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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문학이라는 장르에 조금 더 들어가 본다. 아직 환상문학이라는 게 어떤 장르인지 말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몇 편 읽고 보니 어렴풋이 잡히는 가닥이 있다. 지금으로서는 더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니까 조금 더 알 수도 있겠지.
상상은 우리를 얼마만큼 자유롭게 해 줄 수 있을까. 막연하기만 한 게 아니라 과학적이면서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상상, 그러나 현실과는 아주아주 멀리 떨어져 있어 허무맹랑해 보이는 것 같은데, 어떻게 보면 아주 헛된 것은 아닐 것 같은 상상, 이러다가 시간이 흐르면 정말 이루어질 것 같은 일들의 상상.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이 장르의 소설들에는 이런 상상의 세계가 펼쳐진다.
과학이 있고 우주가 있고 영혼이 있고 저승도 있다. 모든 것들이 자유자재로 옮겨 다니면서 연결된다. 내가 내가 아닐 수도 있고, 네가 내가 될 수도 있다. 내가 있는 곳이 여기였다가 우주 저 건너였다가 과거 어디였다가 꿈속이기도 한다.
정신을 차리고 읽어야 한다. 소설가가 만들어내는 낯설어 보이는 단어들에도 익숙해져야 한다. 그만한 정도의 수고를 발휘해야 읽어낼 수 있다. 도대체 이게 뭐란 말인가 싶으면 들어서지 못하는 장르가 되고 말 것 같다. 내가 판타지 소설에 들어서려다가 실패했던 것처럼.
흥미를 느낀다. 이 작품에 실린 작가들의 작품을 더 읽어 보려고 한다. 그리고 이 장르의 소설가들을 지지하고 응원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해 주고 싶다, 독자의 한 사람으로(곽재식 작가로부터 시작되었음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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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여러 재능 있는 한국 작가들이 쓴 SF, 환상문학 장르의 단편소설들을 책으로 엮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은 공통적으로 권력, 그것도 절대권력에 관한 풍자와 조소 같은 정서를 바탕에 깔고 있다. 모든 에너지를 거의 다 써 버린 이후 수천 명만 남은 인류가 생존하기 위해 ‘파수’를 세우고 에너지의 소비를 철저하게 통제하는 사회를 배경으로, 효율을 위해 생산성이 낮은 사람들을 공동체 밖으로 추방하는 과정을 그린 ‘파수’나, 현실 세계에 나타나고 있는 온갖 사건들을 직접 보고 들으면서도 믿지 못한 채, 모든 것이 입체 홀로그램 장치가 조작해 낸 것이라는 허황된 신문기사만 신봉하는 어리석은 시민들을 그리고 있는 ‘신문이 말하기를’ 등은 초반부에 실린 재미있는 단편들이다. 이외에도 경영합리화를 위해 낙하산으로 내려온 새로운 경영자가 추진하는 온갖 비효율적인 조치들을 조롱하는 ‘낙하산’,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새 주변 사람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히는 사람들을 수용하는 공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인 ‘목소리를 드릴게요’도 주목해 볼 만한 작품이었고.
2. 감상평 。。。。。。。 SF나 환상문학은 확실히 현실에 기반을 두고 있으면서도, 현실적 제약으로 그리지 못하는 소재들을 실감나게 표현해 낼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예컨대, 통치자가 각종 권력기관과 정보기관을 사용해 국민들을 통제하고, 억악하는 상황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사실적인 글에서 이런 상황을 문제 삼으려면, 비판적인 내용의 탐사보도나 추적기사를 내는 게 가장 강력한 방식일 것이다. 하지만 환상문학의 경우는 다르다. 여기에선 상황을 완전히 비틀어서, 독재자를 조롱꺼리로 전락시킬 수도 있고, 그 독재자를 추종하는 무리들의 비논리성을 과장되게 그려내 사태의 본질을 더욱 분명하게 나타낼 수도 있다. 그리고 이편은 훨씬 재미있기까지 하니 읽을 맛도 난다.
출퇴근 시간 지하철에서 읽었는데, 주변과는 상관없이 빠져서 금방 읽을 만큼 재미있게 봤다. 물론 그 내용은 제법 묵직해서 종종 씁쓸한 웃음이 떠오르게 만들기도 하지만. 약간은 동떨어진 분위기였던 ‘오라데아의 마지막 군주’편이나 전형적인 결말이었던 ‘황제를 암살하는 101번째 방법’ 등은 나머지 작품들에 비해 살짝 아쉬웠지만, 전체적으로는 괜찮은 작품.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상대를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익살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말한다. 물론 겨우 버스승차장에 쥐 그림 그렸다고 구속수사를 시키는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현실에선, 풍자도 약자들이 사용하기엔 꽤나 위험한 도구가 돼버린 것일지도 모르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