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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았던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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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권력자의 여인에 얽힌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다. 절대 권력자 자신보다도 흥미를 끄는 게 보통인데, 이는 권력자 자신이야 복잡한 계산 알고리즘을 잔뜩 두뇌에 장착한 괴물이거나, (좋게 말해서) 초월적 존재, 혹은 거의 초월적 존재에 가까워진 비정상적 상황으로부터 영감을 듬뿍 받은, (일반인의 시선으론 차라리)광인적 존재이기에, 동시대인은 물론이고 비교적 냉정한 정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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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권력자의 여인에 얽힌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다. 절대 권력자 자신보다도 흥미를 끄는 게 보통인데, 이는 권력자 자신이야 복잡한 계산 알고리즘을 잔뜩 두뇌에 장착한 괴물이거나, (좋게 말해서) 초월적 존재, 혹은 거의 초월적 존재에 가까워진 비정상적 상황으로부터 영감을 듬뿍 받은, (일반인의 시선으론 차라리)광인적 존재이기에, 동시대인은 물론이고 비교적 냉정한 정서적 거리를 유지하는 일이 가능한 후대인들의 눈에도 여전히 불가해한 피사체에 머물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그들의 여인'이란 제아무리 권력자의 최측근이라 한들, 권력자의 정서 요소인 총애를 매개로 그 자리에 오른 것뿐이므로, 그 어쩔 수 없는 감성적 존재의 약점을 평범한 이들에게조차 노출할 수밖에 없다. 권력자는 그 자리로부터 추락한 후에야 그 치부가 드러나지만, '그의 여인(들)'은 이미 정상의 위치에서도 내밀한 욕구 기제, 인격적 취약성 따위를 대체 감출 줄 모르는 약한 존재들이라, 자신은 물론 주인(권력자)의 몰락까지 재촉하는, 가장 위축적 의미에서의 '팜므 파탈'이 되고 만다. 꼭 햄릿의 대사가 아니라도, 대체 여성이란 쓸모 없는 화장에 집착하는 반 정도의 성의라도 그 개명에 들일 줄 모르는 존재인지, 개탄의 심정은 누대의 크로니클 관측을 통해 단속적으로 표현될 뿐이다.

에바 브라운의 경우는 이런 전형과는 대척이라 할 만큼 큰 차이를 보이는데, 흥미로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관찰자의 더 큰 흥미를 끌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첫째, 그녀는 빼어난 미모의 소유자도, 사교계를 휘어잡을 풍부한 매력과 세련된 매너, 혹은 막강한 인맥을 가진 실력자도 아니었으며, 개성과 능력 면에서 봐 줄 구석이 전혀 없는 비참한 인생에 유일한 버팀목이 될 가문의 후광조차도 없는, 지극히 평범한 여인이었다는 점이다. 둘째, 이 여인은 동네 사진사의 조수 역으로 미미한 삶을 간신히 영위할 10대 시절에 운 좋게 히틀러의 눈에 들었는데('동네 사진사'의 벼락출세와 물론 깊은 연관이 있는 과정으로), 당시 히틀러는 그 천한 출신 성분의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나다시피하여, 전국적 지명도의 인물로 부상한 후였다는 점이 더욱 특기할 만하다. 성공한 중년 남성이 흔히 트로피 와이프를 장만하는 과정과도 전혀 공통점이 없으며, 하물며 절대 권좌 등극에 불과 몇 발을 남겨 둔 거물로서는 지극히 의외의 선택이었다는 점이다. 이런 여성이라면 혹여 늦되이 제 자리를 찾은 출세자의 조강지처 신분이었다고 해도 이후 버림을 받기 일쑤인데, 하물며 이미 성취의 태반을 이룬 남성에게, 그 불리한 위치에서 권력자의 자발적인 선택을 받았다는 건(예컨대 마오의 장칭은, 거의 필사적이라 할 만큼 '재테크적' 열의와 정성을 일찌감치 미래의 황제에게 들여 온 바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례적이다. 셋째로, 하렘의 일원도 아닌 유일한 (사실상의)배우자 위치에서, 이후 그녀가 보여 준 행보는 무색무취를 넘어 무존재의 그것에 가까웠다 할 만큼 조용했다. 사치나 권력 남용, 축재, 네포티즘, 다른 측근자와의 불협화,... 흔하다 못해 일상이고 법칙이라 해도 과언 아닐, 거의 정형화한 타락, 부패 경로로부터 그녀는 차라리 동시대 독일 부녀자의 평균보다도 더 먼 거리를 유지했다. 넷째, 어찌 보면 이런 '권력 동정녀'의 숭고한 면까지 내비칠 그녀지만, 대중으로부터 존중과 연민을 사기는커녕, '얼마나 부족한 자질, 퍼스낼리티였으면 그 위치를 그렇게밖에 누릴 수 없었을까'하는 백안시, 경멸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도 진정 끝까지 특이하다.

영어에서, '못생긴'이란 뜻의 단어 중에 plain이 있다. 특히 여성을 가리켜, 평평한 윤곽을 한 얼굴을 두고 이 단어를 쓰곤 한다. 에바 브라운은 바로 이 외포에 정면으로 해당한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데, 진정 옷(과 신분)이 날개인지 이 사진에서만큼은 어디서 이런 기품이 나올까 싶을 정도다. 혹은 사진의 마법이라 불러도 될까.

종래 히틀러와 제 3제국, 그리고 그 주변을 대상으로 한 본격 접근, 해명은 이미 완전한 형태로 이루어지고, 그 역사적 성격 규정도 '정사적' 모범 답안이 확고부동한 형태를 이룬 것 아닌가, 최소한 저널리즘 섹터에서는 다른 이견이 끼어들 여지가 없을 만큼 컨센서스가 이루어진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 지배적이었다. 1990년대 커쇼의 대 역작이 잘 보여 주듯, 구소련측 문서 공개라든가 독일쪽 사료를 향한 새로운 시각 형성, 해석의 대두는 봇물 터지듯 출현하고 있으며, 히틀러 연구는 차라리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느낌마저 주고 있다. 학문적, 대중적 흥미를 동시에 유발하는 '그의 여인, 그의 유일한 여인' 에바 브라운에 대한 연구도 양적, 질적 측면에서 마찬가지로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고 있는데, 괴르테마커라는 이 여성 독일 저널리스트의 탄탄한 저작은 에바 브라운 탐구의 기본서라 할 정도로 독자의 기본적 의문을 남김없이 만족시키고 있다. 히틀러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라면 인터넷을 통해 어지간히도 잘 배포된 실정이라 웬만해선 눈에 익은 것들이 보통인데, 책에 실린 몇몇 사진은 숙련된 독자의 눈에조차 낯선 아이템이라 묘한 반가움과 색다른 연상을 선사한다. 번역은 흠 잡을 데 없이 깔끔한데, 1994년 솔즈베리의 '새로운 황제들'을 공동번역으로 국내에 처음 소개한 박병화 박사의 솜씨이다. 요아힘 페스트의 대작 '히틀러 평전'을 옮긴 안인희씨의 터치, 예를 들어 오베르잘츠베르크를 '윗소금산' 따위로 옮긴 유치한 대목 같은 게 없어서 무엇보다 보기가 편했고(히틀러가 무슨 동화 속의 왕자님도 아니고, 뭐하러 아름다운 우리말 이름표를 저기다 달아 주는 배려와 수고를 베풀까? 고유명사는 그들이 부르는 대로 따르면 그만이다. '베이징'은 '된서울', 도쿄는 '새[東]왜[倭]큰터'라고 할텐가, 그럼?), 독일어 특유의 수학적으로 정교한 문치와, 저자 개성이 잘 드러나는 신랄한 어조가 번역에까지 살아 있어 무척 좋았다.


s****o 2013.02.20. 신고 공감 0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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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가 인간이었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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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는 인간의 이미지였던 적이 없다. 아니, 사람들은 히틀러에게 인간이 아니라는 이미지를 부여하기 위해 무단히 노력했다. 딱히 애쓸 것도 없이, 그가 저지른 만행을 딱히 강조하지 않고 나열하기만 해도 충분했다. 그래서 히틀러가 얼마나 파괴적이고 비인간적인 만행을 저질렀는지는 모두 또렷이 인식하게 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히틀러가 한 명의 인간이었다는 것은 거의 잊혀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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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는 인간의 이미지였던 적이 없다. 아니, 사람들은 히틀러에게 인간이 아니라는 이미지를 부여하기 위해 무단히 노력했다. 딱히 애쓸 것도 없이, 그가 저지른 만행을 딱히 강조하지 않고 나열하기만 해도 충분했다. 그래서 히틀러가 얼마나 파괴적이고 비인간적인 만행을 저질렀는지는 모두 또렷이 인식하게 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히틀러가 한 명의 인간이었다는 것은 거의 잊혀졌다. 히틀러의 인간적 면모를 강조하는 것이 히틀러의 면죄부가 될 것을 우려해서였건, 히틀러가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다는 것조차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일종의 연대의식이었건 간에 말이다.

 

<에바 브라운, 히틀러의 거울>은 이런 상황이 역사의식을 왜곡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히틀러의 만행을 인간의 소행이 아니라 어쩌다 일어난 자연재해쯤으로 인식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 책에 따르면, 히틀러의 비인간화의 정점에 있는 것이 히틀러의 연인 에바 브라운의 이미지다. 에바 브라운은 히틀러의 권력과는 완전히 무관하고, 정치에 무관심한 여성으로 그려져왔다. 에바 브라운은 히틀러의 권력 행보를 내조하기는커녕 히틀러의 권력에도 아무런 관심이 없었고, 권력자를 사랑하게 된 것이 아니라 사랑하게 된 사람이 권력자였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에바 브라운의 이런 이미지는 나치 치하의 독일인에 대한 일반적인 이미지와도 겹친다. 딱히 적극적으로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극렬 지지하지도 않고, 그저 주어진 환경과 주변 분위기에 따라갔을 뿐이라는 수동적인 이미지 말이다.

 

저자가 굳이 에바 브라운의 수동적 이미지가 갖는 허상을 파헤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저자는 히틀러를 희대의 괴물로 묘사하고 에바를 어리석기까지 한 천진함의 소유자로 묘사하는 것이, 전쟁의 책임을 히틀러 개인의 몫으로 돌리고 다른 독일인들에게는 면죄부를 부여하려는 의도에 다름아니라고 지적한다. 저자는 에바 브라운이 히틀러의 애인이라는 지위를 이용하여 자신의 의도를 관철시킨 사례를 여럿 묘사하고, 히틀러 고위 관료의 부인을 비롯해 히틀러 주변의 여인들도 알려진 것과 달리 나름대로 야망이 있었고 야망을 위해 노력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마지막으로, 대중이 어떻게 히틀러를 지지했는지도 가감없이 보여 준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에바 브라운의 일대기라기보다, 히틀러 주위의 인간군상을 묘사하는 조감도라고 해야 할 것이다.

 

히틀러는 희대의 괴물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인간이었다. 히틀러 주변의 인물들과 참모들도 인간이었다. 또한, 히틀러를 추종한 사람들 역시 인간이었다. 이것을 직시하는 것은 역사를 똑바로 바라보는 일이자, 역사적 사건의 참 의미를 되새기는 첫걸음이기도 하다. <히틀러의 거울, 에바 브라운>은 그 첫걸음을 떼고 있는 책이다.

p*******1 2012.01.3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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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면 사랑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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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심한 불경기는 사람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모양이다. 러시아의 극우주의적 흐름이나 우리나라의 배타적 민족주의 등의 이면을 조심스레 살펴보면 제 맘대로 돌아가지 않는 시장을 향한 불만을 엿볼 수 있다. 인류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제2 차 세계대전 역시 독일 경제의 침체라는 환경을 무시해서는 설명이 어렵다. 하지만 사람들은 말한다. 히틀러라는 사악한 인물이 아니었더라면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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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심한 불경기는 사람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모양이다. 러시아의 극우주의적 흐름이나 우리나라의 배타적 민족주의 등의 이면을 조심스레 살펴보면 제 맘대로 돌아가지 않는 시장을 향한 불만을 엿볼 수 있다. 인류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제2 차 세계대전 역시 독일 경제의 침체라는 환경을 무시해서는 설명이 어렵다. 하지만 사람들은 말한다. 히틀러라는 사악한 인물이 아니었더라면 역사는 그토록 끔찍한 결말을 기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악을 행한 인물이 가정에서는 여느 누구보다도 자상한 아버지였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이는 부당한 해석이지만, 우리 모두는 악을 평범함으로부터 분리해 생각하길 좋아한다. 내 안에 존재하는 어둔 측면을 외면하고픈 탓이리라. 이 책은 히틀러의 곁에 끝까지 머문, 어쩌면 히틀러에게 있어서는 유일한 여성이었을 에바 브라운을 조명한다. 그녀에 대한 평가는 그리 많지가 않다. 있어도 철저히 히틀러에 가려진 인물로 그려질 따름이다. 히틀러와의 상당한 나이차이가 이러한 평가를 부추기는 역할을 하고 있는 듯도 하다. 그렇다면 에바 브라운은 정치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철 없는 여성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무엇이 에바 브라운과 히틀러를 고착시킨 계기가 되었을까? 저자는 많은 문헌을 검토했고, 수많은 이들이 이야기해온 에바 브라운과 히틀러와의 관계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사실 두 인물을 언급하기 위해서는 뛰어넘어야 하는 장벽이 많다. 왜냐하면 대다수의 진술이 나치즘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인물들에게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드리우기 위해 각 인물들은 히틀러와 에바 브라운을 분리시킬 필요를 느꼈다. 적어도 두 인물의 관계를 모른다고 주장할 때 비로소 그들은 인류에게 파멸을 가져다 준 제 행동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있었다. 이들의 거짓된 증언은 살고자 하는 욕구와 맞닿아 있기에 비난할 수가 없다. 다만, 스스로 악의 중심 축에 걸어 들어간 그들의 행동을 향한 칼날까지 거둘 순 없을 뿐이다.

에바 브라운은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상류층이라고 언급할 수 없을 그녀의 배경은 히틀러라는, 당대 최고의 정치인과 만났을 때 일종의 출세 욕구로서 작동했을 것이다. 잘 생긴 외모라고 할 순 없지만 한 나라의 운명을 짊어진 이 인물이 뿜어대는 카리스마에 그녀는 아마도 포획되었을 것이다. 만일 그녀가 애초부터 가진 게 많았더라면 히틀러에게 이것저것, 많은 것을 요구했을 것이다. 허나 그녀는 히틀러에게 무언가를 바라기엔 너무도 초라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히틀러는 그녀가 자신에게 모든 것을 맞추어줄 법한 인물임을 간파했다. 여성에게 구속당하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했던, 그래서 자신은 독일 국민과, 나라와 결혼했노라고 계속해서 언급했던 히틀러였지만, 자신을 구속하지 않는 에바 브라운의 태도는 그에게 분명 거부할 수 없는 마력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난 에바 브라운에게서 적극성을 엿보았다. 히틀러가 자신에게 관심을 드리우지 않을 때 그녀는 히틀러의 마음을 돌리기 위한 시도를 감행한다. 자살 시도라는 파격적이고도 자극적인 방식은 히틀러를 향한 그녀의 충심(?)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정치에 대해 그녀가 보였던 무관심적인 태도 역시 어쩌면 히틀러가 원하는 불구속의 원칙을 지켜주기 위한 그녀의 적극적인 태도였을 수도 있다.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는 식의 진술은 오히려 거짓에 가깝다고 저자는 말한다. 특정 공습이 어디서 언제 있을 것인지를 에바 브라운은 알았다. 모르는 척 연기에 가까운 태연함을 보여주었던 그녀의 모습은 히틀러라는 권력의 성에 접근코자 그녀가 취했던 일종의 전략이 아니었을까 한다.

그녀의 존재는 무시할 만큼 작지가 않았다. 사람들이 그녀를 제 위치로 평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히틀러와 함께 죽음을 택함으로써 스스로에게 어울리는 상을 확립하고야 만다. 23살이라는 어마어마한 나이 차이, 망국으로 한 나라를 몰고 간 나치즘 그리고 히틀러. 이 모든 것을 고려한다면 이것도 사랑인가?’를 부르짖고파 진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에바 브라운은 히틀러를 사랑했다. 그것이 히틀러라는 인간 그 자체였는지, 히틀러가 지닌 권력이었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말이다.

q*****2 2011.01.0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