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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고 싶은 행복해지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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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했다. 책을 읽고 있던 내내 .. 그리고 다 읽은 지금 .. 최근 감정적으로 어떤 책을 읽고 감동해본적이 없었다. 바쁘게 시간에 쫒기며 읽었던 책들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고, 어떤 논리와 지식이 담겨 있는지 알기위해서 읽었던 책들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많은 신앙서적들은 나에게 지식과 논리를 주었다. 그러나 이 책은 나를 행복하게 했다. 이 책은 내가 잊어버렸던, 알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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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했다. 책을 읽고 있던 내내 .. 그리고 다 읽은 지금 .. 최근 감정적으로 어떤 책을 읽고 감동해본적이 없었다. 바쁘게 시간에 쫒기며 읽었던 책들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고, 어떤 논리와 지식이 담겨 있는지 알기위해서 읽었던 책들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많은 신앙서적들은 나에게 지식과 논리를 주었다. 그러나 이 책은 나를 행복하게 했다. 이 책은 내가 잊어버렸던, 알고 있지만 계속 생각하지 않으면 쉽게 잊혀져버리는 ‘사랑받는 자’의 정체성을 생각나게 했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안에서 내가 그분의 자녀임을 다시금 상기시켜 주었다. 내 존재의 이유가 율법이 아닌 은혜임을 기억하게 해 주었고, 하나님을 향해 내가 마땅히 불러야 할 호칭이 ‘아바’임을 인정하게 만들었다. 시종일관 미소가 생겼고, 마음이 즐거웠었고, 행복했었다. 그리고 그 행복이 미소가 되어 책의 마지막장을 아쉬움으로 넘긴 후 지금까지도 미소 짓게 만든다. 브래넌 매닝이라는 생소한 작가에 의해서 쓰여진 이 책은 인간을 ‘거짓자아’와 ‘참 자아’로 구분한다. '거짓자아'에 빠져 있고 또한 지배를 받는 이들은 계속적으로 거짓자아를 보호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를 가장하게 되고 그러한 가장을 통해서 그 내면에 진정한 자아를 드러내지도 못하고 그 ‘참 자아’를 가지고 온전히 살 수도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고 하고 있다. 그리고 저자는 이러한 거짓자아의 강력한 힘이 가장 많이 드러나는 곳이 하나님과의 관계의 자리라고 말하고 있다. 책의 전반부에서 저자는 따뜻한 목소리로 그러나 단호하게 ‘거짓자아’의 실체를 드러낸다. 어렸을 적 상처였건, 거부였건 이러한 거짓자아를 만들어낸 후 그 ‘거짓자아’ 뒤에 숨은 인간은 결코 실재하시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거짓자아 뒤에 숨어 있던 ‘참 자아’로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특별한 은혜로 누리게 되는 ‘아바의 자녀’로서의 삶을 이야기 하고 있다. ‘아바의 자녀’의 정체성은 ‘하나님께 사랑받는 자’이다. 예수님께서 죄인들과 함께 죄인의 대열에 서게 되었을 때 들려왔던 그 소리, 고통 속에서 십자가를 결정한 순간 들려 왔던 그 소리, 그 소리 속에서 예수님마저도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시켜주시는 하나님의 따뜻한 목소리를 들으셨다. 그리고 오늘 우리 역시 이 ‘하나님께 사랑 받는 자’라는 목소리에서 참 자아의 유일한 정체성을 확인 받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책의 후반부는 ‘아바의 자녀’로서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할 것과 해야 할 것을 이야기 하고 있다. 은혜로 받은 이 놀라운 정체성이 확인되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거짓자아’의 필요를 채우기 위한 행동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인 ‘자녀삼음’을 경험한 자로서의 마땅한 ‘행함’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행함의 모델은 ‘그리스도’였다. 성경은 성경에서 등장한 그리스도의 인격성과 그 사랑의 행함을 하나하나 풀어낸다. 그분의 신성이 온전한 인성을 통해서 드러났고, 그분의 삶 속에 드러나 솔직함과 따스함, 용기 등에서 ‘아바의 자녀’를 확신하는 이의 행동의 본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 모든 행동의 동기가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함”이었다. 저자는 말미에 이러한 우리의 행동의 변화에 대한 촉구가 또 다른 율법이 될 위협에 대해 말하며, 진정한 사랑의 동기, 즉 ‘아바의 자녀’라는 정체성 안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날 일이라 말하고 있다. 저자의 글에서 깊이를 느낀다. 인간 내면에 대한 심리학적인 접근에서 그가 인간에 대해 얼마나 깊이 있는 성찰을 했는지 볼 수 있었고, 그가 한 수많은 영적인 모험들-천주교의 신부로서 묵상가로서의 삶- 을 통해 얻은 하나님에 대한 성찰을 읽을 수 있었다. 또한 그가 이 작은 책에 150개가 넘는 각주를 통해서 얼마나 많은 지적인 수고 후에 쓰여졌는지 느끼게 되고, 마지막 장에 있는 그의 약력에서, 그가 알고 있는 것을 실천하기 위해 얼마나 치열한 삶을 살았었는지에 대해 보게 된다. 그 모든 것이 저자의 글에 더한 깊이를 더해준다.. 살아본 것을 이야기 하는 자의 강함이 책 안에 베여 있다. 여기저기에 있는 우물에서 길어낸 물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땀 흘려 판 우물에서 얻은 생수처럼 맑고 소중한 이야기들이 이 책 안에 가득 들어 있다. 단순하게 그냥 한번에 마실 수 없는 즐거움이 가득한 그런 생명력이 한 구절 한 구절 안에 들어 있었다. 수많은 책장에 밑줄을 그어야 했고, 한 문장 앞에서 멈춰서 한참을 있어야 할 만큼 각각의 문장에 땀과 묵상이 베여 있었다. 책 읽기가 행복했던 그래서 즐거웠고 감사했던 시간이었다. 세상은 여전히 계속해서 우리로 ‘거짓자아’를 선택하고, 보이는 삶을 위해 살라고 요청한다. 성경은 한번도 그것을 위해 ‘참 자아’를 가두어 놓으라고 한 적이 없다. 무언가 우리가 그렇게 보이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진정으로 그런 존재가 되어 그렇게 되기를 성경은 원했고, 예수님께서는 원하셨다. 많은 사람이 함께 읽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가운데 다시 한번 하나님의 그 대책 없는 ‘바보 같은’ 사랑을 경험하게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그 사랑이, 그 정체성이 오늘 나를 나로 살 수 있게 해 주는 것을 다 경험할 수 있기를 소원한다.

[인상깊은구절]
예수님의 삶에 일어난 일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우리 삶에도 일어날 것이다. 상처는 불가피하다. 몸뿐 아니라 영혼도 상처를 입어야 한다. 상처 없는 심신을 당연한 정상 상태로 본다면 그것은 환상이다. 실패와 파선과 비탄에서 자신을 보호하려 방탄조끼를 입는 이들은 사랑이 무엇인지 절대 모른다. 상처 없는 삶은 랍비(예수님)와 조금도 닮은 구석이 없다.
l******s 2004.02.27.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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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아빠의 음성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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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아빠의 음성을 찾아서 사춘기를 지나며 아버지를 부르는 호칭에 변화가 있었다. ‘아빠’라는 말 대신 ‘아버지’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겉으로는 ‘아버지’란 호칭을 사용할 만큼 내가 성장했다는 표식이라 여겼지만, 사실은 ‘아버지’라는 호칭만큼 아버지를 내게서 구별하고 한층 떼어내려는 내면의 시위였다. ‘아버지’는 ‘아빠’보다 객관적이고 공식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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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아빠의 음성을 찾아서


사춘기를 지나며 아버지를 부르는 호칭에 변화가 있었다. ‘아빠’라는 말 대신 ‘아버지’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겉으로는 ‘아버지’란 호칭을 사용할 만큼 내가 성장했다는 표식이라 여겼지만, 사실은 ‘아버지’라는 호칭만큼 아버지를 내게서 구별하고 한층 떼어내려는 내면의 시위였다. ‘아버지’는 ‘아빠’보다 객관적이고 공식적이며 정이 덜 담겨 있었다. 나는 아버지로부터 독립하고 싶었고 자유하고 싶었다. 아버지는 모르셨겠지만 ‘아버지’란 호칭은 사춘기 시절 내 편에서의 독립선언이었다.


‘아빠’와 ‘아버지’ 사이의 간극은 생각보다 컸다. 그리고 일단 건너고 나니 돌아갈 수가 없었다. 사춘기 나의 독립선언 이후 나와 아버지의 관계는 ‘아버지’라는 호칭만큼 점점 더 공식적이고 소원해져 갔다. 돌이켜보건대 내가 ‘아빠’라 부르던 시절에는 아빠와 아들 간의 애틋한 추억이 남아있다. 허나 ‘아버지’로 부르기 시작한 이후로는 ‘아빠’ 시절과 같은 정겹고 즐거운 기억은 없다. 처음 내가 자유를 찾기 위해 사용한 ‘아버지’라는 호칭은 내 인생에서 ‘아빠’를 떠나보내는 신호탄이었던 셈이다. 이후 ‘아빠’라는 단어를 사용할 일은 더 이상 없었다. ‘아빠’라는 단어가 내게서 사라진 것이다. 오직 ‘아버지’만 있었고, 그 ‘아버지’는 ‘아빠’로 되돌아갈 수 없었다. 나는 아빠를, 아빠의 음성을 잃었다.


‘아빠’는 ‘엄마’와 마찬가지로 아이의 언어다. 세 살 먹은 딸아이가 내게 요청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너무 당당하단 생각이 든다. 내 딸은 너무도 당당하게 아빠인 내게 청하고 칭얼대고 얘기한다. 아빠 놀자, 아빠 그림 그리자, 아빠 아이스크림 사줘, 아빠 밖에 나가자... 부모 말을 잘 듣는 것도 아니요, 돈을 벌어오는 것도 아니고, 무슨 생산적일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녀석은 아빠에게 천연덕스럽고 당당하게, 때로는 뻔뻔하게 다가온다. 내가 아빠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에게 ‘아빠’는 어떤 상황에서도 맘 편하게 부르고 기댈 수 있는 이름이다. 나도 그런 딸아이가 그저 좋다.


예수께서 보여주신 하나님에 관한 놀라운 진리가 있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빠’라는 사실이다. 어쩌면 우리가 너무 많이 들어서 다 알고 있는 명제인지 모른다.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말로 알고 있는가는 확인해 볼 일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바’라는 진리는 머리로 백번 인정한다고 무슨 유익이 되는가. 내면 깊은 곳에서 인정하고 매일의 삶에서 누리지 못하면 아무 소용없는 지식이다. 이 책의 저자 브레넌 매닝이 전달하는 것은 머리로 이해하고 정리할 수 있는 논리적 지식이 아니다. 우리 내면의 모습, 그 깊은 곳에서 매순간 우리가 경험하는 실재 삶과 확신을 다룬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바’이심을 ‘가슴으로’ 알고 있는가 점검해 준다.


그 자신이 성공을 향해 달려가던 젊은이에서 예수의 사랑을 경험하고 사제의 길에 들어섰다가 알콜 중독이란 처절한 실패를 겪고 그 역경을 이겨낸 사람으로서, 브레넌 매닝은 이 책에서 우리의 정체성이 사랑받는 자, 곧 아바의 자녀임을 보여준다. 절대 무차별한 사랑과 긍휼을 지니신 분, 우리 망가진 모습 그대로의 우리 자신을 받으시는 분, 우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 율법주의자가 되거나 종교인이 될 필요가 없다. 자신을 고쳐 보려 몸부림치거나 하나님을 감동시키려 안간힘을 쓰다 지쳐 쓰러질 이유도 없다. 자기 모습에 실망하여 죄책감의 그늘에 머물 까닭이 없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그분이 무한한 사랑으로 우리의 ‘아바’가 되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존재 깊은 곳에서부터 그 사실을 알기를 애타게 원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좋으신 ‘아빠’다.


진정한 ‘아바의 자녀’였던 예수님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받고 기뻐하시는 ‘아바의 자녀’다. 다만, 너무 오랜 동안 우리가 깨닫지 못하고 누리지 못한 이름이다. 매닝은 ‘아바의 자녀’라는 정체성이 적용되어야 할 우리 삶의 영역들을 짚어간다. 거짓 자아를 버리고 숨어 있던 곳에서 나와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가장 자기답고 자연스런 감정을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간다. 아바의 긍휼을 닮고 열정을 회복한다. 온전한 한 인간이 된다. 아바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그분의 무한한 사랑과 긍휼을 받아들이고 그분 앞에서 어린아이가 됨을 뜻한다. 그분의 사랑 안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것이다. 아빠가 보고 있는 동안 어디서도 당당하고 자연스런 내 딸아이처럼, 아바이신 하나님 앞에 나도 그럴 수 있겠다. 그분은 우리의 아바, 우리는 아바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있을 때는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가족과 연인과 친구와 보내는 시간이 그렇다. 시간은 사라지고 사랑과 즐거움과 열정만 남는다. [아바의 자녀]는 책 전체가 저자와 하나님과의 사랑어린 관계에 대한 감미롭고 열정적인 고백과도 같다. 저자는 설명하고 처방하려 들기보단, 고백하고 자기 삶을 통해 보여준다. 그의 고백을 듣다보면 어느덧 그의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 그가 고백하는 아바의 넓은 품에 이르게 된다. 거기서 오랜 동안 잊었던 아바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저자는 권한다. 매일 매순간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의 약속과 그의 심장박동에 귀를 기울이고, 오늘의 일상 속에서 하늘 아버지의 은혜와 섭리를 발견하라고. 브레넌 매닝은 우리가 잃어버린 아바의 음성을 우리 가슴에 전해주는 전령이다.


* "기독교 출판 소식" 9월호에 기고한 서평입니다.

 

a******d 2004.09.10.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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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의 자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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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경주에서 조금이라도 어려움이 있다면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책이었다.   '거짓자아'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얘기가 주된 내용이었다. 읽고 싶은 책은 많고, 시간은 없고... 그래서 이책 저책을 앞부분만 읽어가고 끝을 내지 못하고 있으나 이 책은 손을 뗄 수 없어서 쭉 읽어버렸다.내가 생각하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와, 요즘 고민하고 있는 또는 힘들어하는 부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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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경주에서 조금이라도 어려움이 있다면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책이었다.

 

'거짓자아'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얘기가 주된 내용이었다. 읽고 싶은 책은 많고, 시간은 없고... 그래서 이책 저책을 앞부분만 읽어가고 끝을 내지 못하고 있으나 이 책은 손을 뗄 수 없어서 쭉 읽어버렸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와, 요즘 고민하고 있는 또는 힘들어하는 부분들이 다 담겨있었다.

 

포장된 모습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힘겨움과...
머리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겠으나, 가슴을 치는 하나님의 사랑 또는 임재가 느껴지지 않음에 대한 고민 말이다.


그리고 '하나님 사랑합니다'라는 내 외침이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함을 스스로가 더 잘 아는 자괴감 말이다.
성령의 열매들이 은사로 우러나는 것들이 아니라, 억지로 그러한 열매들에 매달려 의지적으로 행하려는데서 오는 피곤한 일상들 말이다.

 

책의 전반부에서 저자는 거짓자아의 실상을 보여준다. 거짓자아에 숨은 인간은 결코 실재하시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고 한다.


나를 돌아본다. 어린시절 난... 상처에 대한 두려움과 보호막으로 거짓자아를 만들어냈고,
성인이 되고 나서는 상호 경쟁적이고 가학적인 사회에서 나의 유약함을 가리고자 또 거짓자아를 형성해 갔다.
거기에다가 믿는 사람은 어떤 모습이어야 한다는 율법적 사고로 또다른 거짓자아를 덧붙여 갔다.
그리고 심장은 차가워졌으며, 참자아를 드러내기 보다는 보여지는 거짓자아의 모습으로 살아가는데 안전함을 느꼈고 익숙해졌다. 그러나 익숙해 졌을 뿐... 편하지는 않았다.

 

책의 후반부에서 저자는 '아바의 자녀’의 정체성은 '하나님께 사랑받는 자’임을 보여준다.
누구나 갈구하는 진정한 사랑이란 그 '아바의 자녀'라는 정체성 안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게게 됨을 말해준다.
예수님의 삶 속에 드러나는 솔직함, 따스함, 용기, 사랑들이 율법적인 요건들이 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우러남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설명 말이다.

 

저자는 '하나님께 사랑받는 자'라는 정체성을 깨닫고자 한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조용히 하나님과만 대면하는 시간을 가지라고 한다.
사실... 요즘 왜 갑자기 하나님의 사랑을 못느끼겠다고 투정하는 상태가 되었는가 생각해 보았었다. 부족한건 사실이지만... 기도를 안하는 것도, 말씀을 읽지 않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어떤 외국사람이 그랬다. 한국 사람들은 바쁘지 않으면 안되는 듯한 삶을 살아간다고... 나도 그렇다. 여유있고 게으른 일상이지만, 흘러가는 시간의 아까움은 늘 생각한다.
그래서 기도도, 말씀읽기도 모두 바쁜 일상가운데 흘러가는 프로그램이었지, 내게 참 자아를 들여다보고 하나님과 조용히 만나는 시간은 거의 없는게 사실이었다.

 

사실... non-christian들은 세속주의가 만들어낸 거짓자아속에서만 살아가는 반면, christian들은 이중의 거짓자아를 지니기가 쉽다. 율법이 만들어낸 거짓자아와, 보여지는 모습으로 살아가도록 하는 세속주의가 만들어낸 거짓자아 말이다.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믿는 사람들을 통해 참자아를 대면하는 것이 더 어려웠다.
christian들과의 피상적인 관계에서는 율법으로 얼룩진 거짓자아를 대면하는게 보편적이었고, 좀 더 깊은 관계에서는 거짓자아와 참자아 사이에서 왔다갔다하는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삶과 생각이 일관성 없는 혼란 그 자체였다. 내 모습 또한 그러해서 늘 불만족스럽고 괴로웠었나보다. 사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서는 참자아가 어떤건지도 모를 일이었으니 비교하면 안되겠지만, 그들에게 최소한 왔다갔다 하는 모습은 없었다.

 

참자아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건 예수님의 모습에 정말 가까운 훌륭한 크리스천이 아니고는 힘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참자아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대면할 수 있을 정도의 깊은 관계는 가족 뿐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부활의 현재를 믿는 진정한 christian이라면 용기있게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실재하시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아바의 자녀'로서 '하나님께 사랑받는 자'로서의 행복을 자유롭게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변화에 대한 촉구가 또다른 율법이 될 것에 대해 저자는 경계한다. 예수님의 부활의 현재를 고백할 용기와, 예수님과 조용히 만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하나임께 사랑받는 자'로서 그리고 진정한 사랑을 경험하는 자로서 살아갈 수 밖에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

 

책 전체가 깨달음이었고, 책을 읽는 시간 내내가 기도의 시간이었다.

n*****h 2007.04.0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