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부극이라고 해도 그 다루는 시기는 천차만별이며 어느 시기를 다루냐에 따라 메시지도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이 작은 본래 극장에 걸렸던 게 아니며 TV용으로 제작되었으나 한국에서는 정말 개봉이 된 사정이 있었는지 이처럼 예스에 페이지가 생성되어 있다. 보다시피 제목은 '추적자'인데, 2016년 1월 7일 내가 리뷰한 <더 스캐프헌터스>부터해서 이런 제목이 한국 혹은 일본에서 붙은 예는 일일이 세기가 어려울 정도다. 저 시드니 폴락 감독 작의 경우, '버트 랭커스터의 추적자'라고 한국에선 올드팬들에게 널리 알려졌는데, 일본에서는 정작 이 제목이 붙지 않았으며, '인디언 사냥'이란 영 엉뚱한 타이틀이 걸렸을 뿐이다. 여튼 이 작은 현재 '미키 루크의 추적자'란 제목으로 통용된다. 이 작 원제인 'the last outlaw' 역시, 같은 제목을 단 작품은 헤아리기도 어려울 만큼 흔한 어구이겠다.
며칠 전 리뷰에서 잠시 언급('보다 잤음')한 1968년작 <디 알라모>의 경우 (역사적 배경을 아는 이들에게는 당연하지만) 남북전쟁보다 훨씬 이전 시점이 무대이다. 캐릭터 트래비스 대령(실존 인물이기도 함)의 복장(군복)만 봐도 알 수 있겠는데, 현지의 엘리트가 저처럼 요란스런 치장을 하고 군을 통솔하는 게 다 예전 남부의 귀족적 분위기를 반영해서이다. 또 생각을 해 볼 게, 텍사스라는 주가 분명히 남부(Confederate) 측에 가담한 후 벌어진 게 아메리칸 시빌 워 아니겠는가. 그럼 산타아나의 폭정에 항거(일단 그렇다 치고)했다는 그 영화의 사연이 남북 전쟁보다 한참 앞선다는 건 논리적으로 너무도 당연하다.
이 작은 남북전쟁이 끝나고도 다시 수 년 후, 전쟁 와중에서 북부 양키들에게 잔혹한 보복과 억울한 피해를 입은 남부인들이 어떻게 타락하여 반체제, 반사회적 범죄자로 준동했는지를 다룬 내용이다. 그래서 극 내내 미키 루크가 이름이 아닌 계급으로 불리는 건데, 그들에게는 남북전쟁이 결코 져서는 안 되었을, 되돌려야 마땅할 아픈 과거로 영원히 남았기 때문이다. 당연한 소리지만 이런 패잔병 남부인들의 아픈 상처와 몸부림을 다룬 영화는 너무도 많으며, 무법자 제시 제임스라든가 영거 브라더스 일당을 소재로 삼은 숱한 작품들이 다 이 무렵을 배경으로 한다.
원한이 사무쳐도 분리독립을 대뜸 할 게 아니라, 이처럼 다른 방향으로 감정의 해소를 시도하는 게 성숙한 반응이며, 스코틀랜드의 경우 무작정 집을 뛰쳐나가겠다는 게 아니라 석유라는 기댈 언덕도 염두에 두었고, 영국이 EU를 탈퇴하면 그때가서 영국과 척을 질 다른 대륙 국가들과 손을 잡는다(수백 년 전부터 이 고장이 즐겨 쓰던 외교적 술책)는 이중삼중의 복안이 마련된 후에야 벌이는, 사려 깊은 행보이자 책략이었다. 반면 저 남부 유럽의 피부 거무스름한 이들은, 무작정 저지르고 보자는 식의 지극히 감정적인 반응일 뿐이고.
미키 루크는 이 무렵에 이런 모습을 보인 건 그 나름으로는 연기 변신에 속하는 결단이다. 이 영화 찍기 불과 6년 전에 <엔젤 하트>에서 어떤 분위기였는지 떠올린다면... 우리는 예컨대 <패션 플레이>라든가('원초적 본능 2015'라는 말도안되는 제목이 붙었으며, 2015년 11월 29일에 내가 쓴 리뷰도 있다), <아이언맨 2>에서 머리를 덥수룩하게 기른 모습이 딱 그 즈음(즉 2000년대 후반, 2010년대 초반)부터인가 짐작하는데, 적어도 이 1993년에 벌써 이런 망가진 비주얼이 그의 기믹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는 건 분명히 확인된다.
부상당하고 내내 해롱거리는 저 유스티스(이름도 성격도 착한) 캐릭터처럼 사람은 물리적 상태가 현저히 악화되면 올바른 사고가 힘들어지기 마련이다. 분자 단위는커녕 질소가 어는 온도(아휴 아찔해), 아니아니 저 타이가 지대의 한기, 필요 없고 철원 양구 등지에만 가도 사람은 그 추위에 혼이 나갈 지경이다. (이 작의 서부 황야에서의 열사도 사람 잡는 건 마찬가지) 어제 리뷰에서 그 말을 한 건, 어떤 수트의 도움으로 제약이 극복되거나 했을 시(SF 속 아닌가), 과연 아원자 단위의 물리계에서 기존 운동 법칙이야 통하지 않는다 해도, 정신의 작동까지 그 한계에 들지는 여전히 미지의 영역에 남아 있다는 뜻이었다. 하기야 안 될 것도 없어 보이는 게, 이렇게까지나 망가졌던 미키 루크도 버젓이 놀라운 정신력(!!)으로 재기에 성공했지 않은가. 그런 뜻에서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안겨 주는 반면교사 노릇을 하는 좋은 영화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