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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모든 음식은 어디에서 오는가? 과연 이 답은 무얼까? 논, 밭으로부터, 농부로부터, 종자로부터, 과거로부터. 우리의 음식은 어디에서 오는가? 전세계로부터, 우리의 음식이 있는 마트, 과일, 채소, 수산물의 평균이동거리가 6천km라니, 가장 세계화가 잘 된 곳이 마트라니, 하지만 화려한 외향(색깔)만큼 다양한 것 같이 보이는 이면에 철저히 상업적인 재배 방식을 따르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작물은 대략 20개는 될까? 우리가 먹고 있는 것들은 얼마다 될까? 가끔 재래시장에 가거나, 시골장을 우연히 들르면, 그래도 나물이며 지역특산품 같은 것들이 있다. 현대는 상실의 시대이다. 우리 인간들이 많은 것들을 삼켜버리고, 전멸시킨다. 우리를 위한 다는 명목으로. 하지만 이것은 우리에게 부메랑으로 돌아 올 것이다. 인간만을 위한 자연, 지구는 없다. 이 책은 바릴로프의 전기에 가깝다. 그의 일생 동안의 삶에서 연구, 그가 간 길들을 따라 저자가 일부를 다시 여행하면서, 그의 기록과 지금의 상황을 비교한 글이다. 그 속의 사람들 ‘굶주림 속에서 씨앗을 지킨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들이었을 것이다. 이 책에서 언급하는 것 중에서 가장 주목해 봐야 할 것은 역시 ‘작물 다양성’이다. 우리의 생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인인데, 그렇게 큰 관심을 갖지 못하는 것은 자연의 다양성에 파묻혀 버리는 것이 소위 요즘 자연주의자들의 문제인지도. 작물은 재배하지 않으면, 급속도로 사라진다. 물론 작물은 자연의 일부이며, 우리에게 더 가까운 자연의 산물이다. 지금 우리가 먹고 있는 것은 오랜 세월 농부와 자연의 선물이다. 최근에 생명공학을 이용해 새로운 품종을 개발할 수 있는 것은 오랜 세월 농부들이 선발하고 재배한 다양한 종자가 미래의 작물을 개량하기 위한 주요 원천이며 유전자 풀이다. 바릴로프가 다닌 오지에는 다양성의 보존, 지리적 장벽으로 고립된 농업환경에서 분화되어 비교적 잘 보존되고 있다. 점점 사라지는 현장연구, 점점 현장과 격리된 실험실에서 연구하는 연구자만이 늘어나고 있고, 농업현장과 자연(오지)에서 일하는 것은 소위 3D업종으로 전락하고 있다. 농업 또한 점차 힘든 일이라는 인식과 농부라는 직업의 가치는 점점 노동자로 전락한다. 현대 농업, 보급종의 함정은 무엇보다 많은 비료 등 석유에 의지해야 많은 수확을 거둔다. 이것은 절대적으로 규모의 경제학에 의존하는 농업의 모습이다. 이에 대한 대안은 지역종, 그 지역에서 오랜 세월 적응하고 살아남은 강인하면서도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종들이다. 변하는 지구, 기후의 역습 온난화와 기후변화는 작물의 생존에도 위험을 가한다. 인간이라는 동반자가 있어 다른 자연의 생물보다는 유리한 편이지만, 점점 살아가기가 힘들어진다. 인간은 너무나 이익만을 추구하기에, 다양성은 사라진다. 그러기에 농부들의 다양한 작물품종이 더욱 중요 유전자자원(원천)이 된다. 에티오피아, 가난과 굶주림, 전쟁으로 힘들어 하는 땅, 이곳에서도 농부들은 묵묵히 자신들의 종자를 지켜오고 있었다. 어쩌면 인류는 이들에게 큰 도움을 받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지역에 존재했던 인간의 문화가 작물을 길들여 왔던 것이다. 흔히 우리가 마시는 커피도 이곳에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또 밀과 테프 등도 있다. 레바논, 이스라엘과 전쟁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곳, 이곳의 곡창지대였다니, 좀 어처구니 없었다.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농업이 인간에 의한 전쟁으로 파괴되고 있다. 오아시스, 사막의 자연의 보고는 관광이라는 거대한 상품에 밀려 점점 사라져 간다. 늘어나는 호텔과 관광객 그리고 물 소비로 오아시스는 말라간다. 카자흐스탄의 사과나무, 조정생태학, 아메리카의 재발견, 미국의 사막의 식물들(가뭄에 대한 적응력을 가진 식물들), 멕시코의 옥수수와 데오신테 등 사라져버린 씨앗들, 이것들이 사라지면, 인류의 희망도 하나씩 사라져 가는 것 이리라. 아마존, 자연과 공존하는 원주민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생태계, 이것이 인간의 나아갈 바가 아닐까? 하지만, 개발이라는 인간의 탐욕으로 서서히 무너져가고 있다. 인간에 의해 파괴되는 인간의 미래이다. 전세계적으로 인류의 주식인 밀과 벼 등 작물의 재배종이 10여가지 밖에 되지 않고, 육종이나 유전자 조작으로 품종을 개량하는 방법이 투입과 산출이라는 간단한 등식에 의존하기에 항상 위험이 내포되어있다. 자연에는 어떤 사건들이 있을 지 모른다. 그의 이런 노력도 정치 앞에서는 무력해졌다. 희생양이 필요한 정치에서, 실패한 농업정책의 책임을 모두 그에게 부여한다. 하지만, 그가 걸어왔던 길, 그의 집념과 노력과 그리고 수많은 종자들은 그의 삶을 말해준다. 그리고 그가 이루어 냈던 것들은,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희생으로 살아 남았다. 이들이 있었기에, 우리의 생명의 양식이 존재하고, 더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된다. 인류의 식량은 작물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의 종자들이 점점 사라져 가는 시간에 작물의 다양성을 일군 과거의 농부와 현재의 농부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점점 다국적 기업의 기업자산으로 전락하는 종자, 하지만 그들이 만든 것은 아니다. 과거의 노력을 도둑적 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종자는 인류의 자산이고, 이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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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독일군이 옛 소련 레닌그라드로 접근하자 스탈린은 에르미타시 박물관에 소장된 200만 점의 미술품들을 후방으로 옮기는 데 주력했다. 그러나 독일군이 노린 것은 에르미타시 박물관이 아니라 다른 박물관이었다. 바로 종자연구소였다. 종자연구소에는 러시아의 세계적인 식물학자 니콜라이 이바노비치 바빌로프(1887~1943)가 1894년부터 수집한 38만 개가 넘는 발아 가능한 씨앗과 뿌리, 열매가 보관돼 있었다. 소련을 점령해 게르만족의 ‘레벤스라움(Lebensraum·생활권)’을 확보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던 히틀러는 유전학에 관심이 많았다. 게르만족의 생활권을 유지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식량을 비롯한 생태 자료였다. 레닌그라드는 900일의 포위에도 항전을 포기하지 않았고 종자연구소도 보존됐다.
바빌로프는 1920년대부터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각 지역의 풍토에 적응한 식물들의 씨앗을 수집했다. 그는 파미르 고원, 남미의 열대우림, 사막과 고원지대까지 샅샅이 조사하면서 각 지역에서 자라는 생물들과 음식 문화를 조사했다. 그의 발길은 1920년대에 식민지 조선까지 닿았다. 바빌로프의 자료에는 한국의 인삼과 콩에 관한 언급도 담겨 있다. 또한 수분이 없는 모래언덕에서 자급자족하며 살아가는 호피족과 나바호족, 변화하는 기후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려고 여러 작물을 돌려 심는 농부들의 지혜를 과학적인 자료로 남겼다. 종자연구소를 세운 바빌로프는 천재지변이나 큰 전쟁 이후에도 살아남으려면 식량의 안정적 확보가 최우선이라는 생각을 지녔다. 세계의 과학자들과 지식을 공유해 미래의 식량 위기에 대비할 ‘세계종자연구소’를 세우는 것이 바빌로프의 원대한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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