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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도 이번달에는 인상적인 단편집을 두 권이나 만났다. 먼저 읽은 것은 강지영의 '개들이 식사할 시간'. 그리고 두 번째로 이 책 '델 문도'이다. 두 책은 미묘하게 닮았다. 보는 순간 꼭 읽어보고싶었던 것도, 책장을 덮고 나서 잠시 그 자리에 멈추어 있었던 것도. 아홉 개의 이야기는 각기 다른 공간으로 옮겨가며 펼쳐진다. 하나의 이야기가 끝나면 전혀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데 마치 지극히 개인적인 여행기를 읽는 듯한 기분이 든다. 내가 지난번에 호주에(볼리비아에, 인도에, 베네치아에 기타등등) 갔었는데 말이야... 로 시작하는, 그러면서 이런 말을 덧붙이는 것이다. 이거 사실 너한테만 말해주는 건데... 1.붕대를 한 남자 엄마의 반대를 무릅쓰고 조립식 공기총을 장만한 소년. 엄마가 반대하는 이유는 소년이 총을 갖고싶어하는 이유와 같다. 위험한 물건이니까. 하지만 위력적인 장난감만큼이나 매력적인 건 없기에, 소년은 기어이 그것을 손에 넣었다. 그리고 소년의 집으로 도움을 구하러 한 남자가 온다. 커다란 모자 아래 얼굴부터 목까지 온통 붕대를 감은, 양손이 없는 남자. 아버지는 그를 집안으로 초대하고, 남자는 그가 얼굴과 손을 잃은 사연을 말해준다. 인생이란 끝없이 질문에 대답하는 일이다. 학교에서는 시험지의 질문에 대답하고, 성인이 되면 면접관의 질문에 대답하고, 자영업자라면 고객의 질문에 대답하고... 그런 질문은 사실 쉽다. 문제는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이다. 이렇게 해도 될까? 그렇게 했어야 했을까?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사실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는 미리보기에 나온 이 첫번째 단편 때문이었다. 순식간에 읽고 뒤가 몹시 궁금했다. 기대에 보답한 멋진 이야기였다. 아니, 사실은 무서운 이야기였다. 2. 노 프라블럼 열여섯 살의 아룬은 릭샤꾼이다. 아룬이 항상 하는 말은 노 프라블럼이다. 모르는 곳으로 가자고 하는 손님에게도 노 프라블럼, 영어를 할 줄 아느냐는 질문에도 노 프라블럼. 그는 우연히 한국인 소녀 유진의 집에서 일하는 가정부를 만나, 유진의 통학을 맡게 된다. 유진과 아룬은 같은 도시에 살면서 매일 만나지만 두 사람의 삶은 너무나 다르다. 그럼에도 어쩌면 친구가 될 수도 있을 거라고, 유진과 아룬은 생각한 것 같다. 아룬에겐 잘 생긴 친구 쿤마르가 있다. 쿤마르는 크샤트리아 계급인 리나와 연인관계다. 노 프라블럼을 외치는 아룬에게 프라블럼이 닥쳐온다. 바라나시에 가본 적은 없다. 그러나 이웃 나라 네팔에 가본 적은 있다. 릭샤를 불러 호텔까지 얼마냐고 물었더니 천 루피를 달라 했다. 미친척 하고 오백을 불렀더니 단번에 오케이. 어쩌다 알게된 다른 여행자와 릭샤를 함께 탄 적이 있는데 이백 루피만 내고도 내가 오백 루피에 간 거리보다 배는 멀리 가는 것이었다. 그날 내게 오백 루피를 받은 릭샤꾼은 아주 행복했을 것이다. '노 프라블럼'을 읽고, 나는 그 날 나를 태워준 릭샤꾼을 생각해본다. 오래 전의 일이니 얼굴이 기억날 리가 없다. 하지만 최근 일이 년 이내의 일이었어도 나는 그를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에게는 다른 수많은 릭샤꾼과 다를 바 없는 사람이니까. 그도 나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나 또한 다른 수많은 외국인 호구중의 한 명일 뿐이니까. 그 때, 그의 얼굴을 한 번 더 들여다볼 걸 그랬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3. 내기 아빠와 산을 오른다. 시덥잖은 대화를 나누고 있지만 아빠와 나 사이에는 은근히 긴장감이 흐른다. 내기 중이기 때문이다. 내기에 지면 소원을 들어줘야 한다. 내가 이기지만, 아빠는 소원을 들어주지 않을것같다. 잔잔하게 흘러가는 이야기라서인지 다른 단편에 비해 조금 심심하다. 하지만 결말의 묵직함이 모든것을 상쇄한다. 4. 페이퍼컷 사정상 혼자 떠나게 된 유럽여행. 런던행 비행기 옆자리에는 풍선처럼 뚱뚱한 여자가 앉았다. 고단한 비행을 마치고 런던에 도착했지만, 테러를 이유로 입국을 못 하는 상황이 된다. 난민같이 공항 안을 떠돌다 주저앉은 내 곁에, 옆자리의 여자가 다시 나타난다. 알고보니 그녀는 목을 다쳐 말을 못한다. 두 사람은 필담을 나누게 되고, 여자는 자신이 참가할 이상한 대회에 대해 말해준다. 사흘동안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대회. 대회의 유일한 규칙은 그곳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 뿐이다. 페이퍼컷을 할 거라는 여자는 내게 무엇을 하나 만들어 보여주는데... 이 이야기가 꽤나 마음에 든다. 어쩌면 이 이야기는 작가가 상상해서 쓴 글이 아니라, 실제로 어딘가의 공항에서 겪은 일을 배경과 등장인물의 외모만 살짝 바꾸어 쓴 것 같다. 이런 이상한 일이 일어날 리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겠지. 하지만 이 세상에는 소설보다 이상한 일들이 일어났고, 지금 진행중이며, 미래에도 끝없이 생길 것이다. 나도 종이를 오리는 여자를 만나고 싶다. 그녀가 무엇을 오려줄지는 보지 않아도 알고 있지만. 5. missing 공원에서 만난 이상한 할머니는 소년을 집으로 데려간다. 이상한 곳에 있는 이상한 집에는 이상한 고양이와 이상한 강아지들이 있다. 할머니는 이상한 수프를 끓여주는데 굉장히 맛이 있다. 소년은 원한다면 이 따스하고 다정한 곳에 영원히 살 수도 있을 것 같다. 읽는 내내 생각이 한쪽으로만 흘러가서 조마조마했다. 아닐 가능성도 있는데, 현실세계에서 너무 겁을 먹어서 그런 것일까. 딱히 새로울 것이 없는 원형적인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지만, 덧입힌 색깔이 아름답고 슬프다. 노란 햇살. 태양이 산 뒤로 숨기 전에 뿌려주는 빛. 6. 기적 소리 시골로 이사온 소년. 아파트의 방 창문 아래에는 기차가 다니지 않는 선로와, 선로 양옆으로 늘어선 집들이 있다. 어느 날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문득 선로의 마을로 가보았는데, 우연히 같은 반 친구를 만난다. 평소에도 기억력이 좋지 않은 탓에 그 아이의 이름은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친구는 소년을 집으로 들여 라면을 끓여주고 기차가 다니던 시절의 이야기를 해준다. 둘은 또 보자고 인사하고 헤어졌지만 친구는 학교에 오지 않고, 카메라가 걸려있던 그 애의 집도 찾을 수 없다. 나도 기억을 잘 못하는 편이다. 같은 반 친구를 방학 때 우연히 만났는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 당황했던 경험이 있다. 아르바이트를 할 때는 단골 손님의 얼굴을 외우는 일이 고역이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공감이 갔다. 기억력이 좋지 않다는 건 어쩌면 그리 나쁜 일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 언젠가 이런 재미있는 경험을 할 지도 모르니까. 7.필름 '여학생'이라고 불리는 손님. 그녀는 교복을 입고 찾아와 필름을 맡긴다. 나는 아빠가 현상해놓은 사진들 속에서 그녀의 일상을 엿본다. 그녀는 아주 먼 곳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그리고 아직 사진을 찾으러 오지 않았다. 8. 무대륙의 소년 물의 도시에 사는, 엄마를 잃어버린 나. 가족을 잃어버린 안젤로와 무대를 잃어버린 로베르토가 나의 친구다. 매일밤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는 엄마. 그리고 어느 날 밤, 도시를 온통 집어삼키는 폭우가 내린다. 영리한 이야기다. 한 번도 도시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물론 누구나 그곳이 어디인지 짐작할 수 있겠지만, 그 짐작은 결말에 이르러 놀라움으로 바뀐다. 이 건 아주 오래 전의 이야기일 지도. 언젠가 물의 도시에 갔었다. 내가 다녀본 여행지 중에서 가장 외로운 곳이었다. 나는 괜히 여행을 왔다고 생각하며 혼자 조금 울었다. 그런데 왜 그곳에 다시 가고 싶은 것일까. 9. 시튀스테쿰 수도원앞에 버려진 아기는 수도원 안에서 외로운 소년으로 자란다. 시튀스테쿰은 유일한 친구인 루이엘과의 암호다. 너에게 힘이 깃들기를. 하지만 소년은 무력하다. 마침내 바깥 세상으로 달아나기로 한 날 밤, 소년과 루이엘은 마지막 인사를 나눈다. 시튀스테쿰. 시튀스테쿰. 이 단편의 마지막 세 문장을 옮겨 적고 싶다. 몸을 돌려 나는 밤을 달리기 시작했다. 멈추면 다시는 달릴 수 없다는 듯이, 나는 달리고 또 달렸다. 세상 속으로, 처음 떠나는 여행이 내 앞에 펼쳐져 있었다. 나도 소년을 따라 함께 달리는 듯 가슴이 벅차 오르는 결말이다. '너에게 힘이 깃들기를' 이라는 기도는, 역설적으로 이 기도를 하는 이들의 무력함을 절실하게 보여준다. 힘이 있다면 힘을 원하지 않을테니까. 하지만 세상에는 다양한 종류의 힘이 있기 마련이다. 어떤 힘은 겉으로 보아서는 힘처럼 보이지 않기도 하고, 어떤 힘은 나중에야 진가가 드러나기도 한다. 자신만의 힘을 찾아가는 과정이 바로 인생이니까. 이렇게 아홉 편의 이야기를 다 읽었다. 이어지는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우리는 모두 여행자들이다'라고 말한다. 옳으신 말씀! 우리는 모두 여행자들이다. 어딘가 먼 곳으로 떠날 때 챙겨가서 아무 데나 펼쳐서 읽어도 좋을 책, 델 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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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꿈꾸는 곳은 어디인가?
델 문도(Del Mundo) - 세상 어딘가....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기대했던 것은 세상 어딘가(델 문도 Del Mundo) 여행지에서 일어날 수 있을 법한 강렬한 여행지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했다. 강렬한 태양빛이 뜨겁게 내리쬐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어떤 환상적인 이야기... 하지만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며 나는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환상속에나 있을 법한, 행복하기만한 '세상 어딘가'가 아닌 .. 우리들이 부딪치고 살아가며 생채기를 입곤하는 현실 속에서 있을 법한 이야기들이었던 것이다.
이야기는 9가지의 단편 소설로 이루어져 있다.
<붕대를 한 남자, 노 프라블럼, 내기, 페이퍼컷, missing, 기적소리, 필름, 무대륙의 소년, 시튀스테쿰>
"이 아홉 개의 이야기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모두 떠났거나, 떠나 있거나, 혹은 떠나려고 한다. "-p.270
각 등장인물들은 여행을 통해 현재의 자신과 다른 모습을 꿈꿨고, 꿈꾸고 있고, 꿈꾸려 한다. . 단지 소설속에서 그 모습과 희망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거나,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여행이라는 것은 물리적인 공간의 이동이 아닌 시선의 움직임, 잠시 동안의 새로운 경험 혹은 잊혀진 기억,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 새로운 세계로의 탈출 등 다양하다.
단편소설 특유의 농축된 긴장감과 그 끝을 알 수 없는 괴로움, 그곳에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기대감이 가득한 소설들이었다. 정말 담담하고 간결하게 서술되어 있기에 가면을 쓴 것 같이, 보이지 않는 감정을 찾으려 노력해야할 때도 있었다... 아..이게 단편소설이구나...이렇게 물 속에 떨어진 한 방울의 잉크방울만 보고도..잉크방울이 담겨진 물을상상해보아야 하는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홉가지 이야기 중 인상깊은 이야기를 보면..
<노 프라블럼> 유진을 태워주는 릭샤를 끄는 아룬은 유진과 짧은 일탈의 시간을 갖지만, 신분이 다른 여자를 사귀었던 쿤마르의 죽음으로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여행이란 자기자리로 다시 돌아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노 프라블럼..아무것도 아닙니다..씁쓸한 단어이다. 이 이야기의 끝은 더할 수 없이 간결하고 산뜻했지만, 어쩐지 길을 걷다 갑자기 멈춰선 느낌이 들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노 프라블럼이라 외치는 아론이, 갑갑하고 안타깝다.
<내기> 짧은 시한부 생을 선고받은 아버지와의 여행.. 어릴 때부터 하던 내기는 약속한 단어를 말하지 않는 것이다. 아마 죽음이라는 단어였을 것이다. 이제는 떠난 아버지와의 기억들은 파도를 나타내는 수화처럼 넘실넘실 넘쳐난다.
<시튀스테쿰 (Sit vis tecum 너에게 힘이 깃들기를)> 수도원에서 살고 있던 에밀은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소년이다. 자신의 유일한 형제라고 생각한 루이엘을 떠날 수 밖에 없는 에밀은 세상속으로 달려나간다. 처음떠나는 여행을 혼자서, 형제를 떠나는 슬픔과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로..
여행에 관한 이야기라기 보다는 우리네 인생에 관한 이야기인 것 같다. 모두들 어떤 계기를 통해 고통을 받고, 슬픔을 느끼고 분노한다. 이를 경험한 후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거나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행동한다. 그 고통스러운 삶을 견디고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세상으로 가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세상 어딘가에 기쁨이 있을 거야..라고 믿을 수 있는 용기, 그리고 그것을 행동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여행에 관한 이야기지만 상실과 기억에 관한 이야기로 읽어도 좋다. 혹은 죽음과 고통, 슬픔과 분노에 관한 이야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 어딘가에 아직 존재하는 연민과 사랑, 기쁨과 용기에 관한 이야기로 읽어도 좋다." - p.271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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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희 작가의 <델 문도>는 제12회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이다. 내가 이 작품을 알게 된 건 동화작가인 지인의 SNS에서였다. "요 매력적인 책을 왜 이제서야 읽는 걸까. 그야말로, 델 문도일세."라는 글귀를 보고 꼭 읽어야지 했다. 이 책이 더욱 주목을 받았던 점은 지금까지 청소년문학상 수상작들이 장편소설이었는데, 한 작가의 단편들을 엮은 이 책의 수상이 매우 이례적이었다는 것이다. 그만큼 짧은 이야기들 하나하나가 완성도가 높다는 의미이다. 예전에 책을 사자마자 읽어버린 아픈(?) 사연이 있는 책인데, 이번에 사계절출판사가 창립 35주년을 맞아 새로운 문학 브랜드 “욜로욜로(YOLO, you only live once)"로 새단장한 책으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저번 책의 표지도 굉장히 마음에 들었는데, 이번에는 좀더 감각적인 일러스트로 굉장히 독특한 스타일의 표지로 새로워졌다. 최상희 작가의 또 다른 단편모음집인 <바다, 소녀 혹은 키스>도 재미있게 읽어서 더욱 기대감에 책을 펼쳤다. 책 제목인 델 문도(Del Mundo)는 스페인어로 ‘세상 어딘가’를 의미한다. 세상 어딘가에 있는 아홉 가지 이야기들 - 붕대를 한 남자, 노 프라블럼, 내기, 페이퍼컷, missing, 기적 소리, 필름, 무대륙의 소년, 시튀스테쿰 - 로 채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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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더가 아르바이트에서 돌아오면 아버지는 소파에서 자고 있다. 켜져 있는 텔레비전, 나뒹굴고 있는 맥주 캔, 부스러기만 남은 피자 상자. 늘 그런 풍경이다. 매일 집 근처 중극 식당에서 음식을 사 와 아버지는 포크로, 나는 젓가락으로 묵묵히 저녁을 먹는다. 아버지와 함께 실종된 소녀에 관한 뉴스를 보다가 어린 시절 모르는 사람을 따라갔을 때를 떠올린다. 여덟 살,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이었다. 아버지는 자고 있고, 엄마는 일하러 나가고 없던 날, 싱크대 서랍에서 5달러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 주머니에 넣고 집을 나왔다. 공원까지 꽤 먼 거리를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갔다. 공원에 몇 번 왔던 적이 있다. 아버지가 모는 차를 타고 가서 엄마가 만든 샌드위치를 먹었다. 그때는 엄마가 일을 나가지 않았고, 아버지는 술을 마시지 않았었다. 병들고 아파서 버려진 동물이 있던 공원에서 가장 좋아했던 건 한쪽 다리가 짧은 힝키라는 조랑말. 5달러로 팝콘과 레몬네이드를 사서 마시고 있는데, 아더에게 말을 거는 할머니. 솜사탕을 얹은 것처럼 새하얗게 부푼 머리, 냉장고에 오래된 사과처럼 쪼글쪼글 천 살은 되어 보이는 얼굴. 수십 가지 꽃무늬 천을 이어 만든 괴상한 원피스. 그 할머니의 이름은 클로이. 경계를 하지만 집에 미카엘이라는 말이 있다는 할머니의 말에 호기심이 생긴다. 그러다가 급한 나머지 오줌을 싼 아더. 어쩔 수 없이 할머니 집에 따라가게 되는데, 숲속 마법 같은 곳에 버섯을 닮은 작은 집에 도착한다. 단촐하지만 유독 큰 식탁과 많은 의자. 초록색 수프가 만들어지자, 어느 순간 나타나는 고양이들과 개들. 그들이 의자의 주인들이자 손님들이었다. 부드럽고 따스한 클로이의 손길이 이마를 몇 번 쓰다듬고 아더는 깊은 잠에 빠진다. 깨어났을 때 클로이는 작은 의자에 기댄 채 잠들어 있고, 클로이의 손길을 생각하면 눈물이 차오르지만 돌아가야 한다는 걸 안다. 술에 취한 아버지의 주먹과 욕설, 지치고 가난한 어머니, 고독하고 차가운 집을 잊을 수 있는 그 기억. 아더의 첫 번째 여행.
"하지만 가끔 모습을 보이지 않는 애들이 있지. 그러다 어느 날 불쑥 다시 나타난단다. 조금 야위기는 했지만 이전보다 훨씬 힘이 넘쳐서 돌아와. 나는 알고 있지. 그 녀석들은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온 거야. 마치 누구처럼." _158p
"missing"에서 클로이가 아더에게 한 말이다. 이 말이 <델 문도>의 모든 것을 함축한다. 이 책은 세상 어딘가로 떠나고 여행하면서 성장하는 이야기다. 모두 떠났거나, 떠나 있거나, 혹은 떠나려 하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그 여행이 때론 환상적이기도 하고, 때론 시련이기도 하고, 때론 뭉클하기도 하다. 그런 세상 어딘가로의 여행을 통해 우리는 위안과 용기를 얻는다. 세상 어딘가, 모두들 잘 살아 주길 바라는 마음이 가득 담긴 <델 문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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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 문도 최상희 지음 ‘욜로욜로’는 사계절출판사가 창립 35주년을 맞아 ‘오늘의 독자들’을 위해 선보이는 새로운 문학 브랜드다. 욜로욜로는 ‘YOLO, you only live once’를 외치며 오늘을 온전하게 살고싶은, 나를 찾아가는 책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때로는 즐겁게 때로는 눈물겹게 이 힘겨운 시대를 헤쳐 가는 모든 독자들에게 응원과 위로가 되어 줄 문학 브랜드라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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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서 건너온 한 편의 편지가 이 소설의 시작이라고 했다. 작가란 그런 것인가. 자그마한 조각 하나로 세상의 모든 것들을 그려내는 재주를 가진. 그래서 제목도 델문도(del mundo-세상에서)던가.
아홉편에 깃든 세상의 모습은 조금 아프고 조금 쓸쓸했다. 인도 바라나시에서 릭샤를 끄는 소년은 하루 삼백루피(약 5,250원)를 벌어 릭샤를 빌려준 사내에게 대여료를 물어야 한다. 아직 마흔정도인 사내는 대부분의 릭샤꾼들이 그렇듯 병을 앓고 있다. 우리나라사람은 운전하기도 겁나는 거미줄같은 길바닥을 돌아다니다 보면 온갖 매연에 찌들어서 그 나이쯤 세상과 이별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아버지를 따라 그곳에 온 한국소녀 유진은 인도에 아직 계급이 있다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 물론 소년이 하루 삼백루피를 벌지 못하면 릭샤를 되돌려줘야 하는 사실도 알지 못한다. 때로 나는 인도의 불가촉천민으로 태어나지 않을 걸 감사하게 된다.
호주의 어느 마을에 붕대를 감고 나타난 남자. 자동차 정비공이었던 남자는 폭발 사고로 죽음보다 못한 화상자국을 새기고 사고 직후 조그만 물 웅덩이를 찾아 달렸던 그 1분을 잊지 못한다. 차라리 죽었다면 평생 붕대속에 감춘 화상자국을 소독하면서 사는 것보다 낫지 않았을까. "제가 정말 그 때 달렸어야 했을까요?" 글쎄 그렇게라도 살아남은 것이 나았을까. 차라리....
물의 도시에서 1층은 버려진 사람들이 숨어드는 곳이다. 그런 곳이라도 보금자리를 꾸며야 살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고향을 버리고 난민으로 떠도는 사람도. 자신을 버리고 떠난 엄마를 기다리는 사람도.
댄서였지만 다리위에서 떨어져 다리는 저는 남자는 말한다. '평탄한 삶이 어느 날 갑자기 꼬이는 걸 희극, 그리고 빠져 나올 수 없을 정도로 가라앉아 버리는 것을 인생'이라고. 꼬인 삶이 희극이면 비극은 어떤 모습일까. 우리는 어디를 떠돌다 이 곳에 가라앉았을까. 꿈이듯 상상인 듯 기적소리가 들리던 마을을 다녀온 소년의 이야기도 신비롭다. 어쩌면 잠시 몸을 떠나 혼이 다녀온지도 모른다. 그리고 언젠가 그곳을 살았던 소년의 혼을 만났는지도. 그저 상상만으로 세상의 모습을 그린 것일까. 호주로 이탈리아로 인도로... 작가란 상상으로든 현실로든 신발끈 질끈 묶고 어디로든 떠나야 하는 족속들인가보다. 세상을 떠도는 집시의 운명을 타고난 그들에게 나는 발품없이도 한껏 세상구경을 한다. 그리고 결코 내가 만나지 못했을 누군가의 인생을 잠시 들여다 볼 수 있다. 그래서 문학은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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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문도.이 세상 어딘가에 있을 이야기.
내가 가장 맘에 들었던 이야기 '내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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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연관은 없지만 여행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쓰인 델문도에는 9개의 단편소설이 담겨 있다. 붕대를 한 남자, 노 프라블럼, 내기, 페이퍼컷, missing, 기적 소리, 필름, 무대륙의 소년, 시튀스테쿰까지 주로 어리거나 이방인들의 이야기가 소소하게 그려진다. 무언가를 시도하고 변화를 하는 것은 생각 외로 내적 외적 저항에 많이 노출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떠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새로운 풍광을 보고 쉼을 찾아가는 소설 속 독특한 여정은 점점 더 따뜻해지고 자신만의 인생을 찾아가는 시간들로 채워진다. "강가의 물은 모든 것을 허락하고 감싸 안았다. 혼돈의 전생도, 비참한 현실도, 다가올 내세도, 없는 것은 오직 미래뿐이었다. 가난한 사람들의 미래는 마치 강가의 물처럼 혼탁하고 뿌옇기만 했다. 하지만 밤만은 누구에게 공평했다. 어둠이 모든 것을 삼켜 버리니까." -p62 아메리카 남단에 가면 남극을 제외하고 세계의 끝이라 불리는 작은 항구 마을이 있다. 세계의 끝이라는 우수 아이아가라는 그 마을은 현지 사람들은 핀 델 문도라고 부르는데 그곳은 남극 여행의 전초 기지이며 세계의 끝을 보려는 관광객들로 붐빈다. "나는 사진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자기 이름이라도 적어 놓은 것일까? 영어 같았지만 처음 보는 단어였다. 아빠 돋보기로 글자를 들여다보며 인터넷 검색창에 하나하나 적어 넣었다. 에스파탸어였다. 남이 사람들의 언어. Del Mundo. 델 문도, 뜻은 '세상 어딘가'. 그것이 여학생이 하얀 소금 사막 위에 적은 말이었다." p 206 세상 어딘가에 내가 지금까지 만나보지 못했지만 정말로 원하는 풍광이 있지 않을까. 이 세상 살아봐야 별 것 없는 것이 아니라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이 훨씬 많다. 세상 끝까지 가지 않아도 새롭게 시작할 수 있고 그리고 그 어딘가에 행복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비가 주적주적 오는 날에 오히려 더 가뿐한 느낌이 들지 않을까. "몸을 돌려 나는 밤을 달리기 시작했다. 멈추면 다시는 달릴 수 없다는 듯이, 나는 달리고 또 달렸다. 세상 속으로, 처음 떠나는 여행이 내 앞에 펼쳐져 있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델문도가 있다. 그곳이 이 세상에 존재할 수도 있고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마음속에 델문도 한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 인생은 조금 더 아름다워진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제작사로부터 상품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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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어딘가에 - 델 문도
이 책에 대해서 욜로 시리즈라는 홍보를 본 적이 있다. 하지만 내 생각에 욜로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책인 것 같다. 그저 단편소설들이 요즘 같은 더운 여름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 같다.
세계 여려나라를 무대로 짦은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부분부분 한국인이 등장한다. 그 중에서 가장 인상에 남았던 작품으로는 <시튀스테쿰>이라는 단편이다. 이 작품에는 수도원에 사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소년과 마찬가지로 수도원에사는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는 수도승의 이야기이다.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는 것은 결코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은 아니지만, 소년은 친구에게 음란한 그림을 그려주고 수도승은 찬양가가 아닌 시장판의 세상 노래를 종종 부른다. 이러한 둘 사이를 이어주는 암호 같은 말이 시튀스테쿰이다.
결과적으로 소년은 결국 수도원에서 도망치게 된다.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예술에 대한 사랑이기도 하고, 간원이기도 하다. 자신이 진심으로 원하는 것을 하고싶다는 자신에 대한 존중이기도 하다. 그림에 대한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는 순수한 마음이기도 하다.
요즘 같은 혼란스러운 시대에 무언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떠나지 못하는 청년들에 대한 시사하는 바가 있는 것 같다. 이러한 풍조 조차도 시대가 만들어 낸 것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음이란 꿈을 꿔야 한다. 그리고 용감하게 그 꿈을 쟁취해야 한다.
세상 어딘가의 누군가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작으면서도 큰 이야기를 전해준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제작사로부터 상품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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