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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반 고흐라고 하면 자신의 귀를 잘라냈다거나, 회화의 역사를 자신의 이전과 이후로 갈라놓았다(이 책 중에 나오는 표현입니다)거나 하는, 기행(奇行)과 업적, 천재성(매우 불행한) 등으로만 기억하기 쉽습니다. 그런 분들은 이 책을 꼭 읽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어떤 천재에 대해 잘못된 오해를 하는 게 그 천재(이미 오래 전에 죽은 사람일 뿐)에 대한 부당한 대접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오해를 하면 할수록 그런 오해를 하는 자신의 인생을 빈약하고 비루하게 방치할 뿐인 결과이니 말입니다. 이 풍성한 내용을 남은 책을 다 읽고 나서 더욱 실감하게 된 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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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남프랑스에 사는 것은 빛을 위해서다. 그는 스스로를 전적으로 빛에 헌신하는 봉사자로 여긴다. 중요한 것은 그가 하루하루 수행한 과업에 대한 만족감, 그가 수확한 그림들뿐이다. 적대를 하건 예찬을 하건, 그것이 그와 무슨 상관인가. 그는 화가요, 더도 덜도 아닌, 오로지 화가일 뿐이다. (165쪽)
《나는 빈센트를 잊고 있었다》는 프레드릭 파작이 쓴 전기 傳記이다. 제목에서 빈센트는 물론 화가인 빈센트 반 고흐다. 책장을 덮으면서 나는 이 말이 강력하게 솟아 나왔다. ‘그래. 예술가는 작품으로 말하는 거지.’
<나는 빈센트를 잊고 있었다>는 전기 책의 전형을 따라 무난하게 시작한다. 유년시절 반 고흐가 출생하던 때로부터 시작하여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청소년기의 고흐를 그린다. 고흐는 장남이었고 여러 명의 동생들이 있었다. 그 중에는 나중에 예술의 동반자가 되어준 테오도 있다. 책을 통해서는 그동안 몰랐던 사실들을 정말 많이 알 수 있었다. 심지어는 잘못되게 아는 사실들도 적지 않았다. 우선 고흐는 어렸을 때부터 그림에 천부적인 재질을 보인 신동은 아니었다. 그가 정식으로 미술 수업을 받고 습작을 시작한 것이 스물일곱살 무렵이다. 아버지인 테오도뤼스 고흐에 대해 빈센트는 반감을 갖고 있었다. 책에 따르면 결정적인 계기는 빈센트 11살 때 엄한 기숙학교에 보낸 것이었다. 테오도뤼스는 교구 목사인데 빈센트는 아버지의 신심을 별로 좋게 보지 않았다. 그래서 한창 사춘기 때는 자신은 무신론자라고 부모에게 고함치며 반항하곤 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알 수 있는데 빈센트는 무신론자는 아니었다. 아버지로 대변되는 네덜란드의 기독교의 무사안일한 종교에 저항했던 것이다. (테오도뤼스의 종파는 이단에 속했다고 한다.) 서른일곱살에 요절한 빈센트는 20대에 이미 파란만장한 경험을 했다. 그래서 그의 인생을 읽노라면 왠만한 사람의 50세 정도는 된 것처럼 느껴졌다.
의외였던 부분은 작가가 강조해서인지 모르지만 고흐의 사상이었다. 고흐가 10대를 맞이하고 20대를 보낸 1870년대는 유럽에서 각종 사상들이 용광로처럼 생겨난 때이다. 고흐가 직접적으로 활동하거나 글로 남긴 것은 아니지만 고흐는 사회주의에 깊은 관심이 있었다. 그의 그림의 인물들에 고단한 농부들과 비참한 창녀들이 자주 등장하는 것이 우연히 아니었다. 기존에 갖고 있던 고흐에 대한 이미지와 동일한 부분도 물론 많다. 스무살부터 죽기 직전까지 고흐에게는 ‘미치광이’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다녔다. 겉모습도 옷과 신발에 신경을 쓰지 않았고 비누로 매일 씻는 것이 사치라고 여겨서 꼭 필요할 때만 씻었다. 한동안 맨발로 들판을 다니기도 했다. 고흐는 미술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데셍 공부에 열중했다. 그런데 그는 고급 미술 재료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그것들은 부르주아들의 도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꽤 오랫동안 거친 숯으로 데셍을 하기를 고수했다. 그러다가 그림에 점점 실력을 키우면서 자신에게 맞는 재료를 찾았고 그때부터 한결 부드러운 터치를 구사하게 된다. 그렇지만 고흐는 특유의 거친 표현을 이후에도 고집하였다.
고흐의 평생에 걸쳐서 그의 화풍과 예술관을 인정해주는 지음은 아주 소수였다. 나중에 파리로 진출해서 어마무시한 화가들과 교류를 갖기는 하지만 대다수의 화가들은 고흐를 멀리 했다. 이런 일에는 고흐 자신의 괴팍한 성격 탓도 한 몫했다. 인상주의가 인기 있던 시절에 빈센트는 과격하고 격렬한 그림을 포기하지 않았다. 도리어 인상주의 사조의 고상함을 반대하고 거부하기를 서슴치 않았다.
빈센트는 날씨가 좋든 나쁘든 그림을 그린다. 빨리, 넉넉하게 그린다. 갈수록 점점 더 인상파 화가들의 빛에 등을 돌리고는, 거의 단일 색조로 배치한 “적색과 녹색, 청색과 오렌지색, 유황빛과 자홍색의 대립”을 바탕으로 풍경의 구조만 추구한다. 사물들의 점진적 소멸 같은 건 전혀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는 사물의 밀도에 매달린다. (153p)
남프랑스 아를에서 고흐는 배려심깊은 친구를 사귀었다. 알제리 군인인 소령 미예라는 사람이었다. 미예는 고흐가 인물화로 그리기도 했다. 미예는 고흐의 괴짜 기질을 너그럽게 받아들이긴 하였지만 그림에 대해서는 냉철했다. 다음의 평은 당시에 주류 화단이 고흐에 갖고 있던 생각을 대변할 것이다.
그의 그림은 뭔가 불명확하고, 잘못 그려진 것 같다. 색깔 역시 “과격하고, 비정상적이고, 받아들이기 힘든” 색깔이다. 한마디로 그의 그림은 “끔찍”하다. (178쪽)
한마디로 고흐에게는 공공연한 외부의 ‘적’이 많았다고 할 수 있다. 지금 시각으로 보면 그림은 다양한 건데 단지 화풍이 다르다고 무시하고 따돌리는 것이 이해가 안간다. 그런데 당시는 사회의 권위주의와 미술계의 편견이 엄연히 존재했다. 고흐의 전기인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러한 배타성과 차별을 또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렇기에 어쩌면 고흐는 당시 시대의 대표적인 희생자라고 불러도 틀리지는 않다. 고흐는 굴하지 않았다. 예술의 진정한 부활은 ‘먼지투성이 공식 전통에 맞서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확고한 신념이 그에게 있었다. 또한 새롭게 알게 된 것은 고흐가 화가들의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어 했다는 것이다. 미술업계와 부대끼면서 한 해 한 해 고흐는 현실적인 인식도 성장시켜 갔다. 최저 비용으로 살면서 그림을 팔지 못할지라도 많은 작품들을 생산하고 싶어 했다.
중요한 것은 미래 화가들을 위한 구원을 준비하는 것이다. “우리는 무엇보다 우리 자신 안에서, 선의와 인내 속에서 치유책을 찾아야 한다.”
고흐는 비록 규칙이니 제도니 하는 것들을 질색하였지만 순수한 예술가로서 공동 작업을 하려는 열망이 있었다. 빈센트는 화가들이 수도승처럼 살거나, 아니면 넓은 아틀리에에서 각자 자신의 과업을 수행하는 노동자처럼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184쪽)
동료 화가 고갱과 같이 지냈던 것은 이러한 신념이 바탕에 있었다.
그동안 알던 얘기 속에서는 고흐가 고갱과 룸메이트로 지내다가 서로 사이가 틀어져서 대판 싸우고 헤어졌다더라. 뭐 이러한 식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엄청나게 안 좋은 사건이 둘 사이에 있었던 건 전혀 아니다. 이전까지 고흐는 가는 데에서마다 트러블 메이커였고 고갱과 그림 작업을 하면서도 그러한 기질이 이어진 것 뿐이었다. 그림에 있어서 고흐는 신조가 뚜렷했다. 그가 인정하는 화가들은 에르네스트 메소니에, 앙리 도데, 샤를 프랑수아 도비니, 펠릭스 지엠, 테오도르 루소같은 풍경화가이다. 그가 추종하고 따르고자 하는 선배 미술가들은 이랬다.
“초상화에는 렘브란트와 프란스 할스, 색깔에는 들라크루아, 물감 칠에는 몽티셀리다.” (191p)
1889년에 빈센트는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다. 예전에도 종종 발병하였던 발작이 그를 자주 찾아왔다. 동생 테오의 돌봄과 함께 빈센트는 정신병원이자 요양원에 들어가게 된다. 환각과 환청에 시달리고 먹지 못하고 쓰러지는 일을 치른다. 그는 의사들의 허락 하에 치료의 일환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9월 10일 빈센트는 이렇게 적는다. “지금 나는 자살하고자 했으나 물이 너무 차가워 다시 물가로 나가려는 사람처럼 치유하려 애쓰고 있다.” (219p) 너무나 아쉽게도 이 무렵에야 고흐의 작품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생겨났다. 파리의 한 평론가가 극찬을 하는 글을 발표했는데 막상 고흐는 과장이 심하다면서 평론가에게 편지를 써보냈다.
투병 중에 그림을 그리면서도 고흐의 정신은 탁월한 심미안을 간직하고 있었다. 친구인 지누 부인의 초상화를 그리고는 ‘아를의 여인’이라는 제목을 붙인다. 우리가 성찰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초상화를 통해서, 라고 빈센트는 말했다. (226p)
1890년 5월에 고흐는 치료 과정을 마치고 지인이 사는 오베르 쉬르 우아즈로 갔다.
<나는 빈센트를 잊고 있었다>의 마지막 채프터는 5월 20일부터 두 달을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서술한다. 예상하시겠듯이 고흐의 최후가 기다리는 순간이다. 그래서 정말 한 문장 한 문장 몰입하면서 고이 고이 책장을 넘겼다. 7월 27일에 고흐는 갑자기 상반신에 피자국을 묻히고는 집으로 들어왔다. 하숙을 하고 있었는데 1층에서 이 모습을 본 주인 부인은 이상하게 여겼다. 그래서 남편에게 2층으로 올라가 보라고 했고 라부 씨는 고흐가 힘없이 침대에 누워있는 걸 발견했다. 즉시 의사를 불렀고 의사는 고흐가 총상을 배에 입었음을 알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의사는 생명이 위독한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판단해서 붕대로 감아주고는 돌아갔다. 총알을 뽑아 제거하는 수술을 하지 않은 것이다. 다음 날에 소식을 듣고 동생 테오가 왔는데 고흐는 테오 곁에서 조용히 죽고 말았다. <빈센트>를 쓴 프레드릭 파작은 한 페이지에서 의구심을 피력한다. 고흐가 과연 자신이 스스로 배에 권총을 쏜 것인가? 하는 점에 대해서다. 목격자가 전혀 없었고 빈센트는 별다른 유언이 없었다. 명확한 증거는 없지만 르네 라는 동네의 청년이 그 당시에 권총으로 무분별한 오락을 즐긴 전력이 있었다. 고흐는 르네와 어울리면서 카페에서 술을 마신 적이 있었다. 고후가 죽은 직후에도 부검같은 것은 없었다. 심지어 총알을 빼내어서 확인해보는 일도 하지 않았다. 고흐는 살아 생전에 자신의 그림이 팔린 것을 딱 한 번 경험했다. 동료의 부인이 400프랑에 구매를 했다.
프레드릭 파작의 고흐 전기인 이 책은 정말 감명깊었다. 읽으면서 많은 영감을 주었고 미처 몰랐던 고흐의 진면목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릇되게 알았던 것을 교정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평이한 전개를 통해서 어렵지 않게 고흐의 인생을 돌아보게 하는 작가의 역량이 경이로왔다. 책의 마무리를 그대로 옮겨 적으면서 소중한 독서와 글을 마친다.
그는 다른 것을 찾고 있는데, 대체 그게 무엇일까 플랑드르의 마지막 거장들이 도달한 그 정점에 무엇을 더 덧붙일 수 있을까? 회화는 혁신을 요청하고 있다. 그는 이를 예감한다. 인상파가 이 작업을 시작했지만, 지금 관건은 끝까지 나아가는 것, 색깔의 해체에서 그 결과들을 도출해내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화폭에 현실과의 어떤 타협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회화는 현실과 전혀 무관하다는 것을, 그는 확신한다. 회화는 회화 자체의 현실을 받아들이게 해야 한다. (16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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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반 고흐, 영혼의 편지>를 읽고 그의 그림에 대한 열정과 가난한 삶의 고통이 얼마나 안타까웠는지 모른다. 주로 동생 테오와 주고받은 편지글이었는데, 살아있는 고흐가 느껴져 감동적이었다. 그것을 계기로 간절한 마음에 이 책과 만나게 되어 설레는 마음으로 읽게 된다. 그의 삶의 일부만 알 수 있는 편지글과 달리, 온전히 그의 삶과 작품세계를 알 수 있는 기회라서 기대가 컸다.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화가인 프레데릭 파작의 고흐에 대한 전기이며 프랑스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메디치 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우선 책 속에는 그림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 그림으로 예술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는 것은 마음의 여유와 더불어 고흐의 열정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어릴 적 빈센트는 어떤 아이였을까. ‘말을 잘 듣지 않는 자손심이 강한 아이’였다. 역시 예술가의 자질이 보인다. 화를 내어도 눈에 띄게 크게 터뜨렸고 외로운 아이였다. 틈만 나면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히스가 무성한 들판이나 시냇가에서 풍뎅이를 잡기도 하는 등 자연에서 큰 위안을 삼았다. 그의 어머니는 아이들이 좋은 교육을 받기를 바랐고, 데생과 수채화를 가르쳤다. 딸들은 피아노를 배우며, 온 가족이 손에 악보를 들고 노래를 했다. 화목한 가정의 정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하지만, 따뜻함이 느껴지는 사랑하는 가족의 모습은 딱 여기까지였다. 부모님은 열한 살 빈센트를 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어느 기숙학교의 건물 계단에 내려놓고 가버린다. 비 내리는 날 그 도로를 따라 멀어져가던 부모님의 뒷모습을 영원히 잊지 못하게 된다. 물웅덩이에 비친 자동차의 노란 빛. 회한의 색깔이 되었다. 기숙학교 이전은 천진함과 헌신적인 어머니와 주의 깊은 아버지의 애정, 가족의 따뜻한 화목이었다면, 기숙학교 이후는 온통 ‘고독’이었다.
빈센트 특유의 남과 어울리지 못하는 우울한 성격은 학교에 적응하기도 힘들었다. 놀림을 받기 일쑤였다. 결국은 열다섯 살에 학교를 완전히 떠나게 된다. 집으로 돌아온 빈센트는 무신론자임을 선언하면서 가족과 갈등이 시작된다. 뭔가 일을 해야 하는데 무엇을 해야 할 지도 모르겠고, 어떤 일이 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부모님은 화랑을 운영하는 그의 삼촌의 힘을 빌려 구필 화랑 헤이그 지점으로 보낸다. 판매원으로서 훌륭한 실적을 보이며 잘 적응하는 듯 보인다. 그러는 동안 그림에 대한 그의 관심은 날이 갈수록 커진다. 그러던 중 런던 지점으로 전근을 통보받고, 군복무 문제 등(병역의무는 대체복무로 해방된다.) 이 나오면서 상황이 복잡하게 된다. 런던을 떠나 파리로 파견되고, 갑자기 프랑스인 목사 미망인의 딸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아내가 돼 달라고 간청을 하지만, 거절을 당하고 굴욕감에 깊은 절망에 빠진다.
이때 통찰력 있는 테오는 데생 화가나 화가가 되라고 형을 격려한다. 하지만, 목사가 되겠다고 한다. 성직에 종사하는 아버지를 경멸하면서도. 기숙학교에 격리된 트라우마로 인해 ‘사랑’을 받고 싶다는 애착이 자리한 것일까. 수습 선교사 자리를 얻지만 신경질적인 태도, 화술부족 등 여러 이유를 들어 부적합 판정을 받는다. 다시 신학을 공부하겠다고 시작했지만, 결국은 열다섯 달 만에 부모님 댁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내 인생 최악의 시기였다”(P50)고 말 한다.
끊임없이 ‘실패자’라는 생각으로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방황을 하던 빈센트는 아브라함 피터르선 목사와의 만남으로 그의 삶의 결정적인 전환점이 된다. 끈기를 갖고 계속 그림을 그리라고 빈센트를 격려한다. 비로소 예술가의 소명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빈센트는 자신을 학대한다. 소나기에도 쏟아지는 눈 속에서도 맨발에 누더기를 걸친 채 때에 전 시커먼 얼굴로 황야를 돌아다닌다. 먹거리는 빵껍질에 얼어터진 사과만 허용한다. 모두 미치광이 취급한다.
왜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아마도 자신의 열정을 실험해 본 것은 아니었을까. 그것이 절대 고독으로 이어지고, 성격으로 형성된 것은 아닐까. 일을 안정적으로 할 수 없으니, 돈이 없고 굶주림과 노숙 끊임없이 떠도는 생활은 어느새 삶의 일부가 되었다. 이미 가족에게 그는 “도무지 감당 안 되는 수상쩍은 인물”이 되어 있었다. 그의 예술적 야망을 달갑지 않게 생각한 부모님과의 관계는 더욱 악화된다. 그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 하자 퀴엠으로 도망친다. 그림에 대한 주체할 수 없는 열정을 발산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울분이 그의 온 몸을 타고 흘렀다. 그 광기어린 표정이나 모습을 보통의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빈센트 반 고흐를 말할 때 흔히 ‘광기’를 떠올리지만, 그 이전에 자연에 가까운 순수함이 있었다. 그는 다가오는 자신의 죽음을 알고 있었으며, 항상 초조했다. 갚아야 할 부채와 완수해야 할 과업을 고민했다. 어떤 학파의 환심이나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진솔한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고 싶었다. 가난하고 추한 노동자, 농부 등이 주인공인 회색빛이던 그림은 나중에 강렬한 원색으로 바뀐다. 그 추함을 ‘소름끼치게’ 잘 그려냈다고. 자청해서 요양원에 구금되기도 하고 남프랑스에서 북프랑스로 옮겨 다니는 등 여전히 불안하고 분주하다. 화가들과 교류를 통해 잠시나마 활력을 찾고 영감을 얻기도 한다. 그의 그림에 진가를 알아주는 사람도 생기지만, 팔리지는 않는다.
빈센트에게 참으로 다행인 것은 그를 믿어주고 경제적으로 지원해주는 테오가 있었다는 점이다. 모든 불평불만과 짜증을 다 받아준 테오. 그들의 형제애가 아름답다. 어쩌면 부모노릇을 온전히 해낸 동생이 아닐까. 물론 동생에게 미안한 마음에 자살을 결심하기도 하지만. 반면 그의 어머니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자신이 가진 약간의 재능으로 데생이나 수채화를 가르쳐 준 사람인데, 장남이 그림과 광기에 빠졌다는 것을 알고 두고두고 후회했을까.
살아생전에 딱 한 점 팔렸다고 한다. 한 여인이 구입한 <붉은 포도밭>. 평생 가난했고, 사랑을 갈구했으며, 그러나 항상 고독했던 빈센트는 테오와 나란히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 누워있다. 빈센트의 열정과 테오의 희생이 빚어낸 혜택으로 우리의 눈앞에 그의 그림이 있다. 그 어느 때보다 풍족한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열정은 많이 부족하다. 광기로 점철된 삶이라고 하지만, 더 속 깊은 빈센트의 내면과 그림에 대한 열정, 작품세계와 그 변화를 알 수 있는 감동적이고 만족스러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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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데릭 파작
나는 수 년 전 고흐의 발자취를 훑어 본 적이 있다. 암스테르담의 고흐 미술관, 오테를로의 크뢸러-뮐러 미술관에서부터 파리를 거쳐 아를까지.,. 아를에는 온통 해바라기와 옥수수... 도개교의 배경이 됐던 다리는 지금도 여전히 보존돼 있었다.
작가이자 화가인 프레데릭 파작 역시 고흐의 발자취를 따라갔다. 그는 흐로트 쥔더르트에서 시작하여 런던, 보리나주, 파리, 아를, 생 레미를 거쳐 마침내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 이르기까지 고흐의 고독한 방랑의 자취를 쫓았다.
오랫동안 반 고흐가 머물렀던 곳들을 답사해온 그는 고흐가 세상을 떠돌며 거쳐 간 풍경들에 주목한다. 고흐를 위로하고 보듬어준 풍경들. 그를 우울하고 절망하게 했던 풍경들. 그 속에는 사람들이 있었다.
고흐는 산업혁명과 근대화의 퍼레이드에서 갓길로 밀려난 실패자들─감자 먹는 농부들, 베 짜는 방직공들, 거리의 여인들을 구원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고흐는 그 밑바닥 삶 속에서 현재 시간의 바깥, 다른 세계를 보았다. 이제 파작은 고흐가 본 세상을 새롭게 창조해 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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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견자였다. 다시 말해, 자신들의 소유물에 눈이 먼 물질주의 소부르주아의 정확한 반대였다. 빈센트의 정신은 전혀 다른 것에 사로잡혀 있었다."
'나는 빈센트를 잊고 있었다'의 등장이 반가운 소식이기는 하나, 그에 대한 풀이가 다소 중복적이거나 재해석된 '위인전기'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도 안고 봐야 했다. 경계와 흥미가 뒤섞인 시선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문체는 힘이 있으나 장황하지 않고, 세세하나 지리하지 않았다. 그리고 강렬하게 시선을 사로잡는 삽화의 넉넉한 등장이 아주 매력적인 책이었다. 그의 유명한 작품들로 채워져있을 것이라 예상했던 약 260페이지의 질좋은 종이들에는 흑백으로 표현된 얼굴들과 풍경이 등장한다. 오히려 텍스트에 연연하지 않는 인상적인 구성에 초반부에는 마치 오래된 서양의 동화책을 읽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이 색다름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읽으면서 불현듯 떠오른 것이 영국의 한 드라마 시리즈였다. '닥터 후'라는 시리즈인데, 그 드라마 중 가장 유명한 에피소드를 꼽으라고 한다면 시즌 5에서 나왔던 10번째 에피일 것이다. 그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우리의 반 고흐다. 에피소드 안에 그가 세상을 바라보고 그것을 화폭에 담기까지의 감각을 시각적으로 구체화 해놓는 과정이 있으니 한번 쯤 본다면 좋을 것이다. 그 외에도 그의 작품과 책의 텍스트로 묘사된 '장소'들을 구현해놓은 장면들이 많이 나와 이 책을 읽으며 함께 보면 꽤 재미있을 것이다. 워낙 유명한 에피소드라 전에도 한번 본적이 있는데, 이번 '나는 빈센트를 잊고 있었다'를 읽으며 다시 봤는데 전보다 더 좋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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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에 나온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이 수천만 달러에 팔리면서 많은 화제가 되었습니다. 고흐 생전에는 거의 그림을 팔지 팔지 못했을 정도로 인정을 받지 못했고,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불운한 삶을 살았는데 사후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을 보면서 하늘에서나마 위안을 가질까요?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이 대체적으로 따뜻한 느낌을 주는 반면에 고흐의 그림은 원색을 이용하면서 강하고 거친 붓터치가 인상적이네요. 특히 별이 빛나는 밤이라는 작품을 좋아합니다. '나는 빈센트를 잊고 있었다' 는 고흐 전기입니다. 고흐는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데 고흐 전기나 고흐의 작품을 모아 설명하고 있는 책, 고흐의 작품이 전시된 미술관으로 여행하면서 쓴 책 등 다양한 책들이 나와 있습니다. 이 책은 고흐 전기이지만 다른 책들과는 느낌이 다르네요. 우선 모든 문장의 시제를 현재형으로 쓰면서 고흐의 삶을 담담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종종 빈센트는 몽마르트르를 떠나 걸어서 교외의 시골로 나간다. 아스니에르, 그랑드 자트 섬, 쉬렌, 샤투, 부지발까지 간다.' 등 마치 지금 고흐가 살아있고, 그를 옆에서 지켜보는 느낌입니다. 이런 식으로 서술하면서 저자의 감정이나 의견은 배제되어 있어 책을 읽는 사람들이 스스로 고흐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네요. 말년에는 귀를 자르고 자살을 할 정도로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과거의 삶을 돌아보면 결코 평탄한 시점이 없었네요. 목사가 되려고도 했었고 탄광에서도 일했으며, 파리, 런던에서 그림을 파는 화상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느것 하나 자신과 맞지 않는 것을 보면서 고흐도 초조함을 느끼지 않았을까요. 지금 그의 인기는 말할나위 없지만 당시에는 사람들에게 친숙한 그림 스타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화가로서 성공하지 못했다는 압밤감도 컸을 것입니다. 남프랑스로 가면서 안정이 되는 듯 보였지만 결국 까마귀가 나는 밀밭이라는 작품을 남기고 세상을 떠나네요. 고흐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동생 테오였습니다. 아주 오랫동안 묵묵히 형에게 생활비를 보내주었고, 형의 작품을 팔기 위해 동분서주하였습니다. 하지만 고흐 생전에 팔린 작품은 단 하나에 불과했으며, 둘 다 사후 엄청난 인기를 보지 못한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고흐의 작품을 보러 많은 사람들이 미술관에 가고, 고흐와 테오가 묻혀있는 묘지를 찾는 사람들도 많은데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면 좋겠네요. 책에서는 검은색 펜으로 그린 그림이 많이 나옵니다. 보통 유명 화가의 전기에서는 그 사람이 그린 작품들이 컬러로 들어가는데 이 책에서는 그런 그림은 하나도 없지만 검은색 펜으로 그린 그림들이 고흐의 암울했던 시절을 더 잘 보여주는 것 같네요. 화려한 원색을 사용해서 그렸던 그의 그림들과는 대비가 되면서요. 고흐의 전기나 작품에 대한 책은 몇 번 읽어봤지만 이 책은 기존의 전기 스타일과는 달라서 더 색다르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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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가 “빈센트 반 고흐 전기, 혹은
그를 찾는 여행의 기록”이라 되어 있다. 이 책의 성격을
정확히 정의하고 있다. 빈센트 반 고흐의 탄생부터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서 성장 과정, 그의 연이은 실패, 화가로서의 정체성 확립, 그리고 정신 이상 증세를 거쳐 자살(혹은 타살)에 이르기까지를 시간 순으로 쓰고 있다. 빈센트 반 고흐에 대한 전기다. 또한 반 고흐의 발자취를 따라 가만가만 뒤쫓아가는 시선이기도 하다. 평가하기보다
그가 누구인지를 관찰한 기록이다.
프레데릭 파작은 빈센트 반 고흐를 담담한 시선으로 쫓으면서도 그의 연이은 실패를 강조한다. 화상(畵商)과 전도사라는
직업상의 실패, 여인들과의 사랑에 대한 실패, 화가로서 인정받지
못한 실패. 그의 삶은 실패로 점철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죽어가면서 “난 실패했어요.”라고 내뱉는다. 그런데, 그 연속된 실패사(失敗史)를 읽으며 나는 정작 그 실패들에 대해서는 알고 있으면서도 그 실패의 전과 후는 알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빈센트 반 고흐라는 인물에 대해서 다른 어떤 화가들보다는 잘 알고 있었지만, 그 앎의 정체는 매우 모호했던 셈이다. 프레데릭 파작은 담담한 필체로
반 고흐의 실패를 그린다. 그리고 그 실패가 무엇 때문인지, 그
실패가 어떻게 다음의 실패로 이어졌는지를 보여준다.
그림이 많다.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아마도 프레데릭 파작이 직접 그린
그림으로 생각되는데, 반 고흐의 그림을 모사한 그림도 있고, 작가의
상상으로 그 시대상을 그린 그림도 있다. 흑백의 그림이다. 검은색이
주(主)를 이루는 쓸쓸한 그림들이다. 반 고흐의 삶을 더욱 처연하게
여기도록 하는 게 바로 이 그림들이다(개인적으로 보기에는 그림이 너무 많다. 잘 이해되지 않는 그림도 많다).
이 책에는 버나뎃 머피가 『반 고흐의 귀』에서 바로잡으려 했던 것들이 그대로 서술되고 있다. 반 고흐가 자른 귀를 창녀에게 건넸다는 것이라든지(버나뎃 머피에
따르면 창녀가 아니라 청소부 정도인데), 아를의 90명이
넘는 사람이 진정서를 내서 그를 쫓아냈다든지(실은 36명의
서명인데) 하는 것들이다. 반 고흐가 자신의 귀를 자른 날도
『반 고흐의 귀』에는 12월 23일로 나오지만, 파작은 12월 24일로
기록하고 있다. 또한 파작은 반 고흐와 고갱의 불화에 대해서는 별로 기술하지 않고 있다. 어느 하나만 읽었을 때 그것만을 사실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반 고흐의
삶에는 이것보다도 더 많은 논쟁거리가 있을 것이다. 사실 반 고흐를 잊고 있다는 것은 바로 그런 그의
삶에 대한 미스터리를 놓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반 고흐가 화가로서 활동한 기간이 정말 짧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파작은 그의 그림을 ‘습작’이라고
하고 있다. 완성이 아닌 끊임없는 시도였다는 얘기다. 하긴
예술에 완성이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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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 지금 그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그림들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그의 삶은 어떠했을까요? <나는 빈센트를 잊고 있었다>는 화가 빈센트가 아닌 인간 빈센트의 삶을 담아낸 책입니다. 이 책의 저자 프레데릭 파작은 프랑스 소설가이자 화가라고 합니다. 책 소개가 없었다면 착각할 뻔 했습니다. 페이지마다 등장하는 그림들... 프레데릭 파작의 작품입니다. 그가 얼마나 빈센트 반 고흐와 그의 그림들을 사랑하는지, 이 책을 읽는 내내 느꼈습니다. 책 소개를 보니, "이 작품은 텍스트와 데생을 함께 읽어나가지 않으면 안될 만큼 긴밀하게 뒤얽힌, 말과 이미지의 매력적이고도 강력한 결합"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물론, 동의합니다. 하지만 이 책을 빛나게 하는 건 빈센트 자신이라는 걸 잊으면 안 됩니다. 다음은 이 책의 첫 문장입니다. "나는 빈센트를 잊고 있었다. 하지만 아! 광기 발작 이후의 차가운 평온을 말해주는 그의 자화상, 무감동한 시선으로, 입에 파이프를 물고 있는 그의 그 귀 잘린 자화상 앞에서 나는 얼마나 큰 감동을 받았던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밭두렁 길에 잘린 밀밭,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하늘, 그리고 풍경의 거짓 정적에 흠집을 내는, 검은 십자가 같은 그 까마귀들은 또 얼마나 감동적이었던가." 이제 아시겠죠? 우리는 빈센트의 그림을 보면서 감동을 받지만, 정작 빈센트는 잊고 있었습니다. 평생 가난하게 살았던 빈센트는 자신의 그림을 팔지 않았습니다. 생전에 유일하게 팔았던 그림은 딱 한 점, <아를의 붉은 포도밭>으로, 이 그림을 산 여인은 수집가들이 거들떠보지 않았던 그림의 가치를 알아봤습니다. 빈센트는 악착같이 그림에 매달렸으면서도 자신의 재능을 믿지 않았습니다. 젊은 시절에 사랑했던 여인들은 가진 것 없는 그를 외면했고, 나중에 만난 여인은 거리의 여인이었습니다. 간절히 사랑을 원했지만 번번히 빗나갔고, 무엇 하나 뜻대로 된 것이 없었습니다. 유복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서 평범한 삶을 살 수도 있었는데, 무엇이 그를 세상으로부터 단절하게 만들었을까요. 목사와 무신론자 사이. 전혀 양립할 수 없는 삶의 기로에서 갈팡지팡했던 그에게 다른 선택권은 없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동생 테오에게 재정적으로 의존하는 생활을 스스로도 한심하게 여겼기 때문에 자기비하와 우울증에 빠졌던 것 같습니다. 미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세상, 어쩌면 그를 마지막까지 사로잡은 건 그림뿐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를 삶과 연결시켜주는 매개체. 수많은 명작 중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꽃이 핀 아몬드나무의 큰 가지들"입니다. 동생 테오의 아내 요하나가 남자 아이를 출산했고, 빈센트는 자신의 조카를 위해 이 그림을 선물합니다. 아기의 요람 위에 걸린 그림을 상상하니 저절로 행복한 미소가 지어집니다. 오롯이 사랑을 담은 그림이라서 참 좋습니다. 너무도 독창적이어서 외로웠던 진짜 예술가 빈센트 반 고흐. 그의 생애를 되짚어보니 예술가로서 인정받지 못한 삶이 너무도 억울하게 느껴집니다. 그가 왜 배에 대고 총을 쐈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다행히 마지막 숨을 거둘 때에 테오가 곁에 있었고, 형의 주머니에서 테오는 형이 쓴 편지 한 통을 발견합니다. 편지는 다음과 같은 말들로 마무리됩니다. 결국 빈센트는 사후에 더욱 빛나는 예술가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빛은 아득히 먼 과거로부터 온 빛이라고 합니다. 마치 빈센트 반 고흐처럼. 별이 빛나는 밤에, 우리는 빈센트를 떠올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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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빈센트를 잊고 있었다
빈센트 반고흐를 찾는 여행의 기록
프레데릭 파작(FREDERIC PAJ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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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빈센트를 잊고 있었다>
프레데릭 파작 지음 | 김병욱 옮김 | 미래인
그는 니체와 마찬가지로 시대를 너무 앞서 태어난 것이 아닐까. 니체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이번에 만나게 된 <나는 빈센트를 잊고 있었다>는 니체가 살았던 19세기 후반에 그와 동시대인으로서 네덜란드, 프랑스와 벨기에 등을 떠돌았던 한 방랑자 화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내가 이 가련한 요절 화가의 삶을 따라가면서 떠올렸던 사람이 니체였다. 이들은 시대를 너무 앞섰다는 대가로 우울증과 간질, 발작을 자신의 삶 앞에 지불했어야 했나하는 생각마져 들었다. 물론 역사 앞에 이런 가정과 의문은 억지스러운 나만의 상상이라는 점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두 인물들의 삶의 어느 한 부분을 들여다보면 유사해보이는 점들도 많이 발견된다. 목사 집안의 자녀로서 본인들도 자의로 혹은 타의로라도 한 때 목사가 되려는 과정에 발을 담그기도 했다는 점, 그리고 이들 모두 아버지와의 불화를 겪은 점도 그렇다. 가식없는 삶. 반 고흐와 니체 모두 자신의 말 또는 신념과 자신들의 작품들과 이 주인공들의 삶은 정확히 일치했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언젠가 빈센트 반 고흐의 편지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자신의 귀를 자르고, 발작을 겪고, 알코올 중독 증상에 정신착란 증세 등으로 내가 고흐에 대해 갖고 있던 편견은 여지없이 무너졌던 기억이 있다. 반 고흐는 명민하고 매우 합리적이고 지적인 사람이었음을 알게되었던 것이다. 다만 지나치게 양심적이었던 것인지 세상의 고통을 자신의 온 영혼과 육체로 감당하려다 괴로워하고 결국 스스로를 파괴하기에 이른 것이 아닐까. 《반 고흐》라는 제목의 영화에서는 빈센트의 자존심강하고 상대하기 까다로운 성마른 성격과 아버지와의 불화가 잘 드러났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의 성격과 삶을 이루는데 영향을 주었을 법한 초기의 경험들에 대한 소개가 다소 부족했다는 것이 이 책 <나는 빈센트를 잊고 있었다>를 읽고 새롭게 느낀 점이다.
반 고흐가 상대적으로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음에도 사회성이 부족하고 ‘침울하게 광신적인’ 그리고 성마른 성격의 방랑자가 되어버린 정황을 좀더 엿볼 수 있었다. 예민하고 자존심이 강했던 반 고흐가 11살 되던 어느 날 가족은 빈센트를 어느 기숙학교로 보냈던 것이다. 이 책의 저자 프레데릭 파작이 지적하고 있듯이 기숙학교 이후의 삶은 빈센트에게 ‘고독’을 의미했고, 스스로가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한 이방인으로서 스스로를 바라보게 만든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반 고흐를 소개하는 전기나 책자는 너무나 많지만 이 책 <나는 빈센트를 잊고 있었다> 는 담담한 어조로 반 고흐가 마주대했을 법한 고뇌들의 모습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말하자면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고 방랑자로서 평생을 이방인으로 살았던 반 고흐의 이 ‘침울하게 광신적인’ 인물의 삶이 그 전보다도 더, 그리고 고흐의 눈빛이 더 이해가 된다. 아들 빈센트에게 ‘더러운 짐승’이라고 말했던 아버지와의 불화는 반 고흐가 스스로 서서 고난과 절망을 극복해내지 못하고 환대받지 못한 채, 평생을 자신을 찾아 떠돌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주었을 것이다. 저자인 파작은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그는 우울한 방랑에서 벗어날 탈출구를 찾고 있다.”(89면)
너무나 잘 알려져 있듯이 6살 어린 남동생 테오와의 관계는 반 고흐의 삶에서 제외하고 생각할 수 없는 주제다. 반 고흐의 편지가 주로 동생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가 많았던 만큼 이 두 형제의 관계와 이들이 어떤 생각을 했던가를 속속들이 아는 데는 이들이 교환했던 서신을 참고하면 될 것이다. 반 고흐는 정신적 물질적 후원자였던 테오의 지원을 받으면서 짧은 생애에 이루기 매우 힘든 큰 업적을 남긴셈이다. 특히나 화상을 하던 테오로부터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들과 화가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 그리고 고흐의 화풍에 영향을 준 일본판화 작품들을 접하게 된 것들 모두 사실상 테오의 역할이라고 볼 수 있다. 반 고흐도 그의 편지에서 인정하듯, ‘무조건적인 테오의 애정’에 대한 반대급부로서 고흐는 한 편으로 자신은 어쩔수 없는 ‘실패자’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자괴감의 감정이 그의 영혼을 갉아먹기 시작했을 것이다. 반 고흐의 삶에서 늘 되풀이되는 감정이 바로 자신은 실패했다는 절망, 열패감이었다. 바로 ‘사회 속에 자리를 갖지 못한 자, 앞으로도 영원히 갖지 못할자, 무능하기 짝이 없는 자’로서 말이다.
이 환대받지 못하던 방랑자의 이미지를 다른 문학작품들에서 떠올려본다. 바로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에 나오는 홀든 콜필드를 먼저 생각해낸다. 콜필드는 기숙학교에서 퇴학당하고 집으로 바로 들어가지도 못한 채, 뉴욕 맨하탄의 밤거리를 배회하는 자다. 한편 반 고흐는 콜필드와 마찬가지로 ‘사회의 세속적 성공과 사회 전체를 경멸’한다. 또다른 ‘방랑자’의 이미지로서 고흐를 닮은 캐릭터도 있다. 바로 <좀머씨 이야기>의 주인공 좀머씨이다. 물론 좀머씨는 성가신 미술 도구 대신 길다란 지팡이 하나에만 의지한 채 끊임없이 광야를 걸어가는 캐릭터이다. “입에 파이프를 물고, 모직 팬츠를 입고, 밀짚모자를 쓰고, 성가신 미술 도구들과 보따리를 하나 짊어지고, 그는 호헤베인 역가지 걸어간다. 주민들의 욕설과 야유를 들으며, 작은 마을들을 가로지른다. 눈과 바람을 무릅쓰고, 절망으로 두 눈에 눈물을 가득 머금은 채, 쓸쓸한 광야를 몇 시간 동안이나 걸어간다.”(116면)
물론 콜필드든 좀머씨이든 허구의 이야기에 나오는 등장인물인데 반하여, 반 고흐는 실존 인물이라는 사실에 한 번 더 낯설어지는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다.
이 책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을 언급해보자면, 작가이자 화가인 저자의 그림들이 상당수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그림들은 정방형 프레임을 갖는 중형카메라를 통해 바라보는 영화의 한 장면들처럼 보인다. 혹은 타인의 옆 혹은 뒤에서 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거나 무관심해 보이는 풍경을 포착한 사진처럼 제시되고 있다. 흑백의 단색 판화같은 파작의 그림들을 이 책의 큰 매력이기도 하지만, 본문의 텍스트와 매치가 되지는 않는 듯하다. 마치 영화에서 대사와 배우들의 입모양이 어긋나있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달리 생각해보면 이런 ‘모호하고 일관성이 없어 보이는’ 풍경의 배열은 마치 점점 환각과 정신착란을 겪게되는 고흐의 내면 풍경과 추억의 편린들을 보여주려는 저자의 의도는 아니었을까.
프레데릭 파작의 <나는 빈센트를 잊고 있었다> 는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고’ 절망과 방랑의 짧은 삶을 살다간 반 고흐의 삶을 치밀하게 재현해놓았다. 고흐의 슬픔과 우울은 자신이 세상을 구해야한다는 믿음 내지는 열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자신이 그럴 존재가 도지 못한다는 자괴감은 다시 자신에게 돌아와 자신을 파멸시키게 된 원인이 된 것은 아닐까. 단순히 ‘광인’이라는 한 단어로 빈센트를 평가해버리는 것은 오히려 무책임하다고 생각한다. 한편 평생동안 가족, 특히 동생 테오에게 부채의식을 느끼며 자신을 다그쳤을 반 고흐의 모습을 책을 읽어나가며 상상해볼 수 있었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빈센트가 아버지를 죽였다’고 비방한 누나와 냉담하던 어머니를 탓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다만 이들이 빈센트를 좀더 환대해주고, 격려의 손을 내밀었다면 어땠을까하는 안타까움이 밀려온다. 어떠면 빈센트가 술취한 상태에서 자신의 귀를 자른 것도 환대 받지 못한 이 세상에 대해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한 행동의 표출이 아니었을까. 이 책은 작가이자 화가로서 프레데릭 파작이 빈센트의 그림과 삶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고민한 흔적의 결과이다. 빈센트의 편지와 그림에 대한 수많은 해설서 등으로 다소 부족해보이는 보다 면밀한 한 화가에 대한 낯선 기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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