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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식 영웅 만들기, 폭발물 처리반이 살아가는 길...[허트 로커]
"미국식 영웅 만들기, 폭발물 처리반이 살아가는 길...[허트 로커]" 내용보기
1. 사내들이 군대에 가면 누구나 주특기를 받게 된다. 그가 가장 잘 하는 일을 맡기고자 하는 뜻에서다. 논산 훈련소를 마쳤을 때 나한테는 '탄약수리 및 검사' 주특기가 떨어졌다. 숫자로는 442다. 이 주특기는 폭탄이나 폭약, 탄약 따위의 폭발물을 다루는데, 터지지 않은 불발탄을 다루는 일도 한다. 그래서 따로 후방에서 주특기 교육을 16주나 더 받아 일할 부대로 가게 된다.
"미국식 영웅 만들기, 폭발물 처리반이 살아가는 길...[허트 로커]" 내용보기

1.

사내들이 군대에 가면 누구나 주특기를 받게 된다. 그가 가장 잘 하는 일을 맡기고자 하는 뜻에서다.

논산 훈련소를 마쳤을 때 나한테는 '탄약수리 및 검사' 주특기가 떨어졌다. 숫자로는 442다.

이 주특기는 폭탄이나 폭약, 탄약 따위의 폭발물을 다루는데, 터지지 않은 불발탄을 다루는 일도 한다.

그래서 따로 후방에서 주특기 교육을 16주나 더 받아 일할 부대로 가게 된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나는 더 배우지 않고 그냥 전방부대로 가야만 했다. 배울 게 없는 건 아닌데도.

'후반기 교육'을 받지 않은 탓에 잘 알지 못한다고 고참들한테 가끔 '돌팔이'라 놀림을 받기도 했고...

내가 배운 것이 모자라는 걸 아는지, 내가 간 부대에서는 그런 폭발물을 다루지 않았다.

'전문가'가 아닌 '돌팔이'인 나한테는 탄약에 관한 일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가 넘어와

이런저런 일을 닥치는 대로 해야만 했다. 똑 소리 나는 한 가지 솜씨가 없으면 누구든 그렇겠지만.

 

그런 까닭으로 이제 폭발물 처리반을 다룬 영화도 피붙이들과 같이 앉아 볼 수 있는지 모르겠다.

두 다리를 뻗고 인제 원통에서 싸울아비로 일하던 옛날을 생각하면서...

 

2.

조지 부시 대통령의 말에 따라 이라크로 쳐들어간 미군들이 이라크를 쑥밭으로 만들 때만 해도

이젠 이라크는 미국 손에 다 넘어갔구나 싶었는데,

지나고 보니 아직까지도 미국은 이라크를 어찌하지 못해서 발을 빼지도 못하고 엉거주춤하게 있다.

그런 틈바구니에서 폭발물을 숨겨두었다가 미군들을 괴롭히려는 무리들 때문에 미군들은 괴롭다.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이 2008년에 만든 <허트 로커 The Hurt Locker>는

바로 이런 폭발물들을 터지지 않게 갈무리하는 사람들을 다룬 영화다.

이들은 싸움터 밖에서 일하지만 싸움터보다 더 목숨을 잃기 쉽고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싸움터에서 앞장 서서 싸우는 이는 잘 하면 돋보이게 되지만,

뒤에 남아서 뒷마무리를 하는 사람은 빛이 나지 않는다. 잘 해야 본전일 뿐이다.

 

3.

폭발물 전담 제거반(EOD)은 목숨을 내놓고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미군들에 맞서 싸우는 이라크 사람들이 숨겨놓은 폭발물을 터지지 않게 풀어내면 살아남고,

만지다가 터져버리면 죽게 된다. 그래서 이들은 오늘 죽을지 다음날 죽을지 모른다.

 

반장인 윌리엄 제임스 중사(제레미 레너)는 공수부대에 있다가 왔으며,

혼자 두꺼운 방호복을 입고 언제 터질지 알 수 없는 폭발물을 만지면서 선을 잘라 터지지 않게 한다.

 

제이티 샌본 하사(안소니 마키)는 정보부대에서 일곱 해를 일하다 온 사내이고,

오웰 엘드리지 상병(브라이언 캐러티)은 예일대를 다니다 온 사내인데,

이 둘은 반장이 일할 때 그 곁을 지켜주는 일을 한다. 모두 목숨을 내놓고 일을 해야만 한다.

 

폭발물 처리반은 목숨을 내놓고 일을 해서 그런지, 한 해만 일하면 미국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

이제 미국으로 돌아갈 날이 38일 남았을 때부터 영화가 이어진다.

 

4.

제임스 중사는 제멋대로다. 제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사람이라 남의 말은 듣지 않는다.

시끄럽게 잔소리를 해대는 샌본 하사의 말이 듣기 싫어서 폭발물을 다루다 헤드셋을 벗어서 던져버린다.

일을 하다 거치적거린다고 머리를 감싼 헬밋을 벗어버리기도 하고,

폭탄을 가슴 속에 가득 매고 있는 이라크 사람을 그냥 놔두자는데도 곁에 가서 어떻게든 해보려 하고,

폭발물을 두고 간 이라크 사람을 잡자며 골목을 나눠 좇아가도록 하고...

 

그래서 검둥이 샌본 하사는 흰둥이 제임스 중사를 늘 못마땅하게 여긴다. '저러다가 그냥 죽고 말지...'

엘드리지 상병은 골목을 따라가다 다리에 총을 맞기까지 하자 반장한테 대든다.

"당신 때문에 내가 죽을 뻔 했잖아요!"

 

같이 일하는 두 사람이 투덜대거나 뺨을 때리기도 하지만, 그런다고 제임스 중사가 바뀌지도 않는다.

부대 안에서 비디오 장사를 하던 이라크 꼬마 베컴이 안 보이자 찾아 나서기도 한다.

'죽을 때 죽더라도 내 할 일은 해야지...' 이런 마음이다.

 

"여긴 정말 지긋지긋해요. 난 여기선 죽지 않을 거야..." 하며 바그다드를 벗어나고픈 샌본 하사가

"죽는 게 무섭지 않아요?" 하며 제임스 반장한테 물어볼 때도 그는 그저 담담하다.

"나도 잘 모르겠어. 아무 생각도 안 해..."

 

5.

마지막으로 폭발물을 다룰 때 이라크 사람을 생각하는 것을 빼면, 미국과 미군들을 위한 처리반일 뿐이다.

잘못이 없는데도 쳐들어가서 이에 맞서는 이들과 붙은 싸움일 뿐이므로, 그냥 제 살자고 하는 일이다. 

잘못은 미국이 해놓고 그에 맞서는 이라크 사람들을 나쁘게 몰아가는 영화를 좋게 받아들일 수 없다.

터졌을 때 죽거나 다칠 수 있는 사람들을 구한다는 뜻에서 목숨을 걸고 일하는 사람들을 다루었지만.

 

각본을 쓴 마크 볼이 폭발물 처리반에 있었기 때문에 제가 몸소 겪은 일을 글로 담아내고, 

그것을 바탕으로 영화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꾸며내기보다는 아주 생생한 느낌을 주는 영화다.

 

그렇지만 가끔은 폭발물 처리반이 엉뚱한 일을 하는 듯해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

폭발물 곁에 다른 사람들이 못오게 하거나 이라크 사람들이 처리반을 어떻게 하지 못하도록 하는 일은

처리반이 아닌 다른 군인들이 해줘야 한다. 소말리아 해적들을 잡은 우리나라 해군 유디티도 아닌데,

어떻게 처리반이 그런 것까지 다 해야 한다는 말인지...

기술자는 폭발물을 터지지 않게 다루는 일만 하고, 나머지 일은 전투병들이 해줘야 한다. 어딘지 어색하다.

 

또 디브이디 사진에 나오듯이 제임스 중사가 폭발물에 이어져 있는 전선을 잡아당기는 모습이 나온다.

그래서 예닐곱 개나 되는 폭발물이 고구마 줄기에 엮여있듯 드러나는데, 이것도 알 수 없는 대목이다.

폭발물은 먼저 움직이지 않게 해야 한다. 힘주어 건드리면 터지는 것들도 있으므로.

그래서 옛날 무덤 따위에서 오래된 유물을 발굴하듯이 살살 다루어야 한다.

그런데 고구마 줄기 당기듯 힘으로 쑥 잡아당겨서 어쩌자는 것인지? 그러다 터지면? 이건 그냥 영화다.

 

6.

옆지기였던 제임스 캐머론 감독이 만든 <아바타>가 상을 많이 받을 것이라고 사람들이 짐작을 했지만,

보란 듯이 제치고 아카데미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편집상, 각본상을 비롯해서 상을 여섯 개나 받아

사람들을 놀라게 한 영화다. 남우주연상과 편집상, 음악상은 후보에만 올랐지만.  

 

미국 사람들이 높이 여기고, 제임스 중사가 폭발물의 선을 하나씩 잘라갈 때 터질까봐

가슴을 졸이게 되는 영화지만, 나는 별다섯 개를 줄 수가 없다. 네 개만 주었다.

 

"아직도 이라크에서는 폭발물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다친다고 해. 나같은 사람이 있어야 할 곳인데..."

죽지 않고 미국으로 돌아와 옆지기와 아들과 같이 살면서 행복을 느끼면서도

다시 이라크 바그다드로 돌아가 일할 마음이 있는 제임스 중사를 어떻게 봐야 할까?

 

"그러면 그렇지, 나라를 위하고 사람들 목숨을 건지게 하려면 잘 생각한 거야" 하며

미국 사람들은 가슴이 뭉클해져 눈물이 나올지도 모르겠지만,

그 아내나 어린 아들은 다를 듯하다. 남이야 '영웅 만들기'를 하든 말든 같이 사는 게 장땡일 테니까.

"그냥 여기 남아서 우리와 즐겁게 잘 살지, 뭐 하러 죽을지 모르는 일을 해..."

 

미국에 맞서 싸우는 이라크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까?

"당신같은 사람이 없어야 우리가 미군을 이 땅에서 빨리 몰아낼 수 있어...제발 오지 마!"

 

7.

들고 다니는 카메라를 많이 쓴 탓에 화면이 흔들릴 때가 많다.

어찌 보면 그 곳에 내가 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 다르게 보면 어수선한 느낌도 든다.

그래서 영화라기보다는 다큐멘터리같이 보일 때도 있다.

 

영화 디브이디의 화면이나 소리는 좋다. 나온지 얼마 되지 않은 티가 난다.

감독이 영화를 보면서 들려주는 이야기가 들어있고,

영화를 만들면서 있었던 이야기들을 배우들이 들려주며, 예고편도 들어있는 보너스도 괜찮다.

아내와 아이들까지 네 사람이 같이 보았으니, 13,200원도 비싸지 않게 느껴진다.

그런데 가끔 잘 돌아가다가도 잠깐 서는 때가 있어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산 것만 그럴까?



b******g 2011.01.25. 신고 공감 9 댓글 17