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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기념품 가게에서 엽서 한 장이 내 눈길을 끌었다.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여자 아이와 보송보송한 털뭉치처럼 귀여운 고양이 그림이었다. 단아한 한복과 섬세한 선이 예뻐서 몇 번을 손에 들었다 내려놨다를 반복했다. 한 장에 2,500원. 내가 아들이 아니라 딸 가진 엄마라면 바로 샀을텐데, 남자아이 그림이라면 좋겠다, 편지도 안 쓰는데 엽서는 그냥 보관만 하겠지, 내가 지금 직장을 쉬지 않았다면, 주절주절 변명하듯 아쉬워하며 빈손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태교, <신선미의 한복유희> 中, 엽서 그림 아님) 며칠동안 그 고운 한복 그림이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다. 남편에게 말해서 아이에게 태어나 한 번도 사주지 않았던 한복을 사주었다. 아이고, 얼마나 귀엽고 예쁘던지, 우리 아기, 한복 진작 사줄 걸 그랬다. 며칠 뒤 도서관에서 이 책을 빌려왔다. 원래는 다른 책을 빌리러 간 길이었다. 엽서 그림의 작가 이름을 알아둔 덕일까? 책장에 꽂혀있으면서도 돋보기 대놓은 것마냥 책등 위의 글씨가 확대되어 보이던 이름, 신선미. <신선미의 한복유희>를 그렇게 만났다. 그리고 책을 다 읽은 지금, <신선미의 한복유희>를 주문하려고 한다. 책값 28,000원. 엽서, 그냥 살 것 그랬다. <신선미의 한복유희>는 한국화 작품집이다. 여섯 개의 주제로 그림을 나누어 실었으며, 그림마다 설명을 덧붙이지는 않았다. 각 주제는 아래와 같다. 1. Ant Fairies 개미요정 2. While Your are Asleep 당신이 잠든 사이 3. Child Rearing Diary 육아일기 4. Reunion 다시 만나다 5. Pattern Stories 문양이야기 6. Welcome 웰컴 앞에서 여섯 가지 주제로 그림을 나누었다고 썼는데, '1. 개미요정'부터 '4. 다시 만나다'까지는 하나의 이야기라서 주제보다는 소설을 나누는 장章이라고 여겨도 좋다. 이 화집에서 가장 중요한 설정은 '개미요정'이다. "어린 시절, 잦은 병치레로 누워 지낸 시간이 많았다. 자다 깨면 밤이고 또 자다 깨면 아침인 몽롱한 상황 속에서 나는 작디작은 요정들을 보았다. 잠시 놀다 구석으로 사라지는 그들을 나 외엔 아무도 보지 못했다. " - 작가의 작업노트 中
'1. 개미요정'에서 '4. 다시 만나다'까지 작가는 어린 시절 보았지만, 어른이 된 지금은 더 이상 보지 못하는 개미요정의 이야기를 담았다. 누구나 아이를 낳고 키우는 과정에서 아이를 통해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린 경험이 있을 것이다. 개미요정 이야기는 바로 그런 경험을 전통과 현대, 상상과 현실의 절묘한 조합으로 그려낸다.
(우표를 액자 그림으로 활용하는 바로워 - 바로워즈 中) 개미요정을 보며 우리나라에서는 '마루 및 아리에티' 애니메이션 원작으로 알려진 영국 작가, 메리 노튼의 아동 소설 <마루 및 바로우어즈>가 생각났다. The Borrowers(빌리는 사람들)라는 원제처럼 아주 작은 사람, 바로워가 사람들이 쓰는 물건을 자기들 나름대로 활용하며 산다. 내 모나미 볼펜은 자꾸 어디로 사라지는지 알 수 있던 책이다. (웃음) 바로워와 개미요정. 동서고금에서 비슷한 생각을 하는 걸 보면, 사람 사는 거, 어디를 가도 비슷한가 보다. 어느새 우리 아들이 상상의 친구, 띠띠뽀(그 꼬마 기차 맞다.)가 띵동하고 우리집에 놀러왔다며 같이 침대에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꼭 안고 잔단다. 어린 시절의 상상, 오래도록 지켜주고 싶다.
행복한 방2
Talk 3 '2. 당신이 잠든 사이'와 '3. 육아일기'는 내 얘기같다. 잠이 쏟아진다는 말이 실감나던 임신 기간. 아이만 보고 있어도 웃음이 나는 나. 그렇지만 피곤해서 저절로 눈이 감기는 나. 눈 떼면 사고 치는 우리 아기. 어느새 우리 대화를 위협하는 스마트폰까지. 남자아이가 등장하는 것도 내게는 매력이다. 자신의 머릿속을 고스란히 그것도 아름답게 그려내는 손을 가진 사람을 얼마나 좋을까.
(다시 만나다 6 - 위의 그림 중 Talk 3가 겹친다. 아이를 키우다보면 어린 시절의 나를 돌아보게 된다.) <신선미의 한복유희>에는 비슷한 그림들이 많다. 누군가 소파나 책상에서 자고 있거나 고양이가 사고를 치고, 아이가 고양이나 개미요정에게 장난을 걸거나 고양이가 개미요정을 괴롭히며 개미요정은 고양이를 피해다닌다. 거의 같은 그림을 한복 색깔만 바꾸거나 각도만 바꾸어서 거울처럼 배치한 경우도 자주 등장한다. 반복을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권하지 않지만, 나는 참 마음에 들었다. 반복 속에서 변화를 찾아내는 즐거움 덕분에 지루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웃음과 공감 요소를 여기저기 배치하여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한다. 우아하게 웃길 줄 아는 작가님이다.
(welcome 4) '5. 패턴'은 한국 전통 문양을 개미요정으로 표현한 그림들이고, '6. 웰컴'은 한중일 세 나라 전통 복장을 한 여성들을 그렸다. 세 나라가 사이가 좋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신종 코로나의 돌풍 속에서 도쿄 올림픽을 앞둔 지금 마음으로는 그런 바람, 나는 들지 않지만 그림은 역시 무척 예쁘다. 음악과 춤, 음식이 함께 하니 흥이 절로 난다. 이렇게 어우러지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부록) 책 뒷부분에는 그림 속에 표현된 한국 전통을 설명하는 부록이 있다. 한복, 악기, 문방우, 절기까지 알차게 담았다. 친숙한 것도 있고 몰랐던 것도 있었는데, 우리 전통의 것들을 소개받아 좋았다. 우리 전통 악기가 그림이 자주 등장하는데, 거문고, 가야금, 피리, 대금, 해금 등 다섯 개의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이 실제같다. 반주 장구가 없는 것이 아쉬우나 그림 구도상 6개 보다는 5개가 보기 좋아서 그런가, 하고 넘겼다. 우리말과 영어를 나란히 적은 한영병기 화집이라 외국인에게 독특하면서 귀한 선물로 주기에 좋아보인다. 우리나라 문화를 알리는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임신을 했거나 어린 아이를 키우는 엄마, 우리 전통이나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추천한다. 그림으로 이야기를 속삭이는 작가, 신선미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다. 찾아보니 그림책도 있다. 제목이 <한밤중 개미 요정>이라서 화집과 그림이 겹치지 않을까 했는데, 미리보기로 보니 다른 그림이다. 심지어 아픈 아이 돌보는 엄마의 이야기이다. 아아, 엽서, 그냥 살 걸 그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