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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난 불량학생이었다. 바람이 분다고, 내기 당구에 팔려서, 벚꽃 나부낀다고... 제대로 수업에 들어간 적이 없었다. 복학 후 나아지긴 했지만, 대학시절을 통틀어 단 한 학기도 학생으로서의 삶은 없었다. 그렇다고 특별히 잘놀았던 기억도 없지만... 자연스레 성적이 좋을리 만무. 하지만 딱 2개 정도의 강의가 기억에 남는다. 하나는 4학년 1학기 '편집디자인 실기론'이었고, 또 하나는 신입생일 때 교양 강의였던 '국어문장론'이다. 전자는 지금의 내 진로 선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후자는 내게 재능없음을 냉정하게 가르쳐줬던 수업이었다. 어찌보면 둘다 내 진로 선택에 도움을 준 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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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으로 개인이 의미 있는 글을 짓는 기회가 많아졌다.
일기장 혹은 버려지는 종이에 끄적거리고 마는 의미 없는 글이 아닌, 글로써 사람들과 소통하는 공간이 인터넷으로 열렸다. 기회가 열린만큼 마음껏 글을 쓸 수 있지만, 나의 글로 사람들과 소통을 한다는 부담감은 고민을 만들기도 한다.
예스 블로그 왼쪽에 있는 달력은 언제부터인가 나에게 부담을 주었다. 글을 썼으면 굻은 글씨로 날짜가 바뀐다. 그렇지 않으면 얇실한 날짜가 남게된다. 블로그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매달 30일 즈음은 글을 쓴 날과 쓰지 않은 날을 세어보곤 한다. 누구하나 칭찬해 주는 사람이 없는 부분이지만 하루도 빼지 않고 글을 남긴 달이 있으면 어디서 오는지도 모르는 자부심과 격려가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인지 자연스럽게 고민하고 있었다. '무엇을 써야 하는가?', '내가 쓰고 있는 글이, 원래 내가 쓰려고 했던 글인가?', '작가도 아닌데 소재고갈?' 등등. 이런 고민을 할 때마다, 누군가의 추천으로 기억하고 있는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라는 책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매번 봐야지란 생각으로 차일 피일 미루다. 결국 그 작가의 차기 작품인 "글쓰며 사는 삶"을 읽고 이렇게 자취를 남긴다. 그래도 다행이다. 이제라도 선인의 도움을 받았으니...
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
작가만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는것은 아니다. 별 생각 없이 글을 써왔던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질문을 던져 보았다. 책에서는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자기 자신을 솔찍하게 인정하고 귀를 기울여 그것을 손으로 옮기는 작업" 도서관에서 "문학이란 무엇인가?"란 한가지 제목으로 많은 저자들이 그렇게도 많은 글을 써놓은 것을 기억한다. 두꺼운 책을 집어들고 도대체 무슨 내용으로 종이를 채웠나? 궁금해서 펼처보고 말았던 책들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도 이와 같은 맥락의 질문이 아닐까 한다. 누군가의 확실한 정의도 중요하지만, 자신과의 대화가 선행되어야 하는 글쓰기는 자기 자신만의 정의가 필요하다.
책은 글을 쓰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쓰여졌다.
몇가지 재미있는 기술을 배웠다. 간단한 것을 하나 소개하자면,
'왜냐하면'이라는 말을 쓸 때는 조심해야 한다. 작가는 글을 쓸 때 무언가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냥 서술하면 된다. '이유'가 아니라 '무엇'을 말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가게에 갔다. 왜냐하면 살 게 있었기 때문이다."를 "나는 가게에 갔다. 살 게 있었다."로 쓰면 된다. - <글쓰며 사는 삶> 162쪽 특히 '이렇게 해보자'란 구성이 작은 제목마다 있었는데, 실질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조언들이 있어서 글을 쓰는데 다양한 방법을 소개 받았다. 이책을 펼치며 고민했던 '소재 고갈'과 '글이 잘 안써질 때'에 대한 해결책은 이성적으로 찾을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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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다. 이야기를 좋아한다. 글을 좋아한다. 좋아하고 자주 접하고 가까이하는 사람일수록 한번쯤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마련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넘어서 다른 이에게 삶의 감동을 전할 수 있는 이야기를 꿈꾸거나 기발하고 재치가 번뜩이는 이야기를 꿈꾸기도 한다. 그런데 막상 글을 쓰려고 하면 제법 그럴듯하게 느껴지던 생각들은 잉크가 물속에서 풀어지듯이 어지럽게 흩어지면서 탁한 모호함이 되어버린다. 그럴땐 역시 글이란 아무나 쓰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버리고 만다. 작가처럼 글을 쓰는 것보다 우선 평소 내 머리속의 생각과 감정들이나마 구체화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작가가 아니더라도 자신만의 어체와 분위기를 가진 사람들의 글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수가 없다. 예전에는 사소한 느낌, 생각들이 끊임없이 떠올라 어딘가에서 끄적대기를 좋아했는데 지금은 뭔가 내 안의 것을 정리하고 싶어도 막상 펜을 종이에 대면 머리가 멍하다. 그럴땐 키보드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손으로 쓰는 법을 잊어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나탈리 골드버그의 <글 쓰며 사는 삶>을 읽으니 정작 내가 잃어버린 것은 글을 쓰는 것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기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탈리 골드버그가 제일 처음 언급하는 것은 꾸준히 쓰기다. 10분동안이라도 쉬지않고 무엇이든 쓰는 연습은 이후에도 잊을만하면 계속해서 나온다. 꾸준히 계속 쓴다는 것. 끊임없이 떠오르는 생각을 잡아낸다는 것이 어렵던 게 언제적이던가. 점점 바보가 되버리는 건 아닌가 싶은 스스로가 불안하다. 그런 중에 나탈리 골드버그가 이야기하는 대로 그냥 써본다. 그녀가 말하는대로 무작정 무조건 쓰고본다. 요즘의 고단한 내 상태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단순하게 더운 날씨, 노동이 아닌 육체적인 움직임으로 인해 갖게 되는 기분좋은 느낌, 그리고 거기에 따라오는 통증들에 대한 불안감을 나열하다가 지난 일요일 공원에서의 일을 떠올려본다. 공원에서 만났던 어느 외국인 가족이 생각난다. 비영어권 나라의 세 가족은 부부와 작은 남자 아이였다. 일요일낮에 갑작스레 들이닥친 조카와 자전거를 타러 갔었다. 조카는 그 가족에게 호기심이 생겼던 모양이지만 부끄러워 말은 걸어보지 못한채 주변에서 놀기만 했다. 그 가족들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낯선 외국, 그것도 까만피부의 아시아사람들에 대해서 만만한 시선을 보내거나 외국인에 대해서는 무관심해하는 나라에서의 일요일 오후의 시간은 어떤 것일까? 공원에 나들이 온 그들은 차를 타고 왔을까, 걸어왔을까. 대중교통을 이용했을까. 집에 돌아가는 길에 그들은 외식을 할까, 집에 가서 저녁을 해 먹을까. 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어떤 것들일까. 외국인 가족에 대해 설정해서 이야기를 이어가다보니 의외로 재밌다. 서사라던가 감동이라던가 기발함같은 것이 없더라도 뭔가를 만들어낸다는 것 자체가, 그리고 거기에 내가 다 담고있는 줄 몰랐던 기억의 파편들이 투영되는 것에 커다란 재미가 붙는다. 곧 벽에 부딪히지만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행위 자체가 즐겁다. 그러나 분명 신변잡기적인 이것이 나탈리 골드버그가 말하는 '글 쓰며 사는 삶'이 아닐 것이다. 우리가 자신에 대해 쓰는 기록, 이른바 일기와 글쓰기는 뭐가 다를까?
나탈리 골드버그가 가르쳐주는 글을 쓰는 것 중에 여러 표현의 방법은 불필요한 부분을 덜어내거나 좀 더 좋은 표현을 알려주는 것 외에 생각하는 것에 다채로움을 준다. 이미 머리속에 들어있던 것을 다르게 표현해보고나니 바로 지금 내가 보는 것에 대해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눈 앞에 있는 사람들을 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다. 나탈리 골드버그는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잘 쓰지 못해서, 내가 작가로 데뷔할 것도 아닌데 등등 스스로를 옭아매던 올가미가 어느 사이엔가 스르르 풀려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다고 글쓰기가 갑작스레 쉽게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도 글 쓰며 사는 삶을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니 뭔가 마음이 한결 가볍다. 작은 꿈을 갖게 되는 그런 기분이다. 언젠가 나만의 작은 이야기 하나를 만들고 싶다던 꿈, 이제부터 시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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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써서 밥을 먹고 사는 일이 가능한 사람은 소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한 줄의 글을 쓰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글 쓰는 일에서 살아가는 가치를 느끼는 사람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그런 사람들에게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고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어 준다고 해서 자신의 것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을철 곳간의 곡식처럼 더 풍성하게 쌓인다는 것을 저자는 알고 있는 게 틀림없다. 저자가 강조하는 글쓰기 방법은 일단 쓰라는 것이다. 처음엔 10분, 그 다음엔 20분 그 다음엔 30분, 이런 식으로 시간을 한정해 무작정 쓰다보면 그것이 글의 시작이 될 수 있고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도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글을 쓰기 전에는 책을 많이 읽으라고 조언한다. 자신이 쓴 글만을 읽는 다는 것은 ‘배고픈 뱀이 자신의 꼬리를 먹는 것과 같은 행동’처럼 어리석은 것이다. 자신의 글쓰기에 영양분과 영감을 얻기 위해서라도 책을 읽으라고 권한다. 책을 읽고 시간을 정해 글쓰기를 했다면 그 쓴 것을 꼭 소리 내어 읽으라고 한다. 쓴 글을 읽지 않으면 그 글은 상처처럼 부패되기 쉬우나 소리 내어 읽으면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글 속에 들어있는 내용의 상처는 딱딱하게 아물어 낫는 다는 것이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사소한 것에 관심을 갖고 구체적으로 쓰라고 한다. 큰 것이나 아름다운 것은 그 나름대로 이미 가치를 지녔으니 굳이 글로 그 가치를 드높인다는 것은 무의미하다. 차라리 우리 주변에 있는 사소한 것에 마음을 던져 구체적으로 자세히 써서 보잘 것 없는 존재를 빛나게 해주는 것이 글쓰기의 가치라고 말한다. 글을 쓸 때 함께 할 친구가 있으면 좋다고 한다. 서로에게 격려가 되고 글을 쓸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글을 잘 쓰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 자신의 삶을 일치시키는 것이다. 우리가 훌륭한 작가가 되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생을 잘 살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만이 아니라 모두를 위하는 심성이 글을 쓰는 작가의 마음가짐이라고 한다.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로 이미 유명인이 된 저자는 결국 쓰고 싶은 사람은 핑계대지 말고 무작정 쓸 것이며 그 쓰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삶을 잘 사는 것이라고 한다. 글 쓰며 사는 삶이 다른 삶과 다르지 않다. 글쓰기를 통해 더 행복하게 살수 있다면 글쓰기를 하면 된다. 그보다 더 행복한 일이 있다면 그걸 하면 된다. 남에게 보여 지는 멋진 모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행복한 자신이 되기 위해 글을 쓰고 싶다면 이 책이 길잡이가 될 것이다. 챕터마다 ‘이렇게 해보자’란을 통해 실제로 글쓰기 훈련을 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노트 한 권을 따로 정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저자가 권하는 방식으로 글쓰기를 한다면 글쓰기에 대한 기본적인 자신감을 갖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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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읽어도 너무 행복한 말이다. 게다가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의 세계적인 작가 나탈리 골그버그의 책이라면 없어서 못읽을 정도다. 내용이야 말해 뭐하겠는가. 최고의 책이다. 작가는 15년 이상 글쓰기 강좌를 이끌어 왔다고 한다. 그 내용들을 이 책에서도 소개한다고 한다.
"전 세계에 글쓰기 붐을 일으킨 주인공이자 시인이며 소설가다. 오랜 세월동안 동양적인 가치를 체험하며 배우고 느낀 것들을 글 속에 담아냄으로써 글쓰기를 갈망하는 독자들의 가슴에 깊은 울림을 전해왔다." - 작가소개에서 글쓰기에 대한 주옥같은 설명들의 맨 앞에, 가장 첫 번째 지론은 "손을 계속 움직여라."이다. 둘째, 될수록 구체적으로"이다. 세 번째는 "억제하지 말라."이다. 그 뒤로 중요한 내용들이 쭉쭉~~~ 이어진다. 버릴 수 없는, 꼭 앍고 실천해야만 할 내용들이다.
자신만의 글쓰기 방식이나 문체를 생각하기 전에 기본부터 충실히 해야 한다는 큰 원칙이 전제되어 있다. "글쓰기 훈련의 기본은 어찌 보면 자신에 대한 친절함으로부터 출발한다. 자신에게 친절해야 작가로서의 토대를 닦아갈 수 있다." 자신을 믿고 열정을 갖고 글을 쓰라는 말로 읽혔다.
책을 잘 읽지 않고, 글쓰기만 열심히 하겠다고 덤비는 사람들에게 그건 아니라고 말한다. 다른 작가의 글을 읽지 않는 사람의 글은 공허하다고 읽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글쓰기의 본질은 무력감에 직면하더라도 그 자리에서 버티며 도망치지 않는 데 있다"라고 강조한다.
글쓰는 장소를 바꾸거나, 시간을 바꾸거나, 산책을 하거나 등 다양한 변화를 통해서 끝까지 글쓰기에 도전하라는 여러 글쓰기 책들에서처럼 끝까지 써내는 작가들이 존경스럽다. 더불어 그렇게 글쓰며 사는 삶을 사랑하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모든 작가들이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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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받기전부터 이렇게 설렜던 적은 근래들어 처음 있는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주 오래전 제가 초등학교 5학년 시절, 집 책꽃이에 꽃혀있던 아주 오래된 책들의 노랗게 바래진 사이사이에서 나던 그 냄새에 끌려 책을 좋아하게 되면서부터 저는 언젠가 내가 정마 훌륭한 글을 쓰는 사람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막연하게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훌륭한 글을 쓰는 사람들은 타고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었고 내가 한 문장도 그럴듯한 문장을 내어놓지 못하는 것이 재능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그저 독자로서의 삶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위치라고 스스로 위안을 했었죠. 그래도 간간히 시골동네에서 하는 이런 저런 글쓰기 행사의 부상에 눈이 멀어 참가하면 어찌되었든 도서상품권 몇장은 손에 쥐게 되었으니 그 동안의 책사랑이 헛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도 했었죠 그래서 저는 글만 쓰며 사는 사람들의 삶이 궁금했습니다. 그들의 평소에 무슨 생각을 하고 살며 어떤 경험을 했기에 이런 장문의 글들을 책으로 엮어낼 수 있을까 하구요. 그래서 이 책이 궁금했습니다. 그렇게 펼친 책속에는 솔직히 너무나 싱거운 대답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흔히 아무리 천재라도 우직하게 열심히 하는 놈 못당한다니 그저 오늘도 열심히 묵묵히 그 시간들을 견뎌내라고 하지 않습니까? 이 책에서 글을 쓰고 싶다는 사람에게 하는 말은 바로 그겁니다. 꾸준히 써라. 내가 쓰는 이야기가 마음에 들건 들지 않건 생각하지 말고 시간을 정해놓고 매일매일 꾸준하게 써라. 대단한 고수에게 뭔가 큰 것을 배우겠노라고 궂은일 마다않고 열심히 문하생노릇을 하던 사람이 고수가 알려준 것이 그저 평범하 진리에 불과하다는 것에 기가차하는 이야기는 영화나 아이들만화나 흔하게 이용되는 소재인데 이 책에서도 같은 얘기를 듣게 될 줄은 솔직히 몰랐습니다. 그러나 사실 생각해보면 글을 쓰고 싶다면서 매일 꾸준히 쓰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안되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은 저자의 말처럼 자꾸만 내 글을 제지하려는 이성이 힘때문이었을 것이라는 의견에도 동의하게 됩니다. 책속에는 글을 솔직하게 쓰면 쓸수록 마주해야하는 내 안의 진실에 내가힘들 수도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은 매일 꾸준히 써야 한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책장을 덮을 즈음에는 저자의 책에서 저는 많은 것들을 배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글쓰며 사는 삶을 원한다면 저자의 말대로 매일 꾸준히 정해진 시간에 글을 쓰는 연습을 해야한다는 것 말고도 이 책은 글을 쓰고 싶은 사람에게 도움이 될만한 많은 것들이 담겨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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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글을 쓰게 해야지 아이디어를 이용해서 글을 쓰려고 하면 안된다 는 나탈리골드버그의 충고다. 시인이며 소설가이자 오프라 윈프리 쇼를 통해 전 세계에 글쓰기 붐을 일으킨 그녀는 "머뭇거리지 말고 펜을 들라"고 충고하면서 작가적인 삶을 위한 글쓰기 레슨을 시작했다.
이미 그녀 스스로가 글쓰며 사는 삶의 주인공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이기에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고 시작하도록 독려하는 따뜻한 다독임을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다.
작가들은 글쓰기가 언제나 쉬울까. 황금어장을 통해 들었던 황석영 작가나 김홍신 작가, 최근엔 공지영 작가에 이르기까지 전업작가라 하더라도 글을 쓰며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 일인지 토로한 바 있었다. 재능을 검증받은 그들도 그럴진데 이제 습작을 시작하는 일들의 하루하루의 절망의 깊이는 얼마나 깊을까.
그래서일까.
플룻, 구조, 스토리 라인 등 작법의 기술에 대해 강조하는 다른 작법서들과 달리 나탈리는 글쓰기 연습의 원칙이나 글쓰기에 몰입하는 법에 대해 다정히 일러준다. 이 부분이 가장 반갑다.
글쓰기 훈련은 최초의 생각을 받아들이고 그 끈을 놓지 말라는 가르침도, "왜냐하면"을 이용한 "이유"를 설명하지 말고 "무엇"을 말하라는 가르침도 가슴에 담은 채한걸음, 한걸음 멈추지 않고 나아가게 한다.
글쓰기는 힘드는 일일까. 서평을 쓰고, 리뷰를 쓰고, 일기를 쓰고, 메모를 남기며 나는 늘 즐거웠다. 힘든 일이라면 이 일이 언제 끝날까 기다리게 되고 지루하다 못해 못견디게 괴로워질텐데 글쓰기는 그렇지 않았다. 글쓰기는 언제나 즐거운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늘 달고 사는 커피처럼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있다. 어떤 장르든간에.
계속 쓴다는 것은 그래서 의미가 깊다. 좋아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는 것은 내가 살아있는 것을 확인하는 것과 같은 의미가 되기에...글쓰며 사는 삶. 전업작가가 아니더라도 즐거운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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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탈리 골드버그의 [글쓰며 사는 삶]을 다 읽었다. 겁먹지말고 솔직해지라고 그녀의 메시지가 책장을 덮을때 까지 강력하게 울려 퍼진다.
마음속에 부담이나 이성적인 분별을 내려놓게 만들고,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생명체의 기본자세를 갖춘 다음 마음속 가장 깊은 방에 들어가 자아를 관찰하고 그것들을 글로 적을 수 있도록 다양한 기법들을 알려준다.
바쁜 일정들이 빼곡하게 들어찬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신이나서 다시 책장을 펼쳤다. 나탈리 골드버그의 작가적 삶을 알게된 건 개인적으로 큰 수확이었다. 소설을 쓰는 작가로서 그녀의 현실에서 접하는 일상이 어떤 방식으로 작품속에 반영되어지는지도 예를 들어 세세히 설명도 해주었다.
주저없이 밑줄을 긋고 싶게 만든다. 그녀의 대부분의 말에 강한 공감이 들었다.
주관적으로 관찰하는데 방해될만한 요소가 없도록 객관적인 성질의 표현만을 허용되어 글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저자의 기분이 어떠했을지 짐작하고 상상하게 만드는 뚜렷한 방향성이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나탈리 골드버그의 글은 우울함을 서술할 때 조차 쿨하게 다가온다. 글을 쓰며 살아가는 삶에 관하여 작가의 꿈을 꾸는 평범한 이들에게 들려주는 나탈리 골드버그의 애정어린 격려가 곳곳에 느껴진다.
우리를 이루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우리의 글을 뒷받침한다. 그것은 우리가 발딛고 서야 할 더할 나위 없이 단단한 토대다. 헤밍웨이의 말처럼, 작가가 무언가에 대해 알고 있다면 반드시 그에 대해 쓰지 않더라도 그의 작품에 담기게 된다.
내가 쓴 글에는 내가 스며 들어 있고 그 글이 내 문체를 형성한다.
『글쓰며 사는 삶』이란 제목 바로 밑에 ‘작가적인 삶을 위한 글쓰기 레슨‘이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작가로 살기 위해서는 글만 잘쓰면 되는게 아니라 작가로서의 훌륭한 삶이 뒷받침되어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나의 삶이 녹아 있는 나의 글.
다음은 나탈리 골드버그가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의 원고를 끝낸 후, 로시 선사를 만나러 가서 외로움에 관하여 나눈 대화이다.
“하지만 선생님, 이 일은 저를 너무 외롭게 해요.”
“외로우면 안 되는 건가요?”
“글쎄요, 그렇진 않겠죠.하지만 선생님, 글쓰기는 견딜 수 없을 만큼 저를 외롭게 해요. 정말이지 너무 힘들어요.”
“무슨 일이든 깊이 들어갈수록 외로운 법이에요. 이곳의 수련생들도 깊이 몰두하는 사람들은 아주 외로워해요.” “선생님도 외로우세요?”
“그럼요, 하지만 그것 때문에 내 자신을 팽개치지는 않아요. 외로운게 뭐 별건가요.”
그렇다. 당신도 외로움을 견뎌라. 나는 가끔 ‘왜 내가 글을 쓰게 되었을까?’하고 자문한다. 이유야 어찌 됐든 지금 나는 이렇게 살고 있고,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내가 이렇게 글을 쓸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해왔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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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기록을 남기고, 다른 사람의 느낌을 공유하고 그리곤 내가 보지 못했던 부분을 고민해 본다. 누군가는 한 줄의 글을 쓰기 위해서 몇 일을 고민하고 누군가는 자신의 생각을 일필휘지로 적어 놓고 덮어 놓는다. 나는 어떤 쪽일까? 몇 권의 책을 읽고 남겨 놓은 기록을 본다. 내가 언제 이런 표현을 하였는지도 모를 글들이 남아있다. 한 번 적어 놓고 그 느낌을 그대로 적어 놓는다. 책 한 권을 만들기 위해서 고민한 사람들의 노고에 너무 미안한 것은 아닌가 하는 고민도 해 본다. 이런 글들은 어떻게 만들어 지고, 어떤 노력을 하면서 만들어 지는 것인지가 궁금해진다. 글 쓰며 사는 삶 제목이 눈에 들어온다. 작가적 삶은 어떤 모습일까? 내가 쓰는 글쓰기와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저자는 세계적으로 글쓰기 붐을 일으킨 시인이자 소설가라고 한다. 그의 글쓰기 강습은 어떤 모습으로 작가의 삶을 이야기 하는지 나의 글쓰기를 되짚어 보고 싶다.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데 머뭇거리지 말라 한다. 생각이 떠오르는 대로 글을 쓰라고 한다. 형식이나 구조에 억매이지 말고 자유롭게 기술하라 한다.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시간을 정해 놓고 쓰는 연습을 하라고 한다. 자신의 글을 다시 읽어 보고 상대를 정해 놓고 읽어 주라고 한다. 일상의 모든 일이 글감이 되고 그 글감의 시작은 자신의 생각을 근거로 한다. 모든 일상을 글로 표현하는 것을 두려워 말고 그 글이 상대에 전달되는 것을 느껴 보라는 말 같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책 한 권을 읽고 그 느낌을 정리하고 있다. 어떤 것을 받아들여야 하고 어떤 것을 떨어 내야 하는지 고민하면서 말이다. 오늘의 글감은 글쓰기다. 글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글을 읽고 글을 쓰고 있는 고민을 하면서도 나는 그 주제를 정하지 못하고 있다. 좋다. 나쁘다. 로 표현하기 싫은 것은 명제이나 내가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다는 말이 더 옳을 것 같다. 지금까지 책을 읽고 느낌을 적어내는 일에 있어서 내가 부족하였던 부분이 무엇인지를 고민해 볼 시간이다. 하나의 글감에서 나는 저자가 만들어 낸 공간을 상상하고 내 머리에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그 느낌을 만들어 보았다. 맞는 것일까? 작가가 도겠다는 욕심은 없었다. 그럼 나는 왜 글을 남기고 있을까? 정리도지 않는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던 것이다. 생각 속에 머물고 있었던 한 형체를 만들어 내고 그 것을 글로 만들어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그 형체는 명확하게 잡히지는 않는다. 이렇게 만들어진 공간에 누군가는 공감을 하고 누군가는 격려의 글을 달아 준다. 소통을 원한 글쓰기는 아니었지만 그 글을 매개로 나는 누군가와 소통을 하고 있다. 작가들의 삶은 어쩌면 독자와의 소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내가 적어 내린 글 역시 내부적으로 잠재하고 있는 정리되지 않은 생각을 서로 이야기하는 공간으로 그리고 공감대를 만들어 가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작가의 생각에 탄성을 보내고 그의 상상력에 박수를 보내는 그런 일들 역시 독자와 작가의 소통이라고 생각을 한다면, 글을 쓰는 일 역시 그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생각해도 무방하다고 본다. 매끄럽지 않게 정리되지 않아도, 조금은 엉성해 보여도 잦은 글쓰기와 교류는 어쩌면 시대의 공감을 만들어 내는 시작이 아닐까 한다. 글쓰기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글에 대한 두려움이 많이 없어졌다. 생각나는 대로 그리고 손이 가는 대로 글을 한 번 써보자. 그리고 일상을 세밀하게 관찰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그 것을 글로 표현하기 위해서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