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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미오와 줄리엣>을 보면서 당시 이탈리아 도시 국가 내에서 황제당과 교황당의 대립을 생각해보다가 찾은 책이다. 전공 외 분야 사람이 쓴 일본 대중 역사서에 대해 약간 경계하는 마음이 있는 지라, 책 주문하기 전에 좀 망설였다. 리뷰도 하나도 없었고. 단지 역자이신 이경덕씨 이름만 보고 주문했는데 다 읽고 난 지금 상당히 책이 마음에 든다.
잘은 모르지만 고대 로마 제국이나 동로마제국에 대한 책은 많은데 비해 신성로마제국을 한 번에 꿰어 서술해주는 책은 없는 것 같다. 비슷한 컨셉의 책으로, 전에 <유럽의 합스부르크 왕가>란 책을 도서관에서 읽은 적이 있었는데 왠지 산만하고 짜깁기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나마 절판이어서 다시 참고하려고 보니 이제는 책을 구할 수도 없었다. 이쪽 역사는 독일사, 오스트리아사, 이탈리아사, 네덜란드사, 스페인사 등등에 걸쳐져 있기에 한 권으로 파악하기가 어려운데 이 책을 만나서 반갑다.
이 책은 서로마제국 멸망 이후 나폴레옹 시대까지 약 천 년을 다루고 있다. 800년 샤를마뉴가 서로마제국 황제가 되고 962년 오토 1세가 황제가 되며 1034년 '로마제국'이란 명칭이 잘리에르 왕조의 공식 문서에 첫 등장한다. 1152년에는 바르바로사 프리드리히 1세가 '신성제국'이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제후 소집장에서 사용하며 1254년, 드디어 '신성로마제국'이란 국호가 홀란트 백작 빌렘에 의해 등장, 1512년 막시밀리안 시절에는 '독일 국민의 신성로마제국'이라는 국호가 정식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신성로마제국은 과거 세계 제국이었던 로마제국을 계승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었으나 결코 세계제국인 적이 없었다. '독일 국민의'라는 수식어가 나중에 붙은데서 알 수 있듯.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성로마제국은 기독교의 수호자란 입장과 세계제국 표방을 결코 포기하려들지 않았다. 여기에서 독일을 중심으로한 유럽 역사의 여러 독특한 문제가 발생한다. 황제들의 이탈리아 지배에 대한 집착이라든가, 종교 전쟁을 벌일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제후들에게 지나친 권한을 준 결과 독일의 독특한 연방제 역사가 형성되었다든가,,, 이후 나폴레옹의 황제에 대한, 히틀러의 제국에 대한 집착이라든가,,, 많은 것을 파악하게 해 주는 책이다.
위와 같이 요약해 놓으니 책이 지나치게 연대기적이고 딱딱하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책은 전혀 딱딱하고 지겹지 않다. 오스트리아 문학을 전공한 저자는 군데군데 문학적이고 위트있는 표현을 숨겨 놓고 있어서 독자에게 은근 읽는 재미를 준다.
요컨대 제국을 비롯한 당시 사람들은 신성로마제국을 단순한 독일제국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제국 당국 또한 최후의 보루였던 '신성'이란 말을 이미 버렸다. 즉 당시 제국은 유일한 생명 유지 장치를 스스로 떼어내고 이미 숨을 끊은 상태였다. 그 때문에 프란츠 2세의 제국 해산 칙서는 제국의 사망 진단서가 아니라 유체의 매장 허가증과 같은 것이었다. - 본문 19 ~ 20쪽.
그는 철두철미하게 훌륭하지 않은 황제였다. 다만 그에게 다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절대적인 무기가 하나 있었다. 프리드리히의 유일한 기술은 오래 사는 것이었다. 그가 끈덕지게 살아 있는 동안 "신은 적을 죽였다." - 본문 188쪽.
위와 같은 표현, 참으로 절묘하지 않은가.
*** 의아한 점, 잘못된 점 * 44쪽 서기 800년경 카를 대제의 제국 지도인데 그 당시 남부 이탈리아에 베네치아 공국이 무언지? * 95쪽 슈타우펜, 벨펜 집안 계보도에서 프리드리히 1세의 아버지는 프리드리히 독안공이다. 하인리히 오만공이 아니다. 잘못 나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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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로마제국은 유럽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존재였지만, 막상 본격적으로 다룬 경우는 의외로 드물다. 유럽 역사를 다룬 책을 보다 보면 신성로마제국은 영 종잡을 수 없는 나라로 여겨지기 십상이다. 유럽사에서 드문드문 등장하면서, 등장할 때마다 모습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달라진 모습은 설명하면서 왜, 어떻게 달라졌는지는 설명하지 않으니 독자로서는 당혹할밖에. 한참 번영했다고 하다가 한동안 이야기가 끊긴 뒤, 뜬금없이 쇠락을 거듭하고 있는 와중 결정타가 터졌다 운운하는 서술이 나오면 도저히 종잡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신성로마제국>은 신성로마제국의 알파와 오메가를 오롯이 담아낸 책이다. 이 책의 부제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 로마'이다. 사라지지 않는 로마, 신성로마제국. 하지만 사라지지 않은 비결은 다름아닌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신성로마제국은 실체 없는 관념에 불과했고, 제국이라지만 나라는커녕 도시국가 연합체보다도 느슨히 연결된 구조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실체 없는 관념이라는 것이 신성로마제국을 천여년 동안 지속시킨 원동력이 되었다. 신성로마제국이 이름만 요란한 허상에 불과했다는 것이, 정치적 이데올로기에는 더없이 주효했던 것이다.
신성로마제국은 정치적 이유에서 태동했고, 쇠락할 때에도 정치적으로 활용되기 위해 존속했고, 정치적 효용이 완전히 떨어지자 문을 닫았다. 정치적 비중에 비해 유럽사 서술에서 단편적으로만 등장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지위는 선출제일 때에도 당대 유럽의 최고 권력자에게 부여된 명예직 이상의 실리를 가져다주지는 못했고, 세습제로 바뀐 뒤에는 명예직으로서의 의미도 잃어버렸다. 이름만은 존속했지만, 종국에는 이름만 존속한다는 것 자체가 웃음거리가 되었다. 볼테르가 신성로마제국을 두고 신성하지도 않고, 로마와도 관련 없고, 제국도 아니라는 말을 남기고,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대학생들이 술집에서 신성로마제국을 들먹이며 농담따먹기를 하듯이 말이다.
하지만 신성로마제국의 존재는 후대의 정치제도와 국체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독일의 나치 체제를 제 3제국이라 칭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19세기 후반에야 비로소 독일이 통일되었고, 첫 황제가 나왔다는 것만 알면 상당히 혼란스럽다. 나치를 제국이라 하는 것도 황망하지만, 역사상 제국이 하나밖에 없었는데 제3제국이라니. 여기에 신성로마제국을 1제국, 통일 독일을 2제국이라 했다는 설명이 붙으면 도저히 종잡을 수 없게 된다. 로마 운운하는 제국이라면서 왜 독일이 자신들 역사로 끌어들이는 걸까? 하지만 신성로마제국이 독일 제후의 연합체에서 출발했다는 것을 알면 이름의 궁금증은 곧바로 풀린다. 그들은 신성로마제국을 찬란한 역사로 포장했고, 이것을 제 1제국이라 칭했던 것이다. 당대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제국이 정치적 이유에서 후대에 진정한 제국으로 추앙받게 된 이 아이러니는, 정치적으로 이용되기 위해 존재했던 신성로마제국에는 더없이 잘 어울리는 일일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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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남과 독일에 관한 그림책을 보다 쾰른 대성당에 동방박사 유골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동방박사는 어느 나라 사람이에요?" "글쎄, 이스라엘보다 동쪽에서 왔겠지?" "그런데 거긴 독일에서 멀잖아요? 왜 독일에 유골함이 있는 거예요?"
장남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일단 추리를 시작했다.
중세 독일은 좀 쌩뚱맞긴 한데...."신성로마제국"이었지. 암튼 당시 세상의 중심이라는 거고.....그렇다면 세상의 보물이라는 것들은 힘닿는 데까지 모아 보려고 했을거다....그래서 유골함이 거기까지 간 거 아닐까. 그렇다면 "신성로마제국"이 어떤 나라인지 알아야 하겠다는 생각에 이 책을 구입하여 읽게 되었다.
그. 런. 데.
대박이다.
새벽까지 집중해서 볼 정도로 긴장감이 있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그냥 외우기만 했던 카노사의 굴욕,도 등장인물 사이의 암투가 있는....드라마같은 장면이었고.... 원작자나 역자 모두 잘 쓰셨다. 감사할 노릇이다.
또, 이 책을 선택할 수 있도록 서평 남겨주신 pko8700411님과 껌정드레스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나저나.....동방박사 유골함은 붉은수염 프리드리히 1세(바르바로사)가 밀라노 정벌할 때(1156년) 가져왔다는데.....도대체 그건 왜 밀라노에 와 있었던 건지. 혹시 십자군??? 아직 수수께끼는 마저 풀어야 하는데....어떤 책을 읽어야 할런지, 휴. -_-;;;;;;;
* 껌정드레스님도 지적하셨는데 95페이지 계보에 오류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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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유럽에서 역사의 한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신성로마제국. 오도아케르에 의하여 서로마가 멸망한 이후에 암흑과 같은 중세 유럽의 중부 지방에 자리잡고 있던 신성로마제국은 어떻게 보면 생소한 개념으로 보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프랑스, 영국, 스페인(합스부르크 가문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에 오르면서 후에 신성로마제국에 합류하기도 하지만.), 러시아등이 하나의 국가라는 개념으로 존재하는 것에 비하여 독일과 이탈리아 지방의 많은 제후국가로 구성된 지역에 존재하였던 제국이라는 이름의 신성로마제국은 눈길을 끌기에는 충분해보인다. 거기에 제국의 이름에 '신성한'이라는 단어와 이미 멸망한 '로마'라는 이름이 들어가있는 요소는 분명 흥미로운 요소일 것이다. 19세기 독일의 민족주의의 영향을 받은 역사학파는 신성로마제국을 오토 대체(오토 1세)로부터 시작되었고 독일민족의 지배 아래 천 년에 걸쳐 그 빛나는 역사를 이룩해왔다고 주장을 하면서 비스마라크의 독일제국(2제국)을 찬양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20세기 초반부터 이러한 신성로마제국에 대한 비판이 등장을 하였으며, 저자는 이에 따라서 신성로마제국에 대하여 각종 문헌과 고증을 통하여 집필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서로마 제국 476년 게르만족 용병대장 오도아케르에 의하여 동서로 분열된 로마제국중 서로마 제국이 멸망을 하게 된다. 동로마는 비잔틴 제국으로서 그 이후에도 지속적인 번영을 이루지만, 서로마가 다스리는 지역에는 게르만족에 의한 다수의 왕국들이 존재한다. 그중 유력한 국가가 프랑크 왕국이었는데, 특히 피핀은 로마 교회의 지지를 얻어서 메로빙거 왕조를 대신하여 카롤링거 왕조를 이루어낸다. 더욱이 카롤링거 왕조의 전성기를 이룩한 카를 대제는 과거 서로마가 차지한 지역의 대다수를 정복하며 위세를 떨치게 된다. 당시 로마 교회는 랑고르드왕국의 위협으로부터 로마 주위의 지배권을 획득하기 위하여 교황인 레오 3세는 프랑크 제국의 카를과 협력을 하게 되고, 결국 카를에게 서로마 제국의 대관을 실행하게 된다. 이것은 서로마 제국의 부활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물론 로마 제국의 정통성을 두고 비잔틴 제국과 갈등을 빚게 되지만, 외교적인 협상으로 인하여 서로마지역에서의 정통성마저 획득을 하게 된다. 이로써 교황으로부터 황제의 관을 받은 카를의 입장에서는 못내 찜찜한 구석이 있었으나, 정통성 확보라는 차원에서 받아들이고, 교황은 로마 주위의 한정적인 지역에서만 세력을 형성함에도 불구하고, 황제의 자리를 부여한다는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 그렇다면 왜 카를은 굳이 프랑크 왕국의 왕위에서 부활한 서로마 제국의 황제의 자리에 올랐을까? 저자의 분석이긴 하지만, 당시 유럽인에게 로마 제국이라는 명칭은 바로 그들의 영원한 이상향이었기 때문에 서로마 제국의 황제라는 자리는 매력적인 자리였던 것이었다. 이러한 관점은 멀리 찾을 것도 없이 우리의 역사인 조선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들 수 있는데, 명나라가 멸망하고 한동안 조선은 그 자신이 중화라는 사상에 젖어 소중화임을 자처하던 것이 그 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오토 대제의 등장 카를 대제 이후 프랑크 왕국은 삼분되었으며, 이후 카롤링거 왕조는 명맥이 단절되면서 각자의 길을 걷게 된다. 서프랑크 지역은 프랑스로 분리되며, 남은 두개의 프랑크 왕국은 지금의 이탈리아와 독일-동부유럽 지역으로서 수많은 제후국으로 나뉘게 된다. 동프랑크 지역에서는 카롤링거 왕조의 후손이 없자 선출제로 왕을 뽑았는데, 이는 게르만족 특유의 전통과도 명맥을 같이 하게 된다. 첫번째 선출왕인 콘라트 1세는 독일내의 강력한 세력인 작센공인 하인리히 1세를 독일왕으로 지명(선출제라해도 전임왕은 다음왕을 지명할 수 있고, 이 다음왕을 제후들의 선거로 인정하는 방식이었다.)하게 되고, 하인리히 1세가 독일왕으로 등극하면서 작센왕조를 열게 된다. 하인리히 1세는 왕권을 강화하기 위하여 작센 가문을 중심으로 세력을 형성하게 되고, 그 아들인 오토 1세도 역시 아버지의 정책을 답습하며, 귀족들의 반발을 교회 조직 세력을 이용하여 무마하며 왕권을 강화하기 시작한다. 오토 대제는 로마 교황을 위협하던 세력을 정벌하면서 로마 교황으로부터 황제의 관을 받지만, 이에 더하여 교황을 선출할 때, 황제의 승인이 필요하다는 내용을 문서화한다. 당연히 로마 교황은 이에 반발하였으나, 오토 대제는 무력으로 이를 무마하고, 이탈리아까지 정복하면서 제국을 형성한다. 962년 새로운 제국의 황제자리에 오른 오토 대제는 카를 대제때와는 반대로 로마 교황과의 권력 다툼에서도 승리를 하고, 이탈리아까지 정복을 하는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신성로마제국의 형성을 바로 이 시점이라고 배워왔다. 그러나, 저자는 당시 오토 대제는 황제의 자리에 올라 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까지는 사용을 하였으나, 신성로마제국이라는 국호를 쓰지 않았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탈리아까지 정복을 하여 제국을 형성을 하였으나, 그 어떤 문헌에도 신성로마라는 명칭은 쓰지 않음을 언급하면서 그가 신성로마제국의 기반을 닦은 것은 인정하지만, 문서상 신성로마제국은 아직 등장하였다고 할 수 없음을 밝히고 있다. 로마 제국의 명칭 등장 작센 왕조의 혈통이 끊기자, 이번에는 콘라트 2세가 등극하면서 잘리에르 왕조가 시작된다. 콘라트 2세는 기존의 독일왕국과 이탈리아를 지배하던 상황에서 과거 중부 프랑크 지역의 한 영지인 부르고뉴의 혈통이 단절되자 이를 차지하여 프랑스와 스페인을 제외한 과거 서로마 제국의 모습을 갖추게 되자 드디어 공문서에 로마 제국이라고 쓰게 된다. 특히 황제에 등극하기 전의 명칭은 로마왕이라는 선례까지 남기면서 이제 제국에는 로마적인 요소를 강하게 내포하기 시작하였다.(후일 프랑스에서는 나폴레옹이 황제로 등극한 후 마리 루이즈 사이에 낳은 아들을 로마왕이라고 칭한 사실도 여기에서 유래하였다.) 특히 잘리에르 왕조는 이탈리아 경영에 신경을 쓰기 시작하였는데, 이는 로마 교황과 이탈리아의 도시 국가들과의 갈등을 유발하게 된다. 오토 대제에 의하여 로마 교황은 황제에게 자유로울 수 없던 상황에서 잘리에르 왕가의 권위가 약해지면서 로마 교황은 황제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에 하인리히 4세는 서임권을 두고 교황 그레고리 7세와 다투게 되고, 그 유명한 카노사의 굴욕도 여기에서 일어난 한 사건이었다. 하인리히 4세는 이후에 카노사의 굴욕을 교황에게 되갚아주지만, 교황에 의하여 생긴 대립왕의 등장과 왕권 강화에 반대하는 제후국의 반란으로 인하여 결국 서서히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신성 제국의 사용 이후 독일은 슈타우펜 왕조가 다스리게 되는데, 그유명한 수염황제라 일컬어지는 프리드리히 1세가 등장한다. 그는 이탈리아 경영에 힘을 쓰게 되는데, 그와 왕의 자리를 겨루었던 벨펜 가문이 반황제파에 가담하면서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들과 협력을 하면서 황제에게 대항을 하였기 때문이었다. 또한 경제적으로 롬바르디아 지역의 경제력을 탐낸 프리드리히 1세는 여러차례 이탈리아 정벌을 통하여 막대한 부를 축적하게 된다. 그러나, 독일 내부에서 바르바로사(프리드리히 1세)를 견제하기 위하여 각종 반란이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용병으로 전쟁을 치루던 바르바로사는 레냐노 전투에서 이탈리아 도시 동맹에게 대패하여 간신히 목숨을 건져서 독일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는 반대 세력의 영지를 몰수해버리면서 건재함을 과시하면서 그동안 갈등관계에 있던 교황과의 전면전을 선포하게 된다. 교황이 바르바로사에게 봉신을 요구하였기 때문에 바르바로사는 정치의 검을 받은 황제는 종교의 검을 받은 교황과 동등하다는 주장을 하면서 교황에게 대항하고, 문서에 신성 제국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된다. 이는 교황에 대하여 종속세력이 아닌 대등함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한 것으로 보여진다. 교황과 바르바로사의 대립은 결국 십자군 원정 당시 바르바로사가 물에 빠져 죽으면서 일단락이 된다. 저자는 이 시기에 문서에서 신성 제국의 사용을 이러한 바르바로사가 처한 상황에서 난국을 타개하기 위하여 사용되었음을 언급하고 있다. 아이러니한 신성로마제국의 등장 이후(바르바로사가 사망한 직후가 아닌 삼왕조의 단절 이후) 독일은 황제가 없는 대공위 시대가 열린다. 1254년 슈타우펜 왕조가 단절된 이후 1273년까지 신성로마황제가 추대되지 않은 시기를 바로 대공위 시대라고 한다.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세력하의 인물을 각각 옹립하여 제국은 혼란에 빠져들게 된다. 이 시기에는 황제의 권위는 추락하고, 수많은 제후국들이 난립을 하게 되는 시기였다. 이때 네덜란드의 빌렘이 1254년 문서상 신성로마제국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이후 계속 이 명칭이 사용된다. 결국 독일의 역사학파가 주장하는 오토 대제 이후 약 300년이 지나서야 신성로마제국이 정식 명칭으로 사용된 셈이며 이것은 로마제국의 에피고넨(후예)국가가 아니라 현대적인 의미의 에피고넨(아류)국가로 전락하였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었다. 이러한 대공위 시대의 혼란은 로마 교황에게도 막대한 피해를 주게 되었다. 혼란으로 인하여 도둑과 강도의 습격으로 교회의 재산이 강탈당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결국 로마 교황은 신성로마제국 황제를 선출할 것을 강력히 주장하고, 프랑크푸르트의 선제회의에서 합스부르크 가문의 루돌프를 루돌프 1세로 선출하게 된다. 이로써 우리 귀에도 익숙한 합스부르크 가문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합스부르크 가문의 신성로마제국 솔직히 합스부르크 가문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은 의외였다. 공작도 아닌 백작 가문으로 출발을 하였던 그다지 세력이 큰 집안이 아니었던 것이었다. 그러한 합스부르크 가문의 신성로마제국은 초기부터 미약한 왕권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심지어 1356년 카를 4세는 황제자리에 오르기 위하여 '금인칙서'에 서명을 하면서 독일 내부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 '금인칙서'는 황제의 선출 과정(7선제후에 의하여 황제 선출을 하는 방법)을 포함하여 제후의 권리를 명문화 한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독일 내부에서는 7대 선제후를 중심으로 각종 제후국가들이 서로의 권리를 수호하기 위하여 경쟁을 하면서 분열을 가속화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합스부르크 가문은 결혼을 통해서 스페인까지 획득하면서 '해가 지지 않는'나라를 이루었으나, 종교 갈등을 이용한 30년 전쟁으로 제국의 곳곳이 황폐화되기 시작하였고, 제후국이었던 프로이센의 성장으로 인하여 도전을 받아 발생한 7년 전쟁으로 세력이 약화되다가 결국 나폴레옹에 의하여 프란츠 2세는 신성로마제국의 해체를 선언하며 그명맥이 사라지게 된다. 저자는 신성로마제국이라는 명칭의 유래를 토대로 하여 신성로마제국의 역사, 나아가서는 유럽의 중세에서 근대에 이르는 역사를 이 책에서 설명을 해주고 있다. 리뷰를 쓰다보니 마지막의 합스부르크 가문에 의한 신성로마제국의 흥망을 상당히 압축을 하였으니, 책으로나마 좀더 자세한 내용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다가 생각난 것이 바로 유럽에서 황제라는 명칭이다. 생각해보니 프랑스, 영국등과 같이 신성로마제국이 아닌 유럽의 국가는 황제가 아닌 국왕이라는 명칭을 사용해왔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황제라고 알고 있었으나, 프랑스의 절대왕정의 최고 절정에 있었던 루이 14세조차 태양왕이라는 명칭의 국왕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였으며, 오로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들만이 황제라는 명칭을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저자는 신성로마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프란츠 2세가 왜 신성로마제국을 해체하였는지를 나폴레옹의 예로 들고 있었다. 프란츠 2세는 금인칙서에 의하여 제후들의 동의를 비롯하여 각종 절차를 거쳐서 황제의 자리에 올랐으나, 나폴레옹은 스스로 이룬 성과에 더하여 형식상 로마 교황으로부터 대관을 받아 황제의 자리에 오른 점을 보고 그 스스로도 명목상인 신성로마제국에 대하여 마음을 버렸던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전하고 있다. 실제 프란츠 2세는 신성로마제국 황제 자리에서 물러났으나, 오스트리아 국왕이 아닌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제로 취임을 하였다. 신성, 로마, 제국(황제)이라는 명칭이라는 관점에서 쓰여진 이 책은 그렇다고 단순히 명칭의 유래만을 좇는 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유래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중세 유럽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시기의 역사를 모두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우리가 단편적으로 알고 있던 역사적인 사건들이 바로 신성로마제국과 연관지어 설명할 수 있다라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저자가 왜 신성로마제국이라는 소재를 통하여 이 책을 썼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생각보다 분량이 많지 않았으나, 모든 내용들이 정말로 알차게 구성되어 있고, 색다른 소재라서 작가의 직관이 많이 개입된 것처럼 보였지만, 각종 문헌을 토대로 객관성을 유지한 책이라서 국내에서는 드문 중세 유럽사의 한 책으로서 읽어볼 것을 권해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