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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면 로맨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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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의 자기 찾기가 이야기의 출발점이 된다. 그는 역사 철학을 공부하는 교수다. 젊고 잘 생긴 외모에 서울에서 유명한 대학의 교수다. 단란하다고 생각한 가정까지 가지고 있다. 4살 난 예쁜 딸 순아도 있다. 그런 그가 자신을 찾기 위해 돌연 대구로 내려간다. 방학을 이용해 한 달이라는 긴 시간을 자신의 흔적 찾기에 몰두한다. 그것은 아내와의 뒤틀린 관계와 자신의 존재를 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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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의 자기 찾기가 이야기의 출발점이 된다. 그는 역사 철학을 공부하는 교수다. 젊고 잘 생긴 외모에 서울에서 유명한 대학의 교수다. 단란하다고 생각한 가정까지 가지고 있다. 4살 난 예쁜 딸 순아도 있다. 그런 그가 자신을 찾기 위해 돌연 대구로 내려간다. 방학을 이용해 한 달이라는 긴 시간을 자신의 흔적 찾기에 몰두한다. 그것은 아내와의 뒤틀린 관계와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한 일련의 행위다.

 

내려가는 기차 속에서 한 여인을 만난다. 그 여인은 꽃다발을 두고 내린다. 그래서 남자가 그 꽃다발을 전해 주기 위해 가지고 내리고 둘의 인연은 시작된다. 그 여인은 꽃다발이 필요가 없어 버리려고 둔 것인데, 남자가 가지고 내려온 것이다. 남자는 구인상이란 사람이다. 여자는 사랑에 실패한 고진숙이다. 둘은 구인상의 하숙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만난다. 즉 구인상이 대구에서 기거할 공간으로 고진숙의 집을 선택한다는 말이다. 고진숙은 은근히 구인상에게 호감을 표시한다. 구인상이 타인과 사랑을 나누는 것을 목도했을 때, 다시 삶의 목표를 잃은 그녀는 자살 기도까지 한다.

 

구인상은 대구에서 청마라는 술가게를 통해 명국희라는 여인을 만난다. 그리고 음악과 분위기 등으로 서로 가까워진다. 명국희는 지혜롭고 명확한 인물로 그려지지만 험난한 삶을 살아온 사람이다. 구인상과 만나 함께 있을 때 자신의 모든 과거를 얘기한다. 기생의 딸인 것과 의붓아버지의 죽임, 또 노인과의 관계 등을 말한다. 그리고 둘은 몸과 마음을 나누는 관계가 된다. 구인상도 자신의 삶을 얘기하면서 그들의 관계는 더욱 밀도를 강화해 나간다.

 

구인상은 이미숙(순아의 어머니)의 외도에 무엇인가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찾은 대구다. 그녀와 지난 5년여 비교적 단란하게 살았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삶이 완전히 무너졌을 때 그는 자기 찾기의 외출을 선택했다. 그는 2층 서재에서 생활을 하고 필요하면 아래로 내려와 가족과 함께 했다. 순아는 유모가 잘 키우고 있었고, 아내는 자신의 음악적인 재능을 단련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다. 이미숙은 음악으로 심한 정신적 상처를 입고 외도에 자신을 놓아버린 것이다. 그는 그런 상황 속에서 대구에서 다른 사랑을 만났다. 그렇게 명국희가 그에게로 온 것이다. 명국희는 충분히 자신의 모든 것을 채워줄 수 있는 여인이었다.

 

그들은 서로에게 깊은 충족감을 느꼈다. 그리고 늘 함께하길 원했다. 하지만 순아와 함께 엮여 가족이 되는 것은 명국희가 원하지 않았다. 늘 친구처럼, 연인처럼 서로를 원하고 찾길 구하는 것이다. 구인상도 동조한다. 하지만 구인상에게는 순아라는 아이가 있다. 아이에게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최선일까 하는 것이 구인상의 마음엔 늘 있다. 그것이 그와 명국희 사이에도 깊이 관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명국희의 기생의 딸이라는 과거를 들은 구인상은 결국 자신의 근본도 대구에서 찾을 수 있는 기회를 만난다. 우연한 기회에 하숙집 주인으로부터 들은 자신과 닮았다는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흔적을 찾은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자신이 구씨가 아니고, 좌익운동을 했던 한문수라는 사람의 자식이라는 것을 듣는다. 어머니가 왜 구씨와 결혼하게 되었는지, 아버지는 어떻게 되었는지 해방 정국과 함께 듣는다. 그리고 자신의 성을 찾기를 구한다. 아내와의 이혼, 자신의 성을 바꾸기 위한 일 등으로 해서 구인상은 교수직에서도 물러날 결심을 한다.

 

대구에서 좌익들의 10월 폭동이 일어났을 때 우익은 검거에 혈안이 된다. 이것은 동족상잔의 처절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때 한문수는 잡혀 죽는다. 그 잡히는 일에 구인상의 현재 아버지가 관여를 한다. 어머니를 구해준다는 명목으로 한문수가 있는 곳을 어머니에게 은근히 묻고 그 흔적을 고발하여 한문수가 잡히게 하는 것이다. 그때 이미 어머니는 임신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문수를 구해 달라는 어머니의 약점을 잡아 자신의 부인으로 만들고 이용한다. 그 후 어머니의 재산으로 그의 가족은 큰 기업을 운영하는 유족한 가정이 된다. 하지만 어머니는 구씨에게 큰 원한을 가지고 있다. 자신이 자신 시절 이여만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갈라서려고 하는 어머니의 마음속에서 그에 대한 단죄를 하기 위해 모든 재산을 자신의 소유로 만들어가는 슬기로움을 보인다.

 

구인상은 대구에서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 영천 쪽으로 간다. 그곳에서 산소를 지키면서 아버지의 흔적을 지키고 있는 방화라는 고운 여인을 만난다. 아버지에 대한 연모의 정을 놓지 않고 지금까지 묘소를 지키며 연인에 대한 사랑을 가꾸는 숭고한 여인 앞에 30년이 훌쩍 지나 옛 애인의 모습으로 구인상이 나타난 것이다. 방화는 설렘과 안타까움으로 구인상을 만나고 의성에 살고 있는 구인상의 할아버지, 백부 등 그의 가족들을 만나게 한다. 방화는 구인상에게서 한문수의 모습을 찾고 아련한 사랑을 떠올린다. 명국희는 그런 방화를 만나는 구인상에게 어머니로 부르길 말한다. 그래야 방화가 현실감을 가지고 그를 만날 수 있음을 말한다. 구인상은 그렇게 하고 방화는 이제 다시 아버지의 묘소를 찾지 않기로 한다.

 

순아의 어머니 이미숙은 자신을 지키는 한계를 넘어섰다. 자포자기의 모습을 보인다. 그것을 구인상은 무척이나 안타깝게 생각한다. 이미숙이 함께 외도를 했던 인물은 기병열이다. 그들은 서로를 불신하면서도 얽매여 있는 사이다. 음악적으로 서로 만나 불장난이 이루어진 관계다. 둘의 관계를 바라보는 구인상은 맹렬히 분노를 일으킨다. 그것이 기병열의 아내인 진숙영과 둘이서 인천행을 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구인상의 마음엔 이미숙은 이미 포기를 했다. 하지만 순아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관계가 된다. 그런 와중에 아이를 위해 유모에게 청혼을 할까도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것은 명국희와의 관계를 소원하게 만드는 일이기에 그것도 어렵다.

 

결국 이미숙은 자결을 한다. 자신의 열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타락의 길로 들어선 것과 자신을 스스로 용서할 수 없다는 마음이 강하다. 그리고 순아를 가장 잘 자라게 만드는 환경이 지금은 자신이 사라져 주는 길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식한다. 이런 상황이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구인상은 이혼이라는 이름 없이 현재의 상황을 그대로 유지하게 된다. 즉 한씨 성을 되찾고 유모에게 순아를 맡기며 명국희와의 관계를 지속시켜 나가는 상황이 된다는 말이다.

 

글을 읽으면서 작위적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모든 것이 구인상이란 인물을 중심으로 그에게 초첨이 맞춰져 있기 때문인 줄로 안다. 그를 드러내기 위해서 타인들은 규격화된 인물로 만들어간 안타까움이 있다. 모두가 자신들의 삶이 있고, 자신들이 추구하는 세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한 인간을 초인 비슷하게 만들어 주변의 여성들은 그를 위해 사용되는 장기판의 졸 같은 느낌이 든다. 해방 전후 여성들의 지위까지 조금 문제 삼을 수 있지 않을까도 생각해 본다.

 

글의 구상이 폭넓고 이야기가 재미가 있다. 이야기꾼 같은 느낌을 느끼는 것이 이병주씨다. 분의 글을 많이 읽었지만 이 글은 또 나름의 저자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자료가 되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지식인으로, 굴곡진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시대와 더불어 가슴에 와 닿는다. 흥미롭게 읽었다.

j****3 2017.08.03. 신고 공감 3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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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창 | 나남 창작선 141 이병주(지음) | 나남출판 | 2017-07-05   등장인물 구인상(역사철학교수, 이미숙 남편, 한문수와 서창희 친아들, 구만택의 의붓아들, 한경주로 개명함), 이미숙(음대출신-피아노전공, 구인상 아내, 순아 모친, 자살함), 순아(구인상과 이미숙의 딸), 서창희(구인상 친모, 한문수 애인, 구만택과 결혼), 유모(순아 유모), 고진숙(고제봉 딸, 애인에게 실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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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창 | 나남 창작선 141

이병주(지음) | 나남출판 | 2017-07-05

 

등장인물

구인상(역사철학교수, 이미숙 남편, 한문수와 서창희 친아들, 구만택의 의붓아들, 한경주로 개명함), 이미숙(음대출신-피아노전공, 구인상 아내, 순아 모친, 자살함), 순아(구인상과 이미숙의 딸), 서창희(구인상 친모, 한문수 애인, 구만택과 결혼), 유모(순아 유모), 고진숙(고제봉 딸, 애인에게 실연당함, 구인상이 거주한 하숙집 딸), 방상기(이미숙과 불륜설, 이미숙 대학 은사), 계향(기생, 구인상에게 뿌리를 찾아줌), 방화(본명은 최귀련, 기생출신, 한문수를 향한 지고지순한 사랑. 영천 술도가집 사장의 첩), 할아버지(구인상 조부, 의성 거주), 백부(구인상 큰아버지, 의성 거주), 명국희(살롱 청마 마담, 기생의 딸, 구인상 애인), 기병열(음대출신, 진숙영 남편, 이미숙과 외도, 사기죄 구속), 진숙영(기병열 아내, 구인상과 외도), 고제봉(하숙집 주인 영감, 구인상이 뿌리를 찾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함), 한문수(한갑순이란 필명 사용, 좌익운동 10월 폭동으로 사망, 서창희와 사랑한 사이, 구인상 친부), 구만택(=구영화, 서창희 남편, 구인상 의붓아버지, 한문수 밀고자),

 

 

 

 

뜬금없다. 삶이라는 것, 사랑이라는 것, 인생이라는 것, 그것들 하나하나를 외따로 해석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발상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스스로를 결박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도 고집스럽게 하나의 동일선상에 올려놓고 말이다. 이쯤 되면, '운명'이라는 단어 속에 내재된 의미가 궁금해지는 건 인지상정이다. 과연 우리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운명의 범주는 어디쯤 일까? 또 한 개인이 살아온 삶의 궤적은 그가 속한 국가의 역사적 배경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일까? 이병주의 장편소설 <비창>(나남, 2017)은 이러한 궁금증에서 출발한다.

 

‘비창’은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의 3대 피아노 소나타(비창, 월광, 열정) 중 한 곡의 이름이기도 하다. 물론 이병주(李炳注, 1921~1992년 4월 3일)의 소설 ‘비창’이 베토벤의 음악과 관련하여 특별히 언급한 대목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르크너의 교양곡 7번’을 비롯하여 작품 속에 서양고전음악에 관한 이야기가 심심찮게 출현한다. 또 주인공 ‘구인상의 아내 이미숙’과 ‘진숙영의 남편 기병열’은 피아노를 전공한 음대 출신이며, ‘살롱 청마의 마담 명국희’ 역시 고전음악에 심취해 있다. 그런가하면 ‘음대 교수 방상기’의 피아노 연주 장면도 등장한다. 따라서 소설 ‘비창’의 기저에 깔린 이미지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8번(Piano Sonata No.8) ‘비창’을 충분히 연상시킨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작품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사랑과 미움’, ‘이별과 기다림’, ‘사회문화현상과 역사인식’, ‘순수와 열정’을 하나의 텍스트로 묶어 ‘애증의 관계’로 안착 시킨다는 점에서 충분히 엿볼 수 있다. 어느 누구의 사랑도 온전하지 않은 이 소설의 플롯은 등장인물들에게 서러움과 한스러움을 안긴다. 그야말로 비창(悲愴)이 아나고서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이렇듯 <비창>은 오래된 포도주처럼 깊고 슬픈 선율에서 탄생한다. 스케일이 크고 방대하다. 뿐만 아니라 묵직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관전 포인트를 하나로 꼬집어서 해석하기엔 적잖은 무리가 따른다. 따라서 등장인물들의 애잔하고 가슴 뭉클한 운명적인 사랑을 두 집단으로 나눠서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한문수를 중심으로 한 여성들의 ‘신뢰와 존중’ 그리고 구인상을 중심으로 모여든 여성들의 ‘나약함과 현실도피’라는 두 집단이다. 그렇다고 이들 두 집단이 서로 대결을 한다거나 어떤 경쟁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다. 단, 이 소설의 주제를 보다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 가르마 타듯 ‘한문수의 러브라인’과 ‘구인상의 러브라인’을 구분해 보았을 뿐이다. 이렇게 분리해서 읽고 나니, 공교롭게도 이 두 집단이 추구한 사랑은 어느 쪽도 완벽한 객체가 아니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드러낸다. 지독한 아이러니다. 소설 속에서 독자의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구만택’과 ‘기병열’까지도 한 호흡만 멈춰 서서 되짚어보면, 그들의 행동 이면에 눅진한 애증의 고뇌가 녹아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이 둘의 말로(末路)는 처참한 몰락을 맞는다.

  

이 소설의 스토리를 집요하게 파고들면 굉장히 재미있는 사실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한 사람의 남성을 몇몇의 여성이 흠모(欽慕)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지극히 적극적이거나 답답할 정도로 소극적이거나 자기애가 지나치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자신이 사랑하는 남성을 향해 적극적인 성향을 드러낸 여성들의 경우, 자기 자신에게는 혹독한 희생을 요구하면서도 끝까지 상대 남성의 인격을 존중한다. 반면, 상대 남성이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라는 소극적인 여성과 자기애가 지나친 여성들의 경우에는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스스로 자신의 삶에 마침표를 찍거나 제자리걸음만 걷다가 주저앉게 된다. 이들의 성향을 간략하게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한문수의 러브라인에는 ‘서창희, 계향, 방화’가 있다. 이들은 지고지순한 사랑을 하며 매사 긍정적이며 적극적이다. 이는 한문수가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변함없다. 마음 깊은 곳에서 그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들은 자신의 자리를 꿋꿋이 지키면서 끝까지 한문수의 억울한 죽음을 밝혀내려 애쓴다. 이러한 적극성은 구인상이 뿌리를 찾는데 일조한다. 이들은 여성으로서 지켜야 할 본문에 충실하며, 주체적인 삶에 방점을 찍고 있다. 비록 삶의 과정은 험난하고 아픈 세월이었지만 결과는 찬란한 빛을 발한다. 대체로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극복하는 강한 여성상을 드러낸다. 헌신적이되 비굴하지 않고, 적극적이되 앞에 나서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그저 진득하게, 아픈 현실이지만 울지 않고, 슬픈 사랑이지만 이기적이지 않다. 다음, 구인상의 러브라인에는 ‘이미숙, 고진숙, 명국희, 진숙영’ 등이 있다. 지나치게 자기애가 강한 이미숙과 답답할 정도로 소극적인 고진숙은 자신의 인생에 스스로 마침표를 찍는다. 진숙영 역시 끊임없이 자살을 예보하며 불안한 삶을 연명한다. 이 세 여성의 인생은 불행한 종말을 가져온다. 하지만 명국희는 다르다. 굉장히 적극적인이면서도 끝내 이기적이지 않다. 구인상의 삶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 ‘살롱 청마의 마담’을 그만 두고 출판사 개업을 추진하는 명국희의 모습은 오히려 한문수의 러브라인 여성들과 닮은꼴이다. 

 

이처럼 한문수를 둘러싼 여성들은 진정한 플라토닉 사랑의 숭고함으로 한문수의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받아들인다. 즉 겉으로 드러난 외모 중심이 아니라, 마음과 영혼을 다하여 내면에 무르익은 그림자 사랑을 추구한다. 대신 구인상 주변의 여성들은 육체적 사랑의 가벼움으로 양쪽 모두의 몰락을 초래한다. 최고의 사랑은 결코 외형만을 추구하는 열정만으로 완성되지 않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이처럼 정반대의 사랑을 꿈꾸었던 두 집단을 통해 정신과 육체를 초월하여 슬픈 사랑까지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진정한 사랑의 힘은 어디에서 출발하는지 살펴보았다. 그 결과 플라토닉 사랑에 중점을 둔 한문수의 러브라인이 성공을 거둔다. 설령, 그것이 시대착오적인 발상일지라도 말이다. 이렇듯 거룩하지 않는 사랑은 없다. 방법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한 편의 문학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스토리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미처 경험하지 못했던 사건이나 시간을 대신 경험해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구인상이 되어보거나 이미숙이 되어 보고, 계향이나 방화의 입장이 되어서 이 소설 읽기에 빠진다면 그 재미는 더없이 쏠쏠할 것이다. 구만택처럼 비열한 인물은 비열한 대로, 한문수처럼 소신 있는 인물은 소신이 있는 대로, 이미숙이나 고진숙 그리고 진숙영처럼 나약하기 짝이 없는 인물들까지도 말이다. 딱히 어느 한 인물의 노선을 응원하면서 읽더라도 결코 중앙선을 침범할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이 소설이 하나의 텍스트에서 출발하여 유기적으로 그 맥락을 같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곧 강한 흡인력으로 유혹한다. 스토리와 플롯이 모두 좋은 소설을 만나기 어렵다는 금기어까지도 시원하게 날려버릴 정도이다. 이는 결코 가벼운 소설이 아님을 방증한 셈이다.

 

분명히 잘못을 저질렀는데도 아무에게도 용서를 빌고 싶지 않은, 자기가 자기를 벌하는 행위로서만 겨우 자존심을 살릴 수 있는 그런 지경에 말려든 거야. 나는 순아 어미의 마음이 꼭 안나 카레니나의 그때 마음일 것 같아…. (본문 412쪽)

 

구인상이 여자를 사랑하기에는 정말 이기적인 남자였을까? 아내 이미숙의 잦은 외도를 핑계로 정녕 자신의 내면에 잠재해 있던 바람기를 공표한 것은 아니었을까? 아내 이미숙으로부터 받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이 정녕 그것뿐이었을까? 그냥 바람이 부는 대로 물결 흐르는 대로 살아가면 그뿐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을까? 순간순간의 짧은 만남을 그저 즐길 요량은 아니었을까? 자신에게 불리한 흔적들을 감쪽같이 지우고 또 지우면서,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살아가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구인상은 어쩌면 처음부터 잘 짜여진 각본대로 행동한 것은 아니었을까? 정작 바람을 피우고 가족을 따뜻하게 포용하지 못한 원인은 전적으로 구인상의 책임은 아니었을까?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아내 이미숙을 향한 뒤늦은 회한을 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이미숙에게만은 그토록 냉정했던 구인상이 왜 참담하기 그지없는 슬픈 곡조의 사랑노래를 피토하듯 쏟아내는가 말이다. 

소설은 그렇게 끝이 난다. 누구 한 사람 완전한 사랑의 세레나데를 부르지 못한 채.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니 수만 갈래의 생각이 우우, 비바람처럼 불어 온다. 언제고 다시 읽어보리라 스스로 굳은 약속을 한다. <비창>은 몇 번이라도 읽어보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작품이다. 소설 마니아라면 꼭 한 번 읽어보길 권한다. 전혀 새로운 소설의 매력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2017. 8. 7(월). ⓒ 심은유 

 


m****0 2017.08.07.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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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창 이병주 / 나남 / 2017      <작가 소개>   이 소설의 저자 이병주(李炳注, 1921~1992)의 호는 나림(那林)이다. 일본 메이지대 전문부 문예과와 와세다대 불문과 재학 중 학병으로 끌려갔다. 해방 후 진주농대에와 해인대(현 경남대) 교수를 거쳐 <국제신보> 주필 겸 편집국장으로 활발한 언론활동을 했다. 5.16 때 필화사건으로 복역한 그는 1965년 월간 <세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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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창

이병주 / 나남 / 2017

 

 

 <작가 소개>

 

이 소설의 저자 이병주(李炳注, 1921~1992)의 호는 나림(那林)이다. 일본 메이지대 전문부 문예과와 와세다대 불문과 재학 중 학병으로 끌려갔다. 해방 후 진주농대에와 해인대(현 경남대) 교수를 거쳐 <국제신보> 주필 겸 편집국장으로 활발한 언론활동을 했다. 5.16 때 필화사건으로 복역한 그는 1965년 월간 <세대>에 감옥생활이 경험을 살린 <소설 . 알렉산드리아>를 발표. 문단에 신선한 충격을 던지며 등단하였다. 그 후 1977년 장편 <낙엽과> <망명의 늪>으로 한국문학작가상과 한국창작문학상을, 1984년 장편 <비창>으로 한국펜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일제 강점기로부터 해방 공간, 남북 이데올로기 대립, 정부 수립, 한국전쟁 등 파란만장한 한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은 그의 작가적 체험은 누구보다 우리 역사와 민족이 비극에 고뇌하게 했고, 이를 문학작품으로 승화시킨 원동력이 되었다. 대표작으로는 <관부연락선>, <지리산>, <산하>, <소설 남로당>, <그해 5월>, <정도전>, <정몽주>, <허균>, <돌아보지 말라> 등의 장편이 있으며, 1992년에 화려한 작가생활을 마무리하고 타계하였다.

 

 

-책날개에서 발췌

 

 

 

주인공 구인상의 직업은 역사철학 교수이다. 그는 음악(피아노)을 전공한 이미숙과 결혼한다. 하지만 그들의 결혼 생활은 순탄치 못하다. 아내의 불손한 바람끼 때문이다. 구인상과 이미숙 사이에는 순아라는 네 살 된 딸이 있다. 순아는 엄마의 사랑 대신 유모의 사랑을 받으면서 자란다.

 

"구인상이 그러니까 여편네가 다른 남자와 놀아나게 되었다고 덧붙이려다가 말았다." (p.97) 아내의 그런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은 구인상은 방학을 이용해서 대구로 내려간다. 그곳에서 살롱 청마의 마담 명국희를 알게 된다. 둘의 사이는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선생님은 부인이 그 뭐라더라, 어느 피아니스트와 관계가 있다고 듣고부턴 부인과 잠자리를 같이 안 했다고 하셨죠?"(p.155) 그랬다. 이미숙은 자신의 스승이었던 방상기와 로맨스를 꽃피우기도 하였다.

 

구인상은 그런 이미숙을 무시했다. 잘못된 이미숙에 행동에 대해서 어떤 대꾸도 하지 않았다. 집을 며칠씩 들어오지 않아도 신경을 쓰기 않았고, 다른 남자와 팔짱을 끼고 호텔의 엘리베이터 타는 광경을 직접 목격하고도 모른 척 무시했다. 구인상은 자신이 그동안 겪었던 이미숙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명국희에게 말한다. 그러자 이미숙은 구인상 몰래 서울에 살고 있는 이미숙을 만난다. 그때 "이미숙을 만나 국희가 느낀 첫인상은 경박한 생활태도를 가진 여자에 대한 일종의 경멸이었다. 이런 여자는 불행해져도 도리가 없다는, 아니 불행을 스스로 짊어지고 나온 여자라는 판단이 있었다." (p.161)

 

한편 이미숙은 기병열이라는 유부남과 또 다른 로맨스를 시작한다. 돈이 필요했던 이미숙은 시가 3억이 넘는 5캐릿 다이아를 8천만 원에 팔아서 버린다. 그리고 다이아를 명국희가 도둑질 했다고 경찰에 허위신고를 한다. 그 무렵 구인상은 기병열의 아내 진숙영과 사랑에 빠진다. 명국희를 두고, 진숙영을 만나는 구인상의 행동도 이해하기 힘들다. 하지만 그들의 관계는 곧 정리가 된다.

 

구인상은 부잣집 아들이다. 그렇다고 모든 생활에 다 만족할 수 있을 정도로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 구인상에게는 자신을 낳아준 한문수라는 아버지가 따로 있었다. 그러나 운명의 장난처럼 "오랫동안 미결에 있다가 한문수가 3년 형을 받은 것은 1945년 2월이었다. (중략) 한문수는 잠깐 고향에서 휴양하고 대구에 나타나선 곧 정치운동을 시작했다. 건국준비위원회 대구지부의 어느 부서를 맡았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한문수는 좌익단체에 가담했다." (p.328) 이것이 계기가 되어서 한문수는 결국 직결심판에 넘어가고 목숨을 잃게 된다. 구인상의 어머니는 이미 임신 상태였으나 구만택이라는 남자에게 시집을 간다. 그리고 곧 구인상이 태어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구인상의 어머니 신창희의 결혼생활은 행복하지 못 했다. 자식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구만택과 살게 된 신창희는 황혼 이혼을 한다.

 

구인상은 자신의 원래 성씨를 되찾는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기생 방화와 계향의 도움이 있어서 가능했다. 이미숙하고는 이혼하고, 이혼한 이미숙은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거둔다. 미래를 약속했던 명국희하고의 관계도 자연스럽게 정리가 되고, 구상인상에서 한경주로 성과 이름을 모두 바꾸게 된 구인상은 자신이 몸 담았던 대학에서 마지막 강의를 끝으로 학교를 떠난다. 모든 것을 운명에 맡긴 채 이 소설은 끝이 난다.

 

너무 너무 재미있게 읽었다. 처음에 내가 이 소설을 읽고 싶었던 이유는 책 표지의 디자인과 책의 제목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책을 딱 받아본 순간 감동이었다. 모니터 화면에서보다 실물이 훨씬 더 좋았다. <비창>이라는 책 제목에 걸맞게 소설 속에서 클래식에 관한 이야기도 자주 나온다. 거기에다가 소설의 줄거리까지 흥미진진하다. 취향저격이라는 말로 내 마음을 표현하고 싶을 정도이다. 기대 이상이었으니까 말이다. 무더운 여름을 한방에 날려버릴 수 있게 만들어준 소설이다. 돈이 많다고, 특별한 지위를 가졌다고 해서 꼭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이병주 작가의 다른 소설도 더 찾아서 읽어봐야겠다.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진짜 진짜 소개해주고 싶은 책이다. 백점 만점에 백점을 주고 싶은 소설이다.

 

 

 이 글은 나남 출판사에서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g****0 2017.08.02.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삶이 시궁창이여도 선율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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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부터 이병주의 소설을 좋아했었다. 당시 모든 길이 막힌 것처럼 궁지에 몰린 시기가 있었고, 그런 답답함을 풀고자 여러 가지 책들과 소설들을 읽었다. 그 시기에 가장 나를 위로해 준 두 명의 작가 중 한 명이 바로 이병주 작가였다. 나는 이병주 작가를 몽상가라고 생각한다. 물론 좋은 의미에서의 몽상가이다. 그는 꿈을 꾸는 작가이다. 그의 소설의 주인공들은 냉험한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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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부터 이병주의 소설을 좋아했었다. 당시 모든 길이 막힌 것처럼 궁지에 몰린 시기가 있었고, 그런 답답함을 풀고자 여러 가지 책들과 소설들을 읽었다. 그 시기에 가장 나를 위로해 준 두 명의 작가 중 한 명이 바로 이병주 작가였다. 나는 이병주 작가를 몽상가라고 생각한다. 물론 좋은 의미에서의 몽상가이다. 그는 꿈을 꾸는 작가이다. 그의 소설의 주인공들은 냉험한 현실 속에서 꿈을 꾸는 사람들이다. [바람과 구름과 비]의 최천중은 나라가 망해가는 구한말의 비참한 현실 속에서도 새 나라를 세우기 위해 삼전도장을 세운다. [행복어 사전]의 서재필은 냉험한 현대 경쟁 사회에 이상적인 세상을 꿈꾼다. [천명]에서 홍계남은 임진왜란이라는 혼란 상황과 천출이라는 한계 속에서도 이상향을 꿈꾼다.

이번에 나남출판사에서 재출간한 고 이병주 작가의 [비창] 역시 비참한 현실 속에서도 이상을 꿈꾸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 구인상은 장래가 총망 되는 젊은 역사철학교수이다.  소설의 구인상이 갑자기 대구로 내려가면서부터 시작된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친아버지가 아니라는 사실과 친아버지의 고향이 대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또 5년간 결혼 생활을 한 아내가 이 남자, 저 남자와 외도를 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모든 것에 환멸을 느끼고 무작정 대구로 내려온다. 그곳에서 우연히 명국희라는 여인을 만난다.

명국희라는 여인은 이병주 작가의 소설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여성상이다. 마치 [바람과 구름과 비]에서 결혼한 상대마다 죽음을 맞게 하는 기가 센 여인인 황봉련을 생각하게 한다. 명국희는 청마라는 다방 마담으로 있지만 스스로를 백여우라고 부른다. 그녀는 구인상에게 자신이 "창부(娼婦)라고 하기엔 슬프고, 창부가 아니라고 하기엔 과거나 너무 복잡하다"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그녀는 많은 재력과 함께 모차르트 음악을 이해할 만큼 음악적인 교향까지 갖추고 있다.

세상과 남자로 인한 상처 때문에 사랑을 거절하던 명국희는 구인상을 만나 그를 사랑하게 되지만, 그의 우유부단한 성격으로 인해 괴로워한다. 명국희는 아내의 문제에 아무런 결정을 못 내리고 주저하는 구인상을 대신해서 서울까지 올라가서 구인상의 아내 이미숙과 딸이 순아까지 만나고 온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서는 명국희에게 구인성은 '좋은 대로 하라!'라는 시큰둥한 대답을 해 준다. 그로 인해 그녀는 상처를 입는다. 그녀는 같이 일하는 언니에게 자신의 상처를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러나 언니, 걱정 마세요. 이쯤에서 브레이크를 걸 수 있다는 건 다행이었어요. 내리막길에 들어서려는 찰나였으니까 만 번 다행이었어요. 여자를 사랑하기엔 너무나 이기적인 남자, 이성이 너무 발달해서 감정이 메말라 버린 남자, 너무나 습기가 많은 세상에선 그런 남자가 희소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희소가치가 아니라 진공이었어요. 마음을 깍듯해서 한 제안에 대해서, 좋으실 대로가 뭐예요. 만 번 다행이었습니다. 나는 또다시 청마의 마담이 될 테니까, 언니, 안심하십시오." (P 163)

소설의 후반으로 갈수록 구인상의 아내 이미숙과 불륜남인 기병열의 추악한 삶이 들춰지고, 더 나아가 구인상의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된 그의 가정의 추잡한 부분도 드러난다. 지금으로 말하면 마치 아침에 방영되는 막장 드라마와 비슷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우유부단한 구인상은 아무런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때로는 어머니의 도움으로, 때로는 명국희의 도움으로 이 모든 것을 헤쳐간다.

이번 소설의 주인공 구인상은 내가 읽은 기존의 이병주의 소설의 주인공과는 조금 다르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기존의 소설의 주인공은 험난한 상황에서도 그 상황을 타계하기 위해 몸부림을 치지만, 이번 소설의 주인공은 햄릿처럼 이런 상황에서 고뇌만 하는 지식인으로 그려지고 있다. 물론 여성의 역할을 틀리다. 명국희뿐만 아니라 계향이나 방화와 같은 시대 기구한 운명을 산 기생, 심지어 주인공의 어머니 서창희까지도 모두 자신의 운명을 극복하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 삶을 산다.  

이병주의 소설이 그렇듯 주인공은 우연히 이런 여성들과 만나고, 그 여성들을 통해 구원을 얻어 간다. 이런 소설의 구조는 단순히 이병주의 소설에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70-80년대의 소설에 주로 등장한다. 방황하는 남자가 무작정 길을 떠나고, 그 과정에서 여러 여성들을 만나고, 그 여성들을 통해 성장해 가는 과정이다. 그런데 때로는 이런 과정이 조금 뜬금없기는 하다. 그렇게 쉽게 여성과 만나는 것도 그렇고, 무조건 남자 주인공에게 헌신하는 것 또한 개연성이 부족한 부분이다.

잊혀가고 있는 한국작가들 중에는 이병주를 비롯한 좋은 작가들이 너무나 많다. 인터넷과 감각적이고 속도감 있는 문화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이병주와 같이 긴 호흡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작가들이 다시금 주목을 받고 읽히기를 바란다.

i*******3 2017.08.01. 신고 공감 2 댓글 4
리뷰 총점 종이책
[소설] 비창 悲愴
"[소설] 비창 悲愴" 내용보기
<비창>은 故 이병주 작가의 1984년에 발표된 작품의 개정판이다. 이 작품은 영화화되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제목이 낯이 익었다는 생각을 언뜻 하기도 했다.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시작한다."역경 속에서도 구슬같이 영롱한 영혼을 지니며 살아가는 남녀를 그리고 싶었다. 남자는 구인상, 여자는 명국희로 될 것이다. 좋은 환경 속에서 자라고 약간의 천품을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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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창>은 故 이병주 작가의 1984년에 발표된 작품의 개정판이다. 이 작품은 영화화되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제목이 낯이 익었다는 생각을 언뜻 하기도 했다.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시작한다.

"역경 속에서도 구슬같이 영롱한 영혼을 지니며 살아가는 남녀를 그리고 싶었다. 남자는 구인상, 여자는 명국희로 될 것이다. 좋은 환경 속에서 자라고 약간의 천품을 타고났는데도 타락의 시궁창에 빠지는 남녀도 그려 보고 싶었다. 남자는 기병열, 여자는 이미숙이 될 것이다." p5

인간의 선과 악, 아니 순수와 타락의 이야기. 솔직히 밑도 끝도 없는 인간의 감정을 철학적 사념 위에 얹혀 놓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작가는 순수의 남자를 구인상이라 했다. 인간의 욕망 중 물욕이 없으면, 인간에 대한 관대함이 있으면 순수로 대변할 수 있을까? 구인상의 성적인 욕망은 순수를 가장한 위선처럼 느껴질 정도다.

읽어내려가는 동안 내내 구인상이 거쳐가는 궤적 속에 머무는 혹은 스치는 여자들과의 관계는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싶었다. 자신은 자신의 역경에 휘말리는 여자들에게 성욕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구인상의 모습에 모순을 느낀다. 인간에 대한 순수는 무엇으로 정의할 것이냐? 하는 질문이 떠올랐다.

이 작품에는 구인상을 중심으로 꽤나 많은 등장인물이 등장한다. 이미숙, 명국희, 고진숙, 진숙영, 유진희 거기에 방화까지. 작가가 "인간이란 운명의 파도 앞에선 연약하기 짝이 없는 미물과 다름이 없지만 이것을 어떻게 감당하느냐에 따라 숭고한 인격으로 화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소설에서 운명을 감당하여 사람으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을 의지를 강조하고 싶었다."라고 한 말처럼 이 작품이 구인상을 통해 인간으로서의 운명을 감당하며 품위를 지키는 게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속 시원히 한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인간의 굴곡진 운명을 통해 다양한 욕망을 표현하고 있는 점이 흥미로웠다. 탄탄한 이야기에 밤새워 단숨에 읽어버렸다.

 

c********u 2017.07.2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