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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를 좀처럼 달지 않는데 이 책이 나에게 희망을 주기 때문에 특별히 리뷰를 몇자 쓰게 되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우울한 성향을 갖고 있다고 한다. 단지 그것을 인지하고 그것의 영향을 받는 것은 개인의 차이인 것이다.기본적인 성향이 내향적이냐 외향적이냐에 따라 또는 상황이나 자기가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는 가에 따라 우울증의 정도가 달라질 것이다.
이 책은 우울한 사람들의 특징-완벽주의적, 자책을 일삼고, 우울한 생각을 주로하며, 쓸데 없는 걱정도 많다- 에 대해 얘기하면서 반복적인 학습을 통해 우울증을 치료할 수 있다고 말한다. 나 또한 내가 날 돌아보면 '우울한 성향'을 많이 가진 사람같다. 자책도 하고 의기 소침해지는 적도 많은 것도 그렇고 '왜 나는 이 모양일까?'라는 생각을 자주 해서 우울해지곤하니까.
저자는 반복적인 학습에 의해 우울증은 치료될 수 있다면서 제일 기본적인 습관으로 '즐거워지는 행동'이나 생각을 할 것을 강조한다. 한 마디로 습관이 사람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행동에 대한 나쁜 평가를 인성에 대한 평가로 확장할 때 우울증과 같은 심각한 정신적 문제가 발생한다" p.148 는 부분에서는 정신이 번쩍드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지속적으로 저지르는 실수가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우울증... 사실 지독한 우울증에 빠져 있으면 저자가 노력하라고 말하는 부분이 인지될 수 없을 정도로 반드시 치료를 필요로 하는 병이다. 하지만 ' 아, 나 왜 이렇게 우울하지?'라고 자기 안의 우울증을 인지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유용한 책이다.
'네가 잘못한 게 아니야. 너의 생각하는 방식이 잘못인 것일뿐이지 그러니 방법이 있어'라고 말해주는 저자에게 용기를 얻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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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 회원국 중 자살율 1위 대한민국" 도시의 휘황찬란한 네온싸인 뒤로 서글픈 우리의 삶을 잘 대변해주는 단어가 '우울증'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찌보면 세계에서 찾아볼 수 없는 빠른 경제발전을 이룩하면서 진정 현대인의 삶은 피폐해졌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랬고 대한민국 자체의 '부'의 축적이 그리 투명하지 못했기에 흔히 우리 주위에서 보여지는 노동자들의 삶은 더 나아지지 못했고 계층간의 불신의 벽은 더 높아졌는지도 모르겠다. 현실의 삶이 고단하고 힘들기에 막상 자신의 정신적 고통은 무시하고 앞으로 나아가기만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상처들이 쌓이고 쌓이다보니 '우울증'이란 어두운 열매가 열리고 극단적인 '자살'로 이어지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사실 우울증은 정신병으로 치부하기엔 우리사회 전체에 널리퍼져있는 '감기'같은 존재다. 포스팅의 제목을 '현대인의 감기'라고 지칭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를 포함해 내 주위의 모든 사람도 감기처럼 누구나 걸릴 수 있는 감기같은 병이다. 감기때문에 치료받으러 병원간다고 하면 어떤 누구도 의아하거나 이상하게 보지는 않을것이다. 하지만 '우울증', '조울증' 때문에 정신과 치료나 상담을 받았다고 하면 우리나라 사회에서는 '정신병자', 나랑 다른 '괴물' 정도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다. 이 글을 읽는 본인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나?.....다시한번 곰곰히 생각해 보라....알게 모르게 자기 자신에 내재되어 있는 '선입견'이 있을 것이다.
상처가 있으면 치료를 해야되는게 우선이다. 내 주위에 아니면 본인이 그런 증상이 있다면 마땅히 손을 내밀고 도와주고 치료를 받도록 해야한다. 그야말로 더불어 사는 세상아닌가?...그렇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학교에서 가르침을 받으면 뭐하나?... 이론적으로 받아들이고 행동하지 않으면 그건 죽어있는 지식을 머리만으로 인지한 것에 불과하다. '감기'에 걸리면 당연히 약을 먹고 의사와 상담을 하고 완쾌할 수 있도록 치료가 필요하듯 '우울증' 또한 똑같다.
물론 그 정도가 심해서 우울증 치료에 필요한 치료약의 정도가 보통의 병보다 강할 수도 있지만 이건 의학적 요소이고 우리가 해야될건 이런 친구나 가족, 지인들을 우울함 그 어둠속에서 나올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이다.
이 포스팅을 작성하는 '나'도 우울증때문에 고생한 적이 있다. 모든걸 비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너무 힘들어서 한때는 내 방안에서 나오지 않은 적도 있다. 사실 그 누구가 위로한다고 해도 아주 깊은 서글픔에서 빠져나오는건 쉽지가 않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충동적인 자살로 이어지는 경우도 꽤 많다. 믿는다고해서 그냥 바라만 보는건 그 사람을 '방치' 하는것과 같다. 이럴때일수록 더욱 친근하고 살갑게 위로하고 다독여야 할 필요성이 있다.
이 책에서도 우울증과 조울증에 관해서 테스트를 통해 간단히 파악할 수 있도록 되어있고 스스로 일어날 수 있도록 메세지를 심어주는 부분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이 책에서 가장 좋은 점은 '병원에서의 치료를 권장' 하는데 있다.
물론 이 책을 보고 자신의 상황을 잘 파악하고 견뎌낼 수 있는 의지를 기른다면 더할나위 없을테지만 그 정도가 심하다면 당연히 전문의와 상담해서 체계적인 치료를 받는게 참으로 중요하다. 절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심리학이나 우울증에 관한 책들을 읽어보면 자신의 책이 진리인냥 독자를 다그치거나 이겨낼 수 있다고 우울증을 앓는 본인의 탓, 주위의 탓으로 치부하는 경우도 많고 의사와의 면담이나 상담에 관한 이야기는 쏙 빼놓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우울함의 정도가 심하고 그로 인해서 기억력, 집중력의 저하는 당연한 것이니 의사와 상담할 것을 추천하고 있다.
우울증을 앓게되면 누구나 공통적으로 겪게되는 과정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위로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과정을 상세히 포함하고 있는 부분은 참으로 인상적이다.
그 중 가장 인상깊었던 키워드는 '왜곡되고 부정적인 생각을 보다 현실적인 생각으로 바꾸면 우울한 기분도 이겨낼 수 있다' 라는 글귀다. 우울증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글귀가 아닌가 싶다. 일어나지도 않을 일에 근심, 걱정하며 시간을 허비하는 현대인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걱정과 근심을 정말 현실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면 아무일이 아니게 된다는 정말 간단하면서 명확한 말이 아닌가 싶다.
우울하고 힘든 일이 있으면 분명한 원인을 파악하고 치료하고 고치는데 힘을 쏟아야한다. 웅크리고 스스로를 가둔다고 해결책이 있는 것이 아니다. 본인은 물론이고 주위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손을 내밀고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데 촛점을 맞춰야 하지 않을까? '홍익인간'이념 여러분도 너무 잘알고 있지 않은가? 말로만 하지말고 이제 실천으로 옮길때다.
이 책이 그 해결책은 되지 않겠지만 우울증을 극복하는데 분명히 '길라잡이'는 될 수 있을 것이라 의심치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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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우울한 시기가 나에게도 있었다.
왜 그런지?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을지?
나만 그런가? 하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고
나에게 있어서 세상은 우울해 보였던 시기도 있었다.
이 책은 생각의 전환과 자가 체크를 통한 현시점의 내 상황을 파악하고 나의 변화를 위한 행동의 변화와 생각의 변화를 요구하고 촉진하는 저서이다.
현대 사회에 있어서 널린게 우울증이고 우울한 사회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자살률이 가장 높다고 한다.
물론 전세 아님 월세 인생, 취업에 대한 높은 압박과 현실, 연애하기도 힘든 현실이기에
지금 우리사회가 가슴 아프지만 나만 힘든가? 누구나 다들 자기만의 인생이 있고 굴곡이 있는법!
생각을 달리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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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론을 믿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나의 우울함은 운명이라는 생각을 자주 해왔다. 일부러 우울해지고자 노력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원치 않는 우울에 수시로 빠져드는 건 그와 같은 기질을 타고 난 탓이 아니고서야 설명이 힘들다. 도대체 나는 왜 우울한 것일까. 굳이 이유를 꼽자면야 무어가 됐건 언급은 가능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원인을 규명하는 순간에도 나는 우울함을 느낀다. 가급적 우울과 연관된 생각을 피하는 게 상책 같다. 왠지 회피하는 것만 같지만 딱히 탁월한 방법을 모르므로 이제껏 그리 굴어왔다. 누구나 우울해질 수 있고, 이의 극복 역시도 가능하다. 이 세상에 불가능은 없다는 게 저자의 주장처럼 읽혔다. 지금은 비록 우중충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삐에로 처지에 놓인 사람도 다시금 삐에로답게 웃음 지을 수 있다는 믿음을 저자는 지닌 듯했다. 그는 우울증을 마치 부러진 다리에 비유했다. 깁스를 하고 통증을 느끼면서 전력 질주를 하는 게 불가능한 것과 마찬가지로 우울증을 앓으면 이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행했던 많은 것들이 어려워지기 마련이라고 보았다. 학습 능력이 떨어진다. 업무에 집중을 잘 하지 못한 나머지 예전만큼의 역량을 발휘 못한다. 취미 삼아 즐겨왔던 많은 게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아예 이불 밖으로 나가는 게 귀찮은지라 하루 종일 누워 있는 일도 부지기수다. 이런 자신을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 왜 이리 게으르고 무능력한지 모르겠다며 스스로를 비난하기도 한다. 극도의 무기력함을 떨쳐내는데 실패한 나머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책에서는 우울증이 낳을 수 있는 많은 증상들이 언급됐다. 남들이 비난하기에 앞서 내가 나를 헐뜯는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훌륭하고도 완벽한 거 같은데 유독 나만 못난 모습이다. 왠지 내가 사라지면 이 조직이 무척 잘 돌아갈 거 같은 착각이 들 때도 잦다. 새로운 일을 만나면 해낼 수 없을 거란 마음에 뒷걸음질부터 치게 된다. 밤에 자려고 누웠는데 잠은 커녕 숨이 턱 막히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걱정으로 밤을 새우기까지 한다. 개별 증세에 어떤 식으로 대처할 것인지를 참으로 상세하게 언급했는데, 이면에는 하나의 원칙이 있는 듯했다. 우울을 부르는 많은 생각들이 사실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저자는 다소 공격적이다 싶은 자세를 취하면서까지 당신이 지금 하고 있는 생각의 실체를 물고 늘어졌다. 당신이 힘든 건 맞지만, 그로 인해 가정이 파탄났는가. 남들과 비교했을 때 남들만큼 해당 분야에서 특출나지 않은 건 맞을 수도 있지만 그래서 회사가 휘청일 정도의 금전적인 피해를 발생시켰는가. 혹 당신만이 지닌 강점이 존재하는데도 그건 무시한 채 스스로를 얕잡아 보고 있지는 않은가. 이런 물음을 던지기도 했다. 교통사고가 나서 가족이 모두 죽거나 전신이 마비된 것보다 현재가 더욱 힘들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질문은 다소 끔찍했지만 보다 객관적으로 개개인이 처한 현 상황을 바라보는 기회를 제공해 줄 것이라는 저자의 말은 사실이었다. 어찌 보면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수차례 세상이 붕괴하는 순간에도 별일 없이 시간은 흘렀다. 기분이 좋아질 때까지는 인내와 훈련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한다. 우울을 극복하는 게 힘든 까닭은 그것이 자신에게 익숙한 일종의 패턴에 가까워서 같았다. 이제껏 부정적인 방식으로 사고해온 나로서는 어떠한 경우에도 비슷한 유형의 사고를 답습하고는 한다. 왠지 난 안 될 거 같다며 남들 몰래 스스로에게 저주를 퍼붓기도 해 왔다. 결과적으로 해내지 못했을 경우에는 이전에 내가 나에게 행한 주술이 무척이나 강렬한 힘을 발휘한 것만 같은 착각에 빠져들기도 했다. 부정적 사고의 연쇄 고리를 끊는 건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 끊임없이 괜찮다며 스스로를 설득해 나가는 훈련이 우울증 극복의 특효약이라는 저자의 믿음이 사실이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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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심리 상담사가 그동안 치료를 했던 경험으로 우울함을 해소 하기 위한 비법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그 비법들이 좀 그렇습니다. "심각한 우울함은 약의 도움과 실제 전문가의 진료를 받아야 하지만, 가벼운 우울함은 스스로의 행동 변화로 치료할 수 있다" 라는 이야기지만, 가벼운 우울함을 겪는 사람이 이런 책을 사서 볼까요? 물론.. 저는 우울해서, 그 우울함을 어떻게든 해소해보려고 이 책을 보지는 않았습니다. 사실, 저는 우울한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왜 나는 우울한 건지 궁금해서 이 책을 봤습니다만, 결과적으로 제목에 낚인 꼴이지요. 어쨌든, 이 책은 뭐 원래 사람은 살면서 우울할 때가 있는 것이고, 그에 대한 명확한 이유는 딱히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우울함에 대한 자기 치료 요법으로, 1. 자책하지 말것 2. 열등감을 극복할 것 3. 죄책감을 가지지 말 것 4. 자의식 결핍에서 벗어날 것 5. 의욕 상실에 빠지지 말 것 6. 두려움이나 걱정에 너무 심각하게 몰입하지 말 것 7. 기억력, 집중력, 판단력 장애 등에 대해 적절하게 대처할 것 이라는 7가지의 비법(?)을 말하는 것으로 끝을 냅니다. 뭐.. 그렇습니다. 딱히 할 말이 없네요. 다만, 개인적으로는 우울함이라는 것에 대한 대처를 이런식으로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우울함이 그냥 이유없이 주기적으로, 살아있다는 것에 대한 증거로 발생하는 것이라면, 이처럼 개인의 노력으로 대처 가능하겠습니다만, 그렇지 않은 우울함도 있습니다. 외부의 원인에서 발생한 우울함은 이렇게 해결되지 않습니다. 책의 처음에서 말한 것처럼, 아주 경증의 우울함... 그런 것만이 이 방법으로 해결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책은 사실, 독자로 하여금 그런 경증의 우울함을 보다 깊고 탄탄하게 변화시키는 원인이 될 것같습니다. 적어도 저한테는 그랬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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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표정의 삐에로가 나를 쳐다 본다. 무엇이 그를 눈물짓게 만들었는지 난 모르겠다. 하지만 그와 닮은 꼴의 얼굴을 내가 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잘 안다. 요즘 난 우울하다. 우울함의 정도는 분명 ‘정상’의 수준을 뛰어넘은 상태다. 감정의 제어가 쉽지 않다. 하는 일마다 어리석고 추하다고 생각한다. 머리가 너무 복잡해 차라리 바보가 되고 싶다고 느끼기도 한다. 아마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나 역시도 우울함에는 주기가 있어왔다. 기본 바탕이 남들보다 더 우울하다는 점은 고려해야겠지만, 지금과 같은 우울함이 영원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그나마 나에게 위안을 준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면 지나갈 것이라는 그 믿음. 몇 권째일까. 우울함에 대한 책을 연거푸 읽는다. 어떤 책은 우울함이 뇌의 질환이라고 말했다. 다른 책은 우울증은 없는데도 사회가 비정상을 사람들에게 강요하고 있다 폭로하기도 했다. 무엇이 옳다는 확신은 서지 않는다. 중요한 건 지금 내가 우울한 거 같다는 점이다. 이 책은 그럼 어느 쪽일까. 우울증의 원인이 무엇인지, 그 실체가 존재하는지 여부 등에 대해서는 그리 크게 집착치 않았다. 대신 저자는 무어가 되었건 우울함을 떨쳐버리려면 노력을 해야 한다고 본 듯하다. 숙제가 이어진다. 자신이 권하는 방법을 매일 훈련하고 연습할 것을 주문한다. 책을 읽는 것만으로는 역부족이겠지만, 노력이 수반된다면 과거의 의욕과 활력이 넘치는 삶을 되찾을 수 있다며 자신의 지도에 따라 달라는 유혹을 한다. 이처럼 저자가 자신감이 넘칠 수 있는 까닭은 우울증의 원인이 바로 ‘나’ 자신에게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는 말한다. ‘당신이 변해야 상황도 변한다. 상태가 호전되려면 당신의 참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특정 상황이 우울증을 유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객관적인 상황을 변화시키기란 쉽지 않으며, 같은 상황에 놓이더라도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누구는 다른 누구보다 어려움을 덜 호소하고 부정적인 순간으로부터도 빛을 발견한다. 인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확신을 좀 더 가지기 위해 저자는 우리에게 묻는다. 매일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가? 그러면서 덧붙인다. 우울한 생각이 우울한 기분을 낳고, 생각이라 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통제할 수 있는 부류의 것이라고. 지금의 내가 경험하고 있는 숱한 바에 대해 저자는 하나씩 짚기 시작한다. 자책, 열등감, 죄책감, 자의식 결핍, 의욕상실, 두려움과 걱정. 그나마 마지막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기억력, 집중력, 판단력 장애’까지는 나아가지 않았다는 점이 불행 중 다행이라면 다행일 수도 있겠다만, 적지 않은 점은 이미 나를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는 것들이었다. 앞서 언급한 많은 것들은 사실 하나하나 떼어내어 생각하기 어려운 면이 없지 않다. 나의 경우 일이 조금만 꼬인다 싶으면 그게 다 내 잘못인 거 같고, 남들보다 내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느끼며, 나만 아니었으면 다 잘 풀릴 텐데 내가 여기 있는 게 원흉이라는 식의 생각을 품는다. 여기에는 자책, 열등감, 죄책감 등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당연히 의욕 상실이 뒤따른다. 하는 일마다 실수투성이인데 어찌 내 스스로 나서 일을 찾고 적극적으로 이에 임할 수 있겠는가. 남들이 시키거나 내가 해야만 하는 것이라는 판단이 서면 일을 하긴 하는데 또 같은 실수를 저지를 것이라는 생각이 자꾸만 밀려오다 보니 딱 기본만을 행하고 만다. 실수도 없지만 뛰어남도 배제된, 정확히 표준적인 인간상으로 거듭난다. 높디높은, 내가 설정한 기준을 충족시킬 수 없음은 당연하고, 이젠 다시 자책과 열등감, 죄책감 등을 느낄 차례다. 대처? 곰곰이 생각해 보았으나 대처 따위는 내게 없었다. 억지로 방향을 틀려 들면 잘 되지 않았고, 오히려 그 진동의 폭이 더 커지는 듯도 했다. 그래서 그런 감정들에 차라리 몰입하는 편을 택했다. 우울하면 최악의 우울함을 경험하길 바랐고, 밑바닥을 치면 다시 올라오는 날도 있을 것이라는 심정으로 겨우겨우 버티었다. 남들이 보기와 다르게 난 많이 게으르다. 남들처럼 자기계발서를 즐겨 읽지도 않긴 했지만, 만약 그랬더라도 저자의 권유들을 따르지 않았을 터이니 나아짐이란 경험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우울롤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간절함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제시한 방법들을 내가 기억하고 또 따르고자 노력할 거 같지는 않다. 게으름 그리고 불신. 이 또한 우울함이 나에게 선사한 선물(?)일 수도 있겠다. 10년 혹은 그 이상 나를 괴롭혀온, 아니 이제는 엄연히 내 일부가 되어버린 우울함을 벗어던지면 왠지 내 전부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마저 느낀다. 이 또한 연습을 통해 극복 가능하려나? 모든 것은 의심으로부터 비롯된다. 실체 모를 우울함에 대해 물어보는 것으로 출발해야겠다. 넌 누구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