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자책이 없어서 종이책으로 샀다. 읽으면서 내내 분노와 참담함을 금할 길이 없었다. 하야시 이쿠오를 제외한 실행범 일동과 교주 마츠모토 치즈오는 2018년 7월 6일 죽었다. 그러나 그 일로 인해 아사카와 사치코 씨(책에 나온 가명은 아카시 시즈코)는 영구적인 장애를 안고 2020년 향년 56세로 사망했다. 25년 동안이나 사고의 후유증으로 고생하다가 돌아가신 것이다. 실행범들 대다수는 좋은 학교에서 인공지능이나 이화학을 전공한 아주 우수한 인재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보장된 진로와 어쩌면 있을지도 모르는 장밋빛 미래를 거부하면서까지 탐닉할 정도로 옴진리교가 그토록 매력적이었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버블이 꺼지면서 점점 암울해지는 시기, 세기말의 사회적 분위기 등등 이유는 많겠지만 그 모든 것이 저런 집단적 광기의 직접적 동기라고 할 수는 없다. 저들은 죄를 지었고, 많은 사람들의 일상을 박살냈고, 그로 인해 벌을 받았다. 하지만 그 사건이 일으킨 균열은 아직도 파편처럼 남아서 생존자들을 괴롭힌다. 이를테면 PTSD라는 것이다. 재판은 끝났지만 사건의 후유증은 어떻게든 남아 있다. 사실 일본 사회의 폐쇄성과 경로의존성을 보면, 만약 더 영리하고 흉악한 범죄자 집단이 시스템을 악용한다면 더 큰 사고가 일어날 것이다. 일본인 특유의 개인이 소거되고 오로지 소속 집단만을 우선으로 보는 그 마인드가 개선되지 않는 한, 아마도... "지금 왠지 눈이 안 보이지만 이건 개인의 컨디션 문제이니 어떻게든 출근해야 해~" 라는 마음으로 어떻게든 출근하다가 결과적으로 동료들까지 가스에 중독된 경우도 있고, 사건이 지나고 9개월에서 1년 9개월이 지난 시기에 취재를 받았지만 그 때까지 혼자 괴로움을 참으며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해 온 피해자도 있다. 일본 사회에서 자라면서 학습된 침묵이 결과적으로 피해자들에게 2차 가해가 된 것이 아닐지. 나는 당시 사건에서 울부짖으며 고통을 호소했던 사람들에게 주목했다. "어떻게든 해 주세요!" 맞다. 사회는 내 생각과 달라서 내가 아프고 힘들다는 것을 먼저 나서서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오해가 쌓여서 나는 이토록 힘든데도 상대방은 그건 별 거 아니잖아? 하면서 넘겨버릴 수도 있고... 요즘 코로나가 유행하면서, 중소기업에서는 어떻게든 증상을 숨기고 출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결과적으로는 더 큰 피해를 야기하고 조직 자체가 궤멸될 수도 있는 일인데, 당장 일이 바쁘기 때문에 쉬지 못하는 것이다. 중소기업의 현실을 아니 어쩔 수 없다고는 생각하지만 그래도 역시 좀 무섭지... 지난 주 월요일 시무식 때 사장님 훈화에서도 "나 하나쯤이야, 하는 마인드 대신 내가 곧 회사라는 마음으로 모쪼록 건강 관리에 심혈을 기울여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라는 부분이 무척 인상깊었다. 만의 하나라도 코로나에 감염된다면 솔직하게 말해서 선별진료소에 가서 검사를 받고 최대한 출근을 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야겠다. 아무튼 이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좀 무거웠다. 정말 집단적 광기라는 것은 사람을 너무 쉽게 비정상으로 몰아갈 수 있는 것 같다. 마치 집단 따돌림의 가해자들이나 독일 영화 엑스페리먼트에 묘사된 기이한 심리 상태 같은 것들... 그런 것들이 이런 참사를 유발하지 않았을까. 사람은 입체적이기 때문에 착한 면모가 있는가 하면 더없이 잔인한 면모도 있다. 그러나 그런 모든 성향이 극단적으로 발휘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특정 몇몇 사람들을 싫어하지만 표면적으로는 잘 지내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죽이고 싶다던가 해코지하고 싶다던가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말이다. 가끔 나한테 너무 못되게 굴면 '너도 똑같이 ㅈ되게 만들어 줄거야' 라고 생각하고 일기장에도 적지만, 귀찮아서 정작 실행에 옮기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런 일에 쓸 에너지가 있으면 덕질이나 더 해야지... 그런데 종종 다른 사람들은 그런 기분에 지나치게 경도되어 해코지한다던가 괴롭히고 싶어하는 것 같다. 대체 왜일까. 그 사람을 괴롭힘으로써 나에게 무슨 이득이 있다고? 이를테면 이런 생각을 해 보자. 소말리아에 사는 어린 아이 A가 있다. 당신은 지구 반대편에서 이 아이를 죽일 수 있는 힘을 얻었다. 버튼만 누르면 A는 죽고 당신은 한화로 500억 원에 해당하는 자산을 얻는다. 일면식도 모르는 A를 죽이는 대가로 순식간에 부자가 되는 것이다. 당신이라면 버튼을 누르겠는가? 나라면 버튼을 누르지 않을 것이다. 그건 내가 특별히 타인에 비해 더 도덕적이고 선량해서가 아니다. 단순히 누군가의 목숨 값에 빌붙어 살아간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매일 밤 죽어가는 아이가 꿈에서 나온다면, 얼굴도 모르는 아이가 나를 원망한다면... 당신은 그런 트라우마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에서 실행범들은 모두 버튼을 누른 셈이다. 그 중 한 명인 하야시 이쿠오는 스스로의 죄책감을 견디다 못해 적극적으로 조사에 협조하고 책을 써서 피해자들에게 인지세를 기부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버튼을 누른 시점에서 그 역시 사형당해 마땅한 천인공노할 개새끼임에는 분명하다. 그가 무기징역으로 감형받아서 못마땅해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어쩌면 죽음으로 편해진 다른 흉악범들과 달리 살아서 오욕의 세월을 견뎌야 하는 하야시 이쿠오야말로 가장 큰 죗값을 치루는 중이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더 죄책감을 느끼고 더 괴로워해야 한다. 그가 아무리 미쳐간다고 해도 피해자들은 이미 더 큰 지옥 속에 있기 때문이다.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과 살아계신 피해자들의 평안과 안녕을 위해 기도한다. |
| 르포 문학이라고 한다. 즉, 단순한 사실 전달이 아닌 문학이라는 것이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이해하게 되었다. 이 글이 문학이라는 것을. 하나의 큰 사건까지 이어지는 수많은 피해자들의 인생을 하루키의 글로 읽게 되면서 아마 처음으로 느낀 것 같다. 작가의 필력이라는 것을. 뛰어난 작가가 전하는 이야기의 힘을. |
| 도쿄 지하철 사린가스 테러를 겪은 피해자들과 가해자였던 오움진리교 신도들의 생생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평범한 사람들이 겪은 비극과 그 이후의 삶을 담담하게 조명한다. 작가는 소설가로서의 개입을 자제하고 기록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며, 개인의 고통과 사회의 침묵, 기억의 책임이라는 묵직한 질문을 독자에게 던진다. |
|
어렴풋이 기억이 남아있던 충격적인 사건인 옴진리교 사린가스 테러 사건에 대한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의 다른 작품에서도 사이비 종교가 언급되는데 1q84가 대표적이교 단편에서도 그렇다 가장 놀라운 점은 책에 언급된 사람들이 대부분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최근 읽었던 컬트라는 책에 이어 인간의 악에 대한 생각을 해보게 되는 독서였다 |
| 어린 시절 옴진리교 사건을 알기 전 대구 지하철 화재 사건이 생각난다. 대구 지하철 화재의 경우, 어떤 한 미친 인간과 기관사들의 잘못된 대응으로 발생한 참극이지만, 옴진리교의 경우 엘리트들이 계획 하에 실행한 일이라는 점에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지? 사이비종교에 빠지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데, 왜 도대체 무고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려고 하는 거지 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었다. 이 일을 발생해서 얻는 이익이 무엇인지 도저히 모르겠다. 희생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하루키의 필력으로 들여다 볼 수 있는 점이 좋으면서도 한편으론 안타까울 뿐이다. |
|
일본에서 오래전 일어났던 지하철 테러사건 피해자들의 인터뷰집이다. 이 사건 배후에 종교단체가 있었다는 것과 사건이 하도 충격적이어서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기억을 하며 가끔 사이비 종교의 폐해를 언급할 때 함께 언급되는 사건이기도하다. 그런 사건의 피해자들을 하루키 작가가 만나보고 인터뷰 한 인터뷰집인데, 일목요연하게 내용파악이 쉽고 증언이 매우 생생해서 몰입하며 읽게된다. |
|
고등학교 때 친구가 이 책을 들고 다니는 것을 보면서 이 책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언제 한번 읽어봐야겠다 생각을 계속 했었는데, 잊고 있다가 이번에 다시 생각이 나게 되어 읽게 되었습니다. 책은 주로 사린 테러 당시의 피해자 개별 인터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점은 같은 참사라도 피해의 정도에 따라 각 피해자가 느끼는 것이 천차만별이라는 것입니다. 누군가에는 그저 지나가는 하루의 해프닝이지만 또 다른 이에게는 지울수 없은 상처로 남게 되는 것을 보며, 역시 사람이란 존재는 지극히 개인적인 존재인 것 같다는 것. 나이 먹어가면서 깨달은 점을, 이 책을 통해 다시 확인해 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본인의 생명이 위태로움에도 불구하고, 직업윤리나(지하철역 근무자의 경우), 이타심을 발휘하여 타인을 돕는 이가 있는 것은 상당히 인상 깊었습니다. 또한 이 책을 읽으며, 최근에 발생했던 이태원 참사라던가 세월호 참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린 사건처럼 이태원, 세월호 참사로부터 받은 충격은 피해자 및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도 천차만별일 것 같습니다. 해당 사건의 아픔이 치유되기에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릴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도 일본의 사린 사건처럼 피해자 개별의 인터뷰를 통해 기록으로 남기는 것도 유의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하여튼 읽는 동안 상당히 몰입해서 보았고, 제가 직접 사린사건의 목격자가 되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여러가지 생각을 들게하는 좋은 책인거 같습니다.
|
|
옴진리교 사건. 많이 들었고 알고 있는 사건인데, 그동안 피해자와 생존자의 목소리는 들어보지 못한 것 같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인터뷰한 두꺼운 책. 책의 두께만큼 그들의 삶의 무게가 느껴진다.
누군가는 분노하고, 누군가는 담담하고, 누군가는.. 사건 이후 그들의 삶은 바뀌었지만, 서로 자신만의 방식으로 생존을 위한 싸움을 이어가는 모습이 멋있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그들의 인터뷰를 담아낸 작가도 멋있다. 범인보다 생존자들이 더 케어되는 세상으로 점점 변해가길.. |
|
단순히 옴 진리교의 잔학성에 대한 궁금증과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한 네임 밸류에 의지해 구매하였다.호기심에서 출발하였지만 읽다 보니까 점점 마음이 불편했다. 그래서 중간에 책을 덮고 책장에 넣어 두었다. 요즘 코로나19로 인한 재앙이 덥쳐 와 다시 읽게 되었다. 무너져 버린 일상. 나일 일상, 당신의 일상,그과 그녀들의 일상들.각각의 다양한 삶 만큼이나 다양하고 소중한 일상들과 고통,후유증.각각의 다양한 삶에 대한 고찰, 그 각자의 삶 속에서의 고찰, 우리라는 테두리 속, 삶에의 고찰이라고 해야 하나.전체적으로 보면 흑백의 논리로 구분 되어지는 것은 틀린 것이 아닐까, 아니 정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삶은 이분법적인 사고를 강요하지만 그 넘어 훨씬 복잡한 것이 녹아 있다.마주한 진실은 정말 불편한 것일까? 참 무기력해진다.잠시 멈췄다 나아가야 하는 것인가, 흘러 가는 것인가... 어렵다. 씁쓸하기도 하고 ... 어쨌든 감사하며 살아가야 한다.
저자가 물음 - 나는 무엇보다도 우선 그.그녀의 인간적인 배경을 알고 싶었다. 그것이 구체적인 문장으로 표현되건 안 되건 - 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 질문했다 "그날은 당신에게 어떤 하루였습니까?" "당신은 그곳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체험하고 무엇을 느꼈습니까?"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당신은 그 사건에서 어떤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당했습니까?" "그 고통은 그후에도 계속되고 있습니까?"
나는 사린 피해자가 아니라 체험자다 (도요타 도시야키 당시52세) -저는 옴진리교를 미워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건 당국자들에게 맡겨버리기로 했습니다. 전 이미, 그들을 저주하는 차원을 넘어서 버렸습니다. 그들을 미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옴진리교에 관한 보도는 애써 보지도 듣지도 않으려고 합니다. 그런 걸 듣고 본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지겠습니까. 그런 것쯤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그 상황을 아무리 직시한들 무슨 해결책이 나오겠습니까.재판과 형량에 대해서도 관심 없습니디.그것은 판사가 결정할 일입니다 -그렇게 서로에게 축복과 격려를 하면서 인사를 나눈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입니다.그런 관계에서는 결코 미움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변호사 나카무라 유지 (1957년생) - 어쨌거나 우리는 유효한 방향으로 목소리를 높이지 못했습니다 고마다 신타로 (당시 58세) -이 분노를 어디에다가 터뜨려야 할지
|
|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다가 논픽션 에세이를 발견해 읽어보게 되었다. 기존의 하루키의 느낌과는 좀 다르지만 실제 인간사회로 깊숙히 침투하여 그의 특유의 공정한 사유로써 이야기를 끌어나간다. 하지만 주로 들려주는 것은 피해자들의 목소리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