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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떨까? 활자로만 된 역사책을 보다 만화로 된 역사책을 읽는다는 것은. 또 여러 권으로 된 책 중 앞 시대 쪽은 읽지 않고 정조 시대의 책만 읽어도 괜찮을까? 이런 의문을 품은 채 ‘조선왕조 실록 16-정조 실록’을 읽었다. 만화로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에 그다지 호의적인 편이 아니었음에도 이 책을 고른 이유는 실록에 의거한 정사를 위주로 가볍지 않게 다루었다는 점과, 작가의 시사만화가 경력을 눈여겨 봤기 때문이었다. 만화여서 금방 읽을 줄 알았는데, 다 읽기까지는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당시 인물들도 여럿 등장하고, 사건 등 담고 있는 사실(史實)들이 결코 적은 양이 아니었다. 자궁, 자전, 봉조하 같은 낯선 용어가 나와서 그것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고. 처음 태조 편에서부터 읽었더라면 이런 낯설음은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이다. ‘조선왕조 실록 16-정조 실록’은 무엇보다 당시 시대상황과 정조와 신하사이의 역학관계, 그리고 당대의 시대적 과제가 무엇인지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어서, 시사만화가 시절에 갈고 닦은 중요한 사건과 상황을 포착하는 안목을 작가는 십분 발휘했다. 박시백이 표지에다 한 줄로 표현한 정조는 ‘높은 이상과 빼어난 자질 그러나...’였다. 저 말줄임표 속에 다양한 의미와 평가가 함축돼 있을 것이다. 그 의미가 무엇이었을까. 세손 이 산은 어린 나이에 할아버지에 의해 아버지가 죽는 것을 지켜봐야 했고, 외할아버지 역시나 아버지의 죽음에 앞장서는 것을 보고, 권력이 얼마나 무섭고 비장한 것인지 온몸으로 깨쳤다. 자신도 아버지처럼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와 혈육조차 신뢰할 수 없었던 그 외로움은 상상을 초월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학습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조선 전기 세종에 버금가는 학문적 자질을 갖춘 준비된 임금이 될 수 있었다. 그가 즉위 초기부터 개혁적인 정책을 펼수 있었던 것에는 그의 이런 준비가 바탕이 됐던 것이다. 추쇄관을 혁파해서 공노비 처지를 개선하고, 서얼허통을 실시했다. 장용영과 규장각을 설치하고 초계문신 제도를 통해 관리들을 양성했다. 또 수원성을 축성하고 화성행차를 감행했다. 가체를 금지했다. 수령들을 단속했고, 암행어사를 보내 감시했다. 흉년 때 굶주리는 백성의 구제에도 힘을 쓰고, 금난전권을 폐지했다. ‘대전 통편’,'국조보감' 등 많은 책을 편찬하는 등의 치적을 남겼다. 그는 수령들의 횡포를 감시하려 했고, 군포와 환곡 등 백성들의 피부에 닿는 문제에 관심을 보임으로써, 백성들의 삶을 생각하는 군주다운 면모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것은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 이 책에는 정조와 당파 사이의 역학관계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정조가 즉위하자마자 시급하게 처리했던 일은 아버지의 신원작업과 자신을 몰아내려고 했던 척신들을 숙청해야만 했다. 임금 자리를 지키고, 제대로 된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또 벽파와 시파,, 그리고 남인에 대한 탕평을 통해 당의 균형을 잡는 정치력을 발휘했다. 정조는 경학을 중시한 정통 유자였다. 정조의 정책에 발목을 잡았던 벽파를 사생을 걸고 싸워야 하는 정적이 아니라, 함께 끌고 가야 할 정치적 파트너로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성리학적 전통을 지향했던 정조의 정치 철학은 결국 시대의 변화를 받아들이는데 한계로 작용하고 말았다. 그가 재위한 기간 동안 조선 밖에서는 세계사적으로 의미있는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 영국에서는 산업혁명이 일어났고, 미국은 독립전쟁에서 승리했다. 프랑스에서는 프랑스 대혁명이, 중국에서는 건륭제의 치세로 사회가 안정돼 서양 상인과 선교사들이 중국에 들어와 새로운 문명의 조짐을 전파하던 시기였다. 그럼에도 정조는 이런 시대적 변화를 제대로 감지하지 못했다. 전통 유자였다는 점에서, 또 아버지의 신원과 추숭 작업에 많이 매달리게 되면서, 세계사적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죽음을 예감이라고 한 듯, 정조는 죽기 직전에 김조순을 불러 세자의 후견을 부탁했다. 그 뒤의 조선, 정순왕후가 수렴 청정하게 된 조선은 더더욱 세계사적 변화와는 멀어지고, 세도 정치를 불러오고야 말았으니.. 박시백의 '높은 자질과 빼어난 자질, 그러나...' , 말 속에는 정조가 세종과 비견될만큼 성군의 재목이었음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또한 그러나 뒤의 말줄임표 속에 생략된 안타까움 또한 전해진다. 진정한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루지 못했던 정조의 한계에 대해서도. 그럼에도 정조가 순조가 성장할 때까지 더 살아있었다면 오늘날 한국의 비극적인 근현대사를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부질없는 줄 알면서도 그런 역사적 가정 또한 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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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탕평(蕩平)’을 내세우며 강력한 왕권을 행사하던 영조의 치세에,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비극적인 최후를 목격했다. 그 사건은 결국 ‘권력은 부자 사이에도 나눌 수 없다’라는 비정한 현실을 절감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후 정조의 행보는 당쟁의 와중에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권력을 차지한 노론 사이에도 영조의 탕평책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으로 당파가 나뉘고, 노쇠한 영조를 대신해 세손으로서 정조의 대리청정에도 서로 다른 의견이 제기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정조는 살얼음을 걷는 듯한 현실에서 나름의 현명한 처신으로 마침내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
여전히 역사학계에서는 정조의 치세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거침없는 개혁정책을 시행했으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서 그것이 좌절되었다는 평가가 그 중 하나이다. 강력한 왕권을 구축하기 위해 친위조직을 구축하고, 이른바 ‘문체반정’이라는 정책에서 보듯 자신의 정책에 반발하는 세력들을 억눌렀던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는 것이 그와는 다른 평가라고 하겠다. 정조 역시 탕평을 내세웠지만, 그의 정책을 지지하는 시파와 적극적으로 맞서 반대했던 벽파의 갈등이 그의 치세 동안 지속되었다. 더욱이 비극적으로 죽은 아버지 사도세자의 명예를 회복하려는 그의 의도를 실현하기 위해서 인내하는 시간을 가져야만 했었다.
이처럼 복합적인 성격을 지닌 정조의 치세를, 이 책의 저자는 ‘높은 이상과 빼어난 자질, 그러나 ....’라는 부제로 규정하고 있다. 분명 정조의 정책들은 당대 사회의 현실을 적절히 개혁할 수 잇는 방향성을 지니고 있었지만, 뛰어난 학문적 자질을 토대로 한 지나친 자신감이 그의 사후 강력한 반동의 정치를 초래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것은 어쩌면 ‘시대의 한계이자 정조의 한계’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강력한 세력을 지닌 노론이 19세기에 특정 가문 중심의 세도정치를 전개할 수 있는 바탕이 완성되었던 당대의 상황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정조가 끝내 ‘이루지 못한 꿈’은 20세기 이후 역사가들에 의해 다양한 측면에서 조명되고 있다고 하겠다.(차니) * 개인 독서 카페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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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0년대 사극의 단골 소재가 '장희빈'이었다면, 최근 들어서는 단연 '정조'가 아닐까 싶다. 최근에 나온 영화 중에는 '역린'이란 영화가 기억난다. 역린은 정적의 사주를 받은 살수들이 정조를 죽이기 위해 존현각에 난입했던 사건을 담고 있는데,그렇게 보위에 오른 뒤에도 대놓고 암살당할 뻔했을만큼 내내 정적에 둘러싸였던 임금이었기 때문이다. 또 개혁 군주라는 이미지도 대중들에의 호감을 사게 된 것도 한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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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백의 조선왕조질록 16, 정조편을 읽으면서 왕 이전에 인간 정조가 안스럽게만 느껴졌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을 목격하면서 정치와 권력의 비정함을 뼈속깊이 느꼈을테고, 세손이라는 지위가 얼마나 위태한 자리인지 체감하면서 마음을 졸였을 것이다. 그렇게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극도로 긴장된 세손시절을 보냈을 정조로선 그야말로 초인적인 정신력이 아니었다면 그 자리에서 버티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 보태서 누구에게도 마음 터놓고 의지하지 못하는 극도의 외로움까지 감수해야 했을 것이다. 왕이라는 만인지상의 권좌의 주인이라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핏줄에게는 과연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왕이지만 할아버지인 영조, 외할아버지인 홍봉한,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 외할머니인 영빈 이씨 등 가장 가까운 근친들이 모두 자신의 아버지인 사도세자를 죽이는 데 협조하거나 침묵하고 있었으니, 이것을 지켜본 정조로서는 그 누구보다 마음 터놓고 사랑해야 할 사람들에게까지 애증을 갖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보위에 오른 뒤에는 세자를 잃어버리는 처절한 아픔까지 겪어야 했으니, 인간 정조에게 연민이 느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정조가 학문적 깊이는 물론이고, 무예까지 섭렵한 강단있는 왕이 된 데에는 이런 위태롭고 불안한 세손시절을 헤쳐왔고, 인간적으로 복잡다단하고 극한적인 감정을 겪었던 과정도 작용했을 것이다.
정조는 세종, 성종과 함께 호학의 군주로 꼽힌다. 그만큼 유학적인 가치를 반영한 왕으로서 자질이 뛰어났다. 한편으로는 즉위 직후 아버지를 음해한 영조의 후궁 문씨와 그 오라버니 문성국, 화완옹주의 수양아들 정후겸, 혜경궁 홍씨의 숙부 홍인한 등과 척신들을 단호하게 숙청했다. 아버지 사도세자를 신원하고 왕권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며 본격적으로 자신의 시대를 만들어가기 위한 초석을 다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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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는 사대부 정치를 복원하겠다는 복안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규장각을 세워 당색을 초월해서 인재를 뽑는가 하면, 초계문신제도를 만들어 유능한 하급 관료들에게는 공부하는 시간을 만들어주기도 했다.기본적으로 정조는 사대부를 정적이 아닌 함께 가야 하는 정치적 동반자로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가하면 육의전 상인들이 갖고 있던 난전을 금하는 특권, 즉 '금난전권'을 폐지해 상업의 발전을 촉진시켰다. 서얼들도 관리가 될 수 있게 길을 터주었고, 줄기차게 암행어사를 파견하는 것으로 지방 목민관들의 횡포를 단속했다.
영정조대는 조선 후기 안정을 보여준 시대라 할 수 있다. 상업이 융성하고, 신분제도에 변화를 촉발할 수 이있는 부농이 등장하는 등 의미있는 조짐도 보였다. 어떻게 보면 조선이 자주적으로 근대화를 이룰 수 있는 기반을 확고하게 다질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하지만 개혁의 군주라는 이미지에 걸맞지 않게 정조는 시대적 한계를 뚜렷하게 보여준 임금이기도 했다. 앞에서 말한대로 그는 어디까지나 유학적 가치에 충실한 임금이라는 점에서,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고, 실용적이고 과학적인 사상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했던 것이다. 서학을 반대하고, 새로운 방식의 글쓰기를 용납하지 못했던 정조는 고문을 형식을 요구했던 '문체반정'이나 사대부를 정치적 동반자로 생각했던 것에서 서구세계에서 진행된 탈봉건, 근대화라는 세계사의 흐름에 발맞춰 갈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이 무렵 실사구시를 내세운 실용적인 인물들이 등장했지만 정조의 마음을 바꾸지 못했던 것은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이었다. 조정이 앞장서서 서구의 실용적인 학문과 사상을 받아들이는 근본적인 개혁까지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조선왕조실록 16, 정조 편을 읽으면서 구성 면에서 아쉬운 점도 있었다. 정조 자체가 워낙 다사다난했던 왕이었던만큼 그 시기의 뛰어난 인물들까지 다룰 여력이 없었다는 점이다. 정조시대에는 선조시대 만큼이나 걸출했던, 박지원, 박제가, 정약용, 홍대용 등등 천재급 인물들이 여럿이었음에도 그들의 활약상을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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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롭게도 정조는 24년 동안 재위했고 1800년에 승하하고 말았는데, 그의 죽음과 함께 조선은 18세기 그 대단원의 막이 내려졌다. 그로써 내부로부터 조선사회에 질적인 변화가 이루어질 수 있었던 일말의 가능성이 무너지고 말았던 것이다. 혼돈과 쇠퇴의 시기, 암담하기만 했던 19세기를 생각해보면 18세기 정조의 행보에 아쉬움이 남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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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읽었다. 만화를 좋아해서... 우리 것을 다시 한 번 알기 위해서... 전에 조선왕조실록이라는 책을 읽은 기억이 있다. TV나 시중에 나오는 책 중에서 역사와 관련된 것은 조금씩 접해본 터라 재미도 있을 것 같았다.
다시 한 번 느끼는 것이지만, 우리 선조들 대단한 사람이 많다. 아니, 조금은 새로운 이야기를 보기도 했다. 흔히 말하는 당쟁을 겪어면서도 그렇게 줄기차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자신의 목숨에는 초연하게 까지는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니 대단하다는 생각뿐이다.
1권부터 시작해서 다 읽고 나니 왕의 권한이 무궁무진한 것도 아니고, 신하의 권세도 왕의 한 마디에 끽.... 그 밑에 있는 백성들만 죽어나고 있었다. 이 대단한 기록이 왕과 주위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라서 그런지 가끔은 백성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하기도 했다. 요즘도 모든 것이 중앙 정부와 그에 따른 관리들의 이야기이니... 언제나 힘든 것은 백성뿐...
하지만, 그 긴 세월동안 기록을 한 조상들이 대단하다. 이 이야기가 흐름을 이어가기 위해 아마 정치적인 이야기를 주로 한 것 같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정치뿐만이 아니라 다른 많은 이야기도 있다고 하였는데, 이것도 아마 작가의 의도가 다분히 들어가 있겠지. 그 많은 내용을 책 한 권에 나타내기가 그렇게 쉽지는 않았을 듯...
어쨌든 작가의 노력이 보이는 작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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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유학자라 칭한 정조. 세손 시절그에게 주자학공부는 학문의 즐거움이 아니라 생존의 수단이었을 것이다. 비록 적장자로 태어났지만 힘든 시절을 보내고 왕이 되어 정말로 열심히 임금노릇을 햇지만 성리학을 국조로 삼은 동방의 작은 나라의 임금의 한계를 넘지는 못햇다. 만들어진지 400년이 넘은 헌법에 의존했고 당시 세상의 중심이었던 중국을 흔드는 서양의 거센 물결을 보지 못햇다. 하긴 실제적인 종주국인 청나라를 우습게 보는 환경에 있었으니 그 청나라마저 똑바로 이해하지 못했으니 서양세력을 이해하지 못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겟다. 그러나 조선왕조 500년 동안 가장 훌륭한 임금 중의 한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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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권의 주요인물들
왼쪽 : 정조(조선 제22대 임금), 정후겸과 홍인한, 화완옹주, 정민시, 서명선 정순왕후, 은언군 이인, 송덕상, 홍국영 오른쪽 : 윤지충과 권상연, 김조순, 문양혜, 구선복, 혜경궁 홍씨, 세자(순조)
16권은 정조실록이다. 정조에 대한 나의 선입감은 세종 못지않은 명군으로 많은 업적을 남겼으나 뜻을 펴지 못하고 일찍 죽은 아쉬움을 남긴 임금이라는 것이다. 광해군처럼 비극적인 최후를 마친 것은 아니지만, 세종처럼 여한이 없는 삶은 아니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이 책에서의 부제도 ‘높은 이상과 빼어난 지질, 그러나……’이었다. 비참하게 삶을 마감했던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한이 맺혔던 군주, 또한 뜻을 펴기에는 너무 어린 아들 순조로 인해 차마 떨어지지 않는 저승길을 갔을 것이라는 것이 정조에 대한 나의 생각이었다. 그런 정조의 실록을 완독한 뒤에 무엇을 느꼈는지 몇 가지만 적어보겠다. 첫째, 영조의 선택은 옳았다는 생각을 했다. 태종은 장남인 양녕대군을 폐하고, 셋째인 충녕대군을 선택했다. 충녕대군은 우리 역사상 최고의 명군인 세종이 되었다. 태종은 최소한 자식을 알아보는 눈은 있었던 것이다. 영조는 아들인 사도세자를 죽이고, 손자인 정조를 선택했다. 영조와 정조가 태종이나 세종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들도 조선의 제왕 중에는 나름의 업적을 남긴 이들이다. 정조를 알아 본 영조의 눈은 정확한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세종과 정조는 후사까지도 어찌 그리 닮은꼴이었을까? 세종이 병약한 아들 문종과 어린 세손 단종으로 인한 왕실의 비극을 막지 못했듯이, 정조는 어린 아들 순조로 인해 국운이 기울어지는 사태를 막지 못했다. 역사에서 ‘만약에’라는 가정은 의미가 없다고 하지만……, 세종과 정조가 10년만 더 살았으면 어땠을까? 그 사이에 문종은 세상을 떠났다고 하더라도 단종은 성인이 되었을 것이고, 순조 역시 장성했을 것이니 정조의 치적이 정순대비에 의해 하나하나 무너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둘째, 끊임없는 당쟁이 지겨울 정도였다. 선조 시절 동서분쟁으로 시작한 당쟁은 분화를 거듭해서 동인은 남북으로, 서인은 노소로 다시 청남·탁남이나 시파·벽파 등으로 분화가 거듭되면서 끊임없이 분쟁이 이어졌다. 역대 제왕들은 숙종처럼 환국정치를 통해 철퇴를 내리기도 하고, 영조처럼 탕평정치를 통해 다독이기도 하였으나 당쟁을 막을 수 없었다. 정조 역시 역부족이었다. 역사는 되풀이되는 것일까? 남북으로 갈린 것도 부족해서 여권은 친이와 친박, 야권은 보수와 진보 등으로 나뉘어서 이전투구를 계속하고 있는 현실은 사색당파의 후예라는 업보가 아닌가, 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강경파가 득세하는 것이 현실일까? 조선시대의 주류는 서인 노론의 강경파가 득세했고, 남북 모두 강경세력이 기득권을 유지하는 것까지 닮은꼴인 듯하다. 셋째, 역사를 보면 교훈을 얻는다고 했는데 나는 그렇지 못했다. 아직은 경륜이 부족한가 보다. 영조나 정조를 보면서 강경파들에게 철퇴를 가해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도록 억눌렸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그들을 사람대접을 해주니까 더욱 기고만장해진 듯이 보였다. 마찬가지로 현실 정치에서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수구세력에게 보다 강력하게 대처했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이승만·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정적들을 사법살인이나 의문사 시켰듯이 족벌신문과 대안이 없는 수구세력을 그렇게 처리했어야 하지 않나, 라는 생각도 했다. 과연 영조나 정조 또는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이 그렇게 강경하게 대처했다면 세상이 깨끗해졌을까? 그것을 장담할 수가 없다. 연산군·광해군 시절에 반정을 일으켰듯이, 5.16이나 12.12의 반란이 있었듯이 권력의 병자들은 갖가지 방법으로 저항했을 것이다. 그러면 역사를 바로 잡는 대안은 무엇일까? 어쩌면 많은 국민들이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같은 책을 자주 읽는 것이 하나의 방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역사를 보면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명언은 그래도 진리일 것이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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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어난 자질을 갖고 태어난 왕에 대한 고찰. 2007년 9월에 시작해 2008년 6월에 종영을 한 대하드라마 <이산>을 본방 때도 열심히 보고, 재방 때도 빠짐없이 봤음에도 자꾸 채널을 돌려 정조 이산을 보게 만든다. 대본을 외어도 외웠을 법한 일인데도 자꾸 그의 일대기를 보는 이유는 송연이와의 운명적인 사랑과 영조의 정치로 인해 희생양이 되었던 사도세자의 이야기와 맞물려 험난한 삶을 얘기하고 있음에도 정치적인 고난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룩하고자 하는 일에 점점 다가가는 점이 좋았다. 그가 세자였을 때 무수히 많은 정치적 암투와 그를 암살하려는 세력에 맞물려 문과 무를 겸비한 왕이었고, 그 어떤 시대보다 개혁의 이미지가 강했던 군주였기에 조선시대의 많은 왕중에 정조 이산을 가장 좋아한다. 드라마 <이산> 뿐만 아니라 가장 최근에 영화화했던 <역린> 역시 정조의 불안한 정치 상황과 정순왕후와의 대립이 팽팽하게 치닫고 있을 때 정조의 강인함과 군주로서의 고뇌가 절로 이해가 된다. 권력투쟁사이에서 그는 누구보다 개혁군주로서 자신의 입지를 다져나갔지만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에서는 많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여주었던 정조의 강점과 좋은 이미지의 부각을 넘어서 보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만화를 그려넣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정조 시대의 사람 즉, 정조의 사람들이 등장하지 않았고 오롯하게 정조의 정치적인 면만 부각되어 그려져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그동안 많은 책들을 보면 그가 가장 아끼고 통애하던 다산 정약용 선생은 물론 단원 김홍도를 언급 안한 책이 없을만큼 그들은 정조 시대를 대표할만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에는 우리가 아는 것처럼 실록에 문화 예술에 관해 쓰여 있지 않아 '정치사'만을 기록해놓은 사료 그대로 담았기에 일정 부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부분을 수록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의아해 하던 점을 저자는 저자후기를 통해 상세히 설명해 주었고 보다 담백하게 정조의 정치를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이 갖는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 책에서는 경이적인 자질의 군왕, 정조! 그는 진정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끈 개혁 군주였나? 라는 질문을 던지며 조선왕조실록을 통해 정조의 정치를 낱낱이 살펴보면서 정조 이산이 꿈꾸던 이상과 그의 현실 정치를 깊이 바라볼 수 있었다. 군주로서 갖추어야 할 소양과 문무를 겸비한 이상적인 왕이었음에도 그가 태생적으로 맞게된 아비인 사도세자에 대한 한과 아픔 때문에 훗날 그가 영조의 그늘에 벗어나 조선의 왕이 되고 군왕으로서 막강한 힘을 가질 때 그는 사도세자의 일로 너무나 많은 힘을 빼앗겼음을 그의 한계로 지적한다. 세종대왕과 비교해도 너무나 빼어난 자질을 갖고 있던 그가 시대적 한계를 갖는 이유는 시대의 상황에 비추어 그가 추구 하고자 했던 개혁은 사대부들을 일으키기 위한 정치였다. 시대와 맞물려 이산 정조의 개혁이 무엇인가를 보며 당시 세계적으로 일어난 많은 혁명을 지켜본다면 조선이 얼마나 시대적으로 뒤떨어져 있었나를 실감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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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약한 왕권 왕권이 약한 것을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다. 영조의 가장 강력한 어쩌면 한 명 밖에 없는 후계자가 정조인데 왕위 계승부터 시작하여 실제로 왕위에 오르고도 계속 흔들리고 있다. 도대체 시대 분위기는 모르겠지만 왕의 절대 권위가 무너졌다는 느낌이다. 어쨌든 시도한 것이 탕평인데, 이 탕평이 선왕인 할아버지의 완론 탕평이 아니라, 손자인 정조의 준론 탕평 (혹은 의리 탕평) 이다. 그래서 여당 노론(김종수) 제일 야당 소론(서명선) 제이 야당(채제공)을 두고 진행한다. 하지만 의리 탕평이 자기의 소신을 그냥 가져가는 것이 아닌가! 결국 왕이 통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중재자, 혹은 교섭자의 역할을 한다. 책에서는 왕이 뒤에서 교섭과 미리 정리하는 능력이 뛰어난 협상가라고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냥 왕의 권한이 부족한 것이다. 왕권으로 정리해야 할 부분이 이제는 교섭해야 정리해야 하는 것이다. 2) 시대정신을 놓침 정조가 르네상스를 이끈 개혁군주인가? 이 책의 주제이다. 결론은 아니다. 정조가 금난정권의 해체 및 수원성 축조와 같은 개혁 정치를 한 것은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복고주의자였다. 정조 하면 생각나는 것이 문체반정이고 패관문학에 대해서 반대했다는 것이다. 다양성의 시대로 이끌어도 될까 말까한 시기에 유학으로 일심단결 한다는 것이 시대 착오적이다. 세종을 모델로 하는 것은 좋겠지만 세종의 모든 것을 같게 하는 것은 역시 시대를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자질은 뛰어 났겠지만 세상이 돌아가는 물정에는 어두운 우물 안 개구리에 지나지 않았다. 3) 기타 정순왕후: 이 책에서는 지금까지 드라마에서 보인 것과 재야 사학가들이 말한 만큼의 노론 중심의 악한 인물은 아니다. 정치적으로 순조대에 두각을 드러내겠지만 여기서는 영조와도 잘 지내고 정조의 승계에 대해서도 힘쓴 인물이다. 그리고 오빠인 김귀주가 유배를 갈 때로 조용히 참았던 사람이다. 영조와 영조의 아우를 만나는 것이 도를 어긋나는 행위였나 보다. 법은 잘 모르겠지만 왕가의 법질서를 지키려고 노력한 고지식한 인물로 보인다. 남인들: 숙종 이후에 남인들의 벼슬길이 막혔다고 하니 울분으로 푸는 시대였던 것 같다. 그래서 서학 즉 천주교를 받아들이는 것도 남인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것 같다. 다행히 정조가 봐줘서인지 천주교 탄압이 없다. 4) 결론 정치적으로 답이 없는 시대였다. 아무리 탕평을 해도 결국 여당은 노론이 가져가게 되고 다른 당들에게는 아무 것도 돌아가지 않는다. 그리고 노론도 지역적으로 서울 경기로 제한되고 이제 권력 독점이 고착화되는 시기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