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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구병 선생은 우리에게 아마 변산교육공동체로 더 잘 알려져 있는 분일 게다. 나 역시 일전에 귀농에 관한 책을 읽다가 윤구병 선생을 알게 되었다. 예전에 철학교수였다는 사실보다도 변산농부가 더 맘에 든다는 그가, 이 시대의 농촌과 노동에 대해 이야기 한다. 지금의 농촌과 노동은 과연 무엇이 문제인지를 인터뷰어 손석춘이 묻고 인터뷰이 윤구병이 대답하고 있다. 그는 이 시대의 정치는 노동시간을 줄이고 농촌을 살려야 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먼저 평화의 뿌리이고 생명의 근원인 농촌이 살지 않고서는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고 단언한다. 농촌의 공동체적 합리성이 무너지고 그 자리에 도시의 합리성이 자리했다. 그러기에 생산성이나 경제성이라는 허울좋은 명목아래 농촌은 더 이상 젊은이들이 머무를 수 없는 곳이 되었다. 우리들은 서구의 입맛에 길들여지고, 우리 농촌에서 생산된 곡물들은 외면 받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식량자급이 안 되는 자주국방과 자치정부는 있을 수가 없다. 도시의 논리로 이루어지는 교육과, 현실을 모르고 책상물림만 하는 자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농촌정책은 탁상공론에 그칠 수밖에 없고, 그것은 이 나라의 미래를 암울하게 만든다. 그는 중국의 문화혁명이 과오가 많았지만, 수많은 지식인들이 하방해서 현장경험을 쌓은 것이 오늘날의 중국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그들은 현실적인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한다는 이야기 일 게다. 또한 그는 산업화, 문명화의 대안을 농촌에서 찾고 있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 절반이상이 농촌에 내려가 농업에 종사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이 우리가 건강한 생산영역을 확보하고 공동체적 삶을 꿈꿀 수 있는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노동시간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노동시간을 줄여서 일자리를 나눈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 하고 있지만, 그것은 정치적인 문제이기에 앞서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는 적게 일하고, 느리게 살고, 적게 소비할 것을 말한다. 그 속에서 이웃과 더불어 산다는 가치를 경영자도, 노동자도 공감해야만 그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변산농부 윤구병은 이 시대의 정치를 이야기 하면서 어느 특정세력만을 비판하지 않는다. 제대로 된 정치세력은 없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1980년 박정희의 죽음으로 서울의 봄을 맞았을 때, 윤구병은 민주화는 오지 않는다고 단언하여 많은 사람들에게서 욕을 먹었다고 한다. 그가 본 이 땅의 정치는 해방 후부터 당시 박정희에 이르기까지, 수구권력의 탄탄한 뿌리가 내려져 있고, 박정희는 그 상징적인 꽃 중의 하나였기 때문이란다. 그 뿌리는 아마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이명박이라는 꽃도 피었고, 또 다른 꽃도 꽃망울을 맺었으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한국은 합리적인 사태파악 보다는 자기 귀에 그럴듯한 이야기만을 무조건적으로 받아 들이는 정서적인 반응이 지배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그는 사회혁명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문체혁명이 먼저 일어나야 한다고 믿고 있다. 있는걸 있다, 없는걸 없다라고 할 때가 참이고, 인 것을 이다, 아닌 것을 아니다라고 할 때가 참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역으로 없는 것을 있다, 있는 것을 없다, 혹은 인 것을 아니다, 아닌 것을 이다라고 할 때는 당연히 거짓이 된다. 이것은 어려운 말도 아니다. 참인 것이 좋은 것이고, 거짓인 것이 나쁜 것이다. 이것이 안 되는 세상을 되는 세상으로 바꾸는 것이 바른 정치라고 윤구병은 강조한다. 우리말이 아닌 힘있는 말로 인해 상상력이 사라진다고 말하는 그는, 누구나 알아 들을 수 있는 말로 주고 받을 때, 정치도, 경제도 민주화 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말한 한자가 아닌, 지금의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외래어가 아닌, 누구나 쉽게 알아 들을 수 있는, 그래서 있는 것은 있다가 되고 아닌 것은 아니다가 되는 그런 말들로 상상력이 복원되는 정치, 그것이 바로 이 시대가 요구하는 바른 정치라는 그의 말이 가슴을 아리게 만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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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화,도시화로 인하여 이농현상이 심화되어 간 지가 오래이다.농민의 일손으로 논과 밭,자연에서 일군 농작물들이 나라의 백성들의 배를 채우고 나라 살림의 근간이 되고 있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그런데 너도 나도 잘 배워 좋은 직장,높은 신분을 갈망하여 농촌을 떠나 도회지로 몰려 오다 보니 이제 농촌은 '나간 집과 같은 몰골'을 띠고 있다.어쩌다 시골의 기억과 추억을 더듬고자 고향 땅이라도 스쳐 지나다 보면 논에는 잡초들만 무성하고 어린 시절 호흡을 함께 했던 이웃집들은 외지에서 이사 온 낯설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사실 시골에서 농작물,가축을 길러 가족 생계와 자식들 교육을 시키기에는 솟아 오르는 물가를 따라 잡기도 힘들거니와 농협 등에서 빌려 온 농사자금 갚기에도 빠듯하기만 하다.나 역시 산골 마을에서 자라고 성장한 사람이지만 지금은 고향에는 인척이 아무도 없게 되고 한식,추석과 같은 명절에만 겨우 조상의 묘를 찾는 정도일 뿐이다.'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말은 현대에서도 적용되는 말인데 현실정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 안타깝기만 하다.설상가상으로 우루구아이라운드 협정,FTA 문제 등으로 농촌의 살림은 더욱 어렵게만 되었다.
이렇게 피폐해 진 농촌을 살리고 공동체 삶의 소중함을 일깨우기 위해 학자의 신분에서 농민의 삶으로 돌아 간 윤구병저자는 출판사 경영을 하면서 흙과 함께 하고 진정한 노동의 가치가 무엇인가를 일깨워 주고 있다.아울러 그는 사무실 노동자들의 근무시간을 하루 6시간으로 실시하면서 농촌의 부족한 일손이 대도회지에서 농촌으로 흡입하기를 바라고 있다.현실 여건상 어렵게만 느껴지지만 생명의 뿌리인 농촌을 온전히 지켜야 한다는 역설에서는 절로 수긍이 간다.
이 글은 윤구병저자와 인터뷰 형식으로 저자의 삶의 이력과 현재 운영하는 출판사 일과 논과 밭일을 통해(20여 가구 50여 명)서 공동체의 삶이 소중하다는 것이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일깨워 주고,농촌이 살아야 나라의 살림이 안정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아울러 현대인이 돈과 물질에 지배 당하는 현실을 날카롭게 꼬집으며 살아 있는 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요새 사람들은 마치 돈 없으면 못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200년 전까지도 인류의 99퍼센트는 돈이 필요 없는 공동체에서 살았어요.자기 앞가림을 할 줄 알고 다른 사람과 나눌 줄 아는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가 늘지 않으면 인류에 미래는 없습니다."
지금은 나누고 배려하는 따뜻한 공동체 사회는 느껴지지 않는다.대신 소그룹 형식 및 단체,파벌 등을 통한 이익사회로 변질된 것이 대부분이라고 생각한다.신분 상승,정치.종교권력,돈과 물질을 내세운 재력 과시를 비롯하여 현재 한국을 이끌어 가는 정치계의 핵심세력 중에 농촌에서 일해 본 경험자는 전무(全無)하다는 점이 안타깝기만 하다.농촌을 제대로 알고 살리려면 논과 밭,들에서 일을 해 본 경험자만이 농촌의 실상을 알 수가 있고 농촌 살리기에 불을 붙일 수가 있는데,살려야 한다는 점에서는 사회지도계층도 공감과 이해를 하지만 실천으로 옮기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 현실이다.국부의 원천이고 생명력의 뿌리인 농촌과 흙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되돌아 가자는 취지에 깊게 공감하는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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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간 줄이고 농촌을 살려라
언제나처럼 아침에 일어나 페이스 북을 확인하다보면 일상 다반사들 사이에 정치 이야기가 끼어든다. 국정원이 국가 기밀 문서를 '스스로' 공개하고, 대통령은 외국에 나가셨다는데 옷이 어쩌고 저쩌고, 어떻게 봐도 분명 불법선거가 맞는데 언론에서 터트린 연예인 병사이야기에 뭍히고 있고, 분명히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가 촛불을 들고 있는데 어느 언론에서도 이런 이야기는 없다. NLL을 포기 한적이 없는데 의도적으로 짜깁기한 말들로, 대통령은 감성적인 말 한 마디로 그 모든 잘못들을 덮어 버릴 수도 있다니.
이 책, 윤구명선생과의 대화의 가장 좋은 점은 바로 그런 '틀'을 깨 준다는 것이다. 읽는 이에 따라서 선생과 다른 생각을 갖거나, 불편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든다. 그러나 내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던 것들을 다시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안경, 한가지 틀, 프레임등을 깰 수 있는 아주 소중한 시간을 주었다는 것에서 이 책에 고마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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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구병 . 윤구병. 이름은 많이 들어보고 괜찮은 분이라는 건 알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한번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자신의 삶을 보다 더 현명하게 살아가는 그분의 모습이 참 보기 좋다. 요즘 얼마나 돈에 어두워 권력에 어두워 살아가는 정치인이나 돈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가 말이다.
65세 정년을 보장받은 국립대학 철학교수직을 버리고 전북 부안에서 변산공동체를 구현하고 있는 농부철학자라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정치란 무엇인가란 물음에 멋드러진 대답으로 응수한다. 정치에 '다스릴 치' 자가 들어가는데 즉 다스림이라고 말을 꺼냈다. 우리 옛말에 '다스림'이란 다사로움과 이어진다는 주장을 하는데 저자는 다 살게한다라는 뜻의 다살림이라고 말한다. 새로운 깨달음이었다.
정치가 무엇이며 선생님이 집권하면 무엇을 하겠느냐는 말에는 정명을 하겠다 즉 '말길을 바로잡겠다'다고 한다. 먹물들이 토박이말을 한자말로 바꾸며 상상력을 다 죽여버렸다는 것이다. 힘센 나라, 힘센 말들이 들어와 우리의 상상력이 죽고 구체성을 없애버렸다는 말이다. 루쉰이 중국에서 문체혁명을 했듯이 사회 혁명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문체혁명이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1995년 서울 대학교 교환교수로 가서 석, 박사 과정 학생들한테 존재론 강의를 할때도 어려운 말은 쓰지 않고 본래 우리말을 썼는데도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만큼 우리말이 제대로 살아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아주 짧은 책이지만 내용은 알차기만 하다. 예전에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워낭소리]라는 다큐가 생각났다. 삶 자체는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던 그 할아버지처럼 윤구병 선생님 역시 그런 삶을 살고 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더 배우고 조금더 시야를 넓히게 되면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을 도와주고 조금더 세상이 풍요로워질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입증해주고 있는 산증인이다. 배움이란 것이 나만의 뱃속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와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 얼마나 값어치 있고 소중한 일인지 깨닫게 해주는 시간이었다.
이 책을 보고 나니 나도 시골에 가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몇년전까지만 해도 시골에 내려가서 살거라는 사람들을 바라보면 이해할수가 없었다. 서울이 이렇게 편하고 좋은데 대체 시골에 가서 어떻게 살아간다는 이야기지? 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나역시 시골에 가서 사는 것도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일년에 두 번 명절때 시골인 전남 영암에 내려가는데 갔다 올때마다 참 환경이 다르고 공기가 탁하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언젠가는 지금의 바램처럼 전원생활을 즐기고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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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산농부 윤구병 선생님. 그의 직접적인 육성을 듣기는 처음이다. “현실을 설명할 수 없으면 철학은 이미 절학이 아니다.”라고 말한 한옥연구가 이상현 선생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플라톤의 철인정치론을 빌지 않더라도 그분은 이미 철학자이시며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실천하고 계신분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고해서 그를 정치가라고 칭하기도 그렇다. 그의 생각은 이상적이다. 하지만 그의 말에 귀기울여야한다. 역사가 성장과 쇠퇴 속에 계속해서 진보하고 있다고 가정할 때 그의 이상은 퇴보처럼 들리나 그것이 곧 진보로 가고 있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그 증거를 찾아야할까? 어렵다. 불혹의 나이임에서 세상의 유혹에 약한 나는 늘 우물쭈물하고 있으니 말이다. 현실을 살고 있는 나에겐 계속해서 찾아야할 시계토끼일지 모르겠다. 이 책은 손석춘 선생이 ‘정치란 무엇인가, 한국 정치를 어떻게 보아야 옳은가’를 묻기 위해 윤구병 선생님을 찾아가면서 시작된다. 개인적으로 윤구병선생님은 아이들책으로 먼저 만났다. 우리순이, 바쁘다 바뻐 등 아이들보다 내가 더 좋아하는 아이책을 만들어 주신 분으로 기억한다. 왜냐하면 나도 농부의 딸로 태어나 농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그 시절은 나에게 회귀하고 싶은 태고적 귀향본능을 늘 간직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변산공동체와 대안학교를 알게 됐고 자신의 이상정치를 현실로 만들고 계신 분으로 기억한다. 평소 그런 생각들이 그분을 존경하게 했는지 이 책은 무척이나 반가웠다.
사실 정치에 대해선 좀 무지했다.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은 근현대사는 내가 찾아 읽거나 알려고 하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치기 일수다. 정치에 대한 불신은 ‘똑같은 놈들’ 취급을 하며 천대했다. 하지만 우리가 천대한 그 정치적 환경 속에 내가 종속되어 살고 있다면 더 이상 방관자여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권에 더욱 적극적이어야 한다. 국민이 적극적으로 변화를 도모한 나라만이 민주적으로 부강해지고 바뀌었음을 우리는 세계 역사를 통해 인지할 줄 알아야한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들이 편견과 아집이 아니었나 의문을 품게 됐다. 이승만부터 노무현까지 근현대사에 대한 솔직한 견해들과 사회적 접근들은 많은 생각들을 하게 했다. 공감할 수 있는 부분도 있었고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부분들도 있었다. 선생님에 대한 평소 신뢰가 어쩌면 내 생각이 옳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이끈 마오쩌둥이나 소련의 독재자인 스탈린의 정치를 부분적으로 옹호하는 부분에서는 내가 오히려 이상주의자였나 하는 생각을 해봤다. 이 대담집을 온전히 이해하고 비판하기에는 난 아직 부족하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분명한건 선생이 주장하는 ‘평화의 근거지이자 생명의 뿌리인 농촌을 온전히 지켜야 한다’는데 동의한다. 농촌에 대한 정부의 정책도 바뀌어야 한다.
작은 텃밭을 일구고 소규모 농사를 짓고 있는 입장에서 농촌의 정책은 대농위주의 정책을 펼치고 있음에 과거 대기업 몰아주기식 정책을 펼쳤던 산업정책과 다를 바가 없다. 사회적 토양이 이미 그렇게 굳어져서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책에 대한 중요성이 두각되고 있지만 여전히 미봉책에 불과하다. 농어촌 지원분야는 아직도 대농위주이다. 소규모는 모든 지원책에서 우선적으로 배제된다. 신성한 노동의 가치는 혼자서 즐기는 사치놀음으로 전락시키는게 현실이다. 좀 더 현실적 대안을 위해 직접 노동해봐야 한다 건 중요하다.
선생의 꿈은 앞으로 없다. 그저 ‘늘 바람, 비를 포함한 물, 내가 디디고 있는 땅, 그리고 날마다 뜨고 지는 해, 이분들한테 계속 인사하고 절하고 고마워하는 일’ 그래서 바람둥이로 살리라는 생각. 사랑이 죄 아니니 은밀하게 할 필요도 없다는 거. 다부다처제가 인류의 진보라는 생각. 선생이 실천하고 있는 6시간 노동제와 농촌공동체를 살리는 일에 나도 소망을 더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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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번에 <행복하다 행복하다 행복하다> 라는 책을 읽었다. 행복....이 세상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행복" 을 갈구한다. 우리가 공부를 하는 것, 그리고 매일 매일 미래를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는 것은 모두 궁극적으로 "행복" 을 얻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지금, 과연 우리는 행복할까? 우리나라는 거의 폐허였던 옛날에 비해 "한강의 기적" 이라 불리는 경제 기적을 달성했고, 국민들의 삶도 과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풍요로워졌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행복 지수는 OECD국가중 32위, 그리고 자살률은 가장 높다. 그리고 UN의 <세계 행복 보고서> 는 전 세계 행복 순위에서 대한민국을 56위로 매김으로써 비교적 불행한 국가로 지목하기까지 했다. 왜 우리는 높은 경제 성장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토록 "불행" 한 것일까? 우리가 진정 행복해지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이 책은 바로 그러한 질문에 답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이 책에는 우리가 행복해지지 못하는 원인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러한 것들을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 그 구체적 방법론이 담겨 있다. 시중에 나와있는 다른 "행복" 에 관련된 책 같은 경우는 그저 행복의 중요성을 나열해놓은 정도에 그쳤는데 이 책은 구체적인 방법과 사례까지 제시하고 있다. 정말 훌륭한 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행복....인간이 사는 궁극적인 목적은 행복이다. 그러나 작금의 사회는 지나치게 "행복"을 "돈" 이라는 획일화된 기준으로만 평가하려 한다. 돈이 있으면 그 사람은 행복한 삶이고 돈이 없으면 그 사람은 불행이라는 사고라는 인식 때문에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돈을 벌려고 애쓰며, 결국 그 돈에 자신의 행복을 빼앗기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물론 행복의 여러 요소 중 돈이 하나가 될수는 있지만, 어떻게 돈만이 사람의 행복을 결정할수 있는 절대적인 요소가 돈이 될수가 있겠는가. 진정한 "행복"을 찾으려면 바로 이러한 잘못된 사회 인식 또한 개선해야 된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행복" 을 얻고 싶어하는 모든 사람들한테 추천하고 싶은 명작이다. 꼭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자신만의 행복을 찾았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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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윤구병 선생님을 처음 알게 된 것은 고등학교 3학년 담임 선생님 덕분이었다. 당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처음 생겨나서 가입한 선생님과 학교 사이에서 갈등이 불거지던 시기였는데, 대전의 사립학교였던 우리 학교는 결국 가입했던 선생님들이 모두 탈퇴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아무래도 사립학교는 공립학교와 다르기 때문에 그 압력이 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때 담임 선생님은 생일을 맞은 반 아이들에게 책을 선물해 주셨는데, 내가 받은 책은 <꼭같은 것보다 다 다른 것이 더 좋아>(1990, 윤구병 지음, 푸른나무 펴냄)라는 책이었다. 벌써 20년이 훌쩍 지나서 책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대학 진학을 목표로 공부에 시달리며 반 친구들까지 경쟁자로 보게 했던 당시의 생활을 다른 눈으로 보게 했다는 기억은 남았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만난 <변산공동체학교-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2008, 윤구병 지음, 보리 펴냄)에서, 윤구병 선생님이 세운 대안 학교인 변산공동체학교가 '꼭같은 것보다 다 다른 것이 더 좋아'의 실현임을 알았다. 그렇게 실천하는 지성인으로 계셨다.
세 번째로 만난 윤구병 선생님은 보리출판사 대표살림꾼의 위치에 계셨지만 여전히 '변산농부'이셨다. <노동시간 줄이고 농촌을 살려라> (2012, 윤구병, 손석춘 지음, 알마 펴냄)는 건국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인 손석춘 선생님이 인터뷰어로서 변산농부 윤구병 선생님과 나눈 대담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우선 책의 판형이 특이해서, 폭은 좁고 위아래로 길다. 책 속은 여백이 넉넉한 것에 비해 글씨가 꽤 작다. 군데군데 당시의 시대 상황이라든가 부연 설명을 주석으로 달았다. 이 책이 속한 시리즈인 '이슈북'이 '우리 시대 정치를 말한다'인 만큼, 이 대담은 정치에 대한 정의에서 시작하는데, 이야기는 우리말이 사라지는 현상에 대해 우려하는 것으로 옮겨 가고, 이는 다시 농촌 문제로 이어진다. 책 제목인 '노동시간 줄이고 농촌을 살려라'가 유래하는 대목으로, 하루 6시간 노동하고 다 함께 살 수 있는 사회를 제안한다. 윤구병 선생님의 삶과 우리나라의 현대사가 연계되어 과거와 현재를 읽어 내고, 그에 기반하여 경제와 사회, 교육에 대한 우리의 바람직한 미래를 내다보게 된다. 손석춘 선생님의 적절한 질문과 윤구병 선생님의 부드러우면서도 날카로운 대답이 어우러져, 이 책 한 권으로 윤구병 선생님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된 기분이다. 하루 동안에 한 생애를 산 느낌이라고 할까.
책 뒤표지 날개에 실린 이슈북 시리즈의 리스트를 보니 근간을 포함해서 흥미로운 주제와 필진이 가득하다. 앞으로 이 시리즈를 눈여겨보아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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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 즈음에 귀농하겠다고 동무들과 함께 귀농할 곳을 찾아다닌 뒤 지금까지 귀농하지 못하고 있다. 그때 당시 귀농을 했다면 내 삶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스스로 묻곤 한다. 그나마 텃밭을 가꾸고 농촌을 중요하게 여기는 일터에서 일을 하고 있고, 지난해부터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텃밭을 일구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그렇지만 궁극적으로는 농촌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윤구병 선생님이 쉰 살이 넘어 대학 교수를 그만두고 변산 농부가 되었으니 아직 늦지 않았다고 여겨야 할까. 도시는 희망이 없다. 물질에너지 체계에 교란이 생겨 물이 끊기면 사흘을 견디지 못하는 곳이 도시이다. 건강한 생산영역은 점점 줄어드는 반면 사람을 죽이거나 건강을 해치는 생산영역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열심히 일을 하면 할수록 우리 건강을 해치고 인류를 파멸에 몰아넣기 십상이다. 그런데 건강하지 못한 생산영역에서 노동하는 사람들을 나무랄 수도 없다. 먹고살려면 벗어날 길이 없기 때문이다. 거대한 도시 사회에서는 건강하지 않더라도 생산영역에서 일하지 않으면 굶어죽을 수밖에 없다. 덫인 것이다. 윤구병 선생님은 건강한 생산영역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도시는 건강하지 못한 생산영역이 건강한 생산영역보다 많다고 본다. 그리고 지금 건강한 생산영역 가운데 남아 있는 가장 중요한 영역이 농업이라고 한다. 농촌은 평화의 근거지이자 생명의 뿌리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제대로 된 정부라면, 아무리 민주화된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도시에 있는 젊은 사람들을 3분의 2에서 절반 정도는 시골로 내려 보낼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먹고 사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는 것이다. 70-80세 노인들이 밭머리에 엎드려 있는데 그분들 노동력 상실해버리는 데 10년도 안 걸립니다. 그러면 지금 거기에 대해서, 어떻게 젊은 사람들을 농촌으로 보낼 수 있느냐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준비해야 하거든요. 시간이 없어요. 그런데 물어보십시오. 누가 그런 준비를 하고 있는지? 없지요. 머리 굴리는 짓만 잘하면 먹고살 수 있다며, 제도교육이 전부 머리 굴리는 쪽으로만 가르치잖아요. 아이들을 8-10시간 딱딱한 걸상에 주저앉혀서 강의실에서 강시나 좀비로 만들고 있어요. (64쪽) 선생님은 지금처럼 한 사람이 땀 흘려서 열 사람, 스무 사람을 먹여 살려야 하는 구조로는 아무도 살아남을 수 없다고 단언한다. 하루 두세 시간만 머리 쓰고, 나머지는 몸 놀리고 손발 놀리는 시간으로 돌려야 한다고 한다. 그런 차원에서 중학교까지 문을 닫고 하방이라 해서 시골로 내쫒았던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지금 대한민국 대학에서 배우는 것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여긴다. 젊은이들이 산이나 들이나 바닷가에서 스스로 몸 놀리고 손발 놀려서 제 앞가림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들 대부분은 도시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건강한 생산영역의 확대 없이 우리가 이대로 지속 가능한 삶을 살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우리가 도시에서 이렇게 살기 시작한 것은 불과 200년도 안 된다. 그 전에는 전부 생체에너지에 의존해서 살았다. 늘 재생산되고 낭비 없는 에너지에 의해서, 사람의 힘이나 가축의 힘에 의해서 삶을 꾸려나갔다. 건강한 생산영역에서 대부분 살았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는 사실 자명하다. 문제는, 또, 실천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