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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은 1950년 미국인들보다 더 오랜 시간 일하고 있다.”
장하성 교수는 그의 책 <한국 자본주의>에서 그래프를 제시하였다.(국민일보)그래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1950년 미국(1963시간)의 노동 시간보다 많다. 이것을 볼때 자타공인의 인터넷 강국인 대한민국은 인터넷의 발달로 인한 속도전의 특혜도 전혀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증명된다.
한국의 노동 현장은 1997년 외환위기 이전과 이후로 구분된다. 현대 자동차를 필두로 정규직 고용의 댐이 무너지고 생산현장은 사내하청 노동자로 채워졌다. 결과적으로는 재벌들은 풍요로와 졌지만 노동자들의 생활은 상대적으로 빈곤해 갔다. 해마다 비정규직 사원의 자살이 보도 되고 있지만 해마다 재벌들의 꼼수 역시 늘어갔다. 청춘을 다바쳐 일한 공장에서 해고 되고 공장 굴뚝을 올라간 노동자들은 더이상 나올 눈물이 없고 삼성에서 일하던 직원들이 직업병으로 죽어도 재벌가들은 요지부동인 세상이 바로 노동 갓한민국의 얼굴이다.
이 책의 저자 박점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장에서 함께 해 온 노동운동가이다. 저자는 2013년 3월 수원에서 영화 <또 하나의 약속> 의 실제 주인공인 유미와의 만남을 시작으로 하여 울산, 인천, 군산, 평택, 서울, 안양, 대전 등 노동의 현장을 생중계한다.
정규직이 되기 위해 넘쳐나는 비정규직 사원들은 ‘장그래’를 보며 눈시울을 붉힌다. 차별과 소외라는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정규직이 되기 위한 장그래의 노력이 남의 일 같지 않아서다. 그나마 희망이라 할 수 있었던 것은 장그래가 정규직의 꿈을 이뤄낸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도 노동현장의 가혹한 현실만을 말하진 않는다. 불가능 할 것 같은 노조와 병원장이 함께 일궈낸 공공병원이 있었고 성과급을 받는 대신 후배들을 정규직으로 만든 현실이 분명 존재했다. 경제학자 브루노 프라이는 그의 책에서 “돈보다 민주주의가 행복에 더 중요하다.” 라 했다. 연대와 희망만이 우리의 노동현실을 바꿀 수 있다는 걸 새삼 확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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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산업 현장 곳곳을 누비고 쓴 책이다. 이런 류의 책은 예전에 하종강 저자의 『길에서 만난 사람들』이 있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이나 『노동여지도』 모두 참 재미 없는 책이다.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대한민국 경제가 저성장으로 접어들고, 노동 유연화가 심해지면서 안 그래도 입지가 좁았던 노동은 점점 더 벼랑으로 몰리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이 책을 모두 읽어내는 데 참 많은 시간이 걸렸다. 다 읽고 나서 답답해졌다. 박점규 저자는 대한민국 곳곳을 누비며 거대 산업 단지는 물론이고 중소 사업장을 취재하고 글을 썼는데, 장소에 따라 다른 점은 있겠지만 비정규직화가 이미 상당히 진전되었다는 점에서는 모두 똑같았다. 갈수록 회사는 직원의 고용을 직접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정규직이 나간 자리는 비정규직을 채우고, 그렇게 우리네 삶이 전반적으로 어려워진다. 왜냐면, 우리 대부분은 노동자니까. 그나마 희망적이라면, 한국 산업이 망했다 망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전국 곳곳에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는 존재하고 그들은 보다 나은 일자리를 후대에 물려 주기 위해 고군분투한다는 점, 정도? 기업이 살아야 나라고 살고, 노동도 함께 살아야 우리 모두 행복하다. --- 최대 재벌 삼성과 현대차는 사내하청 비정규직을 늘리고, 중소기업 민주노조가 안정된 정규직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나라, 대한민국이다. (153쪽) 하청과 파견이라는 암세포가 도려낼 수 없을 정도까지 퍼진 공단은 규제 완화라는 암세포가 번져 침몰한 세월호를 빼닮았다. 노동자와 시민이 촛불을 든다. 안전한 나라, 안정된 일터를 만드는 촛불이 안산의 어둠을 밝힌다. (190쪽) 국민 생명보다 이윤이 먼저인 나라, 대한민국 전체가 세월호다. (200쪽) 현대차, 기아차노조도 장기근속자 자녀 가산점을 요구했다. 사내하청을 정규직화하고, 신규채용을 늘리도록 요구해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식에게 개인적으로 일자리를 물려주고 싶어 하는 대기업 늙은 노동자들. 그릇된 자식 사랑은 사용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201쪽) 박태준이 없었다면 포철도 없었을지는 알 수 없지만, 포스코가 자기 직원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내하청노동자가 없다면 단 한 개의 코일도 생산해내지 못할 것은 분명하다 (226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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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노동을 신성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과연 신성한가. 시궁창에 처박혀 있는 것은 아닌가. 곰곰이 생각해보면 노동은 신성한 취급을 받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노동을 수행하는 노동자가 ‘노동의 신성함’만큼 대우받고 있는지 묻고 싶다. 언론에 심심찮게 보도되는, 저 높은 곳에 스스로를 유폐하는 노동자의 모습이 정말 신성한가.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다.
노동에 붙는 수식어를 살펴보면 ‘신성한’보다는 ‘고된’이 더 익숙하다. 우리나라에서 노동은 고된 것이다. 누구도 노동을 신성시 하지 않는다.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일 뿐, 생활이 보장된다면 때려 칠 사람이 부지기수다. 노동하지 않는 자본가를 부러워하며, 고된 노동을 일종의 굴레로 여기는 풍조가 만연하다.
이 같은 사회 분위기에서 타인의 노동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람은 별로 없다. 대신 삼성이나 현대와 같은 대기업의 속사정 또는 유명인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이 쏠려 있다. 대중의 관심이 부재한 자리에 울리는 ‘노동은 신성한 것’이라는 외침은 당연히 공허할 수밖에 없다.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모두가 노동자라는 것을 인정하는 인식의 대전환이다.
이와 관련해 의미 있는 책이 최근 나왔다. 바로 박점규 작가의 <노동여지도>다. <노동여지도>는 김정호가 조선 땅을 일일이 밟으며 대동여지도를 그린 것처럼, 저자가 대한민국 땅을 밟으며 전국의 노동현장을 그려낸 결과물이다. 이 책은 노동문제에 관심을 갖고 함께 하려는 이들에게 믿음직한 동반자가 될 만하다.
노동, 삶의 다른 이름 노동은 속칭 ‘금수저’로 불리는 몇몇을 제외하고는, 우리네 삶에서 떼어낼 수 없는 것이다. 어쩌면 노동은 삶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나라 대부분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노동을 족쇄로 여기고, 언젠가는 결코 끊어내고 말리라 다짐한다. 우리나라의 비정상적인 교육열은 내 자식은 이 족쇄를 끊어주리라는 믿음의 징후일 것이다.
하지만 2015년인 지금 노동의 족쇄를 끊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상류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는 끊겼다. 남은 방법은 하나다. 노동자를 소모품으로 여기는 현 사회에서 어떻게 하면 노동자가 인간답게 살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다. 시작은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를 28개 도시 속 노동현장으로 이끈다.
수원, 울산, 평택 등 노동문제와 관련해 언론에서 여러 차례 보도된 탓에 우리가 익숙한 곳에서부터 광주, 경주 등 노동문제와는 전혀 연관이 없을 것 같은 곳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전국의 노동현장을 생생히 그려낸다. 이를 통해 우리 삶과 노동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지적한다.
저자가 전국의 노동현장을 종횡무진 한다고 해서,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그저 취재‘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저자가 세상에 내놓은 노동여지도의 주제는 비정규직 문제다. 비정규직 문제는 우리 사회가 처한 노동문제 중 가장 해결하기 힘든 난제다. 같은 일을 함에도 임금과 복지에 차등이 있다. 이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간극을 만들고, 분열에 이르게 한다.
2013년 기아자동차와 정규직노조가 장기근속자녀를 우선 채용하는 데 합의하자 ‘사내하청 우선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던 김 부장은 시너를 뿌리고 분신으로 항거했다. 세 딸아이의 아빠가 “아이들에게 비정규직을 물려줄 수 없다”고 외친 날은 우연히도 세월호 침몰일인 4월 16일이었다.(139쪽)
“공장 앞 선술집에 모인 비정규직 대의원들이 분노를 쏟아낸다. 정규직과 하나의 노조를 이루다보니 비정규직이 정규직노조에 기대려고만 한다는 것이다. 동료가 분신했는데도 가만히 있고, 비정규직보다 더 열악한 ‘알바’ 노동자들을 외면한다고 대의원들은 열 받아 한다. 최근 사내하청 130명을 뽑았는데 정규직 조합원들이 사내하청에라도 자녀를 넣으려고 했단다. 그런데 비정규직들이 “우리 자녀도 해달라”고 했단다. 정규직노조의 나쁜 점만 배우고 있다고 한탄한다.“(140~141쪽)
같은 처지에 있는 이들이 서로 아귀다툼을 벌이고 있는 모습이 바로 노동현장의 모습이다. 자신의 안위에 천착하다보면 자신이 이러한 아귀다툼 속에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없다. <노동여지도>가 비집고 들어가는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나와 내 가정의 안위를 지켜야 한다’는 본능적인 투쟁에서 한 걸음 물러나 노동현실 전반을 조망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항상 스스로를 객관화 하지 않으면 이용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 냉혹한 현실이다. 노동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아귀다툼을 자신만의 콜로세움에서 낄낄거리며 지켜보고 있는 자본가의 모습을 올려다봐야 한다. 하지만 모두가 싸움을 멈추지 않으면 올려다볼 수 없다. 눈앞에 칼을 휘두르는 적이 있는데 어느 누가 싸움을 멈출 수 있을까.
연대, 상투적인 만큼 진리에 가까운 방법
“대공장 정규직은 부잣집 마름, 중소기업 노동자는 가난한 집 머슴이에요. 대공장 정규직이 이제 신분이 되어버렸죠. 완성차, 부품사 정규직 노조가 책임감을 가지고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조직해야 합니다.”(124쪽)
모두가 싸움을 멈추는 방법은 딱 하나다. ‘연대’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쉽지 않은 일이다. 차등이 실존하는 사회에서 연대를 실천하려면 누군가의 희생은 필수불가결이다. 희생이란 없는 곳에서보다 있는 곳에서 일어나는 게 아름답지 않은가. 그렇다면 연대의 시작은 정규직이 비정규직을 품는 것에서부터이지 않을까.
혁명은 누군가의 일방적인 희생에서 비롯됐다. 우리나라가 일제에서 해방된 것도, 독재의 서슬퍼런 칼날에서 살아남은 것도 모두 누군가의 희생에서 피어난 것이었다. 몇몇을 제외한 모두가 노동자인 사회에서, 1퍼센트의 자본가가 우리나라 대부분의 과실을 차지하고 있는 비참한 사회에서 비정규직이라는 천민을 만든다는 것은 ‘때린 데 또 때리는 격’이 아닌가.
“처음 들어왔을 때에 비하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졌어요. 그런데 그보다 더 좋은 건 할 소리를 하고 살 수 있게 됐다는 거예요. 인간답게 살 수 있다는 게 뭔지 알 게 됐어요. 우리가 뭉쳐서 싸웠기 때문이죠.”(52쪽)
“삼성전자서비스 젊은 친구들에게 ‘노동조합이 따낸 것도 없는데 좋은 게 뭐냐’고 물으니까 ‘우리 목소리를 낼 수 있어서 좋다’는 거야. 또 같이 일하는 동료의 소중함을 알게 됐다는 거야. 그게 정답이라고 생각해.”(203~204쪽)
“‘사축’이라는 말을 아세요? ‘회사의 가축’이라고 일본의 직장인들이 스스로 비하해서 하는 말이라고 해요. 지금 우리가 그렇게 살고 있어요. 열심히 일하면 인정받을 수 있고 내가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잖아요. 이제는 좀 멈춰야 하지 않을까요?”(383쪽)
저자가 <노동여지도>에 담아낸 목소리는 모두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작은 희망을 말하고 있다. 저자가 밟은 노동현장에서는 그 암울함 속에서도 작지만 소중한 연대의 성과들이 있었다. 연대하면 이뤄낼 수 있는 것은 무궁무진하다. 1960년 4.19혁명에서부터 1987년 6월 항쟁까지. 전례는 충분하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선언은 더 이상 빨갱이나 종북좌파의 전유물이 아니다. 우리가 노동자로서 살아남기 위한 선언으로 전유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노동자여, 연대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