되고 이어지지 않는다. 역시 내겐 역사는 힘들고 전쟁은 더 힘들다. 그럼에도 역시 읽을 가치는 충분히 있다. 더 먼 과거의 이야기임에도 남한산성보다 더 가까이 다가온다. 가야국에서 처음 만들었으며 처음엔 4줄이었지만 우륵이 어려 고을의 소리를 담기 위해 12줄로 만든 가얏고 가야금. 우륵의 연주 모습을 읽으며 그의 연주 모습과 가야금 소리를 상상한다. 후반 가야와 삼국사 연표는 그 당시의 역사가 고스란히 들어있다. 출생, 나라의 건국, 왕들의 사망과 즉위, 동맹과 전쟁. 여전히 내겐 자꾸 단어만 보인다.. |
| 잘 읽혔다. 그러나 글쎄, 그게 전부다. 세련된(?) 무협소설을 읽은 듯 하다. 비장한 문체며 곳곳에 적절히 배치된 에로틱한 장면들. 하늘을 날고 장풍을 쏘아대는 장면들만 없을 뿐이지 무협지에 다름아니다. 제목으로 짐작할 수 있듯이 '현의 노래'는 '칼의 노래'의 아류다. '버려진 섬들마다 꽃이 피었다'로 시작하는 '칼의 노래'의 변주. 전작 '칼의 노래'에서 김훈은 특유의 비장하고 유려한 문체로 이순신이라는 인물을 새롭게 그려내어 누구도 쉽사리 흉내낼 수 없는 그만의 작품 세계를 일구어냈다. 하지만 한 작가의 성취는 동시에 그 자신이 넘어서야할 부담이 되기도 한다. 그점에서 '현의 노래'는 '칼의 노래'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아주 쉽게 얘기하자면 '전작만한 속편이 없다'는 영화판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만든다. 매트릭스 2나 다이하드 2가 원작보다 훨씬 실망스럽듯이. 책의 줄거리는 가야가 신라에게 패망하는 이야기가 밑배경으로 깔리면서 우륵과 그의 제자 니문, 가야의 대장장이 야로, 신라장수 이사부를 큰 세축으로 하여 진행된다. 그 사이에 뚜렷한 이미지를 남기는 여인들로 우륵의 애인 비화, 가야왕의 침전 시녀 아라가 등장한다. 전작 칼의 노래에서 이순신이란 인물로 집중되었던 노래의 주제는 현의 노래에서 가야의 대장장이 야로, 신라 장군 이사부, 그리고 우륵으로 산만하게 나뉘어지면서 책 제목이 어째서 '현의 노래'인가에 대해 의구심마저 갖게 만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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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가을에 지인의 소개로 본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인 《칼의 노래》를 읽은 적이 있었다. 이 작품도 다른 수많은 작품들처럼 이순신의 과거업적에 대해 기술한 전기문이겠거니 하고 읽기 시작했다가 적잖은 충격을 먹었던 작품이였다. 그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글을 기술하고, 또한 이순신의 전체적인 업적의 기술에 치중하는 글이 아닌 그 시대적 배경과 그 시기의 사실에 입각해 |
| 나는 김훈 작가를 좋아한다. 맨 처음 이 책을 구입하고자 할때는 "칼의 노래"에서 처럼 흥미로운 역사소설을 기대했던 것이 사실이다. 분명 이런 면에서는 떨어진다. 박진감이나 재미는 분명 덜 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요즘처럼 내 역사가 모욕을 당하고 있는 시점에서는 왠지 그 어떤 우리 역사소설도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은 단순한 애국심때문만은 아닐것이다. 그 어느나라의 역사도 그 어느나라의 문화도 함부로 평가되어서는 안된다. 분명 우리에게는 삼국시대가 존재했고, 발해가 존재했다. 그러기에 삼국사기를 바탕으로 전개되는 "현의 노래"는 우리 역사속에 있음직한 일들을 써 두었다는 것 이상의 가치를 가져야 한다고 본다. 작지만 화려했던 순간들을 간직하고 짧게나마 우리 역사속에 자리했던 가야의 역사를 슬프고도 애절한 가야금 현의 소리속에 담아내려는 작가의 노력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멸망하는 한 나라의 슬픈 운명을 너무도 슬프게 그려낸 "현의 노래"를 읽은지 한참이 지난 지금에야 조금은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가야도 우리 역사의 일부였다는 것을......" |
| '화장'에 이어 실패하지 않은 선택. 글을 잘 쓰는 작가를 알게 되어 기분이 좋다. 특히 '죽음' 을 다루는 방식이 멋지다. 엄숙을 떨지도 않고 그렇다고 자극적으로 이용하지도 않고, 지나치게 무관심한 척 하지도 않으면서...... 잔인하리만치 냉정하게 '죽음'을 쓰면서 그는 품위를 잃지 않는다. 시사저널의 편집장으로 있을 때 경쟁잡지인 한겨례 21의 쾌도난담에서 거침없는 입담을 펼쳤던 것이 아직도 강한 인상으로 남아 있다. 여성관은 참 동의하기 힘들지만..(그는 생물학적으로 남자가 우월하다고 생각하며 그 생각을 드러내기를 전혀 저어하지 않는다.) 사실 모든 담론에 있어서 보수적인 입장을 피력하고는 있지만 적어도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말할 줄 아는 사람이어서 싫지 않다. 그의 소설에는 사실 관심이 없었으나 '화장' 을 두고 평론가들이 하도 극찬을 하길래......('남성적' 필력의 작가가 드디어 출현했다느니 등등..) '화장' 이 명품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 위주의 가벼운 단편보다 힘있다는 느낌은 있다. 근데, 타자의 육체, 관능에서 생명과 희생의 냄새를 풍기게 하는 것... 이건 고전적인 비유법이기는 하지만, 난 왜 지겨운 걸까? 현의 노래에서도 생명과 희생의 이미지로서 젊고 아름다운 여자의 육체를 사용하고 있다.(순장되는 아라) 어쩌면 쉽게 변형시키고 때로는 찬미할 수도 있는 적당한 거울을 가지지 못한 영원한 마이너리티로서의 콤플렉스인지도 모르겠지만, 남성의 자아 속에서 무의식의 떠다니는 육체로만 존재하는 여자들을 볼 때 내 젠더는 아름다우리만치 미학적으로 사고를 형상화해가는 그 남자의 작품에 선뜻 몰입하기를 거부한다. 뭔가 불편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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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안 가결로 인해 직무정지된 노무현 대통령이 관저에서 열심히 보는 책이 김훈의 '칼의 노래'였다. 나는 '칼의 노래'를 산다는 것이 서점에서 잘못 집어 카운터에 올려놓고 계산 다 끝낸게 다시 바라보니 '현의 노래'였다. 웃지못할 실수를 하고 말았지만 이미 끝난 계산이야 어쩌랴. 돈은 한정되어 있고 '현의 노래'를 계산한 마당에 '칼의 노래'까지 살 수는 없지. 어쩔 수 없이 '현의 노래'를 먼저 읽기로 결정. 아직까지 '칼의 노래'는 읽지 못했다. 오랜 세월 기자생활로 글과의 끊임없는 소통을 해왔던 작가 김훈은 그의 수십년(?)의 글쓰기와는 다른 형태의 글쓰기인 소설로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칼의 노래'가 2001년 동인문학상을 받은 것인데, 그 전에도 김훈은 '너는 어느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밥벌이의 지겨움' 등으로 이미 주목을 받기 시작한 글쟁이였다. 어쨌건 그가 너도나도 다 아는 문학인 반열에 오른 것은 그의 소설 '칼의 노래'다. 더군다나 노무현 대통령이 이 책을 읽고 있다하여 더욱 유명해졌다. '현의 노래'는 '칼의 노래'에 이어 김훈의 두번째 소설이다. 첫번째 것이 이순신을 다루었다면, 두번째 것은 가야의 악사 우륵을 다루었다. 제목은 '현의 노래'라고 했으나 이 책을 읽는 내내 듣는 생각은 왜 제목이 '현의 노래'일까 라는 물음뿐. 오히려 이 책에는 '현'보다는 '칼'이 더 많이 등장한다. 그렇다면 '칼의 노래2'인데... 글을 다 읽고 난 지금도 마무리가 현으로 끝났기 때문에 '현의 노래'라는 제목에 그저 고개를 끄덕끄덕 해줄 뿐이지 오히려 비중은 칼이 더 높았다는 생각이다. 한편, 책의 내용보다는 김훈의 문장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그의 소설을 보면 문장을 이루는 단어나 어조가 마치 노자의 도덕경이나 장자의 장자를 읽고 있는 듯, 물 흐르는 듯한 구성을 갖추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이는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가야의 악사 우륵과 대장장이 야로를 통해서 그대로 드러난다. "소리는 본래 살아 있는 동안만의 소리이고, 들리는 동안만의 소리인 것이요. 집사장께서 이승과 저승의 사이를 헤아리지 못하시는구려. 살아있는 동안의 이 덧없는 떨림이 어찌 능침을 편안케 하고 북두를 전정시킬 수가 있겠소. 소리가 고을마다 다르다 해도 쇠붙이가 고을들을 부수고 녹여서 가지런히 다듬어내는 세상에서 고을이 무너진 연후에 소리가 홀로 살아남아 세상의 허공을 울릴 수가 있을 것이겠소? 모를 일이오. 모를 일이로되, 소리는 본래 소리마다 제가끔의 울림일 뿐이고 또 태어나는 순간 스스로 죽어 없어지는 것이어서, 쇠붙이가 쇠붙이가 소리를 죽일 수는 없을 것 아니겠소?" (우륵의 말) "병장기는 본래 그러한 것입니다." "흘러서 끝이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과 같은 것입니다." (야로의 말) 그의 문장에는 힘이 들어가 있지 않고, 애써 무엇을 수사하려고 하지도 않으며, 그저 힘을 쭉 뺀 채 화선지에 붓을 흘리듯 하다. 꾹꾹 연필로 눌러 쓴 글이라고는 하나, 실제로 그의 문장엔 힘이 없다. 마치 소설속에서의 나라의 길과, 병장기의 길, 소리의 길을 보는 듯 하다. 글의 내용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할지라도 글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김훈의 문체를 보여주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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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칼의 노래보다 이 책에 더 점수를 많이 주고 싶다. 재복이 말투대로라면 그 동안 김훈님의 대구리가 자라서 그런건지 (김훈님 죄송합니다 요런 버릇없는 말투, 그래도 상스럽진 않지요? 재복이 말투로 읽으면 안상스러운데) 아니면 단순히 내 취향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삼국사기에서 우륵에 대해 표현한 다섯 줄을 읽고 그 중 우륵이 소리를 통해 신라로 갔다는 문장에 젊은 시절의 그는 큰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이 소설을 쓰기 위해 그는 서초동 국립국악원의 악기박물관을 9개월동안 제집드나들듯이 하며 말없이 악기를 바라보다가 왔다고 한다. 그는 악기를 통해 그 악기가 살아온 살육과 유혈의 시대를 재현해 내며 비통해도 하고 참담해도 했나보다
하루 종일 글쓰기에 매달려도 몇자 써내지 못했다는 그의 말처럼 한문장 한문장이 그냥 만들어질 수 없음을 느낀다. 아울러 윤동주님의 쉽게 쓰여진 시,라는 글이 생각나며 너무나 쉽게 뚝딱 쓰는 내 기록들이 부끄럽기도 하다
말기 가야의 모습과 몰락하는 과정을 악사인 우륵과 그의 제자 니문, 대장장이인 야로,
궁녀였던 아라와 우륵의 아내인 비화 그리고 신라의 장군 이사부를 중심으로 그려냈다
소리에 대한 여러 가지 정의와 가야의 풍습인 순장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가 두드러진다
그나저나, 이 책도 영화로 만들어진다고 하네. 작중 매력적 인물이었던 아라와 비화를 많이 부각시킬 것 같던데 어떤 훌륭한 감독이 만든다 해도 책의 느낌은 살려내지 못할 것 같다
[인상깊은구절] 구덩이를 덮을 때 울음소리나 비명소리가 한 줄기도 새어나오지 않으면 백성들은 그 적막을 죽은 왕의 덕으로 칭송했다. 간혹 구덩이 뚜껑을 덮을 때 흑, 흑 젊은 여자들의 웃음인지 비명인지가 새어나오는 경우도 있었지만, 사람들은 그 불경하고 요망한 일은 입에 담지 않았다. 또 돌뚜껑이 덮이는 순간, 뚜껑을 밀치고 구덩이 밖으로 뛰쳐나오려는 자들도 더러는 있었다. 군사들이 달려들어 몽둥이로 사지를 부러뜨려 구덩이 안으로 밀어넣었는데, 그 일도 사람들은 애써 기억하지 않았다. 때로는 장례 전날 밤 소복을 입은 채 달아난 처녀들도 있었다. 군사들이 갈대숲과 바위 틈을 뒤져 처녀들을 붙잡아 여러 토막으로 베었다. 군사들은 처녀의 몸 토막을 우물에 던지고 흙으로 메웠다. 처녀의 부모들이 쇠터의 노비로 끌려갔고 살던 집은 헐렸다. 처녀들의 도망은 없었던 일로 바뀌었는데 세월이 지나도 사람들은 그 참람한 일은 일절 입에 담지 않았다 |
| 김영하 작가는 한 소설을 끝낼때마다 자신이 만든 세계의 명예시민이 되는 영광을 홀로 누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그 시대에 태어난 사람이라 했다... 그런 작가의 명예시민권을 독자들도 누릴 수 있을까... 지금 나는 그런 작가의 기분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지금 가야사람이다... 흐르는 역사를 잡아 이 한권의 책에 담아놓은 느낌이다... 흐르는 시간을 한 순간에 떼어내는 느낌이라고 할까.. 작가가 만들어 놓은 그 순간의 시간을 체험하고.. 느끼고... 살다 이제 막 그 시간을 되돌리고 왔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가야인이 되어서 가야를 회상한다... 우륵 이외에 많은 사람들의 생을 보았고.. 그 시대의 고통과 뿌듯함과 고뇌와 기쁨을 누렸다... 가야시대의 단편을 내게 선물(나는 과감하게 선물이라고 말하고 싶다...) 해준 작가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언젠가 나는 가야금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드럼과 피아노를 배우면서 우리의 고전을 느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내 가야금을 배우고 싶어했던 내가 잠시 부끄러워 진다.. 분명 학창시절에 음악시간이나 국사시간에 가야때 우륵이 만든 악기가 가야금이라는 걸 배웠을 텐데... 가야금이 가야 시대의 금(琴) 이라는 걸 왜 나는 새까맣게 잊고 있었을까... 가야 시대의 금까지는 아니더라도 가야시대때 만들어진 악기라서 가야금이라는 단순한 생각도 잊어먹고 있었다... 그 사실이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지만 묻혀있던 나의 생각을 다시 꺼내서 회생시켜 주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현의 노래를 다 읽고 나서 그런 의구심을 가지게 되었다... 지금의 가야금은 우륵의 소리의 뜻대로 울려퍼지고 있을까 하는 의구심 말이다.. 이 책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내가 비유한 우륵의 소리라는 말이 무의미하게 들린다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 가야가 멸망할때쯤 우륵은 신라로 건너가서... 주인이 있는 나라에서 주인이 없는 소리를 신라에서 연주하다 신라 진흥왕의 명아래 계고,법지,만덕 등 3인의 고나원에게 가야 고을의 여러 소리를 가르쳐 주었지만.. 그 3인의 관원이 가야의 소리를 이해해서 그대로 내었는지.. 신라의 소리로 바뀌었는지.. 그건 알 수 없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의 세월동안 가야금의 소리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잠시 그때의 소리 그대로 가야금 일까 라는 과분한 생각을 해 보았지만.. 가야금은 모든것이 그러하듯.. 소리 그 자체의 소리이다.. 그뿐이다.... 그 자체의 자체인 것처럼.. 이건 가야 시대의 우륵이야기도 아니고.. 그 시대의 전쟁이야기도 아니고.. 가야금의 얘기도 아닌... 소리 그 자체의 얘기다... 가야시대때 만들어진 악기라서 가야금이라고 불리우는 의미보단.. 가야의 여러 소리를 담고 있어서 가야금이라고 불리우도록 의미를 담고 싶다... 가야와 우륵과 가야금에 대한 단편인륜적인 생각... 그 생각을 망각하고 있는게 나았다... 누군가 가야금이 왜 가야금이냐고 물어보면 '몰라' 라고 말해버리도록 망각하고 있었던게 나았다... 이제는 누군가 왜 가야금이 가야금이냐고 물어보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우륵이라는 악사가 가야 고을의 여러 소리를 12줄짜리의 금에 생명을 불어 넣어주었기 때문에.. 가야의 소리를 담고 있기 때문에 가야금이라고... 그건 역사에 어긋난다.. 사실이 아니다.. 소설일 뿐이다.. 라고 말해도 난 그렇게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가야의 금도 아닌.. 신라의 금도 아닌.. 그렇다고 대한민국의 금도 아닌... 흘러온 소리.. 그 무수한 세월의 소리를 담고 있는 소리 그 자체의 소리라고 말하고 싶다... 아니면 좀 더 공평하게 현의 노래라고 말하고 싶다.. 현의 노래라..... 그 말을 가슴으로 느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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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의 책은 처음엔 힘들다 읽어내려 가면서도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여기가 어디인지 모르게 그저 읽게만 만든다. 그 어떤 잡념도 흐뜨러진 생각도 들어오지 못한다. 다른생각을 하는 순간 길을 읽어버린 모양이 된다. 그렇게 한참을 읽어내려가면 어느순간 떠돌던 멍한 느낌이 책 한곳에 머물러 그 모든 것이 재미있어진다. 그래서 김훈의 책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렇게 할애한 시간은 그 어떤 무엇의 소중함으로 보상되어 돌아온다. 적당히 아주 적당히 빠져든 시간. 책. 그것말고는 다른 것을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중독이 있다. 마치 드라마에 빠져 밥을 태우시는 우리의 어머니들처럼 아주 달콤한 중독이 있다. 김훈의 책엔..
김훈의 '자전거 여행'을 읽었었다. 그리고 생각했었다. 김훈의 또다른 책을 읽어보자고. '칼의 노래'를 읽어보려 했었는데 나의 게으름이 새로낸 '현의 노래'를 먼저읽게 하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현의 노래'는 우륵의 이야기이다. 그가 만든 가야금의 이야기이다. 그럴거라고 생각하고 처음 책장을 넘겼었다. 우륵의 이야기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가야국의 이야기이다. 그안의 모든 것이 '현의 노래'인 것이다. 나라가 살고 왕이 살고 왕이 죽으면 따라 묻히는 순장이 있고 내가 살기위해 이웃나라와 전쟁을 하고 삶의 소리가 있고 그안에 우륵이 있고 '금' ..'가야금'이 있고.. 이런 살고 죽음의 이야기가 '현의 노래'라는 것을 읽어가는 책장이 두터워 지면서 알게됐다.
만약 우륵이 어떻게 살았고 가야금이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을까가 궁금해서 책을 집어든 사람이라면 권하고 싶지 않다. 분명 그것이 없지는 않지만 어차피 그시대에 살지 않은사람이 써내려간 이야기가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허구인지는 알수없는일이다. 물론 심각한 고증을 통해 써내려간 책임에는 틀림이 없겠지만 서두에서 김훈이 이야기하듯 이것은 어차피 허구의 소설이다. 시대가 가야의 고대이야기이지만 그 안에서 지금의 우리의 삶을 읽어낼수도 있을 듯 싶다. 어차피 사람의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 같다.
지은이가 말하듯 허구의 이야기이지만 때론 책장안에서는 영화의 한 장면 보다도 더 뚜렷이 새겨지는 장면의 묘사는 지은이가 그 사건의 옆 목격자가 아닐까하는 엉뚱한 상상도 허락한다. 전쟁터의 격렬한 싸움장면이나 죽음이 훌터간 전쟁터의 뒷모습이나 왕을 따라 묻어버리는 순장의 묘사는 한편의 처절한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듯하다.
그리고 생각했다. 김훈의 글로는 드라마를 만들 수 없다고. 요즈음 유행하듯 김훈이 써내려간 이야기를 사극처럼 만들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도 했었는데. 김훈의 책으로는 안되겠다. 김훈의 이야기는 사건의 전개가 아니라 사건의 모습이다. 그리고 굳이 사건이라고 할수없는것들도 김훈의 화려한 수식어에 아름답게 녹아난다.. 한 장면으로 만들어낼수 없는 그 많은 수식들은 어찌 할까하는 생각에 안되겠다 싶다.
그래서 생각했다. 김훈의 책을 읽을 수밖에 없다고. 한참을 읽다보면 마치 한 장면처럼 보여진다고...
....들어라. 금이 갖추어지면 여러 고을의 소리를 따로따로 갖추어라. 고을마다 말이 다르고 산천과 비바람이 다르다고 들었다. 그러니 어찌 세상의 소리를 하나로 가지런히 할 수 있겠느냐. 고을마다 고을의 소리로 살아가게 하여라..'현의 노래 P86'
지금 거리엔 자기의 목소리가 높다고 떠드는 선거철이다.
이문구를 들려 주고 싶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냐고..
우륵이 대답한다.
-소리는 들리는 동안만의 소리고 울리는 동안만의 소리니 아마도 주인이 없는 것 같소.
책장을 덮으며 기대를 해 본다. 칼의 노래소리를 현의 노래소리를 그리고 그다음엔 또 어떤노래소리를 들려 줄지를.. 김훈의 자전거에 실려 어딘가를 방황하고 있기를... 바래본다. 그 어떤소리를 듣고 그 노래 소리를 김훈의 펜 끝으로 살아나 들려주기를..
책을 덮으며 예술의 전당에 있다는 국악박물관앞을 서성이고 있을 나를 상상해 본다. 그리고 그러마하고 다짐해 본다. 그 안의 가야금안에는 어떤 소리가 담겨져 있을까... [인상깊은구절] ....들어라. 금이 갖추어지면 여러 고을의 소리를 따로따로 갖추어라. 고을마다 말이 다르고 산천과 비바람이 다르다고 들었다. 그러니 어찌 세상의 소리를 하나로 가지런히 할 수 있겠느냐. 고을마다 고을의 소리로 살아가게 하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