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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마에서 나온 이슈북 두 번째다. 첫 번째는 유종일 교수의 「경제민주화가 희망이다」라는 책이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있어서의 실정과 괴상한 형태의 현재 한국의 정당체제, 신자유주의의 종말과 함께 대두된 경제민주화에 대한 실제적인 대안과 구체적 사례를 살펴 볼 수 있었다. 많지 않은 분량의 책이지만 양질의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라 생각했다. 두 번째 책은 지선스님과 손석춘 선생의 인터뷰를 엮은 「큰 무당 나와야 정치 살아난다」라는 책이다. 지선스님이라는 분을 처음 들어봤다. 언뜻 생각한 것은 참여정부 시절 천성산 터널 공사를 반대해 오랜 기간 단식한 스님이었다. 그런 분이 ‘6월 항쟁의 스님’이라니 TV에서 보던 것보다 나이가 많으시네 생각했다. 그런데 그 분은 지율스님이었다. 이분은 지선스님이다.
“국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입니다. 지금부터 방송을 시작하겠습니다. 지금 이 시각 장충체육관에서 선출되고 있는 노태우 민정당 대통령 후보는 국민의 이름으로 무효임을 선언합니다.” (p.57) 6월 항쟁의 그날, 서울 성공회 성당의 종루에 올라가 옥상의 대형 스피커로 방송을 했다. 당시 지선스님은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 상임대표 11명 중 한 명 이었다. 6월 항쟁의 시발점이 되고 이후 중심에 섰던 인물이었다. 87년, 87세대, 6.29항쟁,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등 들어온 얘기는 무척이나 많은데 그 중심에서 열심히 운동을 하고 아침에 성공회 종루에서 서울시민들에게 방송을 한 사람을 전혀 몰랐다는 것이 의아했다. 다른 책에 실릴 만도, TV에서 언급될 만도 한데 전혀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우리는 방명록같이 생긴 것에 돌아가면서 사인을 했어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 국가전복죄, 내란음모죄를 비롯해 우리가 여기서 나가면 사형 당할지도 모른다, 실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p.58) 서슬이 퍼렇던 박정희·전두환 독재시절 사람들은 혹시나 정권을 비판하거나 대통령을 비판하기만 해도 잡혀갔다. 몇 명이라도 모여 있으면 어김없이 감시를 받고 제지를 당했다. 광주는 더 했을 것이다. 그래서 당시 광주 시민들은 무등산에 많이 올랐다고 한다. 산에 오르며 뜻 맞는 사람들과 욕지거리도 내뱉고 술잔을 기울이며 실컷 비판도 하고 평소 하고 싶은 말을 많이 쏟아냈다고 한다. 당시 무등산의 한 사찰에서 주지로 있던 지선스님은 그런 광주시민들을 만나며 새로운 정치인식을 하게 된다. 정권에 붙어 조찬기도회나 하던 당시 종교계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불만은 상당했고 무등산에 오르던 시민들이 절간을 훼손하거나 한참 욕을 쏟아 붓고 가는 일도 허다했다고 한다. 그렇게 뛰어든 운동이 스님을 완전히 뒤흔들었다. 혼자서 수백 권의 사회서적을 독파하며 의식을 정립하고 다방면의 인사들과 교류하며 의식의 폭을 넓혔다.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도, 먹여 살릴 처자식 걱정을 해야 할 직장인도 아닌 성직자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 운동에 전념했다. ‘스님이 너무 나댄다.’는 안팎에서의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6월 항쟁 한복판에 있었고 정말 목숨을 내어놓고 운동을 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을 몰랐다는 것이 죄스러웠다. “지금도 나는 그때 청와대로 갔어야 했다고 봅니다. 뿌리를 뽑아버렸어야 해요.” (p.70) 6월 항쟁의 최고 정점이었던 박종철 노제 직후 국민운동본부 내의 이견으로 청와대 진출이 무산되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지선스님은 청와대까지 진출해 정권 심판운동으로 나아갔어야 한다고 후회한다. 수십 년이 지난 일이라 새삼 후회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일이기는 하지만 단 한 번도 잘못된 과거를 청산하지 못한 한국의 괴상망측한 현대사를 상기해볼 때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지선스님을 통해 생생한 6월 항쟁의 이야기를 전해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책읽기였다. 단지 학생으로 참여하거나 넥타이 부대로 참여하거나 멀리서 지켜본 입장이 아니라 당시의 운동을 대표하던 국민운동본부의 상임대표를 맡고 있는 분이라 책임감과 부채의식까지 전해진다. 국민들의 열망과 민중들의 소망과는 다른 방식으로 노태우가 6.29의 가장 큰 수혜자이자 시혜자가 되어 버렸다. 목숨을 걸고 민주주의를 위해 싸워 온 사람들이 느꼈을 허탈함은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정치를 하는 자들 입맛에 맞게 이리로 붙기도 하고 저리로 붙기도 하는 것이 민중과 국민들의 마음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경험 했다.
87년 이후 30년이 훌쩍 지난 지금 운동권, 나아가서 범 진보세력이 처한 위기에 대해서도 지선스님은 명쾌하게 진단한다. “민주당에 들어간 운동권들 보세요. 야당에 많이 들어갔잖아요. 대통령이나 그 비서들, 국회의원이나 그 보좌관으로 들어갔거든요. 자기들이 그 자리에서 일 해봐서 너무 잘 알아요. 그래서 어떻게 운동권을 대합니까? 싸가지 없이 무시해버려요. 그럼 운동권은 인격적으로 모멸당하니까 복수심이 싹트고, 그래서는 안 되는 겁니다. 집구석이 안 돼요.” (p.95) “학생운동은 청년운동에 소속되어야 하고 청년운동은 진보정당에 소속되어 가야 하는 건데, 우리는 그게 아니잖아요. 세상에 없는 거꾸로 하는 운동이에요. 지금 생각해보면 참 부끄러워요. 대부분 3-4년 싸우다가 이름이 난 의장이나 대표는 정치권으로 후루룩 날아가고, 그럼 또 죽기 살기로 새 의장 뽑아서 이름 알려지면 또 날아가 버리고, 이런 것들이 세계 운동사에 없어요.” (p.63) 나도 참 궁금했었다. 군사독재 시절 목숨을 걸어가며 운동을 한 사람들이 지난 수십 년 동안 정치판에 수도 없이 많이 진출했는데 정치가 발전하거나 국민들의 생활이 나아지지 않는 것. 그것이 궁금했다. 이해가 되지 않는 문제였다. 그 시절 그렇게 열심히 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모두 다 변절해 버린 것은 아닐 텐데, 최소한 여당이 아니라 야당에 투신한 운동권 인사들이 왜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기만 하면 그전까지 살아온 자신의 정체성은 잊은 채 바보가 되어버리는지 지선스님은 한마디로 정리한다. ‘나도 운동 열심히 해봐서 아는데 그것가지도 안돼~’라는 생각과 정치를 하기 위해 운동을 하는 뒤틀린 운동방식의 한계였다.
“조급성, 영웅주의 그리고 모험주의를 극복하지 못 해서 우리 운동이 지금 이 모양입니다.” (p.96) 최소한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이 자신이 몸담았던 운동권을 좀 더 챙기고 동지의식을 가지고 운동의 한계를 정의하고 토론하고 발전 방향을 모색하는 노력을 했어야 했다. 그리고 운동권은 어차피 뒤틀린 운동 방식이지만 정치권에 진출한 어제의 동지에 대해서 여전한 동지애를 가졌어야 했다. 단순히 정치에 투신했다고 변절자라느니, 배신자라느니, 전향했다느니 하며 몰아붙이는 것은 피차 도움 될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우리 운동권과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은 서로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서로를 물어뜯기만 했고 그 결과가 지금 진보정당과 운동권의 공동 궤멸의 위기라는 현실을 낳았다는 것이다. 이 부분을 읽으며 격하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다른 정치평론가나 작가들처럼 매끄럽게 표현을 하지는 못했지만 적확한 현실 인식이라 생각한다. 조급성, 영웅주의, 모험주의를 극복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이유라는 지적.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수십 년 동안 지난하고 고되게 운동을 이어오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그들만큼 느끼지는 못하지만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누군가 슈퍼맨처럼 등장해 악의 무리를 소탕하고 동지들을 구출하고 정의의 사회를 만드는 것을 꿈꿨을 것이다. 그런 꿈을 꿨던 사람들에게 ‘당신 운동을 한다면서 왜 그렇게 조급했습니까? 영웅주의에 빠져 있었습니까? 모험주의를 벗지 못했습니까? 그래서 지금 운동권과 진보진영이 요 모양 요 꼴 아닙니까? 예!?’ 라고 말할 수 없다. 한가운데 있었던 지선스님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이다.
“내가 생각한 것은 ‘정치는 무당’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전두환-노태우 일당을 전부 몰아내기 위해, 저 ‘귀신’들을 몰아내기 위해 우리가 무당이 되어 전 국민이 푸닥거리를 할 때만 저들이 물러갈 수 있다고 시를 썼어요." (p.13) ‘정치는 무당’이다. 라는 표현이 의미심장하다. 마을과 가문, 집안의 액운을 떨쳐내는 것만이 무당이 하는 굿의 주목적이 아니었다. 하나의 문화요, 소통의 장이었을 것이다. 함께 슬픔을 나누고 원통함을 공감하고 웃고 울며 푸닥거리 해내는 것이었다. 정치를 하는 사람들, 정치를 하려는 사람들은 모두 무당이 되어야 한다고 스님은 말한다. 대신해서 억울함을 풀어주고 소통하게 하고 또는 벌하기도 하는 무당이 되어야 한다고. 동의하고 공감한다. 지금 한국정치의 현실처럼 무관심과 혐오를 넘어서서 상식이 통하지 않는 정치는 무당은커녕 국민들의 짐만 될 뿐이다. 정치만 보면 더 스트레스 받고 더 화가 쌓이니 골이 깊어만 간다.
“원통하게 죽어간 용산 철거민들의 참사, 불법 민간인 사찰, 부정부패로 얼룩진 청와대, 제주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한미FTA, 4대강사업 등에 대해 박근혜가 우리 국민 대대수가 느끼는 분노를 전혀 알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p.39) 이 책은 지난 대선 전에 출간 되었다. 지선스님은 특정 후보를 지지하거나 비판하지 않는다. 오히려 오랜 시간 운동을 해 오고 온 몸을 던져 투신해 온 어른이자 선생으로써 국민들의 한과 아픔을 진정으로 달래줄 수 있는 무당이 되어주기를 소망한다. 대통령 선거는 끝나고 박근혜 당선인이 취임식을 앞두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염려하고 걱정하고 불안해하던 일들이 제발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이것은 진심이다. 이명박이 집권 초 내각 구성에서부터 미국산 소고기 수입에 대한 대응에까지 민심과는 완전히 대치된 국정 운영을 했기 때문에 국민적 저항에 직면했던 것을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 수십 년 동안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투신해 온 지선스님과 나와 같은 평범한 소시민이 박근혜 당선인에게 바라는 바는 비슷할 것이다. 아직은 미심쩍고 기대조차 되지 않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지만 5년을 그냥 흘려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제발 잘 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저건 ‘인간 말종’이에요. 저분은 솔직히 말해서 스님으로서 할 얘기는 아닌데 개짐승만도 못한 사람이에요.” (p.86) 지선스님이 험한 말을 하며 비판한 어떤 사람의 모습만은 답습하지 않았으면 한다. 첫머리에서도 말했지만 알마에서 나온 [이슈북] 정말 추천할 만한 시리즈다. 인터뷰를 엮은 형식이라 어렵지 않다. 특히 나처럼 한국의 현대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시리즈 중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 읽어보면 새로운 눈을 뜨게 될 것이다. 책이 두껍다고 다 좋은 책이 아니듯이 얇다고 다 가벼운 책이 아님을 [이슈북]을 통해 확인 할 수 있다. 관심 있는 분들 꼭 한 번 읽어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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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얼마 있으면 대선이다. 한 달이 조금 더 남았을 뿐이다. 한국정치사에서, 아니 이 사회에서 대선만큼 큰 이슈가 되는 행사는 없다. 물론 어느 사회나 앞으로 그 나라를 이끌고 갈 지도자를 뽑는다는 것이 큰 사건임에는 분명하지만, 우리의 경우는 그것이 보다 더 유별난 것 같다. 한 사람이 가진 권력이 그 어떤 권력보다도 크고, 또 그 사람의 역사와 사회에 대한 인식이 우리 앞날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 이것은 민주주의를 행하고 있다는 그 어느 국가들과도 극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지난 5년을 생각해보면 자명하다. 이러한 시대에 있어 우리에게 정치란 무엇일까? 언론인 손석춘이 종교계의 인사들을 상대로 그 해답을 구하고 있다. 우리사회에서 종교인의 사회적 발언은 예외 없이 큰 파장을 낳았다. 그것은 세속의 물질적인 것을 초월한 종교인이, 이 사회를 위해서 던지는 고언이었기에 그러했으리란 생각이다. 역사의 고비고비에서 우리는 많은 종교인들이 우리사회가 나가야 할 방향을 일러주었음을 알고 있다. 물론 모든 종교인이 다 그러했고, 그들이 일러준 방향이 모두 사회를 위한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흔히 불교는 호국불교라 하여 정권의 성격을 불문하고 그 어느 종교보다도 협조적이었다. 타종교 역시 전반적으로 정권에 협조적이었지만, 그래도 종교 안의 일부 선각자들이 인권운동이나 소수 민중들의 권익을 신장하는 운동을 펼치고 있었지만, 불교는 그러한 운동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손석춘이 이 책에서 인터뷰한 지선스님도 그것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1987년 6월항쟁 당시, 지선스님은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 상임공동의장이란 직책을 맡고 있었다. 그 이후 스님은 한국정치 현실과 미래에 대해 뼈아프고 통찰력 있는 발언들을 거침없이 해왔다. 당초 지선스님은 군사정권 시절, 새마을운동의 모범스님이었고, 제주도 관음사 주지시절에는 박정희나 전두환이 제주도에 내려올 때마다 지역유지로 만찬에 참여했는가 하면, 그들을 위해 강연을 다녔다고 한다. 그러다 1987년 10월 군사정권에 불교계가 쑥대밭이 되는 법난을 겪으면서, 그리고 광주 무등산에서 시민들에게 욕설을 들으면서 광주와 이 사회의 현실을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현실을 인식한 스님은 머뭇거리지 않았다. 곧이어 현실에 대한 강연과 민중불교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그러한 결과가 국민운동본부 상임대표로 나타났고, 역사의 한 장면을 몸으로 부딪쳐 갔다. 스님은 정치는 무당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에게는 민족적인 언어, 단어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무당이라면 샤머니즘이나 하찮은 사람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무속은 우리의 역사와 함께 서민들의 삶을 보듬어 온 생활 그 자체이었고, 그런 무속에서 핵심사상은 해원상생이라고 말한다. 해원은 산사람이나 죽은 사람이나 가슴에 묻혀있는 한을 풀어주는 것이고, 상생이란 말 그대로 조화를 이루며 사는 것이다. 스님은 반드시 해원을 해야 상생이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일부 정치인들이, 심지어 대선에 나선사람들마저도,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앞으로의 미래를 생각하자고 말하는데, 이것은 해원은 하지 않고 상생만 하자는 것이라며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일축한다. 군화발로 짓밟고, 사람을 때려죽여 가슴에 켜켜이 맺혀있는 한을 무시하고, 지난 일은 없던 일로 하자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반문한다. 그것이 진심 어린 사과가 되었던, 반성이 되었던 맺힌 한이 풀리면 상생은 저절로 이루어진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정치인은 무당이 되어야 하고, 큰 무당이 나와야 해원상생의 정치가 가능하다고 스님은 말한다. 해원상생의 목적은 이기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으로 옳으면 싸우러 가는 것 이라고 한다. 그는 지금의 정당이나, 정치인들에게 따끔한 일침을 가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본질에 치우치면 현상을 놓쳐버리고, 현상에 치우치면 본질을 놓치게 된다고 한다. 따라서 정치란 본질과 현상을 동시에 보는 두 눈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스스로가 진보정당을 지지한다고 말하는 스님은, 진보정당이 국회의원 한,두명 되니까, 그것도 여야의 실책으로 인해서이지만, 자기들이 엄청난 지지를 받는 것으로 착각한다고 말한다. 자기수행, 자기변화가 먼저 이루어져야 하는 대승정신이 있어야 함에도 그러한 것들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는다. 또한 사회운동은 출세의 장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말한다. 운동하다 이름이 알려지면 정치권으로 가고, 거기서 기존의 정치판에 용해되고 마는 것은 영웅주의, 모험주의, 조급주의가 만들어 낸 폐단이라고 말한다. 지금의 운동권이, 시민사회 운동이 이 모양 인 것이, 다 그 영향이라고 스님은 진단한다. 지선스님이 바라는 세상은 원대하다. 민주주의가 들꽃처럼 만발하고, 노동자, 농민을 비롯한 모든 시민들이 진정한 주인이 되고, 그리고 남북이 하나되는 세상을 꿈꾼다. 스님의 꿈이, 신념이 가슴에 와 닿는 것은 아마 스님의 실천적 삶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헌데 해원을 이루고, 상생을 할 수 있는 정치인은 누가 될 것인가? 한달 앞으로 다가온 대선을 어떻게 보아야 할지를 알려주는 지금의 가장 절실한 화두가 아닐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