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년전부터 추리소설에 대한 관심이 새롭게 커지면서 추리소설에 대한 출간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그덕에 거장들의 완역본을 읽을수있는 행운도 생겼고 지금까지 몰랐던 작가들에 대해서 새롭게 알게되는 기회도 생겼다. 이 책 '바람의 미소'의 저자 프리드리히 아니는 그렇게 만난 새로운 작가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쥐덴형사'라는 또한명의 매력적인 추리소설의 히로를 만났다. 2003년 독일추리문학대상이라는 출판사의 광고가 아니더라도 이 책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얼핏보면 이 책은 밋밋하기 그지없다. 연쇄살인마도 없으며 책이 끝날때까지 크게 다치는 사람 한명 없을만큼 평온하게 사건이 진행된다. 하지만 이 책은 잡는 순간 도저히 놓치 못하게 만드는 긴장감을 유지한다. 한 소년이 가출하는 어두운 밤의 묘사로 사람을 뒤흔들며 아주 인상적인 오프닝으로 시작한 소설은 실종자 수색팀의 '쥐덴형사'가 한 소년의 실종을 신고받는 장면으로 넘어간다. 하지만 오프닝의 가출소년은 바로 쥐덴 형사 자신이다. '쥐덴'은 소년을 찾으면 자신의 어린날을 반사적으로 떠올리게 된다. 특별히 큰 추리를 요하지도 않고 사람을 전율에 빠지게 하는 엽기적인 상황도 없지만 작가의 섬세한 심리묘사는 독자들로 하여금 이책에서 도저히 빠져나올수없게 만든다. 일종의 심리주의추리소설이라고 해야할까.(이런식의 분류가 옳은지는 모르겠다.) 이메일 시대에 텔렉스를 사용하고 수색팀내에서 유일하게 핸드폰도 없는 '쥐덴'은 자기나름대로의 원칙과 고집으로 '사람들이 그때까지 자기 자신에게조차 굳게 잠가놓고 있었던 '방'으로 밀고 들어가서 , 복잡하게 얽힌 실종자들의 운명을 밝혀낸다.' 폭설이 내리는 한겨울.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데 9살 소년이 사라진다. 하지만 부모들은 소년의 실종에 관심을 두지않고 곧이어 소년의 여자친구마저 사라진다. 쥐덴형사는 오랜 경험으로 그 아이들이 결코 살아서 돌아오지 못할것같은 불길함을 느끼며 아이들을 찾아나선다. 자신이 집을 나서던 그 밤을 계속해서 떠올리며... 우리에게 낯선 이 독일의 작가는 '실종자수색'이라는 독특한 소재로 추리소설의 영역을 넓혀나간다. 참으로 오랜만에 만난 아주 매력적인 추리소설이었다. 하지만 이 책의 편집은 사람을 불쾌하게 만들었다. 판형에 맞춰서 페이지수를 늘리기위해 활자포인트를 키우고, 자간과 횡간을 무지하게 늘인것처럼 보이는 건 나의 의심일수도 있겠지만 책겉표지 날개에 작가의 약력 몇줄 적어놓은것 외에 어디에도 작품소개와 작가해설이 없는건 도저히 참을수없다. 이 책은 각국의 추리소설대상을 연속적으로 시리즈로 출간하는 기획물중의 하나다. 하드커버에다 신경들인 표지로 근사하게 외양을 꾸며놓고서 그 시리즈물의 기획의도에 대한 소개도 없고 작가소개,작품해설도 없는 시리즈물이 어떻게 제대로 된 시리즈물이라고 말할수 있는가. 소설이 형편없어서 내가 그냥 속았다고 생각했다면 모르겠지만 이런 좋은 소설로 이렇게 어이없이 책을 만들어 놓다니. 아주 좋은 책을 만난 기회가 눈앞에서 사라져버린것 같아 정말 화가난다. '프리드리히 아니'와 '쥐덴형사'를 새로이 안 사실로 위안을 삼아야하나. 다음번에는 책이 제대로 나오길 기대해본다. 玄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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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매우 생소한 독일의 미스테리 소설 한편을 읽어 보았습니다. 영림카디널 블랙캣 시리즈 2탄인 <바람의 미소>는 2003년 독일 추리문학대상 수상작으로 독일 소설가 <프리드리히 아니>의 작품입니다. 실종자 수색팀의 형사 타보 쥐텐 시리즈로 독일에서 상당히 인기를 끌고 있는 작가로 2002년 <쥐덴 형사와 타락천사의 맹세>라는 작품에 이어 이 작품으로 2년 연속 독일 추리문학대상을 수상했다고 합니다. 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현지에서는 상당한 인기작가인 것 같습니다. 생소한 독일의 미스테리이어서 인지 미국의 이른바 프라임 픽션과는 상당히 다른 느낌입니다. 아이들의 실종을 다루고 있는 이 작품에서는 미국 소설의 단골 메뉴인 폭력, 살인, 강간 등과 같은 주제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이런 자극적인 요소들에 익숙해진 우리들에게 이 소설은 다소 심심한 느낌마저 줍니다. 이 소설의 핵심은 바로 가족의 붕괴와 그에 따른 아이들의 돌출 행동입니다. 그리고 미스테리의 수준은 일상 미스테리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피 한방울 나지 않고 살인사건 비슷한 것도 없습니다. 우리도 가끔 사실 아이들의 변화를 눈에 띄게 느끼곤 합니다. 물론 동양과 서양은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똑같아 질 수 없는 그 무엇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갈수록 세상이 빨라지다 보니 우리가 어릴 적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말과 행동들을 하곤 하는 아이들을 볼 때 마다 이것이 이제는 받아들여야만 하는 세상의 필연인지 아니면 잘못된 교육이 낳은 사생아와 같은 일탈인지 부모인 저로서도 혼동스러울 때가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이 소설에서 사라와 티모라는 두 아이의 행동은 책장을 덮은 지금까지도 제게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측면이 있지만, 부모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잃어버리고 자신들의 감정에 충실하고 얽매이지 않으려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가슴이 불편해짐을 느낍니다. 어른이 아니기 때문에 대책도 없고 충동적인 행동이지만 어른들에 대한 불신과 사회에 대해 냉소적인 시선마저 던져버리는 아이들의 모습은 과연 어른들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잘못이 아닐까요? 이 책에서 묘사되는 부모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모든 원인을 제공한 것은 바로 이기적인 어른들이다는 것을 새삼 강조하는 듯 합니다. 성격이 독특한 미스테리이니만큼 오랜만에 다른 책을 읽을 때와 또 다른 고민과 감상에 젖어보게 해준 작품이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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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뮌헨 지방 경찰청 형사 11반 실종자 수색팀이 주인공인 일종의 경찰 추리 소설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작품이 살인을 다루는 것에 비해 실종자 수색팀이라는 이색적인 소재를 골랐다는 생각이 든다. 이 부서의 책임자는 카를 푼켈, 팀장은 폴커 톤, 팀원으로는 주인공인 타보 쥐덴 이외에 파울 베버 경감, 쥐덴의 단짝인 마르틴 호이어, 쥐덴이 사귀는 소냐 파이어아벤트, 프라야 에프다. 주로 타보 쥐덴과 마르틴 호이어가 사건을 이끌어 간다.
가출 경험이 있는 아이가 자라 실종자 전담 형사가 되었다. 그의 이름은 타보. 어쩌면 그는 자신의 경험 때문에 이일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아이들이 가출을 하는 이유를 안다. 어른들은 아무 이유가 없다고 하지만 그의 경험에 의하면 아이들에게는 충분한 이유가 되는 것이다. 어른에겐 무심한 일이지만. 그래서 그가 특히 심혈을 기울여 찾으려는 대상은 아이들이다.
한 아이의 실종 신고를 하는 어머니의 태도가 이상하다. 어머니는 실종인지 가출인지 애매모호한 이야기만 하고 아버지란 사람은 아이의 실종보다 직업을 구하는 것이 더 급하다. 아이는 어떻게 된 것일까. 부모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 분명하다 생각되지만 경찰이고 신고를 받은 이상 조사를 한다. 하지만 소년은 이모집에 숨어 있다가 옆집 여자아이와 가출을 한다. 두 아이가 실종된다. 결국 사건은 집안의 갈등이 만든 해프닝으로 끝나지만 과연 이 작품을 그렇게 가볍게 넘길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이 작품은 그리 심각한 이야기는 없다. 실종도 잠깐일 뿐이고 살인이나, 성폭행 같은 잔인한 것은 없다. 하지만 가족 안에서 아이들이 왜 가출을 하는 가에 대해 생각을 하게 만든다. 비록 그것이 잠깐뿐일지라도 말이다. 그것은 어른의 책임이라고 말하고 있다.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아이를 집에서 내쫓는 원이 된다고는 어떤 부모도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일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그리고 세상은 점점 더 험해지고 있다. 가정이 아이들의 안식처가 될 수 없다면 그보다 더 위험한 세상에 나가 그들이 어떻게 될지. 이제 가정으로 좀 더 눈을 돌릴 때다.
사실 이 작품을 보면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들의 가출이, 결국 가출이었지만, 별거 아니라 치부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취지의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이 태어나 자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가정을 꾸린다. 왜 그런 일을 되풀이하는 것일까. 그것은 인간에게 그 안에 행복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안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의 보편적 생각은 그렇다. 그런데 이 가운데 가장 잘 보살필 존재가 무엇인가. 그것은 아이들이다. 부모가 보살피지 않으면 절대 안 되는 아이들. 부모도 돌보지 않는 아이를 누가 돌보겠는가. 생각해 보라. 이런 생각을 하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 정답이 나온다. 바람이 거저 미소를 짓는 것은 아니다. 미소를 받을 사람에게만 짓고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법이다. 자신의 아이도 돌보지 못하는 인생을 인생이라 할 수 있을까. 인간이라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심각하지 않기 때문에 생각할 거리가 더 많게 되는 작품이다. 여백이 많아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는 동양화처럼. 이 작품을 읽는 어른인 독자들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고 자식이 있다면 자식들을 바라보는 시각을 달리했으면 한다. 무심하지 않은, 자기 중심적이 아닌 그런 마음의 눈으로 아이들을 한번 더 봐줬으면 싶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단지 그것뿐이니까. 이 작품은 가벼운 이야기 속에 이런 바람이 던지는 미소를 전하고 있다. 아직은 기회가 있다고. 타보 쥐덴 형사 시리즈가 있다고 하니 계속 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