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라~ 성석제 아저씨의 산문집이다. 짧은 글들을 모아놓은 책. 자신의 일상에 관한 소소한 이야기들-기억,추억에 관한, 자신이 아끼는 것에 관한, 본것들에 관한, 그리고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그간 석제 아저씨 소설에 나왔던 이야기들의 소재와 배경이 많이 드러난다. 스스로도 말했듯이, 그러한 경험과 기억과 환경을 가진 아저씨는 천성적으로 소설가, 이야기꾼이 될수 밖에 없었을 듯하다. 자신의 이야기를 그저 글로 쓰기만해도 한편의 소설이 되어버리니. 깊은 겨울산에서 호랑이 발자국을 보고 놀랐던 얘기, 늑대를 만나 화장실에 갖혀 꼼짝 못했던 얘기, 개구멍을 통해 들어가 몰래 기차타고 여행한 얘기, 그시절의 대학생활 얘기 등등 아저씨의 삶 자체가 훌륭한 이야깃거리였다. 옛날 이야기를 끊임없이 쏟아내곤 하던 할머니의 치맛폭처럼(물론 내겐 그런 할머니가 안 계셨지만, 많이들 쓰는 표현 아닌가?) 석제 아저씨의 이야기보따리는 마치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끊임없이 이야기들을 쏟아낸다. 물론, 소설가, 작가로서 글쓰기의 고뇌가 없을리 만무하지만. 석제 아저씨 글을 읽다보면 그냥 그 흐름에 몸을 맡기게 된다. 글을 읽는 게 아니라 이야기를 듣는 기분으로, 높고 낮음과 길고 짧음이 있는 글의 가락에 따라 아저씨가 말하는대로 즐겁게 춤을 추게 된다. 춤을 끝까지 춰도 되지만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그냥 그대로 멈추고 책장을 덮어두면 그만이다. 잔뜩 인상쓰고 정좌하여 정독을 요구하지 않는 책, 물론 석제 아저씨도 읽는 이가 그렇게 심각한 표정 짓는 것을 원치는 않을 것이다. |
| 《시는 불온하다고 어느 시인은 말했다. 나는 소설은 불순하다고 말하고 싶다. 적어도 내가 쓰는 소설은 불순하다고. ……90년대 중반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는 이제 제 길을 찾았다는 말을 참 많이도 들었다. 말을 듣는 김에 더욱 잡스러워지고, 이른바 크로스오버로 놀아보려고 노력했다. 잡(雜)은 잡대로 재미와 의의가 있다.》(274쪽) 성석제의 소설은 주제나 소재, 그것들을 다루는 솜씨마저도 잡스럽(?)다. 하물며 형식이나 내용에서 더욱 자유로울 산문집은 어떠할 것인가. 그의 세 번째 산문집이 되는 『즐겁게 춤을 추다가』는 산문집치고는 기왕의 것들에 비해 적잖은 분량이기도 하지만, 담고 있는 내용 또한 여러 가지다. 다만 열 대여섯 권에 달하는 그의 다른 책들처럼 여기서도 그 흔한 정치에 관한 입장은 보이지 않는다. 총 6부로 나뉘어진 이 책에서 1부는 憶이란 제목을 달아 유년부터 청년기까지의 몇 가지 에피소드를 담아놓았다. 사십대 중반을 넘어가는 사내가 지난 세월을 돌이키는 감정엔 아무래도 애틋함과 조금의 슬픈 기운마저 섞여있는 것은 어쩔 수 없나보다. 2부 愛는 아끼던 물건, 영향을 받은 책, 추억이 어린 장소와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3부 葉은 일상 생활에서 채집한 이러저러한 이야기들의 묶음인데,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그야말로 성석제의 냄새가 물씬 나는―스타일의 글모음이다. 푸하하하 혹은 껄껄 같은 의성어가 아니라 풋, 하는 소리가 날 정도의 글들을 일컫는다. 見, 流, 人을 달고 있는 4, 5, 6부는 약간은 진지한 필치로 세상을 그려낸 산문들이다. 쉽게 변하는 세상을 힐난하는 글들도 보이고, 옛 고향 모습을 그리워하는 향수도 느껴진다. 주위에 유난히 단명(短命)한 친구들을 많이 지닌 탓에 人에는 그들의 유고집이나 전집에 들어갈 발문이 대부분이다. 개인적으로 만나 본 적은 없지만 성석제의 소설·산문 모두 그의 기질을 닮아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진지한 듯하면서도 무거운 것은 피하고, 유쾌한 것 같으면서도 경박하게 굴지 않는 글쓰기…… 또한, 평범한 체험을 특별한 것처럼 능청스럽게 쓴다든가, 별난 것을 일상처럼 쓰는 모습을 보면서 이것은 기교라기보다 그의 사고방식과 성격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알아차리게 된다. 이 책에는 내가 쓰고 싶었던 형식의 글도 많다. 성석제가 내 취향의 글을 쓰는 것인지 내가 그의 글에 맞춰 가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의 말에서 단서를 찾을 수는 있으리라. 《내 경험에 글과 글감(素材)은 서로 닮고 독자와 작가는 서로 닮게 마련이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초월한 성인(聖人)의 견해에 따르면 색(色)은 공(空)을 닮고 고(苦)는 낙(樂)을 닮고 중독은 도취를 닮는다. 내 생각에는 서로 맞닿아 있는 삶과 죽음이 서로 닮는다. 편안하게 일생을 보낸 사람은 죽음도 편안하게 맞는다. 삶이 고단하면 죽을 때도 힘들다고 하는데 맞는 말이리라. 서로 접촉하는 한, 모든 존재는 서로를 닮는다. 심지어 존재와 부존재조차.》(261쪽) |
| 이웃 블로거가 올린 글을 보고 갑자기 생각이 났다. 아~ 맞아 내가 성석제의 글을 좋아하지. 본의아니게 E-book을 열심히 보고 있는 요즘. 내가 책을 고를 수 있는 범위는 매우 한정된다. 생각해보니 '성석제'란 key word로 검색을 해보지 않았었다. 찾아보니 여러 권이 뜬다. 세 권을 고른다. 내가 보지 않은 책 중에서. 생각보다 많은 책을 냈더군. 이 책은 그의 산문집이다. 그가 여기저기 썼던 잡글들을 모아놓았는데, 예전에 한국일보인가에 연재했던 '길위에서 만난..'도 들어있다. 원고지 4-5매 수준의 엽편보다도 적은 분량의 글모음인데 이순원, 김영하등도 참여했던 프로젝트. 한때 열심히 찾아서 읽었던 글이다. 김영하도 '랄랄라 하우스'에 여기 실었던 글을 재활용했던데...역시 이런 류의 잡문은 재활용의 묘미가 있을 것 같다. 원고료로 한 번 먹고, 인세로 한 번 더 중탕해먹고. 그의 어린 시절 얘기와 그가 어떻게 글이란 것을 쓰게 되었는지, 연대 법학과 시절의 파란방탕한 나날들에 대해 재미있고 구수하게 펼쳐져나온다. 이런 사람도 대학을 졸업할 수 있던 그것도 '수석졸업'을 할 수 있었던 80년대 초반의 대학시스템이 부러울 따름. 요즘 대학생들이 보면 너무나 부러워하고 그의 소신 있는 삶을 보고 두 번 부럽고, 세번째 부러운 것은 그리 소신있게 놀아줄 때 함께 할 친구가 있다는 것이 아닐까. (요즘 소신있는 부모들이 아이를 좀 그냥 놀게 하려해도 아파트 놀이터에 친구가 없어서 할 수 없이 친구만나라고 학원에 보낸다는데.) 그의 글을 읽다가 두 번째 드는 생각은 그가 생각보다 '한학' 내지는 동양고전, 그리고 조선사에 대한 조예가 깊다는 것. 그가 쓴 글의 1/3정도는 동양의 고전이나 조선사의 일화, 야사를 예로 들고 있다. 소설가의 망막을 통과하면서 한 번 걸러지고, 소설가의 뇌에 영양가 있는 기억으로 남아있다가 재가공되어 글로 출사된 역사의 한토막은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뒹굴뒹굴 하면서 읽기 딱 좋은 책인데~ 아픔은 노트북 컴퓨터로 봐야해서 그리 하다보면 엉덩이나 배가 너무 뜨거워진다는 것. 그것만 빼고는 딱 좋다. |
| 성석제는 입심이 대단하기로 유명한 소설가이다. 이 책을 주문하면서 그 입심이 소설이 아닌 산문집에도 작용할 것인지 궁금했다. 그는 그 입심을 아무 때나 드러 내지 않았다. 칼집에서 칼을 살짝 뽑아 그 번쩍이는 劍光을 보여 주는 듯 했으나 오늘은 왠지 쉬고 싶구나 하는 고수의 모습이었다. 이 책에서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 문학에 대한 생각 등을 담고 있다. 성석제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작가의 뒷 모습을 본 듯한 느낌일 것이다. ---------------------- 아니, 이거 다 쓰고 '올리기'를 누르려니 '리뷰'는 본문이 삼백자 이상 되어야 한다고 한다. 이제는 삼백자가 되었겠지. |
| 최고의 글담을 자랑하는 성석제의 소설을 읽다보면 그야말로 하루해가 너무나도 빨리 지나간다. 물흐르듯이 유창하게 뻗어나가는 스토리와 특이한 개성이 넘치는 등장인물들이 잠시도 시선이 흩어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은 에세이로 분류될 수 있는데 논픽션에서는 그의 매력이 조금 반감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소설처럼 공이 많이 들어가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그의 친구들이 밝혔듯이 실생활에서는 재미없는 사람이어서일까? 약간 삐딱하고 재치있는 글임에 분명하지만 생활 속의 그는 소설노동자일 뿐 재기발랄하고 재미있는 삶을 살아가는 소설속 인물은 아니었다. 그저 지나간 세월을 아쉬워하며 오늘도 실수를 연발하며 소설 속 소재를 찾기 위해 눈이 벌건 또 하나의 생활인의 모습. 바로 인간 성석제의 모습이 보이는 것이다. 즐겁게 춤을 추다가 옆을 보면 막상 아무도 보이지 않을 때처럼 작가로서 느꼈던 여러가지 감상들을 맛볼 수 있지만 역시 글의 묘미는 반전과 해학에 있지 않나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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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산문집은 보통 그사람의 소설을 읽어보고 그 사람내음에 반했을 경우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소설에서 느낌 그 사람의 일상을 들쳐보고 관찰하고 싶은 충동은 그렇게 지갑과 시간을 열게 되어 있다.
tv 책을 말한다의 사회자가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를 참 재밌게 읽었다라는 말을 한 이후로 이 소설가는 재밌는 사람으로 인식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책을 살려는 찰나 이 산문집이 신간으로 나왔고,,,, 소설보다 먼저 그사람내음을 먼저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소설을 구매했다.
순수하지 않고 사악하지 않고 꽉막히지 않고, 재미없지 않고, 냉소적이지 않으며, 본듯하고, 어렵지 않고,,, 이런말들로 수식될 그 사람은 어른스러움과 어른스럽지 않음 사이.. 젊은 작가와 어르신작가 사이에서. 유치하지 않은 심각치 않은 문체로..살살 마음을 녹인다.
지식을 알고자 하는게 아닌 에세이에서 그사람의 추억을 그리고 나의 추억을 곱씹으며 읽었다. 그사람에게 사라져간 사람이 마치 나의 사람인듯.. 그렇게 그 추억을 같이 읽었다. 아마도... 그 추억을 바닥에 깔고 그의 다른 소설도 섭렵할 듯... [인상깊은구절] 눈물을 닦으며 생각했다. 내가 절대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은 아직 클래식보다는 쓰레기에 있고 변두리에 있다고, 아름다움은 바로 공감이라고,, |
| 소설가에게 잡문(?)은 유혹이다. 글감을 채집하다가 소설화하지 못한 것들이나 그 주변부에 있던 소재들을 폐기하기에는 너무도 아까운 것이다. 그만큼 보고 듣고 느꼈던 것들에 대한 애착이 잡문으로 이어진다. 이를 반증이라도 하듯이 시집, 산문집, 소설집 등 전방위적으로 글쓰기를 하는 성석제작가가 상재한 산문집 ‘즐겁게 춤을 추다가’를 펼쳐보면, 憶 · 愛 · 葉 · 見 · 流 · 人이라는 6개의 한자 투의 小題를 달고 있다. ‘憶’은 추억, 기억, 회억의 의미로 읽히는데 유년시절과 청년시절을 지나면서 느꼈던 것들을 體現하는 듯하다. 일례로 어릴 때 누구나 경험했을 법한 개구멍에 대한 통찰이다.[개구멍속의 기차] 개구멍과 입을 맞출락말락하며 통과하면, ‘화려하고 무한으로 가는 세계’를 향하는 기차를 탄고, 세상 모든 곳을 가보았다는 유년의 周遊는 ‘추억이 나에게 문장을 빌려 주었다’다는 그의 단서가 포착된다. ‘愛’는 작가가 한동안 사랑하고 아끼던 것들에 대한 기록이다. 레밍턴전동타자기의 사용기로 읽힐 법한 글에서는 속도와 새로움을 추구하는 세태의 반성이 돋보이고, 자전거바퀴를 구르며, 세상을 안거하는 자전거론은 발전과 발달의 시대에 뒤로 페달을 밟는 여유로운 사유가 덧보인다. 또한 삼국지의 한 구절, 감동받은 책, 심지어 다방에 이르기 까지 작가가 애착했던(갔던) 것들의 다큐멘터리이리라. ‘葉’은 ‘길 위의 이야기’란 제목으로 일간지에 연재한 글이라고 한다. 엽은 아무래도 엽신, 엽편등 아주 짧은 글들일 것이다. 아주 짧은 글이되 해학과 우스갯소리가 즐비하게 널려있다. ‘見’은 임제의현의 임제록을 내세우고 쓴글들이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하는 임제록의 한 구절을 가가 무척 좋아하는 듯 하다. 아마도 透脫自在를 꿈꾸는 작가의 꿈이 서려 있다. 人惑과 物惑 꿰뚫는 세상사의 이야기는 성숙한 작가의 視界가 넓어 보인다. ‘流’는 유랑, 流轉이라는 것일까. 물이 흐르다가 다시 제자리로 還向하는 것처럼 작가도 변두리에서 나서 변두리 바깥의 새로운 세상의 닭 우는 소리[나는 변두리에서 왔다]를 들을 수 있어 동경한다. 변두리의 혼혈 문화 속에서 아름다움의 광맥을 찾는 작가의 문학적 유전을 담았다. ‘人’은 사람에 대한 추억이다. 그것도 가버린 사람, 이 세상에서 대면할 수 없는 사람들의 아린 이야기다. 작가가 사숙한 듯한 이문구 선생이야기며, 친구인 성원근시인, 소설가 김소진의 유고집의 발문이 마른 씨앗이 피워낸 복숭아처럼 소담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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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나의 고민은 이거다. 돈 되는 일과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일치가 안 될 경우엔 무엇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 물론 나는 20대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았다. 그런데 이제 나는 더 이상 20대도 아니고, 이태백이니 사오정이니 하면서 점점 사는 게 참 어렵다는 걸 느끼게 해준다. 더군다나 10억 모으기 열풍이니 어쩌니 하면서 재테크를 안 하고 노후 대비를 안 하는 사람은 죄의식을 느끼게 만든다. 더군다나 나는 건강도 좋지 않다. 이쯤 되면... 역시... 미련 없이 지금부터라도 돈 되는 일을 해야 할텐데 그걸 못 하니... 나도 참 대책 없다. 가끔... 소설가들 역시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물론 조정래씨처럼 인세만으로도 몇 억씩 버는 소설가도 있다고 하지만 대개의 소설가들은 월 평균 수입이 10만원 안팎이라고 한다. 독신이라면 어떻게 말이 될 수도 있지만, 그 사람이 남자고 한 가정을 책임지고 있는 가장이라면 말이 달라진다. 그래서 참... 소설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좋으면서도 한없이 애처롭고 그렇게 되는 듯 하다. 요즘 들어 조금 걱정이 되는 건... 성석제씨가 너무 책을 많이 낸다는 점이다. 내가 왜... 책 내용이랑 전혀 상관 없을 듯한 이야기를 구구절절히 길게 했는지 이 대목에서 이해가 갈 거다. 사실... 소설가와 그 작품을 좋아하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그 사람의 작품이 많이 나오는 건 분명 기분 좋은 일이다. 그런데 너무 많이 나오면... 사실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한다. 물론... 새로운 창작물들이 계속 나오는 거라면 모르겠지만, 교수들이 여기 저기 학술지에 냈던 논문들을 묶어서 단행본을 내는 것과 마찬가지어서 창작물이 없다면, 그리고 그나마 그 단행본들 중 이전 책과 겹치는 논문들이 많다면 그 교수의 책을 구입하기가 더 이상 저어되는 것처럼, 그리고 '어, 이 교수. 슬슬 농땡이 치나?' 싶어지는 것처럼... 약간은 걱정이 되고 약간은 실망이 되는 것 같다. 물론 일반 독자들의 경우 계간지에 연재되는 소설들을 다 읽을 수는 없다. 산문 역시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여기 저기 흩어져 있던 작품들을 모아서 하나의 단행본으로 엮는다는 것 자체가 나름대로 의미가 있고 독자들에 대한 서비스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나는 걱정이 되는 걸까? 더 이상 새롭지 않고, 더 이상 독특함이 안 보이고, 더 이상 이전 작품들과 차별성이 드러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나만의 기우릴까? 나만의 기우이길 바란다. 물론... 내가 걱정이 많아서 그렇지... 이 책은 산문집으로서도 내용이 알차고, 성석제 고유의 사고방식이나 가치관 등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단, 이전에 이 작품들을 읽지 않은 사람에 한해서 그럴 것이다. 물론 소장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별개겠지만, 만약 여기 실린 작품 중 다수를 읽은 독자라면 약간은 실망할 듯도 하다. 아, 대신... 서비스라면 서비스... 각 작품 말미에 언제 어디에 실렸던 작품인지 알려주지 않았다. 이것이... 성석제씨의 친절함이라면 친절함이랄까? ^^; 아, 혹시나... 팬들이 태클걸까봐 걱정되는데... 나도 성석제씨 팬이다. 그래서 성석제씨 작품은 빼놓지 않고 다 구입하고 꼭꼭 읽고 있고... 아끼는 마음이 크니까 걱정도 되는 거다. 소설가로 오래오래 장수하시기를 바라니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